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복음서는 이렇게(복음서 해석)

성경:마20:13-16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복음서라고 한다. 그러면

복음서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복음서를 해석하고자 할 때,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복

음'이란 문학양식 (genre)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흔히 '복음'이란 장르

를 연대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사

건의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복음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물론 복음서

는 대체적인 순서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

스도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정확한 순서에 따라 기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복음'이란 장르를 연대기로 보아서는 안된다.

'복음' 이란 장르는 연대기가 아닐 뿐 아니라 전기도 아니다. '복음'을

전기로 볼 때 문제가 많다. 어떤 전기가 탄생과 어린 시절을 조금 기록

하고 약 30세의 공생애로 뛰어넘는 경우가 있는가? 전기라면 출생부터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추적한 다음 자연스럽게 성인 시절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그렇지 않다. 복음서를 전기로 착각한 나머지

12세부터 30세까지 공백기간에 예수님은 어디에 사셨느냐는 질문을 던지

게 되고, 인도에가서 불제자가 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복음'이란 장르는 이렇게 연대기도 아니요 전기도 아니라 그야말로 '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할 때 탄생과 어린시절에 관해

조금 기록하고 공생애로 뛰어넘는다. 또한 공생애도 연대기적으로 자세

히 기록하지 않고 공생애의 마지막 1주간에 초점을 둔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할 때,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 그리스도(메시아)라는 '복된 소식'의 관점에서 십자가에 클라

이막스를 두고 부활을 데누망으로 하여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메시아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뜻

에 절대 순종하시는 '종', 그것도 '고난당하는 종'으로서 평생 십자가를

향해 가시다가 마지막 십자가를 지셔서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 이루심을 확증하는 사건인 부활을 끝으로 막

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서를 해석할 때, '복음'이란 이러한

쟝르를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한다.

'복음'이란 쟝르를 전제하고 복음서를 해석할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화적'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짙었다. 특별히 공관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해석할 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하나

로 합쳐서 그 내용들을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칼빈 주

석과 박윤선 목사님 주석이 이런 조화적 방법을 사용한 주석이다. 공관

복음의 조화적 해석법의 장점을 메시지의 통일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해석법의 단점도 있다. 그것은 각 권 메시지의 예리한 각도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조화적 방법의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각 권의 예각을

살려주는 해석법이 등장해서 통용되고 있다. 이것은 복음서를 통합적으

로 보지 않고 우선 각 권의 특징들을 살림으로써 각 권의 독특한 시각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웨스크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주임교수였던 스톤하

우스(Ned B. Stonehouse)가 이런 방법을 창시했다고 볼 수있다. 그는 㟢

마태의 그리스도 증언¬, 㟢마가의 그리스도 증언¬, 㟢누가의 그리스도

증언¬등 책명이 시사하듯, 마태 특유의 시각과 마가특유의 시각과 누가

특유의 시각을 잡아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가령 마태복음은 일차적인 독자로 유대인들을 상대해서 쓴 복음서이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아란 것을 어떻게 증언하겠는가? 유대인들이

성경으로 믿고 절대시하는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인용하면서 "이 예언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들이 고대하던

바로 그 메시아다" 하는 식으로 증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뿌리'를 중시하므로, 마태는 예수님이 그들의 '뿌

리'인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그들은 다윗왕을 이상

적인 왕으로 여기기 때문에 예수님이 바로 그 '다윗의 자손'임도 강조

한 것이다. 마태는 이런 식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언했기 때문에,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을 잘 연결시켜 주고 있다. 지면

관계상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마태 특유의 예리한 시각은

조화적 방법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복음서를 해석할 때

각 권 간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 권의 예각을 밝히는

해석법을 사용하면 "좌우에 날선 검"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음서의 내용 가운데 기적은 어떻게 해석하며, 비유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탄생기사

는 어떻게 해석하며 수난기사는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다

시 말해서 복음서의 세부내용에 대한 해석문제가 있다.

여기서는 비유해석만 잠깐 언급하기로 하겠다. 예수님은 비유를 진리

전달의 주요수단으로 사용하셨다. 비유는 영적 진리를 구체적인 삶의 언

어 속에 담아 전하는 것이다. 비유는 외부인들에게는 진리를 숨기는 기

능이 있으면서 동시에 내부인들에게는 진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비유는 이렇게 삶의 언어로 영적인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삶을 연구하면 비유의 '삶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삶의 언어'가 영적인 진리를 표현하기에 제한되어 있음을 생각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한되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당시의 삶의 평범한 현상들에게 출발하셨지만, 어느 단계

에 가면 영적인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삶의 현상을 과감하게 고치는 표

현을 사용하셨다.

가령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마20:1-7의 내용, 즉 품꾼들을 불러 계약을

맺고 포도원에서 일하게 하는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모습니다. 그

러나 마20:8-10의 내용, 즉 나중 온 자부터 품삯을 지불하고 먼저 온 자

나 나중 온 자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 지불하는 내용은 삶의 모습

을 과감하게 뜯어고친 내용이다. 이것은 삶의 모습과 영적인 진리 간에

정확한 비교가 안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영적인 진리를 전하기 위해

서는 어쩔 수 없이 삶의 언어를 고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의 모습을 확 바꾸는 바로 그 시점이 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

리는 시점이다. 예수님께서 영적 진리의 바늘에 청중들을 걸어서 그들의

시각을 뜯어 고쳐 놓으시는 시점이다. 마20:13-16의 진리를 전하시기 위

해 그런 '방향전환'을 사용하셨다는 말이다.

'복음'이란 장르를 살리고, 각권의 예각을 살리고, 비유를 바로 해석함

으로써 '복음'이 진정한 의미의 '복음'으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