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과 비평(서평)
192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 가운데 자리잡은 비평주의는 성경에 대하여 역사적인 연구에 있어서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객관적으로 파헤쳐 비판해 온 비평주의자들이 복음주의자들과는 적대적 관계로 여겨져 왔으나, 여기서 우리는 가능한 한 비평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평적 역사적 상황을 재구성해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1.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 ?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서 성경은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들에게 초자연적 영감을 불어 넣어서 그들이 기록했다고 알고 있다. 또한 1세기 말에 쓰여진 유대인의 제 2 에스드라서에서 에즈라가 속기 훈련된 율법학자, 서기관을 불러서 40일간 사람들과 접촉을 금하게 했다. 그 다음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인해 에즈라 자신이 입이 열리게 되어서 그 속기 훈련된 율법학자와 서기관들이 이를 받아 적었다라는 초자연적인 영감설도 있다. 그러나 비평학자들의 관점은 이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오직 인간의 말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고대의 문헌이며 따라서 다른 고대 문헌과 똑같은 방법으로 연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아브라함 이전의 주요 인물들인 아담, 이브, 에녹, 므두셀라, 노아 등등의 존재는 성경 밖의 자료로써 증명할 수가 없다. 단지 아브라함 자신이나 그 족장들은 단지 창세기 기록에 있는 고대 자료를 통해서 알려진 사실들이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과 그 역사의 발생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애굽에서 팔레스틴으로 이끌어 내고,후에 다윗, 솔로몬과 같은 왕들에 의해 지배되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두 나라로 갈라지고,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 멸망,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정복 등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구약이 이렇게 이스라엘의 전통, 역사의 기록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일까 ?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팔레스틴으로 인도하게 하심은 그 목적이 단지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고자 한 것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렇게 역사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수단인 것이다. 즉 하나님은 구원을 행하고 이스라엘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그 행위자라고 생각하게 내버려 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그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그 사건과 더불어 그는 그것을 신성한 말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말해 주고 동시에 이러한 행위를 풀이해 주는 하나님의 예언적인 말씀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객관적으로는 역사를 기록한 책에 지나지 않으나, 그 속에는 하나님의 행위가 들어가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것이다.
2. 비평이란 무엇인가 ?
"비평"이란 성경을 다루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인간의 말을 통하여 인간에게 전하여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역사적, 문자적, 원본적, 철학적 제 문제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증거에 비추어 명석한 판단을 함을 의미한다.
현대의 성경 비평이 역사적인 배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신앙적 학문의 소산이 아니라, 성경이 초자연적으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을 배격하는 학문의 소산이다. 그 결과 특히 미국이나 독일에서 "역사적-비평적 방법"이라는 것도 생기게 되었다. 그들은 단어의 정의 그대로 성경은 전적으로 인간의 말이라는 것, 즉 다시 말해서 순전히 인간적이고 역사적 소산이라고 보는 신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성경의 세계와 성경 그 자체의 역사적 성질을 이해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비평가들은 성경과 그 역사적 배경 사이에 있었던 상호 접촉의 구체적인 점들을 많이 발견해 내었다. 이러한 연구 조사로 말미암아 신약을 밝혀 주는 자료가 무진장 많이 모아지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성경 비평은 복음주의적 신앙의 적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에 필요한 방법인 것이다.
3. 원본비평
옛날에는 파피루스 풀잎으로 성경을 만들고, 나중에는 양피지나 송아지피지라고 불리는 가죽 형태 등으로 계속적으로 발전해왔다. 또한 인쇄술이 발명됨에 따라 지금까지 양피지나 두루마기로 보존되어 오던 것들을 새롭게 번역하여 다시 기록해서 보존했다. 여러 곳곳에서 발견되는 성경 원문들을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 속에서, 즉 한 복사본에서 또 다른 복사본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 텍스트에 스며드는 여러 가지 종류의 오류가 포함되어 지게 되었다.
믿을 만한 택스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리는 사본들은 텍스트의 계보나 그룹별로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사본을 계별로 나누는 것은 각기 다른 수많은 말 중에서 한 그룹의 사본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에 기초를 두게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텍스트의 의미에 있어서는 아주 사소한 정도의 차이라도 사본의 제보를 만드는 데에는 중요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원본 비평은 학자가 심판의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비평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그 텍스트가 어떤 것인가 알아내기 위하여 비평적이며 과학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것 뿐이다.
4. 언어학적 비평
신약 문구의 이중 배경은 적절한 언어학적 비평에 의해 수행되어야만 한다. 신약 언어들의 가리워진 의미는 그것들의 세속적 그리이스 배경과 70인역의 종교적인 용법과 신약에 나타난 그것들의 계시적 의미에 비추어 살펴 보아야 한다.
언어학적 비평에서는 각 시대가 그 당대의 살아 있는 말로써 그 시대에 맞는 그 나름의 성경 번역을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문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종종 모호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고어는 20세기에 와서 그 의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도를 장소를 "closet"(골방)에서 기도를 해아 한다고 하고, 눈에 어떻게 "mote"(들보)가 들어갈 수 있을까 ? 이러한 것들은 그 언어의 의미가 바뀌었기 때문에 오래된 번역본을 사실상 의미없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어의 언어학적 비평적 연구는 수없이 많은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 빛을 던져 주었다.
5. 문학비평
문학 비평이란 어느 저서이건 그 책의 저자, 연대, 쓰인 장소, 수납자 문제, 근원 자료, 그것의 목적 등등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성경이 주어진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 매개체로 사용하였다면 우리는 이러한 비평적 질문을 추구하여 역사적 상황을 재구성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 특수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그 메세지를 적절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공관복음서들에 대한 문제 즉, 어느 복음서가 최초의 복음서이며, 최초의 복음서를 참고하여 다음의 복음서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논란이 많다. 마태, 마가, 누가 각 복음서들에서 기록되어진 사건에 대한 순서가 맞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각 저자들이 관점들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즉 사건의 순서는 그 사건들이 일어난 순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써나가는 데에 있어 복음서의 저자들의 목적과 관심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공관복음서에서의 각 사건들을 분석해 보면 한 복음서에는 있으면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발견되지 아니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Q라고 하는 가정적인 문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나와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Q를 참고해서 각 복음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6. 양식비평
복음서가 최초로 기록되기 이전에 구전 형식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러다 문자가 생기면서 그 복음을 문자화하는 과정 속에서 그 순수한 역사적인 이야기가, 초자연적으로 채색된 이야기로 변형되었다. 양식 비평은 문자화된 복음서에 기초를 두고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열처녀의 비유에서 그것은 이 세계의 종말이 올 때 참된 기독교인과 거짓 기독교인 갈라낼 심판을 비유의 형태로 예언하는 교회에 대한 우화이다. 원래,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만일 그의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곧 재앙이 임박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비유였으나, 교회에서는 곧 임박한 세계의 종말과 인자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원래의 비유를 우화로 변형시켰다.
복음서에 기록된 구원의 사건들은 그 사건들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의미에서는 객관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성질상, 그것이 비록 역사 안에서 발생하긴 하였으나 단순히 인간적인 "역사적" 사건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은 평범한 인간적 관찰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신앙의 응답에 의해서만이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신앙만이 예수의 선교와 그 인물의 참된 구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울의 체험이 이것을 설명해준다. 그가 개종하기 전에 바울은 육체대로 인간적인 불신앙에 기준하여 그리스도를 해석하였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야라고 외치는 유대의 한 예언자로 해석되었고 그의 주장은 물론 허위라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 구약을 이해하는 바로는 메시야의 근본적인 역할은 하나님의 모든 적을 누르고 통치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울에게는 예수가 이교도의 손에 십자가의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은 예수가 자기 자신이 그렇다고 주장한 대로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신앙에 들어섰을 때, 즉 영에 따라 그리스도를 해석하였을 때, 그는 그 분이 정말 누구인가를 보았다. 메시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7. 역사적 비평
어떠한 단어나 개념이나 기록이건간에 그 나름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풀이되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비평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역사적 방법이란 개개의 사건들이 인과 게열로 이어져 있는, 폐쇄되어 있는 결과들의 연속이라는 의미에서, 역사란 통일체라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결정과 모든 행동은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갖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 방법은 그것들의 연결 관계를 밝혀 내어서, 폐쇄된 통일체로서의 전체적인 역사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폐쇄성의 의미는 역사적 사건의 연속이 초자연적인, 초월적인 힘에 의하여 간섭 받을 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기적도 없다는 뜻이다.
역사적 비평이 다루는 중요한 문제는 "역사적 예수"라는 문제이다. 그 말은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하였을 법한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역사적이며 순수히 인간적인 범주 안에서 설명되고 이해될 수 있는 예수의 재구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속에서 예수상은 신화적인, 즉 역사를 신격화하는 초자연적인 요소로써 그러한 요소를 통하여 투영되었다. 이런 역사적 설명으로 유추되어질 수 없는 것들을 기독교 신앙이 단언한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 가운데서, 역사적 설명이나 원인이 없는, 중개가 없는 하나님의 직접적 행위인 사건이 역사 안에서 즉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즉 오직 신앙, 믿음만이 역사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8. 비교 종교적 비평
종교사적 방법은 성경 연구에 자연주의적 역사주의를 철저히 적용시키자는 것이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 있는 성서의 종교가 다른 고대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생성과 진화의 과정을 거쳤으며, 이러한 진화 과정에서 그 종교적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굉장히 많이 영향을 받았다고 간주한다. 이 방법은 성경의 종교에다 방정식의 원리를 철저히 적용시키려는 것이다. 역사와 성경 종교의 발달은 역사와 다른 고대 종교의 발달과 같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계시라든가 성경의 진실 따위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들은 단순히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옹호하는데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복음주의적 신앙은 계시 과정의 역사적 측면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비평적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적절한 성경 비평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평하는 것을 뜻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을 뜻하며 또 어떻게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졌는가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우리들이 요즘 만연하는 비평적 학문과 견해들을 그저 반박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에 앞서 우리는 성경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열심히 연구해서 그 나름대로의 창조적인 비평적 결론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어려웠고, 전문 용어들이 많이 사용되어져서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막연하게 읽어 왔던 성경 본문에 대해 새로운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된다면 다시 한번 읽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