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성경적 관점
주 제: 이혼
최근 산업사회 속에서 늘어만 가는 이혼률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결코 무관한 일은 아니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기독교인 이혼자, 미망인을 대상으로 상담전화를 실시하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 선교회에 따르면 최근 상담전화가 점차 많아지
고 있으며 두달동안만도 1백4명의 이혼자들이 상담을 요청했다.
이들의 이혼사유를 분류해 본 결과 외도(33%)가 가장 으뜸을 차지
했으며 구타(18%), 성격차이(12%) 순으로 나타나 기독교인의 이혼
사유도 불신의 이혼사유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줘 기독교인
가정생활의 위상정립의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혼한
사람들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이혼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경우
가 많고 재혼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재혼이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것인가는 의문을 갖고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그리스
도인의 재혼관의 확립도 매우 필요한 실정이다.
1 . 이혼팽창의 원인과 영향
결혼과 가정이 신성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창조의 질
서와 연결된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
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
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
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 19:4-6).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결혼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초위에 기독교
적 가정생활의 가장 좋은 것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상의 말씀으
로 보아 가정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결코 일종의 생활방편이
나 사회적 관례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 향락을 위한 것
은 더군다나 아니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정은 거룩한 관계였
다. 결혼은 신성한 인격적 결합이었다. 그러므로 가볍게 파기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혼생활에는 기쁨이 있는
동시에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위에 집중되었다.결혼이 너무 쉽게, 너무 이
기적으로 성립되고 또 너무 속이 파기되는 시대에 있어서 이 예
수님의 말씀이야말로 안전과 선과 진리를 가리키는 지표가 된다.
이것을 무시하는 자는 자기의 행복과 가정을 함께 상실하게 된 것
이다. 그런데 오늘날 구미 여러나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
나라에서도 해방후부터 결혼의 파기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
나고 있다. 이와 같은 이혼의 팽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
들은 이것을 가리켜서 퇴폐문화의 징조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의 결혼제도는 현대사회에 이 이상 더 타당성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이들
은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과거보다 더 정직하게 된 증
거라고 보고 있다. 저들은 결혼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될 때 심리
적인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결혼생활을 청산하는 것
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어떻든 현대인은 이혼을 도덕적이
며 종교적인 문제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 심리적인 문제로 생
각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기독교에 있어서는 이혼은 중요
한 윤리적 문제인 것이다. 결혼은 일남일녀가 서로의 변치 않는 충
성과 정조를 서약하는 거룩한 사랑에 그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
에, 저들이 결혼관계에 들어갈 때,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 놓기전
에는 끝까지 한 몸으로 지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한다. 그
러므로 이혼은 결혼의 진정한 의도와 목적을 유린하는 것이 된다.
일남일녀의 결혼은 그 성질상 불변의 정절을 서약하는 것이기 때문
에, 이런 결심과 서약없는 결혼은 기독교적 결혼이념을 짓밟는
것이며, 법적인 계약에도 배신행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혼은 결혼의 항구성을 애당초부터 인정하지 않고 출발한 것
이므로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남녀가 다만 성적욕망, 또는 어
떤 이기적인 향락을 합법화하기 위하여 결혼한다면 그 자체가 옳
지 못한 것이다. 무슨 언쟁이나 양립할 수 없는 알력이 생겼을
때, 화해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전에 갈라지는 것부터
생각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어느 한편이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
껴 다른 상대자를 구한다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파탄된 가정이 자녀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이
기적인 행동은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혼의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혼에 대한 특별한 관
심과 이혼한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목회대책이 시급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교회는 깊이 감추어진 보물을 뒤져서 단절된 관계와
상한 마음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이 될 수 있
는 강력하고도 희망에 찬,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것일지도 모르
는 말씀을 찾아내어야 한다.
2 .이혼에 대한 목회적 해석
성서에는 "이혼"에 관한 언급이 구약에 11번, 신약에 18번, 모
두 29번 나온다. 그 중 두 구절(사 50:1, 렘 3:1,8)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지칭하는 비유적 의미로 이혼이란 말을 사용
하고 있다. 여기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혼으로 묘사한
다. 즉 이혼은 간음을 행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계약관계에
대한 신앙을 저버린 아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혼에 관해 언급한 이러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그것이
당시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
상적인 예증이라는 점에서 교훈적 가치를 갖는다. 세번째 구절인
말 2:13-16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혼의 현실
을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이혼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의 상징으로 나타나 있
다. 이러한 예언자의 음성은 원시 교회에 의해 전승된 이혼에 대
한 예수의 강력한 반대의 말씀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혼에 관한 또 다른 구약 구절들은 제사장이 이혼당한 여자
와 결혼하는 것을 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레 21:7, 14 ; 겔
44:22). 이 구절들의 관심사는 제사장의 직분과 관련하여 성결의
표준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제사장은 "구별된" 자로서 제사 집행
의 의무를 준수함에 있어 그들의 순결을 상징해 줄 일정한 규칙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혼당한 제사장의 딸에 대한 규정(레
22:13)도 제의의 성결 및 적법성과 연결된 것이었다. 민 30:9을 보
면 이혼당한 여자가 원을 했을 경우 그의 서원을 무효케 할 남편
이 없으므로 그는 서원을 지켜야 가것으로 되어 있다. 이 구절은
가부장적인 특정한 사회, 종교 체제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이는 교
회가 율법의 성취자로 믿는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폐기된 법이다.
신 24:1-4절은 유대인의 이혼 방식을 간명하게 묘사하고 있
다. 이에 따르면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여자의
집으로 보내게 되어 있다. 여자는 지참금을 가지고 결혼했으면
서도 결혼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다. 신명기법은 그
리스도가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800년 이상 전승되어 온
법이기 때문에 원시 그리스도 교회 교인들이 이혼 및 재혼의 문제
와 싸우기 시작했던 때에는 이미 이러한 이혼 방식이 완전히 정착
한 상태였다. 이상의 구약 본문들은 모두 이혼이 하나님의 백성 사
이에 흔히 있었던 일임을 암시하고 있다. 신약성경을 보면 바울
은 고전 7:10-16, 26-27, 29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문제에
관해 충고하면서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암시하고 있다. 바울
은 복음서에 쓰인 것과 같은 단어(apolyo=이혼)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chorizo(어근의 의미는 "갈라놓다")와 aphienai의 영어 번역
은 divorce(이혼)가 많이 쓰인다. 둘 다 "이혼"으로 번역될 수 있
는 희랍어 단어들은 집을 나가거나 배우자를 유기하는 행위와 방
과 식탁을 따로 쓰는 행위 같은 것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의 임박
한 재림을 염두에 둔 바울의 사도적 가르침(ouk ego alla Kyrios
=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 상
태 그대로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곧 다시 올 것이기 때문
에 세상 일에 마음을 흐트리는 것보다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것
이 더 중요하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갈라설 수
있긴 하지만 갈라선 후에는 독신으로 살거나 아니면 다시 화해해
야 한다. 이 충고는 믿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이나 독신
으로 사는 사람에게 주는 충고보다 더 권위를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불신자와의 결혼 생활과 관련한 바울의 충고의 근거가 되는
이유는 주목할 만하다. 바울은 신자에게 권고하기를 만약 불신자
인 배우자가 갈라지기 원한다면 그 결정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화평 가운데 살도록 불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은 다툼을 일으키기보다 갈라지기 원하는 배우자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권고는 만약 믿지 않는 배우자가 그대로
살기를 원하면 그와 계속 같이 살라는 말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부부관계의 평화이며 이와 더불어 결혼관
계를 통해 배우자를 "거룩하게" 하는 일이다. 결혼관계에 있어
서 목표가 되는 평화는 10-11절에도 적용될 수 있다. 뒤틀리거나
파괴된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화평에의 부름은 최고의 명령으
로 간주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화평은 갈라선 부부의 화해 가능성
이나 아니면 적어도 재혼에 의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일로 상
징된다. 바울이 이와 같은 충고를 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시
각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언급해야 할만큼 당시 이혼이 흔한 관습
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의 생각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
림에 대한 열렬한 기대에 의해 상당히 많이 채색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은 서로 참고 지내거나 화해하거나 독신으로 남아 있으라고 충
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