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바로 교회 시작에서 제기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다루게 된다.
제 1 장. 바울 신학
바울이 개신교회의 신학자로 인정받고 주장되는 것은 그가 이신 득의를 강조해서 가르친 사도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이 칭의 교리는 종교개혁의 출발점이요, 그 원리였다. 로마 교회의 선행의 공로에 의한 구원 교리에 반대하여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만이라고 하는 바울의 가르침은 루터와 그의 후계 개혁자들에 의해 전폭적으로 수납되었다. 이 칭의 교리가 종교개혁의 출발점이고 근거여서 루터교회뿐 아니라 개혁교회도 믿음으로 구원 얻음을 계속하여 강조해 왔다.
루터 교회에서는 이신 득의를 바울을 바로 이해하는 유일한 원리로 보았다. 또 개혁교회도 루터교회처럼 칭의를 강조하거나, 이에 더 나아가 성화를 강조하므로 칭의 에만 과도히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이신 득의가 그 출발점이요, 기초임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글에서 우리의 논의의 초점은 바울이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그리스도의 출생과 죽음과 부활이란 신. 구약의 중심점에서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있다.
제 2 장. 루터의 복음과 율법의 이해
루터를 지배한 근본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로마 품에서 자라난 루터는 교회의 가르침대로 자기가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함으로 의를 이루어야 구원에 이를 줄로 알았다. 그러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른다는 진리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첫 단계에 율법이 개입하고 선포되어 사람들을 절망에 이르게 하고서, 그들을 복음 곧 죄의 용서의 선포에로 이끌어야 한다고 하였다.
루터의 주안점은 인간이 결코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에 이른다는 신약의 진리를 강조하려는데 있었지만, 이 루터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 이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구원 과정에 필수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적용되었다. 그러나 바울에 의하면 율법은 그리스도 오시기 위한 준비였고, 그의 강생과 속죄 사역 후에는 더 이상 구원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율법은 인간에게 자기의 죄들을 계시하고, 연약함과, 눈멀음, 죽음,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현시 한다. 이것이 율법의 본래적 기능이다. 율법은 나에게 나의 죄, 죽음, 지옥,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이는 빛이다. 이에 반해 복음은 죄인에게 생명을 보이는 빛이다. 즉 영생의 의이다.
루터의 확신과 강조는 믿음만이 의롭게 한다는데 있다. "믿음만이 의롭게 하고, 회개를 포함한 율법의 행위들은 의롭다 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가 루터의 말들을 직접해서 살펴본 것처럼 먼저 율법을 선포하여 사람들로 절망에 이르게 한 후 복음을 선포하여 그들이 믿음에 이르러 의가 전가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강생 이후에도 복음과 율법은 늘 긴장 관계에 서고 둘은 늘 함께 믿음의 길에 개입해야 할 것으로 여겨왔다.
제 3 장. 바울의 가르침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이 왜 필요한지를 보편적으로 밝힌다. 그것은 율법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의의 길을 믿음으로 받는 것뿐이라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책망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구원의 길로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의롭다하심을 얻었는데,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후에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의 길로서 율법을 지킬 의무를 스스로 지녀 절기를 지키고, 여러 규례들을 지키고 있음에 대하여 그것은 전적으로 불가하다는 진리였다.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의 준수를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강요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정반대였다. 율법은 지킬 수 없고, 또 율법은 구원의 길이 아니 다. 즉 율법을 지켜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은 온전한 구속주 곧 자기들을 대신하여 자기들의 자리에서 자기들을 위해 율법을 온전히 지켜 주실 율법의 완성 자이신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게 한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율법은 구원의 길이 아니고 구원은 하나님이 내신 의의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뿐이다. 이것이 바울의 중심교리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롬 3: 23) 또 이 범죄로 인해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롬 3: 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한 의의 길을 내셨는데 그냥 예고 없이 이 구원의 길을 내신 것이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증거를 받아 예비되었다(롬 3: 21). 그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의의 길이다(롬 3: 22 - 24). 아브라함은 할례 받아 율법을 지킬 의무를 지닌 유대인의 조상일 뿐 아니라 율법과 할례와 상관없는 이방인의 조상이 되었다(롬 4: 9 -12; 갈 3: 6 - 10). 즉 율법을 지키기 전에 믿음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하여 그를 의롭다하시고, 그를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으심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길로 하나님께 모으시려고 하는 뜻을 밝힘이라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밝힌바 네 자손이라고 하신 것은 이삭이 아니라 이삭의 씨를 통하여 세상의 구속 주를 주시겠다는 섭리로 아브라함은 보았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 56).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음으로 그들에게 율법을 허락하셨다. 이 하나님의 섭리는 율법준수로 백성들이 구원에 이르게됨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주심으로 백성들을 죄 아래 가두어 그리스도 믿음에서 오는 의의 길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즉 율법은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서 어서 율법의 완성자가 오십사 하고 바라게 하기 위해서 주어졌다. 이처럼 율법은 인간의 연약성을 인하여 죄를 생산케 내는 역할을 한다. 율법이 해야할 일이란 바로 백성들을 이 절망의 상황에로 이끌어 율법의 완성자 곧 그리스도에게로 눈을 들게 하는 것이다. 율법을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을 통해서 주심은 몽학선생 곧 주인 아들에게 딸려진 노예 선생으로 주신 것이다(갈 3: 23 - 25). 그리스도의 구속이 온 후로는 믿음으로 사는데 이것은 전혀 율법의 지배를 벗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그것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이다. 믿음만이 하나님이 내신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십자가 이후에는 구원의 길로서 율법의 기능은 종결되었다.
제 4 장. 히브리서의 가르침
짐승의 제사로는 사람의 죄가 속량 되지 못함을 가르치기 위해 구약의 제사 제도가 세워졌고, 뿐만 아니라 완전한 속죄가 오고 있음을 가르치시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하셨다. 구약의 피 제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 제사에 비하면 그림자요, 예표였고, 그리스도의 제사는 실체요, 그 원형이다. 율법이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하듯 그 율법 시대의 제사도 죄를 제거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의 기능의 종결에 관하여 바울보다 더욱 과격하다.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희생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였다는 것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완전한 희생 곧 성령으로 성화 된 그리스도의 피를 제물로 삼아 온전한 제사를 드리게 하시고 그 제사를 받으사 세상 구원을 완성하시므로 구약 제사는 완결하시고 폐하셨다(히 7: 12; 8: 13). 그리스도가 드린 제사는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려지고 열납 되었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강조한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는 진리가 그의 제사직을 레위 제사직과 비길 수 없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히브리서의 가르침을 살핌에서 명백하듯 옛 언약 아래서 주어진 율법과 제사는 완전한 속죄와 구원을 가져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 준수와 완전한 제사로 그것들을 성취하고 대치하였을 뿐 아니라 폐해졌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결론이다.
제 5 장. 종교개혁 신경들의 가르침
종교 개혁은 로마 교회의 성행의 공로 교리에 대항하여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칭의 교리를 바울로부터 가르침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 이후에는 믿음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에 율법은 아무런 주장과 요구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종교 개혁자들은 바울이 전개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구원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로마교회의 선행 교리에 대항해서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이해했어도 율법의 행위나 선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만이라는 바른 진리에는 이르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일치 고백서에는 율법이 구원의 길이 아니고 또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얽어매지 않으나, 생활의 규칙으로 역사 함을 말했다.
이런 율법과 복음의 예리한 대립 관계에서 멜랑톤은 율법의 패지를 강하게 논한다. 멜랑톤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신약의 가르침대로 잘 이해하였고 또 구원사적 관점에서 율법의 역할을 이해함도 잊지 않아다. 그러나 바울의 가르침대로 죄의 자각도 복음의 전파로 이루어짐에는 미달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의해서 율법이 성취되었으므로 이방인에게 먼저 율법을 선포할 필요가 없고 복음만 선포하면 되기 때문이다.
Confessio Helvetica Prior; Confessio helvetica Posterior; Confessio Fidei Gallicana 와 영국교회 39 개조, 모두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므로 율법이 폐하여졌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율법은 우리의 생활법칙으로 역사 한다는데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도 구원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고 믿음으로 라는 진리요, 바로 이 구원을 위해 율법이 몽학선생으로서 주어졌다는 진리에는 명확히 도달하지 못했다.
제 6 장. 안식일 변경의 신학적 근거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 안식일에서 주일로 바뀐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전 우주적 사건에 근거해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재창조의 시작이요, 부활이 재창조의 첫 날이어서 하나님의 처음 창조의 첫 날에 상응한다. 이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구원 사건 곧 재창조에 근거해서만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옛 언약의 질서를 그치게 하시고 그 길로 구원 얻음을 폐하신 후에 재창조의 첫 날을 예배 날로 지키게 하셨다.
제 7 장. 성경의 역사적 권위와 규범적 권위
이 성경의 권위는 개혁신학에서는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역사적 권위와 규범적 권위로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이 보고하는 모든 것이 절대 확실한 역사적 진리이면 그 성경 부분에 역사적 권위가 귀속되고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신적 규법들을 포함하는 성경 부문에는 규법적 권위가 귀속되는데, 역사적 권위가 적용되는 성경 부문이 규범적 권위를 갖는 성경 부문보다 더 넓다.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 과정에서 주어졌으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신앙과 생에 규범적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속죄 사건 이후에도 구약 없이 신약이 성립되지 않으며, 신약 없이 구약이 바로 설 수가 없다. 둘은 늘 함께 읽고 들어야 한다. 둘은 상호 의존적이고 또 통일성을 이룬다. 즉 옛 언약에서 일하신 하나님은 새 언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의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구약만을 취하면 그리스도 없는 유대교가 되고 신약만을 취하면 결국 그리스도를 잃은 영지주의 적인 과격에 이른다. 그러나 구원의 길로서 구원의 방편으로서 율법과 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효력을 다하였으나, 율법 중 윤리 법은 그리스도의 성취로서 더 강화되어 그리스도인에게서 그 요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제 8 장. 율법=언약 백성들의 생활 규범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율법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윤리법 혹은 도덕법은 그리스도의 속죄 이후에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서 더 강화되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서 그대로 실현되기를 요구한다. 특히 윤리 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후에도 일점 일획의 가감도 없이 더 강한 요구로 그대로 지켜지되 더 과격히 지켜지도록 요구한다.
율법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의 거룩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였다. 율법을 범함은 한낱 율법을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헐음이었다. 율법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 언약 백성들의 생활 규범이었다.
규약 백성들에게 율법은 생활 규범이었다. 신약 시대에도 그것은 동일하다. 새 언약의 백성에게도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활의 법칙이요 규범인 것이다. 바로 이 진리를 예루살렘 공의 회가 결정하고 분명히 하였다.
두 구원의 길이 예루살렘 공회의에서 크게 충돌하였다. 사도들은 믿음만을 대변하였고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율법을 하께 요구하였다. 바로 야고보의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결정이 사도들의 공회의를 기독교 공위회로 결말지었고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라고 확정지어, 바울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해석이 가장 바름을 승인하였다.
베드로는 율법이 구원의 길이 아님은 분명히 했으나 율법이 언약 백성들의 생활 규칙임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사도들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바울의 지도에 따라 율법을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규범으로 확정지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문자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그 정신에 있어서까지도 거룩하게 살도록 작정된 자들이다. 그런데 이 율법 중에 사랑의 계명이 가장 규제력이 강한 생활의 법칙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행동 원리는 사랑이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은 사랑에 의해 동기 되어져야 한다. 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 주 그리스도의 율법 완성을 반복하는 자들이다(롬 13:8; 갈 5:14; 엡 5:2; 약 5:8; 요일 3:23; 4:10, 11; 4:21).
제 9 장. 신. 구약의 통일성 문제
구약은 전체로 예표론 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지향한다. 바울이 유대인 앞에서 수행한 모든 증거는 다 나사렛 예수가 구약이 증거하고 온 이스라엘이 바라는 메시야라는 진리였다. 또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이 자리를 증거 하셨다.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 5: 39). 이처럼 구약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 분명 구약은 그리스도의 책이다. 구약은 자신을 넘어서서 신약 곧 구약의 목표인 그리스도를 지시하셨고 신약은 이 구약의 성취로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구약은 약속에서 약속으로 나아가되 그 끝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가 서있는 역사책이다. 즉 그리스도가 구약을 전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구약이 그리스도를 약속하고 확증하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해석한다.
제 10 장. 예수의 메시야적 권위
예수가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설립자 곧 하나님의 통치의 구현 자로서 신학 사에서는 예수를 나라 자체라고 지목한다. 여기서 그의 전권 주장이 성립한다.
예수의 이 전권 주장은 그의 산상수훈에 남김없이 표출되었다. 곧 자신을 율법의 완성 자로서 밝히므로 자기의 말씀이 토라의 말들을 유비가 없는 주권적 자유로 능가하고 또 모세의 권위를 능가함을 밝혔다. 예수는 구약의 신적 권위를 가장 강하게 강조하였다: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신 자라는 것과 자신(인자)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권세 있는 분, 곧 그가 하나님이심을 암시하신 것이다.
금번에 접하게된 서철원 교수님의 책: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통하여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많은 의문점들에 대한 답은 찾을 수가 있었으며 많은 의혹들이 풀리게 되어 참으로 감사드린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인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생활의 모습들이 바뀌게 된다. 만약 율법이 아직도 구원의 길로서 타당하다고 본다면 우리는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무던이도 애를써야 하며 결국 루터가 경험했던 끊임없는 좌절과 낙심을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가르친 바에 따르면 율법의 역할은 죄인 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 그리스도의 강생과 십자가의 부활 이후에는 율법이 구원의 길로서 종결되어 더 이상 구원의 길로서 준수를 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율법은 다만 구원 얻은 우리에게 생활 규범으로만 역사 하는 것이다.
구원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말씀하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며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인간의 공로가 개입할 수 없다. 만약 인간의 공로가 조금이라도 개입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가 되지 못해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 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곧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임을 알게 하여 그를 믿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또한 구약의 제사 제도를 폐하신 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제사만을 영원히 기뻐하사 그 제사만이 유효케 하신 것이다.
이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여러권의 책을 잃어본 가운데 엠. 알.디한 박사의 율법과 은혜라는 책이 매우 공감이 되었지만 그분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모든 율법이 완전히 쳁하였다는 주장에서 그의 저서는 끝을 맺었기에 그 후에는 이 율법과 복음(은혜)의 관계가 어떻게 디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에 읽게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통하여 그 나머지의 의문점들이 풀리게 되었다.
복음과 율법의 관계는 구약과 신약 전체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안에서 율법이 주어지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주신 율법의 완성을 이루시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놓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이 이제는 자신에 힘과 노력으로가 아니라 우리를 강건케 하시는 성령 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그 생활 규범으로 가지고 지키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가 아니라 오직 복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심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복음과 율법 에 대한 바른 정립을 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유익한 책이었다고 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