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인의 가정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어느 가정보다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지만 자기 한 가정의 행복한 생활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창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생동적인 가정이다.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자기만을 위해 사는 개인은 절대로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자기 자신도 만족한 생애를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 가정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오로지 자기 가정 밖에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던 바대로의 천국과 같이 풍성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맛볼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사해와도 같다고나 할까. 사해는 받아 들이기만 하고 흘러 내 보내지 않기 때문에 사해 가 되었다. 사해에는 생물이 살 수 없다. 무엇이든지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개인이나 가정은 사해처럼 생명력을 잃고 만다. 스위스에서 라브리 사역을 하고 있는 프란시스 쉐이퍼 박사의 아내 에디스 쉐이퍼 여사는 "가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가정을 “자물쇠와 돌쩌귀가 달 린 문”이라고 했다.
가정이란 자물쇠가 달려 있기 때문에 한번 그 안에 들어 가서 문을 잠그면 완전히 보호되고 분리되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돌쩌귀가 달려 있어서 필요한 때면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생명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다. 무엇보다 영적 무장을 하고 있어서 이 세상이라는 물결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떠내려 가 는 가정이 아니다. 이 세상에 영향을 주며 이 세상을 주도해 가는 가정을 말한다.
2. 두 가정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있읍니다. 에드워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읍니다.
같은 때에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는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 했던 여인과 결합하여 나중에 자신도 신앙을 저버려 그의 사람됨이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읍니다.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했읍니다.
그들의 후손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 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 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읍니다.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 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 었읍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성이 풍부한 가 정과 그리스도가 떠나버린 가정과의 차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좋은 예입 니다. 당신의 가정에도 영성을 회복하십시오. 신앙적인 원리가 당신의 가 정에서부터 실천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가정 은 깨끗합니까.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또 한 늘 영성이 넘쳐 찬양과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까.
3. 시아버지의 지혜
어느 날 한 목사님께서 믿음 좋고 덕이 많으신 장로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장로님이 가도 (家道) 대해 여러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중 에 훌륭한 시아버지가 되는 비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림 이 서투른 며느리가 처음 시집와서 밥상을 들고 들어왔는데 밥이 좀 질게 되었을 때.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얘 아가야, 나이많은 사람은 진밥이 좋단다.
참 잘했다.”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며느리가 된밥을 해가지고 들어왔습니 다. 이때는 시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면 더욱 좋다는 것입니다. “아가야.
진밥도 좋지만 때로는 된밥도 먹기가 좋단다. 참 잘했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밥 속에 모래가 들어 있 는 상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이런 때도 시아버지는 곧바로 입속의 돌을 입에서 꺼내어 상머리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을 생각해서 돌을 꿀꺽 삼켜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반복하면 언젠가는 좋은 시아버지와 훌륭한 며느리의 관계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며느리를 위해서라면 돌이라도 꿀꺽 삼킨다는 정신. 그때 가정분위기가 좋아집니다.
그런 정신이 있을 때 교회의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더 나아가 사회의 분 위기가 좋아지고 나라의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모든 공동체의 부흥과 발전 과 번영과 천국이 여기에 있습니다.
4. 아름다운 집
어느 교회에 이런 장로님 가정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당회에서 목사님과 이웃 교회와 연합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되는 권사님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장로님이 연합예배를 드리자고 하신 것 같은데. 연합 예배는 안됩니다. 그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아들을 통해서 며느리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며느리 생각에는 모처럼 드리는 연합 예배가 그 지역에서 교회간의 협조와 사회에 대한 교회의 인상 면에서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도 목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시어머니 말씀을 듣지 마십시오. 연합예배는 참으로 좋습니다. 연합예배를 추진하십시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이 가정에서는 권위질서가 무너져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결정을 뒤집어 엎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무례한 망동 이지만. 아내가 남편의 공적인 결정을 뒤집어 엎는다는 것도 스스로 가정 이라는 “아름다운 집”을 허물어버리는 일입니다. 가정의 구성원 모두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중한 마음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먼저 지녀야 할 것입니다.
5. 행복한 모습
옛날 어느 화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기로 결 심하고 화구를 준비해서 나섰습니다.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까 생각 하다가 개선 장군이 말을 타고 승리의 입성을 하는 장면을 그려보았고 또 두 젊은 남녀가 꿈에 부풀어 결혼식을 하는 장면도 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썩 마음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또 농부들이 밭에서 추수하는 광경을 그렸지만 이것도 마음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의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을 위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 한 사랑하는 아내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고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때 그 화가는 그 모습을 그렸고 이제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다고 만족했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모습은 바로 우리의 가정 에 있습니다. 뿔뿔이 헤어져서 하루의 모든 일들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 이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용서와 사랑의 보금자리가 바로 가정입니다.
서로 인내하며 노력하는 가족들의 정성이 행복한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고 기쁨의 모닥불을 피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