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에 대하여
1. 서 문
문학적 전 영역에 걸쳐서 성서만큼 비유와 우의적 재료가 풍부하게 나타난 책은 없다. 비유라는 주제를 논의할 때 현저하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예수님의 비유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나 그의 말씀을 들으러 모여든 군중들에게 설교할 때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논쟁할 떼나 항상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셨다. 비유란 일상생활의 친숙한 상황을 예증함으로써 화자(話者)가 말하려 하는 요점을 납득시키고자 하는 말 또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비유적 가르침은 당시 유대 나라에서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가르침의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비유를 해석하기 앞서서 비유의 가르침이나 올바른 이해와 해석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성경에 전반적으로 비유가 사용되었지만 본론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신약에 나타난 특히 마가 복음서에 나타난 비유에 대하여 알아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 필요한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2. 본 론
2.1. 비유의 어원적 의미와 20세기
비유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비유의 어원적 의미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적 배경의 이해와 더불어 현재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타당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비유의 어원을 사전적 의미로 말한다면 영어로 parable, 히브리어로는 ࠌ࠭ࠍ(마샬,「유사하다」,「비교될 수 있다」라는 동사에서 유래), 헬라어로는 ՐՁՑՏՉՌԿՁ(파로이미아); ՐՁՑՁՂՏՋԾ(파라볼레)이며 모두 총칭적으로 다른, 그러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적절한 측면에 있어서는 현저하게 유사한 대상들 사이를 비교하는 것을 가리킨다. parable은 정확히는 비유담(比喩談)을 말하나 통례에 따라 비유로 표현하였다.
2.2. 비유적인 가르침의 올바른 이해와 그릇된 해석
비유를 해석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2.2.1. 그 비유들이 어떤 동기에 의해서 쓰여졌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비유를 해석함에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되며 비유를 통해 깨우쳐 주시고자 하는 위대한 진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2.2.2. 비유의 궁극적인 대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부대 상황에 대해 너무 세세하게 신경을 쓴다면 그리스도께서 비유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의도하시는 의미를 지나칠 수 있다
2.2.3. 비유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구체적 원리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2.2.3.1..비유를 무절제하게 사용한다면 감감 적으로 만들기 쉽다. 비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욕망과 정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2.3.2..비유가 잘못 적용될 때 원래 그 비유가 나타내려고 하는 사실을 오인하게 된다. 비유에 대하여 제멋대로 상상함으로 인하여 가장 불합리하고 사악한 교의가 생겨나게 된다. 이에 알맞은 근거로 이교(異敎) 세계의 우상 숭배를 언급할 수 있다.(로마서 1:21-28)
2.2.3.3..상징과 비유를 지각없이 추론함으로써 근거도 없고, 무력한 신앙이 생겨나게 된다. 유추적인 증거에 만족하여 의문시되는 문제를 환상적이고 추상적인 근거에 맡겨 버린다면, 우리의 신앙은 계속 흔들릴 것이며 풍성한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지 못할 것이다.(S. Stennett, D.D.)
2.3. 신약에 나타난 비유(마가복음을 중심으로)
2.3.1. 하나님 나라의 비유(4:1-34)
마가복음 주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반면에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양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몇 안되는 가르침 중에 하나이다. 4장에는 예수님의 비유 4가지, 즉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 해석(1-20절), 등불의 비유(1-25절), 몰래 자라나는 씨의 비유(26-29절), 그리고 겨자씨의 비유 등이 있다.
2.3.1.1.. 씨뿌리는 자의 비유(4:1-9) (՜ ՓՐՅԿՑՙՍ, NIV에는 농부)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들으라"라는 주의를 집중시키는 말로 시작하며 또 이 말로 끝난다. 따라서 이 진리를 이해하려면 매우 민감한 정산이 필요하다. 비유의 배경은 팔레스타인의 시골 지방의 생활이다. 씨들은 매우 광범위하게 뿌리워졌다(3절). 씨뿌리는 자는 씨뿌리는 것이 밭을 가느 일보다 앞서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씨를 길가에(4절), 돌밭에(5절), 가시떨기에 뿌렸다(7절). 그러나 밭가는 일이 지연될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결과가 반드시 생기게 된다.
이 비유에 있어서의 강조점은 씨가 뿌려진 땅의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씨를 뿌린 행동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와 같이 세상으로 뚫고 들어온다. 땅의 종류에 대한 언급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나타나는 다양한 반응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질 문제는 아니다 (Lane, p.154). 온갖 역경이 하나님 나라를 막아선다 하여도 그것은 자라서 궁극적으로는 풍성한 수확을 이루게 된다(8절). 이러한 진리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명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귀있는 자는 들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다. 모울(Moule)은 부연하기를 될 수 있는 대로 스스로 그것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Gospel of Mark, p.35)
메튜헨리의 성경 주석 시리즈에서는 밭을 교회에 비유하여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큰 밭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질서하게 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14절). 씨뿌리는 자는 어디서 싹이 잘 나오고, 어떤 열매를 얻게 될 것인가를 모르지만 모든 종류의 땅에 씨를 뿌린다고 하였다. 여기서 현재에 비추어 생각할 때 씨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종들이 되는 것이다. 강조점은 말씀이 뿌려질 때 사분의 일만이 결실을 낸다고 말하며 복음을 받아 드리고 적용하며 또 전하고 열매를 맺는 것을 약 열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2.3.1.2.. 씨뿌리는 자 비유의 해석 (4:13-20)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이 해석이 그 비유를 풍유적으로 (allegorical) 해석하는 것이라고 해서 이 구절들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모울(Moule)은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훌륭한 풍유이며 각각의 요소가 조그마한 비유들로 구성되어 있는 전체적인 하나의 비유이다."라고 역설하였다(Gospel of Mark, p.97). 13절.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가벼운 책망의 요소가 들어 있다. 14-16절. 여기서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마 13:19) 곧 예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뜻이다. 이 비유 자체에 있어서 강조점은 말씀을 뿌리는 일(the sowing of the word)이었으나 해석에 있어서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the reception of the word)에 강조점이 있다. 예수의 사역에 있어서 그 비유의 역사적인 배경에 비추어 이해하여야 한다. 비유를 해석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받는 응답의 여러 가지 태도를 보다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첫번째로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경시한다. 그들은 마치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이 그것이 뿌리도 내리기 전에 사단이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린다(15절). 두번째로 시련과 핍박이다. 시련과 핍박 때문에 신앙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뿌리가 없어 마치 돌밭에 뿌리어진 씨와 같은 것이다(16절). 세번째로 세상의 염려와 두려움이다. 말씀을 듣고 잘 나가다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결실치 못하는 자들이다.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다. 이러한 세상의 일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중요한 멀리하게 하는 것으로 테일러(Taylor, p.260)는 세상의 염려를 때때로 일어나는 불안이라고 했으며 재리의 유혹은 재물을 소유한 자로 쓸데없는 안도감과 자신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특히 오늘날 현대 사회에 비일비재한 것이라 하였으며 "기타 욕심"이 씨를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장애물이라고 하였다(18-19절). 네번째 마음 문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인다.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람은 말씀을 경시하지도, 환난을 두려워하지도,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말씀은 그 안에서 자라나 생활의 덕으로 가득 차게 된다.
2.3.1.3.. 등불과 헤아림의 비유 (4:21-25)
마가는 등불(ՋՕՍՏՒ, 뤼크노스)을 ԽՑՅՔՁՉ(에르케타이, 가져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등불은 "오신" 예수를 나타내며 정관사 "՜Ԃ가 쓰여진 것을 보아 더욱 그러하다. 등불을 말 아래나 평상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는 것처럼 예수님의 비밀이 현재는 숨겨져 있으나 언젠가는 이 모든 비밀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특히 하나님께서는 파루시아(재림)시에 모든 영광으로 예수를 밝히 드러내실 것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22, 23절). 그러나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는 지금 까지 숨겨져 있다. 따라서 영적인 자각을 갖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2.3.1.4.. 몰래 자라나는 씨의 비유 (4:26-29)
이 비유는 단지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강조된 것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강조된 것과는 다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는 씨 뿌림과 씨의 성장에 좋은 토질과 풍성한 수확이 강조되었지만 이 비유에서는 씨앗을 자라게 하여 풍성한 수확을 이루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이 강조 되어 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26절) 특히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성장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이 비유의 요지는 "씨앗을 뿌린 뒤에 시간이 되면 추수할 때가 오듯이 하나님 나라가 지금은 모호하고 숨겨져 있으나 영광스럽게 나타날 때가 있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다.
2.3.1.5.. 겨자씨 비유 (4:30-32)
이 비유는 땅에 심어진 씨를 소재로 한 비유 가운데 세번째 비유이자 마지막 비유이다. 겨자씨는 사람이 땅에 심는 가장 작은 씨(the smallest seed you plant in the ground)이다. 이 비유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일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 이 나라에 속한 개개인들은 종속 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의 나무와 같으며, 그에 예속되는 객체들은 그 그늘에 깃들이는 새들과 같다. 나무가 자라서 가지를 내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선한 자들을 위해 그 나무를 심으셨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축복의 원천이며, 그 축복은 그의 그늘에 깃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크게 성장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바산(Bashan)의 떡갈나무나 레바논의 삼목 같이 큰 나무를 비유하여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작은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는 도토리나 솔방울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왜냐하면 아주 조그마한 씨앗에서 비롯하여 커다랗게 자라며 그리스도의 나라도 역시 처음과 끝이 아주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의 주 목적은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擴張)되리라는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주목적에 첨부하여 겨자씨에 들어 있는 맵고 톡 쏘는 맛, 그리고 겨자 자체가 부서져야만 최고의 효력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H.M.Luckock,D.D.).
위와 같이 몇 가지의 비유에 대하여 여러 해석의 측면들을 다루어 보았다. 물론 마가복음 이외의 복음서에서는 더 많은 비유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 어떻게 하셨는가 역시도 알아보아야겠다. 그것은 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셨으며 또 그 말씀을 인간의 이해력 수준으로 낮추셨으며, 주변의 친숙한 환경이나 정경을 통하여 설명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형식에 얽매이는 습관적인 권위를 앞세우는 우리네 설교자들의 모습과 비교할 만하다. 비유의 내용들과 더불어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모습과 방법들 또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설교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설교자가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태도로 이야기하며, 상식적인 설교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평이한 어휘로써 깊은 곳을 파고들 뿐 아니라, 우리 마음에 직접적인 공감을 일으키며, 그들의 논법이 세련되지 않은 소박한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비유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각 부분들의 의미들을 살펴보자.
2.3.2. 비유에 나타난 참 의미
다른 많은 비유와 같이 마가복음의 비유 역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져 왔다. 어떤 학자들은 이 성장의 비유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성장 및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은혜 안에 있게 될 때 그 은혜 안에서 자랄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성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신을 배가시켜 나가며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의 원리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레이튼과 같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이 점진적인 성장의 비유를 세계와 인간의 발전에 적용시켜 원형질 형태의 씨앗에서 완전한 알곡으로 진화했다는 견해를 편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마가의 비유에 진화론적 적용 및 해석은 결코 공감할 수 없다. 이 비유를 그리스도 교회의 3단계 성장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은 엘리코트이며 한 인간의 영혼이 지닌 사상과 행위 및 목적에 대해 새로운 진리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3단계 과정을 상징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적절하고 유용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에 관한 비유적 현상 속에서 이 비유를 해석해야 한다.
2.3.2.1.. 씨 뿌리는 자
이 비유에 묘사된 씨뿌리는 자가 그리스도 자신, 또는 다른 비유에서 가리키는 인자를 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씨 뿌리는 자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될 수 없다. 씨뿌리는 자가 인간이었기에 그 인간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씨뿌리는 자라고 할 경우, 그리스도께서 그 씨가 성장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씨뿌리는 자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과 세상에 자신의 나라를 설립하는데 있어서 사용하시는 모든 것을 뜻한다.
2.3.2.2.. 씨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인간을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로 만드는 신비한 힘을 말한다. 베드로는 인간의 영적 탄생에 관하여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고 완성시키는데 모든 말씀의 진리를 사용하신다.
2.3.2.3.. 땅
여기서 땅이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의 마음을 가리킨다. "나라"라는 말에는 왕뿐만 아니라 백성을 포함하고 있다. 땅은 씨를 뿌릴 수도 없고 수확을 거둘 수도 없다. 땅은 단지 씨를 받아들이고, 그 씨가 자라서 수확을 거둘 때까지 영양분을 공급할 역할뿐이다. 그러나 토양은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
3. 결론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23,24절에 보면 "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우리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환경이나 부수적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주된 관심이 사물의 형식과 표현에 있고 주제에 대한 관심은 이차적인 문제가 되어 버린다. 비유에 관하여 책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휘의 문제들과 해석의 방법론적인 부분들을 언급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부분들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2000여년전의 팔레스타인 지방 사람들의 문화 차이도, 생활 수준 차이도, 의식 차이도 아니고 살아 운동력 있고, 영원히 변함없이 우리들의 삶속에 적용되어지며 참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우리의 신앙 생활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 얼마나 적용을 하며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비유에 관하여 문자적인 이해와 해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씀을 대하고 묵상하기에 앞서 언제나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이미 뿌려졌고 자라가고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이 아니며 씨는 자라 가지만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27절)는 말씀처럼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고 또한 알 필요도 없다. 다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자라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인들은 아는 자가 아니고 믿는 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