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족보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는 다말이라는 여인이 있는데 그녀는 시아버지를

통해 잉태하는 축복을 받은 여인입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통탄할

일이며 윤리적으로 말한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의롭

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말의 행위를 선하다

고는 말하지 않지만 의로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념

입니다.

다말은 유다의 맏아들의 아내였습니다. 이 아들은 장자의 권리를

상속 받아야 했으나 주님 보시기에 악했으므로 그의 생명을 빼앗겼

습니다. 유다의 둘째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장자권을 물

려 받도록 아들을 낳기 위해 다음의 아들을 다말과 결혼시켜야 했

습니다. 유다는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속은 것입니

다.

다말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자권을 얻기 위해 부적당

한 수단까지 사용한 것입니다. 거리의 여자로 분장하고 양털을 깎

으로 오는 유다를 유혹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아버지의 아이를

잉태하게된 것입니다. 다말은 장자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 여

인의 상징입니다.

장자권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는 최선의 길이 아니더라도 취해야 합니다. 다말은 부적당한

방법으로 장자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신성한 기록 안에

서 다말은 나쁜 이름이 아닙니다. 이 교훈은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를 사모하고 그를 추구하려 한다면, 그래서 참으로 그리스도를 얻V

으려는 길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바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말

의 행위는 유다의 왕통을 이어준 것입니다.

둘째, 베레스와 세라에 대하여 알아 보십시다(3절).

다말은 쌍둥이를 잉태했습니다.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출산하려는

순간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자

기 손을 내밀었고 산파는 큰 아들이라는 표시로 붉은 실을 매어 두

었지만 베레스가 그를 제치고 큰 아들이된 것입니다.

먼저가 나중이 되고 나중이 먼저되었습니다. 산파는 깜짝 놀랐습

니다. 이것은 장자권에 대한 좋은 예입X니다. 베레스는 장자권을 상

속했습니다. 사람은 그를 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것입니

다. 이것은 장자권이 사람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

택에 있음을 입증합니다. 다말과 쌍둥이 아들은 우리에게 장자권

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

곧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 오시면 무덤에 있는 자들이 부활합니

다. 그 부활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

중이니(고전 15:23-2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장자요 또한 부활에

서 장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장자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은

장자들의 교회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장자권을 에서와

같이 허술히 여기지 마십시요.

셋째, 라합을 생각해 보십시다(5절).

라합은 여리고의 여인입니다. 여리고는 하나님에 의해 영원토록

저주 받은 땅입니다. 라합은 그 땅의 창녀였습니다(수 2:1). 세상

에서 이 여인보다 더 형편이 나쁜 사람도 있을까요. 그러나 라합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창녀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나의 원칙을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의하여 점령 당한 여리고는 라합의 가족과 그의 소유를 제외하고는

모두 멸망 되었습니다. 라합이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이켰기 때문입니다(수 6:22-25). 그녀는 하나님과 그 백성에게

돌이킨 후에 유다 지파 군대의 인도자요, 정탐군으로 여리고에 보

내졌던 살몬과 결혼했습니다. 보아스라 이름하는 경건한 사람을 낳

으므로서 라합은 그리스도의 족보에 든 것입니다..

이 원칙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회중에 들려면 먼저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던지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합당한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또

한 그분의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이킨 사람들입니다. 그

리고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이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아

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경건한 자녀를

낳아야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

인으로서 전도해야 한다는 명령에 등한해서는 안됩니다. 전도만이

영적 참 자녀를 낳게됩니다.

넷째, 보아스와 룻을 생각해 보십시다(5절).

보아스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면 룻기를 읽어야합니다. 룻기는 참

으로 좋은 이야기입니다. 보아스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룻은 교회

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아스와 룻을 만나면 친근해집니

다.

룻은 나오미의 며느리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을 따라 자식과 함

께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에서 살았습니다. 이방여인 둘을 두 아들

의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이방여인

과 결혼하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 하십니다. 남편도 죽고 두 자식도

죽었습니다. 즉 그들은 장자권을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 가기를 작정했습니다. 룻은 시어미를 따

랐습니다. 고향에 돌아 왔지만 기업이 없습니다. 그 기업을 이어준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친척의 기업을 잇기 위해 그 사람

의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족보에 든

조상이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장자권만이 아니라 다른 사

람의 장자권도 귀중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스

도는 하나님의 장자이시지만 또한 우리의 장자권을 구속d해 주신 분

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나오미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상징입니

다. 비록 하나님께로 돌이켰지만 구속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의

기업을 이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기를

소원하지만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공

로가 없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으

로 주신 구속의 은혜를 등한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과연 사람이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 2:3)" 무서워

심판의 결과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보아야 할 것은 룻입니다. 룻은 좋은

여인이지만 큰 결점이 있습니다. 그녀의 근본은 근친상간에 속합니

다. 룻은 모압 족속입니다. 모압은 소돔에서 구원 받은 롯이 그의

딸들과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입니다(창 19:30-38). 그래서 주님

의 총회에서 제외되었습니다(신 23;3).

룻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 올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

의 백성되기를 갈망했습니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배

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h의 나라를 갈망하

면 그리스도의 장자권 안에 들어 올 위치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룻

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경건한 사람인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

윗왕의 할아버지인 오벱을 낳았습니다.

보아스는 재미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나

안 여인으로서 창녀였던 라합이며, 그의 부인 룻은 모압 여인입니

다. 둘 모두 이방인었습니다. 그 보아스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연결 되었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 이것입니

다. 우리의 미천한 근본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리 주님 그리스도

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 하십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