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
서론
오늘날 우리들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란 어느 시대 어디에나 있는 아주 흔한 일로 여기는 데 익숙해 있다. 깊은 뜻 없이 행하여지는 결혼, 점점 높아지는 이혼률, 그리고 교회내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일의 허다함의 현실은 성(性)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함께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급속히 변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한 예로 1980년 영국의 경우를 보면, 409,000명 결혼에 이혼자 수는 무려 159,000명이나 되었다. 그 전 해는 매 85초마다 한 건씩의 결혼식이 있었고 이혼은 매 180초마다 한 건씩 있었다는 계산이 있을 정도이다. 영국의 이혼율은 지난 25년 동안에 600%나 증가했다. 미국은 이보다도 더 높아서 두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죠지와 니나 오닐이 공저한 [개방결혼:부부의 새로운 생활 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일부일처제의 결혼은 켸켸묵은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면서 독자들에게 "낡아 빠지고 엄격하며, 시대에 뒤떨어지고 억압적이며, 정적이고 썩어져 가는 빅토리아 풍의" 제도를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며 솔직하고 자발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바꾸라고 역설한다. 그들은 전통적 결혼이든 혹은 모성애든 존중하기를 거부하고, 평등한 동반자 즉 완전하고 구속받지 않으며 언제든지 뒤집어 업을 수 있는 역할을 즐기는 독립된 개인들을 중시한다.
결혼을 평생에 걸친 서약 혹은 계약으로 보는 견해는 이제 서구에서는 소수 견해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 교회에서조차도 이러한 추세는 반영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결혼은 이제 영속적인 것이 아니며 이혼은 자연스레 고개를 들면서 상식처럼 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은 결혼에 대한 성경 신학의 확립을 절실히 요구받는다. 성경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매우 신성하고 신비한 일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아무리 깊이 궁구해도 다 알 수 없는 신성함과 신비한 무엇이 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실추된 결혼의 위상을 성경 속에서 되찾아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에 적용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애 할 과제는 분명하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을 올바로 규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작업을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언약 신학의 발전을 추적해 가면서 다룰 것이다.
본론
I. 창조 규례로서의 결혼 : 창세기 2장 18-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치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讻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
워 아니하니라"
1. 창 2:18-25 주해
1.1 2:18.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치 못하니". 창세기 1장에서는 창조가 끝난 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했는데 2장에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상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인간이 반려자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주기로 작정하신다. 이 단어는 여성의 종속성을 뒷받침하는데 한 몫을 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원문은 "그에게 맞는 조력자"(a helper corresponding to him)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 "맞는"에 해당하는 네게드는 '동등하며 적합한 것'을 가리킨다. 아담은 동물 중에서 그를 닮은 자 혹은 그의 짝을 찾을 수 없었다(2:20). "배필"이란 단어는 '그와 맞은 편에 있는 자'로서 보충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다. 열등하다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돕는다"라는 개념은 단지 일상 생활에서 도우는 것이나 아이 낳는 것 뿐 아니라 서로 지원하며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즉 조력자이다. '상호의존성'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동등하며 서로 서로가 의지하며 살도록, 도우며 살도록 창조하고 계신다. 동등하나 다르며 열등하지 않고 상호 보충적이다.
1.2 2:19-20. 하나님께서 남자의 필요를 아셨지만 즉시 해결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남자의 고독을 고조시킨다. 모든 동물이 아담 앞에 왔지만 남자를 위한 적절한 반려자가 없었다. 아담은 이름을 짓는다. 이름짓는 것은 통치를 의미한다.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지은 것은 후대의 성경에서 남자의 머리됨(headship)을 가르치는 근거가 된다.
1.3 2:21-25. 아담은 깊은 잠을 자며 그 사이에 하와가 탄생하는 기사가 나온다. 하나님은 완전한 솜씨로 여자를 창조하신다. 23절에는 아담의 탄성이 나온다. '이쉬'(남자)와 '이솨'(여자) 사이의 음성학적인 평행법이 나타난다. "뼈와 살"은 일가 친척에게 사용되는 용어이나 언약 관계를 말한다. 아담은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로서 연대성, 연합성 그리고 언약 관계를 점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24절은 두 성의 창조가 결혼 제도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 제시한다. 남자가 부모를 '버린다'는 표현은 "떠난다"(전통적인 해석)보다 더 강력하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거부한 이스라엘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렘1:16; 2:13; 16;11 등). 즉 결혼으로 우선권에 변화가 생긴 것을 말해 준다. "연합하다"는 언약 관계의 지속성(신4:4; 10:20 등)을 종종 암시한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언약적으로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 "한 몸"이란 성적 연합이나 영적 정서적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고 한 혈육이 되는 것이다. 결혼으로 그들은 서로 친척이 된다. 25절은 이러한 그들의 상태를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했다"는 말로 표현한다.
2. 창2:18-25에 나타난 창조 규례
우리는 결혼의 창조 규례에 대해서 성경을 기초로 하여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1 결혼 약정에 포함된 상호 연합의 신비가 주목된다. 최초의 여자는 남편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자는 그의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해야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한 몸을 이루게 된다(창2:22-24). 창조 때 정해진 상호 결합의 의미는 오직 둘만이 그런 관계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한다. 창세기 원문 자체는 "둘"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지만 그리스도는 "그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마19:4-5, 참조 엡5:31)라고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로 연합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둘이 아니고 한 몸이라고 설명한다(마19:6). 이러한 남자와 여자의 상호 연합은 결혼이 일종의 언약 관계임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결혼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의 한 모형(선지서들:이스라엘의 남편 되시는 하나님)으로 사용하며, 이것이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적 연합을 암시하는 모형으로까지 발전한다(엡5:31-32).
2.2 창조 규례는 하나님의 결혼 제도를 특징짓는 내부 구조를 결정하고 있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돕는 배필"을 만들겠다고 하신다(창2:18). 위 주해에서 살핀 것처럼 여자는 결혼 관계에서 남자를 돕는 자로서 창조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돕는 자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전체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남자를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등한' 돕는 배필은 창조 세계 어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창2:20). 남자로부터 창조된 여자만이 그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며 부합할 수 있었다. 아울러 여자는 이 세상을 완성하게 하는 목적에 있어서 남자의 내조자이다. 일단 완성이 실현되면 남자의 내조자로서의 여자의 역할은 끝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번성하여 이땅을 채우라고 명하셨는데, 이 명령은 결혼 관계에서 남자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남편은 교회를 사랑하고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 같이(엡5:25)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로서 아내를 자기 자신같이 사랑해야 한다.
2.3 창조에 의해서 남녀 관계가 설립되었기 때문에 이 질서는 바뀌거나 무시될 수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것은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
2.3.1 일부다처제. 처음 남자로부터 한 여자를 만든 것은 결혼 관계의 배타성을 강조한다. 이미 결합한 결혼이 폐기되지 아니하고는 제 삼자가 언급될 수 없다. "태초로부터" 하나님은 둘만이 한 몸이 된다고 지적하셨다.
2.3.2 이혼. 창조주는 남자와 여자를 함께 결합시켰다. 아무도 하나님이 연결한 것을 끊을 수가 없다. 결혼의 융합이 이미 깨어져 버린 음행의 경우(마5:32)나 또는 "교회나 민법이 해결할 수 없는 고의적인 버림"의 경우에만 이혼할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 고전7:15 참조).
2.3.3 동성 연애. 창조 규례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와 결합하기 위하여 부모를 떠나야 한다. 동성의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이 창조 구조 속에서 찾을 수 없다. 바울은 동성 연애자를 하나님께서 내어버린 자라고 정죄한다(롬1:26-27).
이러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구원 목적에서 연속적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규례는 구원함을 받은 사람에게 계속하여 구속력을 가진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창조 규례가 어떻게 구속력을 행사하게 되는지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볼 차례다.
II. 타락 - 창조 규례의 파괴 : 창세기 3장 16절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세기 3장은 인간이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보여준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었던 긴밀성과 동등성, 상호 보충성이 이제는 분리와 책임 전가와 주도권 다툼으로 나타나고 관계가 왜곡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낙원에서 추방된다. 하나님과 분리되며 상호간의 분리로 고통을 받는다. 죄책과 고통이 이제는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 된다. 바울이 말하는 바 "피조물의 탄식"이다. 남편과 아내간의 상호 보충성이 지배로 전도되고 있다.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 창세기 3장 16절이다. "너는 남편을 [다스리기를]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리기를 [사모하리라]"(히역) "사모하다"(테슈카)는 구약에서 오직 세 번 나온다(창3:16; 4:7; 아7:11). "다스리다"는 것은 거칠게 착취하는 정복과 지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테슈카(사모하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 3:16 부분은 창 4:7과 히브리어 구문 구조가 동일하다. "죄가 가인을 [다스리기를] 사모하나, 가인이 죄를 다스리기를 [사모하니라]"(히역). 여기서 죄와 가인은 서로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다. 따라서 창3:16에서 사용된 '테슈카'는 '남자를 원한다'라는 의미보다는 '남자로부터 독립을 원한다' 또는 '남자를 지배하고자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결국 창 3:16은 원래는 남자의 반려자인 여자가 이제는 왜곡되어 독립하려고 하며 서로 싸우는 것을 묘사한다. 죄가 들어온 후의 결혼 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다.
III. 타락 후 결혼의 실제 : 모세 율법에 이르기까지
혼인의 일차적 관계는 일반 규례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미 창세기 4장 19절에서 한 몸인 두 사람은 오만불손한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함으로써 '한 몸'이 아닌 '셋'(라멕과 두 아내)이 된다. 이 두 아내에게 그는 폭력과 성적 무절제가 혼합된 분노의 살인 행위를 자랑한다. 창세기 6장은 보다 심한 도덕적 타락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6:4). 하나님은 이러한 해프닝의 문맥에서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의 생명 연한을 짧게 함으로써 안전장치를 마련하신다(6:3).
홍수와 바벨탑 심판에도 불구하고 족장 시대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족장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구원 역사를 수행하셨지만 그들 시대를 특징지운 수많은 성적(性的) 불법을 자행한다. 아브람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아내 사라와 야비한 협약을 맺어 사래로 하여금 바로의 시녀들 중 일부가 되게 허락한다(창12:11이하; 20:1이하 참조). 그들의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약속된 아이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아브람과 사래는 사래의 첩 하갈을 두 번째 아내로 시중들게 하자는 데 뜻을 같이한다(16:1이하). 이삭과 리브가는 소위 결혼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둣이 보인다. 그러나 그 자녀들 즉 에서와 야곱은 문제를 일으킨다. 에서는 두 아내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친족 밖에서 취한다. 야곱은 네 아내를 얻는다. 비록 야곱이 라헬을 사랑해서이긴 하지만 그의 결혼 경험은 하나님의 원래 규례인 "한 몸"의 원칙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그의 아들 르우벤은 그의 첩 빌하와 불륜의 관계를 갖는다(창35:22). 그 외에도 디나 사건(창34장), 다말 사건(창38장) 등 결혼에 있어서 문제가 계속된다.
이처럼 타락 후의 시대가 보여주고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하나님으로부터의 타락은 하나님의 작정 규례를 벗어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암흑의 족장 시대 속에서도 창조시의 결혼 규례를 그의 은혜로 보존하신다. 진정한 사랑의 띠가 여러 남편과 아내들 사이에 존재하도록 하며(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라헬 사이의 관계), 족장들로 가족 안에서의 결혼을 선호하도록 하신다(창세기 24장).
한편, 하나님은 출애굽 후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모세와 맺은 언약에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성문화한다. 따라서 성문화된 율법에는 창조시의 결혼 규례가 명시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살펴보자.
IV. 모세 언약에 나타난 결혼 규례들
모세 율법은 이미 그 이전 족장 시대부터 세상에 작동하고 있던 율법들을 국가 수립과 함께 그 시대적 상황에 맞게 성문화한 것이다. 따라서 모세 언약은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아담, 노아, 아브라함을 넘어선 진보된 언약이다. 모세 언약에 있어서 십계명(출20장)과 법령(출21-23장)은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일종의 원칙으로서 규정적인 반면 후자는 특정한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적용적이다.
1. 출 20:14 : 제7계명 - "간음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결혼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성경은 성적인 욕구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한다. 성경이 정죄하는 바는 단지 성적인 욕구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만족시키려는 행위이다. 즉 하나님이 정한 결혼 밖에서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합법적으로 결혼한 사람 이외의 성관계는 죄가 되는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법령에 나온다.
1.1 간음죄(fornication,사통): 총각과 처녀간의 성관계(신22:28-29). 사통한 후에는 평생 그를 버릴 수 없다. 하나님의 명령은 결혼을 한 후에 성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통은 죽이지 않았다.
1.2 간통죄(adultery): 유부남과 유부녀간의 성관계(신22:22). '둘 다 죽이라'. 단 강제로 당한 경우는 예외이다.
1.3 수간죄: 인간과 짐승간의 성관계(출22:19). 이 죄는 사람을 짐승의 범주로 끌어 내리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죽일지니라'.
1.4 동성애 죄: 동성간의 성관계(레18:22; 20:13). 헬라와 로마에 만연했던 죄이다. '반드시 죽일지니라'.
1.5 근친상간 죄: 근친과의 성관계(레18:6-18; 20:10-21). 어미, 계모, 자매, 손녀, 외손녀, 누이, 고모, 이모 등 골육지친과의 성관계가 금지된다. 이는 가나안 땅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이다.
1.6 기타 간음과 관련된 자세한 법이 출애굽기 21장 이하와 레위기 18장 이하 그리고 신명기 21장 이하에 나타난다.
2. 일부다처제
창조 규례는 분명 일부일처제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다처제는 성경에서 특별히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부다처는 분규의 원인이 되었으며 가끔 그 결과는 죄가 되었다(예. 창21장; 왕상11:1이하). 히브리 왕들은 일부다체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신17:17). 아마도 일부다처제가 존속된 가장 큰 이유는 자녀(아들)에 있었을 것이다. 자녀는 가문을 이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아내는 자신의 종을 통해 아들을 낳는 것을 허용했다. 이러한 일은 메소보다미아 지역에서는 법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몇몇 족장들이 이렇게 하였다(창16장; 30장). 그러나 창조 규례는 분명 일부일처를 원칙으로 선포하며, 이는 예수님에게서 재차 분명하게 확인된다. "둘이 한 몸이 될지니".
3. 형사취수혼 : 신명기 25:5-10
수혼(嫂婚)이란 말은 '남편의 동생'이란 의미를 가진 리비르(levir)에서 유래했다. 이는 결혼한 남자가 자녀를 남겨 두지 않고 죽었을 경우에, 그의 형제(혹은 가장 가까운 친족)는 그 미망인과 결혼할 것을 말한다. 그녀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첫 남편의 자녀로 간주되어 가족의 이름을 이어갔다. 오난의 이야기(창38:8-10)는 이 관습을 보여 준다. 그는 형의 아내를 취하였으나 그 씨가 자기의 씨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임신이 안되게 한다. 신명기 25장 5-10절은 이 수혼법을 형제가 동거할 경우에 적용하면서 이 법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한다. 룻기도 이 결혼 풍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형사취수혼은 자녀가 없는 단 하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경우에는 금지되었다(레18:16; 20:21).
4. 이혼: 신명기 24장 1-4절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
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자기 아내로 취한 부부가 죽었다 하자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렵혔은 즉 그를 내어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지
니라" (신24:1-4).
신명기 24장은 이혼 및 재혼법을 규정하고 있는 유일한 구약 본문이어서 결혼 규례가 모세 언약 시대에 어떻게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4.1 본문 구조
본문의 구조를 보면, 우리말 번역에는 1절에 조건절과 귀결절이 모두 나오며, 2-3절에 다시 조건절이 시작되고 4절에 귀결절이 나옴으로써 두 개의 조문이 있는 것으로 된다. 그러나 원문에는 1-3절까지가 조건절(protasis)이고 4절이 귀결절(apodosis)이 되어서 1-4절까지가 법률의 한 조문이 된다.
4.2 본문 주해 : 개가 후 첫 남편과의 재혼 금지법 제정의 목적
4.2.1 수치되는 일(1절). "수치되는 일"이란 무엇인가? 주전 1세기 동안 유대인들 사회의 랍비들은 각각 이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보수적인 샴마이(Shammai) 학파에서는 이 수치되는 일이란 음란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 해석했고, 진보적인 힐렐(Hillel) 학파에서는 무엇이든지 남편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샴마이 학파의 주장대로 이것이 음행이라면, 그 당시 음행한 여자는 이혼당하는 것이 아니고 사형을 당했다(신22:20; 레20:20 참조). 고대 근동에서 음행은 특별한 상황 하에서 이혼의 근거가 될 수 있었지만, 유대 사회에서는 그렇치 않았다. 따라서 이 해석은 그 시대에 부합한 해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힐렐 학파와 같이 가벼운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히브리어 '에르바트 다바르'는 어떤 중대한 결점을 지적하는 말로, 아주 부끄러운 일을 가리켰다. 그리고 또 어떤 곳을 보면 매우 불결해서 사람이 차마 그것을 두고 볼 수 없는 더러운 것을 표시했다. 크레이기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육체적인 결함'을 의미한다고 주석한다.
이렇게 볼 때 구약 시대에는 중대한 고소를 당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을 때에는 이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그렇게 할 때에 법적으로 큰 제재를 가하지 아니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사회는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이혼할 때에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모세법이 도달한 수준을 의미하며, 그 시대 상황에서 결혼 규례가 이렇게 적용되는 것이 최선이었음을 보여 준다.
4.2.2 이혼 증서(1절). 모세법은 이혼증서를 마땅히 주어야 할 것으로, 사회가 대체로 그것을 하고 있었으면 그건 꼭 그대로 유지해 나가야 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성급하게 이혼하지 않고 두번 세번 생각할 말미를 줌과 동시에 분명 이혼당하는 여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혼 증서는 확실히 관계가 끊겼다는 것을 증명함으로 그 여자에게 재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준다. 따라서 이혼 증서는 이혼을 절대적으로 금하는 측면보다는 이혼으로 인한 극단적 상태나 악화를 조금이나마 막는 효과가 있다.
"모세가 너희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이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치 아니하니라"(마19:8)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법은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에 이혼과 재혼을 허용하지만 이러한 일을 가급적 막으면서 결혼의 근본 원리, 결혼의 신성함을 보존하려는 의도가 있다.
4.2.3 개가 후 첫 남편과 재혼 금지(4절). 재혼 후 다시 이혼당하는 경우나 후부(後夫)의 사별을 전제한다(3절). 이 경우 일단 개가를 하면 다시는 전 남편에게 돌아가지 못하도록 금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렵혔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렵혔다"는 말은 간음을 암시한다(레18:20). 따라서 개가 후 첫 남편과의 재혼 금지에는 일종의 계도적인 목적이 있다. 당시 사회의 수준이 이혼이 금할 만큼은 못되어 모세법으로는 허용하나, 그래서 재혼도 법으로 인정하여 허용하나, 원칙상은 그것이 사실은 간음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법의 제정 목적은 아마 이혼을 심각한 문제로 제기시켜 그로 인해 이혼을 방지하고자 하는 법의 억제적 기능을 보여주는 데 있으며 동시에 다른 남자와의 재혼은 간음임을 시사하기 위함인 듯하다.
4.3 이혼법의 역사적 발전 : 말라기 2장 14-16절, 신약(마19:3-12, 고전7:10-19)
이러한 모세 언약의 이혼법은 말라기 2:14-16("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것을 미워하노라",16절)에서 금지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예수님에 의해 그 본의가 드러남과 동시에 간음 이외의 이혼은 엄격히 금지된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5:31-32).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뜻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믿지 않는 자의 버림으로 인한 이혼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발전은 창조 규례에 나타난 결혼의 신성함이 구체화된 것이다.
모세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독특한 주종 관계 및 부자 관계를 맺으신다. 따라서 결혼 문제는 간음과 일부다처제와 이혼의 금지를 넘어서 이방인과의 결혼 및 우상 숭배의 금지 차원으로 발전해 간다. 왜냐하면 간음과 일부다처제 및 이혼의 문제가 이방인과의 결혼이나 우상 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다윗 언약을 거쳐 선지자들에 이르면서 일종의 큰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데, 즉 하나님이 정하신 남편과 아내간의 결혼 언약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과 그의 이스라엘의 결혼 언약이라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산 적용된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에 맺은 언약은 남편(신랑)과 아내(신부)의 결혼 언약으로 비유되고 있다(겔16:8). 또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불성실 즉 간음으로 간주되게 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결혼 모티프를 통해 강화시킨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가 된다.
V. 다윗 언약에 나타난 결혼 규례
다윗 언약은 창조 규례와 모세 언약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더 진보된 모습을 보여 준다. 다윗이 밧세바와 성적 부정 관계(삼하11장)를 가진 후, 다윗을 방문한 나단의 비유적 설명에 다윗은 남의 아내와 간음한 그 사람을 "마땅이 죽을 자"라고 말한다(삼하12:5). 또한 암논이 이복 동생 다말을 겁탈하려 하자 다말은 암논에게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삼하13:12)고 말한다. 여기서 "괴악한 일"이란 히브리어의 '느발라'로 미련하고 부끄러운 짓을 가리킨다. 다말은 분명 형제나 이복 형제간의 근친상간을 금지한 모세 율법(레18:9,11)을 의식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라는 그녀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잠언 2장 17절에는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여기서 "짝"이란 긴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남편'을 가리킨다(시55:13; 렘3:4 참조). "하나님의 언약"은 십계명("간음하지 말라")을 포함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잠언 기자는 남편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고찰한 바와 같이 다윗 언약에 나타난 결혼 규례는 모세 언약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그것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생활화한다.
VI. 새언약에 나타난 결혼 규례 :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남편"
새언약은 율법 언약보다 성숙하다. 새언약은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이제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 멸망의 법령을 뛰어넘는 새로운 법령이 새언약 속에서 선포된다. 이와 함께 하나님이 정하신 남편과 아내간의 결혼 언약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과 그의 이스라엘의 결혼 언약이라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산 적용되고 있다.
후기 선지자들은 결혼에 있어서 배신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에 있어서 배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상 숭배 즉 배교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어서 배신 즉 일종의 간음으로 쉽게 간주될 수 있었다. 언약은 일종의 결혼이었다. 그래서 후기 선지자들은 결혼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의미를 던져주는 여러 은유적 언급들 속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발전시킨다.
우리는 앞으로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독특한 관계를 암시하며,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렘3장; 겔16장; 호1-3장) 및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엡5:22-33)에 대한 일종의 상(像)으로서 봉사한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계시하는 대목을 살펴보는 것이다.
1.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시키고 있는데 그 표현이 매우 분명하다. "두려워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니...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며..."(사54:4-5)
2.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의 배교를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남편 됨을 말한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렘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따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라"(렘31:32)
3. 에스겔은 16장에서 이스라엘을 부부의 언약을 깨뜨린 음란한 아내에 비유하고 있다.
4. 호세아 1-3장. 호세아는 음탕한 아내 고멜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는다. 그러나 고멜은 옛생활을 못잊어 다시 음탕한 생활을 하고 노예가 된다. 그러나 호세아는 아내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아내를 사랑한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고멜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로 묘사되고 있음을 보게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교훈받는다.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호3:16)
새언약에서 이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로 발전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 두 은유들은 모두 남편과 아내의 사랑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두 관계가 어떻게 맺어진 관계인지를 보여준 창조 언약을 반영하고 있다.
VII. 신약
1.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 마태복음 5:31-32; 마태복음 19:3-1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
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
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5:31-32)
마5:31-32은 마19:3-12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마19:3-12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이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헤로디아의 공공한 추문(그녀는 헤롯왕 안디바가 결혼하기 위해 남편 빌립을 버렸다)을 배경으로 던진 질문으로 시작한다.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신명기 24:1-4에 관한 샴마이-힐렐 논쟁을 연상케하는 바리새인의 논쟁조의 질문을 받고 예수님은 그 답변에서 결혼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지적을 하신다.
1.1 결혼은 영구한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기 1, 2장을 통해 성(性)이 하나님의 창조이며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규례임을 상기시킨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4-5절). 그리고 여기에 자신의 설명적 단언을 추가하시어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하신 다음, 다시 자신의 금지 사항을 덧붙여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이혼법(신24:1-4)을 교묘하게 변조시켜 이혼을 정당화하려 했으나(특히 힐렐 학파)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 언약(창1:27; 2:24)에 기초하여 부당성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명백하다. 결혼 관계는 인간적 계약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멍에이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이다. 따라서 연합의 기반은 인간 경험이 아니고("당신을 사랑하오, 당신을 사랑하지 않소) 하나님의 창조 질서("한 몸") 즉 하나님의 뜻과 말씀 위에 있어야 한다.
1.2 모세의 이혼법은 인간의 죄로 인한 잠정적 허용이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두 번째 질문,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7절)에 대해 "너희의 완악함"(8절) 때문이라고 답변하신다. 모세가 이혼법을 제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혼을 찬성해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타락하여 부부 일신의 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부득불하게 잠정적으로 만든 것이었다는 말씀이다. 즉 이혼 중서마저 없이 아내를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도록, 여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혼법을 제정하였다는 것이다.
1.3 이혼 후의 재혼은 '간음'이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9절). 예외 조항을 잠시 제쳐 둔다면, 예수님은 아내와 이혼하고 재혼하는 남자, 남편과 이혼하고 재혼하는 여자, 이혼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남자는 모두 간음을 범한다고 말씀하신다(마5:32; 막10:12).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재가도 받지 못한 이혼이나 재혼이 생기면, 그때는 그에 따라 오는 어떤 새로운 결합일지라도 불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곧 간음이 된다.
1.4 이혼과 재혼은 음행한 연고(순전한 부도덕성의 바탕 위)에서만 허용된다. "음행"(포르네이아)라는 단어는 부도덕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단어에 대한 두 극단적 해석 즉 지나치게 느슨한 해석이나 지나치게 엄격한 해석을 모두 피할 필요가 있다. 아마 구약에서 사형을 의미했던 불법적 성관계들(간통,동성연애,수간)을 의미한다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구약을 비판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을 명백히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구약의 정신을 살리면서 구약의 경륜 가운데 초보 단계의 율법을 완전한 자리에 올려 놓고 신약의 경륜의 법으로 표준삼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신명기 24장 1-4절까지의 소극적인 차원의 모세법을 아주 적극적인 법으로 끌어 올리신다. 하나님은 시대의 경륜을 좌우하는 동시에 그 시대에 맞는 법을 정해 나가신다.
2. 결혼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 : 고린도전서 7:10-16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난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적 교훈을 언급하면서 몇 가지를 가르치고 있다.
2.1 예수님께서 금하신 이혼을 되풀이해서 확인한다.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함께 믿는 부부는 이혼하면 안된다. 이혼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재혼할 수 없다. 독신으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합해야 한다.
2.2 바울은 믿지 않는 당사자가 버릴 경우에는 이혼을 허용한다. 만일 믿지 않는 자가 믿는 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때 그 믿는 이는 이혼에 호소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만일 그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좋아하지 않아 떠나기로 결정하거든 그 때는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에수님의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사도적 권위에 입각해서 불신자가 믿음을 획득함으로 일어나는 특수한 한 가지 이혼 사유만을 그것에 첨가시킨다.
3. 결혼의 신비한 연합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 : 에베소서 5장 22-33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바울은 이 부분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선지자들이 적용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적용시키고 있다.
3.1 본문 구조. 에베소서 5장 22-33절은 1. 아내에 대한 권면(22-24절) 2.남편에 대한 권면(25-30절) 3. 큰 비밀(31-32절) 4. 결론적 권면(33절)로 이루어져 있다.
3.2 본문 주해.
3.2.1 큰 비밀. 사도 바울은 한 몸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을 사용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그러고 나서 바울은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하며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큰 비밀"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비밀'(무스테리온)이란 말의 신약적 용례를 살펴보고 나면, 우리는 이 비밀이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 사도의 선포를 통하여 비로소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이 나온 다음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는 문구가 이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큰 비밀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계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2.2 창2:24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사도 바울은 창세기 2장 24절을 언급하면서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맺은 "한 육체"라는 독특한 관계는 남편과 아내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결혼의 원형임을 말한 후, 다시 남편과 아내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관계는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임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맺은 "한 육체"라는 독특한 관계는 단순히 혼인 제도만을 나타내는 말씀이 아니라 창세 이래 감취어 오다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제 밝히 드러난 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내는 진리임을 유추적으로 알 수 있다. 하와는 아담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기에 둘은 한 육체인데, 아담과 하와의 이 '한 몸'은 모든 남편과 아내가 모사하고 순응해야 할 부부 관계를 넘어서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하나님의 경륜에서의 원형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모든 부부 관계는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지향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모사해야 함을 말한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2절).
우리는 사도 바울의 언급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의 순서와 그것이 지상에서 구현되는 순서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시간적으로 볼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최초의 혼인 관계이고, 다음이 그것을 지향하고 나아가야 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때가 되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충만한 계시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계시의 순서는 아담과 하와,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의 순서는 다르다. 먼저 하나님께서 가지신 경륜의 원형인 그리스도와 교회가 먼저이고, 그것을 지상적인 형태로 드러낸 최초의 관계인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그 다음이며,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지향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모사해야 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맨 마지막이 된다.
여기서 만일 구약 선지자들이 사용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를 가상적으로 순서화한다면, 그 계시 순서는 '아담과 하와 -> 남편과 아내 -> 하나님과 이스라엘 -> 그리스도와 교회' 순으로 될 것이며, 경륜 순서는 '그리스도와 교회 -> 하나님과 이스라엘 -> 아담과 하와 -> 남편과 아내'의 순이 될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결혼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의 한 모형으로 사용되고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 결혼의 한 모형으로 사용되는 것을 깨닫게 한다.
결론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해 우리는 결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그 종점을 향해 계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이러한 결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크게 세 가지로 적용해 보고자 한다.
첫째,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이므로 신성하다. 따라서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 오직,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을 파기하는 불법적 성행위(간음)와 사도바울이 말한 바 믿지 않는 당사자가 버릴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혼해서는 안된다.
둘재, 결혼은 신비적 연합이다. 따라서 부부 관계는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모사하고 지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헌신적 사랑을 보인다. 이에 대해 교회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머리로 인식하고 복종한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에게 경외함으로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둘 모두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
셋째, 신성하고 신비한 결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는 각각 성적 순결을 지켜야 한다. 창기와 몸을 합해서는 안된다. 이는 창기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고전6:15-16). 그리고 성적 순결은 행위적, 표면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심적(心的) 내면적 측면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마5:27-28). <끝>
각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