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정의 참된 기능과 자녀교육
I . 가 정 에 대 한 성 경 적 이 해
1 . 성 서 속 의 가 정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세계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 가인과 아벧을 출생했고, 이 이후로 인류는
이 창조의 질서를 따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어 왔다.
우선 구약성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의 가정은 아버지를 중심한 이른
바 "부권가족"으로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매우 분명하고, 엄격하고 독특한 종교교육
을 시행하였다. 신 6:4-9은 이를 반영한다. 가정의 이같은 종교교육은 자라나는 세
대와 아울러 기성세대에도 하나님의 선민 곧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임을 철저하게
인식토록 하였다. 따라서 가정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민족적 신앙 형성의 기본
적 자리였다.
족장시대에는 일부다처제라는 얼마간의 예외도 있기는 하였으나, 대체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이스라엘들이 이상으로 생각하였다는 설은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성서는 이스라엘들이 부부의 관계를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과 사랑의 관계
로 비유하면서 정결과 정절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음을 여러 곳에서 보여주고 있
다. 그 중에서 전형적인 예가 호세아서 2장에서 표현된 예언자 호세아와 그의 처 고
멜과의 관계이다. 확실히 처나 딸 등 여성의 지위는 남성에 비해 낮았으나 가사를
경영하는 일이나 여자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는 당시 어느 국가 민족보다도 자유로
와서 드보라 같은 여자 예언자도 출현하였다. 또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복종을 요
구하였지만, 그것은 이른바 부권(patria potestas)처럼 지엄한 것은 아니였고, 오
히려 애정에 의해 지배되는 자리가 이스라엘의 가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곧 하나
님의 자비와 사랑이 이스라엘의 가정 속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었다.
신약성서에 있어서의 가정도 이스라엘의 가정의 모습을 대체로 계승한 것이어
서 엄격하고도 한편 애정에 의해 영위되는 것이었다. 다만 가정교육의 내용이 달라졌
다. 구약의 율법 밖에도 그리스도의 생애와 훈계(엡 6:4)가 첨부되었다. 교육의 과
정에서 헬레니즘적인 교육의 방법도 채용되는 한편 또한 교회에서 행해진 카테니즘
(Catechism) 교육도 첨가되었다. 초대교회 가정이 고수했던 일부일처제도와 성의 순
결, 그리고 유아 생명의 존중이라는 가정 모랄은 그 당시 윤리 생활이 극도로 문란
했던 이교사회 및 세속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회적 선교의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초대교회 후기에 정립된 유아세례는 단지 예전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유아의 인간성 존중이라는 교육적, 윤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신약시대의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써 존중되었으나 이와 동
시에 하나님 나라의 추구와 성취를 위해서는 반드시 로맨틱한 가정생활의 구가만으
로는 충분치 못하였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추구에 성취를 위해서는
친자관계나 형제관계의 단절이 있어야 하며(마 10:34-36) 하늘 나라를 위해서는
스스로 결혼을 포기하고 독신자로 있을 자유도 부여된다(마 19:21, 고전 7)는 바울
의 입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 하였다.
2 . 가 정 - 하 나 님 께 서 세 우 신 제 도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가
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적인 제도(Divine Institution)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가정은 남녀의 자연적 결합이나 인간의 사회적 본능에 의해 시작된 제도가 아니
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세워주신 은총의 제도이다. 창 2:18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는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엿새동안의 창조는 당신의 보시기에 만족스러운 것이
었다. 그래서 창 1장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7번이나 반복되고 있
다(1:4, 10, 12, 18, 21, 25, 31).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 있었
는데 그것은 사람(남자)이 독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의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시고 최초의 가정을 세워주신 것이다.
가정은 인간이 창출해낸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제도이다. 어떻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인 일부일처제 가정제도와 안식일 제도는 이땅에서 나그
네적 삶을 사는 성도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기쁨과 안식을 소망하게 해준다.
더욱이 가정은 단순히 남편과 아내와의 동반자적 생활이나, 자녀를 출산하는 생
물학적 연대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
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계약하실 때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
"으로 자녀를 계약의 범위속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사실 구약의 할례제도나 교회가
시행하는 유아세례는 바로 이런 가정을 통해 계승되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성의
기초 위에서 시행되는 예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
고 있다. 또 가정의 생활과 신앙생활 양자를 조화시키지 못하고 별개의 것처럼 생각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엡 5:18이하에 보면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하신 다음에 가정생활, 곧 가
정에서의 인간관계를 언급하고 있음을 본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딤전 3:1 이하를 보면 감독(지금
의 장로와 목사)과 집사의 자격을 언급하고 있는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라는 말씀이 있다.
본문 또한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에게는 행복한 가정을 이뤄야 할 사명이 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보게 되는 가정불화, 가정파괴, 별거, 이혼 등 위기에 처한 가정을 볼 때마다 그리
스도인은 이상적인 가정생활, 더 나아가서 성경적인 가정생활을 통해 아름다운 천국
의 이상을 보여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늘 우리의 신
문을 어둡게 장식하는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는 따지고 보면 그 문제의 진원지가 가
정임을 알게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신적제도인 가정을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 가운
데서 지켜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3 . 교 회 와 가 정 그 관 계 성
성경은 가정과 교회와의 관계성을 말하고 있다. 즉 가정과 교회는 동일한 구
조 속에서 설명되고 있고 양자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다. 엡
5:22-23까지를 보면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설명되고 있다. 즉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을 명하시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주심같
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도 바울은
가정과 교회를 동일한 관계성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엡 5:32). "교회를 위하여"라는
미명하에서 가정이 무시될 수 없고 "가정을 위하여"라는 이유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경히 여길 수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교회를 위한 의무와 책임을
적절히 수행해야 하며,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내와 남편간의 관계(그리고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 ; 엡 6:1-4)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그의 삶속에 아
름답게 승화시켜 나갈 때 가능한 일이다.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신앙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님을 그리스도인들은 깨달아
야 한다.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한 사람이 교회생활이 원만할 수 없고 남편과 아내간
(혹은 부모와 자녀간)의 성경적 지침을 따르지 않는 신자가 참다운 신앙생활을 영위
할 수가 없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됨을 잊어서
는 안된다. 엡 5:18 이하에서 성령충만을 말씀하신 다음에 곧 바로 가정생활이 언급
된 것은 가정은 성령충만한 삶의 일원적인 현장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과 교회 양자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교회
는 확대된 가정이어야 하고 가정은 축소된 교회여야 한다. 가정과 같은 교회, 교회와
같은 가정이 가장 이상적인 교회, 그리고 가정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루터가 가정을
"작은 교회"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 한 말이다.
4 . 영 속 적 인 제 도 로 서 의 가 정
성경은 가정과 사회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즉 가정은 영속적인 제도로서
가장 기본적인 기초 공동체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으신 후에 "이러므로 사람(남자)이 부
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니라"고 하신 말씀에는 가정조직에
관한 명령이 4번이나 반복되고 있다(창 2:24, 마 19:5, 막 10:7-8, 엡 5:31). 이것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 한 번, 범죄한 후에 세 번, 구약에 한 번, 신약에 세 번 언급
된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예수님이 반복하셨고 다시 바울이 반복한 셈이다.
이것은 가정이란 신적인 제도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이든, 타락한 후든, 구약시대든,
오늘 우리시대든 영속적인 제도임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제도나 조직이 가정이라는 기본적인 관계위에 수립되어야
만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혼과 가정제도를 부인하거나 그 신성한
의미를 약화시키는 어떠한 이론도 성경의 가르침과는 위배된다. 가정은 인간의 이
기적인 욕망을 정당화시켜 주는 제도일뿐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의 견해나, 오늘날 서
구사회에 유행하는 계약결혼, 미국의 사회학자인 마가렛미트(M. Meed)의 결혼(가정)
이론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건전한 사회는 건전한 가정을 통해서 이룩될 수 있으며, 가정을 파괴하는 사회
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그의 "로마제국 패망사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 영원한 제국이라고 믿었던 로마가
패망한 것은 가정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보게 되는 대부분의 사회적인 문제들-이혼, 살인, 동반자살, 성범죄, 청소년문제 등-
의 진원지는 가정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큰 축복중의 한가지인 가정
(제도)이 파괴되고 그 의미를 상실할 때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도 연쇄
적인 혼란과 파멸을 가져올 것은 자명하다. 가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이 주신 이
지상의 영속적인 제도이며 가장 근본적인 안식과 예배의 현장이기 때문에 그 규모나
구성원이 작다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그 고유한 의미가 제한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가정은 고유한 영역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I I . 가 정 을 주 신 목 적
그러면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로는 부부간의 사랑의 발
효장으로 가정을 주셨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와의 동반자적인 삶을 통해서 상호의존
과 보완의 관계를 가지고 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아름답고도 정결한 사
랑이 발효될 수 있도록 가정이라는 터전을 주셨다. 또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신 고
귀한 선물인 사랑이 꽃필 수 있도록 성(sex)을 주셨다. 성은 사랑과 출산을 위해 주
신 아름답고도 신성한 선물로서 부부간의 깊은 관계를 맺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부부간의 관계에서 성의 정당한 사용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고전 7장에 보
면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니라"
고 하셨고(3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동
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5절) 하셨다. 부부간의 성생활에 대해서 이처럼 구체적으
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가정을 파괴하려는 사단의 끊임없는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게
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통해 경건한 자녀를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자녀
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케 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타락과 방종의 시대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 부
부들은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은 교회나 주일학교가 할 일로 착각하고 있
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일을 부모 아닌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신 6:4-9). 부모는 왕적권위로 자녀를 지도 감독하고, 자
녀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선지자적 의무를 다해야 하며 자녀의 죄를 위해 대신 기도하
고 간구하는 제사장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정을 주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인 것처럼(고전 10:31) 기독교 가정의 궁극적 목적 또한 하나
님의 영광을 말할 때 어떤 특별한 일을 통해서만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정
을 주신 것은 부부간의 이기적 삶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상호 의존과 보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가정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과 모범을 보여주
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통해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좋은 가정을 위해 연구해야 한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저절로 생겨나
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연구와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로운 고독에 혼자 살지 않고 많은 불신자 가운데 사는 그리스
도인 가정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얼마나 복된 가정인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불신
자들은 우리의 가정을 보고 "저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이구나" 혹은 "하
나님과 함께하는 가정은 저렇게 사는구나"하는 구별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
다. 가장 좋은 전도는 우리들의 가정을 통한 전도일 것이다. 보다 더 아름다운 가
정, 보다 성경적인 기독교인의 가정을 세워 가기 위해 기도와 말씀 연구에 진력해야
하겠다.
I I I . 행 복 한 기 독 교 가 정 의 참 된 기 능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이다. 가정은 사회를 지탱해 주는 기본
적 요소이면서 그 자체로도 완벽한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가정은 사랑에 의
해 지배되고 있으며 그 사랑은 헌신적이고도 열정적인 것이다. 가정은 가족의 집단
으로 가족의 기능이 있다. 가족을 지역 집단이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갖가지
특수 관심을 추구하는 집단에 비교한다면 그 규모는 지극히 작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가족은 여러가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가족의 기능을
요약해 보면, 생식의 기능, 자녀양육 부양, 사회화의 기능, 교육의 기능과 무의식교
육의 기능, 경제적 기능, 보호의 기능, 휴식의 기능, 종교적 기능 등이다.
가족관계를 통해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가족관계란 가족간의 인간관
계를 의미한다. 가족관계를 통해서 아름다운 가정, 화목한 가족관계를 이루는 것이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T.H. Pestaloch는 "가정의 단란이 지상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 그리
고 자녀를 보는 즐거움은 사람의 가장 성스러운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된 토마스 제퍼슨도 "한 가족이 단란하게 집에서 지냈던 그 짧았던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집을 떠날 때 나는 이 세상에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가정은 인간의 삶의 가장 기본적 보금자리이며 휴식처이며 생활터전이다. 가정
은 그 사회나 교회의 원형이며 그 민족이나 국가형성과 교회의 기초단위이기 때문에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 사회나 교회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다. 예컨대, 가정
이 병들 때 그 사회나 국가 그리고 교회가 병들어간다. 가정이란 인간이 되게 만드
는 장소로서 인간다운 행동과 사고와 생활양식의 형을 만들어주는 귀중한 장소이다.
인간은 가정에서 태어날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 그 가정에서 인간생활에 필요한 신체
적, 지적, 정서적, 사회적, 종교적인 모든 형이 형성되며 또한 모든 인륜과 도덕의
틀이 되는 가치의식의 기초가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이 어린시절, 그 가정에서 제대
로 가정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없다.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문제의 근원지도 역시 가정교
육이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만으로는 어떤 문제의
근원적 치료가 불가능하며 인간다운 인간의 형상을 이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가
정의 분위기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가
정의 조건은 무엇인가?
1 . 여 호 와 를 경 외 하 는 가 정
잠언 기자는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6)고 말하였다. 가족이 인격의 상호 반응으로 맺어진 집단
이라 하지만 자식의 눈에 비친 부모의 인격도 실망과 부정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온다. 그러나 오늘날 바쁘다는 핑계로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는 가정 제단을
통한 가족의 상호 인격성은 변하지 않는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상호가 인격을 존중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서의 지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또 가정예
배를 인도하는 부모에게로부터 하루의 삶을 지도받고 혹은 청산하며 사는 가정, 이것
이 회복되어야 한다.
2 . 가 족 간 에 사 랑 과 신 뢰 가 있 는 가 정
가족간의 사랑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동력이 된다. 잠 15:17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하였고, 또 잠 17:1에 "마른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
득하고 다루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다. 기독교적 가정은 충성된 사랑으로 결합
되어야 한다. 어떤 값싼 센티멘탈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크
므로 우리도 그 사랑의 실천자들 그 사랑의 전달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가정에서의 인간관계는 크게 3가지 관계인데 남편과 아내와의 부부관계, 그리
고 나와 다른 식구와의 관계, 이를테면 고부관계 등이 그것이다. 사실 가장 대표적
인 가정생활의 문제는 가정상호간의 인간관계에 기인하기 때문에 사랑과 이해, 관용
과 수용, 보살핌과 존경가운데서 합당한 예의와 배려를 아끼지 않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가정에서의 질서와 윤리를 확립해 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 할지라도 상호 지켜야 할 예의와 윤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관계를 확립해 가는 노력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
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있고 자녀
는 부모를 경외하고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어떻든 가족 구성원들 상호간
의 사랑과 책임에 기초한 건전한 인간관계 확립은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한 또 하나의
열쇠가 아닐 수 없다.
3 . 교 회 공 동 체 로 서 의 가 족
우리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개인과 교회의 흩어진 인간 가족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 가족관념을 확대시켜서 교회
공동체로서의 가족관계로 개념을 바꿔야 하겠다. 교인 한사람 한사람을 대할 때에
우리 기독교인은 모두가 한 가족과 부모 자녀의 입장으로 대하여야 하며 교계를 나
누고 도와야 한다. 교인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가지는 것이 아니고 나와 교인과
의 관계도 동떨어진 이웃이 아니고 가족이라는 개념을 가진다. 저들의 칭찬이 나
의 칭찬이 되고 저들의 실패가 나의 실패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교
회 공동체로서의 가족관계이다.
4 . 자 기 성 숙 을 위 해 노 력 하 는 가 정
가정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나의 미숙함 때문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
로가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보다 성숙되고 현숙한 모습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음
을 확인해야 한다. 우리들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이기심, 자기 중심적 생각, 몰이
해, 미숙한 감정처리, 격노, 원망, 심리적 불안 등은 한마디로 미숙함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정신적 미숙에서 보다 성숙한 인격체로 변화되어가는 일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첫 번째 열쇠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갈등과 문제가 생길 때 상대를
질책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서로의 문제로 알아 함께 해결을 시도하는 성숙함
이 중요한 것이다.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이 문제가 생기면 상대를 바꿈으로서(이
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따름이다. 이것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I V . 가 정 과 자 녀 교 육 의 관 계
1 . 가 정 과 자 녀 관 계
가정에서 자녀들은 곡식밭의 종자와 같고 나무의 묘목과 같다. 좋은 묘목은
좋은 땅에 적당한 거름과 물을 주어 기르면 튼튼하게 자라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
지 않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 자녀들의 기초를 잘 다져 튼튼하게 키우면 다음에 사
회생활에 풍파가 있다해도 아무 동요없이 나라와 교회와 가정에 귀한 기둥이 될 수
있다. 특별히 가정이란 인생이 출발하는 곳이요, 부모와 형제간의 사랑을 최초로 경
험하는 곳이며, 부모와 자녀간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종횡구조로 예의범절 등 사회생
활을 최초로 학습하는 곳이다. 또한 가정은 모든 행동의 기초가 이뤄지는 곳이다.
그래서 건강의 기초를 세우며 희로애락의 정서적 생활을 경험하며, 생활의 방향을
세우며, 옳고 그름을 알게 되는 지적 인격형성의 기초를 학습하는 곳이다.
2 . 자 녀 교 육 의 시 기
심리학적으로 볼 때 유년기와 소년기를 지나 중고등학교시절은 무엇인가 찾
는 시기이다. 아직 다른 생각과 습관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있는 때임으로 마음이
매우 부드럽다. 그러므로 이 때에 경건한 가정의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자녀들과 뜨
겁게 경건훈련을 쌓도록 해야 한다.
자녀교육의 시기는 빠를 수록 좋다. 요셉푸스는 말하기를 "교육은 어린아이가
무엇인가 느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즉시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자녀교육이 아주 어린아이 즉 젖떼는 즉시(사 28:9) 시작되었다. 삼상 1:23-23
에 보면 사무엘의 모친 한나는 아들을 양육하여 젖떼기까지 기르다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제사장 엘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한나는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전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도록 하였다. 그 결과 당시의 엘리
의 아들들이 불량자로 여호와를 알지 못했지만(삼상 2:12) 이런 환 경속에서도 사무
엘에게는 악한 것이 침입치 못했다. 그래서 후일에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이다.
3 . 자 녀 교 육 방 법
이스라엘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들에게 교훈을
들려주어야 할 의무를 1차적으로 짊어지고 있었다. 특별히 출애굽 사건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등 이스라엘 초기에 있었던 추억들은 어린이들 앞에서 들려주어야 했다
(출 10:2, 12:26-27). 더우기 모세는 십계명과 모세 5경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
칠 것을 모든 이스라엘에게 명했다(신 6:1-9).
이처럼 아버지에게서 자녀에게로 이어지는 유산전수의 의무는 이스라엘 제 1국
가시대 말엽까지 계속된 중요한 의무였으며 이 유산을 받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
음 세대에 전해야 할 교육전통의 연속성의 원칙은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교육의 교리
로써 구체화되었다(시 78:3-6). 그리고 제 2국가시대에도 자녀들은 그의 아버지로부
터 현자들의 말씀을 통해 첫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그 말씀을 존중하게 되었다(잠
4:3-4).
고대 이스라엘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은 자녀양육과 교육을 부모의 가장 중요
한 사명 중 하나로 생각하였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경
외심을 갖게 하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현세적
축복에서 비롯되는 지혜는 매우 존중되었으며 인간 성공의 최고 조건으로 간주되었
다.
교육의 일반 목표는 첫째로 히브리 국가의 역사적 유산, 즉 하나님이 그 백성
과 맺으신 계약 이야기와 그 후의 역사에서 계약에 의하여 빚어진 일들에 관한 이
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둘째로 삶에 있어서의 윤리적 행동에 관한 교육, 즉 지상
의 궁극적인 행복을 획득하기 위하여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위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교육하는 것이다.
이중 첫번째 목표는 이스라엘 국가 형성기에 강조된 것으로 신생국가를 전승할
후세대들이 하나님과의 계약에 의거해서 국가건설 당시 놀라운 역사적 추억들을 생
생하게 전수받아 확고한 민족의식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토대로 하
여 국가가 확고한 기반위에 서고 왕국이 그 조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될 때
두번째 요소인 현세적 선을 지향하는 구체적인 윤리적 유일신론이 지혜문학에서 강조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성경을 기본으로 삼아 자녀들을 교육하여야 한
다. 믿음이란 삶의 전체를 내어 맡기는 전인격적인 결단이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믿
고 실천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녀교육은 깊은 대화와 친교에 근거해야 한다. 상호 신뢰로 용납과
이해의 분위기 속에서 부모와 자녀간에 자연스러운 대화와 사귐이 있을 때 교육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것이 없는 교육은 자녀를 노엽게 하여 간단을 이루고 만다.
또한 자녀에 대한 교육과 훈계는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자녀를
향하여 분노를 표시하거나 훈계나 교육할 때 기분내키는 대로 또는 분노로 채찍질하
고 훈계하여서는 안된다. 아이들 나름대로 이해하고 용납이 되고 순복할 이치를 가
지고 있는 것이라야 교육이 이루어진다. 무작정 명령만 하면 부모를 싫어하고 결국
가출하게 된다. 자녀에게 빈정대는 훈계, 그리고 자녀의 미래를 잘라먹는 욕설 등의
인사는 자녀를 노엽게 할 뿐 이익이 없다. 따라서 자녀를 훈계할 때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된다(엡 6:4). 이것이 부모가 자녀교육과 양육과정에서 가져야 될 기본원
칙이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개성을 살려주어야 한다.
4 . 가 정 교 육 의 내 용
기독교 가정교육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녀들의 종교적
의식의 계발 내지 신앙의 전승이라고 하겠다. 종교의식의 형성과 신앙의 전승은 쉬
운 일이 아니다. 어떤 권위적인 일방적인 주입 일변도의 종교 전수 교육이 반드시 효
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말하고 신앙을 접지시킬 때
적어도 아래의 네 가지 지도원리는 유익하리라고 본다.
1) 부모에 의해 주어지는 종교적 이미지는 하나님에게 대해 적합하고 아이
들에게는 적절해야 한다.
2) 자녀의 종교적 경험과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길은 세 길인데, 그것은
그들의 내부를 향해서, 물질의 세계를 향해서, 또한 공동체와 이웃을 향해
서 연결된 자녀들의 마음의 합일상(communal image)이다.
3) 자녀들의 종교적인 의식이 자기 삶의 주변 상황과 사회적 문제들과 관
련될 때 비로소 그것은 성숙한 의식으로 성장한다.
4) 자녀들의 가장 궁극적인 종교의식은 거룩하신 하나님 속에 존재하는 우
주적인 요소를 감득하는 각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지 교회적, 교회적 종교교수(religious
instruction)만이 기독교 가정교육의 내용은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적 지식의 가르
침에 더해서 풍부한 자연성과 인간성을 섭취함으로써 비로소 그리스도 품성
(Christian personality)의 형성이 완수된다는 사실에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즉 부모와 자녀 양편의 삶의 자리에서 대화하고 수용된 종교적 지식, 종교적 앎만이
참된 가정 종교교육의 내용일 수 있다는 말이다.
5 . 유 대 인 의 종 교 교 육
고대 히브리인들의 교육이념은 하나님 중심의 교육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살
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분
이며, 역사하시며, 말씀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신앙의 기초
위에 서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하신 분이시며, 이스라
엘 백성들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려야 할 것을
가르쳤다(레 19:2).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함이 종교교육의 모든 주제
가 되었다. 히브리인들의 가정에서의 종교교육의 내용은 "토라"를 가르치는 것이었
다. 토라는 교육의 바탕이요, 내용이었다. 가정에서 토라를 가까이 하는 것을 행복
으로 알았으며 이 토라를 지키면 온갖 성공,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었었다(신
28:1-1). 히브리인의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내용이요, 과제였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가정에서는 지혜를 중요시하였고, 지혜는
인생에 있어서 성공의 비결이요,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으로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
지혜를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을 가정교육의 주제로 삼았다(잠 31장).
부모는 자녀의 교육을 책임 맡은 교사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행동에 대한 책임까지 맡고 있었다. 율법의 정한 바에 따라서 소년은 13세가 되어야
부모로부터 벗어나 율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수가 있었다.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책임이 맡겨진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부여된 것이었다. "네 자녀에게 부지
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
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초를 삼
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고대 히브리인의 가정은 아버지가 가정의 머리로서 절대 유일한 전권을 갖고 있
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노예와 같았다. 아버지는 자기 딸을 결혼이나 노
예로 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파는 것은 금지되었다(출 21:7-11). 유
아시기에는 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경우에 따라서, 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산제사로 드리기도 하였다.
신명기법은 순종하지 않는 아들에게 벌을 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도시의 장
로들 앞으로 끌고가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
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자라"(신 21:2). 신명기법은 순종치 않는 아
이들은 부모가 고발하고 벌을 주도록 하였는데 부모는 고소자로서 검사의 역할을 하
였고 장로들은 판사가 되었다. 만약 부모의 고소가 성읍의 장로들에게 받아들여지면
도시 모든 사람들이 아들을 돌로 쳐 죽일 수가 있었다.
신명기법은 부모에게 권위를 주도록 되어 있다. 신 6:7-9에서나 혹은 성경의 다
른 귀절에서 읽을 수 있으니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을 즐겨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유월절이나 거룩한 절기 또는 명절의 의미에 대하여 자녀가 물으면 대답하여 설
명하여 주도록 되어 있다. 또 이것은 자녀의 종굔육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음을 설명
해 주는 이야기들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맡은 가장이며, 자녀들
은 일반적으로 아버지에게 복종하도록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잠 31장은 어머니가 지
혜의 교사로서 가르친 내용을 담고 있다. "마싸왕 르무엘이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교훈이라고 쓰고 있다."
6 . 가 정 목 회
기독교 가정교육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가정목회와 직결된다. 교회당국과 목
회자는 기독교 가정에서 성과있는 교육이 계획, 수행될 수 있도록 부모들을 목회적
배려에 의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가정목회에 대한 관심은 깊고도 넓어야 할
것이다. 그 관심은 부모의 교육적인 관심을 진작시키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이
및 청소년 심리발달에 대한 폭넓은 이해, 현대적 가정공해의 원인이해, 가족계획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어린이 및 청소년의 신앙성장에 관한 이해 등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특수아 및 문제아에 대한 지도문제, 가정의 직업지도 문제, 편
모, 편부 아동의 원조 문제 등도 그 관심 속에 넣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교회가
가정을 그 목회의 중심점에 자리잡게 될 때, 교회는 가정에 대해 진정한 원조를 주어
가정으로 하여금 실효성 있는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7 . 아 이 를 강 하 게 키 우 는 법
1 . 형 제 의 싸 움 은 말 리 지 말 라 .
아이들의 싸움은 결사적인 것이라기보다, 감정에 따른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
이다. 그런데 부모가 "나이가 위이니까", "네가 동생이니까"라는 등의 안일한 이유로
싸움을 말리거나 어느 한쪽만을 야단치면, 부모나 형, 아우에 대한 반감만을 심어
주는 것이 된다.
2 . 아 이 들 에 게 좋 은 음 식 을 먹 이 지 말 라 .
영양가있는 음식을 먹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단 식탁을 너무 아이들 위주로
차리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보다 아이들의 입맛을 중시하면 아이들은 "나"위주가 되
며, 자라서 제입치레만 하는 이기주의자가 되거나 음식의 귀함을 깨닫지 못하게 된
다.
3. 애 들 과 경 기 를 할 때 면 철 저 하 게 이 겨 라 .
일부러 져주면 아이들은 항상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양보해 주는 것을 당연하
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자만심이 싹튼다. 인생이란 질 때
도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패자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대비하는 자활력을 키우도
록 하는 것이다.
4. 유 원 지 보 다 전 원 이 나 고 적 지 로 데 려 가 라 .
무조건 놀러간다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부모자신이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대공원에 간다면 동물의 생태를 직접 관찰하는 기회를 준다는 목적
을 가지고, 부모도 준비를 해야 한다.
5 . 멀 어 도 걷 게 하 라 .
버스로 한정거장 되는 거리도 타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다. 더
구나 마이카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아이들은 더욱 걷기를 싫어한다. 세 살이 되면
1km이상을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걸으면, 극기심이 생기게 되고 성취감
도 생기며 잠도 잘오고 밥맛도 좋은 것은 우리가 등산 후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결과
이다. 극기심을 키우는게 교육이 아닌가.
6. 스 스 로 노 력 해 도 모 르 는 것 만 가 르 쳐 줘 라 .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을 때, 해답을 가르쳐 주지 말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라. "생선 한 마리를 주면 한 끼를 잘 먹지만, 생선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배불리 먹는다"는 말과 같이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주라는 뜻이다.
7. 관 심 을 보 이 는 것 은 철 저 하 게 가 르 쳐 줘 라 .
심리학자 찰 브토에 의하면 뛰어난 인간과 범인의 차이는 유년시절의 호기심
유무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런 호기심을 계속 유발시키기 위해서, 부모는 이상한
질문이라도 성의껏 답변해 주고 부추겨 주어야 한다.
8 . 비 가 와 도 마 중 나 가 지 말 라 .
과잉보호는 아이들에게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 다소 비를 맞을 정도라면, 굳
이 마중 나가지 말고, 친구 우산을 빌어쓰고 오든지, 길가던 행인에게 도움을 청하든
지 자율에 맡기도록 하라. 그게 교육이다.
9 . 학 교 성 적 으 로 형 제 를 비 교 하 지 말 라 .
학교의 우등생이 반드시 사회의 우등생은 아니며, 인생의 승자도 결코 아니
다. 성적으로 형제의 우열을 가리지 말고 자녀의 숨겨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부모
의 배려가 필요하다.
10. 숙 제 를 못 해 도 부 모 는 절 대 로 거 들 지 말 라 .
숙제란 100%해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봐도 모르는 것
은 학교에 가서 교사에게 물어보아도 된다. 단, 부모에게 물어볼 때는 해답보다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
11. 자 유 방 임 은 질 서 를 가 르 친 다 음에 허 용 하 라 .
수많은 규제와 자유를 어떻게 절충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만을 강
조해서 아이들의 심신발달이 눌려서도 안되며 자유만을 누리다 방종으로 흘러서도 안
된다.
1 2 . 가 족 사 이 에 도 시 간 을 지 켜 라 .
부모가 자식과의 시간약속을 정확히 지킴으로써, 아이들에게 시간엄수의 습
관을 길러주며, 말없는 가운데 아이들의 인격을 인정해 주는 것이 된다. 혹 부모가
시간을 어겼을 때, 아이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하도록 한다.
1 3 . 말 씨 는 엄 격 하 게 다 스 려 라 .
응석부리는 말을 마냥 받아주지 말고, 존대말을 가르치도록 한다. 그렇다고반
드시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말
씨를 철저하게 가르치도록 한다.
14. 세 상 에 는 법 도 가 있 다 는 것 을 가 르 쳐 라 .
예절보다 더 엄격한 법도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만약,
그 법도에 어긋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라.
1 5 . 아 이 혼 자 서 집 을 보 게 하 라 .
혼자 있으면서 고독감과 무서움을 느끼게 되고, 비로소 가족의 고마움을 몸
소 체험하게 된다. "나" 위주의 사고 방식에서 "우리"라는 차원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1 6 . 높 은 곳 에 올 려 보 내 라 .
높은 탑, 산, 나무 등에 올라가 자신들이 발붙이고 살고 있는 지상을 내려다보
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평지에 서서 둘러본 것과는 다른 인간세계에 대한 인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저멀리에 있는 넓은 세상에의 상상과 예감을 자극해, 원대한
인상을 품게 하라.
1 7 . 먼 곳 으 로 심 부 름 을 보 내 라 .
우체국, 은행 등 관공서에 심부름을 보내라. 비록 몇번의 실수가 있을지라도
세상물정, 대인관계 등 많은 체험을 얻을 수 있다. 헤르만 헤세는 대개 인간의 체험
은 열살로 일단 완료한다고 보고 그 이후는 그 체험을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한 가지 사명을 아이들이 해냄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