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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개혁
정 훈 택 (총신대 교수/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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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신학계에도 "개혁신학"이 인기를 누린다. 교회도 개혁교회여야 한다. 아니 교회도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개혁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개혁을 하는 것인가? 개혁이란 단어가 교회와 신학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개혁"
"개혁"이란 용어는 무엇인가를 목적어로 삼는다. 그 목적어가 사람이든 단체이든 아니면 무형의 신학이든 일단 개혁이란 단어와 결합되면 다음의 두 가지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첫째, 개혁이 적용되는 단어의 어떤 것은 긍정된다. 둘째, 어떤 것은 수정된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 "개혁"이다.
개혁이란 모든 것을 부정하는 단어는 아니다. 또 완전히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도 아니다. 이 역할을 바로 이해하려면 개혁이 수행되는 부분의 전통을 예상해야 한다. 그 전통에 개혁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을 때 이 단어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은 따라서 '신앙이나 신학 혹은 그 주체인 기독교인의 삶이 개혁을 필요로 할 정도로 부정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전제한다. 긍정되어 이어받아야 할 부분과 부정되어 고쳐져야 할 부분을 어떻게 분간하느냐는 것도 중요한 질문이다.
"전통"
전통이란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반적 흐름에 붙여지는 총체적 이름이다. 그것은 풍습일 수도 있고 관습일 수도 있으며 윤리나 종교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삶의 모든 국면에 어느 틈엔가 전통적 삶의 방법이나 전통적 사고가 형성된다.
인류 최초의 전통을 찾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해 보인다. 인류의 시발점을 그 누구도 재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이렇게 말해 보자. 아담과 이브에게서 전통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인류(사회)가 그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전통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그를 축복하시며 구원의 이정표를 마련하실 때 새로운 전통, 즉 믿음의 전통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전통의 특성
전통은 한 시도 고정되어 있는 법이 없다.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장기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전통은 서서히 바뀌어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전통이 자리잡는다. 한 전통이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무리 없이 달라져 갈 때는 발전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짧은 기간 안에 반강제적으로 바꾸기를 강요할 때 개혁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설명이 된다. 발전이나 개혁을 통하여 새로운 전통이 자라나는 것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보면 자리를 대신하는 전통이 과거의 전통보다 나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기 때문에나아진다는 확신에서 사용되는"개혁"은 개악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개선을 의미할 수도 있다.
"개혁"은 전통의 수정이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리라는 기대적 표현이다. 혹은 결과를 놓고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회고적 표현이다.
전통의 역할
전통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그 사회에 태어나는 사람의 삶과 인격을 좌우한다. 한 사람은 그 사회의 온갖 전통을 따라 살아가기를 배운다. 사고의 방법과 행동의 양식도 전통에서 온다. 전통은 그의 사고와 삶의 틀이 되고 그의 양심의 기준으로 자리잡는다.
앞 세대에게서 배우고 넘겨받는 전통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절대적 가치로 작용한다. 태어나서부터 전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 권위로 습득되는 것이다. 전통 아래서 자라는 사람은 그 전통에 스스로 항거하기까지는 그것을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전통은 그 전통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득권을 제공한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것을 따라 이권과 명예와 권력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사회의 구조에 반발하는, 즉 전통을 거스르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손해가 돌아온다.
사람들의 습관도 전통 하에 만들어진다. 그래서 전통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가진다. 전통을 고수하는 한, 누구나 평안을 누리지만 전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불안과 혼란에 말려들게 된다.
이러한 전통의 역할과 가치는 신앙과 신학의 영역에서도 사실이다.
개혁의 동기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을 때 소위 구약적 '믿음의 전통'이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계속되는 요소였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익혀 왔던 전통적 삶의 방법을 광야생활과 축복의 땅에서의 삶을 통하여 수정해야 했다. 새로운 삶의 방법을 익혔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이것을 주신 하나님의 언약,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개혁의 동기였고 구약적 전통을 창조하는 출발점이었다.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타락과 회개, 즉 개악과 개선의 연속이었다. 사사들, 대제사장들, 선지자들은 수시로 하나님의 언약인 율법을 준수할 것을 호소하며 개혁의 선봉에 섰다. 아무리 시대가 요청하고 그 상황에 들어맞게 새롭게 단장되는 그런 전통이라도 율법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에 맞지 않으면 개혁의 당위성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신약적 동기
교회가 탄생할 때 유대사회는 구약시대와 다른 나름대로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율법에 기초하면서도 변하는 시대에 적용하기 위하여 재해석된 것이었다. 굴종과 고난의 세월을 걸어오던 유대인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이방인 지배자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장로들의 구전'이 필요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역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온 전통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 전통에 순응하기보다는 개혁을 원하셨다. 예수님의 개혁은 시대에 맞추어 발전되어 온 상황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구약적 전통 내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혹은 만물을 창조하실 때 가지셨던 원래 의도대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예수님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일점일획도 폐지될 수 없는 영원한 규범이었다. 시대상황에 걸맞게 적당하게 만들어 내는 외형적 일치가 아니라 그 정신 "의와 인과 신" 혹은 율법의 강령으로서의 사랑이 어디서나 드러나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개혁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다른 동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대속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었다. 인자를 인정할 수 없는 전통은 비판되고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기독교적 전통이 탄생했다.
예수님의 개혁은 믿음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구약을 바꾸어 놓은 그런 총체적 변화로 보였지만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율법과 선지자들이 본래부터 예언하고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믿음의 전통'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새로운 동기로 등장한 것이다.
기독론적 동기
교회는 예수님의 개혁을 이어받아 새로운 기독교 전통을 하나하나 수립해 갔다.
신앙과 신학의 영역에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확립하고 기독론을 발전시켰다. 예수로 말미암아 발생한 기독론 그리고 기독론적 사고가 신앙과 신학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바로 이 새 기준 나사렛 예수와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개혁의 동기를 주었다.
삶의 영역에서도 유대교를 기독교적 형태로 고쳐 갔다. 안식일 준수를 주일 준수로 바꾼 것이라든지, 할례의 폐지와 제사제도의 폐지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교회 제도의 개혁도 예수님에게 근원을 두고 있다. 예수님께서 임명하셨던 열 두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자연스럽게 구약과는 다른 형태의 예배형식을 발전시켰다.
개혁의 동기는 교회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나사렛 예수에게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이어받으며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성령을 통해 다시 사역하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이 개혁의 동기였다. 사도들은 이러한 개혁의 사명을 위임받은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이천 여년 동안 계속될 교회의 전통을 수립하는 일꾼들이었다.
교회의 개혁
복음이 한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때, 교회는 그 지역의 전통이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을 위협하지 않는 한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전통의 어떤 부분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관계될 때 교회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전통을 수정해 갔다. 선교의 역사는 낯선 문화의 이입으로 나타나지 않고 전통과 개혁의 조화로 나타났다. 그 결과 기독교적 전통은 복음이 전파되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서로 달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는 신약성경에 고정되어 있는 대로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는 믿음의 전통이 나사렛 예수에게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것으로 고정되었고 이 한계를 벗어나는 사람들을 과감하게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죄했다. 교회의 탄생과 함께 형성된 정경이 그 기준이었다.
기독교인이 직면하는 전통과 개혁의 두 국면
기독교적 믿음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개혁"이란 항상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첫째, 한 사람이나 신앙공동체가 믿음의 길에 들어왔으면서도 믿음에 이르기 이전의 전통에 얽매여 있을 때만약 이것이 부정적인 성질의 것이면급박한 개혁이 요청된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말씀 속에 나타난 삶의 원리가 그 기준이었다.
둘째, 기존의 신앙이나 신학 자체에 부정적인 부분 혹은 미완성의 면이 있을 때 개혁이 요청된다. 신앙과 신학은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이 변치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 사회에 태어나 기독교적인 삶을 익혔다면 그런 사람에게 하나의 전통과 한 종류의 개혁이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독교 사회가 완벽한 기독교적 삶을 구현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 때의 얘기이다.
나가는 말
신앙과 신학의 영역에서 전통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개혁이란 단어는 성경적 전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영역에서 신자나 교회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 이 때 성경은 개혁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근거, 원리의 역할을 한다. 삶의 어떤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정신이 배제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보기 때문에 개혁은 교회가 존재하는 그 사회의 현실을 고쳐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 신앙과 신학, 삶의 원리와 현실을 부단히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모든 국면의 잘잘못을 저울질해야 한다.
복음이 한 인간 한 사회의 모든 부정적 부분을 개혁한다는 것은 어느 시점에라도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앞 선 시대에는 완벽하게 보였던 기독교적 신앙과 삶이 다음 시대에는 쉽게 그 치부와 허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교회나 개인에게서 쉽게 새로운 부정적인 부분이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새로운 기독교 전통으로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할 기독교인 자신이나 교회 자체가 개혁의 가장 큰 복병이 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