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신학 Ⅰ의 요약
신약신학을 하면서 과제로 삼은 내용은?
어떻게 해서 AD30년 쯤에 예루살렘 성밖에서 처형된 예수가 그리스도요 주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다 주는 분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이 신앙고백이 인류를 위한 기쁜 소식으로 복음으로 선포되게 되었는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았다.
이 문제는 인류 종교 사상 유례없는 일로 강조했다.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을 하나님이 아들로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시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유의 주로 높임받으시고 군림하신다는 이 신앙고백, 십자가에 죽음과 현재 통치하심과 재림으로 이루어진 십판과 구원의 완성을 통해서 인류가 구원을 얻는다는 이러한 사상의 전제는 인류 종교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신앙이 발생하게 되었는가가 우리의 과제이다.
이 과제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불투만 이래로 역사를 경시하는 자유주의 학자들은 이 신앙고백의 발생을 예수의 사건 첫 부활에 대한 체험의 사건에서부터 돌출하려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 예수로 돌아가서 역사적 예수가 어떠한 삶을 살고 어떠헥 가르치며 어떠한 운명을 가졌는가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겨 해야 한다고 강조.
그러면 역사적 예수의 독특한 점들을 하나씩 살펴보아야 그 분이 어떠한 자기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류에게 어떠한 약속을 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1)간접기독론 2)하나님 나라3)'그 사람의 아들' 이것들이 예수의 특징들이다.
1)간접기독론
예수는 자신을 주, 하나님의 아들,메시야다라고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당시 유행하던 유대교의 메시야적 칭호들을 피하고 남들이 자신에게 사용하면 인정하나 스스로는 거절함. 공관복음에는 자신이 메시야라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간접적으로 자기의 독특한 권위를 주장했는데 그것이 의미가 있다. 그것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에수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예수의 독특한 말씨,주장들들 살펴보자.
A)ࠐࠍࠀ,ࠀࠏࠀ
여기서 ࠐࠍࠀ의 사용법은 독특하다. 당시 유대인들이나 우리들 같이 하나님이 말씀 선포나 기도의 끝에 ࠐࠍࠀ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중요한 선언 앞에 아멘 내가 여러분께 말한다. 우리말로 진실로라고 번역된 말이다.
둘째로 예수는 하나님을 ࠀࠏࠀ아고 불렀고 자기 제자들에게도 아빠라고 부르게 하였으나 자기와 자기 제자들 사이에 차이를 두고 나의 아빠 너희들의 아빠라고 부르게 했다. 이런 것을 통해 예수가 스스로를 독특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계시할 수 있는 구약의 선지자들도 주의 영이 주의 말씀이 나에게 임했다고 말씀을 선포했는데 예수는 자신이 선포한 말의 진위됨을 보증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의 추종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든 분이다라는 것이 자기 이해이다.
B)모세 율법에 대한 태도
특히 모세 율법에 대한 태도가 반대 어법에 묘사되었는데 거기에 "옛 사람에게 살인-,간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형제를 미워하거나 --" 그러내 내가 말한다라고 반대어법을 사용하여 말함으로써 모세 율법보다 더 완벽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분으로 주장하는데 이것은 유대교의 틀을 부수는 주장이다. 왜? 유대교는 모세의 권위위에 세워진 종교로서 유대교의 틀 안에서는 모세보다 더 위대한 인간은 없다. 모세 다음은 하나님이다. 예수는 모세보다 더 위대한 권위로 하나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완전하게 계시를 선포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예수가 제2의 모세로서 모세의 첫 언약과 첫 율법의 게시에 후형적으로 상응하는 제2의 모세로서 종말론적인 율법의 계시자로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모세가 표준이 아니고 모세를 능가하는 종말론적이인 완성자로서의 위대한 면모가 나타난다.
이러한 말투로서 간접적으로 모세를 능가하는 권위를 주장한다.
C)죄를 용서해 주는 권위
죄를 용서해주는 권위를 주장하고 자기의 회개와 하나님 나라이 선포에 응한 죄인들의 죄가 용서되어 하나님과 화해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짐을 받았다는 것을 데모로 증명했다. 이것이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잔치이다. 종말에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 교제의 회복의 구원이 이미 예수를 통해서 임한다고 주장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항상 잔치로 비유하였는데 그 잔치를 하나님 나라에 응한 사람들에게 배풂으로서 그들이 벌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종말에 하나님 나라에서 베푼 진정한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으로서 시위를 하는 것.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 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권인 죄를 용서하는 권위를 주장-신적인 권위를 주장. 막 2장에 보면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권윌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말에 구원을 가져올 분이라고 스스로 주장했다. -신적인 권위로서
D)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데 있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또 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 기준을 스스로 제시하는데 이것도 엄청난 권위주장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자기를 따르는 곧 제자도를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엄청난 권위주장이다.
E)후계자를 생각하지 않은 것을 보면 자기의 삶과 사역을 단회적인, 독특한 사역으로 봄. 이런 주장들을 통해 예수가 간접적으로 신적 권위를 주장하며 하나님 아들로서 하나님을 계시하고 모세보다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계시하고 하나님의 죄용서와 종말의 구원을 지금 현재 베풀며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인 통치자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고 없음을 결정하는 자기 이해를 주장.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유대교가 제공하는 카테고리로 정의한다면 무슨 카테고리가 있을까? 종말에 구원자라는 메시야라는 category는 예수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불완전한 카테고리다.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은 이런 엄청난 주장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은 매우 복잡. 이런 주자을 한 사람은 이미 유대교의 틀을 부순 사람이므로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충돌을 하고 재판에 처해지고 사형. 그러나 우리가 구태여 유대교의 틀안에 머물러 유대교가 공급하는 카테고리로 명명해야 한다면 조금 부족하지만 '메시야'라는 명칭을 쓸 수 밖에 없다.
2)하나님 나라 선포
이것은 예수의 중심 메시이다.
구약은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아주 드물게 나오나 왕이라는 개념은 자주 나오며 언약 사상의 표현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신정주의적 이상이 있었다. 그것이 배경이 된다. 구약의 창조,언약,종말사상이 큰 의미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재미 있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별로 지칭하지 않는다. 예수의 가르침 속에는 항상 아버지로 나타난다. 하나님 나라 개념이 가르침 속에 수없이 나타나지만 왕이라는 개념은 없다. 왜? 구약과 유대교적 배경과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연속성이 되지만 불연속성도 있다. 불연속성이란 예수의 독특한 점이다.
그런 것이 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종말의 기대가 실현된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좀더 새롭게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첫째 미래올 하나님 나라의 실제로 나타났는데 임박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묵시문학과 유사. 예수는 미래에 올 하나님 나라의 상황은 별로 언급하지 않고(유대 묵시문학은 환상적으로 랍비 문학은 물질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그리는 반면) 하나님 나라를 잔치로 비유하여 죄용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 집의 아들로서 회복되는 것, 영생, 오는 세상의 삶, 기쁨이 있는 곳이라는 구원론적 천명에만 그치고 그 속에서 삶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그릴 때 구체적인 그림은 잔치이다.
왜? 묵시문학처럼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느냐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을 강조하기 때문.
둘째 예수를 통해 실체가 되는 하나님 나라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미래에 올 것으로만 말하지 않고 자기를 통해서 자기의 선포와 자기의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고치는 자신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이 점이 미래에 올 하나님 나라보다 강조되었고 이점이 독특한 점이다. 예수의 선포와 귀신, 병고침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실제가 되었고 종말의 구원의 현재의 선포로 주어지며 특히 안식일에 병고침을 통해 고장난 하나님의 창조를 고쳐서 원래의 아름답고 완벽한 하나님 창조를 회복하고 진정한 안식을 갖도록 한다는 것을 시위적으로 표현.
세째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오느냐? 초월적 은혜성. 초월의 하나님이 은혜로 인간을 위해서 행하심으로 온다.
㉠동사들을 살펴보면 하나님 나가 어떻게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다. 도착한다. 주신다. 들어간다. 받는다 의 동사들이 사용됨.
우리가 즐겨쓰는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 확장한다. 이런 동사는 일체 나오지 않는다.
이 동사 사용에서 알 수있는 것은 예수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초월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인간을 위한 행위다.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초월적 신적인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은혜를 주시는 구원의 통치를 받으들여서 그 구원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분히 수동적이고 인간이 할 수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권을 확립할 수 있도록 기도.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치유하도록 제자들을 보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서 실제가 되어감. 그래서 이것을 굳이 우리의 용어를 쓴다면 2차적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가 이런 단어를 피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과 하나님의 구원자적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성령의 능력으로 온다.
성령이 능력으로 인간 위에 하나님의 주권을 확립하심으로 도래한다. 예수는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예수를 통해서 능력이 나타나고 그의 선포와 치유가 하나님 나라의 실재와의 증거이다.
㉢유대 묵시문학이 기대했던 천지개벽을 기대한다거나 열혈당원이 기대했던 혁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조그마하게 믿음 없이는 보이지 않게 시작한다. 그러나 온 사회를 변혁시킨다는 주장.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유대 묵시문학의 사상을 반영하여 온세상의 변형,갱신 등을 막 19:28절에서 반영하기는 하지만 예수의 강조점은 지금 여기서 자신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제자들과 더불어 조그마하게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크게 자란다.
ⅰ)점진적으로 자란다:하나님 나라의 점진성
ⅱ)하나님 나라의 비밀성:믿음 있는 자들만 헤아릴 수 있다.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에 대해서 유의할 것은 열혈당원의 신학적 후예인 해방신학자 비판.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있어서 정치,경제,사회적 program이 하나도 없다.
사회변혁을 통해서 나은 정치가 경제체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네째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새로운 성전으로 보았다.
다섯째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가졌던 의도
그것은 악과 고난으로 통치하는 사단의 통치영역에서 벗어나서 생명,사랑과 의로 통치하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으로 들어와서 생명을 얻우라는 초대, 청첩. 부름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의도. 다시 말하면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모으려는 사단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영역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초대를 함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 구원을 약속. 잔치에 참여하였다. 피조물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부요함에 참여하며 영생 즉 신적인 삶을 얻도록 약속함으로 초대함.즉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 나라 선포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예고
왜 하나님 나라를 열심히 선포한 예수가 막8:27ff 분수령으로 하나님 나라를 말하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자기 죽음과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 이것은 신학적으로 중요.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할때 최후만찬의 말씀을 고려
잔의 말씀:자신의 죽음을 대속의 죽음으로 보고 대속과 새언약의 제사로 자기 죽음을 예고
이것은 성전의 진정한 기능을 완성하는 것이고 자기 죽음을 예고했다. 진정한 성전은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언약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대속과 새언약 제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종말에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창조되는 것이다. 언약을 세우는 것은 항상 하나님 백성을 창조하는 것-내가 너의 하나님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예수도 가기 주권 새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 죽음을 통해서 죄의 용서함을 받은 하나님과 화해한 종말에 의로운 백성을 창조할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죽음과의 관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구원의 약속이요 하나님의 백성의 초대 죽음은 약속의 성취로 법적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는 성취.
3)자기 칭호
①'그 사람의 아들'
단 7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는 사람임을 자기 칭호를 통해서 암시.단 7장에 나오는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이는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여 대표하러 나타나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예수님은 암시 주장.
예수가 자기 죽음을 예고할 때 항상 이 칭호를 사용하였다는 것이 재미있다.
최후 만찬도 마찬가지다(막8:31/9:31/10:33/9:12/마10:45)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기 길을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떡과 포도주의 떡의 말씀과 잔의 말씀을 통하여 연극으로 설명하였다. 예수는 자기의 죽음을 말할 때는 항상 이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것을 보면 왜 자기의 죽음을 그 사람의 아들로 예고 했는가가 잘 나타난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고 새언약을 세우는 죽음이어서 자기 죽음을 통해서 종말의 하나님의 백성이 창조된다.
이것이 단 7장의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의 성취다. 단 7장에 나타난 그 사람의 아들이 임무요 그래서 자기가 자기 죽음을 통해서 대속의 새언약을 세우는 제사를 통해서 단 7장에 나타난 '그 사람의 아들'의 임무를 완성한다고 나타난다.
②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유대인들은 예수를 정치범으로 몰아서 예수가 메시야로 주장했다는 "성전을 부수고--" 것을 빌미로 빌라도에게 처형받게 한 것은 신21:23이 적용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라고 당시에 이해되었다. 쿰람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둁느 이 말이 예수에게 적용되게 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정치범으로 몰아 하나님의 저주 아래서 죽은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 예수가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부활을 체험한 그 제자들의 입장에서 되돌아 보았을 때 무엇을 깨달았겠는가?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옳다고 선언하신 것이다.그러면 예수의 모든 권위주장-모세를 능가한 분으로 직접으로 계시. 우리를 하나님 아들 혹은 백성이 되게 해 주신 분이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서 우리를 하나님이 백성되게 하신 분. 자기 죽음이 '그 사람의 아들'의 임무를 성취하는 것으로서 대속의 새얀약의 제사로서 우릴르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는 것이다.-이 옳다고 인정.
그렇다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가 그의 죄 때문이 아니고(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했으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고후5:21). "죄없는 분이 우리를 위해서 죄가 되었다"-문자적 해석.
ՁՌՁՑՉՁ는 히브리어 카타트이 번역으로 죄란 말도 되고 대속의 제사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예수그 우리 대신 우리 죄에 대한 저주를 받은 대속의 제사를 한 분이다라는 케리그마가 선포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활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예수를 옳다고 선언한 것이므로 예수의 모든 주장도 가르침도 옳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이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고 우리를 위한 새언약을 세우는제사고 그래서 그가 우리 죄를 위해 죽었다는 그렇다면 그이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죽음이고 우리 죄를 속죄하고 실제로 우리를 하나님이 백성 만들어서 하나님의 부요함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는다.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한다. 피조물이 무한한 자원에 참여한다. 피조물의 제한성을 극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사건이다.
예수의 죽음이 우리 구원을 위한 죽음으로써 그것이 구원의 사건이다. 아까 예수의 가르침속에서 벌써 그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의 죽음에서 관계는 그가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통해서 한 약속과 초대의 성취로 예고했다. 그가 실제로 사건으로서 그의 죽음이 그가 약속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의 백서으로 만들고 잔치에 참여하게 하겠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사단의 통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초대를 한 것이다. 초대를 한 사람을 어铽게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냐면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새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의 죽음을 통해서 성취하겠다. 그것은 이 모든 것 , 예수의 가르침.
실제로 그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엇이 구원의 사건이냐? 예수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풍요로운 잔치에 참여하게 해 주겠다. 구원해 주겠다. 약속한 것이 복음이냐 아니면 죽음을 통해서 약속을 성취하고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인가?
십자가에서 그의 죽음이 구원을 성취했다는 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선포에는 더이상 예수의 하나님 나라선포가 나타나지 않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이 구원의 사건이다.
이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은 이것에 대한 약속이었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약속의 성취였고 이 모든 것을 체험한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통한 구원의 성취,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게 되게 하겠다는 약속의 성취로 이것이 구원의 사건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선포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 집중되었다. 복음서를 넘어서 사도해언에 들어가면 금방 나타나는데 이상한 현상 복음서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는데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 대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 집중하고 있는 현상이 이렇게 해서 설명이 된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구원의 사건이다. 그러면 예수는 부활의 사건을 이루신 분이며 그러므로 메시야. 그리스도다. 종말에 구원을 이루신 분이다.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로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되게 해주신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것은 사단의 세력을 꺾고 하나님 우편에 높임 받아서 사단의아들 세력을 제거하며 종말에사단이 아들 세력을 완전히 없앨 주이시다.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한 대속의 죽음이고 그가 우리를 위해서 죽고 부활했다. 등의 다양한 기독론적 구원론적 신앙고백과 복음선포 양식이 발생한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된 구원의 사건을 살명해야 하는데 초대교인들에게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배경은 구약과 유대교에서 올 수 밖에 없는데 여기서 오는 그림 언어, 칭호, 카테고리 들을 총동원해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우리를 위한 구원사건이다. 그가 우리를 위한 종말의 구원 해결을 하신 분이다 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기독론적 칭호를 동원-예수가 주, 형상, 지혜,마지막 아담,선한 목자,모퉁이 돌,생명의 떡 등-구약과 유대교가 제공하는 칭호들을 예수에게 붙임으로서 예수가 이루신 종말의 구원을 충분히 나타내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