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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학 (폰 라드의 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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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폰 라드 이전의 구약신학
폰 라드 이전의 구약신학을 말한다면 종교사학파의 전성기를 말하나 그의 신학도 종교사학파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넘어서고 있는 신학이다. 단지 그들의 신학이 조직신학적 테마중심의 역사적 기술을 시도한 구 약신학이라면 폰 라드는 역사적 문제를 중심한 조직신학적인 기술에 더 관심을 갖는 방법을 취했다. 그와같 은 시대에 활동한 사람들의 학문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신학의 특수성을 발견할수 있으리라 본다.
1. 아이히로트의 신학
아이히로트의 신학은 구약의 종교와 신약의 신앙세계를 연결하는 긴장관계에서 형성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구역과 신약을 꿰뚫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약사상이다. 그리고 이 사상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신앙 사상세계에 나타난 기본적인 문제들의 역사성을 밝혀 그 역사적 근거위에다 사상체계를 조직화 시키 려했다. 결국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동시에 세계의,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이다.
2. 프록쉬의 신학
그는 구약성서가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에서도 '기독론'을 찾고자했다. 실지로 철저하게 구약신학의 의미성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키고 있다. 또한 구약의 전체역사를 계시와 신앙의 역 사로 보았다.
3. 프리젠의 신학
그는 성서의 주인동인 예수 그리스도와 구약성서와의 관계를 설명함으로 시작했다. 구약신학의 목적을 밝 히기를 구약의 계시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발전해 신약의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보여주는지를 가르치 기 위한 학문이다라고 했다. 아이히로트가 계약을 강조한반면 그는 신앙을 강조했다.
그의 신학의 특징은 ①개인의 신앙을 중요하게 언급했고 ②윤리를 신학속에 포함시켰다.
Ⅱ. 폰 라드의 저작과 위치
고등학교때 새로 부임한 젊은 교사의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구약에 관해 공부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독일 민족주의의 생각을 가진 교회 사람들이 유대인에 대한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 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구약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학문을 할것인가? 목회를 할것인가?의 갈등속 에서 학문으로 나아갈것을 결정하고 여기저기 대학에서 학문에 전념했다. 여러 논문과 저작이 있었지만, 1935년에 나온 "6경의 양식사적인 문제"는 훗날 그의 대작인 "구약개론"을 이룩하기 위한 기초작업이 되었 다. 그의 구약개론 강의는 가장 인기있는 강의였고 늘 목회자로 나서지 못한 아쉬움으로 학생들에게 설교 하는 일에 관심갖기를 권했다.
그의 구약신학 연구가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그의 신학적 위치는 가장 참신한 것으로 그의 "구약신학"이 나온이래 아무도 그의 신학서를 능가할만한 구약신학서를 내지 못했다.
②구약,신학 연구자체안에 그는 독특하고 가장 참신한 학문방법을 사용했다. 즉 구약신학형성을 전승사적인 입장에서 추구했다.
③그의 구약신학 연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존적 신앙을 신학적으로 해명해보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라는 것이다.
Ⅲ. 폰 라드의 신학형성
그에게 학문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프록쉬와 알트인데 그의 구약신학을 형성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알트였다. "이스라엘의 유구한 역사는 전승되어진 역사다"라는 전승사적인 신학을 그는 형성했다. 알트는 이스라엘 전승은 암픽티오니의 성소를 중심으로 대대로 유전되었다고 했고 노드는 중앙성소가 이스 라엘에 있어서 특별한 의의를 가져 후대로 내려갈수록 더욱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알트와 노드 의 전승사 이해는 그 전승의 핵심되는 문제가 신학의 문제였다. 이것에 폰 라드의 신학은 이스라엘 역사를 구성하는 신앙이 어떻게 그들의 삶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가를 밝히려 했다. 그때까지 문서설의 연구목적 은 어떤 문학적인 장르인가의 문제였지만, 전승사적 연구는 신학적인 이유를 묻게되었다. 그가 "6경의 신 학"을 말한것은 각 문서들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공동예배를 중심하여 발전되었는가를 신학적으로 살펴보고 자 함이었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 전승을 구약 문서기자들이 어떤 신학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가에 관 심을 기울였고 이것이 그의 신학을 형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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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은 그의 예언자의 신학을 형성함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언자 신학은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대 이 스라엘의 전승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가 전승사의 신학을 노력한것은 구약의 구원사
의 전승이 어떻게 신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연결되었는지를 다루기 위해서였다.
Ⅳ. 폰 라드의 신학의 과제
1. 과제의 다양성
성경은 오랜시간동안 쓰여졌기에 언어와 사상등이 각 시대에따라 뉴앙스가 달랐다. 구약신학의 과제가 무 엇인가? 라는 물음에 덴탄(R.Dent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①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산 신앙을 이해해야 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한다. ②구약의 종교사상을 연구 해야 한다. ③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종교에 대해 관심해야 한다. ④히브리 사람들이 가졌던 윤리적 원 칙을 밝혀야 한다. ⑤히브리인의 경건이 어떤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아이히로트는 구약신학의 과제를 이스라엘의 신앙세계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보고 그러기위해 이스 라엘 주변을 둘러싼 종교적 환경과 이스라엘의 신앙이 신약성서와 어떻게 종속되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계약'이 구약의 본질이라 생각하여 구약신학의 과제는 이 계약사상을 역사적, 조직적으로 기 술함에 있다고 보았다.
2. 야훼의 역사상 행동
본 라드에게 있어서 구약신학의 과제는 '이스라엘 자신이 야웨에 대해 직접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즉 신앙고백이 무엇이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역사신학위에 기반하고 있는데 그것은 역사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행동을 보이심으로 그들의 사상이 형성되었음을 알수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 사를 그들의 신앙고백과 연관시켜 생각했다. 그리고 6경의 역사를 '구원사'의 입장에서 이해했다. 그러면서 '신앙세계'가 결코 구약신학의 과제가 될수없고 이스라엘을 상대하여 말씀하신 '살아 움직이는 말씀'을 구 약신학의 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보았다. 그는 말씀과 행동을 서로 상관되어 있는것으로 보고 신앙고백이 종교사상을 만들어 낸다고하여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을 밝혀냄을 과제로 삼았다.
3. 신앙고백의 신학
그의 신학의 기초적업인 6경의 신학은 구원사의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 신앙고백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야웨"란 말로 하나님의 구원사의 사건을 표현하고 있다. 또 여기에는 종교사상이나 개념의 언급이 없고 야웨가 어떻게 그의 구원행동을 보여주셨는가를 고백하는 내용뿐이다. 그리고 성서 기자들은 6경에 나타난 이런 신앙고백들을 중심하여 이스라엘의 삶과 정신을 계 승시키려 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출애굽이 대표적인 구원사건이지만, 가나안에 들어간것도 구원사의 입장 에서 이해했고 사사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민족사에서 실현시킨 대표적인 지도자로 이해했다. 고대 신앙고백이 야웨의 현 행동을 중심하여 진것같이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역사 자체가 고대 신앙고백의 정신 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왕국시대의 역사이해도 마찬가지이다.
Ⅴ. 폰 라드의 신학방법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을 찾는 것이 구약신학의 과제였기에 다음의 몇가지 질문에 대답함에 있다.
1. 왜 신앙고백이 과제가 되는가?
폰 라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자기들의 신 야훼를 믿고 있었느냐? 또 그 믿음에 의한 삶과 그 삶의 표현과 핵심을 문제삼았다. 그가 구약을 신학적으로 보기 시작했을때 구약자료들의 신학적인 의도가 무엇인가에 먼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중 6경을 이루고 있는 자료들은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고 했고 이 이스라엘 초기의 신앙고백이 계속해서 구약전체에 연속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예로 구원사의 신앙고백은 사사기, 다윗, 예언서에까지 일관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견해로 구약의 역사, 예언, 시문학등 구약전체 자료에서 그들의 신앙고백과 그 고백의 사정, 내용및 그 표형양식을 밝히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갖었던 것이다.
2. 신앙고백이 어떻게 형성, 전승되어 갔는가?
이스라엘은 처음의 역사에 있어서 말씀보다 사건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출애굽을 통한 그들의 신앙고백이 역사의 새로운 사건을 접할때마다 첨가되었다. 신명기적인 역사신학은 때때로 그 자신의 신학적인 반성을 자기보다 더 오래된 전승의 복합체에다 첨가시켰다. 과거의 한 지파 또는 지방의 전승이 이스라엘 전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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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면서 그 해석이 달라지면서 확대되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통일된 원칙에따라 전승자료를 수집하 고 정리하게 되었다. 이 원칙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의식이었다. 폰 라드는 전승의 역사형성과정이 한 전 승이 형성되면 새로운 전승이 다른자료에 의해 첨가된다고 밝혔다. 이런것은 그 역사적 현실이 요청하는 신학적 해석 때문이었다. 그래서 구약신학을 형성하는 방법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역사적 현실에서 어떻게 신학적인 사고를 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Ⅵ. 폰 라드의 '역사'이해
그는 6경신학에서 예언자의 신학에서 역사와 계시의 상관관계를 밝혀 계시의 역사성과 역사가 계시의 장소 임을 밝히려했다. 신명기 26:5-9을 역사적 신앙고백이라고하여 역사는 계시의 사건없이 계시역시 역사적 바 탕을 떠날수 없음을 설명했다. "구약성서가 역사서"라고 한것은 그가 본 역사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여기 서 역사의 내용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구원행동의 기록으로 보고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원리와 방 법을 분석하면서 그의 역사이해가 구체화되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이해는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느 냐가 아닌 하나님이 어떻게 무엇을 배후에서 일하고 행동 하셨느냐가 관심사였다라는 것이다. 영웅담이나 다윗왕위 계승사에서도 이 모든 얘기들속에 그 배후에 숨겨져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러 한 기록들을 남겼다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역사를 이끄시고 움직이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생 각했다.
Ⅶ. 폰 라드의 '지혜'이해
그는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지혜라고 보고 속담과 격언을 연구했다. 속담은 생활의 슬기를 담은것으로 둘다 교훈의 자료가 된다. 이것은 어떤 논리에 담겨 있기를 싫어하고 해학으로 인생의 밝은면을 보여준다. 그들의 지혜는 왕궁에서도 발달된 자리를 찾아볼수 있다. 행정, 인사처리, 왕에대한 지혜가 실제로 필요했 을 것이고 그 형식은 직설법과 속담의 형식을 취했다. 특히 잠언에서는 적절한 말과 침묵에 대한 교훈이 많은것으로 봐서 주변나라들로부터 궁중지혜를 배운것같고 시민들을 위한 지혜와 각각 다르게 존재했다.
그들의 지혜의 특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라는 것이다. 그 지혜는 비교리적이고 엄 격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생활, 시민생활을 어떻게 올바르게하여 이상적인 인간형성을 할수 있 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일상생활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자는 이스라엘의 삶의 영역전부가 야웨와 관계되었다고 생각했고 후에 삶의 경험을 야 웨의 주권과 관련시켜 신학화했다. 폰 라드는 지혜는 곧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들이 이해하였고 후에 지혜 는 그 자체를 신의 위치에다 이끌어 올려 심지어는 그것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하나님처럼 인격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포로후기애는 지혜는 한 개인을 벗어나 우주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Ⅷ. 폰 라드의 '신앙'이해
폰 라드는 아브라함의 기사에서 신학적인 판단보다 신앙의 사건으로 보았다. 즉 아브라함 기사의 배후에 있는 신앙의 문제에 관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나타난 신앙을 "의지의 행동" "하나님의 지배하심에 대 하여 그 공간을 드리는것"등으로 설명하며 이러한 수동적, 절대의지의 태도가 신앙이고 그 태도를 하나님 이 의롭게 여겨주신다는 것이다. 또 신앙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고하여 아브라함과 하 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바르게 만드는 것이 "신앙"이라고 보았다. 야웨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받아들이 는 신앙만이 하나님과 정당한 관계를 만든다. 그는 이스라엘 족장기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스라엘 신앙이 해의 가장 원리적인 것을 보았다. 또한 출애굽 사건에서도 이스라엘의 신앙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관심가 졌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결과라기보다 하나님이 저들을 위해 행동하시는 일을 다만 보고만 있 는것이다. "거룩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이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을 도와주심을 믿는 신앙사상으로 보았고 이러한 신앙을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아브라함 기사에서 그는 신앙이 야웨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관계성에서 성립한다고 했는데 이 거룩한 전쟁제도에 관 해서는 그 관계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역사상의 사건과 관련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구약의 "신 앙"의 문제를 오직 구약에서만 국한된 문제로 보지않고 신약의 신앙과 직결되어 한 통일된 기독교 사상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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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폰 라드의 '성서'이해
폰 라드는 신약과 구약을 전체에서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와의 관계성을 상론했 다. 그가 구약과 신약의 관계성을 논술하는 출발점은 "구원사"였다.
⑴구약성서를 구원사의 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구약에 나타난 역사기록이나 예언자의 기록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사의 사건에 대한 증언으로 보았고 구약에서의 계시는 항상 말씀과 행동으로 함께 나타나 "역사는 말씀으로, 말씀은 역사되었다"라고 말했 다. 구약의 전승들을 볼때 계속해서 신학적인 사고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구약에 나타난 사건들을 자 신을 통해 이룩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의 사건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최종적인 표준을 세웠다.
⑵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사가 신약에 계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사는 신구약 성서에서 구조적인 근사점을 가지며 말씀과 행동으로 표시된 하나님의 계시를 구약과 신약에서 공통으로 볼수 있다라는 것이다. 구약성서를 유형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약성서 기자들에 의해 신구약과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첩경으로 삼았다. 예로 요셉의 일은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실 하나님 의 보다 큰 계획이 장차 실천될것을 희미하게나마 알려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은 항상 그속에 미래를 향한 약속이 함축되었고 그 약속은 그리스도에게와서 최종적으로 성취되었다.
⑶구약의 약속은 그 역사안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그리스도에게서 최종적으로 성취되었다라는 것을 하나의 해석학의 방버으로 말할수있다. 그래서 구약주석가들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방향에서 해석해야 한다. 당시 이사야의 하나님의 계시는 그 시대를 넘어서 미래 어느 시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⑷구원사의 사건에서 신약과 구약이 상관관계를 가지며 통일성을 가진 한권의 책으로 신구약 성서를 읽게 된다. 구약의 예언적인 메시지는 예수의 구원사 사건에 적용시켜서 비로소 그 참뜻을 알게된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성을 기독교 신앙고백의 입장에서 시종 여일하게 다루고 있는것이 폰 라드의 강한 특색이다.
Ⅹ. 폰 라드의 신학비평
1. 폰 라드 신학에 대한 콘첼만의 질문
⑴폰 라드의 문제설정
①구약과 신약의 신앙이 어떻게 동일한 것으로 이해될수 있는가?
②구약성서가 신약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함이 문제다.
③폰 라드는 "구약의 증언세계"를 구약신학의 과제로 삼았는데 그가 말한 "증언의 세계"는 과연 구약에서 통일된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④그가 말한 "구원사"의 통일성이 어떻게 성립되는가?
⑤역사적 전승의 애석, 그것을 해석의 내용으로하는 이 방법이 과연 신학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또 그것이 의무적이라 한다면 어느 정도의 것이 적당한가?
⑵구약과 신약의 관계
본 라드의 구약성서를 올바르게 읽으려면 구약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 가야한다고 말한것에 대해 "예 수 그리스도의 나타남이란 무엇인가?"오 물었고 신약적인 구원사건을 만남에서만 텍스트의 새로운 말을 알수 있다고 한다면 고대로부터 내려온 "영적인 주석"의 한계성은 어디에 두어야 할것인가를 물었다. 폰 라드의 논술에 나타난 구약과 신약사이에 구멍이 있다는 것에 대해 주전 587년과 주후 70년 예루살렘 파 괴는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를 물었다. 폰 라드가 믿은 역사이해에 대해서도 이것은 오히려 불연속적인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았다.
⑶율법
폰 라드의 율법이해에 있어서 신학적인 의도와 역사적인 존속성의 부조화를 지적했다. 그리고 율법이 지 금도 구원으로서 선포될수 있는것을 물었다. 폰 라드의 "율법은 그 유일한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처 음으로 계시되었다." 에서 예수의 사상이나 바울의 사상과는 부합된다고 지적하고 전제를 가진 역사개념 은 구약성서를 신학적으로 진실되게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계약으로 계약의 기반에서 벗어날때 율법 의 진실성이란 상실되고 그러면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은 정신적, 역사적 상태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했다.
①신앙고백이 신약에 나타난 신앙의 개념속에 포함될수 있는가? 아니면 신약성서로 형성하는 것인가?
②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특수내용을 제외하고도 신앙이 형식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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⑷신앙과 이스라엘
콘첼만은 신학의 본질이란 주어진 "신앙"을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면서 교회는 신앙고백의 문귀와 개념들에서 항상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구약과 관련하여서 신앙고백속에 어떤 역 사적인 과정이 서로 얽히어 있는가를 물었다. 사상영역에서 이스라엘의 종교사상의 그 시대적인 동기가 흘러 들어갈 수 있음을 부인하는 폰 라드의 태도를 물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스라엘 자 신이라고 했다. 신약에서 새로움을 이해하려면 구속사적인 개념이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중 요한 점은 교회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요소라고 했다. 약속과 완성의 관계는 직선적인 것이 아니고 변증법적이다라고 했다.(갈 4:4)
2. 콘첼만의 질문에 대한 폰 라드의 대답
폰 라드를 놀라게 한것은 다음과 같았다.
①폰 라드를 주석가로서 이해하지 않고 교의신학자로 본것에 대해서 주석가는 그의 과제의 고유성을 의식 하며 그의 특수한 역사적 물음을 말하게 된다. 여기에 대해 교의학자는 주석자와 함께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주석가의 길을 걸어가야 할것을 피력했다.
②"약속의 성취의 이해는 직선적으로 볼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보어야 한다."라는 말에 누구에게라도 관심을 갖게 하고싶지 않다라고 했다.
③"신구약 성서의 변증법적인 관계성"에 대해 도대체 직선적이니 변증법적이니 하는 것이 서로 배타적인 모순이라 함이 어디에서 온 지식인가?라고 물었다.
④자신을 반대하기 위하여 루터의 글을 인용한 것은 도대체 이해할수 없다고 했다.
⑤또 묻기를 폰 라드가 콘첼만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근거에 대한 것이라는 것이다.
⑥콘첼만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나 불완전한 암호는 보지 못하고 사건만을 보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현대사에서 구약성서의 역사의도와 기술을 완전히 파악할수 없는 한계를 고백했다.
⑦콘첼만이 역사가 가진 "사실의 근본성"에 대한 문제를 현대사의 입장에서 설명한 것을 유감스럽게 표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케류그마 지향의 역사성 추구를 포기하지 않은것을 밝혔다.
⑧구약성서가 보여주는 역사의 지평선을 이교적인 신화로 동일하게 취급하려 했음을 폰 라드는 지적했다.
3. 바아 교수의 비평
폰 라드와 아이히로트를 비교하면서 폰 라드가 구원사 일변도로 그의 구약신학을 서술하고 있음에 대해 그 가 설명한 "신앙세계" "정신세계" "히브리 개념"등이 아이히로트가 설명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 다. 그리고 폰 라드가 자신의 연구방법에 충실하려면 희랍사상과 비교하여 서술할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 람들이 직접 야웨에 대해 선포한 것에 기초하여 상존해야 될것이라 충고했다. 그리고 그가 낡은 전통들을 새롭게 재현하고 현재화하려는 것과 그가 제시한 해석학적 방법이 다른 학자보다 설교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것이라 말했다. 그의 가장 기본적인 약점으로 교의학과 긴밀한 관계를 상실한 것을 지적했다. 그 러므로해서 비롯될 불트만의 해석방법과 유사하지 않을지와 또 교리적인 명제들을 짜 맞추려고 하지 않을 지에 대해 지적했다. 폰 라드가 창조설화를 부차적인 것으로 해소시켜 버리는 구원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 가 정당한지를 물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그의 약점이 다른 학자들과의 진지한 대화의 결핍임을 밝혔다. 그 리고 아이히로트와 폰 라드의 신학방법이 서로 결부되어야 할것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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