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구원의 확신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이 맞다 그르다 판단하기 이전에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는 구원 받은 자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이 구원받을 때에는 복음을 99.9%의 확신도 아닌 전적 확신으로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록 그의 어떠한 죄나 외부환경으로 인하여 그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균형해 질 수는 있더라도 그가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심하는 것 즉 예수를 부인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구원받았다면 100%로 예수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비록 그가 구원의 기쁨은 상실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자신의 구원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구원에 대해 불안해 하는 자는 애초부터 전적인 확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며 그래서 그는 구원받은 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이말이 성경과 일치할까요?

우선 성경이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알아보도록 합시다.

성경은 인간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묘사해 놓았지만 그중 분명한 것은 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다는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에누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에 등록해서, 교리 몇개 달달 외우고, 세례받고, 세례교인이 되고, 그래서 세례교인답게 교회 욕 안먹일 정도로 경건하게 살고, 하는 것들은 그가 구원받는 것을 전혀 도와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깨달음의 종교도 아니요, 도덕의 종교도 아니요, 인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내 생애 속에 초청하여) 궁극적으로 영혼의 건짐을 받는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9% 성도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을 받아가고 있는 사람, 50%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수 없으며, 80% 영접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구원 받은 자들은 그의 구원에 대해 안심할수 있을까요? 예,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자신이 사랑하는자 안에서 열납하시고 자신의 영으로써 구원하신 자는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빌1:6,요10:28-29,요일3:9,벧전1:5-9 참조) 그러나 이 말은 한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하나님을 떠나거나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성도에게는 궁극적인 승리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것일 뿐입니다. 누구든지 타락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순간순간의 삶에 있어서 새성품과 옛성품사이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사용해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징계를 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우리를 이미 아들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구원의 확신에 대해 무슨말 하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이란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구원받았음에 대해 안심하는 것을 말함이 아닙니까? 성경은 또한 모든 성도가 자신의 구원을 예외적인 계시가 아닌 성령의 내적증거등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다 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을 받았으되 시간이 흘러 구원의 확신을 항상 가지지 못하게 되어 불안해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말씀을 찾아봅시다.

먼저 시편 77편의 1절에서 10절을 봅시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로다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자신의 당한 환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찾았으나 그 응답이 없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원히 버리실까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안이 있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일까요?

또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서 사도 바울의 강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는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 (갈 3:1-7)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안전함을 믿지 못하고 다시 의롭게 되고자 (구원을 얻고자)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음이 틀림없다는 추리가 과연 성경적인가요? 그러나 성경은 그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 일서 5장 12절에서 13절을 봅시다. (1절부터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 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구원의 안전함을 확신하는 지식이 있다면 왜 요한이 이와 같은 말을 하였겠습니까? 자기 안에 영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이 부족할 때 우리는 주께서 우리의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게 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얻느니라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벧후1:5-12)

우리가 이제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먼저 말할 수있는 것은 구원의 확신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구원의 확신속에서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원하시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비정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인 것도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구원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구원 받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구원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대신 불안해 하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확신하는 진리를 부지런히 소개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대구 경북대 SFC 회지인 ARK에 내었던 글입니다. 역시 참고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