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신학


신약의 신론, 기독론, 성령론


신 론

예수가 주로 사용한 성부의 성호는 주로 Elohim, JHWH, Abba Abi등이다. 예수의 성호 사용에 있어서 새로운 점은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점이고 또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데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행하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예수는 야웨신을 부를 때, 대체로 '아버지' 또는 '나의 아버지'알고 불렀다. 4복음이 다같이 이 사실을 보도한다. 특히 예수는 기도할 때, "나의 아버지" 또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예수'의 이름 속에 바로 '하나님(EL)이 함께 하신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이로써 하나님의 성호가 '예수'의 이름으로 대치되어 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을 지어주신 것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의 이름을 새로 지어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며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성호와 예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 자들의 이름은 하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다.(눅10:20, 빌 4:3, 게 3:5)

하나님은 우리의 역사적 현재와 관계없는 의미에서의 미래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의 새로운 미래로부터 우리의 현재로 '오시는 분'이다. 그는 자기를 배반한 아담과 그 아내를 찾아온다. 그는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세계속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온다. 그는 예언자들을 찾아 오며 다메색으로 가는 바울을 찾아온다. 그리고 그는 '자, 내가 곧 오겠다.'고 말한다.(계 22:12,20)이에 대해 요한은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라고 응답한다. 하나님의 오심은 피조물의 세계 속에 그의 주권을 세우고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는 일과 결부되어 있다.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 그의 새로운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陗끁고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오심 가운데에서 확장된다.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는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그의 경건한 제자들과 그들의 공동체 안에 이미 부분적으로 있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요, 먼저 그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인간만을 그의 본래성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세계 전체의 본래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는 인간의 내면성, 인간의 실재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해와 별과 모든 동물과 식물들도 사랑한다. 인간의 마음뿐 아니라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하나님의 오심은 불트만이 말하듯이 인간을 탈세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이 세계로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계를 찾아왔고 성령 가운데서 오늘도 이 세계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은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 곧 민중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민중의 지도자들도 만난다. 그러나 그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회개와 그리고 소명과 결부되어 있다. 이간을 찾아와서 그와 만나서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며 회개한 인간을 그의 사자로 파송하고자 한다.(마 19:16-22)

기독론

예수님의 탄생의 환경에 대해 마태와 누가는 여러 가지 세부적인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각기 독특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다. 마태의 기록에서는 마치 요셉의 관점에서 본 것 처럼, 그리고 누가의 기록에서는 마리아의 관점에서 본 것처럼 기사가 전개되어 있다. 이 두 복음서는 핵심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있다. 1)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그의 출생시에 동정녀였다. 2)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은 다윗왕가의 후손이었다. 3)비록 법적으로는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이지만, 그의 잉태는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 4)예수는 대헤롯의 통치기간 중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5)천사의 명령을 따라 그 아이는 예수라 명명되었는데, 그 의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은 악한 자들의 임박한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한 도래를 외친 요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셨음을 보여주셨다. 예수님 자신의 선포도 처음에는 세례 요한의 회개에의 촉구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나사렛의 목공소를 떠나 자신만의 독특한 사역에 헌신할 때가 왔다는 자각이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운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던 만큼, 그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세례요한이 선언한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것으로 여기셨던 것이다.

우리는 다음의 몇가지 이유를 토대로 공관복음서가 역사적 신빙성과 가치를 지닌 예수 연구의 중요한 자료임을 전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공관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의 주님으로 선포하고 있는 원시교회의 선교 및 교육, 선포를 목적으로 한 신앙고백적 증언이지만 이 증언은 구체적-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와 그의 공생애 활동을 역사적 토대와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둘째로는 예수 부활과 성령강림사건 이후에 원시교회공동체에서 형성된 '교회전승'은 부활사건 이전의 '예수전승'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셋째, 이 두 전승의 연속성과 신빙성을 보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예수의 삶의 목격자들이고 원시교회지도자들인 예수의 제자공동체이다. 넷째, 부활사건이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회신앙공동체'는 부활이전의 '예수제자공동체'토대로 해서 제정되고 변화된, 확대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신자공동체'이다. 이상의 몇 가지 근거들을 토대로 해서 우리는 공관복음서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을 선포하고자 하는 신앙고백문이 아니라 이 안에는 역사적 예수의 생생한 그리고 그의 특유한 말씀과 행위 및 그의 고유한 정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높은 역사적 신빙성을 지닌 귀중한 '예수연구자료'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1. 예수의 메시아적 자아의식을 담고 있는 말들

1)메시아의 불(눅12:49,51/마10:34-35)

여기에서 예수는 자신이 온 것은 이 땅에 불을 붙이기 위함이요(눅12:49), 거짓 평화속에 안주하고 있는 인간공동체에 오히려 분열을 가져다 주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로기온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의 과격성과 긴박성으로 인해서 도저히 원시교회에서 형성된 기독교공동체 전승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로기온은 역사적 예수의 고유한 긴장과 갈등의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의 출현으로 나타나게 될 유대교 기존공동체 질서 안에서의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예고하고 있다.

2)죄인을 부르기 위해 오심(막2:17, 마9:13, 눅5:31)

이 로기온은 예수의 고유한 '메시아적 비유행위'로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식탁공동체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예수의 의도적이고 자극적인 이 비유행위는 반대자들과 경건한 유대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 '너희 스승은 세리.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느냐'는 반대자들과 경건한 유대인들의 조소섞인 비난에 대해서 예수는 ՇՋԨՏՍ말로 자신의 오심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3)복음전파를 위해 오심(막1:38, 눅4:43)

이 마가적 보도는 오래된 예수전승을 토대로 구성되어졌다. 여기에서 예수는 자신이 파송된 목적이 한 마을에 정착하여 병자들만 고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을을 다니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음을 밝힌다.

4)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마11:18-19, 눅7:34)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11:18-19) 이 로기온은 두 가지 예수의 고유한 행동양식을 전제하고 있다. 첫째는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는 고행자적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그의 공생애는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에 의해서 소외되고 정죄되어진 그 사회의 변두리 계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5)인자의 오심(막10:45, 마20:28, 눅19:10)

이 핵심적 구절은 메시아적 인자로서의 예수의 자아의식을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의 자기 죽음이해를 담고 있는 예수고유의 ՇՋԨՏՍ말씀이다. 이 로기온의 진정성 여부는 독립된 이 로기온 하나 만으로 평가되어져서는 안되고 예수의 전체 ipsissima verba 및 ipsissima facta 와의 상호 깊은 관련성과 놀라운 내적 일치성 속에서 평가되어져야 한다. 예수는 자신의 임박한 고난을 제 2이사야의 예언자적 선포의 빛에서 이해하고 있고 특히 마가복음 10장 45절의 로기온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이사야 43장3절의 '속전'전승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2.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

원시 교회의 신자들은 처음부터 유대교와는 관계없이 독자적인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으며, 또한 구약성서를 성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예수를 믿었다. 예수도 구약을 거부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점일획'이라도 경사하지 않고 그것을 중요시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예수를 구약성서의 예언과의 관계하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마태복음과 히브리서와 요한 계시록이다.

1) 마태복음

마태복음은 다섯 가지 교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다섯 가지란 산상보훈(5-7장), 제자들의 고난과 예수의 주성(主性, 10-12장), 천국에 관한 비유(13장), 교회의 본질(16-18장), 미래에 일어날 일(23-25장)이다. 이외의 부분은 예수의 탄생과 그가 행한 이적과 기사와 그리고 그의 생의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린 사건과 부활에 관한 기록이다.

(1) 산상보훈에서

산상보훈에서 예수는 모세의 교훈을 먼저 인용하면서 유대인의 전통을 존종히 하는 한편, 모세의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 율법을 주시면서 인류의 구원의 새 교훈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모세의 율법에 반대되는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계명을 주실 때의 그 뜻에 일치하는 사상이다. 이렇게 볼 때 마태가 전하는 예수는 율법과 계명을 주관하시는 주이다.

(2) 제자들의 고난과 예수의 주성

마태복음 10장에 기록된 내용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과 장차 자신이 당할 사건과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그리고 매우 실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11장에 있어서는 요한의 제자들의 물음에 대하여 자기의 메시야성을 간접적인 답변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예수는 꾸짖는다.

(3) 천국의 주

13장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는 교훈은 천국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있다. 그리고 예수가 현재 자라나고 있는 천국이나 세상 끝날에 완성될 천국의 주인이심을 이 모든 천국 비유는 잘 말해 주고 있다.

(4) 교회의 주

마태에 의하면 교회는 예수를 주로 모시는 무리들의 모임이요, 예수에 의해서 형성되었으며 그가 없이는 교회가 성립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5) 미래의 주

마태복음 13장이 천국에 관한 비유로서 구성되어 있다면 24, 25장은 마지막 날에 될 일에 관한 비유의 이야기로써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마지막 날에 관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예수가 강조한 것은 예수 자신이 그러한 미래의 사건의 주관자라는 것이다. 때로는 신랑으로, 때로는 타국에 여행 간 주인으로, 때로는 인자 또는 왕으로 비유되면서 역사의 미래를 주관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을 주관한다. 이렇게 볼 때 예수는 미래의 주로서 묘사되고 이해되고 있다.

2. 히브리서

히브리서는 신약성서의 다른 어느 책보다 예수를 이스라엘 종교의 제사 제도의 각도에서 해석한 책이다. 예수는 인류를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하여 자기가 제물이 되는 동시에(9:12,26, 7:27)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어(2:17, 4:14, 6:20) 영원토록 그 직분을 수행하신다(8:17,21, 6:20). 그가 드린 제물은 단 한 번만 드리는 제사였으나 완전한 것이었으므로 그러한 제사는 반복될 필요가 없다(10:10, 7:27, 9:12). 그리고 그 효과는 영원토록 계속된다. 이와 같이 히브리서는 예수가 대제사장이심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는 단지 지상에서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그의 본체가 영원하기 때문에(6:20 ;7:24) 그의 제사장직도 변하지 않는다.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안으셔서(8:1) 영원토록 새 언약의 중보자의 역할도 한다.(8:6, 9:15, 12:23)

3. 요한계시록

계시록의 저자가 예수에 대해서 붙인 이름은 다른 책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이름이 많다. 예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다(1:11, 2:13). 예수는 자기가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라고 한다(5:5, 22:16). 그는 광명한 새벽별이다(22:16).

예수는 죽임을 이기고 현재 영광 중에 앉아 있는 어린 양으로 보았다(5:12). 마지막 부분에서는 결정적 승리자로서의 예수를 전하고 있다. 22장에서 저자는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간 어린양이 승리자로서 새 예루살렘에 있는 영광의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4. 바울의 그리스도론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절대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1) 메시야로서의 예수 : 바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예수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체험한 예수는 승천한 주로서의 예수요 또한 유대인의 혈통에 따라 나신 분이었다. 즉 사람 예수가 곧 신적 메시야이다. 한 사람 예수 안에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되어 존재한다. 2) 주로서의 예수 : 바울 서신 전체를 통해서 가장 자주 사용된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일 것이다. 예수의 주되심은 단지 개인의 주가 아니라 우주적 주되심을 바울은 믿는다.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의 권능이 신적이란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의 본체가 신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 세상을 다스린다. 3)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 예수가 성육신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바울의 생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전8:6, 골1:15-17, 빌2:6) 바울이 예수의 주성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에 예수의 인성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기도 한다. 4)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예수 : 바을은 예수의 선재를 말할 때도 천인으로서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서, 말씀으로서 그리고 삼위일체 신의 한 위로서의 선재를 말한다. 그가 성육신하여 인간이 되었고 인간의 죄를 없게 하기 위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결과 인류가 의롭게 되었다는 확신과 체험에서 그는 예수를 '제 2아담' 또는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른다. 5) 아가페의 계시자요 실천자로서의 예수 :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에서 발견한 의미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를 말한다. 바울은 양자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보다 더 큰 사랑을 강조했다.

성령론

신약성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탄생되어 성령의 강한 임재와 역사를 통해서 예배하고, 가르치고, 선교하던 A.D 1세기의 초대교회에서 형성된 문헌이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바로 성령의 역사다. 성령에 사로잡힌 예수의 무리들, 즉 그의 제자와 추종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신약성서가 기록되어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약성서의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하고, 성령론에 대한 신학적 정립을 통하여 신앙의 형태, 내용 등을 새롭게 정립하므로 하나님의 현존인 성령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1. 성령의 어원적 의미

영(SPIRIT)은 히브리어 낱말 두아크와 희랍어 낱말 퓨뉴마(PNEUMA), 둘다 대기의 운동을 나타낸다. 문맥에 따라서 바람, 폭풍, 미풍으로 번역되지만 숨(BREATH), EJ 상징적으로는 생명의 근원 또는 활력으로 변했다. '거룩한 영', 즉 '성령'이란 낱말은 구약성서에서 주로 포로기 이후 시대부터 사용되어진다. 신약성서 전체적으로는 '프뉴마'란 낱말이 총 379회 등장하는데 그 사용용도를 다음과 같다. 총 379회 중 가장 많은 275회 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149회는 다른 단어와의 연결없이 독립적으로 '프뉴마'만 사용되고 있고, '거룩한 영'이란 표현은 92회,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은 18회, 그 외에도 '성경의 영' '아버지의 영','예수의 영''그리스도의 영' 등의 표현이 나타난다.

2. 성령의 인격성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증거되고 있는 성령의 인격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을 역동적인 하나님의 힘, 혹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성령이해는 신약성서의 일부 본문이 성령을 마치 비인격적인 능력이나 물질적인 성격의 것으로 표현하는데서 기인하기도 하다. 그러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잇는 표현들은 성령을 준다(눅11:13), 성령을 받으라(요20:22), 성령을 받으리니(행2:28), 내 영으로 부어주리니(행2:17),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2:4), 성령을 마시게 한다.(고전12:13)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신약성서는 성령의 인격성을 전제로 하는 많은 진술들을 하고 있다. 성령은 영원히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히9:14)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행하실 수 있는 전지 전능하신 분이다.(고전 2:10-11) 성령은 지성을 가지셨고(롬8:27)예수께서 말한 것들을 다시 생각나게 해 주시는 분이다.(요14:26) 또한 성령은 감정을 지니셨기 때문에 근심할 수 있고(엡4:30), 탄식하며 간구할 수 있는 분이다. 성령은 또한 의지를 가지신 분이다. 그 분은 자신의 의지로 사도들의 선교계획에 간여 하신다(행16:6-7)

신약성서가 말하는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적인 의지의 일치 속에서 활동하시는 분이고 또한 지적인 분으로서의 성령은 1)가르치시고(눅12:12) 2)인도하시고(요16:13) 3)말씀하시고(행10:19) 4)명령하시고(행11:2) 5) 어떤 일을 금지하시고(행16:6) 6)듣는 것을 말하며 알리시고(요16:13) 7)예수를 증거하시고(요15:26) 8)생각나게 하시고(요14:26) 9)위로하신다(행9:31)

신약성서에서의 성령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혹은 하나님과 함께 언급되기도 하고, 또 세분이 삼위일체론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진술들은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성도와 신앙공동체안에서 현존하시는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역동적인 힘이라는 진술의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성령이 지. 정. 의를 소유하신 인격적인 분이면서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 구원의 의지와 사역에서 일치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성화의 영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신약성서는 성령를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과 새 창조의 능력, 혹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과 교회와 세상속에서 역사하시는 현존의 역동적인 힘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을 분명히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영 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3. 성령의 사역

신약성서에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진술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예수의 공생애 활동과 관련하여 그리고 초대교회 탄생과 발전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예수의 공생애는 세례요한의 세례후 성령충만함을 받으신 때부터 시작된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말씀에서는 성령이 예수에게 임하신 목적이 분명히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 복음전파, 둘째 포로된 자와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 셋째, 눈먼 자 치유, 네째 주의 은혜의 해 전파로 나타난다(눅4:18-19)

예수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므로 너희가 구하라고 가르치시고, 또한 성령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예수의 공생애를 주관하신 성령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힌 예수를 다시 살려내심으로 예수의 공생애를 완성하신다(롬1:4) 예수의 공생애가 성령충만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권능과 능력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처럼 초대교회의 역사도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밖에도 신약성서에는 개인과 공동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기도 하다. 성령은 택하신 자들을 감동, 감화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케 하신다.

성령은 아들의 소임을 계속 수행. 확장시키며 아버지와 아들에게 공통되는 영역에서 일하신다. 아버지는 아들안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시고, 아들은 성령안에 지속적으로 현존하며 활동하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인간이 인간자체만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 자신만의 영역에 계시기 때문에 성육하신 진리이신 아들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다가올 수 있도록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냄으로써 하나님은 자기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사람들이 예배드리도록 찾으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삼위일체에 관련된 예배이며, 이것은 성령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4. 성령의 은사

신약성서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주로 '카리스마'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본래의 의미는 선물, 은혜의 선물, 성령의 선물이다. 신약성서가 말하는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과 그 성도들의 공동체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구체적 계시요 그 나타나심이다(고전12:7) 은사는 선물이요, 그 선물주심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청지기 됨을 의미한다(벧전 4:10) 성령의 은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예수를 믿고 세례받은 성도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은사요, 둘째는 개개 성도들에게 성령이 그 뜻대로 나눠주시는 개별적인 은사이다.

신약성서에서는 또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에게 세례를 통해서 주어지는 성령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보고 있다. 이 선물은 은혜입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처음 익은 열매요, 부활과 영생의 보증으로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은사는 현재 눈에 띠게 역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도들의 몸 안에서 부활과 생명의 원동력으로 역사하게 된다. 성령은 자신의 뜻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고 누구에게나 은사를 주시지만 대체로 1)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2)말씀을 들을 때에 3)은사를 사모하며 간구할 때에 4)성령충만을 받을 때에 5)하나님께서 교회의 부흥과 개인의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에 각 자에게 가장 적절하고 요긴한 은사를 주신다.

5. 성령의 내주

신약성서의 주된 입장은 누구나 예수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그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성령이 임하셔서 그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이다. 이 성령의 내주는 반드시 성령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령의 내주의 현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성령충만의 현상은 성령이 임하시는 성령세례시에 혹은 성령이 내주하신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의 삶은 이미 '성령안에서의 삶' 즉 성령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삶인 것이다.'





참고문헌

1. 성종현 <장신논단> P117 "신.구약 성서와 유대문헌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호와

예수이름에 대한 고찰" , 1992년

2. 이종성 <신론> (대한기독교출판사 :1993년, 서울)

3. S. Neil, Jesus Through Many Eyes, 이종성의 <그리스도론> 1976년

4 성종현 <신약총론>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2년)

5. 성령론 <교회와 신학> "신약의 성령론"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2년)

6. 황승룡, <신학적 성령론> (서울:대한예수교 장로회총회 출판국)

7. 김균진, <기독교조직신학> (서울:연세대학교 출판부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