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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비평 실습문제 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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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석의방법론 Report |
1. 다음 세 이야기는 왜 아포프테그마로 불러야 하는가?
그들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마2:15-17, 마11:2-19, 막10:13-16
아포프로테그마(경구)는 예수님의 경종의 말씀을 가르킨다. 이것은 초대교회에서 설교의 예화로 사용했던 양식이다. 아포프로테그마의 형식은 배경 이야기와 예수님의 말씀이 결합된 형식이며 이야기에 붙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핵심이 된다.
☞ 막2:15-17 : 이야기 (15절-16절)
예수님의 말씀 (17절)
☞ 마11:2-19 : 이야기 (2절-3절)
예수님의 말씀 (4절-19절)
☞ 막10:13-16 : 이야기 (13절)
예수님의 말씀 (14절-15절)
이야기 (16절)
주어진 3개의 본문은 아포프로텍그마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아포프로테그마로 불러 야한다. 또한 차이점은 내용에서 차이점이 나타난다. 막2:15-17절의 내용은 논쟁설화이고 마11:2-19절의 내용은 전기적 잠언이며 막10:13-16절의 내용은 교훈설화이다.
형식의 차이점으로는 막2:15-17절은 아포프로테그마의 기본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11:2-19절은 예수님의 말씀이 긴 설교의 형식을 취하고있으며, 두 개의 예수님의 말씀 즉,(4절-16절)과 (7절-19절)예수님의 말씀을 붙이기 하였다.
막10:13-16절은 이야기가(13절과 16절) 본문의 전후에 나타나고 있다.
2. 치유이적의 internal structure는 무엇인가?
막1:29-31을 막5:1-20 비교하라
막1:29-31은 당대 그리스도인들의 치유 이적사화와 그 서술양식이 같다. 그리이스인들은 치유이적을 이야기할 때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목격자들의 반응순으로 엮었다. 이 본문에는 이 요소들 가운데 단지 목격자들의 반응만 빠져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당대의 서술양식을 빌어 예수의 구마이적과 치유이적을 이야기했다. 따라서 서술 양식에 불필요한 소재는 되도록 삭제하고 필요한 요소만 골라서 구마 및 치유 이적사화를 꾸몄던 것이다. 이러한 이적사화는 대외적으로 전도할 때, 대내적으로 설교할 때나 교리를 가르칠 때에 많이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실제로 구마이적을 통해 정신적 병을 고쳐 주신 것처럼 치유이적을 통해 육체적 병을 고쳐 주셨다.
막5:1-20은 처음 구마사화와 비슷한 양식을 지녔다. 그런데 전승과정과 편집과정을 거치면서 전승자와 편집자가 여러 차례 손질을 했기 때문에 그 양식이 많이 파손되었다. 12-13은 전승과정에서 덧붙여진 것이고, 18-20은 마가복음의 편집자가 틀에 맞추기 위해 편집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된 것은 예수님은 주로 이스라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활동하셨지 이방인에게 혜택을 베푸신 적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신도들 가운데서 이방인 선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선교 정당화에 근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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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인 |
막1:29-31 |
상 황 묘 사 |
29 예수께서 친히 병든자 찾아서 만나다(행동주체-예수자신) 30상 병든 자의 상황이 언급 30하 병의 치유를 요청하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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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적 적 치 유 |
31상 병을 치유하시는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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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유 실 증 |
31중 병치유의 결과 31하 병고침 받은 자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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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5:1-20 |
구마자 부마자 상봉 |
1-2 예수와 거라사인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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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자와 방어사 |
3-5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병의 심각성 6-7 귀신들의 일방적인 고백과 자기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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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자의 추방령 |
8 예수의 축사명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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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신 추 방 |
13 축사명령에 따른 귀신들의 복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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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의 반응 |
14-17 목격자들의 놀람과 반응 18-20 거라사인의 간증 |
3. 다음 말씀들 (saying)의 형태를 결정하고 그 말씀들이 나오게 된 삶의 정황을 말해보라.
눅6:20-21, 눅6:22-23, 마7:6, 막9:1
① 누가복음 6:20-23 ( cf 마5:3-12 )
v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v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v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이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v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마태복음과 비교해 누가의 것이 더 옛것으로 보인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1) 메시야의 구원을 갈망하는 경건한 자들에 대한 일반적 축복 ; 눅6:20f (마5:3-9)
- 불트만은 누가의 것을 원래의 것으로 보고 다만 마태의 삼인칭에 대해 누가의 이인칭 표현만은 누가의 개작으로 본다. 당시 축복은 대개 삼인칭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누가가 이인칭으로 전해진 22f 와 균형을 찾으려 한 것이다.
2) 인자를 인하여 핍박받는 자에 대한 축복 ; 눅6:22f (마5:10-12)
- 마5:10은 3-9 까지의 축복의 수를 완전수 7로 만들려는 마태의 작품이다. 눅6:22f(마5:11f)은 비교적 오랜된 것인 눅6:20f(마5:3-9) 과 형식상(2인칭 표현이나 자세한 이유 설명)으로나 내용상으로나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전승으로 보이며 後事(ex eventu)의 교회의 작품이다. (이상 공관복음 전승사 p134-135)
② 마7:6 (로기온 - 경고의 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노라.
- 주의 말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지혜 격언을 뜻하는 로기온, 예언적 혹은 묵시적 말, 울법의 말과 교회 규율이다. 그 중에서 마7:6의 말씀은 로기온 형태에 해당되는 전승이다. 로기온에는 특별히 그 말을 하게된 동기에 맞게 저자가 로기온의 형태를 규정하게 된다. 불트만은 로기온의 형태를 규정하는 형태를 다시 기본명제(서술형), 경고의 말(명령형), 질문 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마7:6은 로기온 중에서 경고의 말로 명령형으로 되어있는 형태이다. (위의 책 p 81-90)
- 로기온의 순수성에 대해서는 많은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1) 예수가 민속적 속담을 받아들여 때에 따라 만들거나 변형시켰을 가능성
2) 초대 교회가 교회 전승에 맞게 만들어 냈을 가능성
- 어떤 가능성 이든지 간에 로기온의 내용이 개성적일수록 회개와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가인 예수와 관계가 깊다.
- 많은 로기온들이 민속적 지혜문학에서 생겨났고 교회에 의해 처음으로 기독교 전승에 받아 들여 졌으며 예수의 말로 만들어졌다. 원래 이 격언들을 애초부터 주의 말로 만들 의도는 없었고 생활 계율로서 가치 있는 잠언으로서 받아 들였을 가능성이 많다. (불트만은 Q자료 또한 후기 유대교의 격언 자료와 생활 수칙을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③ 마가복음9:1 (예언적 묵시적 말)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 "여기 섰는 사람 중에 " 이하는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에 의해 앞의 말에 연결된 독립된 구절이다. 이것은 주의 도래가 지연되자 교회가 만들어낸 위로의 말인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몇 사람은 죽기 전에 주의 도래를 본다는 것이다.
- 교회는 전승으로 내려오는 예수의 말과 다소 신학화된 기독교적 예언의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전승된 예수의 말도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부활한 자, 교회에 현재하는 자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위의 책 p158 )
4. 눅 12:43-46, 마 13:31-32, 막 4:3-8, 막 4:14-20, 눅 18:9-14, 눅 16:19-31은 모두 "비유들"로 구분할 수 있는 구절들이다.
* 어느 것이 "비유"의 form에 가장 가까운가?
* 어느 것에서 비유로부터 알레고리로 전환된 현상을 볼 수 있는가?
* 어느 것이 story에 가까운가? 왜?
① 어느 것이 "비유"의 form에 가장 가까운가?
Jeremias에 의하면 예수의 비유는 그 당시의 비유들과 마찬가지로 두가지 기본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주격으로 시작되는 비유로 어떤 서두 형식도 없는 순수한 설화의 형식이다. 막4:3-8이 전형적인 첫 번째 형식의 비유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막 4:14-20의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덧붙여있다.
비유의 두 번째 형식은 여격으로 시작하는 비유이다. 즉, "나는 네게 비유를 하나 말하려고 한다. 무엇으로 이 일을 비교할까? 그것은 ...에서와 같은 그런 상황이다."의 형식이다. 이것의 단축형은 "...와 같다."이다. 마13:31-32은 전형적인 이 형식의 비유이다. 어떤 해석이나 부연도 없는 마13:31-32이 가장 비유의 형태에 가깝다.
② 어느 것에서 비유로부터 알레고리로 전환된 현상을 볼 수 있는가?
막4:14-20은 4:3-8의 씨뿌리는 자 비유의 해석이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산물로 교회의 상황에 관련시켜 비유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산물이라는 증거는 '말씀(՜ ՋՏՃՏՒ)'이라는 단어는 복음이란 말 대신 초대교회에 의해 자주 사용된 전문어이다. ՜ ՋՏՃՏՒ가 예수의 말로 되어있는 것은 씨뿌리는 자 비유의 해석에만 있고(마가에서 8회, 마태에서 5회, 누가에서 3회) 다른 데는 전혀 없다. 예수의 다른 설교에는 없는 반면 사도시대에는 흔했던 "말씀"에 대한 일련의 진술이 이 짧은 단편에 나타난다는 사실이 이에 일치한다. 또한 막4:14-20에는 이곳 외에 공관서에서는 볼 수 없으나 다른 신약 문헌 특히 바울에서 흔한 말들이 많이 나온다. 선호한다는 의미로 전용된 "뿌리다"(ՓՐՅԿՑՅՉՍ); 내적인 확고함의 의미로 전용된 "뿌리"(ՑԿՎՁ); "즉시"(ՐՑ՜ՓՊՁՉՑՏՒ); "쾌락","유혹"(ԼՐՁՔՇ); "재산"(ՐՋՏ՛ՔՏՒ); "결실이 없는"(ՊՁՑՐՏՖՏՑՅ՚Ս); "받다"(ՐՁՑՁՄՅՅՓՈՁՉ); "결실하다"(ՊՁՑՐՏՖՏՑՅ՚Ս)의 전의적 응용이 초대교회의 해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씨뿌림을 선포로 해석한 것은 예수의 어법에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선포를 추수에 비교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병행구인 마13:3-8, 눅8:5-8와 도마9에서 원래 의미를 추론해볼 때, 이 해석은 종말론적인 핵심이 결여되어 있다. 그 역점이 종말론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과 생활률적인 것으로 옮겨지면서, 이 비유는 개종자들에게 박해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설 것과 세상에 물들지 말 것을 경고하는 권고로 변했다.
③ 어느 것이 story에 가까운가? 왜?
눅16:19-31이 이야기에 가깝다. 이야기체 비유는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건의 형식으로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서론, 본론, 결론의 이야기 형식을 갖고 있다. 이 비유의 전반부는 저승에서의 운명의 뒤바뀜을 주제로 한, 잘 알려진 설화자료를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다.
시-오시리스와 그의 아버지 세톤 카엠붸제가 죽음의 나라로 여행한 것을 다룬 에집트 동화인데, 다음 말로 끝을 맺는다. "지상에서 선한 자는 죽음의 나라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지상에서 악한 자는 역시 그곳에서 나쁜 대우를 받는다.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이 이 이야기를 팔레스타인에 전했고 이곳에서 이 이야기는 가난한 서기관과 부유한 세리 바르마얀의 이야기로서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