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신학과 구약

신약신학은 바우어가 {신약의 성서신학}을 1800년에 출판한 후에 구약신학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성서신학이란 제목으로 구약과 신약을 취급한 책이 최근에는 거의 출판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신구약의 관계성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결여된 것은 아니다.(에벨링, 스툴마허 등) 전체 문제성이 기본이 되는 것은 단순히 신약과 구약에 서로 관련된 신학적 문제들을 표현하는데 있을 뿐만 아니라 일치성과 불일치성을 질문하는데 있는데 이를테면 그것이 하나의 언어와 사상 형태, 또는 내용인지를 질문하는데 있다.

1. 불일치와 불연속성의 형태

2세기의 마르시온은 영지주의의 영향아래 구약과 신약, 이스라엘과 교회, 구약의 신과 예수의 아버지 사이의 전적인 불일치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그는 히브리의 성서들(구약)을 철저히 거부하였고, 또한 그가 이해한 대로 히브리 성서들과 그 사상들에 접근하는 신약의 어떤 부분도 거부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기독교로 하여금 기독교의 진리가 무엇이냐하는 질문을 취급하게 하였고 경전의 문제성에 대해 결단하도록 촉구하였다.

1) 신약에 대한 과대 강조 - 구약에 대한 과소 강조

마르키온 적인 경향성은 하르낙(1851 - 1930)에게 반영되었다. 이는 19세기 이후 아직까지 구약을 개신교의 경전적인 문서로 보유하는 것은 종교적, 그리고 교회적 마마비상태에 기인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1936년 히르쉬는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이란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는 거기서 구약과 신약의 근본적인 분리를 강조하면서 구약과 신약이 영원한 "대립적인 긴장"안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신구약 간의 극단적인 불연속성을 뚜렷이 강조했다.

불트만은 신구약의 연관성을 역사의 기능적인 과정에서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구약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라는 방법으로 이 연관성을 규정한다. 이 입장에 대한 반응으로 침멀리는 이스라엘 역사가 분쇄되었다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 - 사건의 비역사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그리스도 - 신화"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움개르텔은 신구약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불트만의 확신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는 지속적인 "기초적 - 약속"을 추정하며, 구약의 모든 약속들은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다"라는 무시간적인 기초적 - 약속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실제로 타당성이 없다"고 본다. 이 외에도 바움개르텔은 구약의 죄절된 "구원 - 재난의 역사"는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길을 예시한다는 그 사실에서만 구약의 의미를 발견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약은 기독교 종교와는 또 다른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움개르텔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이 구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육신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움개르텔의 옛 제자인 헤세는 많은 약속들을 단일 기본적 - 약속으로 동일하게 감소시킨다. 헤세는 어떤 역사적 자료는 그 사실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구약은 신약에서 발견되는 구원을 지시할 때만 그리스도인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언의 성취에 대한 신약의 주장이 오직 신약시대에만 타당한 반유대적 변증으로 논의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약의 인용들은 구약에 있는 더 넓은 상황을 상기시키기 위한 중요한 단어들과 주요소재 및 개념들을 지시하며, 전승의 통일성을 전제한다는 것을 주장하여야 한다.

2) 신약에 대한 과소 강조 - 구약에 대한 과대 강조

반 룰러는 독일의 교의학자로 기독교의 사상과 가르침에 관한 한 구약을 신약보다 우위에 두려고 한다. 성서 전체의 중심적인 관심은 화해나 구속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것을 위하여 구약은 하나님 나라를 합법화시키며 그것에 기초와 설명과 해석을 부여하며, 역사화시키고 종말론화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 룰러는 신구약의 관계성을 하나님 나라라는 단일 영적 공통분모로 감소시키고 신정론과 종말론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신약을 상당히 일방적으로 읽는다.

"내가 이것을 간결하고도 날카롭게 묘사할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가능한 한 지연시켜온 긴급조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의 신학자로서 하나님을 지향하며 구약을 연구한다 할지라도, 구약 안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찾으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스탐은 대조를 위하여 반 룰러가 구약의 사실들을 부정확하고 부적절하게 관련시킨다고 지적하였다.구약과 신약 안에서 메시야는 구약에서는 양자 결연에 의해서, 신약에서는 근원으로부터 신적이라는 것만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미스코테는 구약과 신약을 대조시킬지라도, 그는 구약이 신약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구약이 더 소유한 것은 신약이 특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회의론, 반역, 애정, 그리고 정치의 네 가지 점에서 표현된다. 구약의 신앙심과 윤리는 현대인에게 가장 매력있게 보이는 삶의 기쁨, 지상의 물질에 대한 감사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의 신정론이나. 결혼풍습의 다양한 측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먼저 대면시키는 일이 없이 그것들을 현대사회나 교회가 지켜야 할 기준으로 단순히 설정하는 기독교의 윤리는 그 임무상 뚜렷이 실패했다. 피셔는 구약에 대해서 철저한 그리스도론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데에 있어서 성서신학자들 중에 뛰어나다. 그는 구약을 포함한 전 성서가 그 진정한 의도와 그 진정한 주제의 빛에서 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주제는 그리스도이다. 그는 구약이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한다고 보는데 명백히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직접 발견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고 구약이 그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지적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본다. 그는 구약에 대한 순수한 역사적 주석은 충분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신약의 편에서부터 일관성있게 구약을 읽는다. 신구약의 불연속성과 불일치를 강조하는 것과 거불어 마르키온주의를 지향하는 경항은 구약을 삭제하라고 촉구하였던 하르낙과 구약을 비기독교적인 책이라고 여겼던 델리취에게서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에 비해 라이트, 바아, 그리고 머피는 삼위일체론적 연구 방법을 강조한다. 이 연구 방법은 구약 증언의 문자적 의미를 보존하고, 신약이 구약 본문을 사용한데서만 근거하여 해석하적 방법의 전개를 피한다. 일단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가 삼위일체의 문맥에서 파악되고 나면 그리스도는 구약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목적이며 동시에 길잡이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2. 통일성과 연속성의 형태

금세기 유명한 구약신학자들은 신구약이 상호 관련성 안에서 서로에게 빛을 던져준다고 주장한다. 아이히로트는 "구약으로부터 신약으로의 이 역사적인 운동에 첨가하여, 신약으로보트 구약에로 역전되어 흐르는 삶의 흐름이 있다."고 말하며 폰라드는 구약과 신약은 둘 다 서로의 넓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볼프는 구약의 전의미는 신약에 관련된다고 시사하였으며 로울리는 근본적인 통일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다양성과 더불어 신구약은 아주 밀접하게 함께 속하여 신약은 구약없이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고 상기시킨다. 이 모든 것은 신구약 사이의 본질적인 상호성을 반영한다.

1) 역사적 연관성 : 학자들이 신구약의 통일성에 관한 문제를 파악하려고 할대 그들은 보통 성서의 기본적인 이야기의 역사적 성격을 강조한다. 구약과 신약의 공통대상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속적인 역사이다. 성서에서 제일가는 관심은 자신의 백성과 나라들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행위이며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은 성서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에 의해 인도된 신약 교회의 삶과 증언 안에서 임재하고 활동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인류를 다루시는 것에 철두철미하게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 역사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은 구약과 신약시기 동안에 훨씬 더 명확하게 전개되었다.

2) 성서적 의존 : 구약과 신약의 신학적 연결성의 하나는 신약이 구약의 귀절을 인용하는 점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연결을 "성서적 증명"이라 부른다. 신약이 구약을 이용한 것은 철절하고 확실한 조사를 요구하나 어쨋든 신약에서 구약이 사용된 것은 신약 저자들의 확신을 반영한 것으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는 불크만의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다. 구약을 사용한 신약의 방향은 그 당시 랍비적인 주석 방법과 기술에 준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해결 방법은 제한된 범유螡안에서만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구약에 대한 언급이 조직적인 모양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광범위한 인용절차의 의의를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3) 어휘 : 예수와 사도들이 사용하였던 신학적인 언어는 그들과 그들의 청중들이 알고 있는 언어였다. 신학적인 의미를 내포한 이 언어는 오랜 전승의 산물이었다. 구약과 이스라엘의 신앙의 배경을 떠나서 예수의 메시지가 이해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약의 거의 모든 중요한 신학적인 단어가 구약에서 사용되고 발전된 오랜 역사를 지닌 히브리 단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된다. 구약의 중요한 단어로서 신약에서 그 의미가 풍요해지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4) 주제 : 브라이트는 구약의 주요한 주제들은 각기 신약에서 상응되는 주제를 발견하며, 구약의 주제는 어떤 점에서는 신약에서 다시 시작되어 해답을 얻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신구약 사이에 해석학적 다리가 이루어지고 이 다리는 각 구약 본문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가 그 본문들을 기독교적 중요성에서 해석하려고 할 때 따라야 할 절차를 규정해 준다.

5) 유형론 : 신구약을 관련시키는 한 탁월한 방법은 구약 안에 있는 인물들, 관례들, 또는 사건들을 신약과의 유형론적 관계 속에서 연구하는 것으로 수직적, 수평적인 확장이 가능하다. 아이히로트는 유형론을 "역사를 바라보는 특별한 방법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아이히로트의 해석은 보다 초기 기독교의 전통적인 견해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폰라트와는 견해를 달리 하는데 폰라드의 기본적인 전제는 "구약이 역사책"이라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유형론적인 접근 방법을 완전히 거부한다. 그러나 유형론적 접근 방법의 중요성은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유형론적 상응성은 임의적이고 우연한 개인적인 견해가 주석에 스며들지 않도록 구약의 다양한 요소들과 신약에 있는 그 대응물과의 사이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근거로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유형론적 상응의 개념적인 수단은 그리스도 - 사건의 특성을 표현하는데서 그 뚜렷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나 그 자체로는 구약 역사에 의하여 그리스도 사건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유형론적 접근 방법의 부차적인 성격에 대한 질문을 억제하여서는 안된다.

6) 약속 - 성취 : 신구약의 연속성 중에서 중요한 유형은 약속 - 성취의 구조이다. 베스터만, 침멀리, 폰 라드등이 이 구조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이 방법에서 성취는 미래를 향하여 바라보는 개방된 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약속 - 성취의 구조가 신구약의 관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요약하지 못한다는 것을 용압해야 한다. 구약이 신약과 어떻게 적절하고 적당하게 관련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제기한다면 우리는 선험적 기초에 근거하여 신구약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미 일반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 결단을 의식해야 하며, 그것은 구약의 자료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의의를 지닌 결단이다. 신구약의 관계성에 접근하는 적절한 방법은 구약이 신약을 향하여 인도하는 특징적인 길들을 보여주려는 시도이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신약은 이 일차적인 접근 방법을 근거로 구약의 내용을 밝힐 수도 있다.

7) 구속사 : 구속사조차도 신구약 관계의 모든 비밀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적하였다. 구속사를 배제할 수는 없다. 구속사는 관점의 통일성을 지적한다.

8) 관점의 통일성 : 뛰어난 많은 학자들이 구약과 신약을 결합시키는 미래를 가리키는 하나의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한다.약속과 성취의 궁형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 즉 그의 구원사는 그 자체가 구약으로부터 신약에까지, 그리고 시간의 종말을 넘어서까지 전개된다. 구약은 절단된 구속사로 특별한 구속사와 관련된다. 모든 역사의 전환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활동하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 역사 안에서 결정적으로 활동했다.신약은 구약의 불완전성을 완성시키며, 여전히 최종의 종말을 향해 움직인다. 참으로 계시의 전 역사는 하나님이 세우고 만든 도성을 향해 바라보는 순례 여행이다. 공관복음서와 신약의 다른 문서들 안에 있는 마지막 날들에 관한 예연은 구약의 기대를 지속시켜준다.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은 또한 인간을 위한 공통된 관점과 계획과 목적의 통일성인 동시에 이것들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행위의 통일성이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거듭 좌절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거기에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이 자신을 통해 미래에 실현되리라는 것을 보았다. 모든 성서는 하늘과 땅의 만물의 완성을 향하여 추구한다. 이것은 신약과 구약의 편만한 주제이다.

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신구약의 관계성의 복합적 성격을 파악하는데 적절한 유일의 방법은 복합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하는 것이다. 복합적 접근 방법은 적어도 역사적인 원래의 증언과 문자적인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고, 또는 구약 자체가 증명하여 신약이 인정하는 더 넓은 케리그마적 의도와 문맥에 부족되지 않으면서 유사성과 비유사성, 옛 것과 새 것, 연속성과 불연속성등을 인정하게 할 것이다. 신구약 관계의 복합적인 성격에 관한 최근의 논쟁에서 적절한 맥락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맥이란 사상은 하나의 책이나 역사적인 일 안에 있는 연관성에서도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보다 큰 연관성에 관한 한 경전은 주어진 사실로서 해석적 타당성을 갖고 있다. 이 연관성에서는 신약신학 - 구약신학 - 이 경전에서 이미 정해진 본문의 연결성에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성서의 사건들과 의미가 본문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행위와 말들은 본문 안에서 형성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 문맥이란 말은 삶의 자리(Sitz im Leben)이며 후기 자료들 안에서의 삶의 상황과 상황적인 관계성과 연관성들이다. 이 모든 것에서 신구약의 주어진 문맥은 해석에 있어서 의의를 갖는다. 신약신학에 대한 오늘날의 관심의 커다란 전환점 중의 하나는 신구약의 상호 관계성에 대한 성찰이다.

신구약의 상호 관련성의 복합적 성격은 다양한 접근방법을 요구한다. 신구약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관련성의 형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신구약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의 백성의 계속적인 역사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는데 대한 모습이다.

2> 성서 인용문들을 근거로 신구약의 연관성이 새롭게 강조되었다.

3> 신구약의 상호관련성 가운데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용들을 공통적으로 사용한 점이 있다.

4> 신.구약의 상호 관련성은 중요한 주제들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통하여 또한 표현된다.{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배성, 출애굽 경험, 선택과 계약, 심판과 구원, 속박과 구속, 생명과 죽음, 창조와 새 창조 등}

5>유형론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은 구약의 역사적 맥락과 신약에 대한 관계성을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적절한 방법론을 위하여 불가피하다.

6> 약속과 예언과 성취의 범주는 신구약의 상호 관련성을 구약의 내적 통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와 구약의 관련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뿐 아니라 신구약의 상호 관련성을 위해서도 근본적이며 결정적이다.

7> 구속사의 개념은 신구약을 함께 연결한다. 특정한 역사적인 사건들은 인간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이다.

8> 신구약에 내재되어 있는 미래적 방향 설정인 관점의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신약은 구약의 미완성을 성취하였으며 최추의 종말을 향하여 나아간다.

신구약의 많은 상관성들은 성서의 다양한 증언들에 획일성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신구약의 통일성을 해명해주는 요소로 생각할 수 있다. 신약신학에 대한 어떤 노력도 신약의 단색적인 특징을 드러낼 뿐 아니라 구약과의 융합을 드러내도록 고려해야 할 것이다.

V.신약신학에 관한 기본 제안들 :

복합적 접근 방법

지금까지 살펴 본 신약신학의 제 방법들에서 드러난 여러가지 문제를 고려해 볼 때 신약신학의 방법론에 있어서 좀더 적절한 접근방식이 필요함을 지적할 수 있다.그러므로 신약신학의 나아갈 생산적인 길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제안들에 근거해야 한다.

1> 성서신학은 신학적 - 역사적 연구 방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구약신학이나 신약신학에 종사하는 성서신학자는 본문이 의미했던 것을 발견하고 서술하는 것과 그 본문이 오늘날 의미하는 것을 밝히는 것을 그의 과제로 주장해야 한다. 성서의 증언들은 그 자체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기원됐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인 증언이다.성서적 증언은 신적인 실재와 활동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언한다는 의미에서 동시적으로 신학적인 증언들이다. 따라서 역사적이고 언어학적 연구의 도구를 적절히 주의깊게 사용함으로써 성서를 의미깊게 해석하는 것이다. 신약신학자들은 성서의 본문 자체로부터 자신의 범주, 주제, 소재, 그리고 개념들을 끌어내야 한다. 신약신학은 교의학이나 또는 기존 철학으로부터 나온 외적인 규범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된다. 이 성서의 범주와 소재 등이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깊은 신비에 대한 풍부한 계시를 표현하는데 가장 시사적이며 역동적이다. 신약신학은 건전한 원칙들과 절차에 근거한 주의깊은 주석적 작업을 전제로 한다. 주의깊고 분별력있는 건전한 주석은 신약신학을 비판적으로 항상 통제할 수 있으며, 신약신학은 주석적 절차를 항상 일러줄 수 있을 것이다.역사 비판적 방법은 게몽주의에서부터 기원한다. 그것은 트뢸취의 상관성 원칙에서 설명된 역사이해에 관한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역사는 폐쇄된 연속체, 말하자면 초월성의 여지가 없는 일련의 원인과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은 1)비판적인 어떤 역사가도 초자연적인 개입을 역사적 설명의 원칙으로 사용할 수 없다.2) 진리와 가치에 대한 모든 표현이 상대적이고, 역사적 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건도 절대적인 것에 대한 최종적인 계시로 생각할 수 없다. 원인과 결과의 깨지지 않는 연속체에 근거를 둔 역사관에 의존하는 신약신학은 성서의 역사관과 계시관을 정당화 할 수 없으며 진리에 대한 성서의 주장도 정당화 할 수 없다. 강력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성서의 역사 안에는 역사 - 비평적 방법이 다룰 수 없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신학과 신약신학 안에 있는 역사에 관한 위기가 증거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니며, 역사 - 비판적 방법 자체의 위기와 역사의 성격에 대한 철학적인 전제에 기인하여 역사 안에서의 초월성의 역할을 취급할 수 없는 그 방법의 부적당성으로부터 역사에 대한 위기가 유래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주석은 단일 본문들의 의미를 연구하는 역사 - 비판적 기능을 가지며 신약 신학은 재구성을 신학적인 전체, 즉 일련의 절차에 대한 해석에 결부시키는 과제를 가진다. 시간적인 간격과 문화적인 간격을 좁힘으로써 성서 저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며 그 본문이 의미하였던 것을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그 다음에 그 본문이 현재의 세계와 역사적 상황 안에 있는 인간들에게 의미하는 것을 좀 더 적절하고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하는 성서신학자는 인간의 객관성의 상대성을 충분히 인정한다. 따라서 그는 그의 믿음으로 인해서 그가 서 있는 믿음의 전통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그의 자료들을 현대화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안다. 성서신학자는 성서 본문에 관한 질문을 성서 자체의 용어로 물어야만 한다. 역사적, 언어학적 그리고 문헌학적 연구로부터 애용할 수 있는 모든 주석적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으나 성서 저자들이 말하는 기본적 경험, 즉 신앙에 굴복하지 않는 한 문제의 핵심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성서 해석이 우리 자신의 참된 경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신약입문은 신약의 본문 형태 및 경전화와 마찬가지로 신약 각 책들의 역사와 형성을 추적함으로써 신약 각 책들의 문서 이전 시기와 문서 시기 그리고 형태를 밝히려고 추구한다. 즉 신약신학은 신약의 다양한 문서들, 혹은 문서군과 그 문서들의 신학에 대해서 질문하며 그에 대한 요약적인 해석과 설명을 제공한다. 신약신학의 전 과제를 위하여 중요한 것으로 이 연구 방법의 또 하나의 장점은 어떤 조직적인 사상의 틀, 양식, 또는 외부에서 삽입된 추상적 개념도 신약의 자료에 부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하나님이 구약의 중심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의 중심이라는 것을 확증해야 한다.

3> 신약신학의 진술은 신약의 다양한 문서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대로 예수의 메시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것 다음에는 마태, 마가, 누가 - 사도행전의 신학이 올 것이다. 바울 신학은 바울의 여러 서신들의 신학을 묘사하고 상이한 주제들과 소재들 뿐 아니라 공통된 주제들과 소재들을 묘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제 4복음서와 요한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요한 신학은 계시록의 신학을 제외하고는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계시록은 신약의 신학 중에서 독자적인 범주에 속하는 인상을 주는데 그것은 제일 마지막에 진술될 수 있다.

4> 신약신학은 신약의 주요한 주제들을 함께 묶어서 진술하려고 한다. 이름에 맞도록 신약신학은 신약의 주제, 소재, 개념들이 신약을 위하여 신약 자체에 의해서 형성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에다 신약성서 자체가 부과한 모든 다양성과 제한성이 함께 진술되어야 한다. 신약성서의 풍요한 증언들은 신약성서의 성격에 어울리게 그와 같은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파악될 수 있다.

5> 신약신학의 최종 목적은 다양한 신학들과 종적인 주제들, 개념들, 소재들을 함께 묶는 통일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는 과제는 너무 쉽게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염려되는 것은 변화가 많은 다양한 신학으로 인해서 간과되거나 지타쳐서는 안되는 반면 동시에 신약성서의 다양한 증언들을 숨겨진 방식으로 함께 묶는 것처럼 보이는 통일성을 제시하고 설명하여야 하는 진정한 과제가 상실될까 하는 것이다. 통일성을 찾고 설명하려는 탐색에 있어서는 하나의 책이나 문서군의 신학을 신약신학의 규범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통일성에 관한 질문은 이렇게 긴장을 내포하지만 긴장이 반드시 모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6> 전체적인 신약신학은 구약과 구약 신학에 대한 기본적 관계성에 존재한다. 기독교 신학자에게는 신약이 성서의 성격을 가지는데 그는 항상 이것이 구약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할 것이다.

이 제안들은 신약신학에 대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연구 방법을 지시한다. 그 접근 방법은 적어도 문자적인 의미와 신약이 속하는 보다 큰 성서적 문맥에서는 본문의 본래의 역사적 증언을 왜곡시키지 않고 신약사상의 풍부한 다양성, 유사성과 비유사성, 그리고 옛 것과 새 것에 모두 성실한 장점만을 지니고 있다. 그 방법은 획일성의 모양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모든 다양성과 다수성안에서 통일성이 나타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