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서 론
1.문제 제기
2.글의 방향
Ⅱ.결혼에 대한 일반적 고찰
Ⅲ.성경과 토비트에서 제시하는 결혼
1.근친 결혼
2.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결혼
3.자녀의 결혼에 대한 부모의 역할과 권한
4.결혼 계약 및 약혼
5.결혼 잔치(혼인 잔치)
6.결혼의 목적
Ⅳ.결 론
참 고 도 서
Ⅰ.서 론
1.문제 제기
토비트에서는 다른 것의 외경보다는 한층 더 중요시하는 주제로 만남을 부각시키는 듯, 본인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주제를 선택하였고, 또한 그 주제로 본 글을 전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그 여러 가지 만남 가운데서도 이성과의 만남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피조물이라면, 비록 성경의 기록을 굳이 믿지 않는 불신자라 할지라도 이 주제를 가히 피하지 않고 다루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본인은 직시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는 사항이 아닌 보다 더 자세한, 그러나 성경을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과의 동년배들이 결혼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성을 사귀기에 성경에서의 결혼과 토비트에서의 결혼에 관한 글을 직접 쓰면서 본인 자신의 틀 안에 그 개념에 대하여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넣어서 지워지지 않게끔 봉하려고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요즈음 [무슨 족들]이라고 하여 사회를 혼돈의 모습으로 변모시키는 그 어떤 자들과 같이 결혼이라는 것을 단지 친구와의 만남으로 협소 시켜 살다가 싸우면 이혼하는 아주 비성경적인 행위를 많이 하는 것을 본인의 가깝고도 먼 사람들을 통하여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가능하다면 그런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어 영역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기에 이 작은 글을 써서 개인적인 사고 방식의 영역을 더 넓히고 수정하여 본인의 이해의 틀을 확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사고 방식을 소유한 그들에게 굳이 여성 제창할 필요는 현재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글의 마무리를 지을 때쯤에는 혹시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로서는 결혼이라는 주제가 본인의 틀을 구성하는데 필요하지만 이것이 다른 틀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될지는 글의 흐름 가운데서 비판받고자 한다.
2.글의 방향
결혼이라는 것은 사회 공동체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광의한 것 같지만, 전자에서 언급했듯이 본 글은 성경을 벗어나지 않고 결혼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생각하면 모두가 나와 있는 답을 정리만 하는 식의 글이 될 듯싶다. 보다 글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먼저는 결혼의 일반적인 의미를 다룰 것이고, 그리고 토비트에서의 결혼에 대한 의미와 성경에서는 그런 토비트의 글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기술하고 찾아보고 검증하는 형태로 글을 써 내려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개인적으로 성립된 결혼이라는 개념을 정리하고 본인의 이해의 틀 안에 넣어진 것을 꺼내어 보일 것이다.
Ⅱ.결혼에 대한 일반적 고찰
결혼 제도라는 것은 창 2: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볼 수가 있고 그에 관계된 구절들도 신구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창 2:20-24 마 19:4-6 막 10:7-9 엡 5:31) 그리고 결혼은 자연 법칙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준다. (창 2:18 고전 11:11-12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또한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고,(창 2:23-24 마 19:5-6 막 10:2-12 고전 6:16 엡 5:31,33) 인종의 존속을 위해서 (창 1:27-28) 필요한 것이며, 성애의 수단(잠 5:18)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은 사랑과 복종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엡 5:21-33) 영예로운 것(히 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 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이라고 성경은 밝혀 말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결혼을 권하지만(잠 18:22 히 13:4), 이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보다는 하위의 개념이라는 것(신 13:6-10 마 19:29 눅 14:26)을 굳이 밝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결혼을 깨뜨릴 만한 것은 간음 외에는 없다고 하고 있으며(말 2:13-16 마 5:31-32 막 10:11-12 눅 16:18 롬 7:1-3 고전 7:39-40), 죽음으로는 해소될 수 있다고 부활의 상태 (마 22:29-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막 12:24-25)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결혼은 추방된 유대인들에게 번성을 위해 명한 것(렘 29:6)이기도 하며, 순결을 위해 결혼할 것을 명하기도 하였다. (고전 7:1-7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이렇듯 결혼의 일반적 의미를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가 있고, 그리고 성경의 일반적 의미들이 지금서부터 다룰 토비트에서의 결혼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들과 더불어서 전개될 것이다.
Ⅲ.성경과 토비트에서 제시하는 결혼
1.근친 결혼
토비트라는 외경을 보면 너무나 빈번하게 근친혼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즉 사라가 기도할 때에 (3:15) 결혼할 수 있는 어떤 친척도 없다는 말을 아주 한탄스럽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보아서 그들의 결혼 상대는 아마도 가까운 친척일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으며, 그녀의 일곱 차례의 결혼은 모두가 친척과의 만남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토비트가 토비아스에게 결혼에 대한 충고를 하는데 있어서 (4:12,13) 먼저 우리의 지파의 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우리와 관련이 없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성경의 근친혼을 한 인물(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들고 그들이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는 언질을 토비아스에게 준다. 그리고 토비아스가 라파엘을 통해서 사라가 친척이라는 것(6:17)을 알고 난 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면 같은 지파가 아니고서는 사랑이라는 탑을 쌓지 못했다는 것을 넌지시 알 수가 있지 않는가 싶다. 또한 공동 번역(3:17)을 보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사라를 차지하려고 하였다고 하면서 그 많은 사람 중에 토비아스가 적격이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다. 즉 사라의 지각 있고 용감하고 아름다움(6:12)을 통해서 뭇 많은 남자가 반했지만 그들은 사라를 취할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토비아스는 친척이기 때문에 당연히 권리(6:11)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라파엘이 토비아스에게 사라에 대하여 말을 할 때에 사라와 결혼할 유일한 사람(6:12)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결혼할 대상이 한정이 되어 있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으며, 그로 인하여 오직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사라와 토비아스만이 결혼을 할 수가 있다고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근친혼에 대하여 성경은 실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즉 아브라함과 사래(창 11:29 창 12:13 창 20:2,9-16), 이삭과 리브가 (창 24:3-4, 67), 야곱과 그의 아내들 (창 28:2 창 29:15-20)이런 성경 구절들을 통해서 그 시대 상황이 아마도 근친혼이라는 전통이 그들의 생활에 익숙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선민 사상에서 나온 구습의 영향이 아닌가 싶고, 즉 계속해서 다루어질 문제이지만 근친혼이란 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이라는 이원론적인 사고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사고가 형성이 된 듯싶으며, 이것이 유일신 사상과도 연관이 있어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신들을 배척하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작은 견해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근친혼이라는 것이 너무 협의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넓게 생각하여 믿는 자들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2.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결혼
라파엘이 토비아스에게 말하길 라구엘이 그의 딸 사라를 '너(토비아스)에게 주는 것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만약에 그가 거절하면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죽음을 당한다(6:12)'고 말하고 있다. 즉 모세의 율법에서 나온 지파 중 그 기업을 이은 딸과의 결혼을 막을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한 자는 아무도 없었고 그 결혼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모세의 율법에서 보면 토비아스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의 율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성경에는 이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즉 수혼(동생과 과부된 형의 아내와 결혼)에 대하여 (창 38:8 창 38:11 신 25:5-10 룻 4:5 마 22:24-27 막 12:19-23 눅 20:28-33), 제사장들의 결혼에 대하여 (레 21:1,7,13-15), 포로 중인 여인과의 결혼에 대하여 (신 21:10-14), 이혼한 사람의 결혼에 대하여 (신 24:1-5), 유혹한 처녀와의 결혼에 대하여 (출 22:16-17), 지파 중 기업을 이은 딸의 결혼에 대하여 (민 36:8-9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무릇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자기 조상 지파 가족 되는 사람에게로 시집갈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되어서 그 기업으로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그리고 근친상간을 금하고(레 18:6-18 레 20:14, 17, 19-21 신 22:30 막 6:17-18),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인은 이스라엘인과 결혼해야 한다(출 34:16 신 7:3-4 스 9:1-2, 12 느 10:30 느 13:26-27 말 2:11)는 것을 성경의 여러 곳에 보여주면서 모세의 율법을 피력하고 있다. 이곳에서 보이듯이 사라는 모세의 율법의 6번째 기술된 것에 의거하여 또한 마지막에 것을 토대로 하여, 타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그런 상황일지라도 오직 그의 지파되는 가족의 사람인 토비아스에게만 시집갈 수가 있었고 그렇게 하여야만 자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될 수 있는 것이고 죽음을 당하지 않는 길인 것이다.
3.자녀의 결혼에 대한 부모의 역할과 권한
토비아스의 아버지인 토비트가 그의 아들을 라게스로 심부름을 보내는데 그에게 조언을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말한다. 그 중에 한 가지인 '창녀에 대해 경계하고 우리 지파의 한 여자와 결혼(4:12)해라. 왜냐하면 우리는 선지자의 후손이고 우리와 관련이 없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면 안되고, 친척들과 결혼한 우리 초기 조상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기억하라. 그들을 하나님께서 자녀와 함께 축복하셨고 그들의 후손이 이스라엘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라는 메시지를 그의 아들에게 심어 준다. 이것은 단지 부모로서의 권면 즉 조언이라기 보다는 더 넓게 조상의 전통이었기에, 그것은 아버지로서의 토비트가 아들 토비아스에게 단지 유전적인 의미로서의 당연지사의 행위이고, 그것은 도덕적인 의미로서 꼭 지켜야 되는 의미라기 보다는 듣는 입장의 아들은 지켜 수행해야만 하는 보다더 강력한 율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도움자로서 사라와 토비아스의 결혼을 중재(3:17)하기 위하여 온 천사인 라파엘도 사라가 가까운 친척(6:11-12)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 시대의 상황 여건이 결혼의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당연지사였고, 혹시나 그에 대한 파계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로 간주된 듯싶다. 그리고 사라의 아버지 입장에서의 역할과 권한을 보면, 결혼의 직접적인 주인공인 사라를 무시하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내용의 흐름 가운데 지켜볼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자기의 딸인 사라와 토비아스가 대면도 하지 않고(6:17) 있는데, 라구엘은 토비아스가 현재 자기와 가장 가까운 친척(7:10)이라는 단 이유 하나만으로 모세의 율법의 가르침(7:13, 민 36:8-10)에 따라 라는 말을 하면서 자기의 귀한 딸 사라를 토비아스에게 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인격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토비아스가 라파엘에게서 사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녀가 자기 족속의 아버지 친척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6:17)했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아무리 아버지로서 혹은 도움자로서의 권한도 중요하지만 한 인간을 이리도 무념으로 인도한 후에 사랑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잔인한 일인 듯싶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부모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조된 듯싶지는 않다. 즉 하갈이 이스마엘을 위해 아내를 선택한 기사(창 21:21)와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 아내를 선택한 기사(창 24장), 라반이 그의 딸들의 혼담을 정하며(창 29:15-27), 삼손이 그의 부모에게 아내를 얻어 주기를 간청한 것(삿 14:2), 하지만 역시나 성경(모세의 율법)은 제한을 두고 있다. 즉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모세의 율법(출 22:17 만일 그 아비가 그로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빙폐하는 일례로 돈을 낼지니라)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반대인 듯싶은, 어찌 보면 역시 부모의 권한을 피할 수 없지만 아무튼 부모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을 드리는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미에게 선물을 주는 경우(창 24:53)와 세겜이 디나를 아내로 준다면 빙물과 예물을 청구하는 대로 주겠다고 말하는 것(창 34:12 신 22:29 삼상 18:25)을 보면 조금은 다른 입장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에서도 토비트에서와 같이 결혼에 대한 부모의 권한이 그 시대 상황이 비슷하여서 그런지 같은 맥락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구절들을 연관시켜서 보면 결혼을 하는 대상들을 전혀 무시하고 단지 식을 율법에 의거하여 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한다.
4.결혼 계약 및 약혼
라구엘과 토비트에 의해 성립된, 아니 모세의 율법으로 성립된 한 남자와 모르는 한 여자와의 결혼이 결혼 계약이란 것을 두루마리 문서에 쓰면서 일단 끝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과정을 다시 한번 지켜본다면, 먼저 그 문서의 내용은 '모세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사라는 토비아스에게 주어진다'라고 기록한 것을 볼 수가 있다(7:14). 또한 도움자로서의 라파엘이 사라와 토비아스와의 결혼을 중재하기 위해서 토비아스에게 오늘 내가 너와 사라와의 약혼을 라구엘에게 말(6:12)하겠다는 것과 그리고 이것에 대하여 라구엘이 거절할 시에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형벌을 받는다(6:12)고 말하면서 너는 필연적으로 사라와의 결혼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 밤 라파엘과 라구엘은 정말 약혼에 대한 것을 의논(7:8)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엿듣고 있는 토비아스의 조급한 마음(7:8-12)까지도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을 라구엘은 놓치지 않고 토비아스의 조급함을 달래 줄려고 하나, 토비아스는 사라를 나에게 준다는 약속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안 먹겠다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라구엘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7:12)을 볼 수가 있다. 이렇듯 토비트에서는 결혼이라는 것까지 이르는데 무척 가벼운 용어와 그에 대한 사념이 개입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단순성을 내포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듯싶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런 만남이 다양성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부모의 권한으로 하갈이 시집을 갔고(창 21:21), 쌍방의 동의로(창 24:8 창 24:58-60 창 29:18-30) 결혼을 하고, 약혼의 중대성을 파괴한 기사도 있고(삼상 18:17, 19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맹을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모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준바 되었더라), 또한 약혼에 대한 불성실은 벌받을 만하다고 신약에서는 밝혀 말하고 있는 것이다(마 1:18-19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기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지막으로 약혼한 자는 병무를 면제받는 희귀한 일까지 기록이 되어 있는 것(신 20:7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을 볼 수 있다.
5.결혼 잔치 (혼인 잔치)
라구엘은 잔치를 위해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였고 또한 그 잔치는 2주간 지속되었으며(8:19-20,10:7), 라구엘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사랑을 네(토비아스)가 의심하지 않기를 원해서 베풀었다고 하고 있으며, 또한 심한 고통을 당한 사라에게도 좋을 듯 싶어서 베푼 것(8:20-21)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성경 기사는 즉 결혼 잔치에 대한 성경 기사는 동리 사람을 다 초청하는 것과(창 29:22) 7일 동안 잔치를 계속하는 기사와(삿 14: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잔치하는 칠일 동안에 너희가 능히 그것을 풀어서 내게 고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창 29:27) 그 잔치에서 예복을 입는 경우(마 22:11-12)와 예수님 모자가 혼인 잔치에 초청 받아 참석한 기사(요 2:1-5), 식이 끝난 다음 축복해 주는 것(창 24:60),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증인이 되고 축복해 주고(룻 4:11), 왕도 결혼식에서 축복을 받았고(시 45:8-17), 에스더를 위한 혼인 잔치(에 2:18)와 혼인 잔치 기간 중에는 금식하지 않는 것(막 2:19 눅 5:34)으로서 혼인 잔치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또한 토비트에서는 신부의 집에서 성대하게 2주 동안이나 잔치를 배설한 경우(8:19-20)를 볼 수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이것에 대한 사항을 세밀하게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신랑이 먼 데 살 경우에는 신부 집에서 열리고 그 비용은 신랑 집에서나 또는 양가에서 지불한 기사(창 29:22 삿 14:10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를 볼 수 있는데, 대개는 혼인 잔치는 신랑 집에서 베풀어졌다(마 22:1-10 요 2:1-9)기록이 되어 있다.
6.결혼의 목적
토비트가 토비아스에게 조언을 하는 과정에서 창녀에 대해 경계하며 결혼하라(4:12)는 기사를 보면 결혼을 해야 될 시기에 적절하게 해야 되는 경우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내용을 더 보조할 만한 것이 공동 번역에는 명확하다. 즉 모든 음란한 일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하라는 어구를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토비트에는 이렇듯 결혼의 목적이 상세하게 여러 가지로 기록이 되어 있지 않고 그 중에서 토비트가 중시 여기는 전자에 주시하였던 그 기사밖에 없지만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로 기술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인간의 행복을 위해(창 2:18), 인종의 존속을 위해(창 1:28),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말 2:15), 간음이나 음행을 방지하기 위해(고전 7:2,9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완전한 만족을 위해 (잠 5:18 딤전 2:15), 마지막으로는 대적에게 조금도 훼방할 기회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딤전 5:14) 이렇게 서술이 되어 있다. 즉 인간이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데 있어서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 때에 채워 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인간적인 아둔함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보면 결혼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의 측면도 가능한 것이 아닌 듯싶다.
Ⅳ.결 론
지금까지 토비트에서의 결혼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성경의 참고와 본인의 소견 개입으로 글을 전개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무리를 짓는 이 시점에 와서 결론이라고 단정을 짓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이 글은 성경을 중심으로 써 내려 왔기에 오역이 될 것 같은 어리석은 견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렴움이 앞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단지 글 가운데서 책들을 참고하여 본인의 의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결혼에 대한 본인의 유입된 사고를 나열하는 것이기에 약간의 부담과 함께 마루리를 짓고자 하는 것이다.
즉 결혼이라는 것이 천시되는 시대도 아닌데, 토비트에서는 결혼이라는 것을 너무나 경시하고 비하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동양의 사고방식인지는 몰라도 인륜지대사 라고 말하는 것을 그저 우습게 허물어뜨리는 단정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실례로 선민 사상에서 나온 구습의 영향이 아닌가 싶은 근친혼이란 것이 이원론적인 사고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사고가 형성이 된 듯하며, 이것이 유일신 사상과도 연관이 있어 하나님의 법 아래에서 이방인과의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작은 견해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근친혼이라는 것을 너무 협의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넓게 생각하여, 믿는 자들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버지로서 혹은 도움자로서의 권한도 중요하지만 한 인간을 무념의 상태에 있는 그 시점에서 사랑이란 것을 느끼게 하는 비인도적인 처사를 부모의 당혹스런 잔인함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결혼이란 것을 그 식의 주인공이 확정성도 없이 치러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현대판 결혼관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이런 유대적인 사고 방식은 다소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도 1980년대 전만 해도 맞선이란 것으로 결혼을 했지만 이것이 지금까지 적용이 될 수 있을지 유아적인 본인에게는 의혹뿐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판의 결혼이 물론 예외도 있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을 맺는데 있어서도 성경은 다양성을 보여 주지만 이 곳에서는 무척 가벼운 용어와 그에 대한 사념이 개입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단순성을 내포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이 글을 전개하면서 토비트에서 말하는 결혼이 우리가 특별 계시로 여기는 성경에 얼마나 많이 부합이 되는가를 생각하고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얻은 결론은 예를 들면 토비트는 보편이라는 것이 있으면 단지 개체들의 종합밖에 되지 않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큰 글 속에서 자기에게 맞는 말만 거름종이로 걸러서 그것만을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본인은 글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결혼에 대한 일반적 의미를 먼저 보았고 그 다음으로 토비트에서 나오는 근친 결혼,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결혼, 자녀의 결혼에 관한 부모의 역할과 권한, 결혼 계약 및 약혼, 결혼 잔치, 결혼의 목적 등으로 이상 6가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성경과 대조하여 얼마만큼이나 성경 속에서 증거로 될 수 있는가를 직접 성경의 이곳 저곳을 비교하고 검증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성경에서 기술하는 것은 광의의 개념이라면 토비트에서의 표현은 너무나 협소한 단어 선택과 그 밖에 빈궁한 언어를 사용하고, 더욱더 부실한 것은 인과 관계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즉 수미쌍관식의 구성을 무시한 도출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데 있어서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 때에 채워 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인간적인 아둔함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본 글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보면 결혼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의 측면도 가능한 것이 아닌 듯싶다. 동년배의 위치에서 결혼이란 것을 전제로 하여 만나는 형제들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그것에 적응하는 일인 것이다라고 단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글을 써 가는데 있어서 왠지 외경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전개시키지 않았나 하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지고 결혼이란 것이 토비트에서는 쉬운 것으로 다루어졌지만 근시일 동안 생각해 본 결과로는 나 하나만이 좋다고 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위의 상황과 얼마나 잘 부합이 되느냐가 더욱더 중요시된다는 것으로 식상하지만 글을 맺고자 한다.
참 고 도 서
방경혁. [외경]. 대구:보문 출판사, 1994⁴.
허수 외 2인. [주제별 성서 활용 대전 제 1권]. 대구:보문 출판사, 1989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