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요한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
湖 南 神 學 大 學 校
서론 : 요한의 기독론 인식에 있어서 문제와 방법론
레이먼트 브라운은 이 책에서 요한의 기독교가 지엽적인 분파 현상이 아니라 회당과 다른 교회들에 대립하는 주류였음을 밝히고자 했으며 다른 기독교인들과 연합되기를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기를 원했다.
요한 공동체가 대부분의 다른 기독교인들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하나의 분파였다. 그것은 요한복음이 반성례전적 또는 비성례전적일 가능성과 반베드로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공동체 역사를 연구하려는 것으로 예수와 그의 메세지가 요한의 근본적인 관심이지만 예수의 행위들과 말씀들 역시 그의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유용하다고 보아 복음서 기자는 기독교 공동체의 삶의 정황을 복음서 안에 포함시켰다. 그것으로부터 공동체의 삶의 정황에 관한 보편적인 지식을 얻을 수는 있으나, 이것을 자세히 구체화시키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특정한 것으로서 교회의 역사에 관한 지나친 상상력에 의한 추론들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더 큰 위험은, 현존하지 않는 전복음서(pre-Gospel) 자료를 가정하는 것과 복음서 기자가 자료를 자신의 의도에 따라 수정하는 방식을 토대로 복음서 기자(그리고 그의 공동체)의 신학적 견해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위와같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다음과 같은 시도를 한다.
첫째로, 저자의 결론들을 재구성된 자료가 아닌 현존하는 제사복음서로부터 도출 하려고 한다.
둘째로, 공관복음서(역사적일 가능성이 더 많다)와 현저하게 다른 요한복음의 구 절들에 강조점을 둘 것이다.
세째로, 요한이 침묵하는 부분에 대한 논의에서는 요한이 우연하게 빠뜨리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침묵에 한정할 것이다.
그것은 요한이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의미심장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복음서 기장 중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마태 뿐이기 때문이다.
제 1 장 복음서가 기록되기 이전
요한 공동체의 기원
요한 공동체는 그 초기에는 비교적 하등수준인 기독론(relatively low christology)에 해당하는 견해를 가지고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후 보다 고등수준인 기독론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이를 신성모독으로 간주하는 유대인들과 요한 공동체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낳게 된다.
초창기 그룹과 하등 기독론
가) 요한 공동체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초창기 그룹에 대한 묘사
요한복음 1:35-51에서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예수를 그들이 기대한 메시야로 여기고 예수께 온 유대인들 가운데서 요한 공동체가 시작된다는 사실과 요한 공동체의 기원이 다른 유대계 교회들의 기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것이다. 또한 공관복음서와 달라진 점이란 말씀들에 대한 제사복음서 기자나름의 전개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요한복음 6:51에서 시작되는 말씀("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은 누가복음 22:19절에서 떡에 관해 하신 예수의 말씀("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과 유사하다. 결국 요한의 역사에는 공관복음서와 같은 기적들과 말씀들이 독특한 요한의 장면들과 강화들 속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요한 공동체의 초창기와의 연속성은 그 공동체로 하여금 복음서가 비록 늦게 기록되었고 그리고 세례요한의 다른 추종자들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예수께 대한 특별히 고양된 이해가 세례요한의 증언과 완전히 조화 이룬다는 주장을 하게끔 했으며, 심지어는 그 증언을 토대로 세례 요한을 요한 공동체 기독교인 중 한 사람으로까지 주장하게 했다.
나) 사랑 받는 제자의 역할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신비로운 인물이요, 그 공동체의 영웅인 사랑받는 제자는 순전히 가공의 인물이거나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가 역사적인 인물이며, 예수의 친구였다는 사실이 요한의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을 통해 더욱 명백해진다. 그리고 사랑받는 제자를 베드로와 대립시켜 놓은 제사복음서는, 그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포함된 그룹 곧 가장 잘 알려진 제자들의 그룹에서 벗어나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하여 사랑받는 제자의 이름은 알 수 없다는 것과 단지 그는 이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며 예수께서 세례 요한과 가까이 있을 때 유대에서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그를 알았다는 것은 그와 예수의 관계는 열두 제자의 대표자인 베드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두번째 그룹의 용납과 보다 고등한 기독론
요한복음 2.3장에서는 표면적으로만 예수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보기 보다는 더 깊이 예수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공관복음서에 다루지 않는 사마리아의 온 마을 사람들로 예수가 세상의 구원자라는 믿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두 번째 그룹의 요한 공동체 기독교인들에 대한 묘사
요한복음 1:35-51에서부터 많은 사마리아인이 개종할 때인 4:4-42까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의 주된 추종자들이었다 (1:35-51). 이 두 번째 신자 그룹은 첫 번째 신자들에 의해 개종하게 된 것이 아니며 (4:38), 세상의 구원자로서의 예수에 대한 이들의 고백도 1장에 언급된 표준적인 구약의 기대들과는 사뭇 다르다.
요한공동체는 열두제자에 의해 선포된 기독교와 다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46과 3:1은 사도들이 성전예배에 충실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징들을 수용함으로써, 요한 공동체의 역사상 두 번째 그룹은 사마리아인들을 개종시킨 특별한 반성전적 견해를 가진 유대인들로 이루어졌고, 또한 다웃적 메시야에 중심을 두지 않은 기독론을 포함한, 사마리아적 사고방식의 몇 가지 요소들을 취했음을 짐작학 수 있다. 예수를 믿는 요한 공동체 신자들은 요한 기독교의 주류에 들어온 두 번째 그룹의 특성인 성전제의에 대한 반대와 사마리아적 요소를 내포한 기독론을 수용함으로써 보다 전통적인 유대인들로부터 특별한 미움을 받게 되었다.
나) 유대인들과의 갈등
요한은 의식적으로 예수시대의 유대 당국자들과 요한 시대의 적대적인 회당 거주자들에 대해 동일한 용어를 구사한다.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의 서기관중 몇몇이 예수에게 적대적이었으며 그를 죽이는 데 한 몫을 담당했는데, 요한 기독교도들을 축출하고 죽게 한 자들은 그 초기 그룹의 계승자들로 간주된다. 따라서 요한복음서는 이중적 차원에서 읽혀지는데 "유대인들"이라는 용어는 그 두 차원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섬김의 열정에서 기독교인들을 죽였다는 요한의 고소가 있다.
유대인들의 공중예배에 참석치 아니한 기독교인들은 회당이 이들을 축출하여 유대인들이 이들을 로마 감독관들에게 팔아 넘기게 된다. 그래서 요한이 유대인들에게 적대감을 갖게 된 배경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다) 보다 고등한 기독론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독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해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다고 하였다. 요한의 기독론은 반성전적인 경향의 유대인의 등장과 보다 고등한 기독론으로의 촉매역할을 한 사마리아인 개종자들의 등장한다. 사마리아 신학에 있어서 강조점은 모세이나 요한의 선포는 모세의 자료를 끌어다가 그것을 정정한 것이며 하나님을 보았고 위로부터 들은 것을 말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 온 자는 모세가 아니라 바로 예수라고 하는 해석이다.
요한 공동체에 새로 들어 온 자들에게 적용된 "촉매"라는 용어는, '위로부터 내려오심'과 '선재하심'에 관한 신학을 향해요한 공동체가 나아 가도록 한, 예수의 해석을 위한 범주들을 그들이 가져왔다는 것을 뜻한다. 제사복음서의 구절들에 표현된 것은 독특한 고동 기독론이며 요한 기독교에 받아 들여지게 된 예수께 대한 믿음의 형태를 반영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이다(10:30). 따라서 그를 보는 것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14:9). 참으로 그는 신적 의미를 함축한 '에고 에이미'로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은 유대인들에 의해 신성모독의 문제가 발생한다.
라) 요한 신학의 결과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유대 백성들 사이에 새롭게 된 계약을 갖게된다. 확실히 요한의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새로운 종교가 되었으며 가난하기 보다는 더 부유하게 되었다고 자기자신에 대해 주장하는 종교이다.
요한은 실현된 종말론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얻은것이 잃은 것보다 더 크다. 공관복음에서는 영생이란 마지막 심판 때나 미래에 받을 선물이다(막 10:30; 마 18:8-9). 그러나 요한에게는 이것이 현재적 가능성이다(5:24) 요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보기 위해 재림시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즉 예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마) 초기 단계와의 연속성
요한의 기독론과 그로 인한 결과들의 독특함을 강조하는 것은, 요한의 사고가 그 초기단계들과 연속성이 있었으며, 요한 공동체 내의 두번째 그룹으로 인해 촉진된 발전이 심한 분열을 야기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통찰력은 거의 옛 통찰력 위에 세워진 것이며, 고등 기독론은 하등 기독론위에, 실현된 종말론도 최종적 종말론위에,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강조 위에 세워졌다는 점과 개개 성례제도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 복음서가 현실(reality)에 대하여 성례전적인 이해를 보여 준 점 등등이 제사복음서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변칙들이다.
이 공동체에 대해 또 달리 지적해야 할 것은 요한이 낡은 하등 기독론의 용어를 보존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하등 기독론의 장면들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취하여 재해석한다.
초기 기독론에 있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나타난 거절과 버림 받은 후 예수의 승리를 보여준다.
요한은 예수께서 "들리워 질 때"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 하셨다고 봄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재해석했다. 요한 기독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는 다른 기독교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과 보다 보편주의적인 견해
유대인들이 예수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이방인들의 개종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서 더 이상 자신들은 유대인이라 생각지 않았고, 자신의 공동체에 이방인들을 받아 들였던 것이다. 즉 요한 공동체는 이미 예수를 "세상의 구주(4:42)"로 선포하는 사마리아인을 받아들이며, 예루살렘에서나 그리심에서가 아니라 신령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하는 진전을 보임으로써 유대교를 넘어선 의미있는 진보를 했다. 이와 같은 개방성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포함한 유대9인들 중에서 시작된 요한 공동체를 더욱 폭넓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 정신에 있어서나 심지어 이방인들에 대한 선포에 있어서까지도, 세례 요한이 예수를 이스라엘(1:31)에게 나타낼 때 했던 것과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제 2 장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기
요한 공동체와 다른 그룹들과의 관계
요한의 신자들과 여러 부류의 불신자들 및 다른 신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복음서에서 탐지되느 불신자들
그룹 1 : 세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외아들을 주셨다"는 구절은 뙽한이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요한은 세상이란 요어를 차츰 빛을 거절하는 자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 그 이유는 빛을 영접하는 자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오심은 어둠의 자식들이 거주하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에 세상은 예수와 상반되며 예수의 영과도 상반된다.
요한은 세상과 "유대인들"을 동일시한다. 예수께서는 자주 세상과 "유대인들"을 향하여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즉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며, "유대인들"의 아버지는 마귀이다(8:44) 그리고 적대의 대상이 "유대인들"로부터 세상으로 바뀐다. 이것은 요한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들과 마주치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세상이 요한의 복음서를 거절함으로 그들의 소외감은 증가되었으며 이로인해 공동체는 세상에 대해 외인이 되었다. 제사복음서가 쓰여질 당시 공동체는 내적인 사랑으로 인해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비극이 공동체의 내적 분열을 겪게 되는 후기 역사에 나타난다.
그룹 2 : 유대인들
요한복음에 나타난 주요 논쟁은 예수의 신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 기독교인들과 회당 지도자들 사이의 보다 초기 논쟁들이 점점 심화되어 결국 요한의 기독교인들이 회당에서 축출 당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6:37, 39, 44, 65) "유대인들"을 향한 요한의 예수의 말씀은 그 같은 사람들은 요한 공동체에 들어올 가능성이 없다는 표시이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병존할 수 있는 지에 관한 질문은 예수께서 그 자신의 선포와 이에 대한 바리새인의 적대적인 반응에 대해 말할 때 처음으로 제기된것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을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트린다 (막2:22)
그룹 3 :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
세례 요한에 관련된 부정적인 진술들은 "그는 빛이 아니다(1:9)," "그는 예수보다 앞서 있지도 않았다(1:15,30)", "예수는 흥해야 하고 그는 쇠해야 한다(3:30)"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니라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제사복음서에서 이들을 비신자로 보고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에 대한 그릇된 강조를 조심스럽게 바로 잡음을 통해 반박 했다는 사실은 요한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개종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원이 세례 요한 운동에 있었기 때문에 요한 기독교인들은 어두움보다 빛을 좋아 하지만, 잘못된 램프를 가지
고 세상을 비추려하는 그들의 이전 형제들에 대해서는 보다 관용적이었다.
제사복음서에서 탐지되는 다른 기독교인들
"믿었으나, 예수를 거절한 유대인들"과(8:31 이하) "떠나가서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지 않는 제자들(6:66)"에 관해 말한다.
그룹 4: 숨은 기독교인들(Crypto-Christians)
(회당 안에 머무른 기독교 유대인들)
요한복음 12:42-43은 예수께 마음이 끌려 그를 믿었으나 회당으로부터의 축출이 두려워 공공연히 자신들랗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요한은 그들을 경멸했다. 요한의 판단으로는 예수를 공공연히 고백하지 못함은 그들 역시 실제로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유대인들"처럼 숨은 기독교인들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로서 보다 모세의 제자들로 알려지기를 원했다 (9:28)
그룹 5: 그룻된 신앙을 지닌 유대계 기독교인 교회들
1세기말에 회당을 떠났으며 (또는 축출 당했으며), 공공연히 기독교인으로 알려졌고, 교회를 형성했으나 요한이 적대적 태도를 보였던 유대계 기독교인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는 회당을 떠나 요한이 그의 "제자들"이라 부르는 자들과 논쟁을 한다.
그릇된 신앙을 가진 유대기독교인들의 예중 하나는 7:3-5에 있는 예수의 형제들일 것이다. 그들은 비교적 조용히 기적을 행하기 보다는 유대로 가서 거기서 기적을 행하라고 예수께 권한다.
요한은 이것을 예수로 하여금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라는 초청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 그의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해설한다. 요한의 시각에서 볼 때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됨으로 인해 그 유대계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의 참되고 자유로운 씨라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스마엘을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당시 유대적 시각에서 볼 때는 노예이며, 불법의 아들이었다.
논쟁의 과정에서 기독론이 실제적 문제로 대두 될 때, "믿는" 유대인들(유대계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스스로를 아브라함 보다 먼저 있었다고 말하고, 신적 칭호인 "에고 에이미"를 사용한 것이 신성모독이라 생각했다. 요한의 시각에서 볼 때 이들이 예수의 참 모습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유대인들" 보다 나을 것이 없는 "믿는 유대인"이라는 의미이다. 논쟁 끝에 결국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다.
그룹 6: 사도 교회의 기독교인들
요한이 그리스도인의 한 그룹의 대표자로 베드로와 열두 제자를 선택함은 이 그룹의 기원이 유대계 기독교인들이나 여전히 그와 같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그룹과 같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베드로와 열두 제자가 요한 공동체와 구별되는 한 그룹의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을 대표하지 않음은 베드로와 요한 공동체의 영웅인 사랑 받는 제자 사이의 일관성 있는 의도적인 대조이다. 18:15-16에서 사랑 받는 제자는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 갈수 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베드로는 그의 도움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열둘 중 가장 유명한 제자를 그들의 영웅과 대조함으로써, 요한공동체는 베드로와 열두 제자를 공경하는 교회들 즉 사도적 교회들(다른 학자들은 공교회 라 부른다)에 대해 자신들을 상징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사랑받는 제자에 의해 대표되는 요한의 기독교인들은 명백히 그 자신들을 사도 교회의 기독교인들보다 예수와 더 가깝게 있고 더 잘 이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요한 기독교인들의 상대적으로 우월한 점은 기독론에 있다. 사도교회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거명된 제자들이 상당히 높은 기독론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그들 역시 예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요한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도교회 기독교인들의 믿음에서 놓친 기독론의 한부분은 예수의 선재에 대한 인식과 위로부터 온 그의 기우너에 관한 인식임을 알 수 있다.
요한 기독교인들을 사도교회 기독교인들부터 분리시킨 것은 바로 교회론적 차이일 것이다.
제사복음서는 실제로 "사도"의 범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제자"를 가장 중요한 기독교인 범부로 여겼으며 그로 인해 예수와의 연속성이 사랑 받는 제자의 증거를 통해(19:35; 21:24) 회복되었음을 말한다.
사랑에 근거한 제자도의 범주는 요한 공동체 내에서 그 밖의 어떤 다른 것의 중요성도 약화 시킨다. 그래서 잘 알려지 바 목자에 관련된 베드로적이고 장로적인 표상조차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1:15-17)라는 식의 조건적 질문없이는 소개되지 않는다. 요한은 예수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제정하시고 명하신 성만찬과 세례에 관한 말씀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마지막 행위로 성례를 제정하는 예수의 표상은 교회 생활의 한 측면과 그것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요한에 있어서 성례는 예수의 사역기간 동안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배고픈 자를 먹일 때 나타난 능력의 연속이다.
제사복음서는 가장 본질적인 것 즉 보혜사를 통한 Ꞩ는 자들 가운데 예수의 임재를 강조함으로 그같은 발전들이 본래부터 지닌 위험들을 경고하는 목소리로서 해석되었다. 즉 요한의 교회론은 요한 기독론의 특성을 반영한다.
요한 공동체는 하나의 분파였는가?
요한 기독교인들은 회당과 그 지도자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유일한 기독교집단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공동체보다 더 요한 공동체는 숨은 기독교인들 유대계 기독교인들을 기독교 공동체에서 배제시키려 했다.
그리고 예수의 형제들과 관련이 있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을 더 이상 예수를 따르지 않고 실제로 그를 믿지 않았다고 고소한다. 이 특별한 거절들 이외에도 요한에게는 우월감과 분리감 등 분파적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교회 기독교인들을 향한 요한의 태도는 제사복음서에 반영된 것처럼, 오한 공동체가 실제적으로 하나의 분파가 아니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요한 기독교인들은 사도교회 기독교인들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13:34)"는 예수의 명령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예수께 속한 사람들로 보았다. 후에 공교회가 요한의 선재 기독론을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