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세례 요한의 사역의 틀 안에다 배치한 점에 있어서는 네 복음서 저자가 모두 일치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암시되어 있듯이 만일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단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역설한 윤리적인 차원의 것이었다면, 그의 설교로 인한 대중의 고조된 감정의 이유를 이해하기가 힘든다. 모든 유대인들의 가슴에 세례 요한의 사역이 그토록 강한 전율감으로 느껴 온 까닭은 그의 메시지에 나타난 강력한 메시야적 소망 때문이었다.
세례 요한의 사역에는 셈족의 다른 "성별된" 사람들과 비교해 유사점도 많지만 아주 독특한 특징이 두 가지 있다. 바리새파와 엣세네파에서 베풀었던 세례와 결례는 매일 되풀이된 데 반해 세례 요한의 세례의식은 단 한 번만 시행되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장차 심판의 날에는 선민에 속해 있다는 특권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의 주장이다.
무리들에게 있어서 요한의 세례는 죄악된 과거와 결별하고 변화된 삶에로 새로이 출발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물론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운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던 만큼 그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세례 요한이 선언한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것으로 여기셨던 것이다.
세례요한의 윤리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 직전에 볼수있는 강력한 회개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선민적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죄외 결별하는 삶의 열매에 있다는 것이다. 눅3:10~14 에는 이를 잘 나타내어 주는 가르침이 있다.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이는 요한의 윤리가 삶에 대한 회개의 열매에 집중되어 있는것을 나타내는 부분이라 하겠다.
Ⅱ.요한복음의 윤리적 특징
요한북음과 공관복음서는 동시에 현저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상이성은 몇가지로 요약되어 질수 있다. 먼저 구성에 요한복음은 예루살렘 3번 올라간 것으로 하여 복음서와 다른게 본다. 둘째 예수선포의 상이성도 있다.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비유나 논쟁설화가 등장하지 않고 예수의 주제화된 설교의 말씀이 나타난다. 이는 필연적으로 윤리적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공관복음서에 비하여 월등이 춧소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또한 공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선포의 중심주제인데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자신의 인격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윤리적인 측면에서 실천적인면에 대한 가르침보다는 예수의 삶에서 출발하는 윤리가 제시되게 된다. 새째 이적의 횟수도 요한복음에는 소수이며 그 내용에 무게가 있다. 따라서 표층적인 윤리적 접근을 배제한다. 또한 네째 기독론, 종말론 등에서도 좀더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 따라서 공관복음과 달리 기독론적, 종말론적인 측면에서 다른 윤리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용어와 사상, 언어의 사용에서도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로고스, 파라클레토스, 빛과 어둠, 거짓과 진리, 육과 영 등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차이점은 윤리적인 면에서 공관복음과 다른 접근을 하게 한다. 요한 문서들에서의 윤리적인 쟁점들의 확실한 축소는 윤리를 전체적인 신학의 체계 속에 응집 통합하였음을 의미한다. 윤리가 그와 같이 철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의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곳은 다른 곳에서는 결코 찾아볼수 없다. 즉 기독론과 종말론속에 윤리는 완전히 녹아 있는 것이다.
1. 기독록적 측면에서 요한복음의 윤리 관점
기독교인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만 열매를 맺는다.(15:1~11) 기독교인의 기본적인 자세는 그리스도와 그와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할 정도록 기독론은 직설법 뿐만 아니라 명령법에서도 지배적인 주제가 되고 있는 이러한 기독교인의 자세는 들음, 거함, 앎, 등은 물론이고 말씀과 계명들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도 표현될수 있다. 요한 복음에서 윤리적인 삶의 자세가 이렇게 기독론의 의존적인 것인가?
요한 복음서는 공관복음서가 사용하는 전통적이고 기록론적인 칭호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희랍의 로고스 개념을 사용해서 예수를 "로고스"로 지칭함으로 기독론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요한이 로고스에 대하여 사용한 신학적 의미는 예수의 신성, 창조의 대행자, 예수의 선재성, 실제 인간의 육신을 입은 하나님 자신이며 계시자로서 인간의 육 가운데 임하셨다는 것이다. (ԽՃ՞ՅՉՌՉ) 이 말은 예수가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는 '계시와 계시자의 일치',의 독특한 기독론적 관심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혜전승 토라전승 그리고 성전전승이 서로 만나게 되고 24:23~25에서는 지혜와 토라가 완전히, 결합하게 된다. 모든 삶의 지혜, 옳바른 윤리적인 하나님의 답이 곧 예수 인 것이다. 더나아가서 예수는 또한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증거자로 나타난다. 따라서 믿음 안에서 볼때 예수가 참 진리요 생명이심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서에서 '믿는것'과 '아는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일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그를 옳바르게 믿는 것은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요, 그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표층적인 윤리적 가르침 보다 예수 삶을 통하여 나타난 그의 신적 계시인 지혜를 아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윤리적인 실천세목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행위의 모범을 따르려는 성향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5)고 하는 성만찬을 통하여 제의적 행위가 아니라 발을 씻겨주는 낮고 겸손하여 사랑에 찬 윤리적인 행위를 요한복음은 타나내는 것이다.
2. 종말론적 측면에서 요한복음의 윤리 관점
요한의 종말론은 낮에 뜬 달과 같은 종말론이다. 기독론 속에 흡수된 종말론,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속에서 이미 실현된 종말론이라 부를 수 있겠다. 요한 복음은 모든 초점을 계시자로서, 성육신하신 말씀으로 세상속에 파송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에 맞추고 있다. 요한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 속에 나타난 태양처럼 자신의 오시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을 결정 짓는다. 구원도 심판도 부활과 영생도 하나님의 종말적 계시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지금의 현재 속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두움을 사랑하고 세상에 속한 자들은 빛으로, 생명으로 오신 아들을 거부하고 배척함으로써 이미 여기에서 심판을 받았고 구원에서 단절되었음을 강조한다.(3:18)
요한은 철저히 기독론적으로 정초되 구원사적 시간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의 시간은 그리스도의 현재요 그 현재는 바로 종말을 의미한다. 요한에게서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과거와 미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로 모아지는 영원성의 현재 집중현상이 나타난다. 시관과 공간 속에 계시자로 출현한 그리스도의 현재는 창조와 종말을 흡수하는 하나님의 시간의 중심으로 이해되어진다.
이러한 이루어진 급박한 종말론적 세계관 속에서 윤리적인 요청은 삶의 따라가야할 길이 아니라 구원과 직결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조건이 될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윤리적 가르침은 공관복음서에서 보다 약하나 오히려 그 요청은 말할수 없이 강하며 절박하며 구원의 특징으로서 요구 된다 하겠다.
3. 세상. 인간에 대한 요한복음 관점
세상은 불신앙, 어두움, 죽음 , 거짓 으로 가득차 있다. 따라서 그속에 있는 사람은 어두움의 자녀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빛으로 세상에 오심으로 세상속에서 종말적 대 불리 현상이 나타나며, 세상과 인간은 신앙과 불신앙, 어둠과 빛, 죽음과 생명, 참과 거짓,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로 나누어 지게 된다. 요한의 이원론은 결국 이렇게 하여 숙명적으로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틀속에 인간과 세상의 놓여 있는 것이다.
결국 요한의 세상(ՊՏՓՌՏՒ) 인간(ԼՍՈՑՙՐՏՒ)관은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요한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 사건 이전의 세상과 인간을 철저히 부정적으로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요한의 세상과 인간관은 아주 밝고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인간과 세상은 그 자체로는 편재적인 암흑과 죽음속에서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의지 아래 있는 사랑과 구원의 대상으로 변하다.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기 까지 세상을 사랑하신다.'(3:16) 아버지는 부패한 세상 한 복판으로 아들을 파송하셨고 그 아들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하셨다.
이로써 요한의 세상, 인간관은 가장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세상, 인간이해로 바뀌게 된다. 부활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 복판 속으로 파송한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예수의 제자들은 이로써 아직 남아 있는 세상의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될 종말시대를 사는 빛과 사랑의 자녀들로 나타나게 된다.
4. 요한복음의 결정적 윤리-'사랑'
요한 문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ՁՃՁՐՇ)의 계시라는 주제를 서술한다. 요한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이유를 세상구원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의지표출로 규정하고 있다.(3:16) 사랑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처럼 인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가 될 수가 있다. 사랑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랑자체이기 때문이다.
요한신학의 강조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됨 그리고 예수 안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에 맞추어져 있다. 사랑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된것 처럼 인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가 될수 있다. 사랑 안에서만 인간은 하나님을 알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바로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8) 사랑 안에 머무는 자 만이 하나님 안에 머물고 하나님이 그 안에 머물게 된다.(4:16)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을 서로 만나게 하는 유일한 가교이다.
결국 요한 공동체의 특성중 가장 탁월한것이 바로 이 사랑의 윤리이다. 사랑은 요한 복음의 핵심주제이다. 요한의 ՁՃՁՐՇ이념에 대하여 알아보면, 첫째 요한의 ՁՃՁՐՇ는 형이상학적이고 비동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이것은 타락한 인간과 관계되는 사랑이심 뿐만아니라, 하나님 자신 안에서 영원히 관계_되는 사랑이시다. 이 점에서 요한의 사랑의 이념은 우주 형이상학적양식을 갖는다. 둘째로, 요한의 ՁՃՁՐՇ는 이웃사랑과 형제사랑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세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면, 요한은 ՁՃՁՐՇ와 세상의 사랑에 대하여 분리하여 말한다.(요일 2:15) 요한에 의하면, 세상은 구원을 필요로 하며 그러므로 세상의 사랑은 욕망적이고 쾌락적인 것으로 본다.(요일 2:16)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최고 선이라면 세상의 사랑은 하위 선(Sensible Good)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공동체의 사랑은 쿰란공동체와도 세상의 그것과도 엄격히 다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다양한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시지 아니하였으나, 단 하나의 윤리적인 계명을 주셨던 바 바로 그것이 사랑의 계명인 것이다.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에서는 성만찬의 의식대신 세족의식을 강조한 것만 보아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알수 있다. 요한 공동체는 '형제사랑'을 무엇보다도 강조하였으며, 결국 요한복음의 신앙윤리는 '사랑안에 머무는 하나님의 자녀의 윤리' 로 요약되어 질수 있는 것이다.
5. 성령을 통하여 완성되는 사랑의 윤리
신약성서 중 오직 요한 문헌만이 파라클레토스(ՐՑՁՊՋՅՔՏՒ)란 용어를 사용함으로 독특한 요한 공동체의 성령론을 선보이고 있다. 요한의 성령론을 가장 잘 이해할수 있는 방법은 삼위 일체론적 방버이다. 요한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이시다.(4:24) '다른 보헤사'를 보내시겠다는 예수 스스로를 바로 첫번째 오신 보혜사로 이해한다. 요한문헌에서는 보혜사를 성령과 동일시 하고 있다. 또다른 한편으로 요한복음은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과 아들과 보혜사의 기능의 일치를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 와 파라클레토스의 동일한 신적기원과 기능 및 사역 목적의 일치를 볼수 있게 한다. 성령은 예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올바르게 가르친다. 또한 함께 하신다.
결국 요한 공동체는 공동체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속에 완전히 결속시키는데 온전히 새로이 거듭난 성령으로서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요한공동체는 하나의 인격 안에서 일치되어야만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결국 요한복음에서 강조한 사랑의 대 윤리는 단순한 인간의 실천적 의지로써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도 아닌것이다. 이는 오직 또 다른 예수님이신 파라클레토스께서 함께 하신때 만이, 종말론적인 요청에서 기독록적인 윤리인 사랑의 실철을 할수 있으며, 또한 그 윤리를 이 세상속에서 실천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Ⅲ. 요한 1서의 윤리
1. 요한1서의 윤리적 특징
요한 1서는 독특한 신에 대한 고백을 통하여 결과론적으로 그를 믿는 그독교인의 삶의 윤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것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사랑의 윤리를, 세부적인 측면에서는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1:5) '하나님은 생명이시다.'(2:25) '하나님은 사랑이시다.'(4:8) 라는 정의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각각의 신관념과 관련해서 논의 되는 주제는 교훈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첫째 '하나님은 빛이시다'.라는 명제는 빛 가운데 살아라.(1:5~2:6), 세부적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라.'(2:7~17)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빛이시니 빛처럼 사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으라'(2:18~24)로 귀결된다..
둘째 '하나님은 생명이시다.'라는 명제는 생명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옳하른 자녀의 삶이 무었인가.?(2:25 ~3:10) '형제를 사랑하되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으로 하라.'(3:11~18) 그러므로 '육체로 오셔서 이렇게 삶을 사신 성육신 예수님을 고백하라.'(3:19~4:6) 로 이어진다.
세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명제는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안에 거하고 있는가? 그의 계명을 지키자.' (4:7~5:12) 그리고 그 귀결은 이를 위하여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라는 것이다.
결국 요한 1서의 저자는 신관념을 정의 하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제신한후 그 귀결로써 예수를 그리스도로 정의하고 또한 예수의 그리스도의 성격의 정의하는 것으로 연결 시킨다. 즉 하나님의 정의를 통하여 예수님의 증명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기독교 윤리적인 방향과 근거를 제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증명 구조를 통한 윤리적 지침의 도달은 나선형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한번 소개되었던 관념들이 다시 돌아와 추가로 취급되고 적용된다. 예컨대 '빛과 어두움'은 한번 소개되고 나서 재차 도입되고 적용된다 '죄의 용서'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취급되어 몇번이나 논의에 재 등장한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이며 '계명' 또한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여러가지 세부적이고 실천적인 윤리적 개념을 반복하여 전체적인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통하여 유한 1서에서는 '형제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라.' '형제를 사랑하되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으로 하라.''우리는 사랑안에 거하고 있는가? 그의 계명을 지키자.' 라는 실천세목으로 사랑의 윤리를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다.
2. 이단에 대하여 요한1서가 제시하는 윤리적 대안
요한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적인것을 강조함으로써 그 믿음위에 독자들을 견고히 세우기 위해 이서신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즉 이서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하여 쓰여 졌다면 또다른 하나는 공격하는것. 즉 '미옥의 영'(4:6)과 신실한 자들을 '미혹케 하는'(2:26) 포교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요한 1서는 기독교에대해 심각한 의미를 지녔던 영지주의의 세가지 특징 즉 '이원론' '빛의 비췸' 그리고 '성육신의 부정'을 다소 예리하게 나타내었다. 즉 이러한 세가지 의미의 잘못된 해석에 대하여 실현되었지만 조금은 미래적인 종말론은 통한 균형잡힌 이원론, 그리고 빛이 비췸의 근원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정의, 그리고 성육신의 인정등이 여기에 대한 요한 서신의 답이었다.
교회로 부터 이탈한(2:19,4:1) 이단자들 사실상 이렇게 말하면서 둘아다녔던 것 같다. '성육신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탁월한 지식으로 우리는 죄를 초월했기 때문에 도덕은 아무래도 좋다.'
요한 일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단자들 과 요한이 논쟁한 흔적을 볼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논쟁문장이 시작될 때 마다, 요한1서는 실천적인 윤리적 대안을 통하여 그들의 주장에 잘못됨을 지적한다.. "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1:8) "저를 아노라 하면서....."(2:4) 등의 말을 하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자(2:11)를 힐책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역설한다.(4:2)
결국 요한1서는 이단자들의 '윤리적 방종'이나 '도덕적 타락'에 직면하여 옳바른 '기독교의 윤리적 모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를 지적한다. 그리고 '사랑의 옳바른 실천'이 없는 한, 신앙은 필연적으로 잘못될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Ⅳ. 요한2서--거짓교사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윤리적 갈등
요한 2서는 분량도 작을뿐 아니라 그 내용도 개인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분량과 개인적인 내용임에도 불구 하고 요한은 7절에서 '거짓교사'에 대한 언급을 다시 그리고 강력하게 재기 하고 있다. 이 거짓 교사는 '요한 일서'에서 언급한 자들과 동일 인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그들이 그 교리로 교회를 크게 위협하던 '가현설주의자' 였음을 의미한다. '거짓 교사'들은 교회들을 순회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의 환대에 편승하여 이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주장'을 가르쳤던 같다.
따라서 요한 이들에 대하여 가혹하고 불친절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단호하게 그들과 관계하지 말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떠난 '고등교리'는 어느 것이든 거짓이며, 이러한 교리는 '아들로서의 예수에 대한 참된 교리'를 놓치고 있고, 동시에 '아버지도 잃어버리고 만다.' 고 선언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러한 이단자들을 물리치라고 권고한다.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는 것이 그 요지인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사랑의 법' 과는 맞지 않아 보이는 정말 가혹한 충고이다. 이에 대항서 장로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서는 '관용'이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것은 바로 '사랑의 사도'인 저자가 '사랑'과 '충성'가운데 가지고 있었던 '긴장의 모습'이라 할것이다.
결국 사랑의 사도는 요한2서에서 사랑의 실천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으로써 단호히 거부하고, 옳바른 사랑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Ⅴ. 요한 3서--지역교회와의 갈등에서 판단기준은 실천적 사랑
저자는 몇몇 대리 순회자들을 파견하였고 그들은 교회를 순회하였던것 같다. 그 중 한 교회의 디오드레베는 이들을 받아 들이지 않았고 또한 이를 받아 들이는 교회의 신도들을 출교 시키기 까지 아였던 것 같다. 적어도 그는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9절) 이러한 교회간의 갈등에 대하여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3 1:11)라는 실천적 선의 행위를 대안으로 내어놓는다.
따라서 서로의 갈등관계에서 판단의 기준은 '실천적 사랑의 모습이 누구에게 더 있는가?'하는 것이며 이것을 보아서 판단하라고 하는 것이다.
Ⅵ. 요한 계시록
역사속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상징적으로 암호화 하고 종극적인 승리를 담고 있는바, 전반부 소아시아 7 교회들에게 보낸는 글을 제외하고는 암울한 박해속에서도 성도들을 격려 하는 것을 목적으로, 마지막에는 모든 박해가 주님의 심판으로 정죄받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을 언급하고 있다.
계시록 전체에는 묵시적 종말론과 임박한 종말에 대한 강렬한 기대가 스며들어 있다.(1:1,3:,22:20) 이러한 기대를 현존하는 그리스도와 연관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미 계시록의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변함없는 사랑을 가지고 계신(1:56) 구주와 주님으로 체험하였으며, 승리는 미리 예견되어 찬미되거 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일곱 편지에 나오는 윤리를 결정짓고 있다. 심판의 약속과 위협은 가장 두드러진 요소들이다. 계시록의 기자는 무엇보다도 행위(2:5, 19)와 완전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는 헌신(3:15~16)으로 표현되는 회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임박한 종말과 승리의 미래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윤리적인 모습인 것이다. 행위의 완전과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의 삶, 또한 지금의 삶에서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회개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시대 교회에 주는 계시록의 윤리적인 메세지일 것이다.
신약윤리
9조 리포트
{요한 문헌속의 윤리}
이 름 : 이 지 원
소 속 : 신대원 2. A.
학 번 : 9532105
담 당 : 성종현 교수님
제출일 : 1996. 4. 19.
◈ 목 차 ◈
Ⅰ.세례 요한의 윤리적 특징..................................................1
Ⅱ.요한복음의 윤리적 특징......................................................1
1. 기독록적 측면에서 요한복음의 윤리 관점......................2
2. 종말론적 측면에서 요한복음의 윤리 관점......................2
3. 세상. 인간에 대한 요한복음 관점...........................3
4. 요한복음의 결정적 윤리-'사랑'.................................4
5. 성령을 통하여 완성되는 사랑의 윤리 ........................4
Ⅲ. 요한 1서의 윤리..........................................................5
1. 요한1서의 윤리적 특징..........................................5
2. 이단에 대하여 요한1서가 제시하는 윤리적 대안.........6
Ⅳ. 요한2서--거짓교사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윤리적 갈등.......7
Ⅴ. 요한 3서--지역교회와의 갈등에서 판단기준은 실천적사랑 .......7
Ⅵ. 요한 계시록................................................................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