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2149 유철종
신약성서 27권 중에는 서신이라는 형식을 가진 책이 21권이나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실제로 편지는 아니다.서신들의 구조는 대개 다음과 같다. 맨 처음에 인사가 나오는데 거기에 발신인과 수신인의 이름이 나타난다. 다음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따른다. 그리고 맨 끝에는 발신인의 친필로써 인사와 문안의 말을 쓴다. 이러한 구조는 그 당시 헬라 사회의 서신들이 일반적으로 헬라 서신들이 가졌던 구조를 닮은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의 인사 형식은 오히려 동양적인 유대 형식에 더 가깝다고 보인다. 초대교호가 이렇게 서신이라는 뚜렷한 형식을 가지고 교류하게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서신은 일반 논설이나 수필보다 호소력이 있고, 면대해서 말하는 것 다음으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사정이 있어서 친히 가서 면대하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 편지를 통하여 다정하게 말하는 것은 차선의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마다 문제가 있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서,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르치고, 지시하고, 권면하고, 타이르고, 그릇된 사상을 막아내고,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등 여러 가지의 필요에 의해서 서신을 써 보내게 된 것이다. 신약성서 중에 바울을 그 저자라고 밝히고 있는 서신이 열 셋이나 된다. 오늘까지의 학계의 견해들을 종합해 보면 네 개의 주요 서신을 비롯하여 데살로니가 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는 틀림없는 바울의 글이며, 목회서신은 확실히 바울의 것이 아니며 나머지 세 서신, 즉 데살로니가 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는 그 진정성이 아직 노란되고 있는 상태이다. 바울의 서신은 직접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서기에게 받아쓰게 하였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고는 맨 끝 인사를 자필로 써서 바울 자신의 편지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바울의 연대를 정확하게 아라 수는 없으나 바울의 고린도 체재 연대를 49-51년으로 잡을 때 다른 연대들도 대략 다음과 같이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의 개종 31/32, 첫 번 예루살렘 방문 34/35, 시리아와 길리기아 체재 34/35-48, 예루살렘 회의 48, 소아시아와 헬라 첫 번 여행 48-51/52, 두 번째 여행 51/52-55/56, 예루살렘 도착 55/56 바울이 얼마 동안이나 가이사랴에 체재했는지를 알 길이 없으므로 그 이후의 연대는 확정지을 수가 없다.
데살로니가 사람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내용은 1-3장은 감사와 회고 회상 그리고 기도, 4-5장은 경고와 지시로 되어 있다. 이 교회는 바울이 제2차전도여생 때에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대동하고 빌리보로부터 데살로니가 성으로 내려가 거기에 교회를 세웠었다.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때 디모데와 실루아노가 같이 있었고, 또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 바울을 만났다는 사실로 보아 바울이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다고 보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뢰트게르트등은 이 견해를 바대하여,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당시 에베소에 머물면서 잠시 고린도에 다니러 갔을 때에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이 편지를 쓰게된 경위는 그리스도 재림의 시일 문제와 파루시아를 목격하지 못하고 미리 죽은 신자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 이다. 이 서신의 진정성을 바우르와 그의 학파 일부가 부인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너무나 빈약하다.
데살로니가 사람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내용은 인사와 감사, 권면 그리고 축복이 나온다.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의 순서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전서 2장 17-3장 10절이 데살로니가 전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데살로니가 후서보다 전서가 먼저 된 서신이라는 증거가 된다. 말세사상에 몰두하던 그 교회 신도 일부는 바울의 첫 번째 서신을 받고 나서도 그 열이 떨어지기보다 도리어 더욱 더 가열되었다. 이러한 급박한 형편을알게 된 바울은 그 오해를 시정해 주기 위해서 다시 서신을 써 보내 광신적인 신도들을 권징하는 방도를 지적해 주었다. 그리고 바울의 이름을 사칭한 거짓 서신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손수 서명을 해 보내었다. 후서의 언어와 문체에 있어서도 몇몇 낱말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바울적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편지의 내용은 인사와 자기 변호, 책망,복음의 진리 옹호,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권면과 구제 명령 그리고 거짓교사에 대한 경계가 나오고 축복이 있을 뿐 개인적 인사는쓰지 않았다. 갈라디아 사람이라고 하면 18세기까지는 주전 3세기 전반에 소아시아 중앙 지대에 정착하였던 켈트 족속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1장 2절에 의하면 수신 교회가 복수로 나온다. 여기서 남갈라디아서설과 북갈라디아설이 나온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제2,3차 여행 때 방문한 바있는 소 아시아 내륙 지방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많은 학자들은 갈라디아서의 용어와 언어가 로마서의 그것들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 후서와의 사이에도 자기 변호의 면에서 유사점을 발견한다. 이러한 것은 갈라디아서의 저술 연대가 고린도 후서와 로마서의 연대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본서는 바울의 제3차 여행시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한 후에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린도 사람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내용은 인사, 인간적 영예 공격, 고린도교회의 문제를취급, 지시와 권면 그리고 부탁돠 인사와 축도로 끝을 맺는다. B.C 29년 이래 고니도는 아가야의 수도였다. 무역항으로 세계적인 도시를 이루고 있었고 종교적 혼합주의가 성행하였다. 이 교회는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때, 그러니까 A.D49년경에, 마게도냐로부터 아덴에 왔던 바울이 고린도에 나타나 복음을 전하였다. 본서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고린도 교회가 바울 사도에게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낸 데 있다. 바울은 그뿐 아니라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었다.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 그리고 교회안에 싸움이 있고 분파가 생겼다는 소식은 바울에게 충격을 주었다. 고린도 전서는 전체적으로 기독교 메시지에 대한 새로은 노스틱적 해석을 배격하고 있다. 고린도교회가 노스틱 사상의 영향으로 일반적으로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한 노스틱적 경향을 막고, 바른 교훈 즉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기록한 것이다.고린도 전서의 진정성에 대한 이의가 없다. 그러나 완전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결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A.D 54sus 혹은 55년 봄에 기록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고린도 사람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서론이 나오고 감사 그리고 자신 변호 그리고 헌금문제, 자기 변호로 구분된다. 고린도 후서가 고린도 전서 이후에 기록된 것만은 사실이다. 고린도 후서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사이에 있던 심각한 알륵을 완전히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씌여진 것이라고 본다 고린도 전서를 받은 이후에, 고린도 교회에서는 바울을 반대하는 논쟁이 심해진 것같이 보인다. 전서를 쓰고 후서를 쓰기 전에 큰 괴로움과 걱정에 눌리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쓴 일이 있었다. 고린도 후서 전체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이의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6장 14절 -7장 1절이 바울의 글이 아니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A.D54년이나 55년의 늦은 가을에 고린도 전서를 썼다고 본다.
로마 사람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서두에 복음이 내용 설정, 동기, 감사, 뒤이서 본서의 주제인 구원문제가 나오고 9-11장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말한다. 12-16장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권면하고 있다. 로마교회가 언제 설립되었든간에 베드로가 그 교회의 창립자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하여간 바울이 로마서를 쓰기 전에 이미 로마에는 얼마간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존재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