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와 소자
1.어린아이의 겸손을 가져야 한다...............마18:3-4
2.어린아이의 중요성...........................마18:5
3.어린아이를 해침에 대한 형벌.................마18:6
4.어린이들은 보호천사를 가짐..................마18:10
5.한 소자를 잃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님......마18:14
6.어린아이가 예수 오는 것을 용납하여야 함...눅18:16
7.주 서 어린이의 경배를 격려함...............마21:16
어린이에 대한 성구
1. 어린이에 대한 축복
신5:16 - 부모를 공경하는 어린이
시27:10 -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이
잠8:17 - 일찍 주를 찾는 어린이
잠8:32 - 순종하는 어린이
사40:11 - 양떼의 어린 양
막10:14 -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
행2:39 - 성도의 자녀
엡6:2 - 부모 공경은 약속있는 첫 계명
2. 어린아이가 상징하는 것
섬김 - 막10:15
겸손 - 마18:3,4, 눅18:16
미숙함 - 롬2:20, 고전3:1, 13:11, 히5:13
의존함 - 살전2:7
연약함 - 고전14:20, 엡4:14
어리석음 - 잠22:15
3. 영적 미성숙
고전3:1-2 - 어려운 교리를 받을 능력이 없음
갈4:1-3 - 후견인의 필요
엡4:14 - 요동하는 믿음
히5:12 - 초보단계에 머무름
1.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녀교육 (여호수아 4:6,21)
☞참고: 강해씨리즈 "이 사람을 보라"[가나안 정복의 영웅 여호수아].이동원.1988.나침판.pp,55-70
2.부모를 본받는 자녀(창26:6-7)
☞참고:상 동.pp.98-103.
3.애무 결핍증
동물 애호에는 도사라는 서양 사람들 이라지만 그들이 애완하는 짐승의 95퍼센트는 개와 고양이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에만도 9천만 마리의 개가 있고, 이 개들을 치료하는 데만 연간 50억불 이상의 돈을 들인다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프랑스에 1천4백만 마리, 서독에 9백만 마리, 영국에 5백만 마리의 애완용 개가 있으며, 고양이의 수는 그보다 웃돈다고 한다.
일전 보도된 바로 서양 사람들의 애완 동물에 대한 광기는 드디어 프랑스에 호화판 개 식당을 개업시키고 있다. 쇠고기 슬라이스/황소 피선지국/칠면조 다짐/대구 데침/크림 콩/석류향/우유.... 디저트에 봉사한 사람의 팁까지 합쳐 1만 1천 원이라나..... 개가 웃을 일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주로 연구하는 행동 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이 같은 광적인 서양 사람들의 페티즘의 원인으로서 그들의 굶주린 육체접촉(bady touch) 욕구를 이 개나 고양이를 안고 끼고 볼대기를 함으로써 보상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이라 했다. 조사한 바로 한 사람이 하루에 최소 세 번 이상 이 개나 고양이와 애무를 한다는데, 총계를 하면 1년에 1만5천억 번이나 애무를 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사람이 개나 고양이와 덜 가까운 것은 그 같은 욕구불만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낳자마자 격리해서 기르는 서양 사람들에 비해 우리 한국 사람은 젖가슴에 품고 기른다. 외출할 때도 등에 둘러 업고 잠잘 때도 팔베개에 베워 재움으로써 충분한 보디 터치를 시키기에 서양 사람들처럼 육체접촉 욕구의 결핍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자란 다음에도 친근한 사람끼리 정을 주고받으며 붙어사는데, 서양 사람들은 독립된 개인으로서 무미건조한 계약으로 거리를 두고 산다. 더욱이 현대문명은 타인과 친밀하게 사귈 수 있는 인간회로를 무참히 촌단(寸斷)시켜놓고 있기에 서양 사람들의 인간적 육체접촉의 욕구불만은 기하급수로 부풀어 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양 영화에서 흔히 보는 농도 짙은 러브신도 사랑이 짙다기 보다 이 보디 터치의 욕구불만 때문이라고 노벨상을 탄 동물학자 로렌스는 해석한다. 포옹한 상대방의 등짝을 쓸어 오르내리는가 하면 머리팍을 쥐어짜는 등 별의별 보디 터치를 강력하게 모색한다.
'감성훈련(感性訓練)'이라 하여 남녀끼리 피부를 맞대어 마찰하는 육체 마사지가 구미에 성행하고 있음도 보디 터치의 결핍이라는 일관된 논리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향락산업으로 안마 마사지가 우리 나라에서 크게 성행하고 있음은 우유만 먹고 자라나는 바람에 모체(母體)접촉 결핍증에 걸린 세대층(世代層), 그리고 인간적 접촉에서 단절된 고독한 세대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방증일까.
4.자녀교육
이어폰 낀 원숭이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벌거숭이 원숭이'에 보면, 육식동물인 사자는 먹이 한 마리 잡아먹고 배가 부르면 사흘 동안은 먹지 않으며 먹이가 곁에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한다.
그러기에 아프리카 야생공원에 가보면 사자 가족이 어울려 있는 바로 앞에 마사이족(族) 청년이 유유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며, 또 바로 그 곁에서 사슴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먹이를 잡을 때만은 그 상대가 비록 나약한 토끼 한 마리일지라도 전력을 다하여 추적한다.
잡아먹을 상대가 나약하다 하여 달려가는 도중에 암사자에게 추파를 던진다든가 곁눈질을 하는 법이 없다.
한데 초식동물인 원숭이는 나뭇잎이나 열매 같은 영양가 낮은 것만 뜯어먹기에 하루 종일 먹지 않고는 체력유지가 안 된다. 그러기에 원숭이는 먹으면서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젖을 먹이며 싸우면서 먹고 사랑하면서 이를 잡는다. 곧 이것저것 동시에 하는 '하면서주의(主義)'다.
짐승을 사람에 비겨서 안됐지만 육식을 주로 하는 서양사람은 사자처럼 일할 때는 그 하는 일에 열중을 한다. 서서 차 한잔 마실 여유를 허락받지 못한다. 그리고 놀 때는 칼로 자르듯이 일과 결별하고 노는 데 열중한다. 이에 비해 초식을 주로 해온 우리 한국사람은 원숭이처럼 일하면서 쉬고 일하며 밥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뽕 따면서 님도 본다.
기성세대가 이해 못 하는 신생세대의 행동이 하나 둘일까마는 그중 두드러진 하나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팝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원숭이 성(性) '하면서 주의'다. 팝송 듣고 싶을 때 팝송 듣고 공부할 때 공부하라는 타이름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머리 속을 시끌시끌하게 해놓아야 공부가 잘된다고 우겨대는 데야 대항할 논리를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먹고살 것 없어 푸성귀만 뜯어먹고 살았던 슬픈 역사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같은 '하면서 주의'를 체질화시킨 것이려니......하고 눈물겹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데 이 팝송을 들어야 공부가 더 잘된다고 하는 '하면서 주의'는 우리 한국 청소년들에 국한된 초식유전질(草食遺傳質)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보도된 바 미국의 한 교육연구소가 조사한 것을 보면 국민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학생 가운데 수학문제를 풀 때 88퍼센트가, 독서를 할 때 64퍼센트가 팝송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 집중력을 요하는 암기과목에는 해롭지만 응용문제나 복습할 때는 오히려 질력내지 않고 오래 공부할 수 있게 해주어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현대의 '하면서 주의'는 가중되는 생활주변의 도시 소음과 텔레비전 등 잡동사니를 동시에 수용하도록 체질화된 것이며, 오히려 조용하면 불안을 느낄 정도로 심화돼 있다 한다. 이어폰 낀 벌거숭이 원숭이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5.책과 텔레비전
이 세상에 활자가 생활화된 것은 15세기 중엽이었다. 활자인간(活字人間)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런지 꼭 5백 년 후인 20세기 중엽에 텔레비전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활자인간과 텔레비전 인간이라는 대단절(大斷折)이 목하 진행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 엄청난 대변혁을 실감나게 지각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볼딩은 '20세기의 의미'란 명저에서 인류가 떠돌며 먹이를 채집하던 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든 이래의 대변혁으로 이 활자인간과 텔레비전 인간의 단절을 보고 있다.
텔레비전 인간과 활자인간이 어떻게 다른가. 예를 들어 소설 한 권을 읽을 때 그 이야기는 한 줄거리로 수렴되고 정리되어나간다. 한데 텔레비전을 그 줄거리와는 관계없는 갖가지 이물(異物)이 쉴 새 없이 끼어든다.
커머셜이 끼여들고 긴급 뉴스가 끼어든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도 먹고 꾸지람도 듣고 심부름도 한다. 심지어 텔레비전을 보면서 공부를 해야 잘된다는 이상한 아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곧 이물(異物)을 이물로 생각하지 않고 뭣이건 흡수해버리는 텔레비전 인간은 사물이나 사리를 매듭짓는 한계능력이 약화된다.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고 스승을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불연속(不連續)의 연속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체질화되어 지속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기도 한다. 주의가 자주 옮겨짐으로써 집중력이나 끈기가 증발되어 실격인간으로 치닫게 한다.
둘째로 텔레비전은 잡다한 정보를 정리하지 않은 채 던져내고 텔레비전 인간은 그것을 정리하지 않은 채 수용한다. 여섯 살 된 아이가 60세 된 노인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해도 그것이 곧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균형이 잡히지 않아 상식 밖의 엉뚱한 짓들을 잘 저지르는 '어른아이'가 된다.
세째로 텔레비전은 사람을 촉각인간(觸角人間)으로 만든다. 텔레비전에서 쓰는 감각적인 말이나 행위나 헤어 스타일이나 차림새를 당장에 수용하여 개성을 상실하고 비인간화돼간다.
이 텔레비전 인간의 결함을 중화하고 대단절을 완충하는 데는 활자인간의 매체였던 책을 읽는 길밖에 없다. 책은 이 대단절의 시대에 있어 지식을 전달해주는 수단만이 아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해야 할 짓, 하지 말아야 할 짓의 매듭이 책 속에 있고, 또 어느 한 일에 집중하는 주의력과 끈기와 지속력이 책 속에 있으며, 정보를 분류하고 판단하고 취사선택하여 창조력과 연결시키는 분별력이 책 속에 있으며, 부화뇌동에서 자신을 구제하는 개성이 책 속에 있다. 활자인간의 텔레비전 인간에 대한 적의(敵意)나 질투나 반동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새삼 오늘을 '책의 날'로까지 정할 수밖에 없게 한 이 5백 년 만의 대단절을 심각하게 재인식했으면 한다.
6. 뉴키즈 난장판 (타락,락뮤직.민족성.성급함)
한말에 한국에 와 살았던 외국인들이 써 남긴 글 가운데 가장 빈도 높게 지적되는 한국인의 심성은 너무 쉽게 감동한다는 점이다.
화난다고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화난다고 서방질하는 나라는 아마 이 세상에 조선뿐일 것이라고 말한 이는 선교사 게일이다.
한국 사람이 딴나라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감동하는 이유로, 한국인의 마음속에 신바람을 매체로 하여 신명(神明)과 교감(交感)하는 무당 기질, 곧 샤머니즘이 강력하게 잠재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엊그제 인기 팝 그룹 '뉴키즈'가 공연차 공항에 도착했을 때 1천여 한국 10 대 소녀 팬들이 과시한 광기의 난장판에 대해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떻게 저러할 수 있을까 가늠할 길이 없어 어리둥절했을 줄 안다.
이 같은 광란을 감동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절규하게 마련이 오빠란 말을 빌려 '오빠! 증후군'이라 해두자.
팝이란 바로 흑인 음악이 갖는 강한 리듬 위에 구성된 음악이다. 그 강한 리듬이 우리 한국인에게 잠재된 신바람의 무당 기질을 강하게 자극한다는 것이 오빠 증후군의 한 유발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둘째로, 뉴키즈가 부르는 노래들이 같은 노래말을 적당히 반복시키고 "예!"같은 기합을 넣는 음을 배합하여 최면 효과를 높이고 있음이 '오빠! 증후군'을 촉진시킨다.
셋째로, 노래부르는 것은 남성인데 나오는 소리는 중성 음성이라는 점이다. 중성의 음성은 귀로 듣는다기보다 온몸의 성감대를 통해 마치 촉감처럼 몸에 스며든다고 말한 것은 팝 연구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래저래 뉴키즈들에게 '오빠!'를 연호한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하자
세상에 뉴키즈가 쓴 모자를 강탈하여 서로 찢어 갖는 행위며, 머리카락을 뽑거나 이들이 쓰다 버린 휴지를 주워 지갑 속에 소중히 챙기는 행위며, 심지어는 뉴키즈의 머리를 만진 손이라 하여 쳐들고 자랑하는가 하면 그 머리 만진 손에 손을 대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등의 병적인 행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이성(異性)의 신체의 일부나 속옷 같은 옷가지 등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이 같은 페티시즘(呪物崇拜)은 정신의학에서 병으로 취급되고 있는데, 오빠 증후군이 지나쳐 집단 성도착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팬으로서 과열된 행위는 사회 현상이지만, 이 같은 페티니즘 행위는 대로마 제국이 그 때문에 망하기 시작했다는 사회병 현상이다.
7. 유혈 집단 히스테리
근세 유럽에는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인 무도병(無蹈病)이 종종 유행했었다. 부녀자들이 어울려 기성을 지르고 옷을 찢어대며 춤을 추는데 온 마을, 온 도시에 전염하여 수백 명이 탈진하여 쓰러질 때까지 광란의 춤을 추었다.
뉴기니에도 주기적으로 여인들이 집단으로 광기(狂氣)를 부리는데 육체를 노출시키며 외설적 음성과 시늉을 하며 춤을 추어댄다.
<대동야승(大東野乘)>에 보면 우리 나라에도 부녀자들의 집단 히스테리 사례가 나온다. 절에 놀러 간 부녀자들이 갑자기 게걸게걸 웃어대며 속옷 바람으로 기성을 지르며 지쳐 쓰러지도록 춤을 추어대는데 진흙물을 달여 먹였더니 웃음과 지랄이 멎었다는 것이다.
옛 의서(醫書)인 <황제 내경(黃帝內經)>에도 이 여인들의 집단 히스테리에 관한 증상이 나온다.
"얌전하던 여인들이 갑자기 옷을 벗고 달리거나, 높은 데 올라 노래하거나 담을 뛰어넘고 지붕에 오르기도 한다. 헛것이 눈에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며 헛수작을 하며 헛웃음을 웃거나 머리를 풀고 마구 헛고함을 질러댄다."
이 집단 히스테리는, 사회 현상은 변하고 있는데 도덕 체계나 가치관이 그에 따르지 않아 심리적 괴리가 생겼을 때 발작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리고 만월(滿月)과 히스테리 발작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정설이 되고 있다. 에스키모 여인들의 발작적인 광란을 '만월병(滿月病)'이라 하는데, 만월을 전후해서 발작되기 때문이라 한다. 달을 뜻하는 영어 '루나'는 바로 미치광이를 뜻하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임부(姙婦)가 달을 맞보고 앉으면 뱃속 아이의 머리가 도는 것으로 안다. 미국에서는 교통사고, 살인사건 등 범죄 발생률이 보름달 밤에 절정을 이루고, 독충이나 파충류도 만월을 전후에서 독성이 가장 강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곧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보름달 밤에 대사 활동, 공격 활동, 성충동이 가장 활발해진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밟고 밟히고 70 여 명의 부상자를 내고 만 뉴키즈의 광란은, 노래를 좋아하는 팬의 열광을 넘어선 어떤 집단 히스테리의 발작과 같은 느낌이 든다. 더욱이 그 난장이 펼쳐진 날 밤이 바로 보름 가운데 가장 큰 보름인 대보름의 전야란 점에서 그렇다.
10 대는 무한히 우상(偶像)을 추구해서 10 대다. 다만 독서를 수반한 전인교육을 받으면 정신적 우상으로 그 농도가 분산 희석되는데, 입시 공부만 하다 보면 관능적인 스포츠나 연예 우상에 그 농도가 집중 농축되어 열광을 넘어서 광란, 광란을 넘어서 집단 히스테리로까지 발전한다.
다만 동서고금의 열광에서나 집단 히스테리에서 상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유독 한국에서 유혈극으로 쉽게 발전하는 것은 질서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임을 알아야겠다.
8.전자파 발작(전자오락)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할 것 없이 모든 생물은 적은 전압(電壓)의 전기를 지니고 있는데, 전압에 이상이 생기면 이상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은 상식이 돼 있다. 미국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칼빈은 태양 광선의 영향을 받는 식물의 잎에서 1 평방 인치 당 0.1 마이크로 암페어의 전류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엽록광전소자 (葉綠光電素子)'란 이름을 지어 주고 있다. 이 전류가 식물의 기억력을 형성하고 있음을 소련 과학 아카데미가 실험으로 입증하고 있다. 화분의 제라늄을 비틀고 찢고 할퀴며 약물을 묻혀 괴롭힌 사람을 접근시켜 이 전류를 측정해 보았더니 심한 난류 현상이 벌어진 데 반해, 물을 주고 스프레이로 닦아 주며 무거운 가지를 지탱해 준 사람을 접근시켜 전류를 재보았더니 충격파나 난류가 사라지고 유연한 곡선을 긋더라는 실험 보고가 있었다.
철새들은 날개 하나 만으로 가이없고 끝이 없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 다니는 줄 알지만, 학자들의 추적에 의하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승용차만큼 좁은 하늘길의 구속을 받으며 수 만리를 오간다고 한다. 아무런 표지도 없는 그 하늘의 좁은 길을 어떻게 방향을 잡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철새들의 머릿 속에 흐르는 전류와 태양 광선 및 지자기(地磁氣)가 좌표와 방향을 잡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2차 대전 중 수뢰(水雷)를 장치한 돌고래의 노전파에다 주파수를 맞추어 유도시킴으로써 적의 군함을 격침시킨 사례도 있다.
그래서 사람의 두뇌에 10 마이크로 볼트 내외의 전압을 가진 전기가 뇌 속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이 전기가 각종 광합성 프리즘이나 지자기의 영향으로 그 전압이 마치 혈압처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그 자극에 양성인 사람의 전압이 급상승하면 이상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눈 속에서만 사는 에스키모 족에게 이 이상 발작이 잦기로 에스키모병 또는 북극 히스테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다발 이유로 눈에 특수 광합성 물질이 함유된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 무당 가운데 `내림무당'이라 하여 북극 히스테리와 같은 발작을 거쳐 무당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성무(成巫)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면 10 대 전반의 소녀로서 밥을 못 먹고 외부와 단절해 살다가 어느날 학을 타고 오는 선인(仙人)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리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겉잡을 수 없이 눈이 쏟아지는 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길바닥에 뛰어나와 춤을 추다 경련이 일어나 몸을 뒤틀며 쓰러진다는 대동소이한 무병(巫病)을 앓고 있다. 곧 샤머니즘과 이 뇌전파의 이상과는 밀접한 함수 관계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전자 게임에서 방출되는 특수 광합성 물질이 전통 사회의 무병(巫病)에 가까운 간질 발작을 유발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바람-곧 샤머니즘에 별나게 민감한 우리 민족 체질인지라 더욱 그렇다.
9.폭력
☞참고:예화[폭력]편 3번 참고.
10.카악! 기질고(氣質考)
중국음식점에 들어가 앉고자 의자를 뒤로 뺀다. 뺀 의자가 그 뒤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젊은이의 팔꿈치에 닿았던지 국물이 좀 튀겼던 것 같다. 이 젊은이 카악! 하고 일어나 공격자세를 취하고 '꼰대가!'하는 원색적 언사를 발사 한다. 줄서 기다렸다가 버스에 올라탔다. 한 젊은이가 새치기해서 앞자리에 앉길래 줄서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느냐고 나무랐던 일이 있다.이 젊은이 카악! 하며 뒤돌아보더니 '당신 자리 내가 앉았소? 잘난 체하지 마시지'한다. 대꾸했다가는 육체적 반격이 나올 것이 분명한 기세였다. 이만한 젊은이들의 카악! 반동(反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줄 안다.
스승이 학생에게 곧잘 얻어맞는 것도 바로 카악! 기질이 상식적인 발로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대뇌피질(大腦皮質)에는 옳고 그름이 판단하는 이성뇌와 울고 웃고를 판단하는 감성뇌, 이 두뇌를 연결 조절 시키는 망상체(網狀體)로 돼 있다. 곧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이성뇌. 감성뇌에 전달되고, 두뇌에서 판단된 반응을 취합 조절하여 행동하도록 하는 망상체는 전화교환대다. 지금 곁에 앉았던 사람이 갑자기 나의 무릎을 찰싹 때렸다고 하자. 이 자극은 감성뇌에 전달되어 분노를 야기시킨다. 동시에 이 자극을 전달받은 이성뇌에서는 혹시 무릎에 파리가 앉아 이를 잡으려 때렸을지도 모른다는 반응을 일으킨다.
이 두뇌의 반응을 망상체가 조절시켜 무릎을 친 사람에게 감사하도록 하는 판단을 내린다.
`카악! 기질을 이 대뇌의 구조로 따져보면 본능적 감정을 관장하는 감성뇌만 이상 발달하고 이를 억제하는 지적. 도덕적 이성뇌는 건포도처럼 퇴화돼 있다는 것이 된다. 그 불균형으로 망상체는 빈집의 거미줄처럼 기능을 상실하고 있고.... 화난다고 자기 집에 방화를 하고 화난다고 서방질하는 한국 사람은 선천적으로 감성뇌가 발달돼 있는 편이다
거기에 후천적으로도 발달시켜 왔다. 뇌세포가 왕성하게 형성되는 어릴 적에 잘잘못이 포용되는 모성원리가 강하게 작용하면 감성뇌가 발달하고, 잘잘못을 끊고 맺는 부성원리가 강하게 작용하면 이성뇌가 발달한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카악! 기질은 부성원리가 증발하고 오직 과보호로 응석이 무한 수용되는 모성원리 아래에서 이기적 자아가 이상 비대함으로 빚어진 필연이랄 수 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살인사건의 경우 상대방과 사소한 시비 끝에 카악! 하는 성질을 못 참고 저지른 경우가 53 퍼센트나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88 퍼센트가 카악! 때문에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프린츠홀른은 남을 배려하는 '가슴'이 퇴화해 없어지고, 이기적 머리만 커진데다 본능적 생식기만이 그 머리에 달려 있는 기구한 몰골의 인간을 '프린츠홀른 인간'이라 이름했다. 카악! 하는 기질로 살인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프린츠홀른 인간이요, 그런 기형인간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이 된다.
11.교만한 바리세인
바리세인들은 대단히 교만했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근본 자세는 겸손이 아니겠는가?
교만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바리세인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안다는 것으로 교만하고, 의롭다는 것으로 교만하고,거룩하다는 것으로 교만하고, 남보다 죄를 덜 졌다는 것으로 교만하고, 그랬기에 그들은 결국 무지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무지함으로 예수를 영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릇된 지식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무지한 상태로 몰고간다. 그래서 진정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하고 알수록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12.유대인의 교육
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그 아들을 홱 던져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꼬마는 평생 처음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또 다시 아빠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한번 호되게 밀쳐내 버린다.
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사랑의 대상이요 다정한 친구요 자신의 삶은 몽딴 송두리채 책임지고 있는 존재로서 이 아이에게만은 하나님방불한 실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까닭없는 배신의 아픔은 어린이가 재대로 소화하기에 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다.이럴 때 아빠는 자기 아들에게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가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
한눈에 매정해 보이는 유대인의 아비들은 이 진리를 아이들에게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애간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참고 견디며 이런 방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없이 온 세상을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면서도 2천 수백년 동안 자기들의 민족성을 굳게 지키고 오늘의 세계를 이끌어 가는 힘의 상당 부분은 이와같은 육아법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떠한가?
[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만 굳게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단다 너는 아무 걱정 말고 편하게 살아라]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는지.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 주는 것,시집가는 딸에게 엄청난 혼수를 장만해 주는 것 등이 바로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이겠는가? 엄마는 아이들의 학교 성적까지 책임질 작정으로 맹렬한 치맛바람을 날리고 다니지 않는가?
이런 식의 육아법은 결국 자녀들로 하여금 남을 의지하는 졸장부로 만들고 또 지극히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은 하늘같이 믿었던 인간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면 그 엄청난 충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결과 적으로 파탄의 인생을 살게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오직 하나님외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자가 없음을 가르쳐야 한다.
13.15분 주의(자녀교육)
요즈음 아이들 노는 데 있어서나 공부하는 데 있어 지속성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야구공 들고 놀러 나갔던 놈이 30분도 못되어 돌아온다. 플라스틱 모델을 만지작거리다가 15분도 못 되어 텔레비전 앞에 턱을 괴고 엎어진다. 아무리 흥미있는 놀이 일지라도 15분 이상 넘기면 권태을 느끼는 것이 요즈음 아이들의 생리라고 이론화 돼 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유원지의 회전목마니 각종 타는 놀이의 소요시간을 15분 이상 넘기지 않는 것이 상식이 돼 있다 한다. 요즈음 어른들도 옛날 어른과는 달리 지긋한 맛이 없고 단속(斷續)이 빨라졌다.
마작(麻雀) 놀이는 한 판에 몇 시간씩 걸리는 지속성 유희인데 요즈음에는 15분 내외로 끝나는 단판 마작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화투놀이도 옛날에는 '육백'이라 하여 꽤 길었는데 요즈음에는 '뻥'이라 하여 15분 안에 끝내버린다. 볼링도 게임당 15분이라고 들었다. 매스터즈 보고에 의하면 현대인의 성(性)행위 지속시간도 15분이 상식화 돼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이 15분 간격으로 흥미나 주의력이 변하는 현대인의 체내시계(體內時計)적인 생리(生理)를 쿼터리즘, 곧 '15분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지속성을 단속성으로 전환시킨 이유로서 텔레비전의 생활화를 든다. 대체로 동서양 할 것 없이 텔레비전 프로는 15분, 4 배수인 1시간으로 돼 있다. 영화가 사양 산업이 되고 있는 이유로서 텔레비전의 보급을 들고 있으나 이것은 근인(近因)이요, 원인(遠因)은 15분주의 때문에 현대인이 두 시간 남짓한 길이의 영화를 봐낼 지속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상영 시간을 단축, 2편 내지 3편의 동시 상영이 유행하는 이유도 이 15분주의에 영합한 자연 추세랄 수 있다. 독서 주간을 맞아 한국 출판 판매 주식회사가 고객 1천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4명 중 한 사람꼴로 텔레비전 시청 때문에 독서를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근인이요, 원인으로는 15분이 지나면 권태로와지는 체내 시계 때문에 <전쟁과 평화>나 <상록수> 같은 대하 소설을 읽어낼 지속력이 결여됐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짤막한 에세이류가 많이 읽힌다는 것도 15분 내에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요, 잡지에서 15분 내에 읽어낼 수 있는 짤막한 글이 늘고 있음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촌단(寸斷)된 시간을 각박하게, 또 정신 없이 산다는 것은 인생을 잘게 썰어 소비해 버리는 것이요, 결코 축적은 아니다. 옛 공장(工匠)들은 불상 하나 만드는데 10년 공들이고 10년 조각을 했다지 않던가? 텔레비전 시대의 15분주의를 전제하는 길은 오로지 활자 시대의 독서 밖에 없다는 맥루한의 실험적 보고가 새삼스럽기만 하다.
14.배고품을 모르는 자녀들
☞참고:『어린이』편 1번 참조
15.아버지와 아들(아브라함과 이삭) (창22:17-18)
이삭, 그는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이요 그를 통하여 한없는 축복을 내려주마고 하나님이 친히 약속하신 독자다 실로 아브라함에겐 자기의 전부보다 더 귀하고 중한 존재임이 분명하지 않은가?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은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번제가 어떤 제사인가? 대상물을 완전히 불태워 바치는 특수한 제사가 아닌가?이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것이요 천륜을 어기는 것임이 분명하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주신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시는 것으로서 심각한 하나님의 오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경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사람을 제사의 대상으로 지명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신의 제물로 요구하는 이방 종교를 언제나 맹렬히 공박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성경의 하나님이 지금 이삭을 번제롤 바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아브라함은 두말없이 순종한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절대적인 신이라는 것을 믿었고 아울러 그 하나님의 생각은 자기의 지각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브라함과 동질의 신앙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번제의 대상으로 지목받은 이삭이다.이들은 자기들이 지닌 절대적인 신앙으로 서로 동심협력하여 하나님이 요구하는 번제를 바쳤고 그 결과 부자는 다 같이 큰 복을 확정받았던 것이다.
16.자녀교육
인간성 발전소
2차 대전 후 패전(敗戰)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을 하나 두고 두 고아원이 이웃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연합군과 결연이 되어 시설도 좋고 영양도 담뿍 취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고아원은 풍우(風雨)도 제대로 가리지 못 할뿐 아니라 분유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왜냐면 시설과 영양이 좋은 쪽의 어린이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60%나 높았기 때문이다.
상식에 위배된 이 결과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연구 결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전쟁중에 세 아이를 잃고 실성한 40대의 어머니가 어느 날 시설이 나쁜 쪽의 고아원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이 어머니가 그곳에 수용된 고아들을 모두 자기 자식으로 착각하고 번갈아 안아주고 얼러주길 수년간 계속하고 있는 사실에서 이 의문이 풀렸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아이들은 환경이나 영양 이외에 어머니의 품에서 배어나오는 훈김, 곧 인간성이 아이들 성장이나 건강이나 생명의 불가결의 요인이라는 학설이 체계화되고, 지금도 구미(歐美)의 고아원에는 훈김을 급여하는 대모(代母)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 돼 있다.
작가 스타인백의 단편소설 가운데 한 가난한 어머니가 헤어진 양말을 깁고 있는데, 그 어머니 등에 등을 맞댄 아들놈이 주워 온 쇠붙이를 늘어 놓고 놀고 있는 그런 정경을 묘사한 대목이 있었다. 물론 아무런 대화도 없고 숨만 색색 쉬고 있지만 그 등을 통해 오가는 훈김, 곧 인간성은 이 세상 어떤 권력이나 금력이나 명예로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것이라 했다.
그것은 비단 모자(母子) 사이에만 발전(發電)되는 훈김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발전되는 훈김인 것이다. 그것만 있으면 세상이 가시 방석처럼 각박해도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비단 방석이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
70된 한 거지 노인이 밥을 빌어다가 밥도 빌지 못하는 불우한 사람들을 먹여 살린 것이 시초가 되어 버림 받고 불우한 사람끼리 상부상조하며 사는 충청도 음성(陰城)의 `꽃동네'야말로 우리 한국에서 가장 큰 인간성 발전소가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사는 어느 한 사람도 20세기 최대 인간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콜롬비아에 한 조각 정을 나누려 하지 않고 있는데, 이 꽃동네에서 맨 먼저 의연금이 나왔다는 것은 포도처럼 말라 비틀어진 현대인의 심장을 예리하게 지탄하는 것이 된다.
이 꽃동네에서 낸 돈은 돈이 아니라 그것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리떼가 되는 그런 훈김이다. 꽃동네는 그 훈김의 발전소다.
17.인구 억제세(稅) (자녀)
인구가 모자라 걱정인 나라들에서는 자녀가 늘수록 자녀 수당이 늘고 있다. 국시(國是)로 인구를 늘리고 싶은 프랑스에서는 자녀가 둘일 때 월 1백 39 프랑(1만 4천 원꼴)의 자녀 수당을 받고 있으며 아이가 많을수록 비례해서 늘어난다. 7 남매일 경우 무려 1천 4백 56 프랑(14만 6천 원꼴)이 된다. 근로자의 월평균 수입이 3천 프랑이란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자녀값이 아닐 수 없다.
소련에서는 `무자세(無子稅)'를 문다고 한다. 20세 이상 50세 미만의 부부나 독신 남자로서 자녀가 없는 사람은 월수의 6 퍼센트를 무자세로 공제한다. 스위스에는 `독신세(獨身稅)'가 있다. 독신으로 월수 3천 프랑이라면 4백 프랑이나 물어야 한다.
역시 인구가 많아 골치아픈 나라들에서도 세금과 수당으로 증가를 억제하고 있다.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는 공무원 가족 수당을 자녀 셋까지만 준다. 그 이상은 다섯 명이건 열 명이건 세 명분 이상 받지 못한다. 땅이 넓고 자원이 있는 나라이기에 여유있는 규제를 하고 있다. 가장 각박한 나라인 싱가포르에서는 아들이 하나일 경우 연간 세금 공제액이 7백 50달러인데, 아들이 넷인 경우는 반감을 한다. 다섯 이상이면 세금 공제 혜택이 없다. 이상 인구 조절을 위한 세금 수당을 볼 때 `독신세'나 `무자세'를 제외하면 이미 주어 온 혜택을 줄이거나 주지 않거나 하는 혜택 감소나 혜택 취소로 인구 정책을 장려하고 있는 데 예외가 없다.
어제 밤을 계기로 우리 나라 인구가 4천만 명을 돌파, 인구 공황(人口 恐慌)이 새삼스럽게 대두됨으로써 정부에서는 다각도로 인구 억제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 외국의 혜택 감소에 의한 장려책과는 달리 세금이나 보험료를 중과(重課)시키는 부담가중으로 마치 벌금형 같은 규제 인상을 받게 하고 있다. 곧 두 자녀 이상을 낳으면 주민세나 의료보험료를 추가 부담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자녀 버릇들일 때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질 못하고 눈을 부릅뜨고서 하지 말라고 공갈하듯이 인구 시책에서도 꼭 그런 인상을 주고 있다. 더우기 여성 근로자로서 세번째 자녀를 출산하면 유급 휴가를 주지 않기로 한 것은 모체(母體) 훼손을 자행하는 것으로 인권 문제와도 관련이 된다. 지금도 딸만 둘이라면 아들 낳을 때까지 계속 출산을 하겠다는 맹렬 어머니가 둘 중에 하나 꼴이나 된다는데 억제 효과는 커녕 세금 부담만 늘리는 우려도 없지가 않다. 남아선호(男兒選好) 의식을 약화시키는 제도적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실속이 더 있지 않을까 싶다.
18.타락의 극치
미국의 공중 보건 정책의 최고 책임자이며 첫 흑인 여성장관인 조슬린 엘더스 공중위생국 장관이 학교 아동의 성 교육에 관한 발언때문에 해임이 됐다.
낙태와 마약의 합법화,성교육및 콘돔 배포등에 대한 지지 발언으로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온 엘더스 장관은 최근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학교 아동들의 안전한 성 생활을 위해 자위행위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젠 아이들도 성생활을 하라는 얘기인데 그런 망언이 어디있나.
말세는 말세이다.
-동아일보 94.12.11일자 7면기사-
19.신앙교육
떫은 감을 어린 아이가 두개 가지고 있다.
아이가 먹으려 하는데 그것을 먹으면 큰일난다고 소리를 치면서 버리라고 하고 바나나를 보여 주었다. 그 아이는 바나나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떫은 감도 역시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억지로 그 감을 빼앗아 버리고 바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바나나를 던져버리고 엄마가 빼앗은 두개의 감에 대한 향수때문에 계속 울어 댔다. 엄마를 증오하고 미워하게 된다.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이나 율법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증오와 환멸을 느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것이다.
20.자녀교육
일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공중도덕 지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고 사는 얘기가 있다.
[남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라고 한다.
확실히 미국 사람은 어디 고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입양하고 남에게 나눠주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남에게 기죽지 말아라]
바로 이말을 들으며 우리 아이들은 자란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승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덤벼들고, 부모에게 덤벼들고,사장 앞에서도 큰소리를 친다.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나와서 불문곡직하고 고함부터 지른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다.
어디에서든 기죽지 않을려고 해외에 나가면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 싹쓸이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기가 살았다고 좋아한다,
기가 죽어도 안되겠지만 남을 사랑하는 법을,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키워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한마디 충고가 겁이난다. 기죽지 않고 커왔기 때문에 당장 눈을 부라리고 덤벼들것이기 때문이다.
[기죽지 말고 살아라]하는 말은 우리의 자녀들을 정말 죽이는 말이다.
21.자녀 교육의 원칙
자녀를 키우는 데는 두 가지 간단한 원칙이 있다.
우선 사랑을 굉장히 많이 주는 것이다.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따른 규칙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할 것이다. 이 두가지가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형제들 간에도 우애가 있고 부모를 잘 모시며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엄격함만 있으면 아이들이 기가 죽어 버린다. 사랑만 있으면 아이들이 방종하기 쉽다. 사랑과 말슴안에서의 엄격함은 항상 공존해야 한다.
22.대발이 집-지은이 집
임강(臨江)에 사는 어느 한 형제가 사냥을 갔다가 각기 한 마리씩의 사슴 새끼를 잡아왔다. 이를 안고 문안에 드니 집에서 기른 개들이 달려들어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이에 형은 개들을 나무라고 쫓고 하며 곁에 두고 애지중지 길렀으며 음식도 따로 주고 등걸이도 해입히는 등 하였기로 개들이 잔뜩 시기를 하고 있었다. 한데 아우는 개들의 해침을 받지 않고 어울려 살게 하려면 개에 따르게 하고 개도 돌봐주게끔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물리거나 다치지 않을 정도로 개에 시달림을 받게 적응시켜 길렀다.
이 형제가 머나먼 과거길을 다녀왔더니 형의 사슴 새끼는 개에 물려 죽어 있었고 아우의 사슴 새끼는 개떼에 섞여 반갑게 마중나왔던 것이다.
이것은 당(唐)나라 학자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라는 글로서, 자녀를 놓아기르느냐 닦달하여 기르느냐의 가르침을 빗댄 우화(寓話)인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자녀를 둔 부모의 태도는 부성 원리와 모성 원리로 대별해 볼 수 있다. 부성 원리란 자녀들의 행동을 규제하여 끊고 맺으며 잘잘못을 따지고 법도의 틀에 구속시키는 원리요, 모성 원리란 잘하고 못하고를 초월하여 자녀 위주로 포용함으로써 법도의 틀 밖에 해방시키는 원리다. 유종원의 '임강 사슴 이야기'에서 형님은 사슴 새끼를 모성 원리로 길렀고, 아우는 부성 원리로 길렀다는 것이 된다.
물론 이 두 원리가 극단으로 작용함으로써 장단점이 생겨나고, 시대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어떤 원리가 가치를 더 발휘하고 덜하고 하였다. 삼강 오륜이 지배했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 부성 원리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 왔으나 2차 대전 후 서양 문물의 영향으로 모성 원리가 우위를 차지, 가정에서 아버지는 누렇게 바랜 사진 속의 정물(靜物)로만 남아 있을 뿐 퇴색하고 증발해 버렸다.
부성 원리를 행사하면 시대에 뒤진 인간으로 손가락질 당하거나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텔레비젼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가 시청률을 올리고 있음은 이 부성 원리가 지배하는 '대발이 집'과 모성 원리가 지배하는 '지은이 집'을 둔 현대의 가치관의 갈등 때문일 것이다.
연령층이 높을수록, 그리고 남성일수록 권위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대발이 집'을 선호하고 연령층이 낮은 여성일수록 민주적이고 자상한 '지은이 집'을 선호할 것이다. 만 20 세 이상 성인 남녀의 갤럽 조사에 보면 지은이 집 48 퍼센트대 대발이 집 35 퍼센트 선호율이었다. 물론 대발이 어머니보다 지은이 어머니가 보다 행복하다고들 여기고...... 어느 집에 살겠느냐 하면 지은이 집을 선택하겠지만, 어느만큼 대발이 집처럼 꾸려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하는 사람 또한 적지않았다한다.
문제는 양자택일의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두 원리의 슬기로운 조화에 있다고 본다. 자유와 규제는 반드시 상반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강의 사슴 이야기에서 아우집 사슴이 형집 사슴보다 덜 행복하거나 덜 자유로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3.모성애와 자녀교육
미국에서 '가장 바쁜 1백 명' 중에 도로시 리가 끼인다. 그는 왕성하게 현장 학술답사를 하는 여류 문화인류학자요 세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도로시 리는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신변의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먹은 둥 마는 둥 저녁밥을 지어먹고 설겆이를 끝낸다. 내일 있을 강의 준비, 논문자료 정리, 학술답사 여행 준비, 아이들 등교 채비 등을 해놓고 보니 열두 시가 넘었다. 지칠 대로 지쳐 팥죽처럼 퍼진 몸을 끌고 아이들 방을 들른다. 잘 자나 보기 위해서였다. 다섯 살 난 앤의 방에 들어가 인형을 끼고 곤히 잠들어 있는 딸을 보자 깜박 잊었던 일이 되살아났다. 오늘 밤까지 인형의 이불을 만들어주기로 앤과 약속이 돼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인형의 이불을 만들어 나가면서 마치 진통제라도 먹은듯이 그 무겁던 피로가 구름처럼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거의 만들었을 때 여태까지 못 느꼈던 어머니로서의 황홀감이 얼굴에 가벼운 경련을 동반하면서 나를 엄습해왔다. 나는 그 바쁜 외부생활 때문에 이 내면의 심오한 희열을 못 느끼고 살았던 것을 그 후부터 줄곧 후회하고 있다."
도로시는 그 희열의 시간을 단절시키고 싶지 않아 앤 곁의 인형에게 그 이불을 덮어주고 앤의 얼굴을 너무나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했다.
악처(惡妻)를 두어 유명한 톨스토이는 자기 딸 타치야나에게 부친 편지 가운데서 "너는 모녀간에만 소리낼 수 있는 아름다운 `G선상의 아리아'를 못 듣고 자란 가엾은 여인"이라고 했다. 즉 그 희열의 모성을 `G선상의 아리아'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고 원초적인 이 같은 `G선상의 아리아'는 동서고금에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다만 어머니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의 변동이나 또 사회적 의식의 변동이 아름다운 `G선상의 아리아'를 둔탁하게 하거나 파열음이 나게 했을 따름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인'이라는 영국의 대처 수상이 이사간 딸네집에 가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페인트칠 하는 보도사진을 보자 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G선상의 아리아'가 잔잔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그 어떤 부귀영화 보다 그러해야 행복한 것임을 뉘우치게 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24.어머니의 가슴
고대 라틴말로 유방(乳房)은 맘마(mamma)였다. 이 맘마는 어머니란 뜻도 되고 또 그곳에서 나는 젖에서 연유하여 식사(食事)란 뜻도 된다. 우리 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한데 맘마란 말이 사어(死語)가 돼버렸다. 영어에 유방이란 말이 따로 없고 가슴(breast)이란 말로 대용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젖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슴이 말랐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유방을 섹스의 일환으로 보았기에 섹스에 준엄했던 기독교 윤리에 저촉되어 이름마저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 있어선 유방을 모성(母性)의 일환으로 보았기에 유방의 성적 자극가(性的刺戟價)가 거의 없었다. 옛 어머니들이 사람들 앞에서 젖통 드러내놓는 걸 예사로 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모성의 원천으로서의 유방은 클수록 좋았다. 겨우 두 손아귀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젖통인지라 단지만하다 하여 유호(乳壺)라 해도 됨직한데 오죽하면 항아리보다, 뒤주보다 더 큰 방(房)만하다 하여 유방이라 했을까.
어머니의 조건으로 유방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다는 표현이랄 것이다. 순조 때 실학문헌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보면 젖을 일찍 끊은 아이는 연몸(戀母)의 정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지능이나 정서에 결함이 생긴다는 체험적 지혜를 적고 있다. 유방을 통한 엄마와 아기의 피부접촉이 하루 4시간 이상 지속되지 않으면 정서와 지능에 결함이 생긴다는 과학적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체험적으로 터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생아는 자궁의 양수(羊水) 속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맥박소리와 어머니 특유의 체취를 기억하고 태어난다. 산모의 맥박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준 신생아와 들려주지 않은 신생아의 체중증가를 비교한 실험이 있는데 현저한 발육차이를 발견하고 있다.
또 갓태어난 아기 머리맡에 엄마의 브래지어를 놓아두면 그 유방냄새를 기억, 반드시 놓아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실험도 있다. 어머니의 맥박소리나 유방냄새를 기억하고 태어나며, 그 기억을 유지시켜주어야 심신이 안정되고 정상적인 발육을 한다. 0-2세 사이에 대뇌의 모든 세포배선(細胞配線)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때 자녀들 대학입시 점수에 따른 고심(苦心)을 이 신생아 1-2년 동안의 유방을 통한 피부접촉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뜻있는 분들이 엄마사원의 모유접촉을 위해 직장에다 엄마 젖 먹이는 방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 첫 '모유방(母乳房)'이 국제아동기금(UNICEF) 한국 사무소에 첫 부설됐다 한다. 엄마사원을 거느린 사장님들 유의해주어야겠다.
25.오성과 교육
13세기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프레데릭 2 세는 사람이란 뱃속에서부터 자신의 말을 갖고 태어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말일 것이라고도 믿고 있었다. 이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고자 30 명의 갓난아기들을 부모로부터 격리해 무언(無言)으로 기르게 했다.
무언으로 기르면 본래 익혀 갖고 태어난 히브리말을 하게 될 것이므로다. 한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 아이들 모두가 시들시들 메말라 끝내는 죽어버렸던 것이다. 아기들은 어머니와의 간단없는 피부 접촉, 대화 없이는 정상적으로 자라지도 못하고 또 병에 대한 면역성도 결핍되어 사망률도 높아진다는 사례로서 곧잘 인용되는 사실(史實)이다.
태어나서 두 살 까지의 뇌의 발달량은 두 살에서 스무 살까지의 뇌의 발달량과 맞먹으므로 두 살 때까지는 하루에 최소 4 시간 이상의 살붙이-곧 촉각을 비롯, 감각접촉을 하지 않으면 뇌의 정상적 발달을 기할 수 없다는 것이 대뇌 생리학자들의 정설이 되고 있다. 암의 발생도 이 어린시절의 피부접촉 결핍과 분명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그래서 구미에서는 종전처럼 아기들을 모체로부터 격리해 기르질 않고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오감을 꾸준히 자극하는 새로운 육아법이 보편화되고 있다 한다. 모자접촉이 없으면 왜 허약해지는가는 모르고 있던차 마이애미 대학 연구팀이 그 원인을 가려내어 미국 신문들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모자 접촉에서 격리하면 30 분 이내에 ODC라는 단백질 합성 효소의 활성이 급작스레 저하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바꿔 말하면 모자 접촉에서 생화학적 반응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분자 레벨에서 확인한 것이 된다. 그 밖에 모자 접촉을 하면 지능이나 정서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베타 엔돌핀이라는 뇌물질이 분비된다는 사실도 발견해내고 있다. 아기는 열심히 안고 키워야 한다는 과학적 입증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옛 어머니들의 슬기가 새삼스러워진다.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젖을 물리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 하나 손을 잡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걷는 풍경쯤 낯설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고 한국의 어머니들은 어느만큼은 곡예사라고 선교사 게일은 적어 놓고 있다.
그렇게 하루종일 어머니의 등이나 젖가슴, 손아귀의 체온 속에서 등온(等溫)을 유지하다가 잠잘 때도 어머니 팔베개를 베고 잠들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이들을 격리시켜 기르는 아기구덕이 없는 나라는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 나라 밖에 없다. 그만큼 모자의 피부 접촉이 이 세상에서 가장 왕성한 우리 나라였던 것이다.
우리 옛 어머니들이 얼마나 초현대적인 신여성이었던가 새삼스러워진다.
26.반(反)스포크 육아론
18세기 프랑스에서 갓난아기를 얼만큼 잔인하게 길렀는지, 루소의 `에밀'에 실감나게 적혀 있다. 태어나자마자 수족(手足)을 반듯하게 뻗게 하고 머리를 고정시켜 베나부랑이로 칭칭감아 마치 미이라처럼 해놓고 기른다. 묘목에 받침대를 대어 칭칭묶어 곧게 자라게 하듯이 아기들도 수족이나 등이 굽지 못하게끔 칭칭 묶어 기른다. 그렇게 묶어 기름으로써 심신(心身)의 굶주림과 고통과 노여움을 유발해 공격적인 사람으로 기르기 위함이라고도 했다.
농부(農婦)들은 이렇게 칭칭감은 아기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일을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도 했다. 유럽에 있어 이 잔인한 모체(母體) 격리의 양육 전통은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공원에 산책 나온 어머니는 리제르라는 끈으로 아기의 앞가슴을 매서 개끌고 다니듯이 끌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리제르를 조작, 나뭇가지에 아기를 걸어 놓고서 조잘대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결박(結縛) 육아 풍습은 결박도가 심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 세계 공통적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가운데 성질이 사납고 공격적인 호피족(族) - 수우족(族) - 푸에브로 인디언들은 `크레이들'이라는 침판(寢板)에 칭칭 묶어놓고 기른다. 러시아나 동구권 민족들에게도 `수워들링'이라는 결박 육아 풍습이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히말라야 산중에 사는 고산족(高山族)들도 일하러 나갈 때에는 마치 처마 밑에 닭둥지 매어달아 놓듯이 아기를 짚둥지 속에 묶어 달고 양 젖을 담은 가죽 병을 입에 물려 놓는다. 볏 짚이나 나무 판으로 만든 아기바구니 속에 인신을 구속해 기르는 풍습도 보편적이다. 다만 결박하거나 바구니에 담아 기르는 모자 격리(隔離) 육아 문화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 이 세상에서 제주도를 빼놓은 한반도 뿐임은 문화인류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바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모자의 피부 접촉시간이 가장 긴 육아 문화를 누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아기들은 하루종일 등에 업히거나 젖가슴에 안겨서 동체온을 유지하고도 못다하여 밤에는 팔베개 베고 젖가슴에 볼을 묻고 잠들곤 했던 것이다. 물론 이같은 모자 접촉 문화가 아이들의 응석만 키우고 의존적 성격을 키운다는 결함도 지적돼 오긴 했다.
하지만 지금 2차 대전 후 전 세계를 지배해 온 모자격리주의의 대부(代父)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에 대한 반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만 두살 때 까지 형성되는 뇌 세포 수는 같으며, 이 두살 때 까지 하루에 최저 4시간 이상 피부 접촉이 없으면 지능과 정서에 결함이 생긴다고도 한다. 그렇고 보면 접촉주의를 누려 온 우리 나라는 육아 문화에 있어서도 선진국이었다는 것이 된다.
27.자녀 중심
우리 나라에는 아기에게만 쓰는 아기말이 따로 있다. 어머니를 `엄마'라 하고, 아버지를 `아빠'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아기말을 베이비 토크(baby talk)라 하는데, 미국을 비롯 유럽에는 아기말이 거의 없다 해도 대과가 없다. 있다면, 어머니를 `마미' 아버지를 `대디'라 하는 것이 고작이다. 갓나서 부터 어른들이 쓰는 말을 그대로 가르치고 또 쓰게 한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는 베이비 토크 왕국(王國)이다.
아기와의 대화는 온통 엄마를 비롯, 어른들이 만들어낸 베이비 토크로 시종한다. 먹지 못할 것을 입에 대면 `찌찌'라 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때리는 시늉과 함께 `때때'한다. 먹을 것을 주면서 `맘마', `까까'하고, 배설을 재촉할 때 `쉬이', `응아'라고 한다. 울음을 그치라고 할 때 `뚝'하고, 잠자라고 할 때 `코오'한다. 위험한 것을 두고 `에비'라 하고 키스를 `뽀뽀', 손뼉을 `짝자꿍', 걸음을 `걸음마'라 한다.
이 같은 아기말은 아기 적에만 써야 하는 것이다. 한데 10년에 걸친 한국 어린이의 성장 과정의 모든 것을 종적(縱的)으로 연구하고 있는 한국 행동과학 연구소의 중간 발표에 의하면 유아기 때 쓰는 아기말이 소년기까지 연장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소년기, 청년기뿐 만 아니라 어른이 돼서도 아빠, 엄마 같은 베이비 토크를 자연스레 쓰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아기말을 쓴다는 것은 아기 심성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유지하고 싶은 어리광과 응석이 우리 나라 사람에게 별나게 강하다는 것이 된다.
왜 그럴까. 에드워드 타일러의 `원시 문화(元始 文化)'에 보면 소수의 남방 종족(南方 種族)에게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호칭을 아기 본위로 부르는 테크노니미(아기 본위호칭법(本位呼稱法)가 있다 했다. 남편을 아빠로, 아내를 엄마로, 남편의 형제를 삼촌으로, 엄마의 자매를 이모라고 부르고, 남들도 아기를 본위로 하여 철이 아빠, 순이 할머니하고 부른다. 우리 한국은 이 테크노니미가 살아 있는 이 세상에서 굴지(屈指)의 나라인 것이다. 테크노니미가 없는 서양에서는 아기를 빨리 독립시켜 어른 사회로 끌어올리려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기 사회에 어른이 끼여들어가 융화하려는 테크노니미 때문에 베이비 토크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너무 오래 자기 중심적인 응석받이 속에 뼈가 굵은 `어른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아빠의 슬하를 떠나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 사회에 내던져지면 원망스럽고 매정해 보이며, 항상 피해 의식 속에서 반항과 자포 자기로 지내게 된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대인 공포증(對人 恐怖症)과 피해 망상증(被害 妄想症) 환자가 별나게 많은 이유도 심정적으로는 아기인데 현실은 어른이어야 하는 갈등에서 빚어진 것일 게다.
그래서 베이비 토크는 쓰지 않을수록 좋고, 쓰더라도 일찍 끝내 버려야 하는 액물인 것이다.
28.부모
부모가 아이들 대하는 태도는 대충 다음 세 가지 유형(類型)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승자형(勝者型), 패자형(敗者型), 동요형(動搖型)이 그것이다. 승자형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권위를 갖고 군림, 명령을 내리고 순종을 요구함으로써 부모가 이기고 아이들이 지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한다. 패자형은 아이들에게 대폭적으로 자유를 허용, 방임하는 부모이고-. 이상 승부형(勝負型) 모두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우리 한국 부모들에게 가장 많은 것이 동요형의 부모로 승자.패자 어느 한편에 일관되지 못하고 엄격과 관용, 제한과 자유, 승자와 패자 사이를 오가며 동요한다. 이 동요형 부모의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승부형보다 혹심하게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그럼 이 세 가지 유형 이외에 어떤 유형이 바람직한 것일까. 일전 레이건 대통령이 자녀에 대한 관여를 호소한 교육 백서 발표 이래 돋보이기 시작한다는 PET운동이 그 해답을 제공해주고 있다.
PET란 Parent Effectiveness Training의 약자로, 부모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부모업' 수업(修業)을 뜻하는 자녀 교육의 새 바람이다.
PET가 가르치는 제 4의 유형이란 무승부형(無勝負型)이다. 이를테면 지미가 지칠 대로 지쳐 직장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같이 놀자고 졸라댔다고 하자. 아버지는 신문도 읽고 또 뭣인가 마시고 싶었다. 지미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신문을 구기고 아양을 떨며 방해를 한다. 승자형으로 대하면 아이에게 불만과 좌절을, 패자형으로 대하면 안하무인과 오만을 길러준다. 이런 경우 무승부형으로 대한다는 것은, 놀아준다고 약속을 하되 다만 아버지가 신문을 읽고 마실 것을 마신 다음까지 기다리라 하고 그 약속대로 지켜준다. 그 후부터 지미는 어머니나 저의 친구가 휴식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거나 접근하면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뒤에서 잡아 끌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결정에 아이를 참여시키면 저의 의사가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부모가 아이를 신뢰한 것이 되고, 또 제가 신뢰받았다고 느끼면 그 신뢰에 부응하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어린이날, 백화점이나 데려가고 놀이터에 데려가 신주 모시듯이 받들지만 말고 어린이 대하는 유형의 확고한 선택으로 이날의 뜻을 기리길 권하고 싶다.
29.자녀 교육
마치 개를 끌고 다니듯 아기의 젖가슴을 X자로 엮은 끈을 끌고 산책하는 어머니를 미국 공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아기를 X자로 엮은 채 마치 짐바리 걸어놓듯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한가하게 잡담하고 있는 어머니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급적 격리, 독립시켜 마치 짐승 순화(馴化)하듯 엄하게 버릇을 들인다. 우리 한국의 어머니처럼 머리에 물동이 이고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젖을 물리고 한 아이는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런 곡예에 가까운 모자밀착(母子密着)의 의존적 육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10여 년 전 영국 북부 요크셔의 한 회계사의 집에 초대되어 저녁밥을 대접받은 일이 있다. 댓 살쯤 먹어 보이는 그 집 사내놈이 식탁 맞바로 턱을 괴고 앉아서 나에게 물었다.
왜 얼굴이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느냐, 당신의 아버지는 껌둥이고 어머니는 흰둥이냐는 등 멀쩡한 사람 트기들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아무리 나이 어린 아이기로서니 속을 칵 뒤집어 놓은 질문이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어머니가 그 아이의 멱살을 낚아채더니 개 끌듯 끌고 가 제 방 앞에 세워 놓고 마치 법정에서처럼 엄숙하게 손을 들게 한 다음 "너와 나의 약조에 의해 다섯 시간 감금이다. 그동안 밀크와 쿠키를 한 번만 공급한다"고 선고하고 방에 밀어넣은 다음 밖에서 자물쇠를 잠가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가정에는 아이들이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을 가리지 않고 포용(包容), 의존시키는 모성 원리(母性原理)와 잘하고 못하고를 가려 단절, 독립시키는 부성 원리가 더불어 작용하고 있다. 영국의 가정에서는 이렇게 어머니마저도 부성 원리로서 군림하는데 우리 한국 가정에서는 아버지마저도 모성 원리로 작용하고 있으니 이렇게 응석받이만으로 자란 아이들이 가정 밖으로 나갔을 때 일어나는 부작용이 한국에 있어서의 청소년 문제의 원인(遠因)이요, 진원(震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제 그제 발표된 정부의 청소년 종합대책의 주요골자는 이 청소년의 비행을 가정과 연대(連帶)시킴으로써 가정에 있어서 부성 원리의 회복을 촉구하는 데 두고 있다.
예로부터 집안에는 무서운 사람 한 사람을 일부러라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남보다 돈을 못 벌어오고 남보다 지위가 하찮은 아버지일지라도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줌으로써 희미해진 아버지상(像)의 음화(陰畵)를 양화(陽畵)로 부각시켜주는 기회 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30.분유와 모유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목놓아 운다. 왜 우는 걸까. 세익스피어는 리어 왕으로 하여금 이렇게 설명하게 하고 있다. 바보들만이 사는 커다란 무대에 타의에 의해 밀려나오게 된 것이 억울해서 울어댄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없지 않지만 실은 탯줄로 연결되어 전도됐던 어머니의 맥박 소리가 단절됨으로써 엄습하는 인생 최초의 불안 때문에 운다고 한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어머니의 동맥을 통해 양수(羊水)에 전달되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갓난아기를 안정시키려면 자궁 속에서 들었던 맥박 소리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들려주어야만 한다. 어머니들이 젖을 먹일 때는 왼쪽으로 안고 왼쪽 젓을 먹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숭이 젖먹이는 것을 관찰한 코넬 대학의 소크박사는 42 케이스 가운데 40 케이스가 외로 안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심장이 왼쪽 젖가슴에 위치하기에 고동 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들려주기 위한 무의식적 동작인 것이다. 왼쪽 젖이 크고 오른쪽 젖이 작은 짝젖이어야 아기가 병 없이 잘 자란다는 속전이 있는데 , 이역시 좌포수유 (左抱授乳) 의 과학적 이치를 우리 선조들이 터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곧 모유를 먹이는 것은 모자의 맥박 연결에 의한 정신적 안정 그리고 건전한 뇌세포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문헌 '임원경제십육지'에 보면 젖이 나고 안 나고, 적게 나고 과하게 나며, 또 묽고 진하고 하는 것은 반드시 어머니의 희비애노(喜悲哀怒), 애증원투(怨妬)같은 감정에 좌우된다고 했다.
그러했기로 옛날 유모를 고를 때 그 유모의 성깔이나 사람됨을 까다롭게 살폈던 이유가 젖 속에 심지(心志)가 들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류 정신의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낳아서 백일 동안 모유를 먹이고 기른 아이와 먹이지 않고 기른 아이의 성장 후 정서와 지능을 대비시키고 있다. 전자의 경우 사랑, 신뢰, 감사 등 선량치가 높고, 후자의 경우 탐욕, 질투, 편벽등 불량치가 높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유럽의 으뜸가는 명가(名家) 합스부르크가는 대대로 심신이 건전하고 미모로 소문나 있는데, 아기는 반드시 모유로 기르게끔 성문화된 합스부르크 가법(家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합스부르크 대공비(大公妃)도 여섯 명의 자녀를 모두 모유로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곧 모유는 개인의 인간적 우수성을 위해서뿐 아니라 민족의 우생학적 우수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장려돼야할 육아법인 것이다.
어머니 젖으로부터 아기를 이간시킨 분유, 그 분유업자들이 모유운동에 호응, 분유광고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은 뒤늦은 대로 제 길 찾아든 것이 된다.
31.불량아 부모 처벌법
비행(非行)을 저지른 자식에게 부모가 종아리를 쳐 응징하고 교육하는 관습은 동서고금이 다를 것이 없다. 한데, 그와는 정반대로 비행을 저지른 자식으로 하여금 아버지-할아버지의 종아리를 치게하여 자식을 교육하는 관습은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 말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비행을 저지른 자식을 도장 속에 가두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밤이 깊어지면 아버지는 이 아이를 앞세워 강건너 산속에 있는 조상의 무덤까지 끌고간다. 무덤에 이른 아버지는 굵직한 회초리를 서너개 꺽어다 무덤 앞에 놓고 큰절을 하며 돌아가신 조상에게 다음과 같이 고한다.
`본관(本貫) OO의 O씨(氏) 몇대손 아무개 엎드려 고하나이다. 소자 불초하여 자식하나 못 거두고 못 가르쳐 이런저런 못된 짓을 저질러 조상에게 누를 끼쳤사오니 그 죄의 대가로 저의 종아리를 피가 튀도록 쳐 주시옵소서.' 그러하고는 종아리를 걷고 상돌에 올라 선채 비행을 저지른 자식놈으로 하여금 꺽어온 회초리를 들려 사정없이 치도록 호령을 한다. 조상 앞에서 자식이 지은 죄를 아버지가 벌받는 이 응징 방법을 `조상(祖上)매'라고 한다. 나이 어린 자식은 자신의 자칫한 잘못이 이렇게 조상에게까지 소급되는 연대 죄악이라는 것을 통감하게 될 것이요. 아버지-할아버지의 종아리를 치지않을 수 없음으로써 얻어지는 교육 효과 또한 막중했음 직하다.
부자(父子) 결속이 유별나게 강했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는 아녀자가 저지른 과실을 아버지가 대신 벌받는 것은 상식이 돼 있었다. 옛 마을의 자치 규약인 향약(鄕約)에 보면 미성년자가 부녀자를 희롱하거나 서로 싸워 상처를 내거나 주정을 하거나 노름을 하거나 하는 등의 비행을 저지르면 그의 아버지를 만좌면책(滿坐面責)이라 하여 동네 마당에 세워두고 창피를 주었다.
부자간의 도덕적 유대나 모자간의 정서적 유대가 우리 나라만큼은 억세지 못한 서양 사회에서는 바랄 수 없는 전통이다. 한데 근간 미국에서는 마약-폭력-총기-성범죄 등의 청소년 비행이나 범죄는 부모들이 벌금을 물고, 구금을 당하는 연좌 법률을 제정하는 주(州)가 늘고 있다 한다. 뿐만 아니라 밤 11시 후에 외출하거나 결석을 하는 아이의 부모에게도 응분의 제재를 가하는 주(州)까지 생겨나고 있다 한다.
자녀를 둔 부모의 위상(位相)에 작은 혁명이 진행되고 있음이요, 그 우리 전통적 위상(位相)이 각광을 받는 작은 혁명이다.
32.비교 탁아 문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 보면 18세기 파리의 상류 사회 사람들은 아기를 낳으면 자신이 기르지 않고 파리 교외의 가까운 농가에 값싼 삯을 주고 맡겨 버린다. 이렇게 유료 탁아(有料 託兒)를 하고서 그 아기에게 방해 받지 않고서 스스로의 문화 생활을 즐긴다. 문제는 농가에 맡겨진 아이들의 수난(受難)에 있다. 농부는 일하러 나가야 하기에 그 아이에 묶여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두어 놓고 나가거나 묶어 놓고 나가지만 그것이 잘못 열리거나 또 풀리거나 하여 뜨거운 물솥에 얼굴을 처박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하기 일쑤다. 같은 무렵 모차르트의 아버지의 편지 속에서도 파리에는 손이 없다든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든가 큰 화상을 입은 아이들이 왜 그다지 많은지 놀랐다 하고 그 원인으로 `에밀'과 같은 탁아 풍속을 들고 있다.
그리하여 아기들을 마치 미이라처럼 붕대로 꽁꽁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해놓고 벽이나 기둥의 큰 못이나 마당의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나가는 습관이 생겨났다 하였다.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의 공원을 거닐다 보면 미이라처럼 묶지는 않지만 나뭇가지에 배낭 걸어 놓 듯 아이를 걸어 놓고 유유자적 즐기고 있는 부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히말라야의 고산족(高山族)들도 일하러 나갈 때는 아기에게 젖줄을 물려 닭장 매달듯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러시아 등 슬라브 민족들도 아이들을 부대로 결박해 기르는데 이들 국민성과 이 결박 양육 습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요람(搖籃)도 아기 기르는 노동에서 일손을 해방시키기 위한 구속 기구(拘束 器具)로 전세계에 널리 분포돼 있다.
우리 나라에는 `아기 구덕'이라 하여 제주도에만 이 요람이 있을 뿐, 이 세상에서 요람이 없는 아주 희귀한 육아 문화를 지닌 나라로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같은 모자 이탈(母子 離脫) 기구가 없었다는 것은 어머니와 아기의 피부 접촉 시간이나 접촉 공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큰 여건 속에 한국인은 자라고 있는 것이 되며 이것이 한국인의 의식 구조나 민족성 형성에 주요 인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주팔자(四柱八字)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남의 집에 맡겨 기른 탁아 민속은 있었지만,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를테면 연산군(燕山君)도 사주팔자 때문에 남대문 성 밖의 강정승 집에서 양육되었다. 요즈음 부인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통적으로 탁아 문화(託兒 文化)가 없었던 우리 나라인지라 많은 고충과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것 같다. 여성 단체에서 일손이 남는 이웃에 맡기는 인가 탁아(隣家 託兒)를 계몽하기로 했다던데 이것도 그런 고충 끝의 소산이랄 것이다.
33.아기 보는 로봇
히말라야 고산족(高山族)의 어머니들은 밭에 일하러 나갈 때 젖아기를 칭칭 묶어 닭의 둥지처럼 처마밑에 걸어놓고 나간다.
배가 고파 고개를 돌리면 양젖을 담은 가죽 주머니가 입에 물리게끔 장치돼 있을 뿐이다.
중세 유럽에서 아이를 낳으면 일정기간 동안 농촌에 위탁시켜 기르는 관습이 있었다. 어머니의 과보호가 정신 형성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서다. 농촌에 맡겨지는 아기는 거칠게 양육되게 마련이다.
농부(農婦)는 띠로 사지와 육신을 칭칭 감아 기둥못에 걸어놓고 나가거나 밭에 데리고 나가서도 나뭇가지에 물건처럼 걸어놓고 일을 한다.
지금도 미국의 공원에 나가보면 산책 나온 어머니들이 마치 개 끌듯 X자로 묶은 가슴에 끈을 연결, 아기들을 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이따금 나뭇가지에 아기를 걸어놓고 잡담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기들은 모체로부터 이탈시켜 양육시키는 것이 상식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지역에서 아기들은 아기구덕 속에 담아 기른다. 구덕이란 나뭇나 짚으로 엮은 바구니로, 그 속에 담아 운신을 속박하는 양육기구다. 이 아기구덕이 없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뿐이다.
18세기의 실학자 이규경(李硅景)은 중국에 '두자(兜子)'라는 아기구덕을 변증하면서 우리나라에 이를 도입하여 어머니들의 일손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적고 있다.
이 세상의 양육문화는 이처럼 모체로부터 격리시켜 기르는 모체 이탈 양육이 상식인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철저하고 완벽한 모체 밀착 양육을 해왔다. 집안에서 일할 때는 젖이 물린 채 안겨 있고, 집 밖에서 일할 때는 등에 업혀 나가며 잠잘 때는 팔베개 베고 재운다.
모체와 이간시키는 중간물질은 일절 배제하고, 살붙임으로 하루 종일 등온(等溫)을 유지하면서 양육된다. 이미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왔던 송(宋)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앞으로 안고, 한 아이는 손잡고 물동이 이고 가는 부인을 보고 감탄하고 있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돌보는 가정용 로봇이 개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부착된 각종 감지장치(感知裝置)가 있어 장애물이나 계단 같은 위험물을 미리 감지하여 안전하게 돌보고, 또 뜨겁거나 춥거나 하는 온도도 감지하고 울음 소리도 무선으로 알려주는 등 사람몫을 단단히 한다는 것이다.
닭둥지처럼 매어 기르고 기둥에 걸어 기르는 모체 격리형 문화에서는 십상의 발명이 아닐 수 없고, 아기 보는 베이비 시터를 대신하기에 시장도 광범하다. 하지만 모체 밀착형 문화의 우라나라에서는 기계가 아기를 보는 세상이란 실감도 나지 않고 무상감만이 더할 따름이다.
34.아버지의 권위
짐승의 아버지 가운데 가장 형편 없는 것이 사자의 아버지다. 용맹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발이 둔족(鈍足)이라 사냥에 서툴다. 아프리카 야생 공원에서 발이 빠른 사슴떼가 사자 둘레에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사슴 같은 나약한 짐승까지 사자 아버지를 깔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배가 고프면 사자 애비가 새끼있는 곳으로 다가가 같이 어울린다. 어머니 사자가 먹이를 잡아오면 새끼들을 먹이고 난 찌꺼기라도 얻어 먹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나이로비 야생 공원의 감독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악어에게 상처를 입은 어머니 사자와 그 새끼들을 다른 어머니 사자들이 반년 가까이나 양육한 것을 목격한 일은 있으나 어머니 사자가 아버지 사자를 배려한 사례는 전혀 본 일이 없다 했다. 먹이를 못 잡아주기에 권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자. 한데 먹이를 열심히 벌어다가 먹여 주는 인간의 아버지에게도 권위가 증발하고 없으니 사자 아버지보다 더 처참하지 않은가-.
`이제 정액의 공급자라는 가치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아버지' (마르쿠제)... 그 부친 부재 현상을 피부에 느끼게 하는 `아버지 학교(學校)'가 작금 서울에 개설됐다 한다. 주부 대학, 어머니 교실, 신부 학교...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아버지의 권위나 역할을 되찾게 한다는 아버지 학교 소식을 듣고 보니 그것이 요구될 만큼 아버지가 형편없어졌나 새삼스러워진다.
예부터 자녀를 올바로 길러 내기 위해서는 집안에 무서운 사람 하나를 일부러라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 하여 아버지의 권위를 부양시키는 법도가 다양했다. 이를테면 양식을 나를 때 식구 먹을 것은 종이 져다 나를지라도 아버지 진지를 지을 쌀만은 따로 자식이 들고 운반하게 한 것은 공자(孔子)이래 권위 부양의 비결이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아비 없이 큰 딸에게 장가 들이지 않는다'했고, <예기(禮記)>에 `과부 아들과는 사귀지 말라'했음은 바로 아버지의 권위가 결여된 집안의 인간 형성에 하자를 인정한 때문이다.
언젠가 어느 여성 잡지(女性 雜誌)에서 한 목수 아내의 수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밤마다 술주정이 심한 애 아버지가 `당신이 미련하니까 아이들도 한결 같이 공부를 못하지'하고 삿대질을 했다. 이에 아이들을 보고 `너희들이 공부를 잘 못한 것은 모두 엄마탓이다. 하지만 훌륭한 기술만은 익힐 수 있으니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 처럼 말이다'했다. 속에서 화가 들끓겠지만, 자녀를 위해서 이렇게 권위를 세워 주어야 그 가정이 화목하고, 아이들이 비행(非行)에 흐르지 않게 되더라는 그 수기는 감명적이었다. 아버지의 자각과 아버지를 보는 어머니.자녀의 인식이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35.어린이방 무용론
어릴 적에 곧잘 놀았던 씨름에 참씨름과 개씨름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땅에다 동그라미를 그려 씨름판을 정해놓고 하는 씨름을 참씨름, 씨름판을 그려 놓지 않고 하는 씨름을 개씨름이라 했다. 판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또 씨름이 늘지 않는다 하여 개씨름이라 불렀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것도 밀고 밀리는 한계가 있고, 어느 한계에서 참고 버리며 어느 한계에서 늦추고 힘을 부리는 그런 참씨름에서 세상 사는 슬기고 생기고 또 세상도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데 요즈음 아이들은 천성대로 길러야 한다는 이상한 유아론(有兒論)이 지배하고 있어 판도 그리지 않는 개씨름을-, 개씨름도 종의 아들이 상전의 아들에게 져주는 그런 개씨름을 시키고 있다.
아이들은 도덕을 가르는 아버지와 심정을 가르는 어머니, 이해를 가르는 형제자매라는 규제와 억제 요소의 판 속에서 참씨름을 해가며 자라야 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으로부터 도피해 있을 수 있는 어린이 방을 없애야 한다는 무용론(無用論)이 구미(歐美)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근간에 조사된 바로 국민학교 고학년의 어린이로서 자기 방을 갖고 있는 비율이 영국 54%, 미국 56%로 감소 추세이며, 일본만이 76%로 증가 추세에 있다 한다. 일본이 고율(高率)인 이유 가운데는 전쟁 세대들이 그토록 선망했던 자기 방 갖기를 자녀들에게 보상하려는 비원(悲願)도 작용하고 있다 한다. 조사된 것은 없지만 우리 나라도 어린이방에 대해서는 일본(日本)의 추세인 것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입시(入試)나 입사(入社)시험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상사에게서 꾸지람을 듣거나 동료로부터 소외 당하는 것으로 절망, 인생을 좌절시키거나 자살을 기도하거나,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의 대부분이 유아(唯我)독존을 보장 해 준 개실(個室)이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라는 통계 보고가 있다. 반대로 세상일이 제멋대로 안 되면 자신에게 원인을 돌려 반성하기보다 모두 세상이 나쁘기 때문이라 하여 제멋대로 안 되게 하는 권위의 대상- 곧 부모(父母)나 선생이나 상사에게 곧잘 폭력을 휘두르는 친근(親近) 상대의 폭력 행위자도 개실이 유죄(有罪)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한 일본의 학자는 대학생들이 데모를 할 때, 소중히 해야 할 책걸상을 꺼내 던지고 태우고 짓부수는 행위도 이 개실에 갇혀 지긋지긋하게 강요된 공부에 대한 잠재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개실을 주면 개성(個性)이 자란다는 것은 환상이며 빨리 개실(個室)을 줄수록 무기력이 커지고, 사람과 사람과의 매듭에서 보다 빨리 소외시키는 것이 되며, 반사회(反社會)적인 미완성품(未完成品)을 보다 앞당겨 만드는 것이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개실 대신 모자(母子)-부자 공용(父子 共用)이나 가족 공용의 책을 읽는 방으로 개조하고 있다 하니 눈 여겨 둘 만한 일이라고 본다.
36.오향(五香) 육아철학
중국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젖을 물리기 전에 오향을 차례로 맛보게 한다. 오향은 다섯 가지 향기나는 달콤한 먹이가 아니다.
맨 먼저 초 몇 방울 입 안에 떨어뜨려 핥게 한다. 갓난 아이는 눈과 입술을 움츠리며 온몸을 수축시킬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소금을 약간 핥게 한다. 세번째는 황련(黃蓮)이라는 쓰디쓴 한약을 핥게 한다. 짜증스런 표정을 지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리고 구등(鉤藤)이라 하여 등나무 가시로 혀끝을 따끔하게 찌른다. 움찔하며 울어댈 것이 뻔하다. 그러고 나서야 다섯번째에 다디단 설탕을 핥게 한다.
이렇게 해서 오향인 것이다. 갓난 철부지에게 별난 짓도 다한다 할지 모르지만 상징적 의미가 큰 것이다. 신맛, 짠맛, 쓴맛, 아픈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나 이 같은 싫은 일들을 참고 견딘 후에야만이 인생의 단맛을 맛볼 수 있음을 기를 어머니와 길러지는 아이에게 동시에 터득시키는 교육적 의식이랄 수가 있다. 그래선지 전통 사회에 있어 중국의 어린이들은 한국의 어린이들보다 정신적으로 단련받으며 양육된다.
중국은 물이 나쁘기에 음료수 뿐 아니라 생활용수를 뜨겁게 데워 쓴다. 각 가정에서 충당하기에는 수요가 많기에 뜨거운 물만 끓여 파는 열탕집이 성업이게 마련이요, 대여섯 살만 되면 주전자를 들고 이 더운물 사러 가는 것으로 중국 어린이는 가사 참여를 시작한다. 자칫하면 몸을 데이는 조심스런 일부터 시킴으로써 조심성을 기른다. 그리하여 예닐곱 살만 되면 아버지 점포에 나가 가게를 봄으로써 가사 참여에서 가업 참여로 비약한다.
그래서 중국 아이들은 전통적으로 경제적 두뇌가 발달하여 제 옷 한벌 만드는 데 몇 자 몇 마, 솜이 몇 근, 바느질 품값이 얼마 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날이 변하는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의 환율이 얼마라는 것도 줄줄이 외우고 있게 마련이다.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어린이들 노리개를 상품화해서 팔고 사는 전통이 없다 한다. 놀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명나라, 청나라 때 우리 나라에 사신길 왔던 중국 사람들의 기록 가운데 공통으로 적혀 있는 인상(印象)의 하나가 한국 어린이들의 울음 소리였다. 중국 같으면 가업에 종사할 예닐곱 살 먹은 것들이 마냥 울어대는 것을 보았을 때 느낌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데, 그 중국에서 어린이 과보호를 두고 '미래 중국을 궤멸시키는 가장 가공할 제일 공적(公敵)'으로 규탄하는 여론이 거세어지고 있다는 근간의 보도가 있었다. 한 집에 한 아이밖에 낳지 못하게 되면서 애지중지 과보호가 체질화되고 오향의 전통 육아와는 전혀 다른 육아 문화가 형성된 데 대한 의구심이랄 것이다. 가정의 달에 심각하게 음미해 볼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37.모유
동물원의 원숭이가 갓낳은 새끼를 안을 때 반드시 왼쪽 가슴에 머리가 닿도록 안는다 한다. 뉴욕 센트럴 파크의 동물원에서 이것을 관찰한 코넬 대학의 소크 박사는 42회의 관찰 케이스 가운데서 40번이나 왼쪽으로 안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산부인과 병원의 분만실에서 산모 몰래 관찰한 결과는 83퍼센트가 갓난아이를 왼쪽으로 안고 있었다 한다. 소크 박사는 또 미술관에 전시된 모자(母子)를 테마로 한 역대 회화나 조각 4백 66점을 조사하고는 3백 73점 - 80퍼센트가 왼쪽으로 안고 있음을 알아냈다.
'운낭자상(雲娘子像)'을 비롯한 우리 나라 모자상들도 대체로 왼쪽으로 아이를 안고 있다. 우리 옛 어머니들 왼쪽 젓을 오른쪽 젖보다 대체로 커져 있어 짝젖이 상식이 돼 있었던 것도 아기를 왼쪽으로 안고 왼쪽 젖을 주로 먹였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왼쪽으로 아기를 안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이다.
태아(胎兒)는 자궁 속에서 어머니의 대동맥을 타고 양수(羊水)에 전도되는 심장의 맥박 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래서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 이외의 것은 불협화음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본능적으로 왼쪽 가슴에 유아(乳兒)을 안고 또 본능적으로 왼쪽 젖을 먹이게 되는 것은 바로 왼쪽 가슴에 심장이 자리잡고 있어 태반 속에서 듣던 리듬을 지속시켜줌으로써 양수시대의 고향에 돌아간 듯한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체에서 격리, 이 리듬의 연속을 단절시켜 기르면 자주 울거나 잠을 못 이루거나 하는 것으로 그치질 않고 자율신경 발달에 결정적인 결함을 준다고 한다. 자율신경이란 자신의 의사에 의해 조절되는 신경이 아니라 심장이나 위장, 혈관, 근육 등에 널리 분포돼 있는 신경계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생체 유지를 위해 자율적으로 활동해 주는 신경계다.
이것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약체 체질이 되고 말을 더디 익히며, 특히 운동 신경이 크게 둔화된다고 한다. 엄마의 왼쪽 젖을 먹고 자라지 않으면 올림픽 금메달 선수는 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13세기에 남 유럽을 지배했던 프레드릭 2세는 자기 혈손들을 기를 때 젖을 먹이지도 또 만지지도 못하게 격리시켜 기르게 했다. 혈통 따라 흘러 내려온 '신성(神聖)'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렇게 기른 아이는 모조리 죽고 있다. 모자(母子)간의 피부 접촉이 있고 없고는 자율 신경 둔화 뿐 아니라 심하면 생존 문제에 까지 직결되고 있다.
여자의 유방은 그렇게 값진 것인데 현대의 어머니들은 모유(母乳)를 기피, 모자간의 피부 접촉을 단절시키고 있다.
서울에 모유를 보관했다가 신생아에게 먹이는 모유은행(母乳銀行)이 생겼다는데 피부 접촉에 굶주려 약체화하는 그 많은 아이들을 위해 유방은행 같은 것도 생겼으면 한다.
38.유아독존
우리 옛 부녀자에게 대대로 전승시켜 내린 내훈(內訓) 가운데 `임강(臨江)의 사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때 학자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에서 비롯된 자녀 기르는 슬기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임강에 사는 어느 한 사람이 사냥을 갔다가 사슴 새끼 한 마리를 잡아왔다. 개들이 응얼댔지만 주인은 꾸짖고 쫓고 하며 이 사슴 새끼를 안고 끼고 애지중지 길렀다. 개들도 슬금슬금 주인 눈치를 보며 사슴 새끼에게 비굴하게 굴고 엉켜 놀 때는 일부러 나뒹굴어주곤 하였기에 사슴 새끼는 유아독존이 되었다. 이렇게 집안에서만 자라다가 3년 후에 집 밖에 나갔더니 길바닥의 많은 개들이 응얼대며 대어드렸다. 사슴은 집안에서 하듯 엉켜 놀려 했으나 개들이 별것 다 보겠다는 듯 달려들어 온몸에 성한 곳 없이 물어뜯어 피투성이를 만들었다. 사슴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왜 이 꼴이 됐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녀들에 대한 과보호가 되돌려 주는 보수가 바로 `임강의 사슴'이며, 이는 현대 한국의 가정에 너무 잘 들어맞는 내훈이 아닐 수 없다.
핵가족화가 몰아온 현대 가정의 병폐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는 부친증발(父親蒸發)현상을 든다. 아버지의 권위가 작아짐에 따라 반비례해서 커나가는 것은 어머니의 권위이다. 어머니의 힘이 커지면 어머니가 할 일, 곧 모업(母業), 주부업(主婦業)을 가정 밖으로 포기하는 소외 현상이 일어난다. 청소는 가정부에, 머리는 미장원에, 재봉은 양장점에, 빨래는 세탁소에 포기해 버린다. 밥짓는 건 전기 밥솥에, 생선 굽는 건 전자 레인지에, 젖먹이는 소에게, 아기 보기는 유치원에 포기하고, 그림 그리기는 학원에 포기한다. 이렇게 하여 모자간을 결속시키는 체취(體臭)스민 정의 연결을 모조리 단절시키며 산다. 원숭이 양파 까 들어가듯 벗겨서 버리길 거듭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여가는 남아 돌지요, 남아 돌면 권태롭지요, 그래서 그 여가와 정력을 자녀에게 쏟게 되고, 자녀는 `임강의 사슴'처럼 유아독존이 되어 작은 폭군이 된다.
요즈음 서울 강남 아파트촌 인간에는 호텔 수준의 호화 시설을 한 값비싼 어린이 전용 식당이 생겨나기 시작, 그곳에서 가족 외식과 어린이들의 생일 잔치를 베풀어 위화감을 조성시키는 바람직하지 못한 풍조가 일고 있다 한다. 식당 이름도 영어로 짓고, 주차장 시설, 놀이 시설 등 호화일변도인 이 식당에서 5천원 코스의 외식을 시킨다는 것은 주변 사람의 배리감은 고사하고라도 임강의 사슴처럼 정신적으로 또 교육적으로 자녀를 목조르는 행위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왜 이렇게 못되게만 풀려가는지 모르겠다. 제재와 자성(自省)이 있어야 할 것 같다.
39.태교
토마스 만의 `부텐브로그가의 사람들'에 보면 임신중의 독일 여인이 뱃속의 아이를 위해 바로크 음악을 듣는 대목이 나온다. 음악을 듣고 자란 태아는 태어나서 심성이 곱고 믿음이 깊어진다고 알았다.
지금도 구미(歐美)의 임신부들은 음악 태교(音樂 胎敎)를 많이 지키고 있다 한다. 이를테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 낙천적인 아이가 되고,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 신중한 아이가 된다던가-.
임신부가 지켜야 할 태교(胎敎)와 하지 말아야 할 금기(禁忌)는 그것이 심하고 덜 심하고의 차이는 있을망정 세상에 공통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임신부는 파장 무늬가 나 있는 쿠풀이라는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 태아의 심성이 곧지 않고 비뚤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임신부의 남편이 임신중 살생(殺生)을 하면 태아에게 그만한 상처를 낸다고도 알았다.
아랍의 임신부들은 낙타 젖을 먹는 관습이 있는데, 태어날 아이가 후에 대상(隊商)이 되어 몇만 리 사막길을 여행하게 됐을 때 그로서 인내심을 길러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임부(妊婦)로 하여금 개 밥을 주게 하는 관습이 있다던데 개처럼 다산(多産)하라는 염원이라기도 하고, 개처럼 충직하라는 태교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사내 아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우리 나라였던지라, 임신 금기와 태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우리 나라가 아닌가 싶다. 바꿔 말하면 이 세상에서 한국의 어머니 처럼 철저하게 태아(胎兒)의 노예가 됐던 어떤 어머니도 없었을 것이다. 옛 아이 밴 어머니들이 지켜야 했던 `칠태도(七胎道)'만 보아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높은 마루나 걸상 위에 올라서도 안 되고, 험한 길이나 냇물을 건너서도 안 되고, 담을 넘거나 개구멍을 나다니지 말아야 한다(제1도). 임부가 말이 많거나 웃거나 놀라거나 겁을 먹거나 울어서도 안된다(제2도). 잠잘 때 가로 눕지 말고 서 있을 때 갸우뚱하지 말며, 부정한 것을 보지 말고, 음탕한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제3도). 닭살이 생기는 닭고기, 팔자 걸음 걷는 오리의 고기, 뼈가 물러지는 오징어 등 태아의 체질에 주술적으로 영향을 주는 음식은 먹어서는 안 된다(제4도). 성현의 글을 읽고 아름다운 시를 읊는다(제5도). 기품이 높은 거북이, 봉황, 주옥(珠玉), 명향(名香) 같은 노리개를 몸에 지니고 가까이 한다(제6도). 음욕을 비롯, 모든 욕심이나 투정이나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된다(제7도).
이 가운데는 미신도 있고 또 과학적인 것도 없지 않으나 이 옛 우리 전통 사회의 임신 금기(禁忌)나 태교가 오늘날에도 부분적으로나마 거의 지켜지고 있다는 표본 조사 결과가 보도되고 있다. 현대화(現代化)의 바로 표면(表面)에 끈적끈적 붙어 내린 전통(傳統)의 집요함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40.한 집 한 자녀 시대
지난 주 중국의`인민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다. 안휘성(安徽省)의 한 소학교 1 학년 교실에서 산수를 가르치고 있는데 채왕(蔡旺)이라는 어린이가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선생이 그치라고 해도 듣지 않자 교과서로 채군의 머리를 몇 번 때렸다. 울면서 집에 돌아와 일러비치자 아버지 채사량과 어머니 마지혜가 그 길로 학교에 달려가서 아버지는 들고 간 곤봉으로 선생을 내려치고 어머니는 선생의 복부에 펀치를 연발하여 선생을 현장에서 즉사시켰다는 기사다.
지금 중국의 체벌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조그마한 사건에는 중국이 안고 있는 굉장히 큰 사회 문제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소위 계획생육(計劃生育=産兒制限)으로 아들딸 하나만 갖게 되면서 금이야 옥이야 과보호가 극성을 부리게 되고, 그 때문에 안하무인이 된 어린이-, 폭넓게 형성된 그 작은 귀족들의 횡포가 단적으로 나타난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자기중심적인 세대가 자랐을 때의 중국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 사람들이 이승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오복완인(五福完人)'이라고 한다. 그 다섯 가지 복을 중요 순서로 나열하면 자(子), 수(壽), 재(財), 명(名), 이(李)다.
전통적으로 자식에 대한 욕구가 이만한데 아들딸 하나만 낳고 살 수 밖에 없게 되면서 누우면 하늘이 무너질세라 엎어지면 땅이 꺼질세라 과보호가 얼마만할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때마침 과보호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안휘성(安徽省)에서 사내아기 매매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관영 `부녀일보'의 보도도 이 일가 일자녀주의의 사회병폐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보도에 의하면 72 가구 사는 한 마을에서 근간에 팔려간 영아(영兒) 수가 75 명에 이른다 하고 `돼지를 키워봤자 기껏 5백 원(元)(1 백 35 달러)밖에 받지 못하지만 아들 하나 팔면 2천 원(元)이나 받을 수 있으니 당연한 풍조'라고 했다.
인구억제 정책으로 일가구 일자녀주의는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서양과는 다른 동양의 혈연적 가족사상과 만났을 때 갖가지 악순환이 따른다는 것을 중국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 된다.
어제 그제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인구동태분석을 보면 우리 나라는 현제 1 가구 1.6 자녀로 격감추세에 있으며, 이대로 나간다면 90 년 후반에는 1 가구 1 자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행한 일이긴 하나 호사다마(好事多魔)다. 중국에 버금가라면 서운한 한국인의 자녀관(子女觀), 가족관(家族觀)이다. 그와 부딪쳐 파생하게 될 악순환에 대한 정신적, 제도적 대비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41.10세의 살인
일곱 살 전후하여 모자(母子)라는 종적 의존 관계에서 친구와 친구라는 횡적 의존 관계로 옮아간다는 것은 발달심리학에서 상식이 돼 있다. 이 무렵의 아이들은 끼리끼리 패를 짓고, 어른들의 개입을 받지 않은 채 나름대로 약속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써 긍지를 가지려 든다. 이 같은 또래를 '갱 에이지'라 한다. 갱 에이지는 금지된 장난을 하게 하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으나 같은 또래끼리의 충성심과 헌신이 자란 후에 사회적인 연대와 책임감 형성에 유익하다 하여 장려되기도 하는 어린이의 통과 의례인 것이다.
서양 사회에서 갱 에이지의 꿈을 키워주는 전통이 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헉슬벰리 핀의 모험'을 비롯하여 베르뉘의 `15 소년 표류기', 스티븐슨의 `보물섬' 그리고 악쇼노프의 `별나라에의 입장권'이 그렇고, 10 대 중반을 소재로 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도 불량 그룹의 대립 싸움에서 동료들의 우정과 충성심, 형제애와 남녀간의 순애보를 번스타인의 아름다운 음악에 맞추어 펼쳐간다.
우리 전통사회에도 그 또래 아이들이 패를 지어 저지르는 악행을 '패짓거리'라 하며, 그 패짓거리를 하지 않고 자란 아이는 커서 아무것도 못 한다 하여 용납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를테면 남의 참외밭에 들어가 참외 서리를 하다가 대추나무에 올라가 대추 서리를 하여 손실을 입히면, 그 손실 대가로 퍼주는 곡식을 '농곡(弄穀)'이라 하여 별도로 가계(家計)를 세워두었던 것이다.
한데, 현대의 우리 한국은 갱 에이지 상실시대다. 첫째, 급작스런 도시화와 교통 러시로 패짓거리하고 놀 장소가 증발되고 없다. 어린이를 고립시켜, 상대적으로 함양되게 마련인 인간성 형성의 기회를 약탈해 버렸다. 둘째로 놀 시간이 없어졌다. 과중한 학교 교육이 그 원흉이다. 셋째로 나가 놀 필요가 없어졌다. 텔레비전, 비디오, 카세트, 전자 게임 등이 범람하기 때문이다. 그 안방 매체에서 못된 짓만 배우게 된다. 넷째로 노는 것에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노는 것에 나쁜 이미지가 부가된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갱 에이지가 증발함으로써 남의 사정에 등한하고 나이에 상응하는 작은 스트레스를 감내하지 못할 뿐더러 작은 자극에 카악! 하며 극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
눈서리 아래 굶주림을 이겨낸 들쥐와 버터를 먹으며 따스한 방안에서 자란 집쥐의 부신피질(副腎皮質)을 비교하면 전자가 후자보다 한결 무겁고 발달해 있다 한다. 부신피질은 바로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곳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열 살 난 오빠가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안달하는 누이를 칼로 찔러 죽이고 위장하고자 비디오에서 본 대로 방화까지 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어린이를 살인자이게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면 바로 갱 에이지의 상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가... 하고 놀라지만 말고 어린이 양육에 뭣인가 달라져야 할 충격이 아닐 수 없다.
42.꿀을 따지 않는 벌
오스트레일리아는 날씨가 온화하여 연중 꽃이 피어 있다. 한데 꽃에 따르게 마련인 꿀벌이 없다. 그 버려진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유럽에서 가장 양질의 꿀벌을 방사(放飼)했다. 벌들은 신이 나 꽃밭을 누비며 훌륭한 꿀을 따 모았다. 한데 그 벌들의 노동은 겨우 1년 이상 계속되질 않았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벌들은 벌집속에서 편안히 졸고만 있어 꽃을 찾아다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꽃이 연중 어느 한 시기에만 핀다면 꽃이 피지 않는 때를 위해 꿀을 모아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연중 꽃이 피어 있다면 힘들여 꿀을 모아둘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들은 게을러빠져 꿀을 따지 않게 된다. 먹고 입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모르는 요즈음 아이들이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야수를 사육하면 피둥피둥 살이 찌고 장수는 한다. 영양이 충분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야수들은 야성을 상실한다. 그것이 야수에게 있어 정말로 행복한 것인가고 우리 속의 사자나 호랑이에게 물어본다면 고개를 옆으로 흔들 것이 자명하다. 요즈음 아이들이 또 이와 비슷하다. 노력하지 않고도 생활이 보장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표를 상실하고 생활이 권태로와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자식들을 위해서는 적당히 가난하게 살 필요가 있었다. 록팰러 가문이 대대로 부(富)를 계승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녀들이 일곱 살만 되면 세차, 신문배달, 베이비 시터 등을 시켜 제 용돈과 학비를 제가 벌어 쓰도록 하는 법도를 지켜 내려왔기 때문임은 알려진 사실이다.
옛날 우리 나라 왕실이나 귀족, 상류사회에서 자제가 철들 무렵이면 살기 어려운 집을 골라 위탁 양육시키는 관습도 그런 것이다. 연산군도 어릴 때 남대문 밖 강희안(姜希顔)의 집에 위탁 양육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의존적 소년에서 자립적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 때 육체적 고통과 시련을 가하는 것도 같은 논리랄 것이다.
삼한(三韓)시대의 기록을 보면 이 무렵의 소년들은 등가죽을 뚫고 거기에 굵은 새끼를 꿰어 구령을 부르며 통나무를 운반하도록 되어 있다 한다. 원시사회에서는 청년의 집(멘즈 하우스)이라 하여 일정기간 동안 공동기숙을 하며 성년이 되기 위해 이렇게 고행을 시켰던 것이다. 안평대군(安平大君)도 삼각산 백운대 정상에 올라가 벼랑바위(決斷岩)를 뛰어넘음으로써 담력을 과시, 성인식(成人式)을 치르고 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이 성년고행(成年苦行)은 방법은 다를망정 팔도에 널리 분포돼 있었다.
무거운 들돌을 들고 일정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한다든지, 주먹다듬이라 하여 족장(足掌)을 친다든지, 외줄 그네에 매달리게 하여 마냥 돌려댄다든지, 이 성인식에 합격해야만이 반품 받던 품삯을 온품으로 받게 된다든지, 장가갈 자격이 주어진다든지, 경어나 존칭을 받게 된다든지......하였다. 한데 요즈음의 성인식은 고행은커녕 선물을 보내고 다과로 잔치를 베풀어준다는데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에게 꿀을 갖다주는 격이다. 아예 없애버리는 편이 나은 성인식 풍조가 아닌가 싶다.
43.무장 등교
조혼을 일찍 정착시켰던 조선왕조 시대에는 일생에서 청소년 시기를 증발시켜 버렸기에 그 시기에 왕성하게 마련이 폭력이 사회 문제로 부각된다는 법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혼기가 빠르지 않았던 고려시대에는 악소배(惡小輩)로 불리는 청소년 깡패가 무척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려사(高麗史)' 권준전에 보면 개성 으슥한 골목에서 숙비(淑妃)의 친정 조카딸이 10여 명의 악소배에 의해 겁탈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어명을 내리게 하여 이 악소배들을 잡아들이고 보니 그 모두가 부원군의 자제니, 대장군의 외아들이니 하는 당시 권신(權臣)들의 자제들이었다. 어찌나 악소배가 극성을 부렸던지 난세에 있게 마련인 정권과 폭력이 야합하고도 있다.
원나라에서 공민왕을 모셨던 여세로 횡포를 부렸던 조일신(趙日新)은 정적(政敵)이 기씨(奇氏) 일문을 숙청하는데 이 악소배를 이용하고 있으며 충혜왕(忠惠王)은 악소배들로 친위대를 만들어 자신의 악정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을 폭력으로 제거하고 약탈을 일삼게 하기도 했다. 이 악소배를 지금의 학교랄 수 있는 태학(太學)에서 먹이고 재워 학생으로 가장시켰으며 몸에 비수(匕首)를 지니게 하여 친위 악소배의 증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 옛날부터 학교와 폭력은 이처럼 불행한 함수 관계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미국에서는 매일처럼 10만 명의 학생들이 총기를 휴대하여 - 평균 16만 명의 학생들이 그로서 협박 공갈을 받고 - 9백여 명의 교사가 신체적 위협을 받아 전전긍긍하고 그 중 - 40 명이 구체적으로 상해를 입고 있다는 전미 교육협회의 보고가 보도되고 있다.
80 년대 초 미상원의 한 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의하면 학생의 선생에 대한 가해가 연간 7만여 건, 학생간의 상해 사건이 20여 만 건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학교 폭력이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하여 각급 학교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무장 경비원을 순찰시키는가 하면 폭력이 일어날 말한 요소 요소에 텔레비전 카메라를 설치 감시하고 선생들이 팔뚝 시계에 경보기를 부착, 위기를 당하면 경보기를 눌러 경비원이 달려 오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페스탈로치의 할아버지가 나서도 이제 한 걸음 물러서 스승의 그늘도 밟지 않는다는 이치를 납득시키기는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하버드 대학의 범죄 연구 전문가인 월터 밀러 교수는 그의 배서에서 고등학교의 캐피티리어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처럼 폭력배의 본거지가 돼 가고 있으며 뉴욕 지역에서는 이 폭력 단체와 야합,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조건으로 그 관리를 맡겨버린 학교가 적지 않다 했다.
그리하여 가해(加害) 무기의 횡행은 보신(保身) 무기의 휴대를 불가피하게 하고 그래서 미구에 미국의 학교는 병영처럼 무장 학교가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44.곤들메기의 어리석음
곤들메기라는 물고기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심리학자들이 그 물고기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곤들메기를 잡아 커다란 수족관에 넣고 그 수족관 안에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며 살게 했습니다. 며칠후 이 곤들메기와 먹이인 작은 물고기 사이를 얇은 유리막으로 차단하였습니다. 근들메기는 바로 눈 앞에 먹이가 있었지만 아무리 잡아 먹으려고 해도 유리막에 부딪힐뿐 번번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후 유리막을 치워주었습니다.
푸집한 만찬을 다시 허락받은 곤들메기가 먹이를 향해 돌진을 하여 포식할때 까지 사냥을 계속할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었습니다. 바로 머리 위에 놀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보고도 이 곤들메기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곤들메기에게 이들 작은 고기들은 이미 잡아먹을수 없는 그림의 떡쯤으로 세뇌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내 곤들메기는 그 풍성한 만찬에의 참여를 거부한채 이 주일쯤되는 어느날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물론 물고기와 사람은 다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이 곤들메기와 같은 상황에 빠져있고 자라나는 학생과 청소년들이 그러한 환경과 문화속에서 사회를 배워나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유리막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속에 침투해 어느새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친구가 되어 버린 유리막들을 찾아내자. TV,연예인들, 스포츠, 경마, 음악, 독서, 우리가 보내는 시간들의 대부분을 무엇이 차지하고 있는가? 물론 그러한 작은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속에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영적으로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는것이다.
45.사랑과 친절로 교육하고 가르치라.
코카콜라는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세계적인 음료수입니다.
코카콜라를 처음 만든 아사 켄들러는 자기가 경영하던 작은 약국의 지하실에서 이 짜릿한 음료수의 제조권을 구입한 후 날개 돋힌 듯이 팔려 돈더미 위에 올라 앉는 큰 부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정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외아들인 아서 쥬니어가 알콜 중독에 걸려 재산을 없애고 몸과 마음이 병이 든 폐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서 쥬니어에게는 목사인 삼촌이 있었습니다. 그 삼촌은 사랑하는 조카가 알콜 중독에 걸려 폐인이 되어가자 남다른 애정과 안타까움을 갖고 이 조카를 바로잡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켄들러 목사는 자기 조카를 한번도 꾸짖거나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어떤 때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따뜻한 눈빛을 주면서 부드럽게 껴안아 주기만 했습니다. 삼촌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된 아서 쥬니어는 어느날 술병을 들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술병의 마개를 따지 않겠소. 이 순간부터 술을 끊겠소."
아서 쥬니어는 그순간부터 술을 끊었고 그의 아내는 그 술병을 리본으로 묶어 가보로 보관하였으며, 지금도 그 술병은 코카콜라 회장인 켄들러 집안의 중요한 가보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45.지혜의 빈곤시대
현대인은 지식 과잉과 지혜의 빈곤의 비극에 빠져있다.
그들은 마음속에는 잡다한 지식이 많이 있지만 기은 지혜는 드물다.
현대의 교육은 지식은 가르치지만 지혜는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배울려고도 하지 않는다.
46.기도의 어머니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목사 부인이었는데 감리교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다섯살 때 수산나는 우리 나라처럼 국어 교과서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창세기를 펴놓고 글자 하나하나를 가르쳤고 문자를 가르쳤고 성경을 가르쳐서 세가지를 한꺼번에 공부시켰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성경을 다섯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열일곱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수산나는 그 자녀들을 혼자 다 키우면서 저녁마다 돌아가며 한명씩 데리고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목요일 저녁에 어머니와 같이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열일곱 자녀를 다 키워서 챨스 웨슬레와 요한 웨슬레 때문에 프랑스처럼 유혈혁명도 나지 않고 영국에 영적 부흥이 일어난 것을 역사가를 통해서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라든가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등 많은 훌륭한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무디는
“내가 성취한 것 가운데 위대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어머니의 덕택이고 은혜이다”
라는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좋은 어머니가 되고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모세를 만들어내고 바울을 만들어내고 링컨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교육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우리도 준비하고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47.그리스도께로 인도함
얼마전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시카고에 있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사업가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적당하다 생각되는 대목에서 내가 영적인 문제를 꺼내어 말했다. 그 순간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화제를 바꾸어도 되겠읍니까.”
“왜 바꾸고 싶어하는지 알고 싶군요.”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나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내게서 부모를 빼앗아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그리스도인 사업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간증을 하면서 분주히 여행을 다녔던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도 가정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단체에서 매우 활동적으로 일했다고 하면서 냉소와 씁쓸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가 덧붙였다.
“나의 부모님도 모든 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는데 너무 바쁘셔서 네명의 아들들에게는 예수를 소개하지 못하셨죠. 그래서 우리 4형제 중에는 아무도 기독교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자. 화제를 바꿀까요.”
자녀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부모에게 없다. 반대로 그리스
도에게로 인도하였던 사람들을 하늘나라에서 만나 인사를 나눌 때. 바로 그 곳에 자신이 소홀했던 탓에 그들의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없다.
48. 신앙안에서 자란 아들의 용기
신앙의 깊이는 고난당할 때 그의 자세를 보고 알 수 있다. 적극적인 자세로 의연히 대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무서워서 피하는 사람이 있다. 루마니아의 푸로레스코 목사가 공산당에게 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가 심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자 공산당들은 목사를 회유시키기 위하여 비인도적인 방법을 썼다. 그의 11살짜리 아들을 그의 앞에서 발가벗기고 거꾸로 매달아 끓는 물을 코에 부어 넣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고문을 가하였다. 푸로레스코 목사는 자기가 고문을 당하는 것은 견딜 수 있는데 아들이 고문을 당하며 죽어가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고문을 당하던 11살짜리 아들이 외쳤다.
“아버지. 조그만 참으세요. 나는 배신자가 된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시고 싶지 않아요.”
푸로레스코 목사는 아들의 이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힘을 내어 끝까지 공산당에게 항거했다. 평안할 때 예수를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천국가는 문이 좁은 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예수님을 시인할 수 있을까?.
49. 질투심 많은 자녀
국민학교 4학년 반장 아이가 감기 몸살로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몇몇 가까운 아이들이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모아 사탕. 과자를 한 봉지 사 가지고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부반장 아이는 따라나서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친구들이 왜 함께 가지 않는가를 물었을 때. 이 철부지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다.
“걔가 안 나오면 내가 반장이 될텐데 뭣하러 내가 가니.”
어린 동심에 새겨진 이 질투심은 누가 심어준 것일까. 내가 반장이 되기 위해선 네가 없어져야 된다는 생존경쟁 의식은 아무래도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어느 심리 학자가 신경질로 오는 질병이 무려 35가지나 된다고 얘기한 것을 들었다. 그것은 개인의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회가 신경질적인 사회 구조가 되면 그 사회에도 고치기 어려운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즉 사회병리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비좁은 만원 버스 안에서 발을 밟혔을 때 싱긋 웃으면서“미안합니다”
“천만에요”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여유있고 너그러운 사회이다. 불황과 불경기 속에서일망정 마음의 여유만은 잃지 말아야겠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으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50. 죄란 것
빌리 그래함에게 안네 로츠라는 큰 딸이 있습니다. 이 딸은 지금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주 랄리시에 살면서 성서연구 지도자로 수고하고 있는데, 이 딸의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잘못을 저질러서 어머니 루스 여사가 매를 드니까(빌리 그래함 목사의 가정 교육은 엄격한 것으로 소문나 있고, 이렇게 엄격한 가정교육 덕택에 지금은 가족 모두가 전도 사역에 동참하고 있읍니다)안네는 얼른 “엄마.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마귀가 있는데 그 놈이 잘못하게 했어.”하고 둘러대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루스 여사는 “오. 알아. 그래서 나는 그 마귀를 쫓아내려고 하는 거야.”하면서 회초리로 딸을 때렸습니다. 두 시간 뒤에 딸이 또 잘못을 저질러서 루스 여사가 매를 드니까 딸은 얼른
“엄마. 마귀란 놈이 벌써 내 속에서 밖으로 도망갔어.”
하더라는 것입니다. 루스 여사는 하는 수 없이 회초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딸은 이렇게 애교로 매를 피했지만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민수기32:23에는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고 되어 있고,
잠언28:13에는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느니라”
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51. 듣는 훈련
맥수 워렌은 이렇게 썼다.
대화는 본질적으로 상호간 "귀 기울임"의 시도, 다시 말해서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상호 이해는 대화의 보상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내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는 나에게 책을 읽어 주시곤 했다. 나는 춤추는 난로의 불꽃을 들여다 보면서 듣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세 살이나 네 살쯤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을 있기 오래 전 부터 나는 듣는 것(아마도 내가 배운 것 중,가장 귀중한 가르침)을 배우고 있었다. 더구나 책을 읽는 것은 내게는 언제나 일종의 듣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책들이 언제나 "인격들"이었다. 그것은 내가 듣는 동안 저자의 인격만이 아니라 책 자체가 말을 했다는 것이다.}
-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죤 스토트. -
52. 아들의 죄
한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날마다 죄악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죄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어머니는 집 기둥에 못을 하나씩 하나씩 박았습니다.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죄를 범하고 사는데 하루는 이 아들이 집을 나가다가 문득 마루끝에 있는 기둥을 바라보고는 깜짝 널라고 말았습니다. 자신은 죄를 얼마나 지었는지 무감각한 상태로 살았는데 어느 새 작은 못들이 온 기둥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아들은 결심합니다. 이제부터는 저 못을 빼는 작없을 하며 살기로 마음속에 다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선을 행함으로 저 못을 흔적도 없이 다 뺄 수 있으리 생각하며 선을 행하기로 다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선을 행하며 사는데 선을 한가지 행할 때마다 기둥에 박힌 못을 하나씩 빼 나갔습니다. 점점 못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이 아들은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못이 줄어든다는 것은 자신의 의가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하나 남은 못을 빼는 날 그는 너무 기뻐 어머니에게 달려가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장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가서 그 기둥을 자세히 살피고 오렴"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들은 고개를 갸유뚱하며 다시 가서 그 기둥을 살피는데 순간 이 아들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슬픔이었습니다.
못은 다 빠지고 없었지만 그러나 그 기둥은 온통 못자국으로 성처 투성이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아들은 자신이 아무리 선을 행하였어도 자신 때문에 어머니의 가슴에 남은 상처를 생각하며 울었고 자신의 죄악됨을 대변하고 있는 상처난 기둥을 보며 울었다고 합니다.
53. 사랑으로 이기게 하라
한 어머니가 5살짜리 외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아이는 동네에 나와서 개구장이 친구들에게 얻어 맞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아들이 얻어 맞고 울면서 집으로 오면 그 집에서는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골목 밖으로 흘러 나온다.
"이 녀석, 바보같이 매일 매만 맞고 다녀. 당장 나가. 나가서 때리고 들어 와. 다시는 매 맞고 들어 와서 울면 가만 놓아 두지 않을 테야. 얼른 나가서 때리고 와!"
귀한 아들이 친구에게 얻어 맞고 우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생각할 어머니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참 중요하다. 이왕 친구와 싸워서 얻어 맞은 것도 속이 상하는데 엄마에게까지 얻어 맞으며 야단 맞을 때 어린 마음은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그럴 때에는 먼저 위로해 주어야 한다.
"어머나, 우리똘이가 얼마나 아프겠니? 가엾어라"하면서 엄마는 일단 아들을 꼭 안아 주고 눈물을 씻어 주며 아픈 곳을 만져준다. 그런 다음 조용히 위로해 준다.
"똘이야, 그래도 넌 참 훌륭했어.네가 끝까지 친구를 때리지 않고 참은 건 아주 훌륭한 행동이야.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란다. 우리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 복수심과 원망을 사랑으로 녹여 주고 오히려 용서해 줌으로써 진정한 승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아빠와 다투고 나면 끝까지 말을 안하면서 요리조리 골탕을 먹이며 복수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나 우리 집에 조금 손해를 끼친 이웃 사람을 향해 미움과 원망을 품고 적대시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의 모든 한계를 초월한 온유함이 드러날 수 있다.'원수를 사랑할 만큼'온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이며 이 세상도 바로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54. '무엇'과 '누구'
대학원 졸업식 날짜가 다가오는 어느 날 오후에 미국 학생 중의 한 사람이 기숙사 학생들의 방을 찾아다니면서
“나는 작년에도 낙제를 하여 졸업을 못하였는데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금년에도 학점이 미달되어 함께 졸업 못하게 되어 미안합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를 본 한국 학생은 그 학생에 대하여 이상하게 여기던 나머지 멸시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졸업식날 안내를 보며 졸업식 순서지를 나누어 주는 재학생들과 함께 봉사를 하면서 “축하합니다”하면서 인사하던 그 낙제생을 쳐다보는 순간 그를 멸시하던 한국 유학생은 마음 속으로 “용서해 다오. 그대가 승자요. 나는 석사학위를 그대에게 양도하노라”하는 입 속의 말을 곱씹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네 풍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인간됨의 모습이다. 건전한 시민 사회 구축은 교육에서 부터다. 뿐만 아니라 기성 세대의 의식 개혁이 필요한 우리들의 풍토인 것이다. 결국 에리히 프롬의 말과 같이 얼마나 많이 알고 가지느냐 하는 소유 지향적인 인간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존재, 사람됨의 뚜렷한 방향설정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기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을 배우느냐가 아니고 '누구'를 배우고 닮을 것이냐 하는 문제로 집약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나를 배우라”고 하신 그리스도가 오늘 우리들의 문제의 해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55. 눈 높이 교육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밴드빌 대학 바로 건너편에 유명한 피바디 교육대학이 있었읍니다. 그 피바디 교육대학을 일으킨 피바디 선생님의 일대기 속에 퍽 감명깊은 이야기가 하나 있읍니다. 피바디 선생님은 젊었을 때에 국민학교 교사로 있었읍니다.
그가 국민학교 2학년생을 담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읍니다. 하루는 교육 계획에 따라 자기네 반 아이들에게 박물관 유물을 구경시켜 주기로 계획하였읍니다. 이 계획 때문에 피바디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위해서 미리 알아 두어야 했기에 사전 답사를 하였읍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을 지키고 있던 수위는 하루 종일 앉은뱅이로 돌아다니며 메모를 하고 있는 피바디 선생이 정말 앉은뱅이인 줄 알았읍니다. 그런데 나갈 때 보니까 벌떡 일어서서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수위는
“저는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 앉은뱅이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성한 사람이었군요! 왜 그렇게 무릎으로 앉아서 돌아다니십니까? 무릎을 그렇게 꿇고 다니면서 유물을 보시는 분은 처음 보았읍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았읍니다. 그러자 피바디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내일 저는 우리 반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 와 유물을 구경시켜 주려 하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키가 다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바라보는 그 눈 높이에서. 즉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그 시각에서 유물을 보았다가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교사입니까! 이 피바디 선생은 아이들의 입장에 자기를 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56. 습관
중세기 구라파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당시의 구라파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있었다. 이때 구라파에서는 페스트를 만연시킨 것은 유태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태인은 흑사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태인이 흑사병에 잘 감염되지 않았던 이유는 극히 간단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라파인의 생활은 야만적이었다. 위생관념이 거의 없어 목욕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비누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니 얼마나 불결한 생활이었나 하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유태인은 오래 전부터 목욕을 하고 식사 전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여호와께 감사드려야 하고 가까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몸을 깨끗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규칙이며 신앙생활의 습관이었다. 평소에 몸을 깨끗이 하는 습관이 그들을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구해준 원인이 된 것이다. 유태의 어린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 습관을 배우기 이전에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을 배운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감사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신에 대한 감사의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은연 중에 감사의 생활을 몸에 익히게 된다. 어떤 일이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을 주신 여호와와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유태인들은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곧 남에게 감사함을 받을 수 있는 선행을 낳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57. 자녀교육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주위에 널려 있는 나쁜 환경에 대해서 노심초사한다. 제발 우리 아이 만큼은 디스코장이다,미팅이다,술이다,담배다,이런 것들로부터 오염되지 않고 순결하게 자라주기를 바란다. 그 바램의 정도가 지나치다 보면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기도하고 따로 방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물론 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중요성은 맹자시대부터 강조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비록 등교길에 있는 장애물을 치웠다고는 해도 우리 자녀들이 다른 정보매체를 통해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정보까지도 막을 수는 없다. 친구들을 통해서 미팅의 즐거움, 첫담배의 경험담, 레스토랑의 분위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듣고 있는데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리라는 생각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안이한 생각이다.
이젠 우리의 부모들이 먼저 좀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자녀의 앞길에 놓여 있는 장애물을 제거해 주기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적당한 장애물을 그대로 두어서 자녀로 하여금 그 장애물을 통과하여 역경을 이기고 견뎌내는 훈련을 마다하지 않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비닐 하우스에서 키워지고 있는 야채는 얼른 보기에 더빨리 더 많이 더 보기 좋은 채소로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닐 휘장이 걷워 지면 그 빛좋은 채소들이 얼마나 무참하게 썩어 무너져 내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린 우리 자녀들의 인생에 죽도록 비닐을 쳐주어 보호해 주는 동반자가 될 수는 없다. 언젠가 부모는 자녀에게서 물러나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고 자녀는 들녘에 서야 한다.
58. 부모와 자식 사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갈등이 없는 가정은 없다. 겉으로는 단란해 보이지만 찬찬히 속을 들여다 보면 가족기리 서로 갈등하며 속끓이고 사는 집안은 의외로 많이 있다.
최근 한 대학교수의 끔찍한 살인 사건(재산 상속 때문에 아버지를 칼로 살해함)이 엄청난 충격으로 소스라치게 와 닿는 것도 딴 세상 남의 일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속에 태어나 가정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인하여 그 가정을 떠나간다.
태어薡날 때부터 무선택으로 주어지는 본래적인 것이기에 미우나 고우나 거기에 삶의 뿌리를 내릴 수 밖에 없다. 한 인간을 놓고 볼 때 사랑과 미움이 최초로 싹트는 곳도 바로 가정이다. 사회공통체의 기초 단위로서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생각만큼 건강한 가정은 과연 얼마나 될까?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대학교수 일가만 해도 일찌기 모범가정으로 표창을 받은 집안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던 그런 집안의 부자간에도 말못할 갈등은 있었고 급기야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미극으로 발전했다.
세상에 뜻대로 안되는 것이 자식이라고 아버지들은 말한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갈수록 버릇이 없다고 한탄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그들을 버릇없게 만드는 까닭이 정작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험악한 사회에 나가 경쟁을 이겨내고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자식을 갖고자 하는 부모마음은 한결같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의 자식키우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자식들을 하나의 인격적인 개체로서가 아니라 소유믈 다루듯 하는 과보호와 부모 욕심만을 앞세운 과잉기대가 오히려 자식을 비뚤어진 인간형으로 왜곡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입시철 수험생은 그 집안의 왕이다.
행여 바蒷해라도 될세라 온 식구가 숨을 죽이고 눈치보기 바쁘다. 표정만 이상해도 그 앞에서 설설 기는 시늉을 하는 것이 부모들이다. 그렇게 해서 합격이 된들 자식 버려놓기 알맞다. 어른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매사를 작시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버릇 없는 젊은이들이 양산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는가?
둘 이상만 모이면 갈등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인간 사회다. 부모와 자식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더구나 종래의 동양적 대가족이 현대적 핵가족으로 바뀌면서갈등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아버지는 아비의 속마음을 몰라주고 대들기만 하는 자식이 괘씸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젊은 자식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가가운 피붙이일수록 애증이 미묘하게 충돌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부자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세대 차이 때문이라는 원인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세대차이를 좁히면 될 일이다.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대화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통상 30년을 한 세대로 잡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쌍동이 형제간에도 세대차이를 느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태는 급변하고 있다. 이제 대화로 세대차이를 좁이는 것도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그렇더라도 서로 노력하고 찾아보면 방법은 있을 것이다. 또 있어야 한다. 우선 세대 차이가 크다는 말은 가치관의 공유가 없거나 있어도 희박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 여기에도 문제 해결의 한 실마리가 있다. 앞 뒤 세대가 각기 신봉하는 가치관의 외형은 서로 다르다 해도 거기에는 분명히 공통 분모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 이치와 지혜는 세대가 바뀐다고 근본적으로 달리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능한한 그런 공통분모를 열심히 찾아 공감대를 넓혀 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마다 다른 삶의 영역, 다른 인생관에 뿌리를 둔 인격체들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무 큰 것을 서로 무리하게 기대하고 요구해서도 안된다. 부모와 자식간에 가로놓인 세대의 벽이 아무리 높다한들 나무라고 원망하기보다 서로 이끌어 주고 공경하는 인생의 선후배 관계에 설 때 일상의 사소한 갈등쯤이야 무슨 문젯거리가 되겠는가?
- 95.3.24일자 동아일보 -
59. 대하는 태도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아이들보다 말과 개를 더 조심스럽게 다룬다.
60. 어린이 사랑의 마음
오래전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노인이 공원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지나 가던 경찰관이 하도 이상히여겨 가까이 가니 무엇인가를 주머니에 가득히 담고 막 가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 노인을 파출소로 연행하여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는 깨진 유리병 조각과 못, 그리고 삐죽삐죽 나온 쇠붙이 같은 것들이 나왔다. 깜짝 놀란 경찰관이 그런 것들을 무엇하려고 주워 모으느냐고 묻자 이러한 것들을 어른들이 무심코 버릴 때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들이 다치게 하겠느냐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학자 요한 페스탈로찌 였다.
61. 새의 발자국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는 강철같이 단단한 돌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는 작은 새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필경 그 단단한 돌이 언젠가는 작은 새가 디뎌도 발자국이 날 정도로 물렁물렁 했었다는 증거다. 그토록 물렁한 물체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단한 돌이 되었다. 지금은 큰 코끼리가 밟아도 발자국이 생기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돌이 되었다. 어린 청소년의 마음은 굳어지기 이전의 물렁물렁한 것과 같다. 누가 무슨 자국을 남기든지 그 자국은 오래 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사랑의 자국을 미리 남겨 놓지 않는다면 마귀가 시기와 저주와 죽음의 자국을 남겨 놓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린이의 신앙교육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영국의 저술가 어기스트 해아 목사는 "봄에 이 피지 않는 나무에서 어떻게 가을에 열매를 바라랴!" 고 했고 헬루구는 "어린 나무는 구부러지나 큰 나무는 휠 수 없다"함
62. 도벽을 고친 사랑
1953년 미국 뉴오린스에 <선한 사마리아의 집>이 문을 열었다. 감옥을 자주 출입하는 불우 여성들을 돕기 위해서다. 거기에는 알콜 중독자, 매춘부, 아편 중독자, 가출 소녀.소년들 등 세상에서 죄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갱생의 길을 걷게 하는 곳으로 사랑이 넘치는 곳이다. 어느날 제니라는 소녀가 들어왔다. 그 소녀는 부유한 가정인데도 5세 때부터 어찌나 도벽이 심한지 부모는 매로 다스리기도 하고, 감금도 해보았고, 교정학교에 보내기도 했으나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 최종적으로 이곳으로 보냈다. 원장 죠이스 키미카엘 여사는 사랑으로 돌보며 그를 중고 옷가게의 금전 출납계를 시켰다. 그토록 도벽이 심한 제니가 많은 돈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제니는 돈을 한푼도 훔치지 않았다. 그는 여러번 눈물을 흘리며
"원장님,저를 정말 신용하시는 거죠?" 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랑뿐이다
63. 오성과 한음
오성과 한음이라는 유명한 우리 선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그만한 사람이 없지 않았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당히 뛰어난 분들입니다. 이들이 어릴적입니다. 하루는 어떤 아이가 엽전 두닢을 갖고 놀다가 진흙구덩이에 그것을 빠뜨렸습니다. 아이는 그 엽전 두닢을 찾다가 그만 엉엉 울고만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찾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흙구덩이에 손을 넣어서 찾아주기는 커녕 잃어버린 것을 고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나는 안갖고 너만 갖고 있었는데 이제 너도 잃어버렸으니 똑같아지지 않았느냐'라는 생각으로 모두 좋아하고 있을 때 오성과 한음이 그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오성과 한음은 주머니에서 엽전 두닢을 꺼내더니.
“읽어버린 엽전 두닢을 찾아주는 사람에게 이 엽전 두닢을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방법이 아닙니까? 잃어버린 아이에게 그 두닢을 주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똑같은 돈을 상금으로 걸고, 찾아주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더니 모든 아이들이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잃어버린 돈을 찾아서 돌려주고 찾은 아이에게는 동전 두닢을 주었다고 합니다.
64. 어린이 TV 프로그렘
KBS, 동아일보 투고내용(95.3.28)
요술장이는 보통 범인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떤 주문을 통해 해결하거나 만들어 내는 존재로서 이해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때 그때 "00이 되어라 얍!"하는 식으로 만들어 내는 일종의 신이나 요정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 TV 어린이프로그렘에 이런 존재들이 부적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는 그프로그렘을 담당하는 어른들이 요술사가 되어서 즉석에서 "00나와라 얍!"하면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로 자연스럽게 많이 나온다.
또 나오는 대상들은 온통 머리는 짐승이고 몸체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온다. 물론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마음은 어른과 같지 않아서 이제 마악 그려지는 하얀 도화지와 같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리는 모두 욕구만을 위해 사는 동물의 모습이고 그 밑으로는 인간의 모습이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동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앞치마를 두른 돼지 머리의 엄마가 싱크대 앞에서 설걷이를 하고, 역시 돼지 머리의 아기가 젖병을 문 채 보채고 있다. 이것이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육 현실이다.
빨고 보채고 먹고 울기만 하는 돼지처럼 인간은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한 동물적 욕구만을 가진 인간들이 이제는 요술장이를 꿈구도록 매체를 통해 아이들을 세뇌(洗腦)하고 있다.
시대적인 흐름이 그래서 그럴까?
요즘엔 세상에 눈을 돌려보면 그러한 요술장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문제가 발생하면 참고 인내하며 슬기와 지헤로 그것을 극복해 볼려는 시도는 아예 없고 요술장이가 되어서 "얍!"하는 기압소리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사람들이다.
소위 한탕주의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요술장이를 꿈꾼다. 도무지 그 누구도 자신을 흉내내지 못할 만큼 어떤 획기적인 모습으로 돌변해서 사람들앞에 서기를 원한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들은 물리적인 방법으로라도 자신이 훌륭한 요술장이임을 입증하려고 든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한다. 심지어는 부모도 그 대상이 된다. 그가 훌륭한 요술장이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도 희생 제물로 여지없이 등장 시킨다.
건전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가르치지 않고 매체를 통해 획기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는 주문만을 배워온 세대들이 많아진다면 장차 이 세상은 어찌 될까?
인간이 신적 존재라서 그야말로 무엇이든 뜻한 바대로 이룰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인간은 너무 나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위대한 과학의 발전을 이루고, 우주를 종횡무진하는 인간이라 해도 질병과 가난과 죽음앞에서, 자연의 힘 앞에서 조차도 맥을 못추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자신도 요술장이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성장한 인간이 자신의 무기력함을 발견하게 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총과 칼을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훌륭한 요술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머리속에, 마음속에 남을 죽이는 칼을 품고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철저하게 감추기 위해서라도 날카로운 칼이 그들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이 보는 TV프로그램("하나 둘 셋","뽀뽀뽀", "혼자서도 잘해요" 온갖 만화 프로그렘등이 마법사, 요정 일색이다.)이 바로 그러한 미래의 사람을 양산하고 있다. 참으로 큰일이다.
인간이 모두 마술사가 되어 날뛰게 될 때 이 세상은 비극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65. 자녀교육의 실패현장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친 자식들로 부터 구타를 당하는 부모들의 모임이 최근 결성돼 유사한 처지에 놓인 40여명의 부모들이 회원으로 가입, 매주 월요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 서로의 사정을 털어 놓으면서 자녀들의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고 한다.
정신과 상담 도중 자녀들로부터 매맞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 8개월전(95년3월30일 기준) 이 모임을 결성한 여성 정신심리분석학자 살비아 베인스텐은
" 이 모임은 무엇보다 이 같은 불행의 근본적인 책임이 가해자인 자녀가 아닌 부모 자신의 무분별한 애정에 있음을 인정토록 하면서 해결점을 찾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들 부모의 대부분은 자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충족시켜 주는 그릇된 교육관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나 부모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제 능력이 크게 부족해 친 부모를 구타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 95.3.30일자 동아일보 해외토픽 -
66. 관심 결핍증세를 앓고 있는 자녀들
얼마 전에 반포에 있는 어느 이비인후과에 들른 일이 있었습니다. 응접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뵙기 위하여 기다리는데 아이의 중이염을 치료하러 왔던 어떤 아주머니가 의사에게,
“선생님. 얘가 국민학교 4학년인데 얘 담임 선생님이 저보고 우리 아이가 겨울 방학 동안에 가장 즐거웠던 일이, 중이염이 걸렸을 때였다고 숙제로 낸 일기장에 기록했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이 끝나자 진찰실 내에서 깔깔 웃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가 그치고 의사 선생님은
“왜 아픈게 가장 즐거웠을까요?”라고 다시 묻자. 그 아이 엄마는
“내가 아프니까 온 가족, 특히 엄마가 나에게 더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의사 선생님도 친절하게 해 주시던 그 일이 정말 즐거웠다고 기록했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겨울방학 때에 스케이트도 타러가고 여러 곳에 구경도 보내고 하였는데 하필 중이염이 걸렸던 일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기록한 것은, 오늘날 특히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관심의 결핍증에 대한 진단이라고 봅니다. 관심의 결핍을 느끼는 자들은 병이 들더라도 나에게 관심을, 사랑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이런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군중 속의 고독이며 가족 속의 고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심이 없는 곳에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는 곳에 원만한 성장이나 훌륭한 결실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관심이 지나치거나 잘못하여 과잉보호나 간섭으로 변질되면 이것이 어떤 때는 더 나쁜 독소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 뜻에서 관심이나 사랑은 언제나 교육적이요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자동차 바퀴처럼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창조적인 관심을 쏟아 성숙한 사회, 즉 성숙한 인간 관계를 창조해 갑시다.
67. '친('親)'과'효
한자에는 묘한 뜻들이 있습니다.
시골에는 닷새만에 장이 서게 됩니다. 장이 서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뜰 안의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듯 말듯 합니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 이라 합니다. 어버이 친자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보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리려고 화장품 한 곽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지게 위에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때의 효자입니다. 즉 노인을 업고 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자의 모습, 친자와 효자가 가정에 있을 때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5:16)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고 했습니다.
68. 유태인의 교육
어느 날 영리하기로 이름난 여우 한 마리가 바닷가에 갔다. 여우는 동물 중에서 머리가 좋다는 인정을 받고 있다. 그 여우는 바닷속의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물고기 여러분, 바닷속은 위험하니까 뭍에 올라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어부들이 그물을 쳐서 여러분을 잡으려고 한답니다. 또 큰 고기들이 여러분을 잡아먹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육지에 올라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고기 대표들은 모여서 회의를 하였다. 갑론을박, 좀처럼 회의는 끝나지 않는다. 여우는 머리가 영리하니까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바닷속에 사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대립된다. 고기들은 오랜 숙의를 거듭한 끝에 여우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하였다. 물고기 대표는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이렇게 말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물 속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저녁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준 아버지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을 한다.
“물고기가 뭍에 나오면 어떻게 되지?”
어린이들은 금방 알아듣는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오면 말라죽게 된다고 대답한다.
“바로 그거야.”아버지의 교훈은 계속된다.
"유태인은 유태인으로 살아야지 아무리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유태인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거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가슴을 울려주는 감동과 각성이 있게 된다. 무서운 교훈이다. 이렇게 해서 유태인은 유태인으로서의 신분과 정신을 떠날 수 없는 것을 어린 마음 속에 심어준다.
69. 산 교육
옛날에 기찻길 주변의 개구장이들이 별생각없이 던지는 돌멩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깨지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차가 지나갈 때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습관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국민학교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기차가 지나갈 때 손을 흔들어주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손을 흔드니까 기차 안의 사람들도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기차 안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주는 것에 재미가 들어서 기차가 지나갈 때 돌멩이 던지는 버릇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무조건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고 하면 근본적인 해결이 안됩니다. 돌멩이를 던지던 손으로 흔들며 사랑을 표현할 때 참으로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인사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믿고 그릇된 일 안하는 것만 잘해서는 안됩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결단은 안하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해야 될 것을 더욱 온전하게 행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악에게 지지 않는 인생은 참 훌륭한 인생입니다. 유혹이라는 것이 얼마나 끈질기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혹에 지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나를 향해서 가해하는 사람에게 보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찰 때가 있습니다. 보복하지 않는 인생은 대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적극적인 것을 요구합니다.
70. 죄사함에 대한 교육
죄사함 받는 길
미국 어느 도시에 사는 남매 메리와 존이 주말에 시골의 할머니댁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존은 삼촌이 선물로 사준 고무총을 가지고 가서 이것저것 쏘는 연습을 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오리가 걸어오는 것을 본 존이 고무총을 겨누고 오리의 대가리를 명중시켜서 오리가 그만 그 자리에 푹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존은 겁이 났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죽은 오리를 가지고 큰 나무 밑에 파묻고 낙엽으로 가리워놓았습니다. 감쪽같이 가리워놓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두근거리고 두려워서 할머니께서 잘 준비하신 저녁 식사도 하는둥마는둥 하였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눈만 감으면 할머니가 보이고 죽은 오리가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할머니를 보면 공연히 무섭기만 하고 도무지 괴로워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존은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잘못한 바에는 할머니께 말씀드려서 벌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한 존은 할머니 방에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인자하신 음성으로 “존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존은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계시던 할머니는 존을 안아주시면서
“존, 착하다. 내가 네 잘못을 다 용서해주마. 사실은 어제 오후에 이층에 있으면서 네가 하는 일을 다 보았단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나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아무 걱정말아라. 내가 다 용서했다.”
죄사함 받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71. 어린이들의 현실
언젠가 TV에서 본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그렘에서 본 것이 기억이 난다
부화된 수많은 새끼 거북이들이 모래속에서 기어나와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로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이때 하늘에서 갈매기 때가 몰려와 바다를 향해 필사의 질주를 하고 있는 초록색의 연약한 새끼 거북이들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했다.
처절한 삶을 위한 대장정에서 대부분의 새끼 거북이들은 희생되고 바다에 도달해 목숨을 건지는 거부蝢이는 겨우 몇마리에 불과했다.
태어나자마자 무방비 상태로 탐욕스러운 갈매기들의 공격앞에 무참히 사라지는 새끼 거북이들의 애절한 모습이 바로 오늘 날 지구톤의 어린이들이 처해 있는 위기적 상황과 비슷할지도 모를일이다.
각종 보고서나 조사자료에 따르며 매년 전세계에서 1천 4백만명의 어린이들이 기아와 질명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중남미에서는 4천여명의 어린이들이 인신매매되고 있고 1억여명에 달하는 거리의 어린이들이 각종 봄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보면 분명 세계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탐욕때문에 죽고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1989년 세계아동 현황보고에따르면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는 총 1천 4백만명에 달하고 있다. 매일 지구촌에서는 4만명의 엄청난 숫자의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재앙과 함께 어린이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인재(人災)다.
극악한 인간 사냔꾼들이 자행하는 인재의 대표적인 것이 유아 인신매매다. 생후 수개월밖에 안된 아이들을 극빈가정으로 부터 싼 값에 사들여 구미 선진국들의 아이없는 부부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비정한 비지니스맨들이 중남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고 전한다.
돈주고 사들이 유아 상품이 적을 때는 유괴도 서슴치 않는다.
그러한 일이 부라질과 과태말라 두 나라에서만도 매년 4천여 어린이들이 소리없이 사라져 간다고 한다.
특히 슬프고 충격을 주는 사실은 팔려간 어린이들의 일부가 돈많은 선진국 어린이들을 위한 이식수술에 필요한 장기 제공자로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태말라에서 팔려와 프랑스 어린이들을 위해 장기를 적출당한 어린이들에 대한 추격 조사를 위해 국제인권연맹 대표단이 과태말라를 방문(1988년8월)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자로 태어난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리기위해 가난하게 태어난 죄 대문에 수술대 위에서 장기를 해체당하는 어린이들의 처참한 모습이 갈매기들에 의해 잡아벅히는 불쌍한 새끼 거북이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들 중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8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어린이들의 불행한 현실을 보고 어른들은 참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어른들은 희생하고 좋은 삶의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리라
- 1989년 3.4.일자 국민일보 -
72. 믿음의 모본
저는“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간첩”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날 귀찮은 손님이 찾아와서 “주인 양반 계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아침에 일찍 나가셨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광경을 아이가 봤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어, 저럴 때 저렇게 거짓말을 하시는구나.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데도 안 계시다고 하는구나. 거짓말을 해도 되는구나.' 그래서 거짓말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전화로 옆집 부인 흉을 봅니다.
“우리 옆집 새댁은 어른을 봐도 인사는 커녕 본 척도 안해요.”
아이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 전화로는 저렇게 남을 흉보는 것이구나.'
부모의 사소한 행동을 모두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려주면 아이는 '아니 어떻게 된 일이지? 아빠, 엄마는 안 그러시면서 흉보는 것이 사랑하는 건가 뭐'라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자녀 앞에서 위선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모른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똑똑합니다. 아주 작은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때 첫째는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원하시면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십시오.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으시면 당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73. 바른 교훈을 할 수 있는 부모
유명한 설교가인 로버트 리 목사는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 파나마에 유학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파나마에서 공부하며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파나마로 떠나기 전에 독실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네가 공부하기 위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을 텐데 너는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아야 된다. 내 교훈을 잊지 말아라. 네가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네가 잘못했다면 그 모든 것이 네 눈동자에 다 드러날 테니 명심해야 한다. 부디 깨끗하게 생활하거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파나마에 가서 생활하면서 술집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나쁜 친구와 사귀어 노름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몸을 헛되이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의 교훈대로 살다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어머니 앞에 서서“어머니. 제 눈동자를 보십시오. 어머니 말씀대로 살았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른 교훈을 할 수 있는 부모가 자녀를 통해서 효성을 받게 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 효성을 받을 만큼 자녀를 사랑과 이해로 돌보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효성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모를 잘 공경하는 정성된 마음을 가지면서 또 우리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아니하고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4. 미련한 부모
우리네 부모님들, 특히 어머니들이 자식 사랑하는 것을 보면 미련할 정도로 맹목적인 것을 많이 본다. 사랑은 하는데 지혜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녀교육을 살펴보면 어머니의 사랑에 두 가지의 차원이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는 "care"즉, 잘 돌본다는 것이고, 하나는 "build up" 곧 쌓아올리고,확립,개조,갱신하고 증진시키고 단련하는 것이다.
자녀의 심리상태라든가 소질이라든가 하는 것을 잘 보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심지어는 자녀의 입맛도 어머니가 만드는 것이요 습관도 어머니가 만드는 것이요,신앙도 어머니가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잘 연구해서 자식을 돌보고 가르치지만 일단 열 두살이 되면 딱 끊어 버린다. 품안에서 품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요세보면 자녀가 중학교 부터는 집을 떠나서 기숙사에 들어가 동부를 하고 주말에만 집에 돌아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방법이라고 말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떼어놓을려면 어릴적 부터 떼어 놓아야지 다 커서 떼어놓으면 모처럼의 해방감을 타락의 기회로 삼기 때문이다.
끼고 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녀를 유학 보낸다고 하면서 과감하게 얼른 딱 떼어버리고 미련없이 끊어 벌히면 좋으련만 못내 안쓰럽고 못미더워가지고 "내가 따라가야 돼"하고 주책없이 따라가려 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다 큰 자식 궁대 보내면서 손목을 부여 잡고 오만 걱정을 다 해준다. 심지어는 돈을 써서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부모내도 있다.
가서 훈련 받는 것이 얼마나 좋은 교육인지 알지 못해거 그렇다.
자식들도 고생을 해 봐야 한다. 전혀 부모의 그늘 아래서 고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라서 어른이 된 그가 과연 사회에 나가서 얼마나 공헌을 하며 살 것인가? 세상은 그렇게 어머니의 풍안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기 떼문이다.
75. 고층아파트 어린이 약하다.
최근 주택이 점점 고층화되면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정서및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 동해대학 보건학교실은 고층 건물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천식에 관한 연구결과 대기 오염이 천식의 주범이었고 이것은 진드기와 집안의 먼지가 주범이라고 밝혔다.
또한 외부 공기와 접촉이 적은 고층 건물의 고립된 생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 연구팀의 지적에 의하면 3세의 어린이들이 밖에서 노는 시간은 1-2층의 어린이들이 하루 1백 57분인데 비해 8층 이상에 사는 어린이들은 1백 33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어린이를 데리고 어머니가 하루 3회이상 외출하는 경우는 1층에 사는 가구에서는 77.8%인데 비해 4층 이상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고층 건물에서는 시간당 환기 횟수가 0.3-0.5회인 반면 1층 목조 건물에서는 2-3회가 된다는 것이다.
1층에 사는 어린이들은 62%가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서 놀고 있으나 15층 이상에 사는 어린이들은 36%만이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이다.
이것은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고층에 사는 어린이들이 외계와의 접촉을 잃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란 것이다.
이들 어린이들은 천식뿐 아니라 운동량이 부족해 식욕이 떨여져 편식을 하게 되고 온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쉽게 감기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76. 감사의 자세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놀러간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웃집 부인은 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없이 얼른 받았습니다.
“얘야”아이의 어머니가 무섭게 불렀습니다.“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되지?”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껍질을 벗겨주세요”라고 말하더랍니다. 타인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곱 살 난 이 아이뿐이 아닙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타인이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침묵한 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돌아섭니다. 사과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사과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많은 십대들이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정 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타인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몇 번이나 깨워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학교에 등교할 때까지 끊임없이 부모님께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챙겨주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타인이 자신을 위해 베푸는 친절에 대해서 '그까짓 것 가지고' 이렇게 말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이 매일 같이 베풀어주시는 작은 일에 대해서도 진정 감사할 줄 아는 자세가 우리들에겐 꼭 필요합니다.
77. 행운이라고 하는 저주
한 조각의 눈물 젖은 빵을 대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과는 더불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참담한 시련의 쓰라림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미를 모른다.
젊어 자살을 심가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삶의 진가를 모른다는 등의 교훈이 있다.
부모치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좌절과 실패,천대와 기아의 쓰라린 맛을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특히 요즘은 아들 딸 구별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사고방식이 정착되어 있다. 자녀라야 기껏해야 한 둘이 고작인 데다가 각종 현대적인 편의시설 덕분에 주부들의 시간이 남아도는 시대가 요즘이다. 따라서 넘치는 관심이 자녀들에게로 쏠리게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온실 속에서 자란 꽃을 보라. 티없이 아름답고 앙증맞을 만큼 귀엽지 않은가. 새장 속의 카나리아는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으면서 즐겁게 노래만 부르며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 그러나 유사시에 온실을 떠나야 하는 꽃이나 새장을 벗어나야 하는 새는 결국 비참하기 그지없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부모들의 넘치는 사랑과 과보호 속에서 한껏 복된 살믈 살아가는 어린이들, 어찌 행운의 주인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계속되는 부모의 보호 속에 안주하던 자녀들은 갑자기 경험하게 되는 세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생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화려한 시작,순탄한 출발을 지혜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은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 창대한 것(욥8:7)을 기리고 있다.
기독교의 시작과 오늘의 번영을 보면 그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신 정 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무려 19년이라는 세월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 불운이 결국 조선왕조 최고의 실학자가 될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무려 삼만 권의 책을 읽었다지 않은가?
일본의 여류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우라 아야고(三浦綾子)라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소설가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아니다. 국민학교 선생으로 만족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결핵에 감염되어 척추 카리에스로 침대에서 곰짝하지 못하고 지내는 동안, 그 수많은 세월을 견디기 위하여 손에 잡히는대로 소설을 읽었고 그것이 결국 그녀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소설가가 될 수 있게한 것이다.
우리 자녀들의 문제는 부족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보호를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이젠 어떻게 하면 더 잘해 줄 수 있을까하고 연구하지는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나친 행운은 그들의 장래를 망치는 저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티푸스라는 병을 이기게 하기 위해서 자녀들의 몸에 예방주사라는 명목으로 그 균을 집어 넣는 것과 같이,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배고품과 육체노동의 괴로움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78.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지금부터 약 20년전, 우리집 아이들이 교회 유치부에서 성경을 배울 때의 일이다.
그때 우리 아이들을 지도하시던 전도사님이 아직도 계시는데 아이들에게 십계명을 짤막짤막하게 해서 가르쳤다. 아이들이 외 우기 쉽게 종이에 복사를 해주면서 글씨를 모르면 부모님께 여쭤보고 집에서 꼭 외워오도록 숙제를 내주었다. 내가 집에서 가만히 보니까 우리 큰 아이가 그걸 부지런히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제 5번 다섯번째 계명"하고서는 "네 부모를 공격하라”"네 부모를 공격하라”, 이렇게 외우고 있는 것이 었다.
"야, 이놈아 자세히 봐. 어디가 공격이냐?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하라고 했어"했더니 이 녀석이 하는 말이 "아버지, 공격하고 공경하고 뭐가 달라요? 똑같은 것 아니에요?”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 것이었다.
물론 어린애가 철이 없어 아직 낱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한 얘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공격"과 "공경"을 구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자식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자. 부모를 공경하고 공격하지는 말자. 정신적으로 공경하고 인격적으로 공경하고, 물질적으로 공경하도록 하자. 그래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자.
79. 부모의 역할
가정에서 자녀를 위해 부모가 담당해야 할 역할에 관하여 좋은 참고가 될 미국의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발리스키라는 부부의 가정은 10 명의 자녀를 키웠는데, 그들 가운데 6명은 선교사가 되어 해외로 나갔고, 4명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선교활동을 도왔습니다. 발라스키 가정의 맏아들인 랄프는 부모로부터 강렬한 신 앙적 영향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아름다운 기독교 가정을 이루었습니다.”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둘째, 그들은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 니다.
셋째, 아버지는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 허물없이 우리를 사랑해주셨지만 결코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의 결정은 대법원의 판결과 같았습니다.
넷째,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공평무사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잘못했을 때는 벌을 받았고, 잘했을 때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섯째,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나 말씀과 삶이 일치 하셨습니다. 그들은 삶으로 우리들의 가장 이상적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진실로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훗날 다 성장하여 중년이 된 자녀들의 기억 속에 이와같은 인상과 추억이 깊게 남을 수 있다면 그 부모는 경 건한 부모로서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80. 지혜로운 엄마
차일피일하다가 딸에게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미루었던 실수로 그녀를 척추성 소아마비 장애자가 되게 한 엄마가 있었다.
이런 경우 부모는 무서운 죄책감에 포로가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린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의 암담한 자애를 안타까워하면서 자연스럽게 과보호를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네 장래는 우리가 책임져 줄 것이니 나무 고통스러워말라고 위로 한다. 이랗게 되면 장애자는 정신적인 부구까지 겸하게 된다. 결국 부모는 소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이중으로 불행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엄마는 어린 딸을 가아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다 차원 높은 사랑으로 이 아이를 키워야한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때부터 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보기에 안타가워도 자기가 노력하여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해 주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 독한 엄마가 된 대신 그 엄마는 남모르는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달이 학교에 입학한 다음 날이다. 그녀는 딸에게 말했다. 너는 몸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니까 남들보다 몇 갑절 더 노력해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다. 네 장래는 네가 개척해야 하는 거야. 이 엄마는 너를 책임질 수도 없고 네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줄 수도 없단다. 엄마도 너 처럼 예기치 않은 일로 불구자가 될 수 있고 또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평소에 남만 믿고 살다가 믿던 사람이 널 배신 했을 때 너는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니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네가 하도록 해야 한다.
딸은 자라면서 엄마의 무정을 원망했고 무책임한 엄마라고 경멸도 했다. 그리고 숱하게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기를 강하게 키운 엄마 덕분에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을 손에 쥔 바로 그 날 딸은 제방이 무너지듯 쏟아지는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약사로서 약국을 경영하는 딸은 말한다.
"저는 삶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지요.그동안 저는 남에게 부담스러운 짐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엄마를 돕고 남도 도와주고 있습니다.제가 이렇게 유능하고 가치로운 존재라는 것을 예전엔 미쳐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사지백체가 멀떵한 자녀들까지 쓸데없이 과보호하여 정신적인 소아마비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자녀들에게 ꎧ은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 딸의 혼수를 누구보다 많이 장만해 주는 어버이, 돈 보따리 디밀어 자식을 대학에 부정입학시키는 부모들, 바로 그들이다.
사랑이 달콤하다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의 속성을 알지 못한 처사다.
차원높은 사랑엔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으며 괴로움과 함께 남몰래 흘리는 눈물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