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리포트
제 9 장 마틴 디벨리우스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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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
| 서언 |
| 본론 |
| 1 디벨리우스가 연구한 사도행전의 구조 |
| 2 {Die Bekehrung des Cornelius} |
| 3 { Paulus auf dem Areopag,Sitzungsberichte |
| der Heidelberg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
| 4 { The speeches of Acts and Ancient |
| Historiography} |
|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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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지원
소속: 신학과 3년
학번: 921714
제출일: 92년11월 일
담당교수: 유상현 목사님
{제 9장 마틴 디벨리우스의 영향 }
에 대한 요약
ⅰ 디벨리우스가 연구한 사도행전의 구조
여행기록에 누가 자신의 말을 추가
ⅱ 디벨리우스의 결론은 사도행전에 있어서 역사적 신빙성은
각 단락에 따라 다르다.하지만 이러한 사도행전의
역사적 가치에 관하여 매우 부정적인 결론적 전제에
서 디벨리우스는 문체비평연구를 시작하였다.
ⅲ {Die Bekehrung des Cornelius}라는 논문에서 [고넬료의
회심]문제
--독립 설화들을 누가가 자신의 이해에 의하여 신학
적 의미가 가미되고 윤색되어 기술 되어졌다.
ⅳ { Paulus auf dem Areopag,Sitzungsberichte der
Heidelberg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 바울의
아레오 바고 연설 연구
--- 전통설화 뿐 아니라 연설에 대하여 문체비평을
적용한 사례이다.
ⅴ{ The speeches of Acts and Ancient Historiography}
(사도행전의 설교들과 고대의 역사기록)
---고대 역사가들의 역사 기술원칙과 누가의 저술
형식을 비교
서언
누가의 사도행전은 그 역사성 시비와 저술 의도에 관한 만은 논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문서(?)라 할수 있다. 초기 기독교 사회를 였볼수 있는 유일한 문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자료는 그 중요성 때문에 학자들로 하여금 많은 연구와 접근방법을 제시케 하였다.
디벨리우스는 문체비평을 처음으로 사도행전에 적용한 학자이다. 이렇게 획기적인 연구 방법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 전제가 행전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에서 출반한것은 주목할 사항이다.
확실한 것은 디벨리우스의 방법이 매우 합리적이지만 행전연구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또한 그 결과도 완전할수 없다는 것이다.
1 . 디벨리우스가 연구한
사도행전의 구조
양식 비평(form critcism)의 목표는 가능한 한 초기 교회의 삶과 혹은 예수의 사역속에서 개개의 구절과 어록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결정하려는 것이다. 슈미트(Kal Ludwig Schmidt), 불트만(Rudolf Bultmann) 등과 함께 디벨리우스(Martin Dibelius 1883~1947)는 이러한 사업에 동참하였다.
디벨리우스는 하이델 베르그 대학의 교수이자, 양식비평 발전의 선구자로써, 이 연구 방법의 통찰력을 사도행전에 적용하려 하였다.
그가 1923~1947년 사이에, 많은 소논문들을 썼으며, 그 논문은 독일의 사도행전 연구에 방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1932년 Herman Gunkel 기념 출판을 위하여, 그의 샹째 논문을 쓰는데, 이 논문에서 그의 미래의 사도행전 연구의 지침과 논리를 기술하게 된다
디벨리우스는 그의 새로운 연구방법을 stilkritik(문체비평)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는 누가가, 누가복음에서는 단편적인 전승의 배열과 구성에 주력하였으나, 행전에서는 문인으로써 더 큰 개성을 발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예증으로 각종연설들을 들고 있다.
디벨리우스는 사도행전의 구조를 여행기록에 누가 자신의 말을 추가 하였다고 주장한다. 누가가 추가한 부분은 여행기록 외에 다른 주요 전승들로써, 이들은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각각 따로 전승된 것이라고 제시한다. 그는 문체비평을 하여 그 따로 전승된 부분을 13개로 구분하였다.
자료 1 -- 13개의 독립설화는 다음과 같다.
다비다를 살린 이야기(9:36~42)
고낼료의 회심 이야기(10:11~18)
성전 미문 앉은뱅이 고침(3:1~10)
이디오피아 내시회심(8:26~39)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범죄와 처벌이야기(5:1~11)
엘루마와 바울의 다툼(13:8~12)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8:9~24)
유두고 재생(20:7~12)
세바 아들들의 불행19:14~16)
헤롯의 죽음(12:20~23)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운명(14:8~18)
베드로의 탈옥(12:5~17)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의 기적 체험(16:25~34)
디벨리우스는 이러한 독립 설화들을 누가가 자신의 이해에 의하여 신학적 의미가 가미되고 윤색되어 기술 되어졌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고醉료 회심전설'을 제시 하였다. 고넬료 회심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누가는 신학적인 문제 즉 이방인에게도 회심의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크게 확대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디벨리우스의 논리적결론은 사도행전에 있어서 역사적 신빙선은 각 단락에 따라 다르다는 것에 귀결된다. 이에 대하여 디벨리우스는 "이 모든 문제들은 문체 비평이 수행된 이후에야 해결 될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도행전의 역사적 가치에 관하여 매우 부정적인 결론적 전제에서, 디벨리우스는 '문체 비평 연구'를 시작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2. {Die Bekehrung des Cornelius}
{Die Bekehrung des Cornelius}라는 논문에서 [고넬료의 회심]문제가 본격적으로 언급된다.
디벨리우스는 이 논문에서 고넬료의 회심 전설은 헬라적인 교회에 있던 전설중에 하나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역사적이 아닌 문학적--신학적과업'을 달성하려 하고, 이러한 그의 의도로 10:9~16 에 있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환상 첨가 및, 베드로 의 연설과 그의 고넬료 방문을 세밀하게 기술함으로, 이방전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즉 짧고 단순한 전설이 누가의 신학적 목적에 의하여 확대된 전형인 것이다.
3. { Paulus auf dem Areopag,
Sitzungsberichte
der Heidelberg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 Paulus auf dem Areopag,Sitzungsberichte der Heidelberg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 이라는 1939년 하이델베르그에서 쓰여진 바울의 아레오 바고 연설 연구 논문은, 전통설화 뿐 아니라 연설에 대하여 '문체 비평'을 적용한 사례이다. 디벨리우스는 아레오바고 연설이 "전승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것들은 전승되기가 불가능하며,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가들에게서 유사현상이 발생되고,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그 내용중에 후대의 입장이 피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라서 이 연설은 30 여년전, 실제로 바울이 전파한 설교중의 하나로 이해되가 보다는, 저자 누가 자신의 시대에 이방인을 향한 기독교 설교를 위한, 하나의 모범을 제공하려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디벨리우스의 연구, 즉 이 연설들이 스토아적 사상에 근거를 둔 수많은 단상들로써, 근본적인 동질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 해석에 대하여,스칸디나비아 학자 캘트너(Bertil gärtner) 의 동질성을 입증하고, 그 배경이 구약성경과 전통적 유대 변증문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시도하여 이에 반박하기도 하였다.
4. { The speeches of Acts
and Ancient Historiography}
{ The speeches of Acts and Ancient Historiography (사도행전의 설교들과 고대의 역사기록)}은 1949년 하이델베르그 학술원에 발표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고대 역사가들의 역사 기술원칙과 누가의 저술 형식을 비교하였다.
"고대 역사가들은 ①전체적 해결책에 관한 통찰력 ②역사의 사실들을 초월하는 의미에 관한 통찰력 ③화자의 성격에 관한 통찰력 ④상황설정에 의한 도입부분에 관한 통찰력 등에 치중하였다."
고 디벨리우스는 고대사가인 투키디데스, 디오니시우스, 폴리비우스 등을 통하여 제시하였다. 디벨리우스는 이러한 자료위에 사도행전의 실재적인 연설에 언급한다.
아덴의 설교에 대하여 디벨리우스는
" 바울의 선교 역사에 있어서, 실재로 중요하지 않은 아테네가, 누가에 의해 바울 사도가 헬라사상을 사용하여 행한 연설의 장소로 선정된 이유는, 그곳이 헬라주의적 경건의 중심지 이며, 헬라 지혜의 최고 도시이기 때문이다. " 라고 주장 하였다.
안토니아 요새앞에서 백성에게 행한 바울의 연설(22:1~21)에 대하여 서도 디벨리우스는
"그가 정통 유대교 를 떠났다는 사실을 이 공회 앞에서 선언 할 기회를 얻었고 이러한 점이 저자에게 중요 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디벨리우스는 연설에 대하여서도 다음과 같든 주장으로 자기 관점을 정리한다.
"누가는 4개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그 시기의 의의를 조망하기 위하여 그의 설화에 연설들을 첨가 하였다. 그 4 개의 전환점은, 최초이자 그본적으로 중요한 한 이방인의 회심시기, 그 사도가 헬라의 영적 생활의 심장부로 침투하는 시기, 그(바울)의 선교 현장에서 떠나는 시기, 성전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유대인들과 논쟁한 시기이다.
결론
디벨리우스가 연구한 사도행전의 구조 는 "'우리'라는 형태이의 여행기록 자료에, 그때까지 전래 되어오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전승들을 누가 자신의 신학적 의도와 선교적 관점에 의하여 재 구성하였다" 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디벨리우스의 결론은 사도행전에 있어서 역사적 신빙성은 각 단락에 따라 다르며 문체 비평연구를 통하여 그 역사성을 언급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몇가지 논문을 작성 하였는데,{Die Bekehrung des Cornelius}라는 논문에서는 [고넬료의 회심]문제를 다루어서 누가의 기술형태를 추적 하였다. 그는 여기서, 독립 설화들을 누가가 자신의 이해에 의하여 신학적 의미가 가미되고 윤색되어 기술 되어졌다.고 결론을 내린다.
{ Paulus auf dem Areopag,Sitzungsberichte der Heidelberg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 에서는 바울의 아레오 바고 연설을 연구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전통설화 뿐 아니라 연설에 대하여 문체비평을 적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저자 누가의 자기입장이 바울의 열설 형식으로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 The speeches of Acts and Ancient Historiography}에서는 사도행전의 설교들과 고대의 역사기록을 대조하여, 고대 역사가들의 역사 기술원칙과, 누가의 저술 형식을 비교함으로써,누가의 사도행전은, 자기의 입장을 조리있게 엮어낸 고대의 기록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도행전의 역사적 가치에 관하여 매우 부정적인 결론적 전제에서 디벨리우스는 문체비평연구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