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결혼-과거로부터 해방

피로, 지침 그리고 희열

왔다 갔다 밤새도록 뱃놀이 하듯이

당신은 사과 바구니로부터 하나, 나는 배 바구니로부터 하나씩 먹었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을 차가왔다.

하지만 태양은 한 통 그득히 황금을 거두어 들이면서 떠올랐다.

- 에도너. 센트. 빈센트. 미레이 -

1. 결혼은 사랑을 위해?

"나를 사랑하나요?"

"물론 사랑하지요"

"하지만 '사랑한다'고 깍듯이 말해 주지 않찮아요."

"어떤 것을 원해요." "'사랑해요'라고 매일 말해 주기를 바란다는 건가?"

"그렇지요"

"그런 어리석은 것....."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말해 주기를 바래요"

"알았어요. 알았어."

"아마 더 이상 나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결혼하고 싶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어리석은 것을 말한 것 같지 않아요."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된다. 이 대화에는 사랑받고 있는 것과 결혼하는 것은 차이가 없다는 보증을 요구하는 욕구가 말해지고 있다. 이같은 대화의 예에서 보여지듯이 많은 사람은 "결혼은 사랑을 위해"(marriage is for loving)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fall in love)는 것은 훙분되는 일이고 아주 근사한 일이며, 또 귀신에 씐 것 같은 경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이름의 악마"(That old blank magic called love)인 콜 포터나 "사랑만 있다면"(All you need is love)의 비틀즈도 사랑에 휘말리는 마술적 요소에 홀린 사람들의 모습을노래하고 그것에 의해 많은 이익조차 얻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 사랑은 마술이다. 또 "사랑에 빠지는"경험의 귀착지가 결혼이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계속 사랑하는 것"은 같은 길이 아니다. 오히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여러가지의 문제에 부?쳤을 때 마술의 효력은 상실하고 성가신 난제와 씨름하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마치 상대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구속감에서 해방되고 정말로 자신이 바람직한 인간으로 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들의 결혼관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서로의 욕구가 무엇이며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자신들의 문제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또 서로 더욱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부터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희망은 있는 것일까? 무엇에 희망이 있는 것일까?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상황에 있을 때 어떻게 하면 희망을 계속 갖게 될까?

과거로 부터의 해방, 현재와의 대치, 장래에 향한 희망. 사랑에 의해 맺어진 결혼 생활을 구축하는 데는 이들 세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것이 본서의 목적이다. 이들 세 가지 과제에 대처해 나가기 위해 본서를 3부로 나누어 제 I 부 과거로부터의 해방, 제 II부에서는 현재에 대처하는 용기, 제 III부에서는 장래에 대한 희망에 대해서 논하기로 한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살고 있다. 또 장래를 꿈꾸어 보기도 한다. 장래 나의 인생이 어떻게 변할까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거와 장래를 현재에 살리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현재의 생활을 보다 개선하기 위해, 사랑이 충만한 생활을 하기 위해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긴 역사를 가진 결혼이라는 형태는 오늘날 변모하고 있다. 이혼율은 급격히 증가하고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동거자도 증거하고 있는 오늘날, 과연 결혼이라는 형태는 존속하는가 하는 의문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나는 앞으로도 결혼이라는 형태는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어떻게든 결혼 생활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기를 바라고. 애정에 의하여 맺어지도록 노력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쓸 것이다. 결혼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은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문제에 압도되는 경우도 있다. 용기도 필요하게 된다. 나로서도 모든 문제에 해결책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으로서 '이것'이라고 생각되는 지혜는 어느 정도 터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서에서 그 지혜를 독자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기술하는 나의 기혜나 실례는 나 자신의 결혼 생활이나 친구, 아는 사람의 결혼 생활의 실제 체험에 입각한 것이다. 이분야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나 결혼 카운슬링의 임상에서 만났던 분들의 실제 체험에 입각해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 경우는 본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배려에서 실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고 결혼. 가족. 아동 카운슬러로서 과거 이십 수년에 걸치는 임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또 많은 것을 배우고 가르쳐 왔다. 꿈, 원망, 두려움, 다툼, 실패, 성공, 용기, 결의 라고 하는 각종 생각이나 태도를 나에게 피력해 준 많은 분들에게 신세를 진 경우가 많아 진정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본서의 편집 담당자나 친구들이 나의 실제 체험도 언급하는 것이 독자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조언도 있어서 때때로 내 개인적인 체험에 대해서 기술하기로 했다. 실은 그렇게 하는 데에는 상당한 망설임도 있었다. 이같은 것은 "개인적인 일은 되도록 입에 담지 않는다". 는 부모로부터의 가르침을 받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생활이라는 사적인것은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행위에는 마음을 연다는 정직함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 '나의 과거 인생이나 결혼 생활에 대해서', 또 지금 부터의 전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막상 내가 아직 젊었을 때에는 결혼한다는 것은 아주 멋진 것이라는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물론 그같은 생각은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꿈이나 원망으로부터 생긴 것들이었다.

나의 부모는 서로가 친밀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현실적으로 갈등도 캠핑도 곧잘 나가고, 공통된 친구들을 가지고, 우리들 세명의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나무랄 데 없이 즐거운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른 여성과 연애에 빠진 것을 계기로 우리 가정은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혼이라는 말을 부모의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우리 집에서의 나날은 많은 심적으로 고통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시 생활?은 크게 달라져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이 계속 되었으며, 무언가에 이끌려 가게 되었다.

결국 부모는 이혼하게 되고 아버지는 그 여성과 결혼하고 말았다. 그런데 수년 뒤에는 그 여성과의 결혼 생활도 파탄에 빠져 들고 말았다. 아버지는 우리집 주변을 차로 드라이브 하면서 곧잘 돌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집에 들러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어머니가 곧잘 촛불을 창가에 켜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집에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프라이드가 방해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두 번째 아내와 뜻한 대로 살지못하고 언쟁이 많았던 점. 그리고 이윽고 일어난 아버지의 급격한 죽음은 지금 나로서는 미스테리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경험한 비극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라는 생까이 내 머리속에 있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공 ?다.

이같은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니 때의 이러한 경험은 과거지사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 일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의 과거 경험이 지금 나에게 주는 여향의 실체를 의식하고 있으면 그 영향에 대한 나의 반응 빙식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 일을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이른바 나는 과거의 포로가 되어 있게 된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세 번 결혼을 했다. 최초의 결혼은 내가 17세때의 일이었다. 고등 학교를 졸업한 후 무엇을 하고 살아갈까, 당시 나로서는 전혀 계획이 없었다. 아주 부끄러워하면서 방에서 지내는 내성적인 여자 아이였다.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고 다른 사람이 두려웠다. 그러한 나의 앞에 열살이나 연상인 남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을 이 남성은 귀에다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 남엇에 대한 연모의 정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살아가는 수단으로써 결혼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결혼하고 말았다. 부모에게는 결혼하고 6개월이나 지나고 나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최초의 아들을 않은 것은 19세 때 일이었다. 그리고 4년 뒤에 두번째 아이를 낳았다. 그때부터 우리들 '세계'는 붕괴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혼,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은 그와 동시에 일어났다. 남편이나 아버지로부터 유산은 아무 것도 없었고, 보험도 없어서 경제적으로는 밑바닥 생활에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자신의 두 아이들과 어머니도 부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고 마땅한 직업도 없는 나였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해서도 무지했을 뿐이며, 가령 알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나의 프라이드가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초의 일년은 지붕 밑에 다락방을 빌려 살았고, 그리고 작은 아파트에 옮겨 살았다. 언제나 식구중 누군가가 병을 앓고 있었으며, 배를 주리는 것을 밥 먹듯 했다. 의류는 고물상에서 구했다. 적어도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나는 주야로 합쳐서 16시간(두가지 일)일을 했다. 이윽고 전세집에 옮겨 살게 되었으며, 그럭저럭 생활의 목표가 서게 되었다. 이것도 우리의 삶에의 집착과 신의 은총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의 두 번째의 남편 '세 번째의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남성과 만났던 것이다. 두 번째의 결혼 생활도 그런대로 희비가 엇갈리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18년간 계속된 이 결혼 생활도 종말을 맞아 그로부터 과부로서 생활을 4년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결혼을 했을 때 내가 33살때 였지만 무언가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의욕에 사로 잡혀 결국, 대학에 들어가고 이윽고, 두 세개의 분야에서 상당한 자신을 얻게 되었다. 가사나 육아를 돌보면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 밖에서의 일 이외에 집에 거주하면서 할 수 있는 일도 했다. 이같이 일은 훌륭하게 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자신감을 잃고 불안에 사로잡힌 적도 자주 있었다.

그러한 때에 교류 분석이라는 심리학파의 창시자인 에릭 번이라는 선생과 우연한 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에릭 번과의 만남에 의해 나의 인생은 급격히 바뀌게 되었다. 이같은 것은 나 자신을 돌이켜 보고 분석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자신의 결단이나 선택에 자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또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용기나 활기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의 결혼 생활에 실패한 나는, 다시 결혼하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세 번째의 결혼 상대와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남성은 이미 결혼한 지 7년이 되었고 네 아이의 아버지였다. 이렇게 하여 1965년 다시 한번 시험해 보려고 결심하고 세 번째의 결혼을 단행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와의 결혼은 계속하고 있다. 우리들의 누군가가 죽기까지 계속해 갈 예정이다. 지금 결혼 생활에 문제가 없는가 하고 묻는다면 확실히 여러 가지 문제는 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인생이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 문제를 해결해 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항상 새로운 해결 방법을 발견하다 보면 드디어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 물론이다. 결혼은 사랑을 위해서이다. 나는 그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발견하였다. 본 서에서 내가 기술하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계속 할 수 있는가?" 그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 다음 예로써 설명해 보기로 하자. 나의 며느리로부터 어느 날 장거리 전화가 걸려 왔다. 그날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어느 해 감사절 날이었다. 아들과의 결혼은 이제 파탄이라고 울면서 호소해 온 것이다.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들네는 이사를 했다. 우리의 신변 사람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던 아이들 데리고 두 사람 만의 생활에 심신이 모두 피로해지고 말았다고 한다.

수일간 태풍 때문에 정전이었던 전기가 바로 감사절 날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저녁 식사를 위해 칠면조를 오븐에 굽기로 했다. 칠면조를 지금까지 자신이 혼자서 요리해 본 적이 없었지만 여하튼 해 보기로 했다. 모처럼 생각하고 요리한 칠면조를 먹기 시작한 남편은 육즙맛이 "껍데기의 맛과 아주 다르다."고 인색하게 말했다. 당연하리라, 그 육즙 맛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것과 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한대로 이 문제는 '과거'와는 관계없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래' 또 지금 두 사람이 경험하는 비참한 생각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것에 눈치채지 않는 한 지금 두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심각한 싸움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거기서 문제의 원인으로 된 육즙 맛의 선택에 대해서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기로 했던 것이다. 적어도 두 가지의 다른 맛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다른 맛을 교대해서 만들어 보도록 하는게 어떨까? 혹은 모두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맛을 내는 방법을 생각해 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육즙 없이 칠면조를 먹기로 하든가.

결과 말입니까? 그날의 일을 지금은 곧잘 아들 부부와 회상하고 우스운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다. 육즙맛을 내기 위해서 몇 거지 선택이 있으며, 그 중에서 고르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장래 무엇이나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점. 요컨대 전망을 바꾸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당신 식의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육즙 맛을 내는 등은 문제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대신 돈에 관한 것, 육아, 성생활, 의상, 차에 관한 것 등이 문제의 원인으로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가, 개똥의 처리는 누가 하는가, 문단속은, 꼬불꼬불한 수채를 치는 것은? 문제가 얼마든지 있으며, 또 그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아니면 방치해도 좋은가, 모두 당신식 결혼 생활의 지금까지 발자취와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더우기 가령 그것을 방치해 두면 지금부터 결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결혼-과거, 현재, 미래

본 서의 제1부는 당신 개인의 과거의 경험이나 결혼의 문화사에 촛점을 맞춘 것이라고 해도 좋다. 즉 그것에 의해 당신의 결혼관이 과거에 의해 어떻게 채색되고 있는가가 분명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과거를 알 수 있게 되면 과거에 구속되지 않고 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결혼의 과거에는 아이들 때의 여러 가지 경험, 그리고 경험으로 부터 생긴 장래에 대한 기대, 나아가 이성과의 교류관계, 결혼식, 첫날 밤, 신혼 시절 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 뿐만이 아니고 그 사이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 우리들의 행동을 규제했던 법률이나 사회 통념 등에 의해 영향 받으며, 또 형태가 만들어진 오늘날의 일반적인 결혼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본 서의 제II부에서는 당신의 현재 결혼 생활을 검증하는 재료를 제공하기로 한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욕구, '직면하는 문제'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불가결한 서로의 친근성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부부가 서로의 욕구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쌓아감으로서 부부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중에 현재 결혼 생활이 보다 역동적인 것으로 되며 활성화되고, 또 용기에 차 있는 것으로도 된다. 즉 어떤 상황에 부?쳐도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결혼의 장래는 어떤 것일까? 제3부에서는 자신들의 장래에 대해서 품고 있는 원망은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이상으로 더욱 흥미 진진 하고 따뜻하고 온화함이나 위로에 충만한 부부 관계로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장래에 대해서 희망을 품는 자신들의 결혼이 보다 충실한 것으로 되도록 의지를 굳히고 그 희망에 따르는 실현을 목표로 해서 노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각 부분에 연습 문제를 부가하기로 했다. 반드시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개선에 유익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들 연습 문제는 자율 결혼 상담(샐프 매리지 카운슬링)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연습 문제의 태반은 교류 분석(T- ransactional Analysis;이하 'TA'라는 약어를 사용한다.) 기법에 의한 것으로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는 내 책 중에서 다소 형태를 바꾸어서 인용하기로 한다.

본 서는 자신만이 아니고 파트너(기혼자는 남편, 아내, 약혼자등)와 더불어 읽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물론 자신 혼자서만 읽어도 관계는 없다. 또 곧 결혼을 하기로 생각하지 않아도 개인의 사는 방식에 관한 유익한 통찰을 반드시 얻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친구와의 관게나 장래의 생애 파트너를 고르고, 그 사람과 공동 생활을 시작함에 있어서 유익한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결혼하는 것이나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구축해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반드시 당신으로서도 그러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진실하게 접근해 갈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혼 생활을 나날이 영위하는 속에 우리들의 사랑의 실태가 드러나리라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2. 과거에 있어서 결혼

"나는 지금부터 부억을 칠할 페인트를 사러가요"

"어! 안돼요. 내가 가요."

"집은 남자의 성이기 때문이야. 알겠지요?"

"언제부터 그랬지요. 그것은 무엇 때문이지요?"

"줄곧 그랬던거요. 때문에 내가 색상을 결정해야 돼"

"그건 옳지 않아요" "언제나 그렇지 않았어요"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요?"

"나의 할아버지도 그러했으니 나도 그렇게 하는 거요"

"여하튼 당신은 구식이예요"

"아마도"

오늘날 결혼에 관한 연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편의성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애정에 의해 맺어진 것으로 바뀌어 온 결혼 형태의 변천에 따른 인류의 시작부터 있었던 남.녀의 결합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오늘날 결혼 형태는 과거를 갖고 있다. 종교적, 윤리적, 인종적, 문화적, 과거의 역사, 그리고 개개의 '가족의 역사'가 있다. 우리들이 지금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관념, 전통, 생활 스타일, 육아의 사고 방식, 성의 차이에 의한 역할의 분담에 관한 사고 방식 등 모두 과거 걸어온 발자취의 결정이다.

오늘날 결혼의 실태를 이해하는 데는 이같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시대의 변화 등에 따라 결혼의 형태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결혼의 과거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본 장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결혼관을 형성하고 있는 과거의 발자취, 시대의 변천이나 다른 문화에 의해서 결혼이 어떻게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생각 되어져 왔는가를 명확히 하려고 한다.

고대의 결혼

애정에 입각한 결혼은 근대에 발전한 것이다. 고대 문화를 보면 사람들은 편의성을 주된 목적으로 결혼한 것 같다. 유사이전의 시대, 즉 농경 사회가 탄생하기 전에는 남자나 여자도 함께 가족으로 결속하여 수렵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거기에서는 남자가 수렵에 나가면 여자는 집에서 불을 피워 남자가 잡아온 것을 요리한다는 생활 형태가 영위된 것 같다.

이같이 당시의 인간은 음식물을 찾아서 수렵하고 혹은 채집에 시간을 많이 보낸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같은 생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종족은 드물게 되었다. (오스트렐리아의 아보리기네스 인종,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상 쿠아 인종 등)

기원전 8천년 전에 문화는 크게 바뀌며, 그 결과 살람들의 결혼관에 변혁이 생겼으리라고 생각된다. 아이들이 '짐'으로 되어있던 수렵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바뀌었다. 동물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했던 생활에서 거주를 정하고 토지를 경작하며 동물을 사육한다. 농경 중심의 주거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아이들은 '짐'으로 되기는 했으나 환영 받았다. 오늘날의 농가와 같이 가축을 돌보거나 물을 공급하거나 화전을 경작하는 귀중한 노동력이었다. 이렇게하여 사람들은 토지 재산을 소유하는 데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유산 상속에관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도시 중심의 문화 발생이나 문자 발달에 따라 결혼에 관한 벌률도 생기게 되었다. 기원전 4천년 경에는 결혼에 관한 인류 최초의 법률이라고 하는 함무라비 법전, 그리고 고대 바빌로니아 문화시대에는 형법이나 민법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들 법률에 의하면 결혼은 경제상의 약속으로 되어 있었다. 여성은 오직 아버지의 소유물로 생각되고 결혼에 의해서 남편에게 팔리게 되는 '재산'이었다. 결혼은 그같은 경제적인 계약의 표현으로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임의 처에 대신해서 하녀인 여성에 의해서 남편의 아이를 갖는 것이 허용되고, 처에게는 그 아이의 친권이 주어지게 되었다. 이같은 방법에 따라 아이를 갖는 것을 처가 거절할 경우에는 마편이 첩을 갖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고대 문화와 같이 부모가 아이의 결혼 상대를 결정한다든가, 지참금을 갖고 결혼한다는 제도가 주류였다. 신랑은 장가를 가지 위해 그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도 토지를 댓가로서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경우에 그 토지는 결혼한 커플에게 주어져 커플의 재산으로 되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남편의 지참금이나 아이는 처의재산으로서 남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처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남편은 재판을 청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재판에 의해 남편 주장의 정당성이 인정된 경우에는 처는 남편의 노예로서 소유된다. 한편 아내 쪽도 남편의 잔혹한 태도를 호소하는 길이 마련되었던 내용도 있었다. 쟁의의 조정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는 바빌로니아 법은 남편과 처, 두 사람을 물에 잠기게 하고 가라앉이 않는 쪽이 신에게 보호받고 있는 증거가 되어 무죄로 정하도록 하는 방법을 해결 수단으로 하는 경전을 갖고 있었다. 물론 물에 가라앉은 쪽이 유죄로 정해졌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에 있어서도 경제적. 정치적 수단으로서 생각되고 사용되어져 왔다. 가족의 재산을 유지하거나 가족 속의 주권을 가질 목적으로 형과 누이가 결혼하는 예는 드물지 않았다. 이집트의 문화는 여자 가장 사회였기 때문에 재산은 여성 계열로 계승되고, 결혼에 의해 신랑의 재산은 신부에게 바쳐진다는 습관이 있었다.

많은 파라오들은 누이나 딸과 결혼함으로써 왕위, 혈통, 재산등을 지켜왔다. 이같은 결혼 형태는 기원전 30년에 로마 제국의 정복 때가지 계속되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예를 들면 陮클레오파트라는 최초는 오빠와 그리고 오빠의 사망후에는 동생과 결혼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집트를 통치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쥴리어스 씨이저나 최후의 남편으로 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그녀와 결혼한 것도 똑같은 목적에 입각한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인의 결혼 모두가 정략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도 명확하게 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의 신화, 사랑을 칭찬하는 노래등을 보면 로맨틱한 남녀의 결합을 요구하던 당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들 노래에 보여지는 남녀 사랑의 스타일은 오늘날 사랑의 노래에 보여지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의 사랑의 노래에 '오빠'라든가 '누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멀리서 별안간 누이가 와서 내 마음 들뜨고

팔을 넓게 펴서 누이를 포옹하네

내 마음 아니 설래이랴.

저 처녀 내게오면.....

내 누이를 안고 처녀의 팔을 벌리면 나는 마치 분트(방향의 나라)사람된 것 같이......

고대 헤브라이 문화에 있어서 결혼

헤브라이 사람의 결혼은 고대 바비아아나 이집트 문화에 있어서 결혼과 매우 유사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유목민은 기원전 1800년경에 오늘날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에 이주했다. 고대 헤브라이 사람에게도 애정에 입각한 결혼관이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구약 성서에서는 남녀의 구애나 결혼 이야기가 많이 기재되어 있다. 솔로몬의 "아가"에는 결혼식에서 열정적인 남녀의 주고 받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어때요 당신의 입으로 내게 입맞춤해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낫다"라고 신부가 노래하면 신랑은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보라 당신은 아름답다. 당신의 눈은 얼굴 차양 뒤편에 선 비둘기 같다.....

당신의 입술은 홍색같고 당신은 입은 어여쁘고...., 당신의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노루 새끼 같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는구나."

(아가서 제1장 제1절,-제4장 1-9절)

야곱과 라헬의 기술은 구약 성서 가운데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가난안 땅에 양친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혼기가 도래했기 때문에 야곱의 어머니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라헬과의 만남의 연애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습관에 따라 라헬의 아버지의 허가를 얻기 위해 7년간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본인의 연애 속에서 라헬의 아버지의 계략에 말려 들어 라헬의 언니와 결혼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라헬에의 사랑에 불탄 야곱은 그후 7년간 계속 일을 해서 이윽고 결국 아버지의 허가를 받아 라헬과의 결혼을 하게된 것이다. 이 여러 해의 노동은 야곱으로서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수 일 같이 생각되었다."(창세기 29장 20절)고 기록되었다.

이 예화와 같이 고대 헤브라이 사람의 문화에 있어서 애정에 입각한 결혼이 일반적이었지만, 한 편에 있어서 가족의 요소나 경제상의 요소를 중시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친족의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 종형, 누이 사이에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절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여 친자간의 결혼은 금지되고, 성불능이 이혼의 원인으로서 인정되고 있었다. 미망인은 동정 받으며, 사망한 남편의 형제가 미망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법률로 정해져 있다. 그 경우 남성이 이같은 결혼을 거부한 경우 그 미망인은 장로들의 면전에서 남성의 신발을 벗겨 얼굴을 두드리는 것이 허용되었다.

헤브라이 사람의 결혼관은 고대 문화 중에서는 비교적 진실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민사적인 단순한 계약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헤브라이인으로서 결혼은 성적 쾌락, 생식, 사랑에 의한 가족생활, 행복한 가정을 가져다 주는 일로서 생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결혼은 기개 높은 이상에 뿌리내린 성스럽게 구별되는 일이었다. 헤브라인의 단지 하나의 신 야웨이(Yahweh)에 대한 신앙과 그 신에 선택된 백성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결혼관에 반영되어 있다. 결혼에 관한 말이 신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형태와 같이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 이스라엘 시대의 결혼의 모두 이상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확실히 여성은 보호받거나 존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지만, 한 편에 있어 여성의 성적 역할면에서 더럽혀진 존재로 보여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기원전 600년경부터 40년까지는 욥기(구약성서)의 저자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는 바와 같이 여성을 멸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예를 들면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제14장1절)라든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동4절)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동제25장 4절)등과 같은 말이 기재되어 있다.

고대 유대 문화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 사회여서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대체로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오늘날 유태교가 기도하는 매일의 기도문 속에는 "주여 축복해 주소서 우주의 왕, 우주의 신이여! 우리들을 여자로서 만들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이스 문화에 있어서 결혼

그리이스 사람과 헤브라이 사람은 역사적으로 보아 유사한 점이 많지만 특히 결혼관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그리이스 문화에 있어서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 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나뉘어져, 행정면에서 달리하고 있었던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시민의 권리나 의무라든가 결혼에 관한 사고 방식이나 법률등이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스파르타 지방에서는 오늘날의 '공개결혼'에 필적할 정도로 상당히 개방적인 것이었는데 비하여 아테넬르 중심으로 한 문화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스파르타의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를 친가에 유인해 내어 새로운 주거지에 따라 간다는 의식이다. 신부는 새로운 거주지에 따라 들어 갈지라도 신랑은 30세가 되기까지 군대의 막사에서 거주하고 동거가 허용되지 않는다. 밤의 장막의 드리워지고 나서 처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었다. 더우기 60세가 되기까지는 다른 군인들과 더불어 군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이 지켜졌던 것은 과도한 성생활에 의한 군대의 체력 소모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남편의 성불능에 의해 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남성에 의해서 회임하는 것이 허용되는 습관이 있었다. 더우기 남편이 처와의 성행위를 좋아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아이를 바라는 경우 당국의 허가를 얻어 다른 남성에 의해 아이를 님신하는 것도 허용되었다.

스파르타의 남성은 용맹한 군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도 전장에 불려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하여 남편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군력을 휘두르고 또 자유롭게 성생활을 즐길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의 남편과 두 세대를 갖고, 그로 인해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한 여성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원칙적으로 1부 1부제가 지켜지기는 했으나 남편이나 처를 다른 이성과 분별한다는 습관은 비난받는 것이 아니고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한편 아테네 지방의 여성들은 스파르타 지방의 여성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스파르타의 여성에게는 가사의 책임이 적었는데 비해서 아테네 여성은 가사를 꾸려나가는 노동자로서 취급을 받고, 경제적으로는 주로 아버지나 남편에 의존하는 상태였다. 아이를 낳고 가문의 혈통을 지키는 것이 여자의 역할이었다. 그 때문에 간음을 범한 처를 남편이 살해해도 죄가 되지 않는 습관이 장기간에 걸쳐 지켜져 왔다. 이같이 여성은 별시받고, 또 결혼 자체가 경시된다는 경향이 있었다. 이같은 아테네 문화의 결혼관을 피타고라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테네에는 두 가지 원리가 존재한다. 하나는 질서를 만들어 내고 광명을 초래한 남자를 창조한 선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혼돈을 만들어 내고 암흑을 초래하며 여자를 창조한 악의 원리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 속에서 결혼에 대한 호의적인 생각을 기술하고 있는데, 다른 작가들은 비호의적인 결혼관을 피력하고 있다. 때로는 결혼에 있어서 사랑을 우롱조차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인 파라다스는 다음과 같이 비꼬는 말을 남기고 있다. "결혼은 남자에게 불과 이틀의 행복밖에 가져다 주지 않는다. 신부와 상에 앉는 날과 처를 묘지에 가로 누이는 날의 이틀뿐."

로마 문화에 있어서 결혼

로마를 부흥시킨 인물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로물러스(Romulus)의 손에 의해 결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할리카르낫소스(Halikarnawwos)의 디오니시오스(Dionysios)의 기술에 의하면 (기원전25년)다음과 같은 권리가 남편에게 주어져 있다. "성스러운 결혼에 의해 남편과 맺어진 여성은 남편의 모든 소유물을 공유하며 성스러운 의식에 함께 따라가는 것이 허용된다. 처인 자는 남편이 바라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남편 이외의 사람에게 비호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남편은 처를 필요로 하거나 방면하는 것이 가능한 소유물로써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편이 아내를 완전하게 지배한다는 습관은 로마의 역사를 통하여 일관해 있다. 남편이 아내에 대한 지배권은 로마의 아버지들의 여자에 대한 지배권의 연장이라고 생각되어져 왔다. 아내는 저능자라고 생각되며 취급되어졌던 것이다.

로마의 문화에 있어서 권력은 법률로 간주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권력은 법적 구속력을 수반하는 것이다.이렇게하여 로마에서 결혼은 자손을 낳고 가족의 재산을 지키며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그를 위한 법적인 조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로마의 법률이 후에 영국 관습법의 기반이 되며 남편에 많은 권리를 주는 결혼에 관한 법률을 낳고 있다. 거기에서는 아내에 대한 엄격한 법칙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남편의 권리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정해져 있다.

로마인의 남편은 아내로서의 의무를 태만히 하고 정해진 규정에 위반하는 아내를 아테네 사람과 똑같이 살해하는 것이 허용되었다(이혼은 기원전 231년까지 허용되지 않았다). 아내가 간음죄를 범하거나 인공적으로 유산을 하기 위한 약을 마시거나 남편의 술창고의 열쇠를 무단으로 복제한 경우에는 아내를 살해할 권리가 남편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로마의 여성은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며 "술을 마시는 여성은 모두 선행에 마음을 닫고 모든 악행에 마음을 여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 9년 역사학자인 디오카시우스는 결혼이나 처의 역할에 관한 로마인의 사고방식을 다음과 같이 교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정조를 지키고 헌신적으로 가사에 임하며, 육아에 전념하고 병들지 않고 네가 병든 때에는 개호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반려가 되며, 불은할 때에는 너를 위로하고 청춘의 광적인 열정을 억제하며, 늙어서는 불쾌감을 적절하게 억제하는 것이 가능한 아내보다 우수한 것은 없다."

이 기술에는 로마의 역사를 일관하여 신봉하고 있던 로마인의 결혼관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와 동시에 기묘하게도 오늘날 결혼식에서 서약하는 맹세의 말과 유사하다.

원시 기독교 시대의 결혼

원시 기독교 시대에 있어서 결혼관은 구약 성서 시대와 다르며, 사랑과 관련한 것은 그다지 고려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직한 제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때의 결혼에 대한 사고방식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결혼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사물이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고 방식이다. 오늘 날에도 이같은 결혼관을 많이 갖고 있다. 또 자신의 생각으로 사정이 좋도록 이것을 곡해하여 해석하는 자도 있다. 즉 "아들을 많이 낳는 것"이 "신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전쟁이나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늘린다는 목적을 위장하고 있다.

둘째는, '불이 붙는 것'(성정에 불타는 것)보다도 "결혼하는 것이 낫다".라고 결혼을 필요악으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성 행위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 입각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성욕의 충족'이 요구된다. 이것은 대부분 사람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욕의 충족'을 위해 결혼한다는 사고 방식이 신에 의해 축복받을 필요를 당시의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오늘 날에도 이같은 목적에서 결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미성년자의 결혼에 그같은 예가 많이 발견된다.

세째는, 결혼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이다. 기독교의 재림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망한 당시의 기독교 신도의 신념의 결실이다. 결혼함으로서 구속받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길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오늘 날에도 같은 이유에서 결혼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일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출세의 장애도 된다는 이유에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 결혼에 관한 법률이 수 차례 개혁되었다 예를 들면 복혼은 금지되어 있었다. 구약 성서에서 보여지는 부성 사회에서의 복혼 제도는 '선택된 백성'을 늘리는 것이 당시 문화에 있어서는 필요로 되고, 용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매우 영향력이 있는 저술가인 테르툴리아누스는 '복혼제를 신이 희망해서 주는 것이라면 이브를 창조했기때문에 아담의 하나의 늑골이 아니고 몇개의 늑골에 의해서 많은 여성이 만들어졌음에 틀림이 없다'고 하는 교묘한 표현에 의해 복혼의 반대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2세기가 되면 결혼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여성의 육체는 악의 중심이며, 결혼은 '사탄의 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AD160 - 230)의 말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여자여, 너는 악마를 불러 들이는 문이다. 악마가 바로 정면에서 공격할 수 없는 자로 미로로 유혹했다. 신의 아들이 죽음에 이른 것은 너의 책임이다. 따라서 너는 영원히 베에 몸을 숨겨 비탄에 빠져 슬퍼할지어다."

기원 370년 경에 발생한 은둔 생활을 미덕으로 하는 경향에 의해 결혼에 관한 종교적인 사고 방식은 보다 불건전하게 되었다고 해도 좋다. 당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강했던 성직자들은 결혼을 멸시했다. 그 뿐만이 아니고 기혼자에 대해서도 금욕 생활을 장려하고 성 행위를 삼가할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성에 대한 태도는 중세에까지 미치고 있다.

중세에 있어서의 결혼

기원 376년에 로마 제국은 북에서 밀어닥친 이방인에 의해서 정복되고 말았다. 이방인에 의한 로마 제국의 지배는 5세기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한 결과 결혼관이나 결혼에 대한 습관도 외국의 영향을 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게르만 민족의 전통은 일부 일처제이며 남편이나 아내 어느 쪽이든 간음은 벌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프랑크 민족(라인강 지방의 게르만 민족의 일파)에 있어서는 복혼이 허용되며, 신부는 매애의 대상이 된다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결혼은 생식, 경제, 성욕의 충족을 주된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결혼관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5세기가 끝날 무렵이 되어 서로마제국은 붕괴하고 소위 중세 시대로 이행한다. 부족중심의 사회로부터 국가 중심 사회로의 이행시대이다. 국왕의 권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봉건 귀족의 권력은 감소하고 있었다. 아랫 사람으로 있는 시민의 결혼에 관한 권력도 약해졌던 것이다. 이 시대에 하층 계급 사이에서는 인생의 반려를 얻기 위해 결혼이 허용되게 되었다. 또 이브의 후손인 여성은 죄가 깊은 자라는 사고 방식을 교회가 전승하고 있지만, 상당한 사고방식에서 유연성이 보여지고 있는 것 같이 되어 있었다.

중세가 끝날 무렵이 되어 이윽고 로맨틱한 결혼의 사고 방식이 대두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귀족이나 기사들 사이에 연애하는 습관이 우선 프랑스 남부에서 발생하고 이윽고 프랑스, 독일, 영국의 궁궐을 중심으로 폭 넓게 퍼져 나갔다. 이들 사람들 사이의 연애의 스타일은 하나의 형태로 일관된 것이 아니었다.

그 스타일은 고상한 품격이 유지되고 기개높고 고귀한 여성이 연모의 대상이 되며, 그렇게 쉽사리 걸려들지 않는 여성을 기사들이 화살을 쏘아 맞추듯 자기 것으로 하려는 용감성이 칭송받고 있었다. 이같은 타입의 연애는 중세에 많이 기록된 '장미 이야기'라고 불리우는 것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또 실화로 전해지고 있지만 그 하나인 프랑스 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lardd: 1079-1142)와 애인 엘로이즈의 연애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당시 교회의 계율에 위반하여 결혼하기 위해 많은 고뇌를 맛보게 되었다. 아벨라르는 거세된 후 수도승으로서 은둔 생활로 여생을 보내고 엘로이즈는 수도원에서 격리되는 운명으로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 받음으로써 사모하는 정을 주고 받는 것이 중지되지 않았다. 이 두 사람 사이의 '로맨스'는 상류 사회의 연애열을 오히려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이들 이야기는 실화에 자극 받은 당시의 귀족이나 기사들 사이에는 '여성'과 '싸움'에 대한 동경이 높아졌다고 생각되고 있다. 연모의 대상인 여성을 얻기 위해 '싸움'을 정당화 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기사들은 충성심, 기사도 정신(용감함이나 친절함), 정의감, 정절감을 중시하며, 압제, 고통받는 사람들을 비호하고 고귀한 여성(모두 결혼해 있으며, 다만 동경의 대상이다)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또 그들은 당시 힘을 나타냈던 이슬람교에 대항하여 기독교의 포교에도 헌신적으로 힘썼다.

중세에는 연애에 영합적인 움직임이 있는 한편 로맨스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학자도 많이 배출되었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파의 이탈리아 철학자이며 신학자로서 중세가 끝날 무렵부터 상당한 영향을 준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은 남성의 변형-실수하여 창조되었고 결손되고 비틀어진 존재"라고 하는 여성관을 기술하고 있다. 또 아이들은 어머니 보다도 아버지를 존졍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우기 아내는 '남편의 의복의 청결을 유지하고 화롯불이 꺼지지 않고, 남편의 발을 고루 씻고 깨끗한 수두, 양말을 준비하고 식사를 마련하며, 여러 모로 마음쓰기를 태만히 하지 않고, 쾌적한 침상 깨끗한 요, 홑이불, 나이트 캡, 모포, 놀이기구, 술잔 및 여기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는 '비밀스런 것' 등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시대의 결혼

중세에는 계층을 넘어선 시민의 교류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출생한 계층은 대부분 예외없이 생애동안 붙어 다녔던 것이다. 개인 생활의 많은 영역에 있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소위 정신 문화의 개혁적 역할을 수행했던 르네상스운동이 시초였다.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창한 르네상스는 기원 1400년경부터 시작되며 이후 200년간 계속되어 사람들은 당시의 행정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가치관에 저항하고 새로운 사고 방식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 결혼은 의연히 경제 목적에 의한 것이 많았지만, 결혼의 정신적인 해석이나 성 생활에 관해 새로운 사고 방식이 대두되었다.

이 시대의 상류 사회 여성은 특히 새로운 자유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에로틱한 의상을 몸에 걸치고 화장품을 사용하는데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 대학에서 배운 교양을 높이는 여성도 증가했다. 인쇄물이 증가함에 따라서 지금까지 성직자에게 한정되었던 교육의 문호가 열려지게 되었다. 이같은 자유의 도래는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개인에 속하는 여러 가지 권리에 눈을 뜨고 개인의 존엄을 인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움직임의 한편에 있어서 당시 여성에게도 어두운 측면이 없을 수는 없다. 일부의 한정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한편 '죄 많은 이브' '욕정의 포로'로 고발되게 되며, 마녀로 취급된 여성들도 있었다. 이 마녀 수렵의 습관은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는 아내를 추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당시 남편들이 용이하게 되었다. 마녀 수렵은 15세기에 알프스 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지방에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여성 집단이 도미니크파의 하인리히 크레머와 제임스 스프랭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심문 재판에 의해 박해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들 두 사람이 쓴 마녀 수렵교본이라 할 수 있는 '마녀의 망치'라고 하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마력은 욕정이 만들어 내는 것, 탐욕한 여성에게 걸려드는 것"이라고 기술한 이 책에는 마녀를 고백하게 하기 위한 고문 방법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널리 읽혀져서 1520년에는 14판이 나왔다.

종교 개혁은 16세기에 시작한 것이지만 르네상스와는 거의 병행하여 발생하고 있다. 르네상스가 활기차고 다이나믹한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데 반해, 이 개혁 운동은 주로 중류 계층에서 하급 계층의 시민 사이에 넓혀진 것으로 개인의 자유나 자립을 강조한 운동이었다. 웰즈(Herbert Geo- roge Wells:1866-1946)에 의하면 주로 다음 세 가지 그룹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하나는 로마 제국의 화폐가 유출되는 것을 막고 자신의 부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당시의 왕후 그룹, 당시 교회의 지도자, 나아가서 교회의 내부에서 악덕 행위를 시정하기를 바라는 성직자." 예컨대 앗시지의 성 프란시스코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종교 개혁 운동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된 프로테스탄트파 교회의 성립이라고 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더우기 결혼에 관한 계율의 개혁이라는 결과도 생기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르틴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른 결혼을 '성전'(聖典:교회의 허가 없이 이혼은 될 수 없다)이라는 제도에 반대 입장을 주장했다. 루터는 결혼의 목적으로 성욕의 충족, 생식을 긍정하며, 부부의 정절과 공동생활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개인의 성장이나 자아 실현이라고 하는 사고 방식은 당시 결혼의 목적으로서 염두에 두지는 않은 것 같다.

한편 일찌기 도미니크파의 수도승이었던 마아틴 부-사의 입장도 루터의 사고 방식에 가깝다. 부-사는 결혼의 정신적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남편이 불륜 행위를 한 경우에 그 아내는 이혼하며, 다른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17세기 독일, 네덜란드, 북유럽, 스코틀랜드에 받아들여지고 보급되었다. 영국이 이것을 용인하게 되었던 것은 그때부터 이백년 뒤의 일이었다.

죤 캘빈은 종교 개혁의 선구자에 비하면 인간성이 약간 모자라는 인물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예를 들면 "결혼외의 남녀 교류 관계는 비난받아야 할 것이며.... 결혼은 인간의 욕정을 관리하는 수단으로써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부부는 자신들의 관계가 욕정의 방종에 의해서 물들지 않도록 경고 받으며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같이 캘빈의 결혼관에는 즐거운 일이나 관능적인 성 생활을 추구하는 인간적인 일은 긍정될 수가 없다. 오늘날에도 캘빈의 입장을 옹호하는 자도 있다.

'신 세계'에 있어서 결혼

낡은 세계의 엄격한 제약에 의해서 속박 받고 있던 관습의 일부는 '신 세계'에 있어서도 계승되고 있다. 예를 들면 관능적인 성 생활의 기대, 근로의 중시라고 하는 가치관이 신 세계 개척자인 총교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같은 도덕주의는 고대 로마의 율법에서 비롯되어 후에 영국의 법률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보수적 가치관에 입각한 것이다.

엄격한 계율에 입각한 법률이 미국 대륙의 초기 식민지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답습되고 결과적으로 여성에게는 많은 의무가 부과 되어지는 한편, 권리는 조금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여성은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또 아내는 남편의 성적 욕구에 순종하는 것이 강요되어지게 되었다. 더우기 처의 행동이나 거주의 자유도 남편에 의해서 규제받는 것이다.

신 대륙을 개척한 초기에는 결혼의 주된 목적은 편의를 충족하는 반려를 얻는 데 있었다. 또 결혼 생활은 따라서 신앙 생활이 중심이었던 종교관에 따라 채색되었다. 즉 결혼의 상대를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 방식이었던 것이다. 더우기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의 영위는 자녀의 출산, 교육이나 신앙 생활보다도 우선적으로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유의 바람은 불기 시작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낡은 전통을 포기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1630년대가 되어 안네 허친슨은 여성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지 않은 결혼, 남성에 종속하는 것이 강요되고 있는 결혼을 의문시하고 여성으로서 처음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찬동자들은 결과적으로는 박해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지만 남녀 평등을 목표로 하는 운동은 끊이지 않고 아비게일 아담스로 대표되는 후계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비게일은 후에 미 합중국 제2대 대통령으로 되었던 존 아담스의 부인이다. 그녀는 미국에 도입된 영국의 법률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는 의견을 주장했다. 특히 여성은 남성과 같은 권리를 헌법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 결혼 제도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녀는 남편에 대하여 상당히 강경한 서한을 보내고 있다.

"당신이 지금부터 작성하리라고 생각되는 새로운 법률 조문에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여성에 대하여 관용적이고 호의적으로 배려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의 남편들에게 무제한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결코 되지 않도록. 세상의 남자들은 상황에 따라서 폭군으로 변신하는 것을 꿈에서도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 만약 여성에 대하여 이번에 특별한 베려를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들 여성은 반항을 위해 궐기할 결의를 굳게 하고 있는 점도 잊지 마세요. 또 우리들의 요구를 부시한 법률, 우리들의 대표가 참가하지 않고 제정된 법률은 일체 무시할 결의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이같은 용기있는 아비게일 아담스나 찬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일반적 권리나 결혼에 있어서 남녀 평등권을 회복한 것은 그로부터 수십년 후가 되고 나서였다. 오늘날도 자유가 없는 결혼은 많은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어떤 나라에 있어서는 결혼은 부모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수 년전의 일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샤 왕녀는 부모의 뜻에 반하여 평민 남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과 더불어 처형되었던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은 자신을 대신하여 형에게 처형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하고 있다. 우선 왕녀는 나면의 면전에서 사살되고, 이어서 남편의 머리가 잘려졌다. 그런데 미국의 중류 여성들이 서서히 권리를 취득함에 따라-예를 들면 투표권의 획득이나 휴머니스트 운동의 발전 등,-결혼도 급격히 변모했다. 오늘날에는 취업 여성의 수도 증가하고, 동시에 육아에 다소라도 참여하는 남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더우기 결혼의 형태, 그 자체를 의문시하고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도 증가하고 있다. 그 한편에 있어서 수중에 넣은 자유를 창조적으로 사용하고 개인의 성장을 계획하면서 동시에 결혼 생활이 생애 동안 계속 되도록 노력하는 커플도 적지 않다.

결혼에 있어서 자유란?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이제까지의 역사나 전통이 우리들의 결혼관이나 결혼의 존재 방식을 결정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문화가 보다 많은 자유를 추구해서 변화해 온 것처럼 우리들의 결혼이나 개인의 존재 방식도 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변화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개인주의도 정착했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결혼 생활에 의해서 침해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혼의 길을 선택하는 자도 증가하고 있다. "나는 자신의 공간이 필요하다. 자유를 희망한다."라는 말이 오늘날 부부 사이에 교환되고 있다.

그러? 자유라는 말은 강력한 것이다. 자아 실현을 목표로 한 성장 과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ormm:1900-1980)은 현대는 많은 외부의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획득하면서 그 한편에 있어서 수중에 넣은 자유를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부자유로 구속받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우리들이 이전의 자유를 요구하고 싸워 온 정치적 권력에 대치해서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말해서 결혼은 노예적 구속을 의미하고 있다. 오늘날 풍자적으로 많은 커플은 스스로 노예적 구속 상태로 몸을 던지고 있다. TV에 속박되거나 일 중독(workholic)으로 오염되며 여러가지 형태의 쾌락 추구에 탐익하거나 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유가 없다. 이들 사람들은 스스로 억압의 희생자로 되고 있다.

개인주의를 강조한 나머지 오늘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결혼이라는 형태가 인간성을 육성하는 자유를 주고, 육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커플이 적지 않게 되어 왔다. 더불어 생활함으로써 서로를 '살리는' 기쁨, '자유에 관계하는' 기쁨을 음미할 수 있는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커플이 많아진 것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개인의 자유는 많이 논의되어 왔지만 결혼한 커플의 자아 실현을 위한 자유는 충분하게 논의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오늘날 많은 커플은 옛날과 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피로에 지치고 마는 생활에서 해방되고 있다. 자신들의 사는 방식陮르 자신들이 결정하고, 좋아하는 여가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여, 또 개인의 자아 실현은 물론이고 커플로서의 자아 실현을 달성하는 자유가 있다.

그렇다면 결혼에 있어 참된 자유라 함은 무엇인가? 다음 중년 커플의 고백 속에 새로운 자유의감각이 느껴진다. 1년 정도의 동거 생활 후에 결혼할 것을 결정한 이 커플은 결혼 축하연을 베풀지 않고 다만 사실상 '결혼'을 하기로 했다. "왜 축하하지 않는가?" 하고 물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우리들은 '결혼'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이 굴레 맺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즉 두 사람이 깊게 결부된 관계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생애가 끝날때까지 이결의에 따라 노력하기로 맹세한 것이죠., 아마도 그것을 수행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언쟁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로미오와 쥴리엣과 같은 달콤한 환상에이끌리는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는 그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결국은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한 달콤한 꿈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여기에서 끝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네들 잘해냈네!'등과 같은 말을 듣고 싶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들은 '잘 해냈다'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결혼'하는 결의에 따라서 지금부터 그 결의대로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다섯 가지의 결혼관

"때때로 생각해 보았지만 우리들은 왜 결혼했지?"

"어떻게 했습니까?"

"하지만 결혼하던 당초는 당신은 저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였었는데."

"지금도 그래요?"

"그렇다면 어째서 언제나 아이들 편에서만 관심을 나타내지."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요.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그것은 분명하잖아요. 하지만 나로서도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는 걸."

"어머나, 정말이예요?"

"정말이지 않고! 지금도 당신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걸."

결혼하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결혼 생활을 계속해 가는 것도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계속하고 그러면서도 행복하게 되는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하게 되기 위한 동기가 필요하다. 용기도 필요하다. 또 깨닫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행복한 커플은 행복하게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제를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더불어 생활을 영위할까? 때로는 주고, 때로는 받아 들이고, 때로는 타협하고, 얼마나 정열을 계속 불태울까? 얼마나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가? 이들 모두를 학습하고 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앞 장에서는 결혼에 대한 사고 방식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해 왔다는 점을 살펴 보았다.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 역사의 발자취 중에서 형성되고 계승되어 온 결혼을 다섯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개관해 보기로 한다.

때때로 결혼하고 있는 커플의 쌍방이 각각 다른 결혼관을 갖고 있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이 같이 결혼관을 달리 하고 있는 경우 두 사람의 관계는 역동적(dynamic)으로 보다 성장을 초래하게 되든지, 혹은 많은 갈등이 생겨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차게 되든지 할 것이다. 반대로 쌍방의 결혼관이 유사한 경우에는 두 사람의 관계는 공감으로 충만되고 쾌적한 것으로 되든지, 혹은 지루한 것으로 되든지 할 것이다.

그래서 본 서에 있어서 쌍방이 안고 있는 결혼관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그 쌍방의 결혼관의 이해가 보다 사랑으로 충만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를 명확히 하고 싶다.

결혼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다음 다섯가지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편의를 위한 결혼-역사적으로 보아 대부분의 결혼은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좋다. 그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똑같아서 편의를 찾아서 결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섹스의 파트너를 구하거나, 경제적 안정을 구하거나, 자녀를 낳기 위해, 혹은 '모두가 하는 것이기때문에'라고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2)정신적 결합을 위한 결혼-"우리들은 서로 맺어지기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예요. 신에 이끌린 결과이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신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체험은 쌍방이 같은 종교를 체험하고 있는 경우나 쌍방이 신비적으로 결부되었다는 실감으로 충만되어 있는 경우에 많이 보여진다. 이같은 정신적 결합을 통해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3)연애 감정에 입각한 결혼-'영원히 계속하면서 생각하고 불태우는 연심', 훌륭한 신사. 연모하는 길을 막는 장애 극복. '연애 감정'이라고 하면 이러한 것들이 머리에 떠 오늘지도 모른다. 연애 감정에 입각한 결혼은 소설이나 영화 등에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그 같은 꿈을 그리면서 결혼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4)우정에 입각한 결혼-'인생의 반려'를 찾아서 결혼을 하는 사람은 쌍방이 연인이기 보다는 친구로서 계속 있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유사한 취미를 서로 즐기로 공통의 이상을 추구하며 상대에의 애정을 중요시한다.

(5)애정에 입각한 결혼-사람은 애정에 입각한 결혼을 스스로 인생의 사는 방식으로써 선택한다. 다음과 같은 여성의 말은 그 좋은 예로 될 것이다. "우리들은 진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팀인 셈이죠. 애정에 입각한 결혼은 능숙하게 서로 사랑하도록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달성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마음을 합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이들 결혼의 목적 중 모든 요소가 약간씩 포함되어 있는 결혼도 있을 수 있다. 또 이들 몇가지 타입의 결혼 중 하나의 요소를 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쌍방이 완전히 별개의 목적을 갖고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해를 거듭함에 따라 결혼관이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태도나 사고 방식은 개인의 성장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위기. 경험에 따라 바뀌는 경우도 있다. 중병을 앓은 결과 바뀌는 경우도 있다. 혹은 다른 견해가 있다고 느낌으로써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연애에 빠지고, 감정에 빠져 들어 결혼한 커플이 후에 편의나 우정을 찾아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을지도 모른다. 혹은 경제의 안정이나 심리적인 지원을 찾아서 결혼한 커플이 실은 애정에 입각한 결혼이었던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도 곧잘 있는 것이다.

편의를 위한 결혼

편의(便宜)를 찾아서 결혼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되는'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는 이미 보아온 바와 같이 사람들은 정략적, 가계의 계승, 경제적인 목적을 갖고 결혼해 왔다. 물론 성적인 편의를 찾아서 결혼하는 사람도 많았다. 엄격한 농촌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일 손을 찾아서 아내를 맞이 한다는 습관이 있었던 것은 그다지 옛날 일은 아니다.

거기에서는 아내보다 아이가 있는 것이 편리하고나 할까. 불가결한 노동력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던 것이다. 선을 보는 결혼이라는 제도도 부모의 편의를 구한 결과로서 생겨난 것일 것이다. 자신들이 눈에 맞는 며느리나 사위를 맞아들이는 것이 노후의 안정을 가져다 주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서 결혼한다. 그러나 편의를 찾는 이유는 종전의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사회적 편의성', 즉 사회의 통념, 습관과 영합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결혼한다. 사회로부터 기대되고 있는 대로 따르는 편이 기대에 반한 라이프 스타일을 고르는 경우보다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별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라는 생각에서 결혼한다.

"특별히 결혼할지 하지 않을지, 왜 결혼한지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요. 학교를 나와서 이윽고 결혼하고 가정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걸요."라는 이유이다.

젊은 사람들은 소위 '시집 갈 나이'로 되어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하면 자신들도 그럭저럭 결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특히 적당한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간혹 데이트하고 있는 상대가 다른 남자보다 조금은 우수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남아 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그 남자와 결혼해 버린다. 이것이 잘못된 결혼으로 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심리적인 편의'를 찾아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다. 즉 누군가를 돌보아 주고 싶다는 심리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결혼한다. 반대로 돌봄을 당하고 싶다는 원망에 붸겨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그 같은 기대에 따라 주는 상대를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골라서 결혼한다. 그리고 후에 그 기대에 상대가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관계는 붕괴되고 만다. 즉 혼자 생활에 견디지 못해 불만이나 공포심에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또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할 수 없는 사람은 그러한 것이 가능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어 결혼의 상대로 고른다. 이러한 예가 있다.

다프네는 돌보기 좋아하는 타입의 여성이었다. 애교가 있고 외향적이며 파티등에서는 언제나 얼굴을 내고 있다. 코린은 얌전하고 성실한 청년으로 회사의 관리직. 이 두 사람은 결혼했는데 코린은 무의식적으로 회사 사교장에 그녀를 데리고 가면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결혼했던 것이다.

'성적인 편의성'을 찾아서 결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각종 성 생활의 파트너를 갖는 것이 흥미가 있으며, 또 그러한 파트너와의 만남의 드릴(thrill)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결혼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그 한편에 있어서 변화는 없을지라도 일정한 성적 충족이 기대될 수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섹스를 기대하면서 파트너를 찾아서 구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한 사람의 파트너를 손에 넣고 싶다고 원한다.

더우기 혼전에 성 생활을 완고하게 금지하는 종교를 신봉한다든가 부모의 엄격한 가치관 때문에 성욕을 충족하려면 결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결혼한다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즉 사회적으로 인정된 틀 속에서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 충동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게 된다. 혹은 '결혼하기까지는 섹스는 안 된다'고 하는 여성의 말에 유혹되어 결혼하고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자신들의 성 충동에 잘못 대응해서 사회의 인지를 구하는 결혼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족의 편의'를 구하는 결혼에 대해서 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혼전에 임신하고 만 미혼모를 세상에 대한 체면을 생각하거나 신생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 결혼시킨다는 경우도 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대체로 최초의 아이는 다섯 사람 중에 한 사람 꼴로 이미 혼전에 임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가족의 편의를 위해 결혼하는 사람은 적지 않은 것이다.

혼전에 동거 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은 임신 하지 않으면 결혼을 단행하지 않는다. 이같은 것은 젊은이가 충동이나 불안에 쫓겨 결혼하는 대신에 결혼 가능성을 생각하는 기간을 서로 보내고 나서, 그 후에 결혼의 길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쌍방의 깊은 애정과 아이를 낳는 것은 결혼이라는 형태중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는 생각에서 결혼의 길을 고르는 커플도 있다. 즉 아이를 낳는 것이 두 사람의 우선적인 원망이며 안정된 가정을 그 아이에게 제공하는 것이 결혼의 목적인 것이다.

이혼이나 반려의 사망에 독신으로 있으면서 아이를 가진 남녀가 편의를 위해 재혼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의 부모가 될 사람을 찾는 것이다. 아이게게 정상적인 가족 생활을 제공하고 싶다는 원망에 의한 것이다. 편 부모이기 때문에 재혼하고 '아버지(혹은 어머니)'가 얻어지면 경제적 안정은 물론이고 아이의 가정 교육(버릇들이기)면도 좋으며 '아버지'적인 애정도 줄 수 있으며, 가사로서도 뭔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편친의 독신 생활에는 많은 혼란이 수반되며 고독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혼에 마음이 끌려지는 것이다.

'경제적 편의성'을 위해 결혼하는 사람도 많다. 재산에 있어서 혜택박은 두 사람이 협력함으로써 커다란 사업을 하기 위해 결혼한다든가, 어느 한 쪽이 갖고 있는 많은 재산을 노려 결혼하는 예는 적지 않다. 가족의 재산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귀천 상흔'의 결혼에 있어서는 처자에게는 남편의 지위나 재산의 승계권을 인정하지 않기로 되어 있다. 물론 경제적 편의를 목적으로 하는 결혼은 상대에게 재산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행해진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매월 수입이 있다는 것이 매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퇴직후의 고령자들의 재혼도 똑같이 경제적인 동기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연금이나 퇴직금을 받아 두 사람이 생활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안정된다고 생각하고 결혼한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연금의 수급자가 재혼하는 경우에 수령액이 줄어드는 법적 유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형태를 취하지 않고 동거 생활을 선택하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편의성에 동기 부여된 결혼은 그 상대의 선택을 당연히 좌우한다. 기업에서 상급 관리직의 지위를 노리는 남성은 그 기업의 이미지에 맞는 배우자를 고르는 경우가 있다. 생명 보험 회사에 취직을 희망할 때 그 부인의 적성이 체크 대상으로 되는 경우가 있다. 영업을 위해 출장가는 남편을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처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라 해도 경제적 편의를 목적으로 한 결혼은 부부 관계에 만족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예가 다음의 클라이언트의 말에 보여지고 있다.

"지금 나는 어떤 여성과 연애 관계에 있습니다. 그녀는 내가 이혼하면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혼을 신청하면 처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렇게까지 연인을 위해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왕후나 또는 귀족, 상류 사회의 사람들은 자주 '정략상의 편의'를 찾아서 결혼하고 있다. 부족의 결합, 토지, 재산, 군의 세력 결집에 목적이 있다. 왕후의 결혼은 신하들이 정략적으로 배려하여 고른 상대를 며느리로 맞아 들인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른바 며느리나 사위는 정략적 배려의 '인질'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신부와 신랑은 결혼식 당일까지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억압에서 도피하고 신변의 안전을 찾아서 외국에 이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그 나라 사람과 결혼하는 케이스는 오늘날 드물지 않다. 북미등 소위 자유스러운 나라에 이주하기를 희망해도 이민의 수가 법률에 의해 제한되어 있는 경우, 그 나라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이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케이스도 있다.

예를 들면 유럽 공산권의 사람이 자유스러운 서구 제국에 이주하는 것을 희망하고 우선 동독 공화국에 옮기는 일을 한다. 왜냐하면 동독에서는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은 이민을 목적으로 한 편의성의 결혼을 알선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광고가 곧잘 신문에 게재되고 있다.

"외국의 남성, 결혼의 상대인 여성을 구한. 의무를 요구하지 않음. 거주권을 얻는 것이 목적"

지금까지 기술해 온 여러 가지 편의를 찾아서 하는 결혼은 생존을 위한 각종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매일 나날의 양식을 공급하고 가사를 돌보는 자를 감싸고 도는 것은 편리하며 어느 곳이든 함께 침상에 들어가 따뜻함을 주고 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상대와 함께 산다는 것은 편리한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해 줄까 하는 기대(예를 들면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에 따라 주는 상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지극히 편리한 것이다.

때문에 편리성을 목적으로 한 결혼은 여러 가지 현실 문재의 해결에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그 뿐만이 아니고 쌍방이 서로 편의가 충족되고 있는 한 그러한 결혼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쌍방이 결혼에 거는 기대에 쌍방이 따르는 것으로 상호 편의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이러한 결혼 스타일에도 연애 감정이나 우정이 수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깊은 애정에 입각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적 결합을 위한 결혼

정신(spiritual)이라는 말은 정의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지금 까지 몇 세기나 '스피리츄얼'(spiritual)이라는 개념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말을 탐구해 왔다. 옛날 이집트 사람은 인간을 초월하는 것(마음<mind>이나 신체<body>도 아님)을 의미하는 ka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어에는 '숨'을 의미하는 nephesh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 말에는 '혼'이라든가 '마음'이라고 번역되는 psyche라는 말이 있다.

인간성에 있어서 정신적 영역이나 요소를 부정하는 학자는 적지않지만 그 한편에 있어서 그 개념을 정의하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의 정신적 요소를 인정하고 중시하는 경향이 보여진다. 예를 들면 오늘날 사람들은 명상, 기도, 의사 심리학이나 전인적 건강을 구하고 있다. 이들 수단에 의해 얻어진 마음의 안정이나 내적 자기의 깨달음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으로서도 자기 자신의 정신적 요소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인간 존재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가지 양상을 통하여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은 없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인간성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본 장에서 개인의 외적 자기를 초월한 개인의 내적 자기가 서로 만나고 서로 관계를 맺는 대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정신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거나 주는 결혼에 있어서는 쌍방이 참된 친교감에 만족되며 서로 뜻이 맞고 좋은 인연에 의해서 맺어진다는 실감을 갖든가, 혹은 전생에 있어서 이미 인연을 맺고 있었다든가. 이 세상에 도달할 운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정신적'이라는 말 대신에 '성사'(sacrament)라는 말로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초기 기독교 교회의 용어로 성스럽다든가 신비적이라는 개념을 의미한다. 같은 '세크러먼트'라는 말이 '성찬식'이라고 변역되지만 '성찬식'이라 함은 신의 사랑이나 은총을 나타내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서 의식이다. '성찬식'은 그 의식에 관계하는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상징'으로써 역할을 수행한다는 신비성을 수반하는 것이다.

결혼을 이같이 하나의 성사로서 생각하는 초기의 기독교 신도들은 결혼의 신비적인 요소를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성서에 기재되고 있는 가나에 있어서 결혼이야기에 보여지고 있는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다. 성서에는 결혼 축하석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는 물을 순결한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요한복음 2장 1-11절)초대 교회는 이 곳을 결혼의 성사적 요소(신비적 요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결혼을 성사로 보는 사고 방식은 원래는 헤브라인의 계약관에 입각한 것이다. 헤브라이인은 신과의 계약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의 뜻에 따르고 충실하면 신에 의해서 '선택 받은 백성'으로서 신의 지킴과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종교적 계약인 결혼은 절조를 요구하고 생애를 통해 계속되는 것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오늘날에도 교회에서의 결혼식을 '성찬식'으로 하고 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성찬식'으로서 취급되지 않는다. 결혼식에 어떤 형식을 취하든陮 모든 결혼은 '신비한 행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할 때 성스러운 맹세를 하지 않고 '성스러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결혼은 성스러운 결혼이라는 사고 방식이 있다.

유태교나 기독교의 전통을 계승한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결혼에 있어서 신비성을 인정함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육체, 마음, 정신이라는 요소를 갖추고 있음과 동시에 특히 이 정신성의 존재나 의의를 인정했던 것이다.

어느 것이든 결혼은 성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배경을 가진 커플은 아마도 그 성스러운 결혼의 성공을 찾아서 노력함에 틀림이 없다. 불행, 욕구불만, 폭력 등을 경험해도 이혼의 가능성을 생각함에 따라 참고 수용할지도 모른다. 혹은 '기도하는 것'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혼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 자체에 강한 죄의식을 느끼거나 하기도 한다. 이같이 '정신적'부부 관계에서 상당한 강인한 힘으로서 작용하는 점이 있다.

그러네 이같은 종교적 결혼관을 갖고 있지 않는 자에게도 결혼에 있어서 정신적 요소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우주를 지배하는 누군가의 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곳을 향해서 맹세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인생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요소를 인정하고 두 사람의 만남의 신비성을 표현하는 의식에 나아가 참가한다.

결혼이 정신적 관계라는 실감은 자주 두 사람이 결혼 맹세의 말을 입으로 할 때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거기에서 혼의 깊숙이나, 정신의 절정에서 만남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소위 절정 체험이라고 말하는 극치 정점에서의일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절정체험은 우주 모두가 하나로 통합된 듯한 체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체험은 인간의 성격을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이같은 체험을 하는 것은 그것이 '성찬식'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바로 '성스러운' 정신적 요소로 충만된 결혼이 아닐까?

니이체는 이전에 인간은 맹세를 하는 것이 가능한 동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니이체의 정의는 우리들로서는 불완전한 것이다. 사람들이 서약을 하는 것은 그 서약을 지킬 것을 전제로, 서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자신들의 힘을 초월한 존재의 도움에 의해서 맹세를 지키고 싶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 서로 맹세를 교환하는 상대는 그 맹세를 지켜준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만 두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라 든가 '영원히'라고 하는 맹세의 말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연애 감정에 입각한 결혼

연애는 '애정'을 이상화한 것이다.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강렬한 애착심, 애로틱하고 쾌적한 감정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애착심이 건전한 애정으로 육성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단순한 애착심으로 남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연애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수면이나 식욕, 일까지도 방해로 되고 만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이 파탄으로 끝나고 말면 극도의 우울 상태에 빠져 들어가 때로는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이같은 연애 감정은 이른바 조울 상태와 유사한 감정이 물결처럼 엄습해 온다. 최고조의 기분에서 절망의 최저 상태를 오르내린다. 그리이스 사람은 이같은 사랑의 상태를 조울적 감정이라 생각하고 있다. 오르데가 E. 가세트는 '일시적 무능상태'라고 부르고 있다.

이 같은 연애 감정은 오늘날에는 텔레비전, 영화, 잡기 등에 의해서 선동되고 있다. 그 멜로드라마적 요소는 흥미를 돋군다.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 연모대상에 대한 애착심에 사로잡히면 장시간 상대방 눈을 마주본다는가, 전화로써 대화를 하는 것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게 된다. 또 두 사람이 사이만이 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생각해 내는 것도 곧잘 한다.

말, 제스쳐, 신체 언어에 특별한 애정의 표현-다수는 섹시한 의미를 수반한다-으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연애 감정은 대개 그 대상인 상대의 육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데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그 상대의 외적 특징, 특히 아름다움을 과대하게 인식한다. 예를 들면 배우인 리차드 버튼은 풀(pool)옆에 가로 누워 있는 엘리자벳 테일러를 처음 보는 순간 그녀의 육체에 매혹된 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 정도까지 완벽한 육체미를 갖춘 지고한 여성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유방은 묵시적이고, 그 아름다움에 의해서 언제니 제국을 망하지 않게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연애 감정은 그 대상으로 되는 상대의 능력이나 지성을 과대시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간에 이같이 당초에 느낀 상대의 육체미나 지성의 매력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쇠한다는 운명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초의 매력 이상의 무엇인가가 없다면 이윽고 결혼 생활은 파탄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연애 관계는 결혼 바깥 세계의 일로서 생각 되어져 왔다. 제2장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중세에 있어서는 귀족이나 기사들은 의무적인 결혼 생활에 의해서 연모의 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성적 욕정은 억압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안으로 불타는 열정(passion은 고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과 어원이 같다)으로서 쌓이게 되었다.

또 연인들의 만나는 기회는 여러가지 장애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연인을 수중에 넣기 위해서는 싸움 터에 나가서 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조대가 방해되기도 했다. 이러한 두 사람이 결부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가 많았던 것이 오히려 쌍방의 연모의 정을 고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연애관이 오늘날 애정이나 결혼에 관한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착심이나 육체적 매력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은 그 상대를 포옹할 수 있을 대의 희열감이나 반대로 별리의 고뇌를 반드시 한 번씩 맛본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연애 감정에 지배된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물리적으로 격리되거나 장애(가족의 반대 등)에 부딪히거나 하면 오히려 쌍방의 매력은 강하게 되는 법이다.

예를 들면 딸이나 아들이 연모하는 상대를 부모가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교를 도중에 중지하지 않을 수가 없는 먼 곳에 전근했기 때문에 별리의 운명에 있거나, 경제적으로 기반을 갖지 못하고, 가치관이 다르며, 종교가 다르고,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로 된다.

그런데 연애 감정에는 다른 형태나 표현 방법이 있으며 문화에 따라서 다른 말로 표현되어 왔지만 연애에 따르는 요소는 공통적이다. 상대 특징의 과대시, 이상화, 결혼의 원망을 방해하는 장애의 발생, 두 사람의 교류를 방해하는 물리적 거리 등과 같은 요소가 언제나 수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 사이에 가로 놓여진 장애가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결혼이 가능하게 된 때에는 이전의 흥분된 감정이 없어지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연애 감정에 이끌려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커플이 후에 "연심은 없어지고 말았다."라 든가 "부풀었던 감정이 없어졌다."고 하는 불만을 말하게 되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으며, "하니문 기분은 끝났다."라고 하는 표현은 바로 연모의 감정에 입각한 상대의 애착심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가 끝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상황을 결혼 카운슬링을 요구해 온 어떤 커플의 말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은 경제적으로는 그럭저럭 만족한 상태였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그다지 엑사이트(excite)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루함이 끝없는 상태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그 상대를 자신으로서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코 상대를 이상화하거나 숭배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은 현실의 인식에 입각한 것이다.

우정에 입각한 결혼

단순한 연애 감정에 입각한 결혼은 상당히 현실을 떠난 백일몽이나 심한 고뇌의 결과 생기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우정에 입각한 결혼은 땅에 발이 닿아 있다. 또 얼굴과 얼굴을 부합시켜 (때로는 맹목적으로) 상대를 동경의 눈으로 응시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와 따라붙어서 더불어 걷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알베르 까뮈는 이같은 관계 방식을 다음과 같이 교묘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내 앞을 걷지 않기 바란다.

당신의 뒤에 따?가지 않도록 하기위해,

나의 뒤를 걷지 않기 바란다.

당신이 나의 뒤에 따라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의 옆에서 함께 걷기 바란다.

나의 친구로 되기 위해

친구를 의미하는 companion 이라는 영어의 말은 '더불어'를 의미하는 'com'과 '빵'을 의미하는 'panis'를 어원으로 하고 있으며 '빵을 서로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다. 오늘날에 이 말은 더욱 넓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그녀에게 성격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어서 처리할 수가 없다. 여하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었다." "그가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요. 제일 먼저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 반드시 들어 준다는 것", "우리들에게는 공통점이 많이 있다." "우리들은 그렇게 곧잘 섹스하는 관계가 아닌 걸요. 그렇지만 중요한 친구 동료로서 말하는 것이예요."

이들 표현에는 목표, 흥미나 관심의 대상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음악이나 예술 등과 같은 공통된 관심이나 취미나 대상을 갖고 있다든가,테니스 식물등과 같은 공통된 활동을 찾아내는 것 등으로부터 우정이 싹튼다. 이러한 우정에 입각한 결혼은 연애 감정으로 맺어진 관계, 즉 격렬한 애정이 교류하는 관계라기보다도 인생의 파트너적 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언제나 사대와 함께 있거나 함께 행동할 이유가 없고 항상 의견이 일치한다는 이유가 없을지라도 같은 것에 관심을갖고 희열을 느끼며, 또 독자적인 흥미의 대상을 존경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은 편의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음과 동시에 사랑에 입각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우정에 입각한 결혼은 연애에 특히 의의를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 곧잘 생기는 것이다. 또 성 생활을 특별히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더우기 질병이나 다른 이유에서 성욕이 감소하고 있는 사람 사이에 생기거나 한다.

또 연령이 거듭됨에 따라 다른 타입의 결혼보다도 우정에 의한 인연을 중시하는 부부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경향도 보여진다. 말하는 상대, 희,노,애,락의 감정을 서로 나누는 상대, 서로 돌보아 주는 상대, 슬픈 생각에서 해방해 주는 상대라는 쪽이 고령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우정에 입각한 결혼, 부부 관계는 이같이 쌍방의 욕구에서 발생하며, 또 육성되어 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나이를 먹은 사람들만은 아니고 다른 연령의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오늘날 많은 젊은 사람들은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쌍방에 자유로운 우정이 길러진 후,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뒤에 결혼할 것을 결의한다. 두 사람은, 이른바 동료와 같은 친구이어서 인생의 어려운 문제에 하나로 되어 싸우고, 서로 도우는 '전우'이기도 하다.

이들 젊은사람들로서는 성적 관계나 연애 감정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고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우정에 의한 인연을 중시한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상대와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사람이 결혼에 도달한 경우에는 확고한 우정 관계에 입각한 부부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우정에 입각한 결혼에 있어서 쌍방이 친구로 계속해 가고 있다는 경험은 자유롭고 해방적인 관계로 된다. 우정은 사회나 법률에 의해서 정의되며, 규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사자인 두 사람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우정에 입각한 결혼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건전한 부부 관계를 영위하는 기반으로 된다.

그와 동시에 자유로움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 외에 자극을 구하는 경우도 일어날 수가 있다. 밖에서의 자극이나 관심의 대상은 정치 활동이거나 스포츠, 취미이거나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다른 이성광의 성 관계인 경우도 있다. 한 때 유행했던 '공개결혼'은 주로 이러한 우정에 입각해서 결혼을 영위하는 부부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이들 부부는 쌍방이 상대를 구속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정의 인연은...이다." '자유로우며 하는'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friend(친구)와 free(자유)라는 두 가지의 말은 쌍생아 이다. 영어 고어인 free는 '구속'이 아니고 '자유', '응대', '고귀(noble)', '기쁨'을 의미한다. freon이라 함은 '사랑한다'를 의미하며, freud는 현대 영어의 friend(친구)를 의미한다. (뮤리엘 제임스, 루이스 세바리:"우정의 의미")

애정에 입각한 결혼

'애정'은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사랑에 빠지다(fall in love)'라든가, '사랑하는 까닭에(out of love)'라고 말하며 "사랑의 행위"(making love)라 든가 "사랑을 잃는다."라고도 말한다. 가족이나 친구에 대하여 품는 감정도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들 표현이나 형식은 각각 나름대로 올바르다. 그러나 내가 지금부터 기술하는 '애정'이라 함은 그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애정의 교류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도 쌍방이 서로 위로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태어나고 길러지는 애정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예컨대 그 서로의 위로가 상대를 성적 편의나 경제적 편의라는 형태를 취한다고 해도 서로 위로하는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애정에 입각한 결혼을 만들어 낼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무릇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주는 것, 사람을 치유하는 것, 자유를 제공하고, 에너지를 해방하는 것이다. 또 깊이를 수반하고 계속하는 것이며, 상대를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싸울지라도 손에 넣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때로는 그것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바쳐도 좋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잘못이 없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랑의 정의는 유익하지만 때로는 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랑은 산스크리스트 말인 lubhyati를 사용하고 '바라는 바를 느낀다'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그리스말의 eros(에로스)와 agape(아가페)와 같이 사랑을 분리하여 정의할 수도 있다. 웨브스터(Webster)사전에 의하면 '애정이라 함은 동정적 이해나 혈족 관계에 입각한 강한 애착의 감정이나 불타는 정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내가 여기에서 사용하는 '애정'이라 함은 매혹, 욕정, 무조건적인 선의 등을 포함하고 있다. 즉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상대에 대해 심정을 공개적이고,직접적으로(숨겨진 동기를 갖지 않고), 전달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애정은 때로는 불꽃을 튕기는 것과 같이 활기 있는 것이며, 기쁜 감정을 수반한다. 때로는 불타는 것과 같은 정열을 낳고 육체적으로 매혹된다. 기분을 고양하는 경우도 있으며, 우울해지고 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 감정의 뿌리에는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나 감사의 마음이 깃들여져 있다.

능동적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상대에게 온순함을 보이고 상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상대를 원하고 존중하며, 신뢰하고 상대에 위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열정', '애착심', '호감', '헌신'등과 같은 말은 어느 것도 '애정'이라는 말이 호소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프로이트는 애정은 애착이어서 감정은 아니라고 했는데, 좋아하지 않는 것에 애착하는 사람이있는 것이 현실이다.

애정은 상대로서 최선을 바란다.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와 같은 생각을 품지 않는다. 때로는 사랑하는 상대방이 자신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1936년에 영국의 에드워드 6세는 윌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왕자의 지위를 포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는 "모두를 던져버렸다"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진실한 사랑의 관계에 무한의 가치를 발견했던 것이다.

애정에 입각한 결혼은 지금까지 기술해 온 타입의 결혼 이상으로 깊은 인연으로 결부되어진 부부 관계를 초래한다고 생각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마음이 쏠려지며, 쌍방의 마음 깊숙이에서 내적인 자기와 만남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랑은 외적 자기의 깊이에 잠재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근감은 나날의 영위 속에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의 질병이나 경제적인 고난 등 부부 관계를 근접시키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속에서도 새겨난다. 더우기 절정 경험에 있어서 친근감을 맛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때에는 바로 성사적 경험이라고 해도 좋다. 혹은 로소크, 아름다운 꽃, 아름답고 맞좋은 포도주 등을 둘러싼 로맨틱한 밤을 보내는 속에서 느껴질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연모의 정이 생기며 '연모'라는 부부로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친근감은 때로는 독서, 산책, 음악 등을 더불어 즐기는 것에 의해서도 생기는 경우가 있다.

'사랑한다'는 것

지금까지 기술하고 싶었던 몇 가지의 사랑의 태도는 결혼은 사랑하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는 다소 라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무릇 '사랑한다'고 함은 능동적이다. 즉 사랑하는 관계에는 편의의 상호적 충족, 초월적인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신비적인 경험, 격렬한 정열에 불타는 순간, 취미의 공유, 해방적이고 계속되는 우정이 깃들여져 있다. 이러한 요소가 결혼의 접착제로 되거나 일체감을 낳음과 동시에 적절한 거리를 설정하는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결혼은 이들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더우기 건전한 결혼은 지금까지 기술해 온 다섯 가지의 결혼 타입의 요소를 다소라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 모두가 무늬없는 직물과 같이 모든 요소의 가치가 인정되며, 표현되고 있다. 소설가인 나사니엘 호오손은 처에 대해서 묘사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은 영혼의 세계에서 만나고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나의 처는 이세계에서 다만 한 사람의 친구이며, 나는 다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나의 머리,나의 가슴 모두는 그녀에 의해서 차지되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이 자기의 마음, 신체,정신의 모두를 포함함과 동시에 그것이 하나의 사는 방식으로 된다. 그러한 형태의 사랑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를 상실하는 것은 두려워 할지도 모른다. 정신적 관계가 우상 숭배적 관계로 변신하는 것을 두려워 할지도 모른다. 혹은 상대에게 이용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두려움에서 불타는 정열을 억제하고 몸을 맡기기를 거부할 것이다. 이러한 자신을 모두 털어 놓는데 대한 두려움이 상대와의 일체감 경험의 장애로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많은 귀중한 체험을 결하고 있다.

십년 간의 결혼 생활에서 상대와의 일체감을 기대에 반하여 얻지 못한 처인 캐롤은 남편이 수염을 깍을 때 사용하는 거울에 한장의 편지를 붙였다.

"당신에게 변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중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말한 것, 하는 것 중에서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 그렇지만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이해해 주실지 모르겠군요?"

남편 필은 여기에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썼다.

"당신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 주니 기쁨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결혼을 계속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당신을 위해 연기하기는 싫습니다. 나는 나 자신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면 나는 자신의 언동을 바꿀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바뀌고 싶어요."

이같이 다만 편의나 연애 감정, 우정, 정신적인 반려 등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고 각각의 독특함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커플의 관계는 건전하게 육성되는 것이다. "풍요한 때에도 가난한 때에도, 건강할 때에도 병든 때에도, 그리고 파도가 밀려올 때에도 서로 사랑한다."는 관계가 생겨 난다.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무조건 사랑하는 사람 말해도 좋다.

4, 나와 자신의 결혼 생활-과거

"우리들의 결혼은 어쩐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고 방식이 다른 점이 정말 많아요."

"맞아요, 당신의 사고 방식은 당신이 나서 자란 고향 사람들의 낡은 사고방식 바로 그거예요."

"당신 역시 그렇지 않아요. 당신의 가계의 기질 그대로를 노출시키잖아요!"

"어쩐지 우리들은 잘 싸우지요."

"자신만이 올바르고 상대가 나쁘다고 주장하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잖아요."

"어머나!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의 망령에 매달리고 있는 당신이 있기는 해도."

어떤 결혼에나 과거가 있다. 당신의 결혼의 과거 발자취는 아이들 때의 경험, 부모 친족 등 신변 가까운 사람들과 지낸 경험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을지라도 실은 뿌리는 더욱 깊다. 부모의 세대를 넘어선 몇 세대에 관한 사고 방식에는 과거 문화의 영향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라이프 스타일이나 결혼에 관한 사고 방식에는 과거 문화의 영향이 강한 법이다.

가족의 과거

우리들에게는 자신의 과거가 붙어 다니고 있다. 자신의 부모들의 습관, 주의, 주장, 성경적 특징 등과 같은 것이 달팽이의 껍질과 같이 '나'에게 붙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나의 과거의 산물인 것이다. 그것을 의식하면 좋지만 결국은 우리들은 자신의 과거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결혼에 대해서도 똑같으며, 모든 결혼을 쌍방의 가족이 과거에 있어서 어떤 결혼 생활을 보내어 왔던가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예가 있다.

카운슬링을 받으러 온 젊은 커플. 남편은 독일계 미국인. 아내는 일본인. 쌍방의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서 충돌할 때가 많다. 위기적 상황에 빠져 있다. 한 예로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남편이 전통에 따른 독일식의 요리를 바라는데, 아내 쪽은 열심히 노력하여 준비하여도 남편을 만족하게 만들지 못한다. 수 년동안 헛된 노력을 들였으나 그녀는 완전히 맥이 빠지고 말았다. 절망감에 사로잡히고만 것이다. "우리들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라고 탄식하고 있었다.

소중하게 계승되어 온 전통,역할 의식, 결혼의 목적, 아이들의 양육 방법, 음식물의 맛내기 등과 같은 것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늘 따라 다니는 대표적인 과거의 유물일 것이다.

예를 들면 집에서 결혼의 피로연을 하는 습관이 있는 곳에서는 그 축하연에는 그 가족의 전통적인 요리가 마련된다. 자식을 상징한다든가, 뭔가를 상징하는 요리가 나오게 된다. 네델란드에서는 소금과 사탕으로 맛을 낸 크림이 나온다. 결혼에는 달콤하고 신것이 따라나온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웨딩 케익에 당의를 입혀 쓴 아몬드를 장식한다. 또 미혼 여성은 웨딩케익을 전부 갖고 돌아가며 미래의 남편을 상상하는 단꿈이 나타나도록 밤잠을 자기 전에 침상 밑에 둔다는 습관이 있다. 신부인 커플에게 쌀로 샤워를 시키는 습관, "낳게 하세요. 번식 하세요"라고 세번 부르짖으면서 보리를 커플에게 끼얹은 유태교 습관도 자식에 관한 상징이다.

공공 장소에서 쌍방이 손을 잡는다는 습관에 대한 사고 방식이 가족의 전통으로서 계승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나의 가족은 영국 출신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강하고,근면함과 동시에 내향적이고, 특히 타인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한편 나의 남편의 가족은 반대로 애정을 공공장소에서 망설이지 않고 표현한다. 그러한 가족 문화에서 자라온 남편은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로맨티스트이다.

남편과 데이트하고 있을 때 가까이에 앉아 있던 젊은 커플이 손을 맞잡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모습을 보고 "아주 근사한데!"라고 하는 감상을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같은 일을 그가 바람직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도 내심 남몰래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한편 '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로서 타당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자신의 사고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바꿀 결의를 한 후 나는 자신의마음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고 특히 애정을 표현하기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같이 나의 편견이 가족 문화적 유산이라는 점을 눈치채고 더욱 그 편견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도 남편과 같이 '정감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로맨티스트로 되었던 것이다.

과거의 유산을 축복하고 미래를 꿈꾼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계속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결혼의 목적, 가족이나 문화적 전통 같은 것은 하나의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 계승되어 간다. 이들 과거의 유산은 새로운 결혼을 풍부하게 하기도 하고,반대로 곤란한 문제를 만들어 내는 원인으로 되기도 한다.

이같은 과거의 유산의 실태를 명확히 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명확히 된 과거의 유산을 축복하고 감사함과 동시에 미래를 향해서 비약하기 위해 새로운 기대를 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것으로 중요한 때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현재에만 살아 있다고 한다면 과거의 유산을 축복하고 감사하는 것이나 미래를 향하여 비약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공상하는 것'(fantasy)은 대체로 미래에 관련된 것이다. 한편 축제(festivity)는 신학자 하비콕스에 의하면 기본적으로는 과거에 관련된 것이다. 즉 과거에 있어서 일어난 이벤트를 축복하기 위한 행사라고 말한다. 기념일, 생일, 종교상의 축일, 국가 경축일 등 모두 축제의 기회이다. 이 같은 과거의 사건을 축제로부터 끊어 버리고 마는것은 자신의 과거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된다.

그런데 본 장을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최초의 부분은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결혼에서 발견하게 되는 과거의 유산이나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혹은 즐거운 것이든 슬픈 것이든-깨닫는 것을 돕는 몇 가지의 연습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나 사람들의 교류 실태를 이해하는데 편리한 교류 분석(TA)의 사고 방식을 소개한다. TA라고 생략하여 부르는 이 이론은 자신이나 자신의 결혼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으론느 최선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TA에는 몇 가지의 개념에 입각한 이론과 방법이 있는데, 본장에서는 그 중에 두 가지-퍼서넬러티 이론에 입각한 인생 각본이라는 사고 방식과 현재의 결혼에 주는 과거의 영향을 평가하는 방법-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리고 뒤의 장-'나와 자신의 결혼생활-현재' '나와 자신의 결혼생활-미래'에 있어서 기타 방법을 소개하기로 한다. TA를 학습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대단히 재미있고 또 효과적인 이론 및 접근 방법이다.

그런데 본 장을 취급함에 있어서 앞 장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결혼관에는 다섯 가지의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기술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편의를 찾아서 결혼하며, 또 정신적 결합을 찾아 결혼하며, 열렬한 연애의 연장에 있거나, 우정에 입각한 결혼인 경우도 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들 모든 요소를 포함한느것도 가능한 것이다. 아마도 본 장을 확실하게 배우고 읽기가 끝났을 때에는 자신이 안고 있는 결혼관이나 전승되어 온 전통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가 분명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즉 자신의 '결혼의 역사'의 윤곽이 분명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