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마태복음 12:9-13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연구
I. 서론
성경 해석은 독자로 하여금 본문의 의도를 확인하고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 해석은 성경 저자와 현대의 독자와의 간격을 좁혀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해석의 방법에 따라서 그 본문의 의미 파악과 현재의 독자에게 다가오는 감동이 다를 수 있다. 해석의 방향과 관점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달라지며, 현실 적용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의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의 본문이 현재의 삶에 의미 있는 해석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성경 본문 해석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종합적인 성경 해석 방법을 통하여 본문의 의미를 찾고 현재의 삶에 적용하여야 한다. 삶에 적용을 위한 의미 있는 해석을 하기 위해서 해석 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행해야"한다. 즉 성경 해석에 있어서 편협하거나 너무 현실성이 없는 추상인 것을 배제하여야 한다. 성경 해석은 종합적인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경이 살아나게 되고 성경 본문이 현재의 상황에 말하게 하고 본문에 순종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성이 없는 해석은 무의미하다. 복음은 우리의 일상생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우리의 일상의 삶과 관계가 없는 복음은 무의미 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상의 삶으로 이끌어 주지 못하는 해석은 무의미한 해석이 되고 만다.
본 글은 종합적인 해석의 관점에서 마태복음 12장 9-13절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의 사건을 해석하려고 한다. 본문은 종합적 해석 방법에 의하여 다양한 의미와 여러 가지 현실에 적용 할 수 있는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제한 적으로 사회, 종교적인 편견과 억압으로 눌린 자의 관계를 열어 보임으로써 본문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한다.
본 글은 깊은 연구라기 보다는 종합적인 해석의 방법으로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현재의 소외된 자를 향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주목적을 두었다. 그러므로 이 글의 구성은 서론에 이어서 마태복음 전체를 저자의 사상적 측면에서 말하고, 본문의 기적의 배경을 살피려고 한다. 이러한 기초적인 작업 위에 본문을 종합적인 해석의 방법으로 택한 본문 전체를 해석하려고 한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종합적인 해석 방법에 의한 메시지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본 글의 전체적인 방향이 소외된 자에 대한 해방적 측면에서 전개하고 결론을 맺음으로 편협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종합적인 연구 해석 방법에 의해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메시지 중에 하나의 메시지이다. 종합적인 해석 연구에 의해 또 다른 다양한 메시지가 선택한 본문에서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II. 본 론
1. 저자 마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파악하여야 한다. 저자를 앎으로서 저자가 의도하는 본문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사상과 배경 등의 연구를 통하여 본문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저자를 마태로 볼 때 마태라는 사람은 본래 세리의 신분이었다.(마9:9) 예수가 마태를 부르고 마태의 집에서 식탁 교제를 나눌 때 그것은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마태의 직업은 세리다. 그 당시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좋지 못한 평을 들었다. 세리들은 로마의 청부인으로 세금을 거둘 뿐만 아니라 지기들의 몫으로 돌아올 세금을 별도로 거두어 들였다. 이들은 동족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며 죄인들의 무리로 취급이 되었다.
마태는 경제적으로는 풍족을 누렸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동족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소외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그를 포함한 죄인들을 환자로 표현했고 예수 자신은 의사로 표현했다. 마태 자신의 이러한 배경은 그가 성경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소외되고 눌린 자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다른 저자와 비교하여 소외된 자에 대한 빈도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그가 소외 계층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마태는 사도들 중에서도 특출한 사람도 아니었다. 마태는 경제적인 부를 위해서 종교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었다.. 제자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눌린 자의 입장에 서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태가 눌린 자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 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마태는 마태복음에 20개의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적의 숫자는 소외된 자를 위한 마태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2. 기적의 배경
선택된 본문의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 날은 안식일이었다. 본문에 앞서 11장 25절부터 안식일에 대한 교훈과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계명 중에서 제4계명에 해당하는 안식일은 엿새 동안 생업을 위하여 수고하고 지친 심신을 쉬는 날이다.(출20:10) 안식일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사역을 기억하는 날이다. 또 안식일은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며, 신령한 영적인 교제를 나누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예수 생애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의 참된 뜻보다는 그 형식적 준수 그 자체에 더욱 골몰한 나머지 온갖 금지 규례들을 문자 적으로 지키기 위해 힘을 낭비하였다.
본문의 안식일에 대한 논쟁은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밀을 잘라 손으로 비비며 일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마12:1-8) 그들은 회당에 도착해서까지도 안식일에 대한 논쟁을 계속 했다. 안식일이 힘든 자와 지친 자 그리고 눌린 자들이 쉬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키도록 강요한 것이다.
당시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십계명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으며, "안식일 제도는 유대인들의 실생활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안식일의 구체적 준수 사항들은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초미의 관심을 갖는 안식일에 대해서 범하는 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보기에 평민 백성의 지도자인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 자신이 안식일을 범함으로써 안식일에 대한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일에 관심을 더 두었으므로 예수에 대해서 분개한 것은 당연한 것이 였는지도 모른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여섯 번이나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의 편견을 지적하여 말씀하셨다.
예수님 당시에 안식일을 범한다는 것은 시대적 상황으로 용납될 수 없었다. 만약 안식일을 범할 경우에는 돌에 맞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동족들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뿐만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되었던 시대였다.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에게는 유형 무형의 형벌이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가해졌으며, 그것은 가혹한 것이 였으며, 더욱이 안식일 그 자체의 의미를 상실하고 사회를 통제하고 종교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던 그 시대는 소외된 자들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던 종교적인 폭력이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선택된 백성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과 감사보다는 자만심과 우월감을 가지고 배타주의 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이러한 의식은 약한 자는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겼고 지도자들은 신적인 권위를 갖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부의 사람들로 하여금 소외되게 했다.
3. 본문 해석
먼저 안식일에 관계되어서 예수님의 활동은 병든 자와,(마12:10) 굶주린 자,(마12:1) 그리고 구덩이에 빠진 양(마12:11)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안식일에 관련되어 바리새인들과 논쟁된 사건 속에는 병든 자나 죄인 그리고 소외된 자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실제적으로 안식일의 참된 의미도 이처럼 소외된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고침 받고 건짐을 받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날이 바로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 였던 것이다. 즉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소외된 자들로 하여금 숨을 돌리게 하여주고 육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다시 옛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려는 것이다.
<본문 해석>
9절: 예수 자신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걸어오면서 가르쳤다. 그리고 9절에는 그 장면에 이어서 이미 회당 안에 들어왔다. 즉 본문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안식일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안식일을 벗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안식일 안에서 잘못된 견해와 충돌하면서 안식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고 고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마12:9)라고 말하는 것이다. 9절 이하에 일어나는 사건이 곧 안식일에 일어나는 사건을 예고하는 것이다.
10절: 안식일과 관련되어서는 변함없이 소외된 사람이 등장한다. 본문에 등장한 사람은 "한편 손이 마른 사람"이다. 그는 정상인과 비교해 볼 때 지금까지의 그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적인 반응과 푸대접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예수는 안식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을 보고 있었다. 성경 본문이 안식일에 다른 사건 혹은 다른 일들을 등장시켜서 안식일에 대한 논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대한 논쟁 때는 항상 등장하는 배고픈 사람과 병든 사람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외된 자들은 안식일이라는 이름 아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더 소외되었던 것이다. 종교적인 의식과 종교적인 관습들은 그들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웅덩이에 빠진 양은 건져낼지언정 손 마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려는 마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병든 자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즉 예수를 송사 하려는 것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병든 자가 다시 한번 놀림의 대상으로 선택되어진 것이다.
12절: 예수는 이들에 대해서 현실적이고도 실감나는 예를 하나 들어 안식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설명한다. 그것은 "구덩이에 빠진 양 한 마리이다." 이것은 동물을 향한 자비의 행위가 세상에서 당연한 질서로 말한 것이다.
양에 비해 인간의 존엄성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병든 자를 위하여 찾아온 예수가 양을 구원하는 날에 병든 자를 치료한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표현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안식일에 이처럼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안식일에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당연히 바리새인들이 하여야 할 일임을 가르쳐 준 것이다.
본문은 질병에 관계없이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서 존귀한 존재이며, 사람들이 재산으로 아끼는 양과 사람을 비교하여서 사람의 귀중함과 존귀함을 나타낸다. 가진 정도와 관계없이 그리고 몸이 불구이건 성한 사람이건 관계없이 인간은 인간 존재 자체로서 존귀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이처럼 존귀한 자들을 위한 선을 행하는 날임을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이러한 안식일의 선한 행위들이 성경에 위배되지 않음을 예수는 직접 시범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성경이 그것을 금하지 않았고, 흠이 없었다. 안식일이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에 의하여 선한 것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는 세속적인 관심에는 쉬어야 하고 관계를 끊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영적인 것과 선한 일에는 더욱더 힘을 내는 하루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예수는 안식일에 구덩이에서 양을 건져내듯이 보다 적극적인 선한 행동을 원하고 있다. 예수의 이러한 말과 행동은 율법의 차원을 뛰어 넘어서는 것이다. 진정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뛰어 넘는 자비와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본래의 율법의 의도와 달리 정치적인 목적으로 율법을 오해한 규범들은 더 이상 사랑과 자비의 실천에 제동을 걸 수 없는 것이다.
안식일에 선한 행위인가 악한 행위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가 구분되지 않고 무조건적인 금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적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13절: 이 세상에서 병든 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근원은 오직 예수이다. 즉 예수는 이 땅에 천국을 확장할 뿐 아니라 믿는 자들의 영과 육 모두를 구원해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임재한 것이다. 예수가 공생애 동안 걸어가면서 만난 사람들은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영적으로는 죄였고, 육적으로는 질병과 가난과 소외된 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충족감을 안겨 준 것이다.
오늘 본문도 예외 없이 환자가 등장하고 그에게 예수의 자비가 닿았다. 예수는 제자들 외에 인간 관계에 있어서 구체적인 만남이 많지 않았다. 더욱이 사랑을 가지고 만난 것을 더 그렇다. 예수께서 구체적인 인격적인 교제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죄인들과 병든 자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을 만져 주었으며, 구체적인 인격적인 교감을 이루는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안식일에 대한 랍비들의 유전에 의하면 손 마른 자는 결코 병고침을 받아서는 안되었다." 이러한 종교적인 행습에서 볼 때 예수의 병고침의 사건은 파격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마른 손을 다른 손과 똑같이 정상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완전한 정상으로의 회복이다.
예수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른 손과 똑같이 정상으로 고쳐 놓는 것이다. 그리고 병든 사람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고쳐 놓는 것이다. 소외된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다. 예수의 소외된 자를 위한 사역의 초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고쳐 주는 것이 예수의 관심이다. 소외되어 낙심된 사람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고쳐 놓는 것이 예수의 관심의 초점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범이었으며 그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도 그러한 신앙으로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가르침이다.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던 사람들보다도 더 큰 기쁨과 평안이 가득할 것이다.
예수가 원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난 의식이 아니다. 의문의 제사가 아닌 속에서부터 용솟음쳐 나오는 사랑이어야 한다. 이러 사랑이야말로 제사와 율법의 뜻이요 사랑의 헌신으로 자신을 바치는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혹시 그가 죄 때문에 그러한 질병이 걸렸다 할지라도 예수는 외면하지 않는다. 예수는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거룩을 동시에 가진 분이다. 예수는 죄인들의 죄에 대해서 노여움도 갖지만 동시에 죄인들에 대한 슬픔과 용서도 함께 지닌다. 질병과 소외가 죄로 인한 것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든지 관계없이 만나는 고통을 고쳐 주었다.
예수의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천국의 백성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영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질병과 가난에서도 구원하는 그의 임재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III. 결론
지금까지 안식일에 예수가 손 마른 자를 고쳐 주는 본문을 종합적인 해석 방법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본문으로 하여금 우리의 삶 가운데 말하게 하고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 가는 성경이 되게 한다. 예수의 행함과 그의 메시지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것임이 틀림이 없다.
이러한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의 의도는 종합적인 해석을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결과는 문화의 거리와 시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이 적용할 수 있다. 종합적이지 못한 해석 방법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며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종합적인 해석의 방법은 이러한 불편함을 없애 준다. 종합적 해석의 방법은 오히려 현재의 나를 일깨우고 역동적인 살아 있는 말씀으로 역사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합적인 해석의 방법은 필요한 것이다.
성경의 말씀이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의 말씀이 현재를 사는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성경은 말씀하여야 하며 종말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더 강하게 역사 하는 성경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역사는 종합적인 해석의 방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게 된다. 종합적인 해석에 의한 성경은 영적인 무질서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소망을 안겨 주고 죄악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여 준다.
이제 우리는 종합적인 성경 해석을 통하여 살아 있고 현실성 있는 성경 말씀을 우리의 삶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
참 고 문 헌
1. 버나드램, 「성경 해석학」, 권혁봉 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1985.
2. P. 슈툴막허, 「성서 해석과 성서신학」, 강한균 역, 서울: 대한 기독교 서회, 1989.
3. 헬리 디이슨, 「신약 개론」, 권혁봉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3.
4. 아브라함 조슈이헤셀, 「안식일」, 오만규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1.
5. Kurt koch, 「영적 구원 치료」, 이중환 역, 서울: 예수교 문서 선교회, 1984.
6. 리차드 트렌취리, 「예수님의 이적」, 윤종애 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1978.
<사전>
「성서 대백과 사전」, 서울:기독지혜사, 1981.
<주석>
1. 강병도 편「호크마 종합 주석」, 서울: 기독지혜사, 1992.
2. 루이스 바비에리,「Bible Knowledge Commentary」,정민영역, 서울:두란노, 1987
<성경>
「관주 성경전서」(개역한글판), 서울: 대한 성서 공회, 1989.
목 차
I. 서론 ------------------------------------------------- 1
II. 본론
1. 저자 마태 -------------------------------------------2
2. 개적의 배경 ----------------------------------------- 3
3. 본문 해석 ------------------------------------------- 5
III. 결론 ----------------------------------------------- 9
참고 문헌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