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아비들아

올바른 신앙 생활은 경건 생활의 균형을 찾아가는데서 시작됩니다. 경건 생활의 균형은 그 구성의 기초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가정에서의 균형 있는 생활은 바른 경건 생활을 보여줍니다.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곳입니다. 가정의 기본이 구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바른 신앙 생활이나 바른 경건 생활을 찾는 것은 극히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기독교인의 바른 가정의 모범을 제시하여 줍니다. 특히 에베소서 5장 22절로 33절까지에서는 부부간의 문제를, 6장 1절로 4절에서는 자식과 부모간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바른 가정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이 관계가 잘 유지되는 될 때 바른 신앙의 경건을 유지해 가는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비록 부부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자식간의 관계가 바로 형성되지 않으면 좋은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참 성도의 가정은 부부간의 관계와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올바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일년 365일이 어버이 날이 되어야 하겠지만 특히 오늘은 어버이날로 정하고 어버이의 은덕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는 모두 자식의 입장에 있거나 혹은 부모의 입장에 있거나 아니면 부모이면서 자식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귀중한 날에 내 자신이 부모의 자식으로서 혹은 자식의 부모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참 성도의 경건의 모습을 회복하고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전파되어지는 말씀 속에서 자식으로서의 사명과 부모로서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온전한 가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부모와 자식의 역할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므로 화목한 가정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녀들아

먼저 1절로 3절에서 자녀들이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자녀들은 부모님께 순종과 공경을 해야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순종과 공경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순종은 자기 자신이 복종하는 것으로 다분히 정신적인 면에 속합니다. 반면에 공경은 물질적인 면이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에는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공경이 없는 순종은 위선이요 순종이 없는 공경은 아첨에 해당될 뿐입니다.

공경과 순종은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하기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계명 중에 가장 첫 부분에 놓았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10 가지의 계명 중에 4 가지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고 나머지 6 가지는 사람에 대한 것인데 그 중에 가장 먼저 주신 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입니다. 처음 것은 다른 모든 것보다 항상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 중에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모 공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요일 4:20참고).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섬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기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할 의무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도 않으며 순종하지도 않는 자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나라를 섬긴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의 A B C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인 것도 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더 구체적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앞서서 먼저 부모님께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섬기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첫째로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룻은 부모를 섬긴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하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인 효도였습니다. 이것은 존경심이 없이는 안됩니다. 살아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 제사드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생활비도 안주다가 죽은 이후에 묘지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느라고 더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둘째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세익스피어는 그의 저서 리어왕에서 말하기를 부모의 공로를 모르는 자녀는 살모사의 날까로운 이빨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할줄 모르는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고 오히려 죽이려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부모의 공로를 모르고 저잘난줄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셋째는 부모를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부모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도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요, 대화를 계속해 드리는 것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요,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요, 용돈을 충분하게 드리는 것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많은 것을 드리지는 못해도 곁에 있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외로워집니다. 한 분이 돌아가신 후면 더 외롭습니다. 그 때 그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것은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모시고 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효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기 희생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과 공경을 보이기 위해서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할 입장임에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자기 희생입니다.

다섯째로 신앙을 핑계로 해서 부모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마가복음 7장 9절로 13절에 보면 고르반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핑계 하에 부모를 섬기지 않는 악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을 하십니다. 어떠한 신앙적 핑계도 부모 섬기는 일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간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물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부모님이 멀리 계서서도 아닙니다. 환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관과 마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 섬김이 곧 하나님을 섬김이라는 기본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면서까지도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고통 중에 있지만, 운명 직전에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모친에 대한 효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의무입니다.

의무 수행의 법칙

부모님께 대한 공경과 순종이 자녀의 마땅한 의무이지만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면서까지 부모님께 효도할 수는 없습니다. 기드온은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가업마져도 모두 부수어 버렸습니다. 성도들이 제사를 드리지 않는 이유도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또 한가지는 주님의 사랑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이 의무라고 해서 의무만 가지고 하는 효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은 의무와 체면 때문만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미워하십니다. 비록 수십억의 십일조를 드린다 할찌라도 그것이 의무만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은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철저한 십일조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부부간의 관계도 의무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정말로 의미 없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의무 때문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가정은 이미 깨어진 것입니다. 의무 때문에 하는 일들은 사람을 피곤하게만 하지 기쁨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목회를 하는 것도 때로는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의무 때문에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하면 기쁨이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의무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 최소한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는 사랑정도는 가지고 해야 합니다. 저는 불구가된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여러번 보았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불구가 된 어린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6년 동안이나 배를 타고 다니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딸 아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부모도 울고 선생님들도 울었습니다. 그 광경을 T.V.를 통해 보던 수 많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의무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의무 때문이 아니라 사랑때문이듯이 자식은 부모를 공경할 때 자기 자식들을 돌아보는 그 이상의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의무만으로 하는 효도는 부모를 천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효도하는 자는 기도의 응답도 빨리 받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선교사에게서 있었던 일입니다. 8월의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선교사인 어머니는 급기야 열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왔으나 치료할 물건이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녀의 몸은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일단 열을 내리기 위해서 얼음이라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열대 지방에서 얼음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딸의 사랑의 마음은 불일듯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의무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수 시간 내에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급기야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효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들에게 기도의 응답이 있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무 수행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명령을 하시면서 의무를 제대로 이행자에 대해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잘되는 복이 있고 둘째는 장수하는 복을 주시마고 약속하셨습니다. 효도하는 자는 이 땅에서 잘되는 복을 받습니다. 물질의 복도 받습니다. 형통하게 되는 복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수하는 복도 받습니다. 건강의 복입니다. 생명의 복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골3:20). 그러므로 부모께 효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므로 영원한 생명까지도 얻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35장 5절 이하에 보면 레갑 족속들은 조상들의 가르침에 순종을 잘하였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포도주를 먹지 않았습니다. 선조 요나답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포도 종자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18, 19절을 보면 영영토록 하나님 앞에서 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모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 순종을 배우고 부모께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셔서 잘되는 복과 생명의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비들아

이제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가정을 위해서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을 마치시고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할런지에 대해서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주는 자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받는 자의 태도도 중요합니다. 4절에서 "아비들아"란 말씀으로 그 내용을 전환시키십니다.

어떤 가정의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 나라가 무척 가난했을 때 집 안의 실내 온도가 그리 높지 못할 때였습니다. 저녁에 머리맡에 물을 떠놓고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면 그 물이 얼어 붙는 실정이었습니다. 저녁에 잠을 자려고 이불을 펴놓으면 그 이불이 차가워서 즉시 이불 속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에 이불을 펴고 그 속에 들어가서 몸으로 이불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버릇 없이 아버지 이불 속에 있다고 호통을 치더라는 것입니다. 효도하려다가 오히려 불효자라고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효도를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효도하는 자식에 앞서서 효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부모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경건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부모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고귀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죄를 그냥 놔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죄는 노함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예의도 가르쳐야 합니다. 순종과 믿음도 가르쳐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질도 해야 합니다.

전에 교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일이었습니다. 극히 말썽을 부리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고민을 하다 못해 그 아이에게 채찍을 대었습니다. 대단히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한 쪽 마음으로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런 체벌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가? 저는 체벌을 한 후에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로 그 아이의 신앙은 눈에 띨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체벌이 있다고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 체벌을 통해서라도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혹독하게 체벌하므로 인해 그들의 마음 속에 원한이 생기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알맞는 체벌과 그 체벌에 따른 이해를 시켜주면 그것 때문에 자녀들은 원한을 갖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노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마음대로 할 때 노합니다. 과거의 경험을 강요하며 자기의 개성을 강요할 때 노합니다. 무력으로 공격할 때 노합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심각할 때 노합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시할 때 노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얕볼 때 노합니다. 자신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고 무조건 강요만 할 때 노합니다. 부모의 변덕이 심하여 일관성 없이 일을 처리할 때 노합니다. 부모가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서 말만 할 때 노합니다. 성장했는데도 어린아이 취급을 할 때 노합니다. 모두가 부모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부모는 자녀의 이러한 심정을 잘 알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능력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자제함으로 자식을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올바른 부모가 되기 위해서 두 번째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식을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훈계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말씀에 기초하여서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고 용기와 권면의 말을 주어야 하고 꾸짖는 말을 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본을 보임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양육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실재적 점검을 해가며 자식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부모가 되어서 이해하고 가르치고 훈련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서도 자력으로 설 수 있도록 양육을 해야 합니다.

자녀의 양육을 위해서는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동물은 새끼를 낳고 길어야 1,2년 같이 있지만 유독 사람은 20년이 지나야 제구실을 하도록 키웁니다. 여기에는 땀과 눈물의 정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모세를 키운 요게벳의 심정이 그랬고, 사무엘을 키운 한나의 눈물이 있었고, 디모데를 키운 로이스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을 키운 모니카의 15년의 눈물도 있었습니다. 19명의 자녀를 키운 웨슬리의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도 있었습니다. 기도의 눈물이 없이 자란 아이는 영양 공급이 모자라 일생동안 허약하게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불량 청소년은 눈물의 기도가 없는 가정에서 나옵니다.

찬송가 304장은 부모의 뜨거운 기도가 어떤 열매를 맺는가를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넓은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사랑이 언제든지 나를감싸 줍니다.

내가울때 어머니는 주께기도 드리고 내가기뻐 웃을때에 찬송부르 십니다.

아침저녁 읽으시던 어머니의 성경책 손때남은 구절마다 모습본듯 합니다.

믿는자는 누구든지 영생함을 얻으리 외워주신 귀한말씀 이제힘이 됩니다.

홀로누워 괴로울때 헤매다가 지칠때 부르시던 찬송소리 귀에살아 옵니다.

반석에서 샘물나고 황무지가 꽃피니 예수님과 동행하면 두려울것 없어라.

온유하고 겸손하며 올바르고 굳세게 어머니의 뜻받들어 보람있게 살리라.

풍파많은 세상에서 선한싸움 싸우다 생명시내 흐르는곳 길이함께 살리라.

믿음의 부모는 눈물의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하여 그의 자녀들이 올바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바른 습관을 갖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이중적 신앙을 가지고 위선자가 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셨듯이 더 큰 사랑을 갖고 자녀를 양육시켜야 합니다.

이제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아" "아비들아" 부르시면서 그 사명을 주십니다. 그 사명은 주기 위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는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됩니다. 우리는 받으려고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님께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공경과 순종을 드려야 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효도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교양과 훈계와 눈물의 기도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손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들과 딸만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오늘 이 어버이 주일에 우리는 육신의 혜택을 준 부모만 생각하지 말고 그 아들을 선물로 주신 우리 영의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믿음을 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시간 자식된 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부모님을 진정으로 공경하고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회개하고 부모된 자로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것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버이 주일을 보내면서 영의 아버지 하나님께 열심으로 충성하는 신앙을 드리므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