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신약 성서의 기원

제 2 편. 서신과 묵시의 책

Ⅰ. 바울의 서신

제 1 장. 서 론

1. 서신 형식의 책들

신약성서 27권 중에는 서신이라는 형식을 지닌 책이 21권이나 있으나, 그 모두가 실제로 편지는 아니다. 다이스만(Deissemann)은 편지와 서신을 구분하는데, 서신들의 구조는 인사,발신인과 수신인의 이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인사와 문안의 말(발신인의 친필)의 형식을 가진다. 그러나 바울의 서신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편지 서두와 미말에 있는 인사가 자유롭게 확대·변형되는 것이 그 특색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바울의 서신들은 사도라는 공직을 지닌 분의 편지들이며, 바울의 선교사업을 발전시키려는 의도에서 써 보낸 글들이다.

초대 교회가 서신이라는 뚜렷한 형식을 가지고 교류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서신은 일반 논설이나 수필보다 호소력이 있고, 면대해서 말하는 것 다음으로 효과를 가지고 있다. -- 가르치고, 지시하고, 권면하고, 타이르고, 그릇된 사상을 막아내고,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등 여러가지의 필요에 의해 서신을 보내게 된 것이다.

2. 바울서신 일반

신약성서 중에 바울을 그 저자라고 밝히고 있는 서신이 13개이다. 오늘날까지의 학계의 견해들을 종합해 보면 ; 1)네 개의 주요서신을 비롯하여 살전·빌·몬은 틀림없는 바울의 글이며, 2)목회서신은 확실히 바울의 것이 아니며, 3)나머지 세 서신, 즉 살후·골·엡은 그 진정성이 아직 논란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바울 서신들은 모두 그의 선교 활동의 전성기와 그의 말기에 기록된 것이다.

3. 바울의 연대

바울의 생애에 대하여 연대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바울의 고린도 체재 연대를 49∼51년으로 잡을 때 다른 연대들을 측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바울의 개종(31/32), 첫 번 예루살렘 방문(34/35), 시리아와 길리기아 체재(34/35∼48), 예루살렘 회의(48), 소아시아와 헬라 첫 번 여행(48∼51/52), 두 번째 여행(51/52∼55/56), 예루살렘 도착(55/56)

제 2 장. 데살로니가 사람에게 보낸 첫째 편지

1. 내 용

1∼3장에는 데살로니가 신도들의 견실한 신앙과 만난을 극복하는 인내와 다른 신도들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들을 칭찬하며, 4∼5장에는 경고와 지시가 따라 나온다.

2. 데살로니가 교회의 설립

바울이 제 2 차 전도 여행 때에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대동하고 빌립보로부터 데살로니가 성으로 내려가 거기에 교회를 세웠었다. 회중은 대개가 이방인 크리스챤들이었으며, 유대인 크리스챤도 약간 있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바울의 전도가 잘 수락되어 교회가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3. 기록 연대와 경위

바울이 49년에 데살로니가에서 교회를 세우고, 50년에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다는 주장이 가장 타당하게 보여진다. 바울은 두가지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 -- 그리스도의 재림 시일 문제, 파루시아를 목격하지 못하고 미리 죽은 신자의 운명 문제 -- 에 답변을 해 주어야 할 의무를 느끼면서, 그리고 디모데가 전해 준 기쁜 소식을 듣고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붓을 들었다.

4. 진정성

바우르(Baur)와 그의 학파 일부가 이 서신의 진정성을 부인하였다. 근자에는 데살로니가 전서가 바울의 원작이 아니고 바울의 다른 두 원작을 합쳐서 엮어 놓은 것이라고 하는 학설이 나타났다.(E. Fuchs, Eckart)

제 3 장. 데살로니가 사람에게 보낸 둘째 편지

1. 내 용

주님의 날과 배교자에 대한 경고, 신앙에 굳게 설 것을 간구하고 있다.

2.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의 순서 문제

살전2:17∼3:10이 살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살후보다 먼저 된 서신이라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3. 기록의 경위

말세사상에 몰두하던 데살로니가 교회 신도 일부는 바울의 첫째 서신을 받고 나서도 그 열이 떨어지기보다는 도리어 더욱 더 가열·악화되었다. 이러한 급박한 형편을 알게 된 바울은 그 오해를 시정해 주기 위해서 다시 서신을 써 보내기로 하였다.

4. 진정성

데살로니가 후서의 진정성을 처음으로 부인한 사람은 슈미트이다. 그는 주로 2:1∼12절을 문제 삼았다. 즉 살전에 언급된 바 있는 재림 문제에 대하여 상기시키는 말이 전혀 없고, 재림에 대해서 처음 다루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적그리스도에 관한 경고와 또 그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들이 바울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후서가 바울의 글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을 반대하는 편의 주장이 더 무게를 가지고 있다.

데살로니가 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써 보낸지 불과 몇 주간 후, 즉 바울이 기억에 아직도 그 첫 편지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또 다시 써 보낸 편지라고 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에 가장 쉽고 적당하다고 본다.

제 4 장.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1. 내 용

갈라디아서에는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파격적인 형식을 가진다. 서두에는 감사의 말이 들어 있지 않으며, 책망을 한다. 둘째 부분에서는 독자들의 경험에 비추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해 나간다. 제 3 부에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성령에게 복종하여, 자유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하여, 구체적인 지시를 덧붙여 끝을 맺는다.

2. 갈라디아의 역사

갈라디아 사람이라고 하면 18세기까지는 주전 3세기 전반에 소아시아 중앙 지대에 정착하였던 켈트 족속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B.C.25에 갈라디아인들의 마지막 왕인 아민타스가 자기 왕국을 로마인들에게 넘기고 죽었다.

3. 갈라디아서의 수신인

갈라디아서 1:2에 의하면 수신 교회가 복수로 나온다. 이에 대하여는 북갈라디아설과 남갈라디아설이 있는데,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제 2,3차 여행 때 방문한 바 있는 소 아시아 내륙 지방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4. 역사적 형편

많은 학자는 갈라디아서의 용어와 언어가 로마서의 그것들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 후서와의 사이에도 자기 변호의 면에서 유사점을 발견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갈라디아서가 로마서와 고린도 후서의 사상을 종합했다고 보고(Buch) 또는 성령에 대한 교훈이나,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갈라디아서는 고린도 후서와 로마서 중간에 위치한다고 말한다(Faw). 이런 것들이 갈라디아서의 저술 연대가 고린도 후서와 로마서의 연대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다.

5. 저술 시기와 장소

본서는 바울의 제 3차 여행시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한 후에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에 의하면 갈라디아서는 A.D.53∼55년에 에베소나 마게도냐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하면 옳을 것이다.

6. 진정성

갈라디아서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은 바우어에 의해 표시되었고 후에 네델란드 급진파 비평가들과 스위스 학자 스테크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갈라디아서가 순정하고 진정한 바울 서신이라는 것은 이의의 여지가 없다.

제 5 장. 고린도 사람에게 보낸 첫째 편지

1. 내 용

서두의 인사가 있은 후 고린도 교우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활동에 감사를 드리고 나서 곧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받은 보고에 기초하여 말문을 연다.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지혜, 성도들의 신앙윤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 고린도 교회 창설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적으로 자기의 직업을 통해서 자급자족하였다. 1년 반 동안의 활동의 결과 고린도에는 활발한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 교회는 주로 이방인 크리스챤으로 구성되었고 사회적으로 하류에 속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3. 기록의 경위

본서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고린도 교회가 바울 사도에게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낸 데 있다. 또한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었다. 고린도 전서는 전체적으로 기독교 메시지에 대한 새로운 영지주의적 해석을 배격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반적으로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영지주의적 경향을 막고 바른 교훈, 즉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기록한 것이다.

4. 진정성과 완전성

고린도 전서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완전성에 있어서는 아직도 미결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본서 5:9과 후서 2:4에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지 않는 한 편지를 언급하고 있다. 잃어버린 서신을 고린도 전후서에서 찾아내어 재구성해 보려고 여러 가지로 시도하였지만 사실 학자마다 견해가 다를 뿐 아니라, 아무도 확실한 것을 말할 수 없다. 고린도 전서가 두 서신의 복합물이라는 가설은 문자 그대로 가설일 뿐, 확실한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개연성도 극히 희박하다.

5. 저작 연대와 장소

이 편지는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 전 봄, 즉 A.D.54년 혹은 55년 봄에 기록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제 6 장. 고린도 사람에게 보낸 둘째 편지

1. 내 용

고린도 후서를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1∼7장,8∼9장,10∼13장), 그 세 부분의 전후 문맥이 별로 잘 통하지를 않는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개인적 종말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 저술의 역사적 경위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에베소로 돌아 가게 되었다. 그 후에 디도를 보내어 그를 통해 성공적인 소식을 듣고(마게도냐에서) 바울은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디도를 보내며,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에 열심히 모금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때에 디도는 다른 두 형제를 대동하였다. 이 때에 바울이 고린도 후서를 써서 디도 손에 들려 보낸 것이다.

3. 진정성과 통일성

고린도 후서 전체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이의의 여지가 없다. 6:14∼7:1이 바울의 글이 아니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지만 그 근거를 찾기가 힘들다.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본서의 통일성에 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후서 10∼13장과 1∼9장의 관계가 문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고린도 후서가 원래부터 통일성을 가졌고 그 전부가 바울의 글이라고 보는 것이 제일 온당한 견해라고 보여진다.

4. 저술 장소와 연대

고린도 후서는 A.D.55이나 56년의 늦은 가을에 기록 되었다고 보인다.

제 7 장. 로마 사람에게 보낸 편지

1. 내 용

로마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사업에 대한 소극적 증거와 적극적 증거에 의해서 설명되어 나간다. 먼저 소극적으로는 모든 둁니간이 복음이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적극적인 증거가 나오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애서 은총에 의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칭의를 받는다는 것,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앙의 도리를 계시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조금도 자랑을 할 수 없다는 것, 신앙으로 말미암아 칭의를 받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율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역설을 반박하는 말이 나온다.

2. 로마 교회의 설립

로마에 교회가 존재했다는 증거 중에 가장 낡고 확실한 것은 로마서 자체이며, 그 다음은 행28:15이다. 로마 제국의 수도인 이 로마시까지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어느 특정 사도나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로마에 사는 많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매개로 세계 교역의 통로를 거쳐서 일찌기 전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3. 로마 교회의 성분

로마 교회는 처음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마구 섞인 교회이었을 것이고 클라우디우스 칙령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추방된 다음부터 이방인 신도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4. 저술의 시기, 장소, 경위, 목적

로마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3개월간 머무는 동안 즉 A.D.55년이나 56년 봄에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이 글은 바울이 선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필요성을 느끼는 가운데서 발표한 신학적 자기 고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5. 진정성과 완전성

로마서 1∼15장의 진정성과 통일성에 대해서 별로 큰 문제가 없지만, 로마서의 끝 부분의 원문 비평 문제는 매우 큰 난관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16:23이 원래의 바울의 서신이라고 보는 것이 원문 비평학적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무리가 없는 견해인 것 같다.

제 8 장. 빌립보 사람에게 보낸 편지

1. 내 용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 안에서의 일치와 기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 바울과 빌립보 교회

빌립보는 A.D.48∼49년 소위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 때에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교회를 세운 곳이다. 빌립보 교회와 바울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였다는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피신했을 때와 후에 고린도에 있을 때에 돈을 보내어 도와주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3. 저술의 경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선물과 거기에 담긴 사랑을 감사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에바브로디도 편에 편지를 써 보내게 되었다.

4. 저술 장소와 시기

빌립보서는 A.D.56∼58년에 가이사랴에서 기록되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58∼60년에 로마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에 가까울 것이다.

5. 진정성과 통일성

빌립보서의 통일성 문제는 17세기 이래 여러 가지 양상을 띠고 계속 논의되고 있다. 즉 현재의 빌립보서는 원래 독립된 두 개 내지 세 개의 서신이나 혹은 서신 단편들이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서 결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빌립보서의 통일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제 9 장. 골로새 사람에게 보낸 편지

1. 내 용

만물의 으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2. 골로새 교회의 기원

골로새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와 더불어 골로새 사람 에바브라에 의해서 설립된 것이었다. 주로 이방인 크리스챤으로서 구성된 교회였을 것이다.

3. 저술의 경위

골로새 교회는 그 가운데 나타난 거짓 교사들 때문에 사상적인 위기에 당면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사상적으로 상처를 입고 있는 골로새인들에게 기독교 지식을 확립시키고 더욱 밝혀 줄 필요성을 바울이 느꼈던 것이다.

4. 진정성과 완전성

골로새서를 바울의 저술이라고 보아서 틀림이 없으리라고 보여진다. 특히 마르시온이 이미 그의 바울서신 목록에 이 편지를 넣었고, 유스티누스도 벌써 이 편지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외증과 내증이 모두 본서의 바울 저작권을 지지하는 편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5. 저술 장소와 연대

오늘날까지 골로새서는 로마에서 기록된 것이라고 보는 옛 주장이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직 가이사랴설의 가능성이 전적으로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본서의 저작 연대는 A.D.56∼58년 또는 58∼60년이다.

제 10 장.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1. 내 용

빌레몬의 사랑과 신앙에 대한 바울의 감사가 나오고, 용서를 하고 서로 사랑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2. 저술 경위, 연대, 장소

이 서신은 도망자를 위하여 호소하는 편지다. 빌레몬서는 골로새서와 더불어 두기고에 의해서 전달되었다고 볼 때, 골로새서와 같은 연대의 서신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다. 즉 A.D.56∼58년 또는 58∼60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진정성

빌레몬서는 이미 마르시온의 바울 서신 목록에 들어 있는 서신으로서 바울 저작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진정성을 의심한 것은 바우르를 위시한 경향 비평학파 사람들이었다.

제 11 장. 에베소 사람에게 보낸 편지

1. 내 용

교회의 몸이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결론에서 독자들에게 신적인 무장을 갖추고 악마와 어두움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권면한다.

2. 문학적 문제

이 서신의 외형이 서신의 형식을 가졌고 6:21∼22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가 어떤 특정한 독자를 머리에 넣고 취급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서신은 앞에서 취급한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판이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에베소서는 비서신적인 것이 특색이기 때문에 Sanders는 이 서신을 가리켜 '교회에 대한 바울의 영적 유언'이라고 하였으며 Guthrie는 '기독교의 커다란 주제들에 대한 명상록'이라고 하였으며, H.Rendtorff는'특정 수신인이 없는 바울 서신'이라고 말하였다.

3. 진정성

초대 교회는 에베소서의 진정성을 의심 없이 믿었으며, 마르시온 이래 바울 서신의 일부로서 정경 목록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에베소서의 문체가 바울의 문체와 많이 달라서 다른 사람의 글 같다고 말한 첫 사람은 바로 에라스무스였다. 문학적, 언어적, 신학적 고찰을 통해서 볼 때, 에베소서가 바울의 글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바울의 이름을 빌어서 쓴 글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오직 남은 문제는 이 익명의 글이 목적한 바가 무엇이며 어떠한 역사적 정황에서 기록되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4. 목적, 역사적 위치, 연대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포괄적인 해석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포괄적인 해석을 설명하기 위하여 본 서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포섭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한다. 따라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와의 영원한 관계를 강조하고 독자들이 이 몸에 속한 지체로서 얼마나 가치가 있다는 것과 또 거기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서신의 저자는 바울 이후의 이방 기독교 세계의 구체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쓰는데 특히 골로새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바울의 다른 서신들도 익숙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에베소서가 바울 이후의 저작이라고 한다면 늦어도 A.D.110년 이전(A.D.80∼100)의 저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 12 장. 목회 서신

1. 내 용

디모데 전서는 교회 지도자들의 신앙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디모데 후서에는 하나님의 일군에 대한 권면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디도서에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목회자의 삶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2. 수신인

목회 서신의 수신인은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와 그레데에 있는 디도로 되어 있다. 디모데와 디도는 바울이 선교 활동을 할 때 동역자로 일한 주지(周知)의 인물들이다.

3. 역사적 문제

목회 서신의 역사적, 신학적 문제는 그 편지들이 바울의 글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동시에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초대 교회의 외증이 우리에게 의심을 던져 준다. 그러나 목회 서신들이 정경으로 인정되던 제 2 세기 말로부터 19세기 초까지는 그 서신들의 바울 저작권을 의심한 사람이 없었다. 슈미트가 처음으로 딤전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 이래, Schleiermacher가 그 편지의 언어와 전기적 진술들을 근거로 해서 바울 저작권을 논란하였고, 몇 년 후에 Eichhorn은 목회 서신 전체에서 잡다한 종교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들이 바울의 글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4. 저술 목적, 연대, 장소

내용 면에서 볼 때, 목회 서신 세 편이 다 동질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에는 교회 조직에 관한 지시, 각 계층에 대한 교훈, 거짓 교사들에 대한 논박이 실제 내용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교회의 제도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디모데 후서는 죽음을 앞에 놓은 바울이 자기 제자더러 굳데 서서 이단과 싸우라고 한 권면을 수록하였다. 즉 일종의 문서적 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목회 서신은 소아시아에서 기록된 서신들로 보이며, 이 서신들이 대항하는 이단 사상에는 영지주의의 초보적인 성격이 엿보이기 때문에 그 서신들의 서술 연대를 그렇게 늦게 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가장 적당한 연대는 제 2세기로 접어들 무렵이 아닌가 생각된다.

Ⅱ. 공동 서신

제 1 장. 서 론

바울 서신과 히브리서를 제외한 7서신(약, 벧전·후, 요1·2·3, 유)을 공동 서신이라고 한다. '공동 서신'이라는 말은 최초 동방 교회 반(反) 몬타니우스파에 속하는 아폴로니우스가 몬타니우스파인 테미슨을 공박하기 위하여 197년 요한 1서에 대해서 처음 붙인 칭호다. 이와 같이 요한 1서와 베드로 전서는 오래 전부터 인정을 받았으나 그 밖의 서신은 의심을 받게 되어 4,5세기를 거쳐 6세기에 이르러서 완전히 경전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제 2 장. 야고보의 편지

1. 내 용

야고보서는 개인의 인사말로 시작한 서신이지만, 내용 전체를 보아 반드시 '편지'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식의 교화가 뒤섞여 있으며 서신 끝에 인사말이 없기 때문이다. 본 서의 내용은 서두의 인사가 끝나자 곧 그리스도인의 생활 훈화가 계속되며, 끝으로 미혹된 형제를 구하라는 말로 서신을 마감하였다.

2. 서신의 성립 과정

이 서신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의 진위성을 문제삼았다.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은 저자의 대칭설을 부정하고 유대교적 지혜 문학에 헬라적 교화 문학을 가미한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3. 문학적 성격

야고보서는 처음부터 편지 형식을 갖춘 서신이다. 야고보서의 문학 형식을 한 마디로 평한다면 금언과 논설로 꾸며진 권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4. 저자와 연대

저자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하였다.서신 서두에 밝힌 이름과 서신 전체에 흐르는 복음서 전승을 감찰하여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이 서신의 저자라고 단정할 수 있다. 서신의 출처는 수리아 지방이나 로마로 생각되어진다. 서신의 편집 연대도 이 서신에 이단 영지주의 색채가 없는 것을 보아 제 1세기 말엽이라고 생각한다.

4. 신학적 논쟁

바울과 야고보의 의인사상의 대결이 루터이후에 신학적인 문제로 현실화 되었다. 야고보서는 신앙의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신앙의 실제화는 사회 각계 각층에서 평신도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평신도의 복음 또는 사회적 복음이라고도 한다.

제 3 장. 베드로의 첫째 편지

1. 내 용

내용 전체가 하나의 권고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내용 구조를 분석하기가 좀 곤란하다. 서두 인사말에 뒤이어 곧 하나님께 대한 감사 찬양이 나오고, 권면의 말씀이 계속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어조로 교회를 향하여 불 같은 시험과 고난에 대처하는 신앙인의 태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며, 박해 가운데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 격려하고 끝으로 일반적인 경고와 마지막 인사로 서신을 완전히 끝낸다.

2. 수신자

서두 인사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고 하였다. 이 서신에서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지적한 것이다. 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본향을 두고 임시 이 지상에 체류하는 신앙의 순례자로 저자는 보았다.

3. 문학적 성격

한 마디로 이 서신의 성격을 말한다면 '격려와 권고'라고 하겠다. 베드로 전서의 문학적 성격은 전통적인 권고와 예전적인 사료들을 종합해서 만든 하나의 교화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4. 저 자

서두의 인사말에 저자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하였으며, 뒤에는 '같은 장로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의 저작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부정적이다. 결국 베드로 전서는 무명 인사의 저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5. 편집 연대와 장소

5:13의 '바벨론'이 정말 '로마'의 대칭이라면 베드로 전서는 로마에서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서신 전체 성격으로 보아 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당하는 광범위한 박해는 아무래도 도미시안 시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서신의 편집 연대를 96∼100년으로 잡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제 4 장. 베드로의 둘째 편지

1. 내 용

이 서신은 개인의 편지라기 보다는 공식 포고문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이 서신의 중심적인 내용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이단을 배격하는 데 있다.

2. 저자 문제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첫째, 베드로 후서는 가명문서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유훈'에 사도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베드로의 이름을 서두에 붙였을 것이다. 둘째, 결국 이 서신은 상당히 오랫동안 경전화에 문제가 있었다.

3. 성립 연대와 장소

이 서신의 성립 연대를 정확하게 따지기 매우 곤란하다. 이 서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유다서의 성립 연대와 비교해 볼 때 이 서신에 나타난 영지주의 사상은 제 2 세기 중엽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 또한 베드로 전서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로마로 그 저작 장소를 보는 사람이 많이 있다.

제 5 장. 유다의 편지

1. 내 용

유다서에는 이단사상에 대한 경고와 권면의 글을 담고 있다.

2. 문학적 성격

이 서신은 자유 방종주의자들과 노스틱주의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배격하는 이단 공격문서다. 문학적 성격은 전적으로 서신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서신이 본래 유대인을 위한 것인지 이방인을 위한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3. 저자와 편집 연대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동생 유다가 서신의 저자가 된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할 근거가 없다. 저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유대 묵시문학을 잘 알고 있다. 유다서는 초대 그리스도교 말기에 기록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연대는 따져 말할 수 없다. 야고보서가 제 1세기말엽에 나온 서신이기 때문에 유다서는 그보다 더 뒤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제 6 장. 요한의 첫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