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상은 중세 신학에 파고들었고 그 결과 후세의 기독교 생활과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사상가는 오늘날 그의 생전에서보다 그의 저작과 구교에 끼친 파급으로 더 영향력이 크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신교와 구교는 철학에 대한 각자의 다른 태도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1. 중세 사상의 뿌리
1) 어거스틴과 초기 교회
광범위한 의미에서 중세는 5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는 천 년간을 말한다. 이 시기는 초기 교회에 뿌리를 내려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대까지 뻗어 나간다. 초기의 교회의 세속적인 철학과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것과 같은 사이였다.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덕망 있는 주교였던 어거스틴(Augustin, 354 - 430)이었다. 어거스틴은 그가 한때 속했던 마니교도들과 악의 문제에 관해 토론했다. 그는 하나님에 반대되는 영원한 악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마니교도들의 관점에 반대하여 하나님만이 만물의 유일한 창조자이시고 만물을 있게 하시는 분이시라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은 부패하고 쇠잔한 기독교 영향을 받은 북쪽의 침략의 무리들이 로마를 몰락시켰다고 비난하는 이교도들에 대항해서[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이라는 글을 썼는데 이것은 역사에 기독교적 철학을 부여한 첫 번째 시도이다. 중세의 사상이 관념에 대한 신학적 뼈대를 이루게 된 것은 다른 어떤 한 명의 신학자보다도 어거스틴의 영향을 입어서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2) 그리스 철학
중세사상의 근원은 그리스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세기경 아테네 철학자 플라톤(Plato B.C. 427 - 347)은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보고 신체로 만지는 세상이, 실제로는 그림자의 세계로서 순수한 영혼이 철학적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인 형상의 영원한 세계를 복사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기원후 3세기에 플로티누스(Plotinus, 205 - 269)는 신플라톤파 철학을 발달시켰다. 이 철학은 모든 경험의 뒤에 있는 '최후의 하나'를 믿는 것이다. 중세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B.C. 384 - 322)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많은 작품들은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사상의 상당 부분은 6세기의 철인 정치가 보에티우스(Boethius, 480 - 524)에 의해 흡수 전달되었다. 권력의 정상에서
보에티우스는 반역죄로 기소되어 처형되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철학의 위안에 대하여](On the Consolation of Philosopihy)를 썼는데, 이 책은 영혼이 어떻게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철학적 명상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2. 형이상학
중세 후기에는 물리학보다 형이상학에 더 관심이 깊었다고 특징 지울 수 있다. 대체로 중세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물질적인 우주, 즉 자연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연 뒤에 놓여 있다고 그들이 믿은 실체, 즉 창조주에 흥미를 가졌다.
스콜라 철학이란 실체에 관한 기독교적인 이해를 정의하고 체계화하는 것과 관련된 중세의 사상적 학파를 일컫는 말인데, 학문은 결국 하나님과 이 세상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셀름을 보든 아퀴나스를 보든, 그들은 궁극적인 질문을 하고 기독교적인 믿음을 이성적인 사고와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똑같은 관심사를 나누고 있다.
형이상학에 대한 중세의 관심을 나타내는 다른 방법은 사물의 본질과 그들이 서로 연관된 방법에 대한 끝없는 토론이다.
실제론자들은 보편적인 것이 진리라고 고수하는 점에 있어서 플라톤을 따르고 있다. 명목론자는 이와 반대의 견해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보편적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개념론자들은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세의 사상은 기독교 신앙과 이교도적 철학의 기이한 혼합물이다. 그리스의 많은 위대한 지성들은 교회를 현대적으로 바꾸고 , 교회와 철학을 종합하는 데 노력했다.
그리스 사상은 중세 기독교에 관한 저술의 내용과 형식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어거스틴의 글이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며 성경에 관한 것이라면, 후기 중세의 글은 흔히 논리적이나 형식적이고, 면밀하지만 건조하다.
3. 안셀름과 존재론적 주장
안세름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벡의 대수도원장이 되었고, 켄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중요한 저서인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인데, 이 칙 속에서 그는 속죄에 대한 논리를 펼치려고 노력했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인격과 인간의 원죄를 기초로 하여 그는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죽어야 하는 이유의 내적인 필요성을 증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안셀름이 기억되는 다른 한가지 일은 그의 존재론적 주장이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증명을 완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
장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지성인들을 매료시켰다. 고닐로는 그의 생시에 [바보를 대표하여]라는 제목을 붙여서 이 주장에 대한 대답을 썼다.
현대의 대부분의 영국 철학자들은 문제를 제시하는데 한 사물에 대한 단순한 정의
는 그것이 존제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찰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 한 사물에 대한 정의는 시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근거 있게 하기 의하여 존재는 하나의 특질로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란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들과 나란히 가질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하나의 특질이 아니고 아직까지도 계속 거기에 있는 것이다. 존재론적 논증은 가장 완벽한 사물의 개념을 실체로 변형시키는 특성으로서 존재를 취급하고 있다. 칼 바르트는 안셀름의 글의 각 줄마다에 명석한 논평을 달면서 안셀름의 요지는 신의 존재를 경험이나 기독교적 계시에 대한 호소없이 이성으로만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가장 완벽한 존재인 살아 계신 하나님을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일단 알고 나면 이성적으로 그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안셀름의 접근 방식은 그가 그의 존재론적 주장을 내놓기 작전에 슨 유명한 글귀, 즉"나는 이해하기 의하여 믿는다"는 말 속에 요약되어 있다. 오히려, 신앙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만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파악할 위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안셀름의 주장에 대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의 존재론에 대한 바르트의 해석은 수정을 요하거나 완전한 거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를 추종하는 일단의 구교적 사상가들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4. 토마스 아퀴나스
아퀴나스는 안셀름과 같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안셀름보다 약 백 년 후의 사람이었다. 그는 1225년에 태어나서 1274년에 죽었다. 토마스는 도미니크회에 입문했다. Abert Magnus 문하에서 신학과 철학을 연구한 그는 스승과 함께 한동안 콜론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아퀴나스의 주요 작품은 철학과 신학의 개요를 쓴 두개의 방대한 summae이다.Summa contra Gentile은 선교사들의 교재로 계획하여 썼고, 가장 최근의 비평서가 60권이나 되는 Summae Theologiae는 '중세적 신학을 체계화하고 현대 로마 교회의 기초 사상으로 인정된 최고의 업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Summa Thologicae는 그 크기나 완전함, 그리고 체계적인 표현에 있어 견줄 것이 없다. 작품 전체가 많은 질문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 질문들은 항목들로 세분된다. 아퀴나스의 독창성은 그 자신의 새로운 직견에 있다기 보다 전시대의 사상을 명석하게 종합하는 그의 능력에 있다.그의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과 철학, 특히 그가 '철학자'라고 부른 그 때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혼합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상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혼합물의 약점도 또한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적어도 최근의 작가들에게는 그릇된 방법같이 보일지도 모르나 유추에 대한 주장은 제시적이고 중요하다.
1) 다섯 가지 방법
하나님의 주재에 대한 아퀴나스의 증명은 '다섯 가지 방법'이라고 알려졌다. 그 속에는 후일 우주론적 및 목적론적인 주장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포함되었는데 우주론은 우주의 궁극적인 근원을 찾고 있고, 목적론에서는 궁극적인 근원을 찾고 있다.그는 인간은 신의 존재 자체를 명백히 알지 못한다는 확신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증명을 요한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증명은 가능하다. 하나의 원인이 그 결과에 의해 적어도 부분적으로 밝혀지듯이, 우주의 최초의 근원은 이 세상에 창조된 질서 속에서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확고한 운행자'에 대한 전 기독교적인 관념과, 로마서 1:20의 말씀에 나타난 뜻에서 그의 실마리를 찾은 아퀴나스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관찰하는 사물의 근원에 대한 토론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면 그 뒤에 제 1의 운행자, 혹은 조물주이기도 하고 위대한 설계자이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사건은 원인을 가져야 한다. 그 자신을 스스로 있게 하거나 운행하거나 계획하는 것은 아무도 없다. 사물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압축해서 거슬러 올라갈 때, 우리는 만물의 창조주나, 제 1의 운행자, 혹은 위대한 설계자가 계심을 안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만물은 전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논리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원인이 문제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원인이 다른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즉 우리가 토론을 통해 단순히 결과를 보고서 원인을 찾으려고 할 때 똑같은 원인에서 다른 결과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론을 전제로 만약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 증거로서 그분 혹은 그것이 설계자와 동일인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창조주와 설계자는 반드시 똑같지는 않다.
이성에 의해 추정된 서로 다른 주장이 만들어 낸 여러 가지 다른 신들을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가지고 믿는 하나님과 동일시하려고 할 때, 이 아이러니는 그 절정에 달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이 세상의 창조주로 믿는 것이 그분이 이 우주의 궁극적인 근원이요 설계자임을 의미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특정한 주장을 따를 능력이 있는 몇몇 사람이 이끌어 낸 이성적인 추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식하는 신앙의 한 대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러한 주장과 논의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을 증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속임수를 통한 추측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이라는 낱말의 애매모호성에 좌우된다. 여러 가지 다른 주장이 말하는 '신들'과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성적인 증명을 제시할 때면 모두는 뒤로 물러서 하나로 일치한다. 어떤 조물주가 없이는 이 우주의 전체 과정이 결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토마스의 요지를 우리가 인정한다 해도 그러한 결론은 이러한 근원이 가정적이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최초의 근원은 무한대의 안개 속에서 인간의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것이 진실로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최초의 근원은 그 자신과 현실 세계에서의 우리들의 경험 사이에서 생겨난 무수한 제 2차적 근원 뒤에 가리워져서 볼 수가 없다.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원은 어떤 특정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놓여졌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숭배하여 안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벗어나 있다. 우리들은 세상 안에 있고 이 세상은 고도로 복잡한 하나의 기계 또는 유기체라는 사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이 세상을 순전히 우연에 산물로 간주하고 모든 것을 일정한 운율에 맞춘다든가 치밀한 합리성에 의하지 않고 대는데로 생겨났다고 믿어야 하는가 ?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과학에 이론적 관찰이 궁극적으로 비합리적인 사물에 관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자연 현상을 통하여 그리고 그 속에서 작용하며 그 존재가 다른 무언가에 의해 좌우되는 어떤 합리적이고 창조적인 힘 같은 것은 없을까 ? 우리가 만약 성경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창조자요 운행자로 전제하면 이 세상과 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리고 행동에 보다 나은 의미를 주지는 않을까 ?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을 미룬 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 생활에 전반적인 목표를 상실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2) 유추에 대한 신조
유추에 대한 아퀴나스의 가르침은 언어에 뜻과 성격 특히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도덕적인 언어에 그것에 대한 맹렬한 논란과 관계가 있다. 불가지론적 철학자들은 그들이 종교에 관한 글을 읽을 때 그들이 세속적인 언어에서 발견하는 의미를 그 안에서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종교적인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거나 혹은 희망적인 관측을 변질시킨 단편들이라고 일반적으로 불평해 왔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할 때 다리가 네 개이고 털이 난 짐승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면서 자연적인 생식에 의해 이 세상에 어린아이를 생기게 하는 인간임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인 언어는 유추에 언어라고 단순히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언어와 그것이 나타내는 사물 사이에 진정한 상응성이 있음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가 언어와 틀에 박힌 사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직접보고 그 다음 우리에 언어와 생각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이 문제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성경에 작가들은 자신들이 선포한 말이 인간에 경험에 빛과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들에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도구다. 복음을 받은 자는 스스로 그 복음에 진리됨을 증명할 것이다. 하나의 선언이 문자적인 선언이 아니라 유추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삶에 실험을 통하여 증거된 것에 의해서만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문자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언어 는 비유적이거나 유추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 세상에 뛰어들지만 이 세상 저 너머에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경험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성격상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말과 유한한 영상으로 굴절되고 표현되어야 하지만 의미가 담긴 용어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5. 중세 철학의 중요성
1) 종교적 진리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법
아퀴나스는 자연의 사실에 직면하여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성적이 인간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안셀름은,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는 그의 슬러건 에서 나타났듯이 기독교 신앙에 중심적 진리를 이해하는 선행 조건으로 공약과 믿음에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기독교를 제시하는 이 단계 과정이라고 일찍이 불렀던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기초를 세우기 위하여 철학적 논의를 사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의 것은 기독교적 교리에 호소함으로써 그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안셀름에 기본 입장은 매우 다르다. 그것은 이성에 힘이 미칠 수 없게 되자 신앙이 떠 맡는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니다. 종교적 진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믿음과 이성은 나란히 가야 한다. 믿음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자기 약속 행위이고 그 보상으로써 인간이 그 관계를 숙고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이성이 그 관계를 파악하고 심사숙고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이리하여 두 가지의 기본적 신학 형태가 중세에 결정된다. 한 편에서는 하나님과 이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진정한 앎은 기독교적 교의에 호소하지 않고 사물에 본질에 대한 이성적인 숙고를 통해 얻어진다는 자연신학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에 기록된 계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은 연구하는 계시적 신학이 있었다.
계시적 신학은 성경적 계시로 거슬러 올라가고 자연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옛날 그리이스 철학에까지 올라간다.
2)아퀴나스의 역사적 중요성
오늘날 아퀴나스의 영향은 다른 어느때 보다도 크다 1870년 제 1회 바티칸 회의에서 로마 교황청은 철학과 신앙에 대한 그의 2층식 접근 방법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것은 또 구교 옹호론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1879년 교황 레오13세는 아퀴나스의 교의의 영원한 가치를 주장 하면서 구교의 철학자들이 그 교의에서 영감을 얻을 것을 촉구하는 회칙서를 발행했다. 1963년에
Summa의 새로운 가능을 찬양하는 군중들에게 교황 요한 4세는 아퀴나스의 교의는 "도미니크교단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와 전세계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은 단지 중세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하여 타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 교회 이외에도 아퀴나스의 이층적 접근 방법은 아퀴나스의 글을 한자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도 퍼지고 있다. 이 교의에 따르는 두 가지의 중요한 부작용에 대해서 살펴보면 첫째로 하나의 신학이 일부는 기독교적 계시론에 또 다른 일부는 이 사상과는 동떨어진 철학적 사상에 기초를 두게 될 때, 그 결과는 종종 오도된 뒤범벅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그의 해설은 신약 성경의 복음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으나 그의 비 기독교적 사상들은 인간이 하나님께 이로운 일을 하면 그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모순된 사상을 성경에서 따오도록 만들고 있다. 구원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합하게 하기 위하여 아퀴나스가 애쓴점은 인정되나 모순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이러한 사상을 신약의 기준에 맞추었다면 이러한 모순은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체 변화설은 성찬에서 나누어 쓸 빵과 포도주에 대한 가정된 대화가 어떻게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인 예수의 진짜 몸과 피가 된지를 설명하고 있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기독교 사상은 웬만큼 인정될 만 하다. 다른 철학자들은 철학적 요소가 너무나 지배적이어서 그들은 기독교 신학을 재 진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결과 신약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 사상과의 유사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독교가 특정한 철학과 지나치게 밀착되었는데, 그 철학이 유행이 지나거나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되면 어떤 사람들은 이로써 기독교 자체가 끝장 났다고 결론짓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1. 현대 사상의 요람
종교개혁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는 3백 년의 세월이 걸린다. 16세기와 17세기와 18세기는 현대 사상의 요람기라는 것이다.
존 웨슬리와 조지 화이트필드는 복음주의 부흥 운동을 주도 하여 교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1세기 전에 일어났던 청교도 운동과 같이 이 부흥 운동은 본질적으로 종교개혁의 연장이다. 한편, 종교개혁 시대에는 활발한 합리주의자들이 있었는데, 파우스터스 소시누스와 같은 사람은 삼위일체설을 부정하고 공리주의를 애호하였고, 속죄를 부도덕하고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경멸하였다.
이 300년은 어떤 사상적 조류가 지배했는데, 이것은 지성의 현재적 상황을 현재의 그것으로 만들었다.이 기간을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떤 광범위한 운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종교개혁 시대의 하나님의 재발견이다.처음의 물결을 바짝 뒤쫓아서 두 번째 물결이 밀려왔다. 그것은 이 세상을 일반적인 것으로 보고 인간을 그 자체로서 특수한 것으로 보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14세기 중엽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데카르트는 아퀴나스의 접근 방법을 모두 뒤집었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용한 반면에 , 데카르트는 이 세계의 존재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 외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와 같은 문제는 없다. 법률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국민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그들의 권한을 전능자로부터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동의로부터 얻어내고 있다.
세속적인 인간들은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실제적인 근거를 너무나 자주 맹목적으로 찾았고, 그 증거가 부족함을 불평했다.
2. 종교 개혁자들과 그 계승자들
1)루터
대륙의 종교개혁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인물은 마틴 루터이다. 학창시절 그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찾기 위해 법률 공부를 포기하고 어거스틴 교단의 수도승이 되었다.
성경을 통하여 루터는 낯선 사람이 아닌 친구로서, 심판자가 아니라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에게 돌아선 자를 용서하시는 구세주로서의 하나님을 만났다. 이 새로운 통찰은 종교개혁의 근본원리가 된, 믿음에 의한 의인에 대한 신조에 질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의 인간은 스스로의 힘이나 공로, 또는 올바른 행위에 의해 의로와질 수 없다. 그 반대로 인간은 믿음을 통해 예수님때문에 자유로이 의로움을 인정받는다. 즉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접 받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죄를 사함 받았다는 믿음을 가질 때 의인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3장과 4장에 나타났듯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의로움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다.
모든 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새롭게 연구되어야 한다고 루터는 말했다.그의 저작은 비난을 받았고 그 자신도 파문을 당했으며 제국으로부터 추방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의 대의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2)독일 밖에서의 종교개혁
스위스의 종교개혁 운동은 쮜리히의 쯔빙글리와 제네바의 칼빈이 주도했다.이 두 사람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인본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칼빈은 한가지 방법에 있어서 루터와 쯔빙글리와 달랐다. 이 두사람의 글은 주로 어떤 행사를 맞이하여 그 때 그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단숨에 쓴 것이다. 칼빈 역시 이렇게 중요하지만 일시적인 종류의 일에 손을 댔지만 ,[기독교의 원리]라는 글에서 개혁된 교의를 요약하려고 노력했다
대륙에서의 종교개혁이 처음에는 하나의 교의적인 것에서 후에 정치적인 것으로 변한 반면 , 영국에서는 그 반대 였다. 다음 세기에 만들어진 신교성명서는 장로교회에 의한,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서이다. 장로회는 교회 행정에 관한 일에 있어서는 국교회와 달랐으나 진리에의 접근 방법은 기본적으로 같았다.
3)철학과 종교 개혁자들
비텐베르그에서 루터가 그의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이성을 악마의 창녀로 부른 것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고전적인 독설로 전해 내려온다. 루터 자신은 이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의 실제 적인 공격 목표는 이성의 남용, 즉 철학이 기독교 신앙의 진실을 몰아내는 상황이었다.이성의 정당한 위치는 과학과 일상적인 일속에 있다. 그것의 진정한 역할은 그 앞에 놓인 것을 파악하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성이 진리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루터는 인간의 존재를 비추어 주는 세개의 빛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의 빛이 있는데 이것은 이성과 상식이 일상생활의 많은 문제들을 풀기에 충분하도록 한다. 은총의 빛은 성경에 나타난 계시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해주는데 , 이 빛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영광의 빛은 미래에 속한다.
칼빈의 접근 방법은 루터보다 덜 원색적이나 보다 체계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두 사람의 이론이 똑같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에 대한 이중적인 앎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에는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있다. 다른 한편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창조자로서 뿐만 아니라 예수 안의 구속자로서도 나타내신다.
천여 년에 걸친 철학과 신앙의 흐름에 대한 일반적 개요를 논하면서 이 모든 문제를 만족스럽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가지 이유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먼저, 기독교와 기독교 신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평가들은 기독교 신앙의 근거와 본질에 대한 설명을 할 권리가 있다. 다음으로, 기독교와 그 신자들에 대한 조사 연구는 결국에는 이미 기독교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깊고 풍부하게 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종교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중시하는 것이다. 과학 철학은 자연과 어떤 가정, 그리고 과학적인 탐구 방법을 조사하는 것이며 실제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적인 연구보다는 과학 기술의 특징과 위치,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한 연구의 결과에 도 깊은 관련이 있다. 종교 철학도 그렇다. 그것은 종교적 체험의 내용보다는 그 체험의 형식이나, 체험이 야기시키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철학의 올바른 출발점은 기독교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그 최초의 연구 자료는 예수님 속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경험이다.
이해라는 것은 실험과 경험 뒤에 따르는 것이지 그것에 선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물론 실험은 공증되는 것이고 개인적인 위탁이나 믿음의 요소를 가진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우리는 이와 똑같은 접근 방법과 마주친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복음을 도판 위에 새겨 놓지 않으셨다. 그 복음의 진실을 알려면 예수님과의 개인적 믿음의 언약이 요구된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만 복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신다. 예수를 따름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