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느낌의 문제
일상 생활에서 전개된 정해진 일의 번복이 결혼을 파탄으로 이끄는 중요한 원인으로 되고 있다. 그러나 이 권태감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인식될 수 없다는 면이 있다. 결혼 생활에는 작은 불만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금전, 여가활동, 친구, 부모, 배우자의 부모, 육아 등에 관한 두 사람 간의 의견의 차이나 대립은 심신의 피로를 초래한다. 장래에 대한 꿈은 사라지고 사모하는 정은 식어지고 만다. 결혼 당초의 달콤함이나 즐거웠던 생활은 과거의 것으로 되고 만다. 어떤 커플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하자.
남편은 "마치 다람쥐의 통(새장)에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챗바퀴 돌듯 계속 뱅뱅돌고 있을 뿐이며 한 발짝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기 때문에."라고 호소한다. 그에 대하여 아내는 "지겹기 때문이예요. 나로서도 같아요! 그릇씻고 기저귀를 갈고, 청소를 반복하는 등 전혀 재미있는 것이 없어요. 결혼 생활이 이같이 멋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반발한다.
결혼하여 매일의 정해진 일에 피로해지고, 마치 죄수인 것처럼 느낀 적인 한 두번은 있을 것이다. '맷돌로 코를 갈아 붙인다'라는 영어 표현이 있지만, 이것은 '정해진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한다'라는 의미의 말이다. 다만 이같이 맷돌을 돌리는 것과 같이 나날의 일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감정을 순화시키고, 꿈을 제거하며, 연모의 정이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소멸시키고 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이 정해진 일의 반복은 필요한 자극이나 신선함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상대에 대하여 지겨운 감을 느끼게 되면 상대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또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하는 생각도 나게 된다.
이러한 지겨운 느낌에 사로잡혀 있으면 마구 무언가 보다 즐거운 시간을 찾아서 모험적인 것에 몸을 던지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러한 때에 바람을 피운다든가, 바깥 일에 취업한다고 하는 사태가 생긴다. 개중에도 똑같은 날이 매일 계속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예상될 수 있으므로 안심한다고 하는 사람, 정해진 일을 하는 데에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도 자극이나 즐거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과도 다른 방법에 의해서 얻는다. 또 지적인 생활이라든가, 극히 드문 휴가 여행을 통해 지루한 감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속에서 자극이나 변화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결혼한 경우에는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비난의 말이 서로 교환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언제나 분주하게 말하고 집을 비울뿐이예요. 조금쯤은 긴장 이완(relax)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긴장을 풀고 싶어요. 하지만 매일같이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지루해요."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조금쯤은 계속성이 있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조금쯤은 모험심이 그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었어요. 어떤 상대와 결혼해도 말예요."
그런데 사소한 문제도 해결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거기에서 지겨운 느낌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벗겨진 벽지는 더욱 싫증나?" "돈이 없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지!" "옷장의 내 양복을 보고 있으면 지겹게 되어요!" "어느 것이나 다 싫어!"
밖에 나가지 않을 때 집에 '틀혀 박혀 있다'고 하는 느낌을 품고 지겨운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러한 것에 의한 지겨운 느낌은 아이들 때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무엇이나 할 수가 없다.'라든가 '누구와도 놀 수가 없다.'와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며, 지루하다고 호소하고 불만을 품는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집속에서 자신에게 흥미가 있으며, 그러면서도 부모에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과 같은 즐거운 것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밖에서 무언가 즐거운 것을 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그러한 호소에 대하여 부모가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거나 하면 부모의 주의를 자신에게 향하게 하기 위해 비난받는 일조차 하며 여하튼 무언가 자신으로서 즐거운 것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거쳐 성장하고 결혼한 경우에 한편의 경험과 똑같이 집에 틀어박힌 생활로 지루하다. 집속의 즐거운 것은 침대 속에서 즐거운 것이 전부이며, 기타의 일은 즐거워 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더불어 웃고, 더불어 즐기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TV를 보고 있는 수동적인 즐거움이 충만한 것이다. 혹은 언쟁을 많이 할지도 모른다. 싸운다는 것으로 상대의 관심을 자신에게 모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밖에 놀러나간다.' 밖에서 즐거운 것을 구하고,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자극이나 부터의 자극이나 즐거운 때가 주어지기를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일에 따르는 지루함은 때로는 상대로부터 거는 기대와 관계가 있다고 말해도 좋다. 많은 결혼에 있어서 남편은 밖에서 일을 하며, 아내는 가사,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기대되고 있다. 이 기대감이 오늘날 상당히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아내들은 밖에서 일을 하며, 가사를 도와주는 남편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러한 역할에 대한 기대만은 그다지 변하고 있지 않다. 적어도 많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계속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대체로 집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집에 사는 사람보다도 많은 자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의 자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은 그러한 생각에서 반감이 싹터간다. 다른 한편 집에 있는 사람은 지루함에 사로잡혀 있으며, 밖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즐거운 때를 보낸다고 보고 부럽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여성의 불만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남편은 언제나 여행을 할 수 있고, 손님 접대를 즐겨하며, 직장에서는 섹시한 여성에게 시중받고 있는데, 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같은 '맷돌'을 돌리고 있을 뿐이죠"
이에 대해여 남편은 이같이 반론한다.
"집에서는 친구들과 언제나 수다스럽게 즐기고 있으며, 좋아하는 레슨을 받게 되며, 좋을 때에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지만 이 나는 어떻다는 말입니까? 언제나 일. 자신이나 부하의 궁둥이를 계속 두들겨 주고 있는 매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같은 자유를 원했던 거예요!"
이러한 '자신의 생활은 더욱 지루했다'고 생각하고 상대와 비교하는 태도에는 애정이 결해 있다.
'나는 비굴하다'는 느낌이나 표현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될까를 가르쳐 주기 바란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당신이 지겹다'고 하는 표현은 "나를 즐겁게 해주기 바래요.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함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같이 지겨운 감을 상대에게 전하는 데에는 모험이므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모험이라고 해도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예를 들면 작은 불만이 상대의 분노에 찬 태도로 보이게 되는 등)내버려두거나 하면 지겨운 감이 급히 확대하는 법이다. 혹은 도피적인 행동으로 달리거나, 별거라든가, 이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반응 방식
욕구의 대립, 가치관의 어긋남, 위기적 상황 등과 같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일까? 그 반응 방식은 대개 다음 5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첫째로 문제에 대응한다는 방식이다. 인간은 모든 문제에 대응하는 기능을 다소라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진행하고 있는 사이에 그 문제에 압도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질병에 걸렸을 때 그 중상이 치료될 때까지 견딘다든가, 비참한 감정이 조용해질 때까지 견디는 것이 가능하다. 또 변화가 없는 나날의 생활을 휴일이 올때까지 참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이 견디는 것, 참는 것에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문제가 이윽고 종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지겨움이라는 문제는 사태 나름대로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요구된다. 물론 이같이 문제에 견디고 기다린다는 대응 방식은 몸이나 마음도 또한 정신적으로도 피로해지기 때문에 거기에도 견디는 힘이나 사고가 필요하다.
둘째는 문제로부터도피한다는 반응 방식이다. 심신 모두 문제에 등을 돌린다는 반응이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로부터 도피한다. 또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피하고 마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특별한 견해나 의견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문제로부터 피한다는 사람도 있다. 더우기 무언가 결단을 하기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정보를 구하기 위해 문제로 부터 일시적으로 몸을 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세째로 문제를 무시하는 반응방식이다. 위기적인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 혹은 위기에 이르기 전의 징후를 무시한다. 예를 들면 이가 지독하게 아픈것과 같다. 그것이 중대한 증상의 징후일지도 모르지만 무시하고 만다. 아내 언동의 급격한 변화는 부부관계에 있어서의 문제가 위기적 상황으로 될 것이라고 하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한다. 배우자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이 다음에서 다음올 계속되어 가는 것도 부부 관계가 위기적 상황으로 되어가는 징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은 참을성이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배우자의 어리석음을 듣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람도 문제의 징후를 무시한 것이다. 중대한 사태(예를 들면 배우자가 가출한다는 말이 나오는 등)로 되어서 비로소 문제를 인정한다.
네번째로 문제에 대해서 언어적으로 공격한다는 반응 방식이다. 예를 들면 "한두 마디, 말해 봐!" "나에게 그런 것을 하게 하지말아!" "복수를 해주겠어!"등과 같은 표현이 좋은 예일 것이다. 공격적인 반응 방식에도 긍정적인 면도 있다. 위기적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는 좋은 접근 방법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격적으로 되는 것으로 의지력을 동원하여 문제에 부딪혀본다든가, 중병과 싸우는 것이 가능하며, 그 결과 문제를 극복하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대응 방식에 의해서 결혼의 위기를 벗어난 커플이 적지 않다.
다섯째로 문제에 참여하는 반응 방식이다. 이같은 반응은 인간은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신념에서 생긴다. 문제에 '참여하는' 데에는 문제에 솔직하게 대처하는 용기가 필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노력이 요구된다. 더우기 지금까지의 사고 방식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을지도 모르며, 상대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문제에 반응하는 몇 가지의 패턴을 보아 왔지만 친밀한 부부관계를 구축해 가는 데에는 깊은 관계, '참여하는'것을 빠뜨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다. 사랑에 의해서 맺어진 친밀한 부부관계는 단순한 어버이다운 친구 관계와는 다른 것이다. 각각의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때 그때 교류한다고 하는 관계는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서 깊은 관계, '참여하는' 것에 의해 보다 깊은 관계를 찾으며, 또 그때문에 노력하려고 한다는 동기를 높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또 각각 개인의 인생의 목표나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우기 이같은 참여하는 자세를 가진 커플은 절망적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문제를 자신들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는 메니저, 카운슬러 등 전문가의 원조를 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같은 커플은 자신들의 성적 정서적 욕구에 눈치채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이같은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이나 상대의 문제에 대혁하고 해결을 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 해결을 가져다 주는 여섯 가지 단계
많은 사람들은 공식을 믿지 않는 것 같다. 문제는 상황에 개인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기존 공식 등은 문제 해결에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익한 공식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부터 보이는 공식은 대부분의 문제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유동성이 있는 것이다. 다음 6가지 단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공식이다.
1. 징후를 알아차린다.(징후에 눈치챈다)
2. 문제를 명확히 한다.
3. 해결 방법을 몇 가지 탐색한다.
4. 결단한다.
5. 행동한다.
6. 행동 과정과 결과를 평가한다.
그러면 이들 단계를 해설해 보기로 하자.
첫번째의 스텝은 징후에 눈치채는 것이다. 징후에 눈치채는 것으로 문제의 발생을 깨닫는 것이다. 징후에 대해 어느 날 갑자기 눈치 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편이 출장중에 아내가 짐을 정리하여 올라간다. 이러한 경우 징후와 동시에 문제가 돌연 부상한다고 하는 상황이다. 징후를 서서히 눈치채는 경우도 있다. 한쪽 혹은 쌍방이 상대에 대하여 성적 관심을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된다는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적어지게 된다든가, 이러한 행동은 대개 상대로부터 떨어지고 싶다는가, 헤어지고 싶다고 하는 기분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싸움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의 징후를 눈치채게 되는 계기로 된다. 예를 들면 입싸움이라든가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과격한 불만의 표현, 자기 변호나 공격적인 태도 등이 증가함으로써 문제의 존재에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싸움이나 상대를 피하는 것이 문제의 중심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뭔가 다른 문제가 있다는 징후이다. 욕구. 의견. 가치관의 대립이나 갈등이라고 하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두번째 단계는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문제를 명확히 하는 데에는 지금까지 무?가 어떻게 발생해 왔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는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누구의 어떤 욕구가 충족되어 있지 않은가, 누구의 어떤 욕구가 무시되고 있는가, 어떤 가치관이 대립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커플에서나 무언가 이상한 일이 있을 때에는 쌍방 공히 무엇이든지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히 하며 알고 있다고는 한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커플이 자신들의 관계에 강한 불만을 느껴 카운슬링을 받으러 왔다. 이미 별거하고 이혼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서로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이혼을 결행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고 왔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생활이었다. 서로 대화하고 있는 중에 쌍방의 욕구의 차이가 문제의 중심이라는 것을 이해했던 것이다. 약간 더 이 케이스를 상세히 소개해 보기로 하자.
죤은 지루해서 즐겁지 않다고 호소했다. 아내는 일하러 나가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여러 가지 일이 가능하여, 바라는 것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죤은 비지니스 컨설턴트로서 곧잘 출장을 갔다. 일에서 얻어진 자극이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그에게는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진도 즐겁지 않으며, 불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해도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즐겁게 하고 있다. 문제는 남편 죤이 만족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불만이며, 비지니스의 세계에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비판적인 남편에 대하여 진은 점차 변호적 자기 방어적으로 되며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몸을 빼게 되었던 것이다.
이 커플은 쌍방의 욕구에 각각이 응하고 있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남편 쪽은 아내 이상으로 즐거움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아내 쪽은 남편 이상으로 조용하고 단순한 생활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은 이 쌍방이 욕구 차이 그 자체가 두 사람을 끌어 들이는 요인이지만 어느 사이엔가 각자가 상대에 대하여 품고 있는 이미지에 상대가 맞춰 주기를 바라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커플의 결혼관이 대립하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아내에게는 전통적인 가정이나 가족 생활이 중요했던데 반해 남편은 로맨틱하고 즐거운 생활을 꿈에 그리고 있었다.
이 두 사람 사이의 싸움은 그때부터 몇 년이고 계속되었다.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고, 쌍방이 자신의 가치관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 두 사람은 문제가 어디 있으며, 어떤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번째 단게는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것이다. 브레인 스토밍을 우선 행해 보면 좋다. 그때의 다른 일은 제쳐 놓고 먼저 판단을 삼가하도록 노력하는 쪽이 좋다. 이것은 좋은가, 나쁜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상상력(imagimation)에 맡기고 창조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은 기업이 싱크 탱크(think tank:사고 그룹)에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작업으로서 곧잘 행해진다. 이유나, 실용성에 관계없이, 어떤 아이디어도 관계없이 리스트를 뽑는다. 즐겁고 재미있는 방식이다. 창의성을 자극하며 생각하지 못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두뇌 선풍(브레인 스토밍)의 작업이 끝났다면 이번에는 하나하나의 해결책의 장점 단점을 생각한다. 그리고 각각의 해결책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전직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에 긴안목으로 보면 어떠한가, 시간, 에너지, 경제성에 있어서 유익할까, 손해인가 하는 것을 생각한다. 또 가족이라든가, 자신들 두 사람에게 어떤 것이 감정으로 되는가?
이러한 평소에 계속된 단계가 제4의 결단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를 결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으로서 이 결단 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특히 리스트가 예상될 때에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 "나로서는 결정할 수가 없어요!"라고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혹은 결단한 후에도 결정한 것이 좋았다든가, 어떤지 분명치 않다고도 한다.
개중에는 결심한 후에 다시 한번 재결심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언제까지나 주저하여 결단의 기회나 해결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사람도 있다. 또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 방향의 움직임에 따라서 선택을 할 수 없이 되고 마는 사람, 시간이 이동하는 변화에 따라서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사람도 있다. 결단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많은 스트레스가 관계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이 사망한 후의 결단이라든가, 이혼의 결단 등은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수반할 것이다. 장례식에 관계되는 여러 가지 결단, 이혼에 수반하는 여러 가지 대화는 그다지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더우기 과거 가족의 한 멤버가 남긴 의복은 어떻게 할까, 누가 무엇을 얻는가 하는 것 등 얼핏보면 간단한 것 같이 생각되는 것도 막상 그때가 되면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같은 결단에는 상당한 감정이 개재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비지니스 상의 결단 사항과는 다르며, 보다 어려운 법이다.
이 '결단한다'라는 장애물을 극복한 후의 단계가 다섯 번째의 '행동한다'는 단계이다. 이 '행동한다'라는 단계도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위험이 있다. 자신의 행동이 받아들여지는가, 거부받는가 분명치 않는 것이다. 개중에는 이 '행동한다'는 단계를 취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이 단계에서 불안하게 되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공포증이라 함은 어떤 것에 대한 강한 공포심에 사로잡히는 상태이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데 대한 공포, 새로운 일을 찾는 것에의 공포, 진실한 것을 말하는 공포, 갈등이나 대립을 경험하는 것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공포감을 해소하는 데에는 감도 감소법이 라는 상상력과 시각법을 사용한 방법이 유익하다. 예를 들면 앞에서 기습한 대인 공포증인 사람은 집을 나오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지만, 이 방법을 적용하는 데에는 우선 의자에 앉아서 긴장이완을 한다. 그리고 나가기 위해 몸을 조절하고 있는 상황을 머리속에 구체적으로 이미지한다. 그것을 쉽사리(공포를 느끼지 않고)할 수 있다면, 다음 집을 나가는 자신을 이미지 한다. 그 이미지를 두렵게 그리지 않았다면 앞의 상황에도 취한다. 릴렉스하면 또 나가는 상황을 이미지 한다. 그것이 될 수 있게 되면 다음 단계의 이미지를 한다는 방법으로 서서히 공포감을 품지않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한다. 이러한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중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거듭되는 동안 성장을 초래하는 것이다. 어떤 행동은 당초는 올바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후에는 올바르지 않았다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같은 때에는 행동을 수정하거나, 다른 행동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혼한 사람이 그 잘못을 깨닫고 그 똑같은 상대와 다시 결혼하는 케이스는 적지 않다.
여섯번째 단계는 행동 과정과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지금까지의 단계를 돌이켜 보거나 무언가 손을 놓고 있는것은 아닌가, 무언가 추가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평가 작업은 기쁨이나 고통도 수반한다. 또 쌍방에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지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평가의 결과에 만족한다고는 한정할 수 없다.
또 미해결의 문제가 있는 점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혹은 더욱 어려운 문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아가 해결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한 쪽이 문제 해결 노력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도 상대가 단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과 동시에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단념하는 '때'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부싸움의 계속
욕구, 의견, 가치관 등의 대립에 의해서 언제까지나 싸움을 계속 하는 것을 한두 번은 한 적이 있는 사람은 아주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회전 목마와 같이 언쟁은 반복한다. 혹은 소용없는 반감을 모조리 틀어 내 놓는 것을 반복하는 경우가 곧잘 있다. 이러한 언쟁은 대개 효율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쌍방이 상처입고 문제 해결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공정하게 싸우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공정하게 싸우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며, 또 쌍방이 '승자'로 되는 경우도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그대로 말하기가 두렵다고 하는 이유에서 싸움을 회피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싸움을 회피하는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한다면 상황이 보다 나쁘게 수습되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많은 경우 이같은 사람들에게는 분노의 감정이 있어서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분노의 감정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분노나 반감을 표출하는 대신에 억압하고 내향시키고 만다. 그 결과 무언가 심신증으로 고민하는 경로를 밟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와 정반대의 태도도 똑같이 생산적이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대립이나 싸울 때마다 격심한 대항 의식을 갖고 부딪혀온다. 싸움에서어떻게든 이긴다는 단단한 결의를 갖고 새롭게 대처한다. 이러한 자세는 자기 주장과는 다른 것이어서 그것은 적개심의 표현이며 공격적이다. 불도저 같이 상대의 꿈을 밟아 버리거나 상대의 가치관을 조소하며,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짓을 일부러 한다. 상대나 상황으로부터 몸을 끌어내는 것이 때로는 좋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정하게 싸우지 않는 것은 싸움에 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은 '경기' 스포츠 세계에서는 곧잘 보여지고 있다. 공정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며, 규칙을 지킨다. 순서를 지킨다는 스포츠맨쉽이 필요하다. 스포츠에 있어서 싸움은 상대를 죽이고 마는 것 같은 투쟁방식을 하는 커플이 있는 것이다. 대립에 직면했을 때 서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자문해 보도록 하자. "무엇이 위험한 상태로 되고 있는가?" "어떤 희생이 각자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인가?" '문제의 중요성은?' "현실에 입각해서 언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예정했던 불만을 위해 현실을 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자문자답을 한 후에 싸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싸울까를 서로 명확히 한 후에 싸워야 할 것이다. 싸우는 때도 주의하여 선택해야 할 것이다. 상대가 질병을 앓고 있는 때라든가 일에 나가기 직전 등은 당연히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쓰임이 있을 때도 피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일을 거칠게 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언쟁하고 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싸우는 것도 필요하다. 쌍방으로서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넘어서 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결혼 카운슬러인 죠지 베크는 부부 싸움에도 고상한 싸움 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상대에게 이야기를 걸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독신과 같이 로프에 기댄 상대를 게속 두들기는 것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헤비급 라이트급 선수를 상대로 하는 때에는 상대가 자신의 힘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때에 싸우는 것이 공정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규칙을 가진 후에 상호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위 방법론적인 싸움) 어느 쪽인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고, 쌍방의 승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위 공동 승자 싸움) 어떤 아내는 남편과 언쟁이 시작되면 남편은 큰 소리를 내고 덤벼들기 때문에 마치 자신은 남편에게 살해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품는 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남편도 이같이 반론한다. "그래요. 당신의 소리는 나보다도 작아요. 하지만 가장 상처받는 욕을 했잖은가?"
문제를 정말로 해결하고 싶은 것이라면 상대의 벨트밑을 두들기는 것과 같은 상대가 가장 상처받는 곳을 공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직하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과 의도적으로 상대를 상처입히는 것은 같지 않다. 문제에 관련하여 대응하는 데에는 위험이 있다. 결혼은 싸우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공정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소위 공정한 싸움)
체념과 비참함
인생은 '왔다 간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또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라는 것과 동시에 '왔다, 가버린다'라고 하는 경험으로 가득차 있다. 이같은 인생의 흐름에 맞는 생활 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는 '가는 것'을 내버려 두는 법도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내버려 두는 때의 판단에 있어서 많은 사람은 고민하고 있다. 상대와의 관계를 계속해야 할까? 끊어야 할까? 이전에 그렸던 결혼의 꿈을 언제까지나 계속 그려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잊어야 할까?
부부가 결혼 생활을 무언가 계속하는 길을 찾기 위한 싸움 대신에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싸우게 된 때 거기에서 그 상대를 내버려둔 적은 없는가 하고 생각한다. 상대를 손을 뗄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손을 떼기 좋은 상대인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앞의 죤 베크는 다음과 같이 상대하면서 손을 떼는 방법이 좋다고 말한다. '자기 규제가 강하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 본 마음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 '함께 가정을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람' '술이나 약을 먹지 않으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 '심정에 대한 감정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희생으로 된다든가, 생활을 서로 나누고 있는데 그다지 의의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만성의 드러나지 않은 교제, 지루함, 경제적 목표 달성'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은 싸움을 시작할지라도 즉시 냉정한 태도를 취하며 그치고 만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쌍방의 성장을 위해 보다 깊게 서로 이해하는 기회로 삼아 사용하는 대신에 도피적, 절망적으로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를 손을 뗀다고 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비탄의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비통한 감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이며, 또 건강한 대응 방식이다. 과거의 경험에 의한 영향을 누그러뜨려 장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자유를 가져다 주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 것이다.
이 비탄의 작업은 어떤 상실 체험일지라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선천적인 장애를 수반한 아이들의 탄생, 사랑하는 사람과의 죽음에 의한 이별이라고 하는 커다란 상실에 따르는 비탄은 물론이고, 바라고 있는 옷을 몇 가지 찾아도 사지 않는다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스포츠 경기의 티켓을 어쨌든 사지 않는다고 하는 작은 슬픔이라고 하는 대소의 여러 가지 슬픈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이 인생에는 많이 있다. 작은 슬픔은 이른바 낙담을 의미한다. 중간 정도의 슬픔도 많이 경험한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원격지에 살게 되거나 지금까지와 같이 빈번하게 만날 수 없게 된다든가, 실업이나 질병에 의해 생활 양식의 변경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사태에 부딪힌다.
또 이러한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으로서는 크게 슬픈 일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혼이라고 하는 사태가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예가 있다.
모린은 남편인 피터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또 결혼 생활을 중요시하고 있었다. 이에 반하여 남편 쪽은 다른 여성과 연애중이었다. 그리고 이혼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모린은 두 종류의 비탄의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바라고 있던 꿈을 단념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고 있던 남편에서 손을 떼는 슬픔이다. 한편 남편쪽의 비탄의 작업은 아내보다도 적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은 그가 품고 있던 꿈이 이미 상당히 전에 없어졌으며, 단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슬픔에서 해방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탄의 작업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단계가 있는 것을 그랜저 웨스트버그는 명확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그 모든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어떤 단계도 피하고 지날 수는 없는 것이다. 단계를 요약하여 설명해 보자.
충격의 경험-우선 충격을 받는다. 이것은 일시적인 마취 효과를 초래한다.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으며 무감각한 상태도 된다.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을 곧잘 하게 된다. 충격은 수분간 계속되기도 하며 며칠이고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충격 상태가 몇 개월, 몇 년이고 계속되게 되면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감정의 발산-이것은 많은 사람으로서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문화에 있어서 특히 남성은 감정을 억제하는 방식이 좋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다. 그 때문에 의도적으로 감정을 억압하고 표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든가 분노의 감정을 참아버리거나 한다.
우울 상태와 고독감-상실 체험에 있어서 많은 사람은 자신은 홀로 남겨진다는 생각을 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인생이 회색으로 되며, 장래의 전망이 설 수 없게 되며, 우울 상태에 빠져 들고 마는 경우가 있다. 더우기 고독감에 빠져들어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달리거나, 불건전한 인간 관계로 몸을 던져 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
신체적 장애-두통, 불면증, 식욕감퇴, 복통 등과 같은 증상이 발생한다. 비탄의 작업을 게을리하면 이같은 증상으로 장기간 계속 고민하게 된다.
패닉감(panic)-사물에 집중할 수 없다든가 걱정 불안에 사로잡혀 머리가 띵해지는 것이 반복되며, 일상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다. 이 단계에서 당황하거나 착란 상태로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은 정신이 돈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죄의식-무언가 자신이 하는 것이나 하지 않는 것, 혹은 말한 것이나 말하지 않았던 것에 관하여 죄의식을 품는다. 많은 경우 이러한 죄의식은 사실에 입각하지 않거나, 사실을 과대시하는 결과로서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죄의식은 신경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반감과 적의-죄의식이 계속되어 반감이나 적의를 품는 경우가 많다. 상실을 초래한 상대(예를들면 사기한 사람, 이혼한 사람)를 비난하고 싶은 기분으로 된다. 혹은 의사의 잘못을 찾거나 상태의 잘못을 발견하여 비난한다. 반감은 기분이 언짢은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또 타인에게 싫은 느낌을 준다는 심보 나쁜 행위로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다-장기간 어떤 생활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상태이면 문제이다. 상실한 것에 언제까지나 마음이 빼앗겨져 있는 것은 건전하지 못하다. 체력의 쇠약감을 초래한다.
희망의 소생-이윽고 장래에 대한 희망이 용솟음쳐 나온다. 다음시간, 내일에 , 내년에 나를 향하게 된다. 터널의 방향에 빛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잃어버린 것과의 화해- 이것은 최후의 단계이다. 잃어버린 경험을 수용하고 잃어버린 것과의 화해를 경험한다. 그것은 과거에 한 것에의 관심을 없앤다기보다는 새로운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다시 사랑하는 행위를 취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의 중국의 '사랑의 시'는 사랑을 상실한 마음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대는 몇 번이고 나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서로 늙은 것 같다고, 동시에 그대의 머리칼과 나의 머리칼이 산꼭대기의 눈과 같이 희게 된다"는 것이라고
다만, 이날 그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생각에서 나는 '잘 가세요'라고 말해 주었다.
최후로 다시 한번 각각의 술잔에 똑같은 술을 부을 수는 없으니까.
최후로 다시 한번 눈으로 덮은 작은 새의 죽음을 노래하는 노래를 들려주기 바라오.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배에 돛을 달고 여행을 갈거예요.
동과 서로 나누어진 강을 배로 달리려고
그대는 왜 눈물을 흘리는가?
시집간 딸들 일을 생각해 볼까?
그대는 아마도 성실한 마음을 가진 남자와 다시 맺어질 것이야
몇 번이고 마음을 담아
'우리들은 서로 늙은 것 같아'라고 작은 소리로 말해주는 남자와
꿈이건 기대이건 중요시 하고 있던 '보물'이건, 중요한 관계이건 그것을 내버렸을 때에는 비탄의 작업이 필요하다.
내버려 둠으로써 새로운 친밀한 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새로운 꿈, 새로운 대상, 새로운 기대, 새로운 관계를 손에 넣을 수가 있다. 내버려 두는 것은 다시 자유롭게 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버려두는 데에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에 의해서 맺어진 결혼 생활을 희망하고 자유와 친밀한 관계를 구하는 것이라면 위험을 수반하는 이 중요한 단계를 밟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7. 결혼에 있어서의 친근성
"어째서 이런 때에 전화가 걸려 오죠?"
"받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
"그렇지만 딸들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잖아요. 영화가 빨리 끝났다면환영하고 싶지만도."
"작은 아이가 아니라면 조금쯤 기다려도 좋지 않을까?"
"보세요. 전화가 그쳤잖아요."
"일일이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밤은 두 사람만으로 되고 싶으므로 영화를 보지 말까?"
"그래요? 당신에게 안겨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부부간의 친밀한 관계라고 하면 성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한편 부부간의 친밀감은 무언가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든가, 문제의 해결을 찾아서 노력하고 있는데서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부부간의 친근성등과 같은 것을 전혀 화제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혹은 그러한 것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으며, 또 기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어떤 회사 중역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좋은 예를 찾아 볼 수가 있다. "뭐? 부부간의 친근성? 누가 그런 것을 원하고 있을까? 그런것에 소비할 시간이나 에너지가 없지 않아!"
세상에는 결혼 생활 속에서 친근성에 전혀 무관심하거나 나아가 피하거나 하는 사람이 있는 버버이다. 예를 들면 정신적인 결합을 중시하는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 중에는 부부관계가 친밀하게 되면 신에의 충성심이나 종교적 봉사에 마아너스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 편의성을 중시하는 사라들 중에는 성 생활에 깊이 관계되면 일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아가 생활상의 여러 가지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임신을 피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성적으로 깊은 관계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 연애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도 성적으로 깊이 관계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과도한 애착심이 표현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친밀한 부부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모험이 수반한다. 물론 시간도 노력도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남녀 관계를 구축하는 그 자체에 결혼하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친근성의 4가지 타입
어떤 기혼자를 위한 세미나에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부부를 연결 짓는 것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참가자의 대답은 대체로 다음 4가지로 정리된다.
1. 공통의 가치관
2. 지적인 자극이 되는 논의
3. 정서 면에서의 정리
4. 친밀한 성 생활
이들 4가지의 영역에서 친근성이 구축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부간에 있어서 상대를 신변에서 느끼는 경험, 따뜻함, 개방적인 태도, 신뢰성이 있을 때 사람들은 결혼에 있어서 친근성을 체험한다. 이들 요구를 결한 관계에서는, 예를 들면 성적 행위는 단순한 기교를 구사하는 성교에 끝나고 마는 것이다. 또 감정의 교류를 단순한 응석이나 의존으로 끝나고 만다.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의 도피구로서 상대를 이용할 뿐인 것으로 되고 마는 것이다. 지적인 교류가 '심리적인 강간'으로 되고 만다. 더우기 가치관의 공유도 '우리들만이 올바르다'라고 하는 오만한 태도의 온상으로 되고 마는 것이다. 반하여 '가치관의 공유'가 전술한 요소를 수반하고 있는 경우에는 두 사람을 단단하게 연결시킨다. 가치관이 대립하는 경우와 달리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나 친밀감을 만들어 낸다.
어떤 커플은 자신들로서는 종교적 가치관이 중요하며, 그것이 부부의 결합 요인으로 되고 있다고 말한다. '결혼하고, 가족을 만들고, 신에게 봉사하는 것을 우리들은 교회에서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커플은 자신들을 결부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공통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결혼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좋은 예로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도 그러합니다. 훌륭한 성능의 좋은 스테레오 장치를 사들였지만 두 사람 모두 그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영화도 보러 가지 않고 새로운 의복도 사지 않았습니다. 1년간 밖으로 식사하러 나가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친구들은 곧잘 카드로 물건 구입하는 것을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것을하지 않습니다. 물건 구입 후의 지불에 독촉받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금으로 물건을 사는 쪽이 훨씬 자유로워요. 그러한 생활 방식이 우리들로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부들은 공통된 가치관을 가지며, 그에 따르는 생활 방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이자신들의 가치관으로 헌신적 노력 결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결혼 생활의 다른 영역에 있어서 훌륭하게 해 가지 않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부부의 정리는 움직임이 없는 것입니다.
'지적인 자극이 되는 논의'에 의해서도 친근감이 얻어진다. 이러한 친근감을 가령 다른 의견일지라도 경시받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 배양되는 것이다. 또 의견이나 사고 방식의 대립이 있을지라도 논의에 의해서 서로 이해하고 협의에 도달하여 새로운 결의에 이르도록 노력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사물을 보는 사고 방식'에 매혹되어 서로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이것은 대학생 시절에 곧잘 경험한다. 또 자즉적으로 창조적인 일에 임하는 사람들 동료 사이에 곧잘 일어난다. 이러한 지적 매력은 성적 매력이나 정서적 결합에서 뛰어난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에 이르는 케이스가 많은 것이다. 또, 결혼 후에도 부부의 정리를 강요하는 요소로 된다. 그와 동이세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훌륭하게 해 가고 있는 예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배우고 있던 두 사람의 남녀 학생은 열심히 연구에 탐닉하며, 의견을 서로 교환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친근감을 깊게 하고 있었다. 이윽고 결혼한 두 사람은 학문적인 논의에 흥겨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우정에 의해서 깊이 결합되어 있다. 또 성적 결합보다 이성으로 지적인 교류를 중시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지성면에서 성장하지 않는 커플도 있다. 자신들의 여러 가지 신념을 재고해 보는 것을 게을리 하고 결과적으로 지적인 교류를 결하고 만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한 쪽이 지적인 성장을 수행하는 데 반하여, 다른 쪽이 지직으로 낮은 수준에서 헤메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부의 경우에 예를 들면 텔레비전이나 사교장에서 화제로 되는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에 한 쪽이 흥미를 보이고 논의에 열중하는 한편, 다른 쪽은 무관심하다거나, 지루하다거나, 자신만이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 잡히고 마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지적인 교류에 의한 부부간의 친밀감은 쌍방이 서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마음이 열려지고 관심을 기울이는 결과로서 육성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쌍방이 완전히 또같은 것에 항상 관심을 보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어떤 남편은 자신들의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자치제의 정치의 존재 방식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편 아내 쪽은 해양 생물학에 흥미가 있었다. 그러나 쌍방 서로 탐구심이 풍부해서 넓게 배우는 데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관심을 보이는 것이 서로 가능했던 것이다. 서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논의하고 상대로부터 많은 것을 서로 배우는 것이 가능했다. 이같이 쌍방이 상대를 존경하고 솔직하게 의논하는 태도에 의해 지적 성장을 수행하고 우정에 의한 기반을 강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서면에서의 정리는 마음의 내면에서 신변 가까이에 느끼는 상태에서 육성된다. 그러한 커플은 여러 가지 형태의 교류를 경험한다. 서로 웃고 흥겨워하며 상대를 돌본다. 말하고 싶은 것을 안심하고 말할 수 있다.
정서면에서의 정리는 부부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고 깊게 함으로써 강화된다. 상대에게 들어주는 것만 바라지 않고, 상대를 경청하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부부간의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정서면에서의 정리는 쌍방이 상대를 경청하고 상대의 감정에 관심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때를 아쉬워하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시간을 정하여 문제를 의논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 서로 하루가 어떤 날이었던가를 묻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이나 제쳐놓고 상대가 이야기를 걸고 있을 때 '듣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요는 상대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래요!'라고 하는 호소를 많은 사람들은 결혼 생활에서 한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말하는 방식은 배워도 적극적으로 듣는 방식은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문제의 다수는 우리들이 아이들 때의 생활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많은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듣는 방식을 배우고 자랐다. '착실하게 듣고 말하세요. 착실하게 들어 주세요!'와 같은 말이 어머니의 입에서 곧잘 말해지지만 그것이 부모 말에 귀를 닫아버린다는가 반쯤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아이를 만들고 있다. 또 아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는 때에 어머니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행위에도 건전하지 못하게 듣는 방식을 배워들이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취급을 받은 아이들은 말 수가 적은 아니, 마음을 숨기는 아이, 생각이나 감정을 속으로 품고 있는 아이로 되고 말지도 모른다. '어쨌든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하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혹은 그 반대로 말 수가 많은 아이로 되는 경우도 있다. 무언가 들어주길 바란다는 생각에 몰리기 때문이다. '더 말하면 필시 누군가가 들어줄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이 거기에는 있다. 그런데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는 데 취해서 상대가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가에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잘 말하는 것의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 때부터 모든 것을 부모에게 보고하는 것을 강요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 있었던 일은 전부 말해'라고 부모로부터 계속 말해 온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성장한 후에도 상세하게 계속 이야기하는 버릇이 되어 있어서 결국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경험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까? 우선 자신이 받아들인다는 느낌으로 된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낌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되는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며, 또 타인에 대해서도 수용적으로 되는 것이다. 즉 타인의 속에 있는 최선의 것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호 수용함으로써 쌍방이 보다 자유롭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기쁨을 느낀다. 전 유엔 사무총장 다그 함마슐드는 다음과 같이 겸허한 표현으로 이같은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완전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어느 것보다 뛰어나게 사랑하는 사람을 '연인'으로부터 해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타인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그 타인이 자아 실현을 향해 항상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타인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서 정서적인 정리가 육성되는 것이다. 항상 문제를 해결해 준다든가 정보를 상대에게 주는 것이 마음을 연결짓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정서적인 정리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상대의 성장을 요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의 인격에 대해 존경스런 생각을 갖고 상대를 경청한다. 그것은 상대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고 상대의 마음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요구되지 않는데 앞서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일단 접어두고 우선 상대에게 관심을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것은 '나는 올바르다. 당신은 틀렸다'라고 하는 상대의 잘못을 다잡으려고 하는 태도는 상대를 사랑하는 경청의 태도와는 인연이 먼 것이다. 정서 면에서의 정리는 창조적으로 감성이 풍부하게 경청함으로써 육성되어지는 것이다.
'성 생활'에 있어서 일체감이나 친근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성 생활에 있어서 얻어지는 일체감은 당연한 것이지만, 생리적인 감각으로서 경험한다. 상대의 가슴에 품어지고, 육체적으로 일체로 되는 상태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성적 일체감은 말하기는 쉬우나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미국에서는 결혼 카운슬링을 받으러 오는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성적 문제로 인한 번민을 갖고 온다고 추정해도 좋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만 만족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아내는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싱겁게 끝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모두 성적 일체감이 결해 있는 것을 나타낸다. 자유의 감각이나 상대와 깊은 관계라든가 하는 요소가 빠져있다. 성적인 일체감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위로 존경이 쌍방에 있다. 또 사랑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자세가 쌍방에 있다.
그런데 성적 일체감은 성 생활에 있어서 절조를 지킨다는 것과 같지는 않다. 많은 커플은 성 생활에 있어서 절조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의 성적 일체감에는 무관심하고 있다. 절조를 지키고 있는 데는 자부하고 있지만 결혼하고 있는 상대를 사랑하고 있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즉, 단순한 의무감에서 상대에 대해 충실한 것이어서 주체적으로 절조를 지키고 있다기 보다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이성을 잘 놀리거나 한다. 그에 대하여 상대가 응하면 "농담, 농담, 약간 놀렸을 뿐이야. 나에게는 틀림없이 결혼한 상대가 있습니다."고 말해서 피하고 만다. 한편 절조를 지키는 것을 문제로 삼지 않는 커플도 많다. 자신에게는 '부부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면서, 성 생활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부부간의 성 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실히 평가하는 것이 성생활에 있어서 일체감을 강하게 하는 것에 연결되는 것이다.
생각컨데 어떤 면에서 친근성이 높고, 다른 면에서는 낮다고 하는 경우가 곧잘 있다. 예를 들면 정신적, 종교적인 면에서의 일체감을 중시하는 커플에 성 생활 면에서의 일체감이 빠뜨려져 있는 경우가 있다. 또 연애 감정으로 결부되어 있는 커플로서는 성적 일체감이 강하고, 지적 교류에 의한 일체감은 약한 경우도 있다.
또 우정에 의한 일체감으로 만족하는 커플은 정열적인 일체감이 결해 있지만, 그 한편 지적 교류에 의한 일체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편의성을 중요시하는 커플에게는 성적 일체감을 경시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에 의해 맺어진 커플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기술해 온 바와 같은 친근감이나 일체감을 모든 면에서 맛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반적으로는 결혼 생활에 있어서 많은 일체감이나 친밀감 속에서성적 일체감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성적 일체감에서만 관심을 나타내므로 다른 영역에 있어서의 일체감이 소외되고 만다는 과오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성적 일체감에 대해서도 약간 더 상세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성적 일체감을 얻음으로써 결혼 생활을 사랑에 의한 굴레를 강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싶은데, 그에 앞서 부부간의 친근성의 장애로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친근성을 방해 하는 것
친근성을 방해하는 많은 것에 직면하여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친근성의 장애의 다수는 스스로 불러 들인 것이다. 상대와 깊게 관계하기를 피하고 있는 점이 장애로 되고 있는 것이다. 두번 결혼 경험이 있는 마사는 이같은 모순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4살 때에 아버지가 급사한 이래 나는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주 두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서 떠나있기를 바라는 원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혼은 두번째이며, 그 외에 몇 사람의 남자와 상당히 깊은 관계로 되고 말았지만, 나의 기대는 모두 나에게서 떠나가버렸습니다.가정입니다만, 나로부터 떠나가버리고 말 사람을 처음부터 고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떠나가게 하도록 내가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알고 싶습니다. 친밀하게 되고 싶은 기분이 있으면서도 한편에서는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망, 증발, 이혼 등과 같은 이유에서 잃었다는 경험은 아이들로서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상대를 상실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마음의 상처와 똑같이 신체적인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서 부모다운 관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종류의 두려운 마음은 아이들 때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 많은 법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성적 동일성을 확립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많다. 이것도 대개 상당히 어린 시절의 경험이 원인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은 대개 어떤 인간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든가 '자신과 반대의 성이라면 어떨까'하고 줄곧 생각해 왔다.'등과 같은 표현은 이러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그 중에도 자신의 결정이 상대에게 알려지고, 그 결과 얼마나 자신이 잘못된 인간인가가 밝혀지고 마는 것이 두려워서 상대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잘못된 인간'이라는 것은 자신의 불완전함이나 잘못을 확대시한 것을 제멋대로 환상한 것이다.
더우기 상대에게 알려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분노라든가, 적의, 반감 등과 같은 감정이 있다. 어떤 사람은 상대에 대한 강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해 버리면 분노로 폭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거리를 잡는' 관계로 되고 마는 것이다. 이 '거리를 잡는다'라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질병이 되는 경우도 그 한 예이다. 슬픈 감정에 빠져들고 거나 기타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지나치게 일해서 피로해져 있는 것도 친한 관계를 피하는 수단으로서 이용된다.
과거의 반감이나 기대를 지금 시점에서 일으키고 있는데 적용하여 표현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들은 친근성을 육성한 후에 커다란 장애로 된다. 예를 들면 결혼 생활의 당초의 일에 관한 감정을 현재의 상황에 묶어 토로하거나 한다. '허니문에서 당신은 나를 내버려두고 잠자버렸잖아요'라고 하는 비난의 말을 토로한다. '더우기 이제 이상 여성과는 두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약속했잖아요.'라는 대화 방식으로 남자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다. 자신의 어버이의 이미지를 상대에게 투영하는 것도 친근한 관계를 방해하는 걸림돌로 된다. 어버이의 좋은 이미지를 상대에게 투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쁜 이미지를 투사하면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심리학자인 카알 융은 우리들이 부모의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의 양면을 상대에게 투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예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리챠드의 아버지는 심리적으로 가까이 하기를 피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신문으로 몸을 숨긴다든가, 술독에 빠진 것 같은 경우가 많았다. 또 가족을 피해서 차고에서 곧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자신은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리챠드의 어머니는 외향적으로 남 돌보기를 즐겨하는 타입이었다. 리챠드가 결혼했을 때 이 양친의 특성을 합쳐 고루 갖추고 있던 처를 고르고 있었지만 그렇게 깊이 의식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생각한대로 아내는 집안으로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리챠드를 돌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리챠드는 아내가 돌보아 주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안으로 틀어박혀 있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화를 냈다. 결과적으로 이혼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리챠드가 재혼한 상대는 전처와 똑같은 타입의 여성이었다. 결혼하여 몇 년이고 걸쳐 이윽고 자신의 문제에 그는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자신의 양친의 이미지를 상대에게 투용하고 있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그 이미지에 상대를 맞추게 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들 때의 형제, 자매 관계나 친구들간의 관계에서 미해결의 문제가 친근감을 소외하는 원인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경쟁심, 질투심 등이 결혼 생활을 침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부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이 상대보다도 우수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노력을 한다. 다른 한편 열등시 되는 쪽은 "더 이상 당신과는 아무것도 놀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가버리는 아이들, 혹은 노하여 게임을 던져버리고 마는 아이들처럼 토라지거나 하는 것이다.
나의 남편의 가족은 대가족이었다. 아이가 5명이었기 때문에 경쟁적인 스포츠를 곧잘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잘 다른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즐기고 있는 것을 벤치에 앉아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나에게 남편은 "자! 와서 함께 해요!"라고 곧잘 유혹했다. "체스를 배워서 같이 즐겨요!"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체스하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책도 몇 권인가 읽었다. 그런데 즐겁게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집중력이 요구되었으며, 침묵의 경쟁이었다. 전혀 재미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골프를 배우기로 했다. 이것은 더 어려웠다. 그렇다고 골프의 명인으로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한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밖에 나가 걷고 이야기하면서 흥겨워할 수가 있었다. 운동도 했다. 또 종달새 우는 소리를 즐거워 할 수도 있었다. 덕분에 훌륭히 하도록 되었던 것이다. 남편 쪽은 프로의 어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승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쟁을 좋아하는 면을 만족시키기 위해 매주 한번은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다. "뮤리엘!, 이번에는 훌륭한 쇼트일꺼야!"라고 나에게 향하여 곧잘 소리를 질렀다. (그다지 좋은 쇼트가 아니예요!)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다행하게도 우리들 부부의 경우는 경쟁심이 우리들의 친근성의 걸림돌로 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우리들은 다른 커플보다도 자유롭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각각이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성장하고, 또 깊게 서로 사랑하는 자유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관계가 과거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결과적으로 친근성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성별 역할 분담에 과한 사고 방식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수행해야 될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재앙으로 된다. 특히 거기에서 부부사이의 대립이 생기는 경우가 곧잘 있지만, 이 경우에 정서 면에서의 일체감이 방해받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예를 다음에 들어 보기로 하자.
포린의 아버지는 그녀가 아직 어릴 때에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집안의 작은 수리 등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동시에 포린에게도 가르치고 하게 했다. 이윽고 성인이 된 포린이 결혼한 상대도 솜씨가 뛰어나서 무엇이나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남편의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집안의 어지간한 수리를 하는 경우가 곧잘 있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화가 났던 것이다. "어째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리지 않았어!"라고 노하거나 한다.
그런 때에 그녀는 어쩌면 좋을지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당신은 이해심이 없는 사람이예요. 내가 할만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했던 거예요. 어째서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하지 않아야 돼요?"라고 그녀는 반론한다. 집안의 수리는 남편의 일이라는 역할 분담을 남편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남편으로서는 중요했던 것이다. 때문에 포린은 남자의 역할을 침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비난했던 것이다. 남편의 아내의아이들때의 경험에 대해 알아차리고 비로소 자신의 역할 분담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해방되고 아내에 대하여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 부부와 같이 그다지 건전하지 않은 결혼에 있어서는
(1)고정된 관념을 갖고 상대가 변하는 것을 강요하고,
(2)의논을 피하고,
(3)몸을 뺀다('좋아요.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라고 하는 태도로)는 경향이 보여진다.
이같이 고정화된 역할 의식에 반대하거나 바꾸려고 하는 데에는 모험이 수반하며 용기도 필요하다. 또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자율르 가져다주며, 보다 친밀한 관계를 기르게 될 수 있으며, 그만큼 기쁨을 느끼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 때의 부모의 교육이나 육아가 불건전했기 때문에 그것이 성 생활에 있어서 깊이 관계되며, 일체감을 경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성이라는 것은 더럽고 동물적이며, 아이들을 낳기 위해서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으로 믿으며, 또 그같이 아니들에게 가르치는 부모가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잘못된 성의식을 갖고 자라게 되면 성 생활을 잘못된 것,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될 것이며, 필요악에 불과하다는 관념을 갖데 되는 것이다. 덕분에 성적으로 매력적으로 되기를 체념하고 성적인 일을 말로 하는 것을 금지하고 만다. 또 성적인 생각을 품는 것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 행위에 관한 몽상을 품을 때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을 그린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억압적인 기분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누군가 다른 사람과 성 행위를 즐기고 있다는 공상을 결혼 상대와 성 행위를 하고 있을 때 그리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이 부부간의 심리적 일체감을 소외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경우의 성 행위는 단순한 생리적인 것으로 되고 말기 때문이다.
성 생활의 일을 생각하고 화내거나, 느끼거나, 의논하거나 하는 것은 결혼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 방식을 기이하게 느끼는 사람은 성 생활에 관한 의식이 건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결혼 상대와 그것에 대해서 곧잘 의논하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들의 성생활은 마음에서 즐기게 되기를 바란다. 성적 감수성이나 성욕이라든가 에로티시즘등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은 성적으로 상호수용하는 관계를 구축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성욕과 에로티시즘
인간은 감각을 갖고 태어난 존재이다. 청각, 시각, 미각, 촉각, 직감 모두가 인간을 구성하고 있다. 감각적으로 된다고 함은 이들 여러 가지 감각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감각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이 감각을 피하는 사람이 있다. 맛 좋은 음식을 먹어도, 좋은 음악을 들어도, 부드러운 피부에 접촉해도, 표정이 풍부한 얼굴을 보아도, 매우 근사한 향기의 향수를 맡아도, 그것이 가져다 주는 쾌락을 거부하고 마는 것이다.
또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즐기는 것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육체를 부정한다. 자신의 용모가 혐오스럽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드레스를 벗어버리거나, 옷을 입거나 하는 때에도 밝은 곳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가 느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육체로부터 전해지는 메시지를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배뇨 감각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변소에 가는 것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육체를 거부하는데 철저하면 식사를 거부하고, 물도 먹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는데 까지 가고 말 것이다. 즉 잘 돌보지 않아도 자신의 육체는 건전하게 기능하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더우기 과로에 의해 극도의 피로를 초래해도 걱정하고 수면 부족으로 되었다고 해도 내버려두거나 하게 될 것이다. 이같이 인간의 육체를 거절하거나 욕구를 부인함으로써, 감각적인 쾌감을 막아 버림으로써 감각적 쾌감을 방해하며, 또 성욕이나 성 감각을 소외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접촉하고 접촉받는다'라는 행위는 성적 감각을 높이는 데나 혹은 그 반대로 감소시키는 데에도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다. 많은 사람은 접촉받는 쪽에 보다 큰 기대를 품고 있다. 즉 어떻게 접촉받았다든가, 접촉받지 못했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애무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조용한 애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시 품어지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의 몸의 특정한 장소를 접촉받기를 좋아하고, 반대로 접촉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는 전신을 접촉받고 애무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근년에 유행하고 있는 마사지 기술에 의해 자신의 성 감각에 눈을 뜨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같이 쌍방이 성 감각에 눈을 뜨거나 재인식을 하는 것이 결혼 생활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성 감각을 기르도록 성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부부간의 성에 있어서 일체감을 깊게하고 강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구체적인 노하우(know-how)에 대해서는 본장의 마지막에 소개하기로 한다.
성욕과 관련된 감각적인 정욕을 에로티시즘(eroticism)이라고 한다. 에로티시즘의 에로틱(erotic)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에로스(eros)로부터 나온 것이다. '에로틱하다'는 것은 성적 욕구를 고양하는 인물, 독서물, 물체 등을 형용하는 말이다.
오늘날 많는 문화 사회에 있어서 이 에로티시즘이 여러 가지 형태로 환영받고 있다. 그런데 극도로 빈곤한 사회에 있어서 에로티시즘은 오히려 경멸받는 경향이 강하다. 또 억압적인 문화에 있어서 (고대 로마 사회와 같이)에로티시즘은 법적으로 규제받으며 억압당한다. 그러한 상황에 있어서는 억압의 그늘에서 오히려 에롯티시즘이 강하게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인 에로틱한 감각을 높일 목적으로 의상, 향수, 로션 등과 같은 외적인 것이 잘 사용되어진다. 이것은 여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남성도 이들을(특히 애프터 세이프 로숀 등)즐겨 사용한다. 어깨에 걸치는 자켓을 입는 남성도 있지만 이것은 몸을 치장하거나 남성적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1400년부터 1600까지 유럽의 어떤 지방에는 남성이 다리에 밀착하는 반바지를 착용하는 것이 유행되었다. 그리고 그 반바지의 중앙에 있는 큰 주머니에 무언가를 잔뜩 채워 넣어 불룩하게 하고 자신의 성기인 것처럼 보이게 했던 습관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브레지어에 패드를 넣어 유방은 크게 보이게 하는 습관으로 변화했다.
걷는 방식, 앉는 방식도 에로티시즘을 자아낸다. 눈깜짝할 사이에 반복하여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꼬집거나 이빨로 무는 행위를 성 감각을 높히기 위해 사용한다.
말하는 방법이 성적 자극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즉 에로틱한 대화 방식이라는 것이 있다. 성 행위를 의미하는 속어에 의해 성적으로 자극을 받는 사람도 있다. 또 성적 농담에 의해서 자극 받는 사람도 있다.
서점이나 신문 판매소에서는 에로틱한 잡지가 즐비해 있다. 이러한 읽을 거리에 실려 있는 여성의 사진은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하여 환상을 품게 하는데 유익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반대로 남성의 나체 사진을 실은 잡지는 여성에게는 그다지 성적 자극을 주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즉 여성은 성 생활에 대하여 남성 이상으로 심리적인 요소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편의성이나 연애 감정을 중시하는 결혼에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에로티시즘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에로티시즘은 상대를 바라는 욕구를 높인다. 쌍방의 상대에 대한 정열이나 성적 욕구가 높여지게 되면 그만큼 남성의 성적 능력도 높아지며, 여성의 성 감각도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작금에 쌍방의 성적 감각을 높이고 성욕을 충족하는 유익한 노하우를 가르치는 책이 항간에 범람하고 있다. 또 '성의 천국'을 말하는 상인들이 선전하는 여러 가지 상품도 시장에서 넘치고 있다.
한편 세상에 범람하는 포르노 그래픽은 에로티시즘이 너무 도가 지나친 상품이다. 포르노 소설, 포르노 만화, 포르노 사진 등은 호색 감정을 자아내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포르노에 의해서 흥분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포느노를 금기시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성 감각을 높임으로써 실제 성적 기능을 감소시키고 마는 것이다. 어떤 매력적인 여성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하자.
"남편인 샘은 포르노 영화를 좋아하며, 나를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영화뒤에 반드시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섹스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마치 매춘부의 역할을 연출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전에는 성적인 관심도 있으며 나는 섹시하게 되었습니다만, 이 때는 마치 남편의 성욕의 배설구인 도구와 같은 기분이 되어 싫었습니다."
포르노의 애호에서 일보 진전한 것이 세이도 매저키즘의 애호로 된다. 아이들의 성교, 성 행위에 수반하는 육체에 대한 잔인한 처사 등이 전형적인 세이도 매저키즘 형태이다. 세이도 매저키즘은 자신이나 상대에 대한 증오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육체를 고통받게 하는 행위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 배후에 있는 동기를 잘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강한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상당한 위기적 상황으로 되지 않는 한 결과적으로 전문가의 원조를 스스로 구하지 않게 된다. 성욕이나 성감각과 세이도 메저키즘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채워지는 것은 건전하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 충동을 서로 사랑하는 성 행위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 만은 아니다. 기독교 초기시대에 플루타크는 사랑이 수반하는 성 생활을 권장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로 사랑을 수반하지 않는 성은 기아, 갈증 등과 같이 단순한 욕망의 충족하며, 그칠줄을 모른다...... 이에 반하여 아내와의 육체적인 결합은 우정을 키우고 위대한 신비에 쌓여 있다. 단순한 육체적인 감각은 바로 제거된다. 그러나 마음을 수반하는 결합은 심어진 종자같이 돌보고 아름다움을 키우고 두 사람을 언제까지나 결합시키며, 또 자신을 강하게 한다."
이같은 생각은 이 시대에는 새롭고 또한 당시의 사람들에게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똑같이 기이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적 욕구
성교에는 생리적인 긴장, 수축, 충족, 긴강이완이 수반한다. 결혼 생활에도 이러한 생리적 현상에 유사한 심리적 현상이 수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긴장'을 수반하지 않는 정신생활은 지루함을 초래한다. '충족감'이 경험되지 않는 결혼 생활은 이윽고 붕괴하고 만다. 긴장감은 지적, 심리적, 생리적 등 다면적인 형태로 감지된다.
예를 들면 정치. 육아.가계의 존재 방식 등에 관한 부부의 사고 방식의 차이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경험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경우에 어느 한 쪽이나 쌍방이 자신의 의견이 올바름을 유아 독존적으로 주장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하면 두 사람 사이에 심리적, 정서적 긴강이 생기게 될 것이다. 생리적인 긴장도 동시에 느낀다. 흥분하고, 맥박이 높아지며, 근육이 경직된다.
그런데 성욕이라는 것은 생리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생리적 본능에 입각한 현상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이 생리적 본능에 대응하는 방식은 그 개인의 결혼관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욕과 충족을 중시하는 편의중심의 결혼관에 입각한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성기를 중심으로 한 생리적 긴장을 많이 느낌에 틀림이 없다. 그 경우 부부는 사정이나 오르가즘을 경험하는 것에 충족하며, 성 행위 후의 평화로운 한 때나 의논 등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신적 결합에 지상 가치를 두는 결혼관에 입각한 결혼 생활에도 여러 가지 '긴장'이 일어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로는 생리적 긴장감(성적 욕구의 표출)을 부인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신앙 생활에만 관심을 보이며, 자신들을 '그렇게 말하는 것'에는 유혹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거나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편두통으로 곧잘 고민하게 되며 약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연애 감정을 중시한 결혼관에 입각한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적으로 충분히 만족되고,있지 않는 사람들은 복통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이러한 사라믈은 곧잘 '음식물이 아주 나쁜것 같다'라고 말한다.현실적으로 소화 불량 현상을 곧잘 일으킨다.그런원하고 이/袪는 상대가 심리적,성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상태가 되면 당연한 것이지만 심신의 긴장감은 해소되는것이다.
우정에 입각한 관게는 두 사람의 마음의 교류가 요체라고생각하고 있다.어러한 심리적 정신을 중시한 결혼관에 입각한 결혼생홀에도 성적 긴장감이 생기기 까지에는 상당히 긴 시간을 요한다.예를 들면 긴 대화나,깊은 레벨의 대화라든가,산책 등 무언가두 사람이서 함께 보내는 때를 거친후 충족감이 수반하게 된다.
애정에 의해서 맺어진 관계,즉 완전한 관계를 중시하는 결혼관에 입각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부부는 '긴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우선 자신의성적 욕구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을 묻지 않는다.몸에 접촉되는 것,상애에 대한 돌봄을 나타낸다고 하는 행위로서 표현한다.또 상대에 대한 헌신적 노력 의지(commitment)를 통하여 나타낸다.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비우자가 사망한 웮에 바로 남아있는 葡우자가 질병으로 죽는다고 하는 경우가 곧잘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저 사람은 브로컨 하트(broken-heartest:비탄에 잠겨,실연해서)로 죽었다'라고 곧잘 말해진다.사람이라 함은 바로 하트(heart)의 세계라고 곧잘 말해지는 바이다.
성적 충족을 가져다 주는 것
자신의 성적 긴장감은 그 에너지를 사용해서 파트너를 성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한 사람,거기에서 자신은 성적인 만족감으로 충만되는 것이다.성 행위가 클라이막스의 단계에 도달하면 두 사람 사이를 차단하는 경계가 녹아내리며,상대와의 일체감이나 시간을 초월한 감각으로 충만된다.
엑스타시(ecstasy) 도취하며,인간의 세계를 초월한다.이러한 경향은 바로 정신적 체험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이같은 성적 생활에 있어서 일체감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하면 좋다.다만 그것이 어떤 방법이건 몇 가지의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댜음에 열거해 보기로 하자.
1.감각면에서의 느낌을 깊게 한다.
2.정확한 성 지식에 입각한 방법을 새악하고 개입한다.
3.성적 만족을 방해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생각해 본다.
옛부터 전통이나 가치관,습관 편견,지금까지으 자신들의 경험등
4.성 생활에 있어서 일체감의 가치르 인정하고 그것을 구하는 걸의 혹은 재결단(redecision)
이들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성 생활을 영위하느 사람은 성교라는행위는 더럽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또 피상적인 것으로서 경험되거나 사랑이나 정열을 결한 단순한 생리적인 행위로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카운슬링을 받으로 온 샤린은 자신의 성 생활이 싱겁고 의무적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다으뫄 같이 표현하고 있다.
'
'토요일 밤이 되면 나의 몸이 폭죽같이 타오르기를 남편은 기대합니다.남편의 기대를 밑받침할 수 없어요.하지만 연기(연기)하고 싶지는 않아요.짧은 나이트 가운을 입고 남편의 앞에서 허리를 흔들어 보이거나하고,이럭저럭 어쨌든 기분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웬지 책에 씌어있는것이나 포르노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것을 실험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남편 쪽도 정력 왕성한 남자로 되는 것과 같은 연기를 합니다.아주 좋게 해주는 느낌이지만 모두 연기(연기)하고 있는 거예요!'
결혼생활에 있어서느 물론 결혼 밖의 일에 있어서도 이러한 표면적인 캐쥬얼(casual)한 섹스는 성의 교환이 애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것을 부정하는 것이다.캐쥬얼한 섹스에서 오르가즘을 다지 생리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서 요구되어지는 것이다.그렇다고한다면 캐쥬얼한 섹스는 필연적으로지루함을 초래한다.
그러한 섹스를 행하는 자는점차 성 행위가 초래하는 쾌감에 어둡게 된다.단순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행위로 되고 만다.부부간에 있어서는 상대에 대하는 관심이 희바하게 되어간다.생활에 드릴(thrill)을 느끼지 않게 된다.행위가 타성화하게 된다.오늘날 이러한 캐쥬럴한 섹스를 행하는 자가 늘러나고 있다.그리고 애정이 수반하는 성 행위를 중시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있다.한 사람의 상대를 '특별한 사랑'으로서 존경하고 연모하고 위로하느 사람이 적지않게 되거 있는 것 같다.생리적인 긴장감을 성 생활에 의해서 해소느 해도 그 상대와는 심리적 교류를 결한 사랑이 실로 많은 것이다.
그런데 성 생활에 있어서의 지적 깊이가 모자라면 시리적陮遁 교류도 감소한다느 것을 다음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자.이러한 사람들은 자주 다른 영역에 있어서의 일체감이나 친근감의 감소도 경험한다.어떤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그 상대 이외의 물건에 향한다. 일 밖에서의 사교,아이들으 돌봄,취미와 일 등에 관심을 돌리고 만다.한편 결험한 바람까가 타오르면 새로운 자극을 구하는행동으로 달린다는 경우도 있다.
서교는 즐거움,흥분되는 것,창조적인 것,깊이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병이나 편견 드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 한 성적 에너지를고령에 이르러서도 쇠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60세가 되어도 젊은 날과 같은 충족감으로 만족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성 생활레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때,그러면서도 성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우선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자신의 몸이 접촉되는 때에 충분히 만족되기 전에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을 자신이 인정하거나 또한 상애에게 말하거나 간에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한다.
또 "당신의 몸이 땀으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에 샤워해서씻기를 바란다."라 든가 "향수가 너무 진하지만 어쨌든 마음에 든다.""그렇게 난폭하게 하지 말고 보다 살그머니 해 줘요.""당신의 몸이 어찌된건지 분명치 않아됴.전연,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를 당신에게 말하기가 쑥스러워.""어머니로 부터 듣고 있던 것이 머리에 들어 있어서 도무지 자유로운 기분으로 되지 않아요.""이제 좀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지 않갰어요?""좀 더 생리적인 지식을 몸에 붙이느 편이 좋을 것 같애."등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성 생활레 있어서 일체감을 높이고 싶어하느 커플로서 때로는 성 생활에 관한 생리적인 지식이 유익한 경우가 있다.또 인간의 심리 상태가 생리적 반응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함으로써 유익한 경우도 있다.
그러한 지식이나 정보느 시판되고 있는 책을 통해 얻는 것도 가능하다.모든 커플은 그러한 책을 한 권만이 아니라 여러 권읽기를 계속하기 바란다.그리고 ? 넓은 지식을 얻어서 자신들의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이켜보고 평가해 보도록 하자.아이들 때에 몸에 붙힌 잘못된 지식이나 편견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사랑에 휩싸인성 행위느 피부적인 지식이나 단순한 방법으로는 얻더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성 생활에 있어서 일체감을 높이고 싶다면 그 나름대로 학습니 필요한 것이다.
감수성을 높인다.
성 생활에느 감각면에서의 느낌이 필요하다.즉 감수성(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성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촉각은 기본적인 감각이다.접촉하는 것 자체가 목적으로 된다 "어른도 그러하지만 특히 영아는 올바른 접촉 방식과 싫어하는 접촉 방식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고 아슐레 몬타규는 말하고 있다.사랑을 수반하지 않고 몸을 접촉하는 것의 반대가 무관심이나 무지,단순한 호색적인 욕망에 입각한 접촉 방식이다.사랑을 수반하기 않고 있으면 상대에게 쾌가을 주기위해 상애에게 접촉하는 것이다.어떤 때에는 조용하게 어떤 때에는 강하게 접촉한다.결토 상대를 상처입히기 위해 접촉하는 것이 아니다.쾌감을 늘리기 위해 서로 접촉하는 것이다.
때로는 성기에 접촉하는 것만이 쾌감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느 것을 강조하고 싶다.성 감각은 몸 전채적으로 체험될 수 있는 것이다.물론 몸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도 많이 느낀다는 것이 보통이다.어느 것이라고 해도 성기 이외의 피부가 접촉함으로써 일체감이 절정 상태를 느끼느 것이다.부드러운 것,따뜻한 것과의 신체적인 접촉 ?식이 단순히 젖을 주는 것보다 더육 중시되는 것이 할로(H.F.Harlow)의 원숭이 실험에서 증며되고 있다.인간으로서는 따뜻함이 있는 피부의 접촉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명확해 졌다.체내의 적외선이 몸이 접촉하는 상태에 있어서느 적절한 파장에 따라 배출되며,또 흡수됨으로써 쌍방의 피부에 최대의 효과르 가져다 준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많은 사람은 이러한 피부의 접촉 시간을 낮에는 갖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낮에 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던 것을 되찾기 쉽게 된다.나체로 눕는 것이 최선이다.신체적 접촉에 의해서 얻어지는 평안함을 하루24시간 중 적어도 6시간에서 8시간은 갖는 것이다.이같은 신체적 접촉에 의해서 다음 깊은 곳에서의 치유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감각과 동시에 청각의 감수성(감수성)을 높이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모든 소리에 대한 감각을 높이는 것이다.밖에서 울리는 동달새의 지저귐이나 비오는 소리,조용하게 들려오는 소프트(soft)한 음악,이야기 거는 말,상대의 숨결이나 신음 소리,모두를 성감각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다.그 중에는 아이들에게 들려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성 행윅 중에 신음이나 소리를 재지 않도록 노심 초사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우선 성 행위는 정상적인 것이며,또 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받아 들이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를 내도 괜읙은 비밀스런(private) 때와 장소를 고르는 데 마음을 쓸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가족들이 잠잘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반드시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몸이 피로해진 시간 대에 행해지는 성 행위에서는 마음에서 쾌감을 맛보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커플은 밤에는 빨리 자고 아침에 일찍 눈을 떠서 피로가 쾌유된 때에 성 행위를 즐기는 방법을 고른다. 다소 돈은 들지만 하룻 밤을 호텔에서 보내면서 즐기는 커플도 있다.
취각도 성 감각에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맛사지용의 액체의 냄새, 향수의 향내, 목욕탕에 넣는 향료, 좋은 냄새의 로숀, 창쪽에 풍기고 있는 소나무의 향내 등 모두가 성 감각을 높이는데 유익하다. 물론 청결한 몸이 풍기는 체취, 이를 닦은 후에 입에서 풍기는 상쾌한 향내나 맛도 좋다.
한편 불쾌감을 가져다주는 체취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체취에 나타내는 반응이 다른 것도 알아 두어야 한다. 강한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은 그 반응을 상대와 곧잘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피부에 배설 기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불결하게 되기 쉽다. 따라서 성기를 포함해서 피부는 청결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혼 카운슬링 장면에서 파트너의 체위에 관해서 불만을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이 체취의 문제는 뭄이 질병은 물론 때로는 심리적인 병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방취제에 의해서 이 문제를 부드럽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것이 질병에 원인이 있는 경우에는 병 그 자체를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입의 체취, 즉 구취가 싫다든가, 땀이 나온다든가 하기 때문에 싫다고 해서 이혼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지 모르지만 구취나 체취가 성 생활에 재앙이 된다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즉 그러한 문제를 갖고 있으면서 청결에 무관심한 사람은 다만 섹스만 바랄뿐이고, 마음의 교류 등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즉 성 생활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쌍방의 취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각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쥬스가 가득한 오렌지, 정중하게 차린 아름답고 맛나는 만찬, 와인, 치즈, 빵의 피크닉이라는 것이 가져다 주는 미각은 음식에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와 동시에 미각은 성 행위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 된다. 예를 들면 입술의 키스, 피부나 성기에의 키스 등에서 얻어지는 혀의 감각이 성적 감각의 고양을 초래한다고 하는 커플이 적지 않다. "그녀의 귓볼은 좋은 맛보기가 되기 때문에 입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고 어떤 남성은 말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이같이 말한다. "물론 나는 자신의 귀의 맛이 분명치 않지만 그것에 의해 남편이 흥분한다는 것이 잘 이해됩니다."
체취와 똑같이 때로 더럽혀지지 않은 청결한 피부나 담배향이 나지 않는 입 쪽의 보다 기분에 좋은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시간인데, 인간의 육체를 본다는 경험은 이 세상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경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육체는 각각 독특한(unique) 존재이며 어떤 사람의 육체는 그리이스의 남신이나 여신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가지"와 같이 가느다란 몸의 육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살찐 몸을 가진 사람도 있다. 키가 큰 사람과 더불어 작은 사람도 있다. 어떤 몸일지라도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아름다움의 표준은 같지는 않다. 육체의 아름다움의 인식이나 정의는 문화나 시대 등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그런데 성적 흥분은 아이들 때에 눈에 접촉된 것에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곧잘 있다. 예를들면 집시가 곧잘 붙이고 있는 것과 같은 귀 장식이 흥분을 초래하거나 살갗에 착 밀착된 바지에서 자극 받는다는 사람이 있지만 이러한 물건 이전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이 이유로 되어 그것을 몸에 붙이고 있는 사람을 보고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 즉 그것을 몸에 붙이고 있는 것보다도 그러한 물건에 끌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눈채채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 자신의 마음에 끌리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같이 아이들 땡에 뇌리에 불태우고 있던 것이 그 후의 시간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에 관하여 에릭 번은 이같이 말하고 있다.
추적 조사의 결과 병아리 새는 특정한 물체의 형체나 색채의 시각에 의한 이미지에 입각해서 흥분한다. 그것이 마분지 일지라도 마치 어미새인 것처럼 반응한다.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시각 자극에 입각한 자동적 반응인 것이다. 그것이 특정한 형태의 실루엣일 지라도 그것에 의해서 자극 받으며, 전신적인 반응을 보인다. 똑같이 무엇인가에 의해서 자극을 받고 흥분할 때에 자신의 행동이 어울리는지 어떤지 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성 생활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때로는 이러한 성 감각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시각'에 호소하는 자극을 사용하는 경우도 필요할 것이다. 어떤 남성은 유방에 의해서 자극 받는다. 각선에 자극받는 남성도 있다. 이같이 각각 몸의 다른 곳이 다른 자극을 남성에게 준다. 상대를 시각적으로 자극함에 있어서도 성감각을 높인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남성의 키의 크기, 어깨가 발달한 모습, 머리 등에 관한 감상을 입으로 하는 여성은 많다.
그러한 여성은 남성의 몸의 하부쪽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람이 보고 있는 데서는 거기에서 눈울 돌리고 있다. 그것도 여성의 드레스와 비교하여 남성는 육체의 선이 숨겨지는 의복을 몸에 붙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의 시선은 자연히 몸의 상부에 향해지는 것이다. 남성의 수염에 매혹되는 여성도 많다. 한편 늘어뜨린 머리칼이나 수염을 자극한 후 피부에 매혹받는 여성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몸에 붙는 의복에 걸친 상식, 머리칼의 형태, 화장 등과 같은 것만 시각적인 자각으로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얼굴의 표정, 몸의 움직임, 걷는 방식, 앉은 방식, 다리를 꼬는 방식 등과 같은 것 모두가 그 사람의 표현으로 된다. 성 행위를 포함한 방의 모양도 같은 것이다. 방의 색채, 가구, 그림 등 방의 분위기 전체에 의해서 엉 감각이 높여지며, 가령 반대로 방해받게도 된다.
최후로 긱감에 의해서 약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많은 커플은 직감에 의해서 행동하고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결혼 상대를 직감으로 고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 혹은 상대를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말이나 행동을 직감으로 고른다. 반대로 상대의 성적 흥분으르 냉각시키는 언동을 직감적으로 고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직감의 움직임이 방해받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을 하고 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직감이라는 것은 창조성과 똑같이 모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는 잠재적 능력이므로 그것을 기르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직감이 풍부한 사람은 이른바 예감력이 뛰어나 있는 사람이다. 에릭 번은 예감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과 감각적 접촉이나 과거의 경험에 입각한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것은 자신으로서나 상대로서도 어떻게 그 같은 예감에 이르는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예감을 믿을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상대에게 투사한 결과임에 틀림이 없을지도 모른다. 또 불쾌감에 대한 방어 기제의 작동 결과일지도 모른다. 투사라는 행위에 자신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충동이나 감정을 상대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나 자신의 해석을 상대에게 돌리고, 상대가 그렇게 느끼며 생각하고 있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경우가 곧잘 있다. 남편과의 거리를 갖기 바라고 성행위를 원치 않는 아내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오늘 밤은 나를 원치 않겠죠."라고 말하거나 한다. 이러한 투사를 우리들은 일상 생활에서 곧잘 하고 만다. 건전한 투사가 행해지고 있는 가하면 불건전한 투사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망상적인 것이라면 분명히 불건전하다.
이러한 직감과 투사를 구별하는 작업은 그렇게 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중요한 것이리기때문에 게을리해서는안 되는 것이다. 그 하나의 방법을 상대를 나무라기 전에 자문해 보는 것이다. '자신은 상대가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가하는 것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혹은 수 분간 고요하게 하여 긴강 이완하며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의식적으로 중단하고 마음의 안테나를 사용하여 상황을 감지하여 보면 좋다.
다음으로 상대가 바라고 있는 '신호'를 직감적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반응한다. "좀 더 내가 적극적으로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러한 예감을 할 뿐이라고." 그것에 대하여 "응, 그래."라고 말하는 대답을 해 주게 되면 당신의 직감이 올바르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성 생활의 회고외 개선 계획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 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지금보다 이상으로 충실하게 하고 싶다고 희망하면 감각 면에서의 느낌을 깊게 할 뿐만 아니라 감수성을 높임과 동시에 이성적으로 사고에 입각한 계획으르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임포텐스, 불감증, 무관심, 공포 등과 같은 성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즉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에 관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또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방법이 앞서 기술한 여러 가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서는 다음에 보는 것과 같은 질문에 따른 문제를 돌이켜 보고 생각하는 실마리를 삼도록 하자.
陮상대 여성(남성)의 무엇이 나를 흥분시켰는가?
陮상대 여성(남성)의 무엇이 흥미를 잃게 했는가?
陮무엇을 더 바라고 있는 것인가?
陮무엇이 더욱 적어 지기를 바란다고 희망하는가?
陮자신의 생리적인 감수성에 마이너스 영향을 주는 외적 문제가 있는가?
陮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이미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일반적으로그것에 관심을 떼는 것이 가능한가?
陮신체적 생리적 문제가 있는가?
陮더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성 지식에 관하여)이 있는가?
陮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현재의 성 생활을 즐기는 것이 방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陮그 과거의 경험을 생각해내는 데 어떤 이득이 있는가?
陮상대를 흥분시키는데 어떤 말, 제스쳐, 행동을 사용하면 좋다고 생각하는가?
陮이같은 행동을 취하면 상대를 상처입히거나 상대로부터 경멸받거나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따라 '자신을 돌이켜보고 다만 생각하는 것만으로서 문제 해결에 이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생각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때로는 창조적으로 생각해 봄으로써 문제의 해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예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어떤 남성은 임포텐스로 고민하고 있었다. 고령자용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침실의 벽 건너쪽 이웃에 사는 사람에에 '들리는'것을 아내가 불안해 하는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베드를 방의 반대 편에 옮기면 좋을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아주 스마트(?)한 생각이 아닐까?
다른 남성은 어느 한 쪽의 고환이 다른 한쪽의 고환과 비교하여 밑으로 쳐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언에 따라 받은 검사 결과 정자가 수가 표준보다도 적다는 것이 밝혀졌다. 자신은 '반인간'즉 자신은 한 사람 몫의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것을 솔직하게 아내에게 고백했었던 것이다. 이같이 '진실'에 대처하여 진실로 서로 수용함으로써 고민으로부터 해방되며, 성 생활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거기에서 두 사람은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의논하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침대 속에서는 간호사 같이 행동하는 것을 중지해 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이야기하게 되었으며, 그녀도 자동차의 수리공이었던 남편에게 침대 속에서는 기계같이 만지작거리고 돌리는 좋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마음을 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깊은 애정에 의해서 맺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솔직한 지적이나 표현이 플러스 작용을 초래했던 것이다.
창조적. 직감적 사고는 비언어적 지혜의 자리 라고 생각되고 있는 우측 뇌의 작용이다. 이 우측 뇌에는 의미 부여라든가 유형화 작용을 직감적으로 행하는 기능이 있다. 또 우측 뇌는 우주적인 넓이를 가진 의식 자리라고나 할까?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정보의 단편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합하여 유형화 하는 작용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우측 뇌와 논리적인 사고의 자리인 좌측 뇌의 양쪽을 사용함으로써 논리적으로, 그러면서도 창조적으로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많은 커플은 이같은 새로운 사고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성 생활에 신선함을 초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보다 친밀한 성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감수성을 깊게 하고 사고력을 높일 필요가 있는데 더우기 두 사람이 굳게 매달리고 있는 전통이나 편견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전통이나 편견의 수정
어떤 남양섬에 사는 사람들은 성교의 자세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코 하나의 자세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윽고 선교사가 와서 성교는 남자가 위에서 여자가 아래라고 하는 자세가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원주민들에게도 그에 따른 것을 강조하여 결과적으로 모두 그렇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위 선교사 체위(missionary position)라는 말에 얽힌 전설이 있다. 물론 선교사에 이러한 자세 이외의 방법에 의해서도 성적 만족을 얻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아직 어렸던 때에 나의 양친이 일요일 아침 침실의 문을 닫고 바구니를 갖고 있던 것을 곧잘 깨달았다. 속에서 때때로 웃음소리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잠자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친이 즐기고 서로 웃고 있는 상황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대체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를 불가사의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적어도 무언가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는 것은 나도 일요일 아침 긴 시간 성의 영위를 즐기기를 좋아했었다.
나의 아이들이 아직 작을 때에 아이들이 토요일 밤 자자리에 들기 전에 그들의 침대 옆에 크랙카나 오렌지 쥬스를 둔다는 것이 습관이었다. 다음날 아침 자신들보다도 일찍 눈을 떴을 때에 대비한 나의 공작이었다. 성 생활을 즐거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금까지의 많은 문화, 사회, 가족은 가르쳐 왔다. 혹은 남성만이 즐기는 것이어서 여성은 즐겨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왔다. 이러한 전통에 반발하여 극단적으로 달린 여성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같이 밖으로 향하여 반발하는 것과 안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어떤 커플의 예를 통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커플은 쌍방의 생리적, 정서적 욕구를 이해함과 동시에 성 생활에 관한 사고 방식에 있어서도 공통해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이 말하고 있다. "정말 오르가즘을 경험할 수 있다면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오르가즘에 도달하지 않아도 그다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식사나 수면만큼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아이가 생기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기지 않아도 우리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들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일체감을 얻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의 성 생활의 최종 목표는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것이나, 아이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보다 깊이 사랑받게 될까를 배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몸과 마음과 정신의 모두가 필요하다. 머리의 작용은 민감하게도 되지만 조용할 때도 있다. 감정이 높아질 때도 있고, 쉬는 때도 있다. 몸의 에너지가 강하게 작용할 때도 있고, 피로하고 쉬는 것을 필요로 하는 때도 있다. 이같이 몸과 마음과 정신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관계없이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은, 참으로 활기가 있는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즉 심리적으로 건강한 인간상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상에 대하여 에아브라함 메슬로우(Abraham Maslow)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개인은 단순하고, 행복한 장시간 계속되는 결혼 생활을 영위해 나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을 중요하게 함으로써 쌍방이 서로 배우며, 서로 즐기는 것과 같은 관계이다. 장래와 더불어 살기 때문에 기쁨을 느끼는 것과 더불어 장기간의 부재나 죽음에 의한 이별에도 견딜 수 있는 자이다. 건전한 결혼에 있어서는 쌍방 자신의 기쁨과 동시에 상대에 대한 존경도 증대한다. 바로 두 사람은 좋은 파트너인 것이다."
어떻게 사랑할까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행복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그리고 행복감은 자신의건전함을 의식할 때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체감이나 상호 수용을 수반하는 사랑에는 창조적인 힘이 있다. 그것은 쌍방의 개성을 인정하고 거리를 설정하면서 쌍방을 결합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