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성장신학> 교회의 가정사역

자료원 : 교회성장연구소

발행일 : 94년 07월 01일

가정의 중요성

가정은 하나님의 첫번째 제도이다. 시간적으로 첫번째이고 또한 중요성에

있어서도 첫번째이다. 가정은 학교보다 더 중요한 교육제도이며, 법과 질서

의 견지에서 볼 때 국가보다 더 중요한 기관이며, 교회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종교기관이다.매스턴 (T.B.Maston)은 "가정의 건강과 병듦보다 한

문화의 상태를 더 확실하게 나타내주는 바로 미터(barometer)는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가정의 상태에 따라 다른 모든 것들, 학교,교회, 사회, 문

화까지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대 가정의 위기

그러나 현대의 가정은 심각한 상태에 있다. 교회는 현대의 가정의 위기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에 들어와서 이기주의 내지 개인주의 사상

만연, 문명의 발달에 따른 기계화, 마약, 범죄,도시화, 빈곤 등으로 가정이

분리, 파괴되는 탈가족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집은 있는데 가정

은 없다. 통계청이 세계 가정의 날(5월 15일)을 맞아 지난 20년동안 4.8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2년에는 1만 2천쌍이 이혼했으나 92년에는

5만 7천쌍이 이혼의 길을 택했다. 혼인 7쌍마다 1쌍꼴로 이혼한 셈이다. 미

국에서도 1,300 가정을 조사한 결과 일년간 어린이 학대 건수가 2백만 내지

3백만 건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정과 교회의 관계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신적 기관이다. 신앙교육을 위한 가정

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만이 교회의 유일한 소망이다. 가정은 교회를 필요로

하며 교회는 가정을 필요로 한다. 론 로주(Ron Rose) 는 "가정이 되어가는

대로 교회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오늘날 가정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교회

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의 사회는 핵가족화로 가족 해체와 개

인주의화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가정 회복 사

역을 일으켜야 한다. 교회가 가정을 풍요롭게 하는 가정 목회를 하고 풍요

로와진 가정이 모여 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상호연합관계가 이루어져야 한

다.

교회의 본질과 가정사역

가정사역은 단순히 교회의 한 사역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본질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가정이 새롭게 되려면 교회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 가정이

성장하려면 교회가 그의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

인 친교의 공동체이다. 그것은 단순히 성도의 교제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

흘러나오는 성도의 교제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 흘러 나오는 생명으로 서로

묶인 유기적인 공동체이다.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코이노니아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다양한 가정의 멤버들이 모인 하나의 큰 가정이라고 볼 수 있

다. 그래서 가정을 교회처럼, 교회를 가정처럼 만들어야 한다. 가정 사역의

대상으로 세대별(연령별), 계층별 상황별로 나누어 어린이,청소년,노인,독

신자,이혼녀,미망인,결손가정,청년,남편,아내,부모,자녀 등이 될 수 있다.

가정사역의 실제적 적용

가정 사역의 목적은 가정으로 하여금 예배,신앙교육,복음의 증거,봉사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무장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정이 목회를 돕고 교회


성장을 위해 헌신하도록 한다. 교회는 가정 사역을 하기에 앞서 무엇을 준

비해야 하는가? 먼저 목회자의 가정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 사단의 최우

선 공격자는 목회자의 가정이며 무엇보다 목회자보다 목회자의 사모나 자녀

에게 집준된다. 둘째, 교회에서 요구하는 헌신을 먼저 가정에서 헌신토록

하라. 가정에서의 참된 예배와 경건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교회에서 가

정 사역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저야 한다.

1. 가정 사역의 목표를 공식화 하라

교인들에게 가정의 중요성을 교육시키고 가정 사역의 목표를 알려 주어 동

기를 불어 주어야 한다.

2. 전담부서를 만들라.

교회 내에 가정 사역을 위한 점담 부서나 연구소를 만들고 자료를 수집 조

사하라. 자료의 수집과 연구조사를 통해 가정의 필요를 분선한다. 무엇보다

교인들의 가정의 상태를 진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3. 가정목회의 대상을 명확하고 다양하게 규정하라

교회내에 전문 사역자(교역자 및 평신도)를 양성, 교육시키고 세대별 계층

별 분야별 등 가정사역 계획분야를 설정한다. 예를 들어 약혼자들과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목회,독신,노년층,파경의 위기에 놓인 가정 등을

위한 목회를 준비하는 것이다.

4. 가정목회 프로그램을 개발하라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전문적이어야 한다. 교회 중심의 프로그램에서 가정

중심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가정 프로그램을 잘 하는 교회가 성장한

다. 한국교회 90% 이상의 프로그램이 교회 위주이다. 가정사역을 위한 프로

그램의 실례로 자체적인 가정모고히 세미나 가족초청 부흥회, 상담소 운영,

야영 캠핑기도회,부부학교나 노인학교 운영, 소그룹(좋은 아빠모임, 취미

별, 기능별)가족 찬양대회 등을 들 수 있다.

5.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확대되도록 하라.

가정 목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가정을 세움으로써 교회가 성장하고 하나님

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교회의 가정 사역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에 봉

사하고 복음화 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제 2 부 성경은 우리 자신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8 성경과 상처입은 에고

성경은 적합한 해석과 적용이 없이는 일상적인 문제와 실패와 괴로움을 치료해

주는 신비로운 만병통치약이 되지 못한다. 성경은 비록 오류가 없지만, 그 목적상

다루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특정한 요구에 맞도록 성경을 사용하는 통찰력이 필요

하다.

우울증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그들의 무가치함을 논증하는 성경구절을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한 구원은 죄에 대한 생각

등을 자동적으로 없애주지는 않으며, 그에 대한 사람의 감정등은 정당한 것이다.

만일 편집형의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해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깨달을 수 있다면, 그의 불안은 완화돌 수 있을 것이며 이 새로운 관계

는 점차 발전하여 사람들과 보다 신뢰감 있는 교제로까지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신경분열증 소유자도 움츠러드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사랑과 용납을 그의 인

생 경험에서 맛볼 필요가 있다.

사회병질적인 사람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영적 가치 체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어야 한다.

불안에 시달리는 히스테리 성격에서, 왜 그 사람이 그처럼 불안한가를 찾아내

어야 한다. 그 후 문제가 어떠한 것인가를 정확히 분별한 다음에 적합한 성경말씀

을 직접 그것에 적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9 성경은 자아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는

가?

성경의 말씀에는 우리의 에고가 부정되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의 기본이 될 만한

것이 들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강한 에고를 갖지 않고서는 인생의 문제들을 직시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의 아들을 따르고 우리 믿음

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십자가를 짐은 좀 더 넓은 삶을 발견하기 위하여 자신을 잃음을 말한다. 우리는

나 자신을 잃는 가운데 자신의 사역에 몰두하여야 하며, 보다 높은 선과 목적을

위하여서는 자신을 부인하고 잃을 필요가 있다. 인간의 에고는 결코 이 일을 하지

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자신과 행복을 찾을

것이다.

딤후 3:2에서와 같은 말세의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다는 개념은 남을 조금도

생각지 않는 자기만을 위하는 사랑을 말한다.

성경은 사실상 자애(자애)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자애에 대한 거넌한

관념과 실제적인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랑이 하나님께나 자기 동료, 이웃 그리고 대

적 -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하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능력에 있어서 제한받

게 된다. 사도 바울은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의 일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우

리의 달란트와 업적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일치한다.

연약한 에고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승리의 생활과 제자로서의 삶을 누리기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것이다. 훌륭한 에고는 우리가

하나님과 훌륭한 관계를 갖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10 자존심을 직시하자

긍지를 지니는 것이 언제나 악하거나 나쁘지는 않다. 본질적인 특성에 근거한

건전한 긍지나 자존심이 있는 것이다. 그릇된 자존심은 참된 자아를 직시하고 사

람들을 동등하게 보는 것을 막는 데에 사용하는 방어이며, 신경증적인 상태로서

진리의 왜곡상태이다. 신경증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참된 자아를 보기를 외

면하며, 그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을 추구한다.

신경증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그릇된 감정으로써 자신을 합리화시켜 나간다. 이

때 프라이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건전한 자존심이며, 다른 하나는

환상적인 그릇된 삶의 공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진실을 다루기를 원하

신다. 신경증적인 프라이드를 지닌 사람은 우리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11 균형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은 신앙 체험 가운데 성숙해갈수록 그의 과거 경험 때문에 현실에 대

한 지각력이 더욱 커진다. 기독교는 "순간적인" 행복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의 행복과 기쁨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공급된다.

올바른 적응을 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 인격의 에고가 강하며 적응할 능

력이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과 외적인 현실, 영적 가치 그리

고 하나님에 대하여 합당한 견해를 지닌다.

12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징

성경은 인생의 가장 훌륭한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잘 적응하는 사람은 균형있

는 삶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모형임을 명백하게 해주고 있다.

*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징

1) 성경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첫번째 표징이 사랑임을 말해준다. 이것은 또한

영적 의미에서도 참되다.

2) "성령의 열매"의 두번째 표징은 기쁨(joy)이다.

3)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세번째 표징은 화평(peace)이다.

4)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네번째 표징은 오래 참음(longsuffering)이다. 오래 참

음은 인내와 끈기를 내포하며 에고로 인한 하나의 큰 미덕이다.

5) 성숙의 다섯번째 표징은 자비(gentleness)이다. 자비는 나약한 인격이 아닌

강하면서도 따스하고 사랑에 넘치는 인격을 가리킨다.

6) 성숙의 여섯번째 표징은 양선(goodness)이다. 성경에서 자비와 양선은 때로

같은 것으로 보이나 양선은 적극적인 자선 행위나 타인을 위한 일이라는 면에

서 인간적인 친절과 더욱 동등시되어야 한다.

7)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지닌 사람의 일곱번째 표징은 충성(faith)이다.

8)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여덟번째 표징은 온유(meekness)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

은 온건하다.

9) "성령의 열매"의 마지막 표징은 절제(temperance) 또는 자기 통제이다. 절제

하는 사람의 에고는 그의 행동을 완전히 책임진다.

정서적 성숙이나 영적 성숙이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서도 완전하게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

도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진실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길을 걸어나감에 따라 성

숙하게된다. 영적 성장은 이생 저편까지 확장되나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삶은 여기

에서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 관계는 시간과 영원을 넘어

지속되는 안정된 사랑의 목표를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며, 예수께서는 그것을 영생

(everlasting)이라고 부르신다.

제 3 부 심리학과 성경을 조화시켜 우리 자신을 살펴봄

13 심리 치료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심리 치료는 전체적인 그리스도인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

도 증강시켜준다.정서적 문제가 모두 영적 문제는 아니며, 심리 치료는 성경적 개

념이다.

첫째, 성경 자체는 그러한 분야의 존재와 필요를 인정하고 있다.

둘째로, 성경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여러 영적 선물들을 주셨는데,

이중 하나는 병 고치는 은사이다.

셋째, 그것이 사실상 상호적인 의사 소통 방법을 마련해 주는 반면 설교나 성경

은 일반적으로 일방적인 의사 소통 방법이다.

성경은 죄악의 병에 대한 교과서이다. 반면 정서적인 병은 인간 관계와 관련되

어 있는 왜곡 상태, 상처, 좌절 등을 다루고 있다. 더우기 성경의 진리는 합리적

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과 교통한 것

은 아니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나, 이 진리 가운데 많은 것들은 성경에 있는

진리의 범위 바깥에 있다.

심리 치료가 정당한 권리를 갖는 또 하나의 주된 이유는 그것이 다른 지식 수준

이 공급하지 못하는 어떤 특정한 요구를 채워준다는 것이다. 모든 병에는 그에 합

당한 처방이 있으며, 심리 치료는 다른 방법으로 채워질 수 없는 어떠한 요구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심리 치료는 죄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들을 제공해준다. 또한 심

리 치료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람의 다른 큰 필요들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뿐

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증거하는 수단으로도 매우 중

요하다.

14 귀신들림인가, 아니면 정신질환인가?

귀신에 대한 기상천외한 생각들이 횡행하고 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증거를 조사해 볼 것이다. 물론 마귀들은 항상 사람들을 괴롭혀 왔으며, 또한 사

단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또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최종적으로 멸망당할 때까

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 잡아두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마귀가 비록

실재한다고 하여 환각과 귀신들림을 동일시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단일화이다.

마귀들린 것과 환각(정신병)의 차이

1) 첫째, 마귀들림과 정신병자의 두 가지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공통적으로

괴상한 행동을 나타낸다. 그러나 마귀들은 분리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과 연합하기를 원하는 반면에 정신병자는 그것과 상반되는 것을 원한다.

2) 또한 마귀들은 합리적이나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말과 논리는 매우 일관성이

없다.

3) 다음으로 그리스도와 마귀를 묘사하고 있는 복음서의 해설은 마귀가 현실에

관여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귀신들림은 오늘날에도 존재하며, 그것은 영적인 면으로써 치유될 수가 있다.

그러나 정신이상자의 치료는 엄밀히 말해서 대인관계의 개선에 의해서 이루어진

다.

15 죄는 과연 정서상의 문제들을 유발하

는가?

모든 질병은 악에 뿌리를 박고 있으나, 죄의 결과들을 다루는 데에는 한 가지

이상의 방법이 있다. 정서적인 병의 원인 및 치료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원죄의

보편적인 영향으로 사람들은 두려움과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세상은 불완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 죄는 인간의 정서적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으나 그 사

람의 특정한 죄가 그의 모든 정서적인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죄의 개념은 과녁을 빗나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죄의

존재와 영향을 인식하고 있다. 연약한 에고를 지닌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든데, 신학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과 신학은

동전의 앞| 뒷면처럼 이런 견해에 대하여 궁극적으로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정서적 및 영적 성숙 역시 이러한 관계에 있다.

16 심리학적 성장과 기독교 신앙

성경은 성장을 장려하나 성장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즉 영적 성숙이 오직 성

경을 읽고 기도하고 교회에 출석하며 금하여진 행위들의 목록을 삼가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이 성장과 안정을 누리기를 원하신

다.

성장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여러 유형을 보면,

첫째, 수동적-비독립적 그리스도인

둘째, "만물박사"형의 그리스도인

셋째, "뽐내는"형의 그리스도인

이 모든 속성들은 미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17 그리스도인이 심리학적 도움을 구해도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행하실 때에 반드시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앞에서와 같

이 심리학과 그 치료에 정당한 권리가 있다면 훈련받은 카운셀러들은 필요한 변화

를 제공함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연결대의 역할을 한다.

이 때 전문적인 상담은 주체성을 명백히 해 주며, 현실을 보는 눈을 수정하여

준다. 이러한 개인상담의 필요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나, 비록 주님만을 의지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18 그리스도와 상처입은 사람들

우리는 상담 과정의 한 모형을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얻을 수 있는 데, 그리스도

께서는 상처입은 영혼들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셨다. 그 분은 그들의 문제의 근원

(source)을 다루셨으며, 결코 그 증상(symptoms)을 다루는 데 관심을 기울이시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방도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을 도와주는 일임을 보여주신다. 이에 우리

는 진정한 용서를 베품으로써 그 분의 뜻을 행하고 신체적, 정서적 그리고 영적인

면들에서 바르고 적절한 자리에 조화를 이루어 온전한 사람(전인)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감상

"성경과 심리학의 조화" 얼핏 듣기에는 내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심리학적인 해

석과 치료를 터부시하는 교회의 전통에 대하여 단순이 심리학을 변호하는, 즉 변

명하는 글로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제 1 부에서 여러 심리학적인 이론들과 실례

들을 나열해 놓은 것들을 읽을 때만 해도 이러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제 2 부-성경이 우리에 대하여 가르치는 바를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제 1 부에서 단순하게 에고에 대

한 성경의 견해만을 읽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경은 과연 우리의 자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

한 하나의 지침이었다.

학교에 들어오면서 부터 상담이라는 것은 나의 장차 사역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

는 믿음과는 대조적으로 그러한 것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각은 나를 무척 괴

롭혔었다. 한 마디로 그러한 말을 하는 자들의 논리는 상담 등은 자기 교만이며,

쓸데 없는 잘난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인간의 온전한 자아형성에 대

하여 과연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또 진정 성경적인 진리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 책의 시각은 그들의 시각에 대한 신선한 반론이었으며, 나의 생각의 하나의 빛

이었다. 또한 영적으로 고뇌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가고 있는 자들에 대

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

한 많은 실례들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요즈음 내 주변에서 고뇌하던

한 사람에게(이 책의 예와 비슷한 경우를 격고 있는) 이 책의 가르침을 적용한 결

과 너무나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무척 마음이 기뻤다. 적절한 때에 이러한 책을

읽게 해 주신 하나님과 또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영적 침체의 극복

들어가면서

교사는 경건이 있어야 한다. 경건은 곧 영성과 관계가 된다. 경건이란 무엇인가? 경건이란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건의 모양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모양을 무시하노라면 무질서에 빠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경건의 능력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이 사라진 느후스단을 붙들고 그것에 복을 구했다. 능력이 사라진 모양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이것은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찌라도 우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법궤는 어떠한가? 이스라엘은 그것을 들고만 나가면 전쟁에서 승리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법궤를 빼앗겼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지 않는 법궤를 계속 하나님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본래적 의미를 벗어난 빈껍데기를 섬기는 것은 그것이 비록 법궤라 할찌라도 우상단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겉 껍데기 보다는 내실이다.

우리는 교사로 봉사한다. 교사의 사명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의 영혼을 실족시키면 차라리 연자 맷돌에 목을 달아 물 속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고해 볼 때 교사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모범을 보이지는 않으면서 자기 자식들에게 하라고만 하면 자식들은 왜 당신은 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만 하라고 하느냐고 반문한다.

교사로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 삶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삶으로 행해진 교훈만이 감화력을 주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경건을 회복해야 하며, 경건을 회복해야만 영성이 유지될 수가 있으며, 영성을 회복해야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데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영성이 회복된 교사가 되어야 한다.

1. 영적 침체란

먼저 영적 침체인지 쇠퇴인지, 아니면 타락인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영적 침체와 쇠퇴가 영적 타락과 같은 것은 아니다. 영적 타락이라 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이요, 베드로의 세번 부인이 이런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침체와 쇠퇴는 다르다. 이것은 영적 성장이 둔화된 것이다. 성장의 둔화는 분명히 영적 침체이거나 쇠퇴다.

영적 침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믿음이 약화되고 사랑이 식어지고 열정이 줄어든다. 온전한 성도에게 있었던 순전한 마음의 헌신이 점차 와해된다. 하나님의 것들에 대히 별로 흥미가 없고 의무 수행을 기쁨으로 하지 못한다. 양심은 마비되고 회개의 은혜가 역사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것에 별로 흥미가 없고 의무 수행을 기쁨으로 하지 못하고 양심은 마비되고 회개의 은혜는 역사하지 못한다. 따라서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고 불만과 불만족이 자리잡게 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일은 하지 않고 불평을 하는 것과 같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된 후다.

영적인 사고보다는 육적인 생각이 우선하기에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 영적인 것들도 육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다윗이 나단의 비유를 듣고도 깨닫지 못한 것은 그의 생각이 영적인데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적인 사고의 둔화로 인하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차 있다. 지상과 천상의 기쁨을 동시에 누리기를 원하고 들릴라의 무릎에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나간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겸손의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 못해서 한다.

이런 사람들은 기쁨, 사모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감만으로 일을 한다. 부부간에 의무감 때문에 산다고 생각해보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모세 시절에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나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지을 때나 모두가 다 자원하여(willingly) 제물을 드렸다. 그러나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들은 이런 마음이 없다. 은혜가 힘을 잃고 충만하지 못하다. 독단적 방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온유와 겸손이 없다. 하나님 뜻 보다 인간적 방법을 우선으로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이 제사를 집행하고, 전쟁에 나가서는 모두 진멸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제작하고 좋은 것을 가지고 돌아와서 핑계를 하는 사울은 분명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적 방법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공의보다는 사견이 앞선다. 이들은 빛 잃은 순금이요,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단절된 자들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일들이 있다면 분명 영적으로 침체 혹은 쇠퇴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2. 영적 침체의 원인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이 이와같이 영적 침체에 빠지는 원인이 무엇일까? 몇 가지로 그 원인을 분석해 보도록 한다.

1.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버릴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는 세상 것에 대한 애착이다. 세상의 유행이나 풍습을 좇는 일들이 우선이 될 때에 영성은 침체되어진다. 버리지 못한 취미나 습관들은 세상의 것에 더욱 더 애착을 느끼게 한다.

둘째는 불신자와의 교제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 가운데 산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물들어 사는 생활을 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이렇게 비유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배가 바다에 빠져가고 있는데 그 배에 구멍이 생겨서 바닷물이 배 속으로 들어와 배의 침몰을 더욱 더 가속화시키듯이 지금 교회가 세상에 빠져가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구멍이 생겨서 세상의 것들이 교회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 속의 교회에 대한 풍자임이 분명하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하되 그 속에 빠져서도 구멍이 생겨서 세상 것들이 들어와서도 안된다. 오직 세상을 정복해야 한다. 세상의 것들을 진멸해야 한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모든 것을 정복하라고 하라고 분부하셨다. 모두 죽이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불신자(죄)와의 교제를 끊기 위함이다. 주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과 멍에를 같이하는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좋지 못한 사역에 동참이다. 죄악된 일임을 알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상황을 핑계하여 동참하는 것은 영적 침체를 이루는 길이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는 마음의 나태함이다. 나태하면 무디어지고 무디어지면 타협의 영이 역사하게 된다. 조급함은 실수를 낳지만 나태함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완만함과 긴급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섯째는 죄를 변명함이다. 죄를 변명하는 것은 또 다른 죄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죄변명은 영원한 동산 에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죄를 변명하는 사울은 왕위에서 폐할 수 밖에 없었다. 다윗의 용감함은 그의 죄를 통회하며 눈물로 침상을 썩히는데 있었다.

여섯째는 교만이다. 사람은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만은 안된다. 교만은 더욱 더 금물이다. 교만은 주의력을 결핍시키고 죄를 허용한다. 교만을 버리지 못하면 회복할 기력이 없다.

2. 가질 것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도가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가져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가 기도생활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법도다. 우리의 의지를 아뢰는 것이다. 받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새로운 피조물의 호흡이다. 호흡이 방해를 받으면 전 기관이 고통을 받듯이 기도가 없으면 영적 생활 전반에 걸쳐서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기도는 의무 이상의 그 무엇이다. 시130:1의 말씀과 같이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어야 한다. 죽음의 깊은 곳, 고난의 깊은 곳, 눈물 골짜기의 깊은 곳에서 부르짖어야 한다.

둘째는 말씀의 묵상이다. 말씀은 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묵상되어져야 한다. 내 속에 들어와야 한다. 내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고백을 이루어줄 것이다.

셋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한다.

넷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이다. 사람의 열심은 성전을 삼키는 위험을 초래한다. 오직 그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 그 영광을 가로채는 자는 충먹어 죽은 헤롯 왕과 같이 된다.

다섯째는 죄에 대한 경각심이다. 죄를 무서워할줄 알고, 죄에 대한 징계를 두려워할줄 알아야 한다. 죄에 대한 두려움은 영성을 회복시켜줄 것이다.

여섯째는 천국 소망이다. 세상에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일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천국 상급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일하는 의미가 없다. 헌금도 전도도 희생적 봉사도 의미가 없다. 열심히 하지 못하는 이유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설 그 날을 사모하는 자마다 영적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없다. 소망이 필요하다.

3. 영적 침체를 제거하기 위한 제언

마취제는 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잠시 고통을 잊게 할 뿐이다. 병은 근본적 치료를 해야 한다. 피부로만 살짝 덮어두고 위안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영적 침체의 원인을 찾았으면 그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병든 자가 의사의 요구에 따라서 약을 복용하듯이 영적 침체의 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

영성 회복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영적 침체의 원인을 제거하면 분명히 영성을 회복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우선 영적 침체를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은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의 제안과 예방책을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야곱은 밧단아람의 삼촌 집으로 가는 도중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야곱의 모습은 달라졌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있어야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죄는 고백해야 한다. 잠28:13의 말씀과 같이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진기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촛점을 맞추지 않고 찍은 사진을 알아 볼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찌라도 하나님께 촛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훌륭한 교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교사에게 촛점을 맞추는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촛점을 맞추어 나갈 수 있다. 교사에게 촛점을 맞춘 아이들이 예수님께 촛점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한나님을 열망하므로 촛점을 맞출 수가 있다. 시42편에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다. 시27:4에는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행함으로 드려진 삶이 있어야 한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영성은 이론에 있지 않다. 삶 속에 드려짐이 있어야 한다. 히11장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했다. 중요한 것은 생활이다. 드려져야 한다. 롬 12장에서 신령한 예배, 영적인 예배, 살아 있는 예배를 말함에 있어서 신령한 삶을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드려지는 삶이 있어야 한다. 삶은 한 순간이 아니라 평생이어야 한다.

계속되어지는 훈련이 있어야 한다. 경건은 훈련으로 되는 것이다. 끊임 없는 훈련이 쾼요하다. 운동 선수는 이미 익숙해져 있는 동작이라 할찌라도 계속해서 훈련한다. 거듭 반복되는 훈련이다. 경건은 계속 반복되는 훈련이어야 한다.

딤전 4:7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다. 연습을 하는 사람에게 몇 가지 유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 푯대가 정해져야 하고 그 푯대를 향해서 계속적인 추구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헌신이다. 자기 자신이 드려져야 한다. 셋째는 유능한 선생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스승에 따라서 선수의 실력이 달라진다. 감독이 바뀌면서 성적이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의 경건과 영성에 있어서 가장 유능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넷째는 연습, 또 연습이다. 말씀과 기도를 연습, 또 연습해야 한다. 계속되는 연습만이 영성을 회복할 수 있다.

성장이 있어야 한다. 어린 아이가 귀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아이가 계속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로는 안타까움이 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성장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올 해의 표어다.

성장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는 일이다. 온유와 겸손(고후 10:1, 마 11:28,29)을 입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1839년 저서에서 죠지 베듄은 이런 말을 했다. "아마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계발하는 것 중에서 가장 뒷전을 차지하는 것이 온유일 것이다. 사실 온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성이라기 보다는 타고난 성질이나 밖으로 드러난 행동 양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온유하지 못한 것을 결코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이 있는 다음에도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변화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될 수 없다.

그 밖에 영적 침체를 제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로 책임, 의뢰, 헌신, 봉사, 충성, 자족, 감사, 기쁨, 화평, 인내, 용납, 사랑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아가 죽어야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모두 못박는 정신이 필요하다.

나가면서

이제는 영적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영적 권위를 회복한 자만이 가르칠 자격을 가진 자들이다. 영성 회복의 기쁨을 찾자. 기쁨으로 봉사 충성하자. 이런 사람들은 억지로 일하지 않는다. 자원해서 일하므로 능률도 있다. 영성은 회복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