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휴거 소동은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많은 반성을 하게 한다. 빈익빈·부익부로 심화되는 한국 경제의 모순은 계급·계층간의 갈등으로 표출되었고, 소외된 계급·계층들은 자신의 모습을 종교에서 보상받으려 했다. 이런 중첩된 위기 속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인 하늘나라를 선전하여-예를들면 '예수천당·불신지옥'-거대한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을 건설해 왔다. 역사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한 한국 기독교의 풍토속에서 시한부 종말론은 비닐 하우스속의 모종과도 같았다.
제2, 제3의 모종을 배태하지 않기 위해서는 '값싼은혜'에 매료되어 하나님을 삶의 변두리로 내몰지 말고 성숙한 시대의 성인으로 역사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실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서적인 이해와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토대로 하는 실천이 절실히 요청된다. 왜냐하면 신학함(Theology Doing)은 신에 대한 논리적 서술이 아니라 삶으로 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 신학함은 역사의 적극적인 현실-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하는-과도 관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행동을 올바르게 담을 수 있는 신학적 틀인 '하나님 나라'의 주체는 누구이며, 이 나라의 통치 원리는 무엇이며, 통치의 내용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표출되었으며 현실의 체제와는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 심도있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체계적인 고민은 필자와 독자들의 과제로 남기고 단지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와 그 역사성을 성서적 전망속에서 고찰해 보고 분단된 한반도에서 하나님 나라의 지평을 적용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로서 평화
창세기 1-11장에서 나오는 창조의 기본구성에 관한 성서의 진술은 원래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룩된 샬롬이 어떻게 파괴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즉 하나님과의 사귐(창세기 3장), 형제간의 사귐(창세기 4장), 가족간의 사귐(라멕), 세대간의 사귐(창세기 9:18이하), 민족들간의 사귐(창세기 11장), 모든 피조물들사이의 사귐이 어떻게 깨어졌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초두에 나오는 원역사는 또한 하나님의 신실함이 샬롬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계속되는 삶의 가능성을, 더욱이 늘 위협을 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상실되지 않은 샬롬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는가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가인에 대한 자비와 노아가 방주로 모아들인 모든 생물을 구원함에서 분명해진다. 즉 하나님의 본래적인 창조의도는 샬롬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사울과 다윗 시대에서 이스라엘의 왕국 설립은 샬롬의 확대를 가져왔다. 에루살렘의 초기왕정시대부터 영향을 미쳐 온 샬롬에 관한 사고에서 에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은 하나님의 산으로 이해되었다. 야훼는 세계의 왕으로서 이산과 땅과 하늘에 보좌를 편다. 거룩한 산이 있는 하나님의 도성의 왕은 인간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중보자이다. 야훼와 그의 왕은 "삶의 공간으로 땅과 가축의 풍요함으로 전쟁으로 인한 재난이 없는 곳으로, 또 위협당하는 사회적 계층(과부와 고아)의 복지와 개개인의 영역에서의 행복도 보장하는 사회정의로서 세계의 안정"을 보증한다. 샬롬은 시온으로부터 시작해서 전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모든 우주에 까지 미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근본적으로 야훼의 이름으로 샬롬이 파괴된 원인을 거듭거듭 지적하고, 그 결과에 따른 야훼의 심판을 지시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즉 법과 정의의 결여,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 우상숭배와 관련해서 새로 등장하는 강대국과 맺는 계약등이다.
"나는 듣나니, 야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것은 분명히 샬롬, 당신 백성과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샬롬이로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샬롬이 입을 맞추리라"(시85:8-11)
"정의와 샬롬을 가져오고 법은 태평성대를 이루리라"(사 32:17)
정의와 샬롬이 입맞추면 "땅에서는 진술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서는 정의가 굽어 보리라 야훼께서 복을 내리시리니 우리 땅이 열매를 맺어 주리라" (시 85:12-13)
나사렛 예수는 두개의 샬롬영역이 서로 뒤얽혀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 즉 페르시아 대제국으로부터 로마제국으로 넘어가는 때는 바르고 겸손하게 살았던 소집단의 샬롬과 샬롬을 권력·정치적으로 실현할 새로운 다윗의 재림을 통한 거대한 샬롬을 새롭게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다. 유다 민족의 집단들은 미래적 샬롬을 그들의 정치적 통치에 의해서 획득하려 했으며 또 마카베오와 열혈당원들의 투쟁에서 무기를 통한 폭력의 사용도 불사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며 임박한 종말사건들은 "인간의 손을 거침 없이"(단 8:25)을 것이라고 고집했다. 이 집단들은 전적으로 기다리며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때그때 권력과 타협했다. 유다인 군인, 관리, 사두개파 사람들, 헤롯와 그 추종자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묵시문화적 기대에서 "야훼전투"의 낡은 전통이 다시 눈을 뜬다. 하나님의 구원과 샬롬을 가져오는자는 놀라운 방식으로 적들을 전멸시키는 왕이거나 바 코흐바처럼 실제로 전쟁 메시아라는 것이다. 이러한 매우 복합적인 기대상황속에서 예수는 말했다.
"때가 다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막 1;15)
예수는 하나님의 행동 무대인 현재의 역사를 미래적이고 타계적인 샬롬만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예수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와 샬롬은 현재의 역사 안에 현존하고 있다. 또 예수의 선포는 로마의 샬롬(Pax Romana)과 대별된다. 예수는 로마의 통치 원리인 지배와 폭력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한" 섬김으로 이해되며, 이 때문에 8복에서 온유한, 평화를 원하는 자는 지상의 나라가 약속된 것이다(마5:5).
바울도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롬14:17)라고 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이해와 맥을 같이 한다. 바울에게 있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로서의 평화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구원행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즉 모든 윤리의 중심은 사랑안에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사랑의 계명은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의 핵심이다.
2. 평화의 현재적 인식과 대안
세계교회협의회는 자신들의 과오를 문서화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파괴된 피조물의 해방과 억압당하는 사람들에게 정의와 제국주의에 신음하는 식민지에 평화를 향한 현재적 진단이다.인용해보면"。우리는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애를 증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로서 우리의 자아 이해의 부합하는 삶의 양식을 계발하지 못함으로써 과오를 저질렀다.
。우리는 교회들의 분리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그리고 우리에게 위임된 권위와 권력을 가끔은 인종차별, 성의차별 그리고 국수주의를 강화시키는데 남용함으로써 과오를 저질렀다.
。우리는 전쟁을 유발함으로써 중재와 화해를 위해 헌신할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쟁을 옹호하고 가끔은 너무 안이하게 정당화시킴으로써 과오를 저질렀다.
。우리는 권력과 부를 남용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세계의 자원을 착취하고, 가난과 소외를 구조적으로 조직화하는 정치와 경제체제를 문제삼지 않음으로써 과오를 저질렀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변화를 그 핵심으로 지향한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과의 대결에 직면하고 있는 인간의 핵심으로부터의 변화를 지향한다. 바로 이것이 메타노니아(Metanonia, 회심)가 뜻하는 바이다. 세계교회들의 현재적 인식과 변화를 위한 회심은 대안을 통해 하나씩 실현된다.
한스 큉은 이에 대해 "세계 윤리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종교의 평화없이는 세계의 평화도 없다. 또 종교의 대화없이는 종교의 평화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 현시대를 근대-후기(Post Modern)로 파악하여 '자유만이 아니라 정의도' '동등성만이 아니라 다원성도' '형제애만이 아니라 자매애도' '공존만이 아니라 평화도' '생산성만이 아니라 연대성도' '관용만이 아니라 일치도' 강조되어야 한다고 한다.
3. 평화의 한반도적 접근
샬롬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는 분단된 한반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진다. 특히 통일은 신학의 주요한 주제로, 신앙의 중요한 실천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한국교회협의회가 1988년에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을 발표하여 분단 고착화에 기여한 한국 기독교를 반성하고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의 3대 원칙을 확인하고 1995년을 통일의 원년, 즉 희년으로 선포하였다.
박순경 교수는 신학의 주제가 민족의 통일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통일이 오늘의 한국신학의 핵심적 주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단상황이 반민족적이고, 미·일과 같은 세계의 지배세력들의 표식이고, 이 세력들과 결탁한 혹은 종속된 민족내부의 모순이고, 이러한 불의한 문제 상황의 극복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의와 구원, 그의 나라와 평화는 이 땅에서 이 민족을 위해 선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서양 기독교의 거의 전반적인 문제, 예컨대 지배자·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고스란히 담지한 채 수행되었으며, 한국교회는 그러한 문제를 전혀 모른채 탄생했고 서양교회의 지배자 반공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전수해 받았으며 지금까지 고수해 왔다고 주장한다.
서양신학의 전통-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교회론,창조론, 종말론 등-은 오늘의 분단상황과 통일의 과제와 관련해서 비판적으로 검토·원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의 통일신학의 주체는 민족·민중·여성으로 설정한다.
박교수의 지적은 신학노선과 텍스트(Text)와 컨텍스트(Context)와의 상관성에 있어서 우리와 차이가 있지만 통일의 중요성과 절박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민족통일에 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교회의 역할이 부각되어야 하겠다. 민족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기본원칙에 대해서는 한국교회협의회의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화해의 복음(에 2:14∼17)을 실천해야 하며, 동족의 고통스러운 삶에 동참해야 한다.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 곧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룩하는데 있으므로 우리는 통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바로 신앙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통일은 곧 민족의 삶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분단을 극복함으로써 갈등과 대결에서 화해와 공존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마침내 하나의 평화로운 민족공동체을 이룩하는 것이다. 또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천해야 한다. 통일은 사상과 이념, 제도와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이러한 평화통일의 원칙속에서 남한의 기독교는 서구식 선교의 관점에서 벗어나 북한의 동포적 이해, 사랑의 대상으로 북한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또 분단되어진 한국의 역사적 현실은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들과도 대화할수 있는 접촉점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군비의 전폭적인 감축과 이를 민족경제 형성을 위한 자본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분단으로 야기된 군의 대결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조장할뿐 아니라 민족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성서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를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살펴보았고, 샬롬을 향한 세계교회들의 인식과 대한을 점검하고, 이를 평화공동체로서 한반도의 통일을 살펴보았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 사이의 샬롬을 의미하는 것이며, 샬롬은 현실의 역사를 무시하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와 종말에 꾸준히 견지해야 할 통치원리이다. 샬롬은 분단된 한반도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통일을 향한 기독인들의 실천속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성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민족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민족교회는 유치한 쇼비니즘도 아니요, 혁명을 위한 거점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정의를 실현할 사도요, 전초기지일 뿐이다. 민족교회는 민족이 짊어진 통일의 과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동시에 감당해야 할 도구이다.
"네가 만일 나의 명령을 마음에 두었더라면 너의 샬롬은 강물처럼 넘쳐 흐르고, 너의 정의는 바다물결처럼 넘실거렸으리라" (사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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