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폭력에 대한 이해와 목회 상담
많은 교인들이 새벽기도를 나올 때 불량배들을 만나 고생을 한 사례들을 목회현장에서 종종 듣곤 한다. 성폭력의 사례들은 신문이나 라디오 TV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가족과 교회 안에서도 많이 접하는데 갈수록 그 회수는 증가 추세에 있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들어 내놓고 있다 이러한 관심에서 본 논문의 가치를 크게 평가하고 싶다.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호소에 귀를 기우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목회자는 억눌린 자, 특히 성폭력 희생자의 호소를 들을 때에는 펠라우어와 같은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성폭력 같은 문제로 성직자와 상담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인데 Marie Fortune은 그 이유가 성직자는 성폭력에 관한 문제를 들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도움을 줄 능력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회자는 지금이 시간에도 성폭력 희생자들이 사회의 그늘에서 그리고 교회의 그늘에서 남몰래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돕는 것이 목회자의 또 하나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성폭력에 대한 목회자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서 성폭력에 대한 신학적 사고를 제시하고 성폭력 희생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목회적 관점에서 접근해 나가고 있다.
성행위의 동기는 성적 쾌락과 애정을 주고 받기 위한 것이지만 성폭력의 동기는 가해자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피해자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성폭력은 그 무엇에 앞서 우선 폭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성폭력과 성행위의 혼돈이 지속되는 한 성 폭력 희생자가 순결을 잃었다는 잘못된 인식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이 성직자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일이라면 성직자는 당연히 이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의 순결문제가 한국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서구에서도 여성은 그 일을 은밀히 즐겼으면서도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는 신화가 사람들의 머리속에 통념으로 일반화되어 있어서 성폭력 희생자들은 불신과 나쁜 평판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성의 순결에 대한 뿌리깊은 의식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이 오히려 "부주의했다" 혹은 "성적인 자극을 주었다"는 등의 비난을 받는 경향이 다른 사회에 비해 매우 두드러진다. 강도나 절도를 당한 경우 피해자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녔다든지 집에 귀중품을 간직하고 있었다든지 하는 사실은 피해자가 비난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폭력에서도 피해자가 오히려 그 일에 책임이 있다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폭력에서 "피해자가 자초한 강간"이란 인식은 불식되어야 한다. 남성은 성이 필요해서 그리고 자신을 억제할 수 없어서 강간을 한다는 것이다. 개인 강간의 58%, 집단 강간의 90%가 사전에 계획된 것이며 그 중에 12%는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고 한다. 성폭력의 주요한 원인은 남녀 성차별 주의와 남녀 성의 부당한 사회화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라고 하겠다.
성폭력은 우리 사회의 만연되고 있는 포르노와도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소설,잡지, 그리고 포르노 등의 폭력적인 내용은 알게 모르게 폭력을 부추기고 또 폭력이 만연되어 있어나 일반적으로 폭력이 용인되는 사회일수록 성폭력의 발생 빈도가 높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이러한 폭력적인 대중 매체는 커다란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성 특히 사춘기의 젊은 청소년들은 포르노를 통해서 여성을 하나의 성적 대상물로만 여기는 인식을 내재화하게 되고 일반 폭력물을 통해서 힘과 상황이 허락이 되면 타인을 멋대로 다뤄도 된다는 인식을 내재화하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건전한 성교육과 청소년들을 포르노의 해악으로부터 부정적 영향을 극소화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청소년들이 포르노에서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한 사후 상담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생기기 전에 그것을 미리 막기 위한 사전 상담은 더욱 중요하다. 목회자는 더 이상 성서의 해석이나 선포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유능한 상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성폭행 희생자에게 좋은 상담을 해주어야 하고 위기에 처한 희생자를 신속히 도와 줄 수 있어야 하며 특히 희생자를 위로하고 지원해 주는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Chris Servaty는 다음과 같이 성직자를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① 희생자들의 말을 믿고 그들의 감정을 받아 드려라. 희생자들에게는 성폭행을 당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지적해줄 필요가 있다. ②희생자가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우라 ③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라.
지원상담(Supportive counseling)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희생자로 하여금 안정과 힘과 자신감을 그리고 자제력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므로 서버티의 지침원칙에 따라 상담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폭력 희생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추궁하는 따위는 절대 금물이다. 성폭력 희생자에게 실제로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①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당신 편이에요 ②당신이 강간을 당한 건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③그 일로 해서 순결이나 정조를 잃었다고 생가하지 마세요. 당신은 여전히 순결하고 깨끗합니다.
이러한 조언들은 언뜻 보아 단순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효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상담시 조언 한마디가 성폭력 피해자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목회자는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화된 순결 의식의 멍에를 지고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 다음 조언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욥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단 말이냐"하고 물을 때에 그가 정말로 친구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것은 신학적인 해석이 아니라 동정과 위로의 말이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성직자의 역할은 욥이 친구들이 욥에게 해주지 못했던 바로 그 일을 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성직자에게 성폭력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극히 적기 때문에 성직자는 능동적으로 상담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성폭력에 예방적인 차원에서 성폭력에 대한 문제점을 강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교육하는 것이다. 이제 목회자에게 있어 문제는 성폭력에 대한 상담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성폭력에 대한 이해와 기술을 가지고 상담을 할 것이냐 아니면 미숙한 상태로 그냥 상담을 할 것이냐가 문제로 남아있다 하겠다.
이상의 논문을 통하여 느끼는 것은 세밀한 관찰을 가지고 다루었다는 점과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문제점을 직시해 주고 있는 점에서 성폭력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와 이러한 문제점을 개발하면서 목회에 반영해 나간다면 어두운 고통 속에서 있는 이들에게 밝고 적극적인 삶으로 유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피해자의 은폐로 상담을 기피하는 저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해 주는 일이다. 목회자의 따뜻한 위로의 말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