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생애와 전도사역에 관한 연구는 많은 부분이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존한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유일한 역사서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초기 교회에 일어났던 일들은 상세하게 가감없이 비교적 사실을 잘 전하여 주고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에서 보도 되는 서로 상반된 사실 보도가 잘 말하여 주고 있다. 이 외에도 바울에 대하여 이해 하려면 바울의 서신들을 살펴 볼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울서신들은 진정성 면에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논란이 있는 서신 조차도 구성과 문체에서 사도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사도의 생각을 뽑아 낼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육체적으로 매우 단련되어 있었으나 겉 모양은 볼품이 있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 인이었다. 그것은 혈통적으로나 또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사상적으로나 그당시 유대전통에 근접하고 있었던 것을 잘 나타낸다. 이것은 그가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앞장 섯던 것으로 잘 나타난다. 메시야의 도래가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족의 하나됨을 저해하는 배교에 대한 그의 열심은 그의 유대교적인 열심과 율법에 대한 자세를 잘 나타내어 보여 준다.
A.D.32~35년 사이로 추정되는 그의 회심은 그의 삶은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된다. 그는 아라비아로 가서 그전까지 이해하였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말씀속에서 다시 이해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의 1차 전도여행은 이러한 자기의 돌아봄의 실천이라고 할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는 마가의 이탈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향수병이나 기타 의견차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복음은 그전까지의 율법을 새로운 입장에서 볼 것을 강요한다. 따라서 이러한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 결과 전도는 유대인들에게만 국한 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바울의 전도는 이방인에게도 개방되었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지게 되었다.
초기 교회는 율법을 극복한 복음의 효력을 강조하는 스데반을 주축으로한 일단의 디아스포라 유대 기독인들 때문에 박해에 직면한 적이 있다. 그들은 기독교가 유대교를 배교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기존의 유대교 안에서 율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써 기독교의 정체적을 가지도록 하는 경향을 낳았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공격적인 선교는 유대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스데반때에 제기되었던 문제를 다시 끌어 내어 기독교를 공격할 빌미를 주게될 가능성이 다분이 높은 위험한 것으로 이해 되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매우 진보적이며 또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지는 것을 허락하는것이며 또한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유대교적 율법아래있지 않아도 될 것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으로 이방인에 대한 전도와 유대교에 대한 전도는 양립하게 되었으며 아울러 바울의 전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그당시 기독교 초기 지도자들의 놀라울 정도로 현명한 결정이 아닐수 없었다.
이후의 전도는 두 개의 전도로 이해될수 있겠다. 그것은 유대교에 대한 전도와 이방인에 대한 전도인 것이다.바울은 바로 이방인들의 사도로 보냄을 입은 것이다. 바울은 소아시아를 통하여 유럽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당시 전도는 우선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유대적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모이는 회당을 중심으로 하여 도시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로마의 당신 한민족 한 종교의 정책에 의하여 기독교는 많은 어려움을 격지만 매우 활발하게 기독교는 전하여 지게 된다.
그리고 에베소를 비롯한 교회들에게 바울은 한번더 돌아보며 그가 받은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 그는 복음이 가져다 주는 자유와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전하였다. 하지만 바울자신은 매사에 조심하며 유대교적인 율법을 지켰다. 하지만 이러한 조심스러운 삶에도 불구하는 그의 공격적인 전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경계의 대상이 되고 결국에는 로마로 압송되는 결과를 맞이하였다. 사도는 그후 전도의 삶을 살며 순교하였던 것으로 전하여 진다.
바울은 기독교의 랍비였다. 그는 율법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다시 비추어 새로운 길을 분명히 전도하였다. 죄와 구원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 율법의 한계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효력.....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한 종말과 윤리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바울은 체계적이며 분명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다.
나의 생각
바울은 기독교의 랍비였다. 그는 율법과 또한 그리스 철학의 바탕위에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바울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이방인들에게 좀더 확실히 전하여 지는데 많은 차질을 빚었을 것이다. 그의 신학함으로 통하여 복음은 보다 체계적인 이해의 틀을 소유할수 있게 되었다. 그의 생각함으로 인한여 복음 단순한 기억됨을 벗어나서 삶속에서 의미로 들어나는 길을 제공받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의 이러한 활동은 그당시 문자적인 율법의 내용들을 삶속에서 생활함으로 바꾸었던 랍비들의 활동과 비견될만하다.
그는 가말리엘에게서 신학함을 배웠고 그의 출생지와 그 삶의 환경속에서 그리스와 로마세계의 철학함을 배웠다. 이러한 그의 배경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더 높은 삶으로 이어가는 가교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였다. 그는 복음으로 율법을 해석하였으며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하여지는 것을 당연하게 주장하였다. 그결과 오늘날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여 질수 있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이러한 그의 활동은 그당시의 절박한 현실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루터가 그당시의 거대하고 폭압적인 로마교황에 맞서기 위하여 오직 믿음을 강조하였던 것 처럼 바울은 그당신 거대하고 폭압적인 유대교 지도자들에 맞서기 위하여 오직 복음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신앙함의 양태는 힘이 있고 또한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만' 나아감으로 인하여 보편적인 교회의 아름다운 많은 전통들을 잃어버린 것처럼, 바울의 강력한 신앙의 도식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유대교가 간직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들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기독교는 히브리적인 사고관과 신앙함을 버렸고 헬라적 이원론적인 구조와 틀, 그리고 삶이 아니라 이해함속에 신앙을 축소시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있다. 그 결과 수많은 종교회의와 논쟁속에서 신앙은 몇몇 문서의 틀 속에 갖히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여 이해하며 도식적으로 한정시키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수 없으며 성령님의 인도에 우리는 의의를 제기할수 없다. 따라서 바울의 삶에 대하여 우리는 사실로서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바울의 행적에 대한 이해속에서 그가 그 당시 무엇을 하였는가를 알기 보다가는, 그가 그당시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키려고 하였던 것이 무엇이며 그는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지키려 하였나에 주목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에 대한 많은 생각함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서 우리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수 있을 것이다.
신약신학 리포트
The Ministry and Message
of PAUL
-Richard N. Longenecker-
이 름: 이 지 원
학 번: 9532105
소 속: 신대원 3. A.
담 당: 김지철 교수님
제출일: 199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