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유대교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의 유대교적 배경을 살펴봄에 있어서 구약성경의 전승이 어떻게 유대교에서 중대한 발전을 하는가를 살펴보았다.
주로 지혜 신학을 통해서 초월하신 하나님의 내재하심을 천명할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계시,구원의 실행자로서 지혜 곧 하나님의 딸에 대한 사상이 발전한다고 했다.
또 묵시문학에서는 하나님의 보좌위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들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신적인 존재가 앉아 있다는 겔 1장에서 유래하는 이른바 ࠄࠁࠊ࠘ࠈ-vision 전승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 하나님과의 어좌 위에 앉아 있는 존재가 한편은 그의 신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metatron-작은 야웨-로서 하나님의 실행자 노릇을 한다는 사상이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분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다. 야곱 이스라엘이다. 야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어좌 위에 앉아 있다. 이것은 언약신학의 표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는 자다. 그래서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신성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참여하는 숙명을 가졌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언약신학의 표현이며 언약신학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소망을 표시할려고 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조직신학적 케테고리로 말하면 점진적인 계시이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자 점진적으로 더 많이 계시되는 것이다. -초월하신 하나님의 내재하심- 그러면 이와같은 점진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카테고리로 이해하고 인간들의 말로 표현해야 하는데 그러한 표현의 수단이 지혜신학이고 묵시 문학의 ࠄࠁࠊ࠘ࠈ-vision 전통이다. 귀납적으로 관찰하는 성서신학에서는 이런 것을 전승사적 발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똑같은 말이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또 살펴보았던 것은
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어냑의 관계에 의한 것이므로 점차 유대교에서 모든 이스라엘, 모든 야곱의 자손들에게 전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보다는 실제로 언약을 지키는자들 곧 선지자들에 의하면 남은 자들, 지헤 신학의 언어로 말한다면 지혜로운 자들.
시락24장에 의하면 지혜가 모세의율법에 담겨 있으니까 율법 신학에 의하면 율법을 지킨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충실한, 언약에 충실한 이 자들만 의로운 자들만, 지혜로운 자들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적용하는 경향이 발달한다.
또 한가지는 나단의 예언(삼하7:12-16)까지가 강력한 메시야 사상을 창출했는데 그것이 쿰란문서들에 증거되어 있어서 쿰란 문서에서 메시야가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금세기 초에 종교사학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은 무조건 헬라적인 배경을가진 헬라 교회에서 생긴 신앙고백이다라고해서 헬라 사상적인 배경을 찾을려고 했는데 그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유대교에서는 메시야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한 예가 없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야 말로 헬라적 배경을 가진 것이다는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이 쿰란문서에서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된 증거가 최근에 나왔다.
그러나 헬라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아주 드물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배경을 위해서 헬라사상으로 갈 것이 아니고 구약과 유대교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관찰한 구약과 유대교의 배경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신약성경의 신앙고백에 아주 중요한, 우리의 신약성경의 신앙고백을 자세히 그리고 환하게 이해하는데 배경을 제공한다.
Ⅱ.지금까지 배경을 했으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기 이해'를 하겠다.
1.이것은 첫 부분의 간접기독론의 증거들이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이 아들로 본 것을 가르쳐 준다. 예수가 하나님께 아빠라고 불렀다든지 아멘 사용법의 독특성에서 하나님의 계시자라는 주장을 했다든지 또는 하나님의 죄를 용서해 주는 권위를 주장했다든가 또는 적어도 내 해석에 의하면 예수가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로 칭함으로 말미암아 종망에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하고 대표하는 분으로 스스로르 내세웠든가 이런 것들이 다 간접 기독론과 예수의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자기 칭호가 제시하는 증거들이고
또 하나 덧붙인다면 지난번에 '예수가 주다'는 신앙고백과 더불어 살펴본 막12:31ff에 나오는 예수의 다윗의 아들에 대한 논쟁, 예수는 나단의 예언 전승에서 나오는당시 주종을 이루었던 민속메시야 사상에 시편 110편에 근거해서 도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메시야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상에 시편 110;1에 다우시의 메시야를 내 주라고 하는게 메시야가 다윗의 주인데, 어떻게 메시야가 다윗의 아들일 수밖에 없느냐?고 상당히 알송달송한 신학논쟁을 일으켰다고 했다. 거기서 예수가 은근히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메시야가 육신적으로 다윗의 자손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다윗의 주가 되는 분이다. 겨우 다윗의 왕위나 재건하고 다윗의 통치나 흉내내는 그런 인간적인 다윗 왕적인 메시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아들로서 다윗의 주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와 같은 논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로 본 강력한 증거들이다.
2.그 외에 또 중요한 자료들이 있는데 예수가 자신에게 아들이라는 칭호를 몇번 사용한다. 적어도 3번은 상당히 중요한 대목에서 사용한다. 첫째가 마11:27은 눅10:22과 같은데 것을 Q자료라고 한다. 이 Q자료, 마태와 누가가 공통자료에 5개의 지혜의 말씀이 있다. 그래서 양식사가들은 5개의 지혜의 말씀을 Q자료에서 구분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지금읽은이 말씀이다.
그 다음 마11:28ff도 지혜의 말씀이다. 왜 이것을 지혜의 말씀이라고 양식사가들이 분류하느냐면 이 말씀의 형태와 양식과 내용이 지혜문학 전승에 속한다. 이런 자료를 Q자료라고 하는 이유는 공관복음의 문제에 있어서 2문서설을 가설로 쓰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러하다. -이말을 안쓸려면 공관복음 문제에 있어서 Griebach의 가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태가 제일 먼서 쓰였고 '눅'이 '마'를 보고 썼고 '막'은 '마'의 축소판이고 '눅'도 조금 보았다. 마태 우선설.
Q라는 자료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막'이 제일 먼저 쓰였고 '막'와 독립된 또 하나의 '눅''마'의 '막'에서 오지 않는 공통자료가 있고 '마'는 '막'을 보고 썼고 '눅'고 마찬가지다. 또 '마'의 특수 자료가 있고 '눅'의 특수 자료가 있고. 이런 식으로 해서 공관복음의 근본은 2자료다해서 2자료설이라고도 하고 4자료설이라고도 한다.
마태-+---→누가
| ↑
+---→마가
(Grieshach's hypothesis)
마가 Q
↓ ↓
M→마태 누가 ← L
(two-document hypothesis)
이것이(Q) 학자들의 다수 의견이고 마태 우선술이 학자들의 소우 의견인데 소수 의견이 최근에 일부 부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주 일부 소수들이다.
-마태 복음은 교회의 전통이 가캐라고 말하고 있다. Papias에 의하면 '마'을 연구해 보면 레위 마태가 썼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마'는 상당한 성경신학자이다. 랍비들의 토론방법과 전승,구약해석을 상당히 알았던 사람이었음. '마'이 마태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말한 Papias가 또 '막'을 쓴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이었다고 말함. '막'은 베드로가 선포한 ꖨ음을 베껴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막'은 베드로의 증거이다.
이런 것들은 공관복음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가설이지 진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관복음을 이해할려면 할 수 없이 어떤 가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이말의 중요성을 살펴볼려면 J.Jeremias의 "신약신학"을 살펴보라.
Jeremias는 예수의 세례때 이와 같은 계시의 체험을 했다고 말함.
a.마11:25-27:계시와 위엄의 체험이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빠 내가 당신에게 부르짖습니다 이런 것들을 지혜롭고 이해하는 자들로부터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계시하였음을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빠 당신에게 감사해서 부르짖습니다'는 말이다.
여기서 이런 것들이 무엇이냐? 이런 것들이 무엇을 지칭하느냐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지혜롭고 이해하는 자들에게' 이것이 형식상으로는 지혜 문서 전승에 속하나 이 부분에서 예수는 지헤 문서의 신학 하나를 거스리고 있다. 지혜신학에 의하면 지혜를 받은 자만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지혜를 받은 자만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다. 왜? 지혜가 하나님을 계시하는 계시의 중보자이니까! 그런데 지혜가 모세의 율법에 나타나니까 토라를 열심히 연구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고 의로운 자고 이해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도리어 감추었고 어린아이들에게 도리어 나타냈다고 말씀하심. 이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자들,이들에게만 계시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이말이 아주 중요하다.
27절:그런데 우리가 관심이 있는 말은 '나에게 나의 아빠로부터 모든 것이 넘겨졌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 아빠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아버지 이외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하고 아들 이외에는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해준 그 사람 외에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러분이 Jeremias챌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여기에 비유가 하나 숨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고대의 가업을 계승할 때의 부자관계가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C.H.Dodd가 (요 5:19ff)에서 여기서 마11:27과 요5:19ff가 이런 식으로 통한다.
C.H. Dodd는 여기서 가업을 잇는 관계에서의 비유가 숨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고대 사회에서 가업이 대대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목수 집안에서는 대대로 목수직업을 한다. 그때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전수 받은 목수의 일의 모든 비밀들,자기만 아주 잘 만드는 비밀이 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체 비법을 지킨다. 자기 아들에게만 다 가르쳐주고 전수시킨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비법을 가르쳐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비법을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고 자기고 그대로 따라서 한다. 이 도제훈련을 통해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전수 받는다. 그러니까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위치에 선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의 계시자가 된다. 이런 관계가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J.Jerenias는 C.H.Dodd가 요5:17ff에서 발견한 비유의 관계가 지금 하나님 말씀에도 나타난다. 그래서 예레미야스는 이 말을 아람어로 그대로 번역해보면 거기에 아들,아버지 앞에 정관사가 쓰일 것이 아니라 the Father,the Son의 식으로 정관사가 쓰일 것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아들로 굳어진 칭호가 아니라 부정관사 a Father a Son으로 쓰고 이것이 비유라고 말함.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고스란히 가르쳐주어서 아들이 아버지를 속속들이 안다. 여기서 아들이라는 칭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업을 전수받는 부자관계로 나타냈다고 예레미야스는 말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조금 보충해야 할 것은
I.H.Marshall이 처음부터 '눅'의 주석에서 설령 Jeremias의 말이 맞다고 해도 예수가 이 관계를 자기와 아버지의 관계로 적용함으로 이 속에는 이 아들이라는 속에는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이라는 자기 이해가 들어가 있다고 Marshall이 Jeremias의 의겨을 보충했는데 그 말이 옳다.
그래서 여기서 마11:27에 비유 같은 말을 통해서 에수는 상당히 확실하게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전권을 위임받아서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는 자다. 아들은 무엇을 하는자? 아버지를 계시하는 자다. 전권을 위임받아서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할 수 있는 자라는 의미로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아주 강력히 나타내고 있다. 이 마11:25-27까지는 사실은 단2:19-23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가설을 W.Grimn이 자세히 설명했다.
b.막12:6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당시 갈릴리 소작농의 상황을 잘 반영한다)
예수는 이 비유를 말하고 시편 118편을 인용하여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된다'고 말함.
여기서 아들과 돌과 말장난이 있다(ࠐࠁࠀ : ࠐࠁࠄ)
그래서 이 비유와 시편 118편 인용이 하나고 묶어져 있다.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비유인데 거기서 예수가 자기를 포도원 주인의 아들로 설명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도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에게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패역한 이스라엘 지도자의 손에 죽임을 당할 그런 아들로 나타나고 있다.
c.마지막으로 막13:32 종말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들도 모른다고 말함.
이말도 아들의 상당히 중요한 사용이다. 이런 3곳에서 예수께서는 상당히 강력히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나타내고 있다.
3.예수께서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예가 더러 있었다. 다른 존재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예가 있었다.
a.그의 세례 때,하늘의 음성이 곧 하나님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했다. 막1:11=시2:7+사42:6의 혼합.
이 소리는 예수가 세례때 나단의 예언의 전승인 시 2:7의 성취자로 곧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야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이 되었고 그런데 예수의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사명 곧 나단의 예언의 시형을 주의 고난받는 종으로서 담당한다(사42:6)는 것으로 나타냈다.
b.사단에 의해 시험받을 때 예수의 시험때 막1:12-13
'막'판과 Q판이 완전히 다르다.막4:1-11/눅4:1-13
이 '마''눅'판은 보통 Q판이라고 하는데 '마''눅'판을 보면 '막'판과 Q판의 혼합니다. 여기서 사단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됨의 권세를 자의적으로 자기를 위해서 막 휘두르는 그런 메시야적 왕으로서 행사하라고 자꾸 예수에게 충동하고 예수는 고난 받는 주의 종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들이 되어야 함을 천명함으로써 사단의 시험을 이긴다. 이것은 예수가 자의적 하나님의 아들됨의 권세를 휘드르는 정치적 왕으로서의 메시야,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하는 유혹을 계속 받았음을 말한다. 그것을 사단의 유혹이라고 하고 예수는 도리어 고난 받는 종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기를 천명하고 있다.
c.예수의 세례와 시험에 대하여
베드로의 고백때 '마'판에만 '메시야 그리스도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라는 메이야라는 신앙고백이 사단의 전승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메시야가 다윗의 아들,하나님의 아들이다. '마'덧붙이는 메시야-우리말로 정확히 하면-선생님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그리스도라는 메시야라는 칭호를 해석한 것이다. 나단의 예언의 전통에 근거해서 '마'에 나온다.
d.예수의 변화산에서(막9:7)
세례때 울려퍼졌던 하늘이 선언이 다시 울려 퍼진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e.쫓겨나는 귀신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막3:11/5:7)
f.예수가 산헤드린 앞에서 재판 받을때(막14:61)
'네가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이냐'여기서도 네가 메시야냐는 질문인데 나단의 전승에서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네가 메시야 곧 복받을 자의 아들이냐 곧 하나님의 아들이냐? 거기에서 예수가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g.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 군중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거기서 내려 오너라 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자' 라고 놀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놀린다(마27:43)
h.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보고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짜로 하나님의 아들이구나'하고 신앙고백하는 막15:39/마27:54.
이러한 자료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4.결론적으로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일단 은밀하게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나타냈고 특별한 경우에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좀더 적극적으로 표시했다. 그래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이 특별한 경우에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인지되었다. 예수이 가까운 제자들 베드로에서 대표되는 예수의 가까운 제자들, 육과 혈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를 받은 예수의 가까운 제자들이 그것을 인지했고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타났다(마16:17). 또 사단과 악령같은 초자연적이 인지능력을 가진 존재들에 의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이 인지되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로 메시야적 비밀이다. 진정으로 예수가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은밀하게 나타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인지 능력을 가진 사단이나 악령들 이외에는 예수를 가까이 따라다니는 제자들만 인지했다. 일반 청중들을 잘 몰랐다.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이 공개적으로는 비밀로 지켜졌다.
복음서들이 쓰일 당시에는 -빨라야 AD 50견 이후이고 보통 69년 이후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이 교회의 중심고백이었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공관복음-공관복음이 덷리 당시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교회의 중심 고백이었다.-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이 엄청나게 나타나지 않는 사실,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것도 몇 사람에 의해서만 인지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공관복음이 저자들이 예수 당시 역사적 전승을 신실하게 간직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즉 공관복음이 쓰일 당시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이 중요한 신앙고백이었다. 만약에 불트만이나 양식사가들이 주장하는 것같이 복음에 나오는 전승들이 교회의 신앙의 표현에 불과하다면 신앙고백의 수단으로 예수의 이야기를 막 지어낸 것이라면 무슨 이야기들이 막 지어내어졌겠는가?
에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보유주는 이야기들이,자기들의 신앙고백이 예수가 하나님이 아들되는 것이니까 그 신앙고백을 표현하는 이야기들이 마구 지어져 공관복음에 있을 것이다. 도리어 공관복음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만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공관복음의 이야기들이 나중에 교회가 자기들의 신앙고백의 수단으로 무책임하게 지어낸 이야기들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신빙성있는 자료들을 신실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5.예수가 어떤 의미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느냐?
G.Vermes 같은 유대 학자는 하나의 유대 선생으로 특히 이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Charismatic 유대 선생으로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다. 왜냐하면 후기 랍비 문서들에 보면 하나님과 특별한 charismatic 관계를 가지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을 행하는 은사,영적인 능력 charisma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랍비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운다. 랍비 문서에 보면 그래서 예수도 이런 식으로 이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charismatic 인물로 유대 선생으로 예수 스스로가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았느냐.
K.Berger는 그것보다도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해는 지혜전승에 근거해서 보아야 한다. 지혜 신학에서는 지혜를 받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와 같이 예수가 지혜를 받은 지혜의 선생으로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지 않았겠느냐.
Vermes 나 Berger의 이론이 다 일리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의 자기 이해의 일부분을 설명하는 것이고 그것도 중심부분이 아니라고 본다.
예수가 스스로를 독특한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독특하게 아빠라고 불렀다. 이것은 유대의 charismatic 선생도 그리하지 않았고 지혜선생도 그리하지 않았다. 예소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아멘,죄를 용서해주는 것을 통해서-이런 보통 이적을 행하고 영적인 능력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혜 선생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런 류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독특한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나단의 예언의 성취자로 스스로를 예수가 보았다.
그래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의 가장 중심적인 배경은 나단의 예언과 삼하 7장과 이사야 42-53장의주의 종의 노래에서 나왔다. 이것은곧 시편 2:7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의 세례 때 울려퍼졌던 그 성경의 전통에 하나는 나단의 예언의 전통,-시편 2:7으로 대표해 주는 나단의 전통 또하나는 사42:1로 대표되는 주의 고난받는 종의 전통. 그 2전통에 의해 예수의 하나님이 아들됨의 중심적인 배경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예수는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주의 종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곧 그의 대속의 새언약을 세우는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말의 백성을 창조하고 모아서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하고 모아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분으로 그런 의미로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다.
곧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우두머리로서 대표로서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표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재판때도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이 문제가 되었다. 산헤드린 재판소에서(막 14:161f) 십자가에 죽을 때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죽은 예수가 사흘만에 하나님에 의해서 다시 일으킴을 받아 부활함으로 제자들이 하나님이 그를 옳다고 인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다시 일으킴을 받아 부활함으로 제자들이 하나님이 그를 옳다고 인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특별한 이런 의미로 계시하는 분이라고. 아멘이라는 독특한 말을 쓰며,하여튼 모든 것이 다 옳다. 그러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이 울려퍼졌다. 그렇게 해서 이 신앙고백이 발전을 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기 이해가 확인이 됨으로 이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수를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신앙고백하고 선포하게 되었다.
Ⅲ.바울전의(pre-paline) 교회에서 예수를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했는가?
롬1:1-4
1:1에서 보면 바울이 자기를 하나님의 종으로 소개하는데 복음을 위해서 택정받음 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복음'을 여러가지로 정의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복음이다니까 하나님이 복음의 저자시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 신적인 Quality가 있다. 인간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신적인 quality가 있다.
둘째 복음을 구원사적으로 정의하면 성경에 성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선포한 약속한 것들이 성취다. 성경의 성취,하나님이 구원사의 성취이다.
세째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복음의 내용이다.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냐? 3,4절로 설명 되는데 이 3,4절은 모든 신약 학자들이 동의 하듯이 발울전의 교회에서 생성된 신앙고백이다. 또 예수에 대한 선포양식이다. 이 신앙고백이 2부분으로 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바울전의 것인줄 아는가?
①거기에 아주 셈족언어적인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이 헬라말로 번역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이 아마 아람말을 쓰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생성된 아주 초기 교회의 것일 것이다.
②위와 연결되어 바울의 표현이 아닌 표현으로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성령을 'ՊՁՔՁ ՐՍՅՕՌՁ ՄՃՉՏՓՕՍՇ' 바울은 그냥 ՔՏ ՐՍՅՕՌՁ ՔՏ ՁՃՙՍ 혹은 ՔՏ ՁՃՙՍ ՐՍՅՕՌՁ 라고 말한다. the Holy Spirit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the Spirit of Holiness-성결의 영-
이것은 아주 셈족적인 구문이고 바울이 도저히 사용하지 않는 구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바울 전의 교회에서 생성되는 아람말을 쓰는,아라말을 쓰는 교회에서 생성된 아주 초기의 것이다. 그런데 2부분으로 되어 있다.
'육신적으로'는 -3절에 'ՊՁՔՁ ՓՁՑՊՁ'와 'ՊՁՔՁ ՐՍՅՕՌՁ ՁՃՅՏՓՕՍՇ'가 대조되었다. '육신으로는' 그리고 '성결의 영으로는' 도대체 '육신으로는'그리고 '성결의 영으로는'은 무슨 뜻이냐? 참 해석이 구구하다.
'인간적으로 보면 ,인간이 세계에서'또는 '육신의 족보로 따지면'의 뜻인데 대개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다윗의 아들,다윗의 씨로 남고
육신의 평면에서 보면 성령의 평면에서 보면 혹은 성령에 의해서-번역하기 어려운데-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 능력으로가 인정되었다는 말과 같이 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번역이 틀리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라고 원인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때부터'라고 시간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두 해석이 다 가능하다.
능력을-권세를-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했다. -또는 임명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나 등극한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혹은 힘을 가진' 그 말이 하나님의 아들에 붙는 수식어다.
그러니까 권세를 행사하는 하나님 아들로 등극했다. 다윗의 씨가 곧 하나님의 아들로 이것을 보면 성경의 성취라고 보는데 주로 어떤 성경을 말하고 있는가? 나단의 예언을 두고 한 말. 나단에 의하면 '네 수가 다하며 너의 씨 다윗의 씨를 일으켜서 너의 왕에 앉히고 그를 나의 아들로 삼겠다 그래서 내가 그의 아비가 되가 그가 나의 아들이 되리라'
거기 히브리말로 ࠉࠛࠎࠗࠉࠄࠅ(ࠎࠗࠄ이 일으키다) '내가 그를 일으킬 것이다' 이것이 LXX에서는 ՊՁՉ ՁՍՁՓՔՇՓՙ 일으킨다고 되어 있다.
이말의 명사형은 ՁՍՁՓՔՁՓՉՒ, 부활이라는 말이다. 여기 헬라어에 'ՅՒ ՁՍՁՓՔՁՓՅՙՒ ՍՅՊՑՙՍ' 죽은자 가운데서 일으킴으로 부활시킴으로 그래서 여기서 나단의 예언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시를 네 수가 다하면 네 씨 하나를 내가 일으켜서 일으킨다는 말이다' LXX에 의하면 ՊՁՉ ՁՍՁՓՔՇՓՙ 그를 일으킨다고 그러는데 다윗의 씨로서 일으킴을 받는 분이 예수님이다.
죽은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행위는 나단의 예언을 성취한 행위다. 부활을 어떻게 해석했느냐?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 하나를 일으킨 것으로 해석하고 그를 일으켜서 내 아들(하나님)로 삼는다
그래서 예수가 나단의 예언에 문자적인 성취자다. 또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단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성취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를 일으켜서 자기 아들로 삼았다 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다.
그러니까 예수가 나단의 예언의 성취자로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높임받은 일으킴을 받는 분이다. 그러니까 예수가 메시야다는 신앙고백이 선포되었다.
진정으로 유대 메시야 사상을 성취한 분이다.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들을 성취한 분이라고 선언했다. 육신의 상태에서도 예수는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그것이 감추어졌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그의 하나님의 아들됨이, 예수가 육신의 상태 또는 다윗의 씨로서 예수가 나단의 예언의 담당자로 하나님의아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셔서 하나님이 아들로 등극시키고 선언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인정되게 만들었다. 이때 감추어진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의 위에 등극해서 인정된 하나님의 아들과 차이가 무엇이냐? 이제는 권세를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권세를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이냐?주이다. 만유의 주권을 행사하는 주이다.
바로 이분이 주가 되었다. 예수가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부활절에 일으킴을 받아서 권세를 휘두르는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했다는 것은 만유의 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우편에 높임받은, 만유에 군림하는 주가 되었다는 신앙고백이 거기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