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문제연구
*세계노인인구통계에 따른 분석
전세계 인구에서 60세 이상 노인의 수가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다. 세계 인구는 1950년에서 2025년에 이르는 75년 동안 3배로 증가할 것이 예상되는데, 같은 기간에 60세 이상은 5배, 80세 이상은 7배가 될 것으로 국제연합은 내다보고 있다.
이는 60세 이상의 인구가 1950년에는 12명 가운데 1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2025년에는 7명 가운데 1명이라는 뜻이 된다. 1950년에 전세계의 60세 이상 인구는 겨우 2억 1,400만 명 정도였으나 2025년에는 11억 2,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노인층의 증가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더욱 두드러질 것 같다. 곧 60세 이상의 인구는 1950년에서 2025년 사이에 거의 7배로 늘어나 8억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1950년에 개발도상국은 전세계의 60세 이상 인구 가운데 56퍼센트만을 차지했으나 2025년에는 약 72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60세 이상의 인구는 2000년에서 2025년 사이에 가장 빨리 늘어날 것이다. 2025년에 방글라데시, 브라질, 멕시코, 나이지리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60세 이상의 인구가 거의 15배로 늘어나 있을 것이다.
1 . 건 강
2025년의 노인 가운데는 현재 32세에서 52세 사이로서 그때까지 살아 남은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이들이 그때까지 살아남은 것은 건강, 위생, 영양이 개선된 덕분일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평균수명이 길어진 원인 가운데 3분의 2는 이러한 개선이 덕택이라고 본다. 자연적인 노화 과정이 반드시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사람은 죽는 날까지 활동적이며 원기왕성할 수 있다. 노인들이 겪는 심신 장애는 평소에 갖고 있던 질병이 쌓인 결과임이 현대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는 선진국에서 60세 이상 노인의 75퍼센트는 활동적이며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돌이킬 수 없는 뇌기능 쇠퇴로 인해 심한 장애 상태인 노인은 5퍼센트가 채 못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일생 동안 잘 먹지 못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장애자 노인의 비율이 훨씬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코스타리카의 연구 결과 85퍼센트가 시력 장애를, 66퍼센트가 관절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온 세계에 걸쳐 심한 장애자 노인 가운데 대부분이 집에서 요양하고 있다. 선진국에서조차 60세 이상의 5퍼센트 가량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 . 여 성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산다. 이런 현상은 유전적 차에서 비롯된다고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믿고 있다. 여성들이 더 오래 살기 때문에 여성의 수는 남성보다 많다. 그 차이는 현재 60세 이상의 경우 100대 74로 여성이 우세한 선진국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또한 그 차이는 80세가 넘는 남녀의 비율이 48대 100으로 나타날 정도로 노인층에서 더욱 심해진다. 개발도상국에서 60대 남녀의 숫자는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평균 수명의 차이는 커질 것이며 60세 이상의 경우 여성이 다수로 될 것이다.
3 . 도 시 화
젊은이들이 직업을 찾아 가족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기 때문에 노인들은 시골에 남게 된다. 팽창하는 도시에서는 젊은 구직자들이 높은 생활 수준 때문에 보다 오래 살게 된다. 따라서 2025년 무렵에는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노인들의 대다수가 도시 지역에서 살게 되리라고 국제 연합은 내다본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도시화 과정이 이미 진행되었으며 현재 대부분의 사람이 도시 지역에서 살고 있다. 현재 60세 이상의 3분의 2가 도시에서 산다. 2000년 무렵에 이 숫자는 60퍼센트쯤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그때가 되면 선진국의 노인들 가운데 4분의 3이상이 도시에서 살 것이다.
4 . 고 용
국제노동기구는 64세 이상 남자의 39퍼센트, 여자의 12퍼센트만이 취업하고 있었다고 추산한다. 이 고용 수준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2000년 무렵에는 65세 이상 남자의 27퍼센트, 여자의 10퍼센트만이 취업할 것이다(여기에서 "고용"이란 집안일이나 가내소비용 식량 재배는 제외한 것임).
5 . 연 금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고정된 정년이 있으며 그 나이가 된 사람들은 공식적인 직장에서 퇴직하고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 정년은 남자의 경우 대개 60세에서 65세, 여성의 경우 55세에서 60세 사이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받는 연금의 액수이다. 국제노동기구의 경제 전문가들은 국가 연금이 최소한 1인 평균소득의 65퍼센트는 되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선진국에서조차 이 최소 권장액을 지불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에서도 정부 연금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범위는 공식 봉급 취업자 가운데 상당히 적은 사람에 한정 되어 있다. 국제노동기구는 2000년이 되어도 남성 근로자의 23퍼센트와 여성 근로자의 6퍼센트만이 연금을 받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6 . 부 양
사람들이 늙어가는 속도는 그들의 노년을 부양할 아기가 태어나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 1950년에 15세에서 59세의 어른을 100명으로 잡았을 때 60세 이상은 19명, 15세 미만은 45명이었다. 그러나 2025년에는 활동할 수 있는 어른 100명을 기준으로 하여 60세 이상은 40명이나 15세 미만은 35명에 불과할 것이다.
국제노동기구는 2020년에는 55세 이상의 경우 2억 7천만의 경제적 무능력자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렇다면 100명의 근로자가 38명의 노인을 부양하게 된다는 뜻인데, 이는 1950년의 2배에 해당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2명의 근로자가 1명의 연금생활자를 부양하고 있다. 중공에서 정상적인 성인 3명이 60세 이상의 노인 1명을 맡게 되는 2025년에는 동부 아시아의 부양률이 2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화의 신비
노화는 유전과 환경, 시간에 결부된 생명의 진행 과정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많은 노인학자들은 노화를 질병의 하나로 본다. 그러나 루마니아 부쿠레시티의 국립 노인학, 노인병학 연구소에서 25년여에 걸쳐 행한 실험 요법 연구에 따르면, 화학 물질(특히 하이드로클로라이드 파라-아미노-벤조에이트 디에틸-아미노-에타놀)의 사용으로 노화 현상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세포를 배양함으로써 세포를 재생시킨다든지, 아니면 적어도 늙어감에 따라 세포가 변하거나 손상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다른 여러 나라의 연구에서도 확인된 이러한 발견은 루마니아 노인학파의 낙관론을 뒷받침해 주는 듯하다.
노인학에서 근본 과제의 하나는 나이에 따른 변화와 순전히 질병에 의한 변화를 구별하는 일이다. 실제로 늙어가면서 생기는 관절염이나 혈전증과 같은 여러 질병에는 이 두 변화가 함께 작용하기도 한다.
또 다른 어려움은 생물학적 나이를 결정할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다루었던 연구자들은 한결같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1952년부터 실시된 루마니아 국립 연구소의 1차 연구 계획에 나이의 기준이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만족스런 해답은 얻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전문가들은 생물학적 나이(반드시 실제의 나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를 규정할 때 모든 인체 기관의 생리 기능, 신진대사에 일어나는 변화를 참고하고 있다. 생물학적,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생물학적(또는 생리기능적) 나이를 진단할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같은 종 안에서도 개인에 따라 기능의 차이가 매우 큰데,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유전 뿐만 아니라 환경 또한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화는 출생과 동시에 시작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유년기로부터 성장이 멎는 순간까지는 생장 현상이 우세하며, 유기체의 기능은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늙어가면서 활동세포의 손실에 따라 차츰차츰 그 기능이 감퇴된다. 요컨대 적어도 기능 면에서 보면 노화는 성장이 멎는 때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이른바 "제 3연령"인 노년이 예순 살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객관성이 없는 생각이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노화의 과정이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데서 생긴다. 이 점에 관해 유전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어떤 이론은 노화가 유전자에 의해 예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오늘날 세계의 여러 노인학 연구소에 널리 지지받고 있는 또 하나의 이론은 면역학 분야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면역학자들은 사람이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적 면역 현상은 강화되고 우세해지는 반면에, 면역 현상에 관련된 체액과 세포의 저항력은 약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다른 이론은, 노화의 과정 가운데 유사분열 이후 생기는 세포(뉴런)의 점진적인 변질과 손실을 강조한다. 중추 신경 조직을 형태학적, 생화학적, 생리기능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이 노화 현상 연구에서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이로써 설명된다. 늙어감에 따라 약화되는 항상성과 적응성, 이 두 기능을 유지하는 데 중추 신경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조직에 손을 쓸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유사분열 세포의 생명 자체가 유한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세포의 기능은 무엇보다도 세포질 내의 리포퓨신의 축적에 의해 감퇴되며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노화의 몇몇 요인은 확인되었다. 세포막을 변화시키고 결체조직에 신축성을 주는 섬유 단백질, 곧 교원질의 분자들 사이에 교차결합을 증가시키는 자유기(보통 다른 원자들과 결합하여 존재하나 잠깐 동안 혼자서도 존재할 수 있는 원자들의 집합)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연구소들은 이런 생각들이 옳은 것인가를 검토한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이, 노화는 서로 관련된 여러 과정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다. 그 과정 가운데 어떤 것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현재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흠잡을 데 없이 건강한 사람은 매우 드물며, 적어도 현 단계에서 노인 문제는 특히 중요한 사회, 의학적 문제임을 거듭 지적해야겠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인 연구를 넘어서서 노화 방지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2000년까지는 모든 이가 건강하게"라는 세계보건기구의 구호가 뜻있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랑스런 노인세대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 노인문제 회의의 폐회일에 윌리엄 케리건 사무총장은 "세계 노인문제 회의에서 얻어진 중요한 성과의 하나는 이 사회의 노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뚜렷이 밝혀주었다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귀중한 또 하나의 성과는 모든 노인들이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에 개인적으로 공헌하는 바의 가치를 보다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노인들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의 새로운 중요성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 지난 백여 년 동안 노인의 사회적 중요성과 그 역할의 성격은 가리워져 있었다. 산업혁명은 노인이 천 년 동안 맡아왔던 슬기로운 조언자의 역할을 앗아갔다. 막연한 명예 시민으로 격하된 노인들의 지위는 21세기의 기술-자동차, 비행기, 신속한 통신, 스테레오와 비디오, 컴퓨터, 자료은행)의 물결이 밀어닥침으로써 더욱더 눈에 띄게 되었다.
노인의 사회적 지위가 재평가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미 1960년대에 세 방향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제 그 의미는 뚜렷이 밝혀졌다.
영향을 미친 세 요인 가운데 첫째는 오랫동안 미루어온 일로서, 인권에 대한 강조이다. 단순한 논리와 인간의 도리라는 문제가 합쳐져, 권리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사람들 속에 노인도 포함시키게 되었다.
두번째 요인은 은퇴한 유권자층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에서 새로운 퇴직 연금 제도들은 예상 수명의 해묵은 통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새로운 유권자층은 일찍 퇴직시키면 실업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에 의하여 빈번히 늘어났다. 이와 동시에 노동 시간의 단축, 위생학의 새로운 수준, 그리고 자연과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예상수명을 늘였을 뿐 아니라, 은퇴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새 세대가 아직도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신하게 했다.
세번째 요인은 노인에 대한 동정, 존경이나 사랑,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인 힘에 대한 조심스런 배려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늘어나는 노인 인구의 기여도를 무시할 만큼 오늘과 내일의 세계가 여유롭지는 않다는 사실이 차츰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에서 점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인은 과연 누구인가? 한 사람이 "늙었다"거나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은퇴는 오늘날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개인의 삶을 바꾸어 놓는가?
우선, 나중 질문을 생각해 보자. 노년기가 앞의 두 시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어릴 때나 젊을 때나 누릴 수 없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태어나기 전, 어린 시절, 그리고 훈련과 교육을 받는 청년기에는 선택의 자유란 아예 없든지, 있어도 극히 미미하거나 착각일 따름이다. 유전, 가족의 열성스런 지도, 사회와 학교 교육, 종교, 정치, 그리고 국가와 인류의 빈틈없는 보호, 이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예정된 운명이 어느 정도 현실로 나타난다.
삶의 두번째 시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인류가 존속하는 데 꼭 필요한 몇몇 활동에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할지라도 선택이란 다시 환상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만다. 삶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선택은 생계 유지의 필요에 의해 크게 영향받고 또 지배된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번째 시기에는 적어도 최저 생활은 보장할 만한 여유가 정부나 민간의 양로기금, 그리고 저축과 가족의 뒷받침에 의해 보장된다. 이는 다만 물질적 요구를 채우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은퇴한 이들이 택한 활동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때 비로소 개인은 생활과 상식에 의해 오랫동안 억눌려온 어떤 바램을 마음껏 추구해 보고 싶어진다. 그동안 꼭두새벽의 자명종, 지겨운 시간표에 불만이 쌓인 사람들은 우선 하루하루를 되는대로 보내는 편을 선택하지만, 곧 이 일을 포기하고 만다.
두번째로 택하는 일이 여행이다. 서구 어느 나라에서나 단체 관광여행자의 대부분은 노인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들어 기껏해야 열흘이나 보름을 넘지 못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때를 빼놓고는 노인이 손자, 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차츰 줄어드는 것 같다. 손자, 손녀가 멀리 떨어져 사는 조부모를 찾아뵙는 일이 중요하다는 플라톤의 가르침은 잊혀진 것이다.
많은 노인들은 집단 활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스스로 조직한 집단에 끼이거나, 넉넉지 못한 사람들 같으면 노인 복지 전문가들이 마련한 활동에 참여한다. 노인들의 진지한 학구적 노력은 지난 15년 동안에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들은 지방의 연구 모임뿐 아니라 대학 과정에도 차츰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인 프랑스 뚤루즈 대학의 노인을 위한 학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빠리의 소르본느 대학은 이른바 "모든 연령 계층을 위한" 강좌를 90여 년만에 부활시켰다. 미국의 주립대학과 그밖의 대학들도 은퇴 연령을 넘어서 이들을 위한 특별한 계획을 마련했다.
앞에서 말한 활동들, 곧 여가 선용, 여행, 모임, 그리고 지속적인 학문 연구 등은 모두 노인들의 인권에 대한 각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 노인은 직접 사회에 힘이 된다기보다는 사회의 양심을 지켜준다. 집단이 그 구성원 각자에게 과하는 의무에 대한 관념이 그들의 마음 속에는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의무들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한 개인과 그가 속해 있는 여러 집단(가정, 사회, 종교, 정치 집단, 국가, 세계, 인류 공동체) 사이에 상호 관계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소속된 여러 집단에 대해 노인이 지는 의무가 새로이 강조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 때문에 못내 마음내키지는 않더라도 일을 하여 충분히 돈을 번 다음 40세나 45세쯤에는 은퇴하여 오랫동안 꿈꾸어온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키지 않던 일에서 손을 떼려면 정상적인 퇴직 연령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사회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 마침내 문학과 음악, 그림, 천문학, 조류학, 식물학 또는 정열과 축척된 기술 및 지식, 인내와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전문 분야에서 공헌하도록 은퇴가 길을 열어 줄 때 이 결과는 더욱 뚜렷해진다. "좋은 작품은 중년에서 기대하고, 걸작품은 청년과 노인에게서 기대하라"는 격언은 재치있는 과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를 초월한 유명한 많은 이들에게 바친 미국 시인 롱펠로우의 다음 시는 과장이 아니다.
카토는 여든에 그리스어를 익혔고,
여든 넘어
소포클레스는 위대한 "외디푸스"를 썼고,
시모니데스는
다른 시인들이 여든 살을 헤아릴 때
그들을 누르고 시인의 월계관을 차지했네.
예순에
우드스톡의 쵸서는 나이팅게일을 벗삼아
"켄터베리 이야기"를 엮고
바이마르의 괴에테는
마지막 순간까지 땀흘려서
여든 고개 넘어
"파우스트"를 완성했네.
이제 다시 노인과 노화라는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보면 두 가지 점이 명백해진다. 첫째, 은퇴 시기를 맞은 이들의 건강은 젊었을 때 건강을 좌우하고 바로 그 요인에 의해 좌우되며 둘째, 몸의 노화와 마음과 머리의 노화는 각기 다른 속도로 다른 시기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통계학적 방법으로 노년을 규정하는 것이 보험이나 정부 기간의 계획에는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개개인의 경우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노년기에 통계상의 평균이나 청년기와 중년기의 기록에 나타난 심신의 상태와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어떤 심각한 생물학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단지 축구 스타나 바이올린 신동의 길을 망친 것과 같은 요인들(알콜, 마약, 게으름, 과식으로 인한 비만이나 화를 잘 내는 성질) 때문인 것이다.
심신의 능력을 유지하고 개선하려 할 때 부딪히는 육체의 노화 문제에 대해서는, 노인을 많이 접해본 사람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실제로 노화에 두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이 문제에 대해 학술적으로 연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은 확실해졌다. 캔저스 주 토페카에 있는 메닝거 재단의 칼 메닝거 박사의 연구와 캔저스 대학의 월터 크로케트 박사와 게리 샤피로 교수의 연구, 독일과 스위스의 신경학자 헤르베르트 하우크 교수, 볼프강 쉴로테 교수, 윌리엄 마이어루게 교수의 요구를 그 보기로 들 수 있다.
뤼벡의 의과대학 해부학 과장인 헤르베르트 하우크 교수는, 감각적 인상들을 의식적인 인식으로 바꾸는 뇌의 부분은 나이가 들어도 변화하지 않거나, 아니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변할 뿐이라고 밝혔다. 감각 정보가 의식적인 사고로 바뀌는 장소인 큰골은 나이가 들면 줄어들지만, 정수리 쪽이 아니라 이마 쪽이 수축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뇌의 어떤 부분은 전혀 노쇠하지 않는 한편, 다른 부분은 30세쯤 되면 확실히 노쇠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종전의 몇몇 가정들은 오늘날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기를 들면 뇌의 조직 가운데 나이에 따라 증가되는 리포퓨신은 현재 노화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노화를 막는 요인으로 생각된다. 튀빙엔의 볼프강 쉴로테 교수가 어린아이의 몸 세포에서 리포퓨신을 발견한 사실은 리포퓨신이 노화를 막는 기능을 하여 신진대사의 위험한 노폐물을 흡수하고 이로써 신경세포가 죽지 않게 해준다는 그의 주장을 증명한다.
바젤의 윌리엄 마이어루게 교수는 콜린 조직의 결핍에 관한 한, 유전이 노화의 원인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콜린 조직은 중심뇌로부터 자극을 전달해 주므로, 축척된 정보를 의식 속에 되살려내지 못하는 현상, 곧 노인들뿐 아니라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이 난감한 현상에 관련되어 있다. 마이어루게 교수에 따르면, 유전적 요소로 인해 콜린 조직에 차이가 생긴다 하더라도 이 조직의 실패에 대한 주요인은 오로지 신진대사의 불균형이라는 것이다.
노화 문제를 평가하는 데 실수와 의견의 차이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정서적 부담은 삶의 활기가 감퇴되어 죽음에 가까와지는 주요인이다. 그러나 과학적 자료가 충분치 못해서 생기는 잘못도 있지만, 그밖의 잘못은 편견 때문이다.
"전세계 인구는 점점 빨리 노화하고 있다"는 경고는 사실과 반대되는 말이다. 백년전의 20대 젊은이들은 30-40년 뒤에 자기들이 노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늘날에는 50-60년이 지나야 정말 늙었음을 인정한다. 노화는 점점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느려지고 있다.
일하지 못할 때를 예상하여 젊어 일할 때의 급료에서 퇴직연금을 공제하는 것이 요즘의 정책인 듯하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노인층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노동 인구는 줄어드는 곤란한 문제가 여기서 생겨났다. 이 문제는 의무적인 퇴직연금 정책의 바탕이 되는 이론을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강제로 임금과 봉급의 일부를 저축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람이 더 이상 일할 수 없어도 여전히 돈은 필요할 때가 오고, 둘째는 인간인 이상 급한 일이나 유혹에 상관없이 앞날을 위해 저축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자동적인 의무로서 투자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약속한 때가 되면 적절한 연금을 책임지고 지불할 것이다. 이론에 밝은 정부는 부를 늘리는 일에 이 기금을 투자하며, 거기서 얻어진 돈으로 약속된 연금을 지급한다. 그 결과 국가경제는 부강해지고 개인의 경제는 보호받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불입한 돈은 이론상 다른 이들이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의 앞날을 위한 연금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간 은퇴연금 문제, 그리고 한 국가의 생산 활동에서 의무적이거나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문제는 여러 나라의 엄청난 사회 변화를 감추어 왔다. 인생의 첫번째 시기와 연결된 구조적 활동의 그물은 인생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시기에 종사한 한 직업과 기관의 놀라운 새 구조와 급속히 균형을 이루게 된다.
최근 갑자기 노인문제 전문가의 숫자가 늘어났다. 프랑스에서는 노인들의 요구를 채워주기 위하여 정기간행 잡지가 발간되었다. 다양한 노인학이 생겼고 이제 노인학 연구가 없는 대학은 완전한 대학이라 할 수 없게 됐다. 서구 세계에서는 노인들만을 위해 세워지고 운영되는 거처가 적어도 천 개 이상 되며 애리조나 주의 선 시티에서는 일정한 나이를 넘어야만 시민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노인들을 위해 제공되는, 심지어는 강요되는 다양한 활동의 밑바탕에는 인간 사회의 기본 원칙이라는 결정 요인이 있다. 곧 의무는 각 개인과 그가 속해 있는 다양한 집단 사이에 상호적인 것이다.
보기를 들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족, 사회공동체, 국가, 민족 집단의 구성원일 뿐 아니라, 하나나 그 이상의 집단(종교, 정치, 직업, 사회, 향토 집단)의 구성원인 것이다. 각 집단이 노인 구성원과 이전의 구성원들에게 과하는 의무는 최근 50년 동안 신경과민이 될 정도의 과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노인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의무뿐 아니라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공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점점 증가하는 노인층이 그들을 키워낸 세계에 대하여 의무를 갖지 못하게 될 때 인간 사회의 구조는 치명타를 받게 될 것이다.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이 보이는 오늘날의 혼돈 속에서 점점 늘어가는 노인들이 식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즈음 스스로를 식객으로 여기는 노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건강하며, 훌륭한 판단력과 특별한 기술과 많은 경험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에는 손자, 손녀나 또는 이웃의 어린이들, 강아지, 고양이 또는 집을 돌볼 태세가 되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다.
많은 노인들이 복지사업, 젊은 사업가를 돕는 자문회의, 교육과 상담 등 여러 집단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 한때 무척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그림, 음악, 문예창작, 역사, 족보, 천문학 연구 또는 자연과학이나 그 밖에 개인적으로 야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참가하고 있다. 은퇴한 이들은 고고학 탐사, 버려진 마을이나 건물의 복구, 크고 작은 길을 계획하고 이룩하는 일 등 인생의 갖가지 경험을 통해 그 동안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 준 사회에 보답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택해서 하든지 아직 채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변화 때문에 사오십년전 보다는 훨씬 힘이 덜 든다. 인간 활동의 하부구조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로 인해 대부분의 업무를 일주일에 25-30 시간이면 해치울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을 창작이나 예술 활동에 쓸 수 있게 되었다. 녹음기, 마이크로필름, 비디오 테이프, 즉각 정정이 가능한 자료 은행, 인공위성 중계 등은 인간의 힘을 소모시키는 끝없는 비생산적 업무의 시간을 단축시켰다. 이는 정신과 영혼의 힘은 날카롭게 유지하고 있으나 육체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노인들에겐 아주 중대한 변화이다.
세계의 인류는 크게 세 무리로 나누어진다. 세계의 번영도 이 세 부류에 달려 있다. 첫째는 배우는 젊은 층이며 둘째는 과거의 유산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중년층이다. 그리고 세번째 무리는 먼저 배운 무리로서, 과거의 업적을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데 특별한 공헌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만 한다면 작은 집단들 뿐 아니라 그들을 키워낸 사회 전체에 대해 자유롭게 책임을 다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므로 수로 보나 힘으로 보나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크고도 놀라운 이 제3의 무리가 세계에 공헌할 길을 찾고 닦아주어야 할 것이다.
노인문제와 교육
오늘날 노인 인구는 그 구성이 인류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도 다양하다. 차이점들은 주로 경제 상황, 사회 및 가족의 배경, 건강 또는 개인의 이력, 옛날부터 지금까지 교육 및 문화와 맺어온 관계 등에서 비롯된다. 물론 형성기의 경험과 사회적 요인들이 제각기 다름으로써 생긴 기질만 보아도 어떤 노인은 활동적이고 또 어떤 노인은 허약하거나 의존형으로, 노인들마다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노인 문제에 관한 국제 정책은 물론 국가 정책도 매우 융통성있게 짜여지고 집행되어야 하며, 상황 및 관련 사회 집단과 개인의 고유한 특성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고 편안히 살면서 지식과 문화를 살찌울 기회가 얼마든지 보장되어야 할 노년이, 신체 쇠약보다 한층 더한 절망과 쓰디쓴 체험을 낳고 마는수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재정 형편이 악화되어 빈곤해지며 가정, 직장, 사회 접촉에서 소외되고 사회 안에서 스스로가 무엇이며 왜 사는지를 모르게 되는 데서 불행이 싹틀 수도 있는 것이다.
알맞은 교육, 문화 제도를 이용할 수 없고 청, 장년기 동안 그런 자원과 접촉할 수 없었던 곳에서는 노인들이 외롭고 허전하며 지루하도록 내팽개쳐지기 쉽다. 당국에서는 이렇게 위험스런 현실을 잘 인식하여 노인들에게 알맞는 정책을 하루빨리 수립하고 이를 집행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정책을 수립, 집행할 때는 노인들 스스로의 참여와 민간 부문의 협조를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성인 교육이 만병통치약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여러 차원에서 "행복한 노년기"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물론, 퇴직과 노년기로의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교육은 노화와 노인에 관련되는 모든 정책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교육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제도를 확립하는 데는 노인이 밀접하게 관련되어야 한다.
구비 전승이 우세한 나라에서는 노인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도덕적 권위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사회에 돌릴 수 있도록 당국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노인들이 말한 것을 기록하여 언론을 통해 전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특히 교육이 지식과 기술의 형식적 전달에 국한된 과정, 더군다나 어떤 특정층의 주민이나 연령층에 국한된 활동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교육은 인간의 기본권으로 생각되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책정할 때, 교육은 다른 지출 항목에 비해서 거의 특혜를 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으며 교육 부문 안에서도 성인, 특히 노인을 위한 교육이 빈약하다는 인상은 언제나 씻을 수 없다. 경제 위기 때문에 더욱 악화된 이런 사태는 직접 관련된 사회 부문이나 개인의 이익에 어긋날 뿐더러 국가의 진정한 이익과도 상반된다. 노인이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사회에 이바지하기에는 앞서 노인은 글을 알고, 수행할 과업에 알맞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수행하는 생산적이고 주도적인 기능에 덧붙여, 청년, 장년층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로써 노인 교육에 지출된 비용은 웬만큼 보상될 것이다. 더욱이 노년기에는 견디기 힘들 뿐 아니라 사회 안전 체제에, 다시 말해 국가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될 심신의 병약은 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퇴직에 적절히 대비함으로써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가 노인 정책을 수행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경비를 기꺼이 지출하고, 때때로 민간 부문에서 자발적인 도움을 받더라도 노인 교육에 들이는 돈을 유익한 투자로 여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인층이라고 하면 남녀가 함께 포함되기 마련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일반적으로 여성은 글과 교육의 혜택을 받기가 더 힘들고 생산, 용역, 가사의 모든 부분에서 종속적이고 고된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특히 불리한 처지에서 외롭게 늙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늙어가는 데 따른 여성 특유의 어려움들이 특별하고도 실제적인 방법으로 해결되도록 책임있는 사람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각별히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연구 가능한 주제 가운데 노인의 문맹퇴치 문제, 그리고 교육, 문화 자원에 우선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여가를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퇴직 상태에 적응하며 직업과 기술에 다시 적응하는 문제를 특히 관심있게 다룰 수 있다. 노인 전반에 관련시켜 이러한 연구를 한 결과로 생긴 혁신은 틀림없이 노인의 처지는 물론 사회 전체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다른 분야와 비교해 볼 때 노인하면 그저 외로운 모습만 떠올려, 고작해야 고독, 무지, 그리고 무관심이라는 점에만 국가가 신경을 써온 이 분야에서 여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서로에게 유익한 의사를 교환하게 된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노인 문제에 대한 국제 활동 계획에 있어서 교육이 결정적이라고 생각되므로,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근거로 어느 나이의 누구든지 교육과 문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교육을 이른바 "인도주의적" 과업 가운데 끼워넣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그와는 반대로, 교육은 특히 경제, 사회, 문화 발전이라는 면에서 노인의 풍부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영원한 회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노인이 실제 나이로 정해지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희어지거나 손자가 생기면 나이 많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존경의 뜻으로 이름에 경칭이 붙게 된다. 보통 그들은 "타타"(아버지), "음부타"(연장자), 또는 "은쿨룬투"(말 그대로 하면 늙은 머리라는 뜻)라 불리우게 된다. 아프리카 사회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구비 전승 사회에서도 노인들은 마을의 중심이 된다. 노인들이 없는 마을은 흰개미들이 갉아 먹은 오두막집에 비유되기까지 한다.
노인들이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비단 그들이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장수를 누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삶이 대를 거듭하면서 끊기지 않는 영원한 흐름이라는 아프리카의 정령숭배적 우주관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인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혈통에 올라있다. 즉 그는 자기와 뗄 수 없는 집단의 일부분으로, 조상과도 자손과도 단절될 수 없으며, 버림받거나 외로와지지 않게 전통적 가치가 그를 지켜준다.
생명력이라는 개념과 연결된 이러한 아프리카의 세계관에서 노년은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삶의 단계이다. 내세에까지 삶이 계속된다는 믿음, 그리고 조상 숭배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산 이와 죽은 이를 잇는 노인들에게는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영속성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그리고 다시 죽어서 태어남에 이르는 하나의 순환 운동으로 생각된다. 아이가 어린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고 노인은 조상이 되기 마련이듯이, 생령인 조상은 다시 태어나 우주 안에서 삶의 순환을 되풀이 한다. 암분족의 우주관으로는 죽은 뒤에 영들의 보이지 않는 삶, 곧 조상들의 삶이 시작된다. 조상들이 노인들에게 전하는 최상의 생명력은 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머무른다. 사람의 세 시기에는 각각 그에 해당하는 고유한 기능이 있다. 유년기는 주로 육체적인 수련기로서 이때 정신적인 성장이 준비된다. 성년기는 생산기로서 이때 사람은 심신의 균형을 이루게 된다. 세번째는 슬기와 교훈의 시기이다. 따라서 은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록 몸은 쇠약해질 망정 노인의 정신은 뒷걸음질치지 않는다." 반대로 이 시기에 정신의 생명은 더욱 강렬해진다. 노인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계속해서 맡게 된다. 곧 법률, 종교, 주술의학, 교육, 경제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통에 관한 노인들의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전통적 지식을 가진 그들은 성년식 때 새 세대에게 살아가는 지혜를 의례를 갖춰 말로 전해준다. 그래서 말리 사람인 아프리카의 현자 함파테 바가 표현한 대로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뜰 때마다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진다"는 말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한편 노인은 존경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만일 노인과 다른 가족들 사이가 좋지 않게 되면 노인이 지닌 마술적 힘이 이따금 자신에게 해롭게 작용하여 노인은 "은도키"(마술사, 악운을 뿌리는 자)로 여겨지기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마을에서 쫓아내기도 하지만 보통은 선물로 그를 달래서 그가 저주를 거두어들이고 젊은이들이 하는 일을 축복하도록 한다.
나이를 먹고 체력이 약해져서 노인이 남에게 기대게 되면 그를 보살피는 역할은 가족 가운데 가장 젊은 사람이 맡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누구든지 가족 사회에서 안전을 보장해 줄 자녀를 많이 두려고 한다. 물론 이런 체제는 사람들이 모두 전통적인 환경에서 한 마을에 살 때에만 효력을 가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해외로 떠나면서 노인들이 소외되고 고립되는 위험이 생겨났다. 전통 가치가 붕괴되고, 서구식 현대 교육이 도입되고, 도시 생활에 개인주의 가치관이 퍼짐으로써 아프리카의 몇몇 도시들에는 양로원이라는 망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화의 주체성을 확인하고 아프리카 전통의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젊은 세대들은 아프리카의 사회, 경제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 수입된 가치들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서는 현대 아프리카를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노인들이 정신 면에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잊어버리고 다만 신체적으로 비생산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은퇴를 강요하여 사회의 가장자리로 쫓아내려는 개인주의적 생각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정신은 쇠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구 세대의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서구의 과학 기술도 그것대로 받아들이는 한편 삶의 슬기와 식견을 지닌 노인들로부터 부지런히 배우도록 권장함이 옳을 것이다.
노인들이 학교를 방문하게 하는 것도 노인의 지혜로 돌아가는 한 방편이다. 노인들이 스스로의 경험, 그리고 그들만이 전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적 지식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젊은이의 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전통 자료 은행의 설립에도 공헌할 수 있다. 젊은이의 교육에 능동적으로 참여케 함으로써 노인들을 차츰 사회에 통합시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현대 아프리카 사회에서 노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해야 할 몫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다른 세대로부터 소외되지 않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노인들도 해야 할 말이 있을 터이니 전통사회에서 그들에게 존경을 바쳤던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일로 여겨져서는 안되겠다. 연령 질서와 조상 숭배에 바탕을 둔 체제는 서구의 가치와 아프리카의 가치가 공존하는 오늘날 아프리카의 상황에 알맞게 보전되어야만 하겠다.
노인문제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시각
1 . 노 인 들 을 바 라 보 는
젊 은 이 들 의 시 각 설 문 조 사
다음 글은 프랑스 유네스코 협회연맹에서 작성한 "노화와 노인문제"에 관한 설문의 결과와 빠리 미국인 학교 학생들이 미국, 방글라데시, 일본, 영국, 프랑스, 이란, 캐나다, 대한민국에서 노인들이 처한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이다. 대상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12세부터 18세까지의 세계 40여 나라 청소년들이었으며, 400여명이 응답을 보내왔다.
당 신 의 조 부 모 나 증 조 부 모 가 살 아 있 는 가 ?
친가와 외가의 조부모 네 명 가운데 한 명에서 네 명까지 살아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90%였고 네 경우의 비율은 비슷했다. 또 증조부모 가운데 1명이 살아 있는 경우는 25%, 2-3명이 살아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당 신 은 조 부 모 와 함 께 사 는 가 ?
아 니 면 자 주 만 나 는 가 ?
그 들 은 어 디 에 살 고 있 는 가 ?
10%는 함께 살고 있다. 한 응답자는 조부모와 3년간 살았던 적이 있고 "서로 많이 도와가면서 잘 지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10%는 해마다 한 달에서 몇 달씩을(주로 휴가 때) 함께 지낸다. 조부모가 농사를 짓는다는 한 응답자는 "조부모가 나의 근본을 일깨워주고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게 하며 그들의 생활방식이 내게 친근하기 때문에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40%는 가능한 한 자주 만나고 있다. 40%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 더러는 6-8년에 한번씩 만나고 있으며, 2명은 조부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심지어 이웃에 살면서도 지난 3년 동안 만난적이 없다는 응답도 있었다. 노인층의 대다수가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미국 등지에 살고 있으며, 나머지 극소수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란, 레바논, 이스라엘, 일본, 방글라데시, 페루, 알제리, 폴란드 등지에 살고 있다.
당 신 은 이 웃 에 사 는 노 인 들 을 알 고
있 는 가 ?
그 렇 다 면 그 들 과 는 어 떤 사葁이 인 가 ?
2명은 "노인"이라는 말이 그들을 마치 "동떨어진 집단"처럼 들리게 하므로 어감이 좋지 않다고 했다. 30%는 아는 노인이 전혀 없었고, 이들 가운데 더러는 자신들에 대한 노인들의 견해를 알고 싶어했다. 70%는 아는 노인이 있으며, 자주 만나든 아니든 대체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들과 토론도 하고 돕기도 하며 함께 시장을 보기도 한다." 또 "외로운 그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고 싶다"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조부모 대신 한 노부부를 양조부모로 모시고 있다"고도 했다. 한 소녀는 노인들과 "성숙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한편 어떤 소녀는 누구든 노인과는 다만 존경하는 사이이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시골에 서는 노인들이 그 지방의 모든 행사에 초대된다. 노인과 젊은이의 관계 가 도시보다 시골에서 더 좋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노인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젊은이들이 약간 있었고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당 신 의 주 변 에 노 인 들 만 사 는 집 이 나
양 로 원 안 에 들 어 가 본 일 이 있 는 가 ?
또 그 이 유 는 ?
25%가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친척을 방문하거나 학교나 소년단에서 주최한 활동에 참여한 경우였다. 60%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이는 대부분 기회가 없었던 탓으로 아는 노인이 없었거나 감히 들어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곳을 방문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그럴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 이들에게는 이 방문이 괴롭고 심지어는 "끔찍스럽게까지 여겨진다", 몇몇 사람들은 아예 "참견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15%는 이 질문에 관심이 없거나 응답이 없었다.
노 인 들 은 그 집 에 서 어 떤 생 활 을
하 고 있 다 고 생 각 하 는 가 ?
"모르겠다"는 응답이 5%였다. 10%는 집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사는 집"이 있는가 하면 "호텔같은" 양로원도 있다. 또한 노인의 경제 사정, 성격, 적응 능력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은 무엇보다도 찾아주는 가족이 있는지 또는 어쩔 수 없어 양로원에 들어왔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분위기가 매우 엄하고 딱딱한 양로원이 있는가 하면 자유스럽고 좀 더 명랑한 곳도 있다. 25%는 이 노인들이 보호와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안락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을 이미 급변하는 이 세상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기에" 지난 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평정과 평온함을 지니고 있다. 어떤 노인들은 더 이상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놀이나 야유회 등 갖가지 단체활동을 하고 있다. 서로 즐겁게 얘기할 때는 학교에 모인 애들처럼 행복해 보인다. 유능한 직원의 도움으로 그들은 잘 지내고 있으며 분위기가 좋을 뿐더러 TV도 볼 수 있다.
60%는 그 노인들이 다소간 또는 매우 불편하게 살고 있으며,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아 외롭고 슬픈(우울한)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쓸모없는 존재요, 국가의 번영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는 귀찮은 "폐기물"인 까닭에 사회로부터 버림받았으며, 양로원은 그러한 "무거운 짐"을 처리하는 좋은 방편이다. 그들은 좌절감과 지루함 속에서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그들은 인격과 위엄은 물론 지난 날에 대한 추억마저 잃어버렸다.
그들은 어린이처럼 이러한 "보호소"로 보내졌으며 더 이상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사는 게 아니라 사는 척하며 목숨만을 부지하고 있으며 감옥이나 병실에 감금되듯 "창고 속에 쳐넣어진" 상태이다. 그들은 바깥 세상을 잊은 채 "버려진 넝마조각"처럼 살고 있다. 그 곳에서 학대받는 노인들도 있다.세상과는 아무런 접촉도 없이 여생에 남은 것이라고는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습관과 고독 뿐이다. "드나드는 사람 모두가 늘 슬픈 표정이다." "끝없는 슬픔 속에 늙어간다 거기에는 가끔 입씨름이 있을 뿐 지루한 침묵만이 이어지고 느릿느릿 계단을 오르내리는 신빨 끄는 소리... 모든 것이 희미한 불빛 아래 졸고 있다." 죽기도 전에 미리 수의를 입혀 보는 곳. 이런 곳에 노인들을 가둔다면 노쇠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노인이 젊은이나 활기와는 단절된 채 같은 노인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좋지 않다. "그들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그 책임은 가족들에게 있다." "늙기가 무섭게 무슨 단체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다니 불쾌하다. 또 옳지도 않은 일 같다."
모 든 사 회 의 노 인 들 이 유 럽 에 서 와 같 은 운 명 을
겪 고 있 다 고 생 각 하 는 가 ?
그 런 보 기 를 알 고 있 는 가 ?
5%는 세계 어느 곳의 노인도 그 처지가 유럽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사회보다는 당사자들의 빈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서글픈 말년을 보낸다는 점은 공통된다는 생각이다. 10%가 "널리 여행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경우를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답한다. 어쨌든 이들은 사람이 자신의 태도, 관습, 종교, 정치제도, 이념 등에 따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늙어간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든 가족과 함께 산다면 노인은 행복하다. 그들은 "노인들이 유럽에서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기를 희망하나, 실제는 그만 못하다"고 덧붙인다.
85%가 노인들의 운명은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가 유럽 노인들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랍 국가 노인들의 처지를 전통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들이 노인을 죽일 때까지(모든 정신 기능을 잃었을지라도) 계속 부양한다는 사실이다. 노인은 낳아주신 분으로 공경받고 앎과 슬기를 대표하며 때로 "신처럼" 떠받들어지기도 한다. 또 모범이 되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상담자가 되어 준다. 노인은 젊은이를 가르친다. 사람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듣고 어려워하며 이를 거역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노인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이끌며 단결시킨다. "사실 정중히 대접받기 위해서는 나이가 지긋해져야 한다." "노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들의 말은 황금과 같다."
유럽에서는 국가에서 더 많은 지원과 보건 혜택, 복지 시설을 마련하고 있지만 가족들이 노인을 보살피지 않기에 노인의 심리적 고통은 더 크다. "아기를 돌볼 수도 없게 되면 양로원에 보내지며 다른 세대들에게 외면당하고 전통사회에 비해 존경도 받지 못한다. 그들의 처지는 전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스위스의 한 은행가는 만년에 요트를 타고 즐긴다지만 농부는 뜰이나 가꾸면서 살 것이다."
또 다른 응답자는 아랍과 라틴 아메리카 몇몇 나라의 노인들이 유럽에서보다 더 처지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중노동을 하거나 냉대를 받기도 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버림받은 채 문둥병에 시달리거나 다리를 절며 거리에 버려져서 죽어 간다. 이들에게는 양로원도, 사회복지 시설도 없다. 이런 나라에서는 어린이를 굶기지 않는 일이 더 시급하다. 가족이 없는 노인들은 아주 비참하다. 어떤 부족들은 노인을 보살펴줘야만 할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노인들은 쓰러지는 날까지 활기차고 쓸모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에서는 노인들이 존경받고 있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부양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이다(일본, 소련, 이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이스라엘의 노인들은 죽는 날까지 삶에서 자기가 할 몫을 완전히 해낸다. 러시아의 노인들은 외롭게 지낸다. 일본의 노인들은 열심히 운동하기 때문에 빨리 늙지 않는다. 중국의 남자는 요즘도 아내보다 어머니를 소중히 여긴다.
미국의 노인들은 "젊은이 예찬"에 밀려 고통을 당하지만 젊을 때부터 은퇴에 대비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차별을 덜 받는다. 에스키모 노인들은 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마을을 떠나 눈 속에서 죽어간다. 많은 젊은이들은 "나라가 발전할수록 노인을 저버리는 현상이 늘어간다"는 결론을 얻었다.
사 람 이 몇 살 부 터 늙 는 다 고 생 각 하 는 가 ?
45%가 50-80세 사이의 특정한 연령이나 연령범위를 들었고, 이 가운데 대부분이 60-70세 사이를 들었으며 더러는 20, 35, 42, 45세라고 답했다. "몇 살이라고 단언하고 싶지는 않지만 80세를 넘고부터는 20대와 같을 수는 없다고 본다"라든가 "40세면 늙게 된다. 이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라는 응답도 있었다. 55%는 늙는 것이 근본적으로 "정신이 젊은가"에 달렸다는 점에서 나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었다. 50세에 퇴물이 될 수도 있고 나이 70에 당당할 수도 있다. 80세라 할지라도 혈기왕성할 수도 있는 일이다. 스스로 늙었다고 느낄 때, 더이상 인생에 애착이 없을 때, 소외감을 느낄 때, 남들이 늙었다고 할 때, 스스로 늙기를 바랄 때, 젊은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홀로 남을 때,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성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때,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을 때, 이 모든 경우에 늙게 되는 것이다. 이미 태어난 날부터 늙기 시작했으며 무덤에 묻히는 날에는 이미 늙어 있다. 그러나 스스로 젊다고만 느낀다면 결코 늙은 것이 아니다.
언 젠 가 는 당 신 도 노 인 축 에 끼 리 라 고
생 각 하 는 가 ?
10%가 "모르겠다", "생각지도 않는다"든가 "때가 되면 생각하리라"는 대답이었다. 25%는 "생각할 수도 없다"거나 "생각되지도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젊다는 것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난 늙더라도 다른 노인들 같지는 않을 테니까", "이 사회에서는 워낙 먹고 살기에 바쁘니까..." 65%는 늙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답했다. "늙는다는 건 자연의 섭리로서 불가피하므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에 겁을 먹고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시달리기도 한다.
늙 기 를 바 라 는 가 ?
그 렇 다 면 그 이 유 는 ?
10%가 "늙어도 개의치 않거나 상관없다"고 말했다. 30%는 "바란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오래도록 살아서 인생과 가족으로부터 큰 보람을 얻고, 손자도 보며, 자기의 조부모처럼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처럼 나도 내 짐에서 자식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게 되겠지." 이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거나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해보면서 젊었을 때의 추억을 쉬엄쉬엄 회상할 시간과 자기들의 경험과 지혜를 물려주거나 어쩌면 이제껏 숨겨왔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그런 시간을 갖고 싶어한다.
"거리를 두고 세상을 되돌아 본다면 참으로 멋질 거예요!"라고 대답한 젊은이들은 노년을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생각한다. 색다른 삶은 여가를 즐기거나 여행과 다른 여러 활동을 통해 보람차고 즐거울 수 있다. 이들은 활기에 넘치고 마음만은 젊기 때문에 젊은이들과 계속 사귈 것이며, 자기들의 경험으로 젊은이들을 도우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삶의 밝은 면을 바라볼 것이며 자신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기 때문에 지루해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나이를 인정한다면 만사가 잘 풀릴 것이다" 하고 대답하는 이들은 "늙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이에 따른 즐거움이 있기 마련이며 영원히 젊다면 지루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들 중 몇몇은 "건강하지만 젊은 기분으로 젊은이와 더불어 산다면, 빈곤하지 않다면, 집안에 갇혀 있지 않다면, 열중할 일이 있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또한 늙어가는데"등의 단서를 붙였다.
"주름살이 늘어간다고 몹시 초조하진 않아요. 하지만 남들이 늙은이라 부르는 건 딱 질색이지요." "겨우 12세인데 당장 노인이되는 건 싫어요. 하지만 노인이 될 때까지는 살고 싶어요." 어떤 경우건 그들은 아주 늙지만 않는다면 늙는 편을 바라고 있다. 한 응답자는 은퇴하면 노인의 모임보다는 젊은이의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60%가 늙기를 바라지 않는다. "더 이상 독립할 수 없기에", 그리고 "남들을 성가시게 하고, 가족들에게 짐이 되며, 노쇠하여 아프기 일쑤고, 무능해지며, 더 이상 자기 의사를 표시할 수 없게 되고, 괴롭고, 슬프고, 더 이상 즐길 수도 돌아다닐 수도 없으며, 아무 할 일도 아무도 찾아주는 이도 없이 홀로 집안에 처박혀서 온 종일 사면의 벽과 창 안에 갇힌 채로, 젊은이들로부터 버려지고 모든 이에게 무시당한 채 세상과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몹시 비참해지거나 죽음이 닥쳐올까봐 두려워한다. "세상을 떠날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몇몇은 이 질문에 화를 내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늙기를 바란단 말인가? 나는 젊고 싶다. 더 좋고 더 신나니까! 늙느니 차라리 죽지! 내 자리를 남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다. 늙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다."
"늙는다는 게 끔찍해서 아예 생각도 안한다. 늙으면 보기 싫고, 외롭고, 과부가 될 것이며, 아플 것이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지난 날을 되새기며 울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운동을 즐길 수도 없으며, 끝없는 고통에 시달릴 것이요, 아무런 할 일 없이 홀로 앉아 세월을 보낼 것이다."
노 년 의 상 태 를 어 떻 게 규 정 하 는 가 ?
육체적 노쇠라는 답이 가장 자주 언급되었고, 그 밖에 자신감의 상실, 의존, 질병, 무력, 고통과 괴로움 등으로 규정되었다.
고독과 외부 세계로부터의 소외 -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더 이상 흥미가 없을 때, 현대 생활에 더 이상 적응할 수 없을 때, 더 이상 의사소통을 하지 못할 때, 더 이상 젊은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자신이 "무시된다"고 느낄 때, 바로 자신의 가족이 자기를 "가구"로 취 급할 때,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낄 때.
기억력이나 창의력 등 지적 능력의 감퇴 - 노년이란 창의력의 고갈 상 태, 그 어떤 일도 혼자서 해낼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일할 수 없게 되는 것, 곧 은퇴 -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더 이상 살아 있을 아무런 이유도 없으며, 고통 속에 근근히 살아가느니 당장 죽는 편이 낫다.
노년이란 또한 권태나 삶의 단조로움, 근심조차 없음을 뜻하며, 슬픔, 취미나 즐거움의 상실, 우울, 차츰 차츰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림, 죽음 에의 공포 등으로 표현된다.
노년이 외로움과 쓸모없음, 남의 짐이 됨을 뜻한다는 사실은 사회가 노 인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년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년은 지혜다.
노년은 소년기, 청년기나 장년기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거치는 한 단 계에 불과하다.
노년이라는 게 따로 없다. 단지 삶이 있을 뿐, 그것은 온 하루가 지나 감과 같다.
2. 젊 은 이 와 노 인 사 이 의 접 촉 방 식 에 있 어 서 의
장 애
1) 심리적 장애
다른 세대의 사람이 "당신은 늙은이"라고 따돌린다.
"나는 늙은이"라는 생각으로 노인들이 스스로 남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서 남들이 자기를 따돌린다고 느낀다.
2) 사회적 장애
개인주의와 젊음은 무조건 최고라는 태도가 요즘 지배적이다.
소비사회에서는 생산적이면 쓸모있고, 비생산적이면 쓸모없다고 여긴다.
도시에서는 주거 환경과 이웃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넓은 주택들 때문 에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며 노인이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어려워진다.
서로 만날 장소도 없다. 가족이라는 단위는 해체되어 버렸다. 노인들은 외출하거나 젊은이를 집에 들여놓기를 꺼린다(강도나 불량배들에게 당 할지 모르는 위험 때문에).
3) 감정적 장애
사람들은 세대차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세대차를 세대 간의 거리 낌, 동정받지나 않을까 하는 몇몇 노인들의 거림낌이나 때로는 서로 간 의 무관심, 곧 이해 부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관심 부족의 문제라고 믿는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청년기에 이르면 서로의 접촉이 끝난다고 말한다.
3 . 노 인 들 을 사 회 에 다 시 적 응 시 키 는
해 결 책
1) 필요한 것은 너나할 것 없이 노인문제와 그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미소를 짓는다든가 짐을 들어주는 등 일상적인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들은 또한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노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부모의 태도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2)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개인적으로나 선전, 언론, 조직적인 모임을 통해서) 그들의 경험과 지식, 지혜와 애정이 모든 이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노인들이 알게 해야 하며, 노인의 사회 참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이에게 이해시키도록 해야만 한다.
3) 우리는 젊은이와 노인들이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마련해야만 한다. 프랑스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과 노인들의 야유회를 마련하여 크게 성공했다. 몇몇 중학생은 한 노부인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대신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학생들이 노인을 모시고 나가 신문을 읽어준다. 프랑스의 몇몇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지도 아래 구식으로 풍차를 복원하였다. 또 노인회가 구성되어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동네마다의 내력을 들려주며, 젊은이를 위한 시청각자료를 보여주고, 젊은이들과 함께 미술 활동도 마련해 왔다. 그 결과 노인들은 젊은이들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이 변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4) 학교나 공회당, 도서관이나 직업상의 모임 등에서 노인회에 관해 알릴 수 있도록 선전문을 게시한다. 또 노인대학은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며 더 없이 좋은 집회 장소를 마련해준다는 사실을 좀더 널리 알리도록 한다.
5) 직업, 문화, 예술, 체육(요가, 체조) 모임이나 인도적 성격을 띤 여러 단체를 통해서, 또한 여행사를 통해 모임을 마련한다. 노인들은 영화 상영이나 노래 부르기, 무도회, 시 낭송이나 연극 공연, 함께 그림 그리기나 연주회 등과 같은 사회적 행사를 통해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싶어한다. 또 그들은 "젊은이들과 더불어 즐기고 싶다"고 말한다.
6) 환경이나 향토 문제에 관한 조사나 향토 역사의 연구를 통해서 또는 특정 지역의 민담, 전설 따위를 수집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 지방, 우리 고장의 삶에 함께 참여하도록 한다. 노인들은 이러한 일들로 우리의 책임감이 좀더 높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