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은 이렇게 해석(바울서신해석)
성경:딤전2:11-12
바울 서신집 (히브리서를 제외하면 13서신)의 인간편의 저자 바울은 분
명히 한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 사람 바울이 여러 바울로 둔갑(?)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바울이 진짜 바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예를 들면, 동일한 바울을 두고 어떤 학자는 남성 우월론자로 보고 어
떤 학자는 여성 해방론자로 본다. 전자는 흔히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
하노니 오직 종용할 지니라"는 말씀(딤전2:11-12)을 전거로 내세운다.
후자는 흔히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는 말씀(갈3:28)에 호소한다. 각기 바울이 한 말을 인용하면서 장황한
해석을 가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해석이 바른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만약 그것이 '바른' 해석이라면, 어떻게 '
바른'해석이 둘이 될 수 있으며, 그것도 정반대(남성 우월론/여성해방론
)가 될 수 있는가? 바울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로 해석하는 것인가?
바울서신을 해석할 때 우선 그것이 '서신'이라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신이라고 할 때 그 외형상 당시의 서신들과 유사하다는 점
을 관찰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물론 포함한다. 그러나 더 중요
한 것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대화 형식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서
신은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상아탑 속에서 추리해 낸 철학적인 사상을
학위 논문 형식으로 쓴 것이 아니다. 개인과 교회와 사회의 삶, 땅에 뿌
리박은 삶의 문제들을 나와 너의 관계속에서 친근하고도 인격적으로 풀
어가고 있는 것이 바울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 서신이 이렇게 삶에 뿌리박은 대화체의 글이라면, 그 당시 삶의
맥락은 어떠했는가? 당시의 삶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헬라의 신비종교들
과의 관계 속에서 바울을 이해하려는 자들이 있다. 혹은 흩어진 유대인
들의 배경, 즉 헬라세계 속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배경에서 이
해하려는 자들도 있다. 또는 팔레스틴 랍비들의 정통 유대교의 배경에
서 이해하려는 자들도 있다.
물론 당시 세계가 헬라문화가 지배하던 세계였고, 바울은 시인들을 줄
줄 인용할 정도였으니까 헬라문화 (신비종교 포함)와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바울이 길리기아 다소라는 곳에서 흩어진 유대인의 후손으
로 태어났으니 헬라적 유대주의의 배경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
니라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역대 수석자라 할만한 바울이었으니까 랍비적
정통 유대주의의 배경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삶의 배경들이 예수 그리스도와으이 실제적인 만남 속
에서 변혁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꾼'이라고 하면 이를 갈던 그가
예수의 포로가 되었다. 자기가 그토록 핍박하던 예수가 바로 구주라는,
태양보다 밝은 계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한 자가 바울이었다. 그리
스도 안에서 그의 세계관이 뒤집어졌다. 그의 인격과 삶이 뿌리로부터
변혁되었다. 이렇게 변혁된 그는 그 이후로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생명의 불을 토하여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 불
지르는' 자가되었다.
그러므로 헬라적 배경, 헬라적 유대주의의 배경, 랍비적 정통 유대주의
의 배경을 연구하여 바울이 어떤 배경에서 서신을 썼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모든 삶의 배경이 그 자체로 기준이 되어 바울 서신을
판단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 모든 배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분석되고 복음으로 변혁되었다는 핵심적 사실에 비추어 참조되어야 한다
당시의 삶의 배경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혁된 모습으로 바울 서신에
나타났다면,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이런 질문
에 대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울을 단편적으로 이해(사실은 오해)하
지 않고 그를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 전체를 하나의 웅장한 건물에 비긴다면, 어느
문이 이 건물의 정문인가? 아무래도 정문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다는 사실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앞
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난 사
건(Christophany)이 그의 관점을 뒤집어 놓았고, 그렇게 변혁된 관점에
서 쓰여진 것이 그의 서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심으로 그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는 메시아(그리스도)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소위 나타난 메시아라는 예수를 신성 모독자로 생각하며 그 예수를 추종
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자였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심으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구원의 때"가 이미 왔고 구
원자가 이미 나타났다는 진리 앞에 그의 시야 전체가 뒤바뀐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세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구약시대에 예언하고 예표하던 "구원의 때", "은혜의 날"이 이미 왔고,
이렇게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을 성취하게
하시고, 그와 믿음으로 연결된 자들마다 속량하사 아들의 명분을 허락하
시는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요체이다. 바울 서신집을 보면, 바로 이
것이 설명되고 해석되고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때가 차매"오신 그리
스도가 어떻게 율법을 성취하시고,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의
를 도래케 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고, 새 생명의 공동체를 창출하시고,
또한 새 생명의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며, 그 구성원 각자는 어떻게 살아
야 하며, 또한 이렇게 '성취된' 구원이 '완성될' 날을 바라보며, 이미
성취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즉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인내하며 살아갈 것인지가 바울 서신 전체에 각각의 삶
의 정황에 맞게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제시한 '종말론' ("때가 차매")의 '정문'으로 바울이 전한 복
음의 '웅장한 건물'속으로 들어가서, 그 복음의 내영을 만끽하고 그것을
삶의 현장에 옮겨 오늘의 병든 삶을 치유하여야 할 것이다.
서두에 제기한 남성 우월론 / 여성 해방론의 문제도 일단 복음에 의해
장악되어 복음의 파노라마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살피면서, 당시
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과 관련된 본문의 전후 문맥을 관찰함으로써 풀
어가야 할 숙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