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도 입

1) 글을 쓰게 된 동기

초대/고대 교회는 수많은 핍박과 오해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삼위일체 논쟁에 휘말려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 논쟁의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과연 삼위일체 논쟁이 무엇이기에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끝을 못내는가?라는 의심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2) 글의 전개 방법 및 주안점

본래의 의도는 삼위일체가 고대교회에 끼쳤던 영향을 중심으로 전개해 볼까 했는데 거기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래서 글의 전개방법을 삼위일체의 역사와 시대적으로 나타난 삼위일체 대가들의 사상을 들어서 전개해 볼까 한다. 글의 주안점은 글쓴이의 수준에 맞는 범위 내에서 삼위일체 대가들의 사상을 연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II 본 론

1) 성경적 근거

기독교의 교리적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모든 기독교 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이 빠져 있으면 이것은 사변적 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교리를 논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에 대해서 기록된 성서가 근거가 되어야 한다. 삼위일체 논쟁에 있어서도 예수의 구원 사건이 삼위일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성서에 근거해서 찾아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유일성

*신명기 6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사야 45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는 아는 이가 없나니 나밖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해가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는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우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열왕기상 8 : 60

"세상 만민에서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성경 도처에서는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명확히 하고 있다.

(2) 하나님의 구별성

*마 3 :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14 :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6 :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셨노라". 이렇게 한 분 하나님께서 세 개체로 존재하면서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하였다.

(3) 하나님의 삼위 일체성

*마 28 :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후 13 :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있어서 신성이 동등하고 구별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터툴리안은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의 본질이지 하나의 인격이 아니다. 성자와 성부는 하나의 본질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성자와 성령은 성부의 본질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신성을 동시적으로 인정한다.

이상과 같이 기독교에서는 전통적 교리로서 삼위일체론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부르는데 그것은 성서적 증거와 일치한다.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구분된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에 오심을 전하는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 체적 이해를 내포하고 있다.

2)초대, 고대 교회의 삼위일체 논쟁

(1) 삼위일체 논쟁의 시작

衁 변증 신학

;초대 교회는 로마의 박해와 기독교 복음의 전파를 위해 헬라 철학을 도입한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을 변증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초월적 존재로 설명하고 아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중재자로 말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들은 하나님의 최초의 피조물이며 아버지에 비해 저급한 신으로써 아들의 신성이 아버지의 신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표현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군주신론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

遁 군주신론

A) 역동적 군주신론

;역동적 군주신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190년경 비잔티에서 로마로 이주해 온 피혁상 데오도투스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했다. 그는 아들 예수는 인간이었으며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기적을 행할 수 없는 신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황 빅토에 의해서 출교당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사모 사타 출신의 바울에 의해서 더 깊이 있게 체계화되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교회는 268년 안디옥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는 이단으로 처단했다. 역동적 군주신론은 유대교적 기독교인들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이들은 유대교 적인 성격이 강한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다신론도 배격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으로 믿으려고 하는 교회의 입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역동적 군주신론은 에비온 주의의 색채를 유지했고 후대의 안디옥 학파의 기본적 흐름이 되었다.

B) 형태론적 군주신론

;형태론적 군주신론을 최초로 체계화한 사람은 서머나 출신의 노에투스였다.. 힙포리투스의 글에 의하면 노에투스는 강한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이나 세 역할, 즉 창조자로서, 구속 자로서, 성화 자로서 삼중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 이것은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투스에 의해 주장된 우주적 모나드(Monad)와 같은 개념이다. 마치 태양이 열과 빛을 발산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는 탄생하시고 수난 당하시고, 죽으신 그리스도, 즉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려고 어설픈 삼위일체를 주장하였으나 이러한 역할을 주장함으로써 성부수난설의 오류를 범하였다. 이 이름은 프락세아스에 의해 널리 퍼졌고, 사벨리우스는 로마에서 히폴리투스의 공격을 받았다. 후에 이들은 역동적 군주신론주의자들과 함께 터툴리안의 공격을 받게 된다.

(2) 삼위일체론의 대가들

衁. 이레니우스의 삼위일체론

;이레니우스는 군주신론과 영지주의에 반대하여 경세 삼위일체론(Economy trinity)이었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자들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아들의 낳으심과 성령의 보살핌은 동일한 선상에서 말하려 하였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성자는 자기 자신의 현현을 통하여 성부의 지식을 계시한다. 왜냐하면 성자의 현현은 성부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자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성부요, 성부 안에서 보이는 것은 성자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는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없다. 즉 성부의 지식은 성자요, 하나님의 아들의 지식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성부의 선하신 뜻을 따라 성부께서 원하시는 누구에게나 성부께서 원하시는 데로 성자가 섬기고 성령을 나누어주신다."고 하였다.

遁. 터툴리안

;터툴리안은 군주신론과 영지주의에 반대하기 위하여 경세 삼위일체론을 더 깊게 파 헤쳤다. 신적인 계획이나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목적을 뜻하는 데서부터 성육신과 신적인 목적에 이르기까지 적용하였다. 터툴리안은 하나님께서 본래적으로 삼중 적으로 계셨음을 말하였다.

하나님은 만물이 있기 전에 홀로 계셨고 친히 그분 자신의 우주와 위치와 모든 것이셨다. 그렇더라도 그분이 정말 홀로 계신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말씀을 자신과 함께 가지고 계셨다. 이 말씀은 출생된 말씀이며 곧 아들의 위격이며, 성부에 덧붙여진 제 2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제 3의 어떤 것으로써 성자의 대표 혹은 대리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해서 나오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 제 3의 것이다. 이것은 꼭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가 뿌리에서 나온 제 3의 것인 것과 같다. 성령도 위격이며 신성은 삼위일체이다. 그러나 이 경세적 삼위일체가 어떻게 본래적인 하나님의 동일성에 위배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터툴리안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터툴리안은 여기에서 본질(Substania)과 개체(Persna)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본질이란 몇 사람이 공통으로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토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이 신성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성을 갖는다고 하였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한 신적 본질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서로 나누인 것이 아니며, 하나의 동일한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동시에 개체라는 단어는 하나의 토지에 대해서 소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법적인 사람을 뜻한다. 이렇게 해서 본질이라는 단어로서는 삼위간의 통일성을 말하고 개체라는 단어로서는 삼위간의 구별 성을 말하였다. "셋은 지위에 있어서가 아니고 정도에 있어서 이며 본질에 있어서가 아니고 형식에서이며, 능력에서가 아니고 그 양상에서 나누인다. 그렇지만 그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이름으로 이러한 정도의 형상들과 외아들로 생각되어 질 수 있다면 여전히 하나의 본질이며 하나의 조건이며 하나의 능력을 갖는다..

터툴리안은 성자와 성령을 제 2의 어떤 것, 제3의 어떤 것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아들과 성령을 아버지에게 종속시키지 않았으며 성자와 성령이 본질적으로 성부에 동참하고 있음을 말한다.

鑁. 아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클레멘트의 삼위일체 사상의 핵심은 그의 로고스론 이다. 그에 의하면 로고스는 영원토록 아버지와 공제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지지 않을 때가 없었다. 로고스의 존재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시작이었으나 그 자체는 시작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세계의 조성 자요, 빛의 근원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피조자의 머리가 되나 그의 신적 존재성

대문에 다른 모든 피조와는 다르다. 그는 아버지의 속성의 해석 자요, 진리를 그 삶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냈으며 인류의 교육자였다가 마지막에 사람이 되어 사람을 그 자신의 신성에 동참케 했다. 그는 하나님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초월 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이성으로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는 특이한 방법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초월 자이다. 그는 그의 말씀과 아들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와 근원적으로 하나이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플라톤 주의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등급적 계급으로 표현한 것이며 후에 아타나시우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鱁. 오리겐

;오리겐은 이레니우스와 터툴리나의 경세 삼위일체론을 벗어나서 삼위간의 통일성과 구별 성을 말하기 위해서 두가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였다. 통일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동일본질(Homoousia)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것은 아들과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발출(ekporeuosis)되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그에 의하면 아버지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시며 또한 존재를 초월해 계신다. 신은 불가변이며 수난을 초월해 계신다. 이러한 하나님을 인간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로고스 혹은 말씀이다. 이 로고스는 아버지로부터 분리나 나눔에 의하지 않고 영적인 방법으로 발출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언제나 낳고 계시므로 아들은 존재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령이 탄생한 것인지 탄생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우리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성서를 깊이 연구하는 동시에 조심성있게 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한다. 이 성령이 예언자나 사도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영감을 준다고 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단계뿐만 아니라 성경에대해서도 강조한다.

그러나 오리겐은 역시 신 플라톤적인 계층구조적 사고를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아들은 두 번째의 하나님이며 아버지의 형상이다. 아들은 절대적인 하나님, 그리고 절대적인 참은 아니며 다만 아버지의 형상으로서 그리고 유출로서 선하고 참될 뿐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실행 보좌관이다. 따라서 예수에게는 어떠한 형태로서든지 기도해서는 안된다. 기도는 아버지에게 드리며, 아들을 통해서 전달된다고 말하였다. 오리겐의 주장은 영지주의적이며 신 플라톤적인 색채를 벗어버리지 못하였으나, 그 당시는 철학이 언제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커다란 반대를 불러 일으켰으면서도 배척받지는 않았다. 오리겐이 죽고 나자 325년 니케아회의까지 약 70년동안은 그의 영원산출에 따르는 우파들과 영원 등을 따르는 좌파로 나뉘어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였다.

ꁁ.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318년에서 328년까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다. 그는 말씀이 하나님과 구별되는 한 위를 갖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오리게네스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세계를 중보하는 특수한 본질을 가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은 아버지의 존재로부터 파생한 피조자는 아니다. 그는 시작된 일이 없는 자립적 존재이다. 아들은 아들로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시다. 아버지가 한 번도 그의 말씀이나 지혜나 권능이나 형상없이 독존한 때가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였다. 말씀의 아들 됨은 실재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입양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이다. 이 말은 아들이 그 본체에 있어서 아버지의 본체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렉산더는 아들이 아버지와의 영원적 존재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오리겐의 영원한 추락이란 관념을 원용한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시작이 없는 탄생을 입었다. 이들은 서로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실재다. 아들은 아버지의 구체적인 형상과 보양이다. 그렇다고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하던가 두 실체가 실제로는 하나라고 해서는 안된다. 다만, 양자사이에는 완전한 유사성이 있을 뿐이다.

ꑁ. 유세비우스

;유세비우스는 가이사랴의 감독이었다. 그는 오리게네스의 종속적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관심은 구원론적이라기 보다는 우주론적이었다. 아버지는 특이하고 초월적인 존재다.

그는 실재 위에 그리고 실재를 초월한 불문학적 '모나드'다. 그는 모든 것의 원인이며 자존적이고 시작이 없다. 말씀은 영원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으나 그와는 전적으로 다른 본체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할 때 우발적 존재가 직접 절대자와 관계를 가질 수 없으므로 중간적 역할을 했다. 그는 완전하고 독생한 아들이다. 영원한 빛의 반영이다. 아버지의 후손으로서 그는 모든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다. 그는 측량할 수 없는 신성의 형상을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하나님이라고 불림을 받을 권한이 있다. 그는 이 정도의 견해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더 강한 편견을 밝힌다. 유세비우스는 오리게네스의 종속적 신관과 그리스도론을 서슴지 않고 전파하였고 아리우스에 의해서 돌변화 되었다.

걁. 아리우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안에 있는 바우칼리스 지역의 교회의 장로로 있었다. 그는 318년 말씀의 본질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 그의 체계의 근본적 특징은 하나님의 절대적 특이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는데 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시작이 없는 근원이다. 그는 하나님을 한 분으로 인정한다. 그분은 태어나지 않았다. 그분은 영원하시고 시작이 없다. 그분은 참되시고 불사를 가지며 그분은 지혜이고 선하시며 그분은 주권자이고 심판자이다. 그는 특이하시고 초월적이며 나누어질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그의 신성의 본질과 존재를 나누어 가질 수 없다. 그의 본성이 다른 어떤 존재와 분류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본체가 분할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정할 수가 없다. 어떤 다른 존재가 어떤 뜻에서라도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신적 존재의 이중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성은 근본적으로 특이하고 고유하기 때문에 나누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존재의 분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여 존재한다.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는 아버지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는 아들 말씀을 설명하면서 말씀을 제조자라 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단순한 무에서 만드셨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유출했다던가 아버지의 본체와 동등하다고 한다는 것은 아버지가 신 성적 존재에서 물체적 범주로 저하되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이 완전한 피조자이기 때문에 창조물의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해도 그는 피조자와, 아버지의 뜻은 그의 존재가 전적으로 매여 있다. 그는 자존적 존재가 아니다. 말씀이 피조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시작을 가져야 한다.

아리우스는 하나님에게는 시작이 없고 아들에게는 시작이 있다고 한다고 했다. 말씀은 시간이 있기 전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가 시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가 시작 밖에서 탄생했다 해도 그가 탄생하기 전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아리우스는 그가 존재하기 전에 무엇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들은 그의 아버지와 직접적 교제나 지식을 가질 수 없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이기는 하나 하나님의 참본성에 있는 본질적 말씀과 지혜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그의 본질은 아버지의 본질과 전적으로 유사하지 않는 외래적인 것이다. 그는 유한한 존재요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 질서에 있기 때문에 무한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하여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서 계신다. 말씀은 아버지와 완전하게 또는 정확하게 오거나 알 수 없다. 그가 알고 보는 것은 그의 능력의 분량에 따라 알고 본다. 아들은 또한 변하기도 하고 심지어 죄도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와 아들의 본성은 원칙적으로 범죄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의 섭리에 따라 다들이 자신의 변함없는 마음으로 다행을 계속하리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이 은혜를 미리 부여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함으로 아들은 하나님이라고 불려진다고 해서 참 하나님이 아니라 은혜에 동참함으로써 그렇게 불린다.

이렇게 하여 교회에 물의를 일으킨 아리우스는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파문 당하였다.

둁. 아타나시우스

;아타나시우스는 295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니케아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근 집사로서 알렉산더 감독의 비서로 참석했다. 328년에 알렉산더 감독이 죽자 그 자리에 피택되어 373년까지 감독직을 맡았다. 그의 주요 관심은 인간의 구원이 문제였다. 니케아회의에서 주 논쟁점은 그리스도론 이었다. 그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것이었으나 그 근본에 있어서는 삼위일체론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회의의 논쟁을 출발점으로 성령론과 나아가서는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는 성서를 근거 삼아 성서가 총체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이 피조물과 공통된 본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로 계신 신성과 하나가 되어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동질적이며 분할될 수 없다. 영은 그 하나님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실체를 갖는다.

영은 아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맏아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가진 것과 똑같은 관계를 가진다. 그는 아들의 영이다. 아들이 성화하고 계몽하는 능동적 행동이요, 선물이다. 그에게는 또한 아들이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가 가진 것은 아들의 것이다. 그는 아들과 함께 창조에 동참하였다. 영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일에 동참케 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신성을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영이 피조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피조자와 경합되어 신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신성은 영원부터 위의 삼위일체 상태로 계셨다. 하나님의 동일한 분할할 수 없는 본체가 있었다. 세위는 하나이자 동일한 행동력을 가졌다. 그래서 아버지는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모든 것을 완성한다.

아버지가 창조를 하시든 우주를 통치하시든 구속을 하시든 간에 그는 말씀을 통하여 하신다. 영은 아들의 참 형상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나왔고 로고스에 의하여 비치고 보냄을 받았으며 주어졌기 때문이다. 영은 하나님에게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본성과 같다. 그리고 아버지의 본성과도 같다. 그의 안에서 삼위일체가 완성되었다.

롁. 어거스틴

;어거스틴의 신관의 출발점은 하나님을 절대자, 단 일자, 분해될 수 없는 자, 보든 범주를 초월할 자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있다. 그는 성서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랐으나 하나님을 더 깊게 그리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당시에 철학에서나 다른 종교에서 쓰고 있던 개념까지 동원하여 성서적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강조하려 했다. 그때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삼위일체론은 대체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자관계를 위주로 해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자체 이해에서 출발했다.

그는 유대교의 유일성을 의식하면서 단일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단일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삼위를 말하려고 하였다. 그는 삼위일체의 통일성을 부각시킴으로서 모든 종류의 종속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사랑이 한 인류에 속하면서 세 개인으로 나눌 수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셋으로 나눌 수 없다.

신적위격의 각자는 실체의 견지에서 본다면 다른 위격과 동일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세 위격을 삼중 적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각자가 유리되어 있는 실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삼중 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위격은 상호내재한다든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고 해햐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단일적이고 분할할 수 없는 한 행동과 의지를 가진다. 그의 사역은 분할될 수가 없다. 우연적질서와의 관계에 있어서 세 위격은 한 원칙으로 사역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삼자관계하에 있다고 하는 관계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거듭 강조하기를 실체의 견지에서 볼 때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하나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게 했기 때문에 아버지로써 구별되며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서 탄생했기 때문에 아들로 구별되고, 영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서 주어졌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공동 선물로 존재한다고 한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교리를 단지 신화적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증명하려고 했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교리는 후대에 삼위일체 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

III. 결 론

고대에서 어거스틴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 교리를 살펴본 결과는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육신 적이며 구원적 관점에서 어떤 이론을 논리적으로 꿰맞추기 보다는 기독교의 구원의 신앙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신앙적 차원에서 논리적인 정연함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허무 맹랑한 상설에 그칠 것이다. 이 삼위일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노력이 나의 일생의 숙제가 될 것이고 또 당연히 삼위일체를 더 깊은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