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자료원: 합동신학교 서배현제공

1. 하나님의 나라(창 1:1 - 2:3)

천지창조의 기록은 창 1:1-2:3까지 창조된 순서에 따라 기록되어 있고

창 2:4부터는 인간과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래서 창세기 1장과 2장은 천지창조에 대한 기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러나 본문 창 1:1-2:3을 단지 천지창조에 대한 기사라고만 생각하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만

물의 근원을 밝혀주기 위해서만 기록된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단지 천지창조에 대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만 기록된 것이 아니고 또 다

른 목적이 있어서 기록되어진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란 하나님께

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세우신 목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과 안목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며 그 목적에 따라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이 설립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문의 제목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잡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인간들이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

이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목적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유에서 하늘(heaven)을 하나님의 보

좌인 동시에 천사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땅은 모든 피조물이 거처할 곳으

로 각각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명

백하게 나타나는 곳이며, 땅은 하늘의 축복에 의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이 하나님 나라는 - 좀 더 어려운 사실이지만 - 영원전부터 함께 하

신 성자와 성령님 세 분이서 같이 역사하셨습니다.

아직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1:3)고 하시자 곧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

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은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리

고 첫째날이 지났습니다. 둘째날이 밝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사

역을 늦추지 않고 벌써부터 놀라운 계획을 세우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

서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아름다운 일은 세째날에도 계속되었습니

다. 궁창 아래의 물을 모아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이

르시기를 각종 풀과 과목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었습니다. 무

수히 많은 꽃들이 텅빈 땅 위에 수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나무가 생

겨나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지켜주고 낮과 밤을 주관하기 위해 하나님

께서 네째날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태양은 마치 하나님

의 보좌와 같이 빛이 나기 때문에 아무도 육안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반면에 달은 하나님의 포근한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밤 하늘을

수놓는 수 많은 별들을 볼 때 우리는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이 번갈아 교차하되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여 베푸신 사랑과 계획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임을 증표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낮과 밤이 계속되며

삼라만상의 운행이 계속되는 한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목적과, 우리

인류를 이 땅에 두신 목적과, 그리고 우리 인류를 위해 계획하신 모든 섭

리와 계획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달

과 별을 그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섯째날이 되었습니다.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각종 물고기가 냇물에서, 호수에서, 강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움직이

기 시작했습니다. 그것 뿐이 아닙니다. 수 많은 각종 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

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고요하던 이 땅에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

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정교하여서 이 세상의 어떤

글과 책으로도 다 그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여섯째날 하나님께

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기는 것과 땅의 짐승

을 종류대로 내라"(1:24). 그러자 곧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 볼 수가 없었던 수 많은 동물들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움직이고 있습니

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처럼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그

리고 친히 이 나라를 가꾸시고, 지키시고,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하나

님께서 이 일을 위해 대리자를 세우시기로 하셨습니다. 곧 사람을 그 나

라를 다스리는 대리자로 삼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앞서 이야기했던 성부, 성자, 성령님을 말함)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1:26).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

니다.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 나라의 최고 책임자로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1:28-29). 이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를

축복하시고 사람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나라를 다

스리도록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여섯째날까지 모두 완성되

었습니다. 다시는 손을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답고 생기가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일곱째날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특별히 다른

날과 구별하여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이란

[구별한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도 이 날은 안

식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놀라운 역사를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에

게 베푸신 사랑과 은총을 되새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만

은 다른 날과 구별하여(거룩히 여겨)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쉼

의 날 즉, 안식의 날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느

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인간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나

라를 가꾸며 다스려야 합니다. 이 우주의 청지기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

에 우리가 할 일은 참으로 막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2. 창조언약(창 2:4-25)

우리는 흔히 창 2:16-17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

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는 구

절을 가리켜 행위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안먹고에 따라

죽고 살고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선악과에 대한 행위가 중시된다는

점에서 행위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에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을 얻는 언약을 가리켜서 은혜언약

이라고 합니다. 이 은혜언약은 누구에게나 값없이 구원이 주어지기 때문에

행위언약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데 행위언약이라고 하면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위언약은 마치 그 행위가 중시되어

구원을 얻고 못얻고가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

면 행위언약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어

진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행위언약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은혜언약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제목을 창조언약이

라고 불러 보았습니다.

언약(covenant)이란 두 당사자가 서로 요구사항과 의무사항을 내걸고

맺는 계약입니다. 그런데 서로 계약을 체결할 경우 어느 한 쪽이 위반하

면 그 댓가로 의무사항을 치루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그 증표로서 동물을

두 쪽으로 가르고 그 사이로 두 당사자가 지나감으로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위약할 경우 동물이 피를 흘리고 죽은(쪼개진) 것처럼 위

약자도 역시 그와같은 처벌을 감수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약을 히브리어로 베리트( 라고 하는데 이것의 어원은 "쪼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계약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푼 은혜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약정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어디까

지나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맺은 피의 약정이기 때문에 계약이라고 하지

않고 언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 그리고 사랑에

근거하여 인간(인류)에게 의무만 지워준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주신 약속

을 이루어야 할 의무 즉, 약속을 이루어 줄 책임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그래서 언약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언약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인

류에게 의무만 지워주어 인류은 그 요구에 따라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

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약속을 주시어 스스로 그

약속을 이루어 줄 책임을 지심으로서 인간을 하나님과 동등한 차원에서 하

나님과 동등한 언약의 상대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계약과 언약의 차이

입니다.

창조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최초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창세기 1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언약이라고 한다면 창

1:1부터 2장까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

에 약정된 것입니다. 물론 아담은 전 인류의 대표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

다. 그래서 창조언약은 지금도 우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조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약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⑴ 안

식, ⑵ 결혼, ⑶ 노동입니다.

1. 안식(창 2:1-3)

이 날은 하나님이 특별히 구별한 날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날만은

평안의 날로 구별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억

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되도록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우리가 안식일을 계속 구별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하나님의 약속이 변

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2. 결혼(창 2:24)

결혼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신비한 결합입니다(마 19:6). 특히 여자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 존중

하며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인격적인 결합을 하여야 합니다. 이

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교합하지 아니하며 성적인 질서를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창조질서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지

하는 법칙인 것입니다. 이러한 결혼은 신비한 연합이기 때문에 예수님

께서는 교회를 신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엡 5:22-23).

3. 노동(창 1:28)

하나님께서는 일주일 중 하루를 안식일로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식일은 6일간의 노동이 없이는 결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6일간의 노동이야말로 인류가 힘써 지켜야할 조약입니다. 그 일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며 지키는 일입니다(2:15). 그러므로 6일간 힘

써 일하지 아니하고는 평안의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모두 지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행위언약이라고 할 때는 그와같이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창조언약의 내용을 볼 때는 이상의 약정을

인류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즉, 안식과 결혼과 노동은 곧 창조의 질

서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질서인 것입니다.

둘째, 창조언약에 있어서 선악과는 하나의 규정일 따름입니다. 그러

므로 선악과만이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 안됩니다. 선악과는 언약을

지켜주는 하나의 규정에 불과합니다. 선악과는 이상하게 생긴 과일이 아

니고 그저 다른 과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과일입니다. 그

과일 스스로가 선악을 알게 해주거나 눈을 밝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언약을 맺으실 때 특별히

정한 한 나무의 과일일 뿐입니다.

처음에 인간은 선악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도록 지어졌습니다. 인

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 자체가 선이었습니다. 그리

고 에덴동산에는 악이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제정해 놓으신 것은 이 과일을 먹지 않음으로써 창조주이신 하나

님과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선을 그어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태초부터 영원까지 창조의 질서를 지켜 나가도록 하셨

고 대신 인류에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셋째, 창조언약의 증표는 생명나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산 중

앙에 생명나무를 두셨습니다. 언제나 이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

을 기억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함께 두신 하나님의 깊으신 의도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영원한 언약의 증표를 이 우주에 새겨 두셨습니다. 곧

사시사철 춘하추동이 어김없이 운행되며, 밤과 낮이 바뀌지 않으며, 수

많은 별들이 운행하되 결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창조시부터 질서를 유지하

고 있는 것은,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보여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신실한 언약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 이후 한 번도 이 약속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삼라만상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대로 운행하

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하신 구

원의 언약은 결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

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이

것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네가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는 영원한 내 나

라의 왕이 되리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왕으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리

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만 있다면.


3. 은혜의 언약(창 3장)

물론 창세기 3장은 인류가 최초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한 내

용을 기록한 곳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

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

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영원히 죽어버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

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영원히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찾아오심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 그 인간에게 새롭게 언약을 맺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앞서 말한 계약과 언약의 차이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곧 언약(창조언약)을 위반한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은혜 가운데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는 점이 계약과는 다른 점입니다. 이런 특징은 일반

계약에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계약에서는 위약이 될 경우에 즉시 그

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약에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더 나은 조건으로 새롭게 언약을 맺고 계십니다.

차츰 더 분명해지겠지만 언약의 핵심이 되는 약속 즉, 인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나중에 세워진 언약은 앞서

세워진 언약을 근거로 하면서 좀 더 그 조건이 나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

습니다. 그렇다고 앞서 세워진 언약이 어디가 부족하기 때문에 뒤에 더

완전한 언약을 세운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시기에 세워진 언약이든 그 나

름대로 완벽한 언약이며 그 언약에 따라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도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언약은 갈수록 갱신이 되어지고 있으나 서로 유

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결코 변하지 않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계약에서도 어떤 경우에는 계약갱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약자에게는 더 악한 조건이 부과될 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은 갈수록 그 조건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약과 언약

의 차이점이며 서로 다른 특성이기 때문에 언약이라고 구별하는 것이 하나

님의 은혜를 나타내는데 훨씬 도움이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창세기 3장이 은혜언약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셨고,

또 선악과를 먹도록 허용하셨으며, 사단이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하기까지

방관하셨으며, 아담까지도 타락하게 하셨는지에 대하여 깊은 의문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좀 잔인한 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

습니다. 이것은 좀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선악과가 없

었다면 ......"라고 생각하면 참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

렸듯이(창조언약을 다시 보십시요) 선악과 하나를 금한 것은 더 많은 하

나님의 은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첫째, 인간을 꼭둑각시로 여기지 않고 완벽한 인격체로서 하나님과 동

등하게 여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

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만 따먹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맺은 약속을 지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

셔야 하며 영원한 안식을 주셔야 하고, 삼라만상의 운행질서를 유지시키셔

야 하며, 인간을 우주의 왕으로서 대우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지 선악과 하나만 먹지 않고 안식일을 구별하고, 결혼, 노동의 약정만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보다 더 많은 약속을

지키셔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속을 지키셔야할 의무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금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러나 허락하신 것은 모두 다 입니다.

어찌 그것 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으니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 실과를 금한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에서였습니

다. 앞서 말씀드린 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가 지켜야 할 당연한

요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와를 유혹할 때 "너희가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

준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것이 바로

선인 것입니다. 인간이 선이라고 해서 선이 아닙니다. 인간이 선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시면 그것은 악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

로 선과 악을 구별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큰 패역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인간이 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

다면 창조주와 피조물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피조물이 창조주를 대

신하겠다는 것인데요. 인간의 지식은 한갖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에 불과

한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왕으로서 인간을 세우

셨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지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인간은 하나

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유일한 생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

입니까?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좀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얼마나

경솔한 생각이며, 왜 선악과를 두었고, 사단을 용납하셨으며, 하와가 선

악과를 먹도록 그냥 두셨는가하고 따지는 것은 피조물의 어리석은 소치일

뿐입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다.

1. 먼저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말씀하십니다(3:14-15)어떤 사람은 뱀이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다니게 된 기원을 기록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것입

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뱀이 사단의 도구가 되어 받은 저주일 뿐만 아니

라, 그 관점은 바로 사단에게 있는 것입니다. 첫째, 사단과 인류는 이

제부터 영원히 서로 원수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사단은 여자를 유혹했으나 마침내 그 여자의 후손에 의해 영원히

멸망 받을 것입니다. 그 후손이 누구인지 점차 명백해질 것이며, 이것이

곧 성경의 맥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 후손에

의해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 후손이

어떻게 오실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구약 전체가 이 오실

메시야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후손과 연관된 언약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이제 하나님은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3:16)

사단에게 하신 말씀 속에서는 메시야가 계시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님께서는 여자에게 아이를 잉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만 여자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밟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해산의 고통이

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범죄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못 해

석하면 여필종부의 의미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원문에서의 뜻은 그

렇지 않습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질투한다는 뜻입니다. 즉, 이제부터는

서로 동등된 관계를 상호 반려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나가는 일

에서 벗어나 서로 질투하고 업십여기며 강압적으로 굴복을 시키리라는 것

입니다.

지금까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는 가운데서 왕의 직분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서로 멸시하고 억압하는 가운데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이처럼 인류를 비참하게 만들고 남녀의 질서를 파괴시키고 만 것입

니다.

3. 끝으로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3:17-19)

이제부터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양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잃은 것은 인간 자신이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종신토록 흙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온 우주와 땅을 다스렸

지만 이제부터는 사람이 땅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중에서도 축복이 있습니다. 곧 당장에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시

켜줄 양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땀을 흘려야 하지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가끔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심판하시지 않을

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인을 즉시 심판해 버리신다면

아담은 범죄한 즉시 죽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역시 한 사람

도 지금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선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아담과 맺은 언약에서는 인간과 사단이 영원히 원

수가 될 것이며 특별히 인류를구원하시기 위해 여자의 후손을 아툐가하

여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이

누구인가는 점차 밝혀질 것입니다. 이 후손에 대한 우리의 초점을 잃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얻고 그렇게 기뻐하였던 이

유가 여기에 있었(4:1 참조)으나 가인은 거룩한 씨(후손)가 아니었습니다.


4. 거룩한 씨(창 4장 - 5장)

창세기 1-3장은 아무리 자세하게 다루더라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

다. 그것은 이 처음 세 장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 중에서 가장

극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초두에 대한 이해가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 부분을 이해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진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

기 1-3장을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믿을 수 있으며,

이곳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과 권능을 느낄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

한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하나님의 나라와, 인류

의 구원과, 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가에 대한 모든 문제의

해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은 단순히 천지창조에 대한 기사만을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기록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건설되었으며, 왜 건설되었으며,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영원

한 나라로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되 해와 달과 별들이 교대로 바뀌며 사

시사철이 규칙에 따라 변화하며 우주의 삼라만상의 변화가 하나님의 통

치를 증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그 나라를 통치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인간을 그 나

라의 왕으로 세우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왕으로 삼으시되 남

자와 여자를 두시고(즉, 아담과 하와), 서로 돕고 위로하고 협동하며

이 나라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피조물들을 통하여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셨고, 모든 피조물

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우리는 이 언약을 창조언약이라고 부릅니다)을 맺으시고 영원한 생

명을 누리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증표로써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를 세워두셨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

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와서 그 많은 축복을 선악

과 하나와 바꾸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인간은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이 선택이야말로 인간 뿐만 아니라 전 피조물을 죽음으로 떨어뜨린 비

참한 선택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에게는 굳이 선악을 알 필요가 없었습니

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선이셨고, 모든 피조물이 다 선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나서서 선과 악을 분리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

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선과 악을 인

간이 구별하고 선택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인류와 모든 피조물에

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 만드신 하나님의 나라가 죄로 오염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

고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시기로 하셨습니다(우리는

이것을 은혜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실 것인

가에 우리의 관심과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즉, 창 3:15에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

라"고 하셨는데 그 여자의 후손이 누구이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를 준비

할 것인가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해답의 실마리가

바로 창세기 4-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씨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4-5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관한 관심만을 갖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자주 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

벨의 제사만을 흠향하셨는지에 몰두하곤 합니다. 이 문제도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갈만한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히 11:4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

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

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는 말씀에서만 힌트를

얻을 뿐입니다. 그리고 창 4:13-14을 보아서도 가인은 자신의 범죄에 대하

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려는 자세가 조금도 없는 것을 보아 가인은 참

성도가 아니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런 문제 보다는 좀 더 깊은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창 3;15의 여자의 후손이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겠다

고 약속하셨고(은혜언약)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가인과 아벨을 주셨던

것입니다. 아담은 분명히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의 약속의 결실이라고 생

각했을 것입니다. 특히 첫 아들 가인을 얻었을 때 그 약속이 성취된 것

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창 4:1을 보면 "아담이 그 아내(하와)와 동침하

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

다 하니라"고 즐겁게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얻었

으니 그 얼마나 기쁘겠습니까?그러나 이미 아담의 범죄로 인해 부패해

버린 인간의 본성은 가인으로 하여금 아벨을 죽이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

살인사건이야말로 아담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하나는 살인자가 되었고, 하나는 죽임을

당하였으니 아담이 바랐던 하나님의 약속은 산산히 깨어지고 만 것입니

다.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으

니 아담과 하와는 아들을 잃었다는 고통 외에도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괴로

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살인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의 발로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죄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즉, 다시는 인간에게서는 그 어떠한 구원의 요소라도 발견

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구원은

결코 인간에게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구원은 특별한 방법

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특별한 방법이 곧 하나님께서 셋이라는 또 다른 아

들을 준비하고 계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셋의 탄생은 아담

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확신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이며 기필코 그 약속을 이루시고야 말 것이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대신 주어진 거룩한 씨가 바로 인류를 구원할 여자의 후

손을 잉태할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5장은 셋의 족보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의 자손의 계

보는 이러하니라" 또는 "......의 대략은 이러하니라" 또는 "......의 세

계는 이러하니라"고 하면서 족보를 자세하게 나열하는데는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세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고 있을 때마

다 족보가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의 기록을 종합하고 정

리하여주며 앞으로 새로운 역사가 진행될 것을 예표하여 주는 것이 족보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보란 지금까지의 역사를 가장 함축적으로 기록

하고 있는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족보는 이제부터 새로운 인

물을 통해 새롭게 전개될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로 접어든다는 전환점을 보

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 창세기 5장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총정리하고 셋의 후예들을

기록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인 거룩한 씨를 어떻게 준비

해 나가시며 어떤 경로를 통해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하

나님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 대답이 노아입

니다. 5장 족보가 노아와 그 세 아들로 끝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이들

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약속을 이루어 나가실지에 대한 예

표입니다. 즉, 노아와 그 아들들의 탄생을 기록함으로써 이제 노아를 통

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거룩한 씨를 나타내실 것인가에 우리의 관심을 모아

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4장은 단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결국 죄악으로 멸망을 가져올 뿐이며 도저히 구원

을 이루는 일에는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과, 오직 하나님께서 예비하

신 거룩한 씨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는데 더 큰 의

미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세상의 역사는 두 갈래로 흘러갈 것입

니다. 곧 가인의 세계와 셋의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