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신학의 상생모델

실천신학 방법으로서의 相生모델

안 석 모 교수

(협성신대/실천신학)

한국교회에 {신앙발달이론} (Faith Development Theory)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고,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니이버(H. Richard Niebuhr)의 탁월한 연구가로도 명성이 높은 파울러(James Fowler) 박사가 실천신학의 위상(位相)에 관하여 수업 중에 이런 우스개 논평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 신학교 교수 연구실을 방문해 보라. 건물의 입구에 위치한 볕바른 좋은 교수 연구실은 조직신학자나 성서신학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저 지하층 구석진 곳(at a corner on the bottom level)에 가면 어김없이 실천신학교수의 연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이러한 발언은 다분히 조크(joke)의 성격을 띈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듣듯이 미국 신학과 미국 신학교는 실천적인 면에 상당히 치중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를 들어보자. 현재 파울러 교수가 가르치고 있는 캔들러(Candler/Emory 대학) 신학대학의 최근 학교 요람을 보면, 1990-1991학년도에 622 명의 학생들이 재적하고 있었고, 61 명의 교수(그 중에 전임[full time]이 48 명, 이 통계에서 시간강사[instructor]는 포함되지 않았음) 가 가르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1/ 이 전체 교수진 중에 목회나 목회실천에 연관된 (목회상담, 설교,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음악, 교회행정까지) 교수가 모두 27 명(그 중에 20 명이 전임)이다. 그렇다면 절반에 조금 모자라는 교수진이 소위 말하는 실천신학 혹은 실천신학방계에 해당하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실천신학자들의 교수연구실은 저 지하층 컴컴한 구석에 위치하여 있는가?

우연히 한 실천신학자의 입에 올려진 이 공간적 이미지["a cornor on the bottom level"]를 목회 및 그와 관련된 분야를 가르치는 교수들의 평가치로 삼지는 말자. 그러나 이 이미지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실천신학"이라 이름하는 신학 장르의 현주소와 그 객관적 자리매김(status)이 아닐까? 만일 이것이 농담의 차원을 넘어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는 실천신학만이 아니라 신학일반을 위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더우기 이것은 목회자 교육과 양성을 목표로 삼는 "신학교"(seminary) 의 존립의미와도 크게 상관이 된다.

본 논문은 1980년초 이후 새로이 신학의 고유 쟝르로 인식되기 시작한 실천신학의 현주소를 점검해 본 후, 새로운 논의를 탐색해 본 다음, 이 새로운 논의를 영미 철학의 speech-acts(언어-행동) 이론에 비추어 재조명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 언어철학적 재조명은 신학의 각 쟝르간의 관계를 새롭게 보려는 시도로서, 최근에 논의되기 시작한 相生論으로 우리의 과제를 이끌어가는 선도(先導)가 된다. 이후 상생의 기본적 특성을 헤아려 본 다음 실천신학의 구체적 방법 혹은 단계를 제시함으로 그 결론을 삼을 것이다. 이 논문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실천신학 방법론에 상생적 구도가 근본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이론적으로 차근차근 따라가 보는 것으로 실천신학 전체를 위한 하나의 서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제한점을 미리 밝혀 둔다.

I. 실천신학의 실상과 현주소

우리에게 "실천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지시하는 실제 사물(reference)은 무엇인가? 실천신학을 신학교 교과목으로 등장시킨 슐라이에르마허(F.Schleiermacher)와 그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대다수의 우리에게 실천신학이란 목회자/2/의 목회실천을 위해 필요한 몇 개의 세부학문(subdiscipline) 즉 목회학, 기독교교육, 설교, 예배, 목회상담 등을 가리킨다. 실천신학에 대한 이 전통적 관념은 목회자 양성을 그 교육목표로 삼고 있는 교파 신학교(seminary)에서는 당연히 모든 신학 활동의 "정점"이었으며, 따라서 실천신학은 신학의 "왕관"(crown)이라고까지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언제 실천신학이 저 머리 "위"에서 "발 아래"(지하층)로 떨어졌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첫째, 실천신학은 한번도 신학의 머리 "위"에 왕관으로 씌워진 적이 없었다. 둘째, 실천신학은 그 밑의 세부학문들을 집합적으로 지칭하는 종(種)개념(generic name)이었을 뿐, 그 자체의 고유한 학문적 대상이나 방법론을 갖추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셋째,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통탄하는 신학교와 교회 사이의 틈, 신학자와 목회자 간의 거리 등이 바로 이 실천신학의 부재 내지는 저조한 활동 때문이었다.

1. 실천신학은 '응용'신학이었다

근대적 '대학'(university) 안에서의 신학교육 확립을 위해 신학교육의 뼈대를 최초로 제시한 슐라이에르마허는 분명히 실천신학을 신학활동·신학교육의 완성점이라 보았다./3/ 실천신학의 同氣인 "철학적 신학"과 "역사신학"이 "신학"일 수 있는 것은 이 신학들이 교회의 치리와 사역에 관계되고 원용될 수 있다는 그 動機와 정신에 있다고 본 점에서 위의 명제는 확실해진다./4/ 기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신앙과 기독교적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신학이라는 기독교 초기부터의 神學觀에 합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슐라이에르마허가 교회활동과 목회활동에 관한 학문들은 (서구식) 대학 내에서 교과목으로 연구·교수할 수 있다는 학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 역사적 의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슐라이에르마허가 실천신학을 신학의 큰 쟝르로서, 대학의 신학 커리큘럼의 한 주요 구조로서 내세웠을 때, 그의 실천신학에 대한 이해는 매우 피상적인 것이었고,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왜 실천신학이 "신학"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생각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는 "실천신학"이란 "교회활동에 관한 지식으로서 일종의 기술(technology)"을 지칭하는 것이었다./5/ 이 때 교회활동에 필요한 기술과 그 지식이란 다름아닌 이미 발견된 (혹은 만들어진) 철학적, 역사적, 신학적 지식을 어떻게 현재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러므로 철학적, 역사적 신학과 실천신학의 관계란 일종의 이론-응용, 본체-기능, 약-처방 같이 主와 從의 관계와 흡사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실천신학관은 목회자나 교회활동가의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슐라이에르마허 의 설명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

" #259. [깊은 기독교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사려깊은 성격의 영향력을 펴려는 사

람[목회자나 기독교인]이 해야할 과제들은 그가 현금의 교회의 실제 상황을 어떻

게 이해·평가하느냐[역사신학]에 달려있다.물론 이 이해·평가는 기독교의 본질을

그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철학적 신학], 또 그 자신이 속한 기독교 공동체를

어떻게 보느냐[역사신학]에 달려있을 것이다..."

" #260. 위에 말한 과제들이 어떠한 내용의 것이어야 하는지[right conception]를

가르치는 것이 실천신학의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실천신학은 그것을 미리 전제하고

'교회의 지도력'이라는 개념안에 포함되어 있어야만 하는 그 과제들을 실행하는 올

바르고 정확한 과정(procedures)에만 관심하면 되는 것이다."/6/

이런 식으로 실천신학을 이해했을 때, 실천신학자가 해야하는 일이란 철학적·역사적 신학지식을 올바로 충분히 이해·흡수하고 그것을 제대로 현실에 적용하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슐라이에르마허 이후에 실천신학의 역사가 위에 말한 식으로 전개되어 갔음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목도한다./7/

2. 種개념으로서의 실천신학

실천신학을 위와 같이 이해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실천신학은 곧 교회(목회) 활동이 이루어지는 여러 영역에서 필요한 기술, 그 기술에 대한 보조지식,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약간의 성서적·신학적 보조발언을 集積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실천신학이란 목회상담의 이론과 실제, 예배의 원리와 적용, 교육이론과 그 교회적 적용 등 오늘날 우리가 신학교 교과목 일람표에서 보는 여러가지 신학과목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한 유명한 지도자가, 첫 목회를 나가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을 때, "명정"(銘旌;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 따위를 쓴 弔旗)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聖句를 그 위에 써준 후, 나중에야 실수를 깨달은 뒤, "신학교에서 장례식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아서"라고 변명했던 그 所以를 깨닫게 된다. 그 목사님은 신학교의 실천신학교육이 不實했다고 간접으로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과연 장례식 명정 쓰는 것까지 가르치는 것이 실천신학인가?! )./8/

한국의 신학교들이 목회자 양성을 그 교육 이념으로 내세우면서도 이론신학(철학적·역사적 신학--슐라이에르마허의 분류로 보면)에 치중하고, 그나마 種개념으로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실천신학에 대한 상대적 무시 혹은 소홀히 함을 홍정수 교수는 이런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론신학적 지식을 실천적 기술로 혼동하고 있고, 전문교역자 교육(professional education)을 중세의 [대학-지식] 교육으로 착각하고 있다./9/

3. 신학(자)와 목회(자)의 메울 길없는 틈새기

실천신학이 한낱 목회 기술이나 현장 경험의 수준으로 격하되자, 신학교에서는 아카데믹한 학문이 아니라 하여 자연 멸시받고, 목회를 많이 한 유경험자나 자기 체험에 근거하여 가르칠 수 있는 학과목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적어도 이것이 그동안의 한국의 실천신학의 현실이었다. 아카데믹한 신학교는 중세기의 신학을 모델로 더더욱 아카데믹해지고, 따라서 그런 신학교육이 목회현장의 현실과 부합할리 만무하다. 이렇게 해서 점점 벌어진 것이 신학교와 교회, 신학과 현장 목회, 신학자와 목회자 사이의 거리였다.

이렇게 메울 길 없이 커지기만 하는 둘 사이의 거리에 대해 신학교와 교회는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책임이 기왕의 실천신학 개념상에 내재하는 구조적 문제, 실천신학에 대한 그릇된 신학적 인식에 있다는 지적은 거의 없었다.

만일 후자의 지적이 맞는 이야기라면, 기왕의 실천신학에 대한 개념과 그 이해를 새로이 함으로써 이상에 열거되어온 여러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새로운 실천신학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신학교 졸업후 신학교 재학시의 기간보다 수배, 혹은 수십 배 오랜 기간 동안 행해지는 목회 실천이 비로소 신학의 소재나 대상이 되고, 그럼으로써 신학과 목회가 유기적 상호 협력·보완·비판의 관계에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되면 실천신학이 단순한 (이론)신학의 응용, 또는 (이론)신학의 실행이 아니라, 실천의 신학 또는 실천에서 실천을 소재로 우러나오는 신학이 되고, 그럼으로써 실천신학은 곧 그 자체로 정식 신학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II. 새로운 실천신학의 의미

실천신학의 의미, 역할, 그 중요성에 관한 논의가 1980년대에나 시작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신학과 실천: 실천신학에 관한 에큐메니칼 관점들" 이란 주제 하에 교파와 신학쟝르를 초월하여 일단의 미국내 신학자들이 1981년에 시카고에 모여 거의 반 년에 걸쳐 세미나를 가진 것이 그 최초의 출발점이었음은 특기할만한 일이다./10/

그러나 이 때는 시카고 대학 신학부 교수 트레이시(David Tracy)가 그의 두번째 주저 Analogical Imagination/11/을 탈고한 후였고, 이 책에서 저자는 새로운 의미의 실천신학을 조직적으로 개진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트레이시의 이 새로운 제안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구분법 이후 가장 포괄적인 신학 구분법이었으며, 실제로 양자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 동시에 신학자로서의 무게와 영향력 때문에 트레이시의 제안은 그만큼 중요성을 띈 것이기도 하다.

1. 트레이시(David Tracy)의 실천신학 의미

그렇다면 트레이시가 제안한 실천신학의 의미는 무엇이었던가? 그는 신학을 3 가지의 큰 쟝르 즉 기초신학(Fundamental Theology)로 구분하면서, 그 구분의 기준으로 5 가지를 제시하였다./12/ 1) 그 신학을 듣게 되는 제 1차적 준거집단 즉 청중 2) 그 언어진술의 논증양식 혹은 형태 3) 그 신학자의 윤리적 거점 혹은 자리 4) 그 신학자의 신앙적 견지 혹은 자세, 끝으로 5) 그 신학언어가 내세우는 진리의 진술이 우선적으로 목표하는 어떤 진술 목적.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여기서 설명할 수가 없으므로 간략히 정리한 <표 I>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 쉽게 드러나는것은 트레이시의 이 삼분 구도와 슐라이에르마허의 삼분 구도가 상당히 가까운 대칭을 보인다는 점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철학적 신학"과 트레이시의 "기초신학", "역사신학"과 "조직신학"이 거의 서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천신학만은 이름이 같으나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 있어서 실천신학은 단순히 다른 두 신학의 "응용" 혹은 그 응용에 관한 이론과 신학外 지식이었다. 그러나 트레이시에게 있어서는 실천신학은 다른 두 종류 못지 않게 이론적이고 신학진술적이며, 또한 아카데믹한 것이다.

그러나 트레이시의 이 3분법이 드러내고 있는 취약점 또한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포괄적으로 물어서 세 쟝르의 신학 사이의 상호 연관성은 무엇인가? 먼저 물을

것은, 이 세 쟝르의 신학은 한 신학적 주제의 세 가지 다른 표현 양식을 일컫고 있는가? ("사랑"이라는 한 주제에 각 문학쟝르마다 다른 표현 양식을 보일수 있듯이) 아니면 이 세 쟝르의 신학이 각기 고유의 테마의 고유의 표현 양식을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둘째, 트레이시가 전자를 의미하였다면, 기초신학과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은 그저 청중과 상황에만 맞게 조화 변형된 신학이기만 한 것인가? 오히려 실천신학과 조직신학 그리고 기초신학 사이엔 각각 어떤 상호변화, 상호영향은 있을수 없는 것일까? 셋째로, 만일 신학 쟝르 사이에 그러한 상호 영향 상호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의 계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더 깊은 혹은 메타신학적(meta-theological)인 차원에로 발을 들여 놓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 신학쟝르 사이의 문제는 신학 그 자체에 대한 고찰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언어 행위로서의 신학

우리는 신학(theology)이라는 학문적 대상을 우선 인간의 "언어행위"로 파악한다. 신학이 神(기독교의 하나님:theos)과 그에 관련한 사상(事象: things and events)에 관한 인간의 언어(logos:human language)라는 것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행위로서의 신학이 갖는 특색은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에서 우리는 신학과 언어철학의 만남을 경험하게 되고, Tracy의 신학 3분법에 대한 새로운 조명에 이 만남에서 가능해지리라고 믿는다.

신학과 언어철학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종교적 언어" 문제를 논의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까지 신학을 인간의 언어행위로 파악하면서, 신학 언어와 그 언어의 지시물(reference)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만 관심이나 사용(use)에 관해서는 너무나 소홀하였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고, 바로 이 점에서 신학쟝르 사이의 관계와 주체성에 혼돈이 있었음을 진단코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동안의 신학언어에 관한 논구들은 신학언어와 그 언어가 가리키는 것이 "실제로" 일치하는지 일치하지 않는지, 아니면 그밖의 어떤 다른 관계에 서로 놓여 있는지 등의 문제에만 매달려 있었지, 그 신학언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지, 어떤 "쓸모"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 모두는 현대신학의 거장 틸리히(Paul Tillich)의 유명한 신학적 명제, "신은 존재의 기반이다"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신은 존재의 기반이다"라는 신학적 언사(言辭)를 듣는 순간, 우리는 이 명제가 眞인지 僞인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하나의 한 "情意的言明"인지를 따져 보려는 경향을 내심으로 느낀다. 사람마다 그가 가진 취향이나, 신학적 경향에 따라서 이것은 참이다 이것은 거짓이다, 이것은 말도 된다(안된다) 등의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한 신학적 언사로서 이 명제가 틸리히 자신에게나 듣는 사람에게 무슨 기능을 하고 있는지, 또는 이것을 틸리히가 무엇을 위해(신학적 의도) 쓰고 있는지, 그것이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등에 관해서는 우리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신학적 언어는 단순히 사물을 객관적으로 그리기(picture)만 하는 언어일까? 설령 신학적 언어가 "그림언어"(pictorial language)라 하여도 하나의 그림을 상황에 따라 그 기능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게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신학이 필연적으로 항상 누군가에 의해서 (신학자:신앙인) 발언되는 것이라면, 그 발언자는 그 신학적 언사로 무엇인가를 "한다"("do")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3. 언어행위(Speech Acts) 이론과 신학 쟝르

이런 점에서 우리는 신학을 언어 행위로 파악하며 이 신학언어를 그 운용(運用; use or operation)의 측면에서 새로이 조명코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논리 전개는 J.L.Austin 등을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언어행위이론"(Speech-Acts Theory)와 맥을 같이 한다. 언어는 단순히 事象의 실재와 현상을 기술(혹은 진술;진위를 가릴 수 있도록)하는 것만이 아니다. 언어는 발언자의 의도를 "수행"(遂行;perform)하기도 한다. 이런 전제하에 오스틴(J.L.Austin)은 언어 운용의 세 측면을 지적하였다. : 1) locationary act, 2) illocutionary act, 3) perlocutionary act./13/

Locutionary act란 발언행위 자체이다. 그중에는 특히 그 발언(명제)의 의미(영어로 표현하면 saying something) 즉 그 sense와 reference를 가리킨다. illocutionary act란 발언을 통해 발언자가 무엇인가 자기 뜻을 밝히는 행위이다. 그럼으로써 발언자 자신에게 무엇인가 영향이 미쳐온다. 즉 약속이나 명령 혹은 탄원조의 이야기를 예로 들을 수 있다(영어로 표현하면 doing something in saying). perlocutionary act란 발언자가 발언을 통해 청취자에게 일으키고자 하는 어떤 영향력에 대한 지칭이다. 즉 발언자가 청취자에게 발생하게 만드려는 의도적 행위의 측면을 가리킨다(영어로 표현하면 doing something by saying).

오스틴이 직접 거론하는 한 예를 들어보자./14/ 한 남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하자. "저 여자를 '총으로' 쏘아!"--이 명령이 지니고 있는 내용이 곧 locutionary act가 된다. 그 남자는 이 발언을 통해 나에게 명령을 하는 그 사람의 의도, 나아가 그럼으로써 그 자신에게 영향이 파급되어 오는 것이 illocutionary act의 측면이다. 이 명령에 의하여 내가 그 여자를 쏘았다고 하자. 그 남자는 perlocutionary act를 나에게서 그 발언에 의해서 성취하는 셈이다. 이처럼 번쇄한 분석에 분석을 거듭하여 '언어행위' 이론가들은 언어의 행위, 언어로써 하는 행위들을 연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이 언어행위에 대한 정교한 분석보다도 언어의 운용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이 언어철학자들의 의도를 우리의 신학언어행위에로 옮겨와 우리의 언어행위를 살펴보자는 데에 있다. 신학 언어행위에도 이러한 세 가지 측면의 언어행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학적 발언을 생각해 보자. 이 신학 명제는 트레이시(Tracy)의 신학 쟝르 중 어디에 속할까? 결국 해답은 이 신학적 명제가 쓰여지는 발언의 컨텍스트, 발언자의 의도, 발언자가 이 명제를 가지고 이룩하고자 하는 쓰임새 등등의 신학 언어 외적 요인에 그 쟝르는 구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다시 말하면, 신학 쟝르는 신학 언어의 '쓰임새'와 '의도'에 연관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도출할 수가 있다. 첫째, 위에서 이미 살펴본 대로 각 신학 쟝르가 고유의 신학 테마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테마가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신학적 표현 쟝르를 가진다고 한다면, 신학 쟝르를 그 언어행위 측면에 따라 설명해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즉 기초신학은 locutionary act에 관여하고, 조직신학은 illocutionary act에 해당하며, 실천신학은 perlocutionary act에 중점적으로 관심한다.

둘째, 위의 적용이 타당성을 지닌다면, 언어의 운용 측면에서 생각할 때, 각 언어행위(Speech-act)는 결코 독립적이거나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듯이(예를 들어, 보다 효율적인 상대방 설득-perlocutionary acts-을 위해 locutionary act나 illocutionary act가 얼마든지 변형·첨삭·강조 될 수 있듯이), 신학의 쟝르들은 실제 그 운용적 측면에서 상호 밀접한 연관성,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죄의 대속으로 이해하는 조직신학적 언사가 죄의식에 괴로와하는 내답자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목회상담을 통해 실증할 수 있고, 결국 이러한 신학 명제의 실천적 계기가 거꾸로 기초신학적 언어행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신학의 쟝르는 저마다 그 고유한 언어행위(Speech-act)로서의 독자적 영역을 가지면서도, 그 운용에 있어 상호 연관성을 가지게 됨을 체험한다.

셋째, 바로 위의 특징을 보다 세분화한다면, 우리는 어느 신학적 언사를 그 perlocutionary act의 측면에서 효용성·유용성·적합성등을 따져 그 실천가능성·실용가능성을 물을 수 있고, 거꾸로 이 실용가능성 여부에 따라 우리는 한 신학적 언사를 평가 혹은 새로이 발언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발견케 된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마귀들을 사로 잡는 하나의 올무였다는 중세기의 조직신학적 언사를 생각해보자. 이러한 신학적 이해는 그 나름의 실천적 계기가 그 시대에는 있었기에 실천적 효용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실천신학적 언어행위에 효휼적을 쓰일 수 있을까? 차라리 예수의 죽음을 공감적 이해(empathy understandings) 혹은 연대적 투쟁행위(solidary struggle)로 이해하는 현대적 실천성에서 새로운 기초·조직신학적 신학언어가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III. 相生과 실천신학 방법론

이상에서 우리는 실천신학을 나름대로 새롭게 해석하여 보았다. 실천신학은 기본적으로 기초신학이나 조직신학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이론적·아카데믹한 신학이다. 단 그 신학 언어의 쓰임과 의도가 다른 신학과 다른 것 뿐이다. 실천신학은 그 신학言辭의 실용적 계기 즉 신학언어가 얼마나 실천·실용에 효율적인가,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그 perlocutionary act에 얼마나 효율적인가 하는 측면을 목표로 행해지는 신학이다 라는 것을 설명하여 보았다.

이렇게 본다면 실천신학은 "써먹어 볼려고 하는 신학"이요, 또는 그런 목적으로 해석·검토될 신학이다. 바로 이점에서 "써먹어 보려는" 신앙실천의 현장과 그 프락시스(praxis)가 실천신학방법에 한 필수요소로서 등장하는 것이요, 또 그 현장에 하나의 검토될 대상으로서 기초신학과 조직신학이 등장하는 것이다. 동시에 실천·실용을 생각하기보다는 locutionary act나 자기이해를 위해 이해가능성(intelligibility)과 테스트내 일관성(intratextual coherence)을 우선 중시하는 신학교 內의 신학과, 실천·실용을 중시하는 교회·목회현장의 신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등장케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신앙에 대한 이해와 그 실천이 있듯이, 신학활동에도 이해로서의 신학(기초·조직신학)과 실천으로서의 신학(실천신학)이 있다. 이러한 신앙과 신학의 다른 모습을 대표 혹은 상징하는 것이 신학-신앙, 신학교-교회, 신학자-목회자, 이론-실천 등의 서로 짝지워진 기관 혹은 개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등장한 우리의 새로운 신학운동 즉 상생신학/15/이 실천신학 방법을 위하여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게 되는 것을 바로 여기서 깨닫게 된다. 우선 상생신학의 상생의 의미를 한번 점검해 보고, 상생의 방법이 어떻게 실천신학방법으로 등장하는지 실펴보기로 하자.

1. 상생의 의미

상생의 의미를 일반 한국(동양)전통 문화적 맥락에서 찾든 또는 홍정수 교수와 박종천 교수의 상생론에서 찾든-- 나아가 우리가 어떤 철학사적 배경에서 어떤 개념들을 사용한다고 치더라도-- 그 상생의 의미가 우주와 현실을 구성하는 어떤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실체들 사이의 어떤 관계 양태(relation)를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사물 사이의 관계 양태도 곧 우리의 현실계(reality)를 구성하는 것임엔 틀림없으나, 그러나 상생이란 어떤 대상(object)이 있고, 그 대상의 특성이 이러이러하다라고는 말하기는 어렵다라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상생을 존재로서보다는 관계로서 파악하고, 실체로서 보다는 그 실체 사이의 연관으로 파악한다.

기실 상생이란 원래 동양문화의 원류중의 하나인 음양오행설에서 우주·역사·인간의 "기본 구성요소" 혹은 "기본 운행" 다섯 힘 사이의 연쇄 고리(sequential order)중의 한 조합을 말하는 것이었다./16/ 5행을 이루는 火水木金土 중에 木-火-土-金-水의 연쇄 고리를 이루는 것이 相生序(sequentiql production order)요, 木-土-水-火-金 연쇄 고리를 이루는 것이 相克序 혹은 相勝序이다. 상생서에서는 앞의 행이 뒤의 행을 낳게 하고 조장시킨다. 그러나 상극序(또는 상승序)에서는 앞의 행이 뒤의 행을 정복해 버리거나 아니면 막아버린다.

80년대 말부터 두 감리교 신학자에 의해 전개되기 시작한 상생신학은 동양문화의저변에 흐르고 있는 이 음양오행설의 상생과 상극의 질서를 하나의 메타포 혹은 하나의 해석적 지평으로 삼고, 기존의 신학적 내용과 사회·문화·정치·윤리의 현상을 그러한 틀로 해석,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 생생의 메타포 혹은 이 상생 모델이 얼마나 기존의 기독교 상징체계를 재해석하고 재조명할지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크다.

그렇다면 상생의 메타포가 그 은유의 힘으로써 그리는 사물의 실상은 어떠한 것인가? 이점에서 실천신학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해석할 거점이 생기며, 동시에 실천신학방법으로서 상생서가 시사하는 바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먼저, 우리는 상생(또는 상극)이라는 메타포에서 사물 사이의 기본 관계가 서로가 서로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 그러나 이 관계성 속에서 한 요소는 그 요소 자체로 어떤 살리고 죽이는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성 속에서만(only in relation) 자신의 의미와 성질을 띄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水는 상생서에서는 木을 살리나, 상극서에서는 火를 죽인다. 따라서 水가 水로서 갖는 성질이나 의미는 그것이 어떤 질서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둘째로, 관계성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한 요소는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항상 다른 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데에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水가 水로 존재하는 것은 木를 살리기 위함이요, 혹은 火를 정복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자기의 존재가치가 항상 남(혹은 다른 것)을 위해 있다는 데에 이 메타포가 갖는 특성이 발견된다.

셋째로, 이 메타포가 가지는 가장 신비하면서도 때로는 주술적이기까지 한 특성은 그 순서에 대한 집착이다. 만물의 기본 요소(혹은 기본 힘)가 무엇이냐 그것이 몇 개이냐 하는데에 이 메타포의 진짜 의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요소 다음에 무슨 요소가 연쇄고리적으로 오느냐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오행설의 요체는 만물이 오행이냐 육행이냐 오행이면 그 구성요소가 무엇무엇이냐 하는 물음보다도 (이미 그것은 우주론적으로 결정되어 버렸다는 생각이였겠지만) 지금이 水라면 다음에 무엇이 오겠느냐하는 그 순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연결고리, 연쇄적 순서에 대한 이 집착이야말로 신비와 마술의 근원이 되어온 것이었다./17/

우리가 이 상생(혹은 상극)을 하나의 메타포(박종천 교수는 상생을 [metaphor]라고 부르고 있다)/18/ 로 취급하는 것은 위와 같은 상생적 세계의 연관구조(correlative structure of the world)를 가지고 신학함을 재해석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천신학을 위하여 상생이란 메타포로써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2. 신학함의 기본 요소들과 그 관계

트레이시의 신학 구분법이 보여준 요체는 신학함에 있어 그 대상이 되는 기관이 더 이상 "세상"과 "교회", 혹은 속과 성이 아니라, 아카데미아, 교회 그리고 세상이라는 보다 분화된 실재를 보았다고 하는 점이었다. 여기서 아카데미아의 등장은 포스트모던 세계를 생각치 않을 수 없는 20세기 말 우리의 다양화, 다극화, 다원화된 시대를 극명하게 대변하는 것이다. 지식과 과학과 정보의 이 시대에서 교회와도 구별되고 세상과도 구별되는 그런 제도(기관)가 사회학적 실재로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의 용납의 표시이다.

이런 사회학적 실재에 근거하여, 신학의 구분은 아카데미아에서 아카데미아를 향하여, 신앙적 충성과 신학적 정절을 떠나, 탈신앙적 탈이념적인 자세로 순수히 locutionary act로서 locutionary context 만을 다루는 기초신학을 제시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신학을 위하여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교회 풍토에선 아카데미아 내에서의 [기초신학]과 교회를 위한 [조직신학]의 차이를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 개념상의 혼돈 사이에서 오는 착오와 망상이 많기 때문이다.

트레이시의 또 하나의 큰 공헌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실천신학을 이론신학으로서 인정하며, 그 특성이 프락시스 혹은 실행을 위한 신학 혹은 실행에서 우러나오는 신학이라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나 블행히도 그는 [기초신학],[조직신학],[실천신학] 사이의 관계성과 그 상호 효용성을 지적치 아니하였다. 또한 실제로 실천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상생의 메타포( 혹은 역으로 상극의 메타포)가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것은 이러한 신학의 사회학적 실재간의 관계와, 신학언어 사이의 관계와, 실천신학 방법론 상에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신학이 그 어원에서 암시하듯 교회라는 장에서 신앙고백과 함께 출발함을 인정한다. 이 교회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실행할 때에 거기서 비로소 세상의 실체와 마나고 부닥치면서 (교회와 세상 사이의 마찰과 대립;교회와 비교회와의 대립 관계 속에서 ) 보다 근원적인 즉 보다 기초적인(fundamental) 문제에 봉착하면서 아카데미아의 필요성과 존재의미가 부여된다. 바로 이것이 원래 Schleiermacher가 신학을 삼분할 때 가졌던 생각이었다./19/ 즉 교회-세상-아카데미아-교회 순서의 상생서가 사실을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은 이 사회학적 실재의 연쇄고리 순서가 상생서가 아니라, 상승서 혹은 상극서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실재 사이의 상호 연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신학의 세 쟝르 사이의 싱호연관성이다. 도대체 이 셋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신앙인이 교회(시간과 공간을 함께 지칭함) 내에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이해하는 신학언어 행위를 조직신학이라 이해하였을 때, 우리는 그 신앙인이 세상에 나가 그 신앙을 실행할 때 자신의 조직신학이 하나의 theoria가 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실행(실천, praxis)에는 인식하건 하지 아니하건 이미 거기엔 이론(theoria)이 先在해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이론-실천(theoria-praxis)의 관계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실행의 단계에서 조직신학은 일종의 theoria로서 그 실천을 이끄는 先導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 검토·검증되기도 한다. 즉 이론과 이해로서의 조직신학이 그 이해의 타당성과 실천가능성 혹은 효용성 등에 대하여 검증되고 검토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실행 중에 혹은 그 실천 후에 praxis를 목표로 하여 또는 그 다음번 실행을 위하여 theoria로서의 조직신학이 재검토·재해석·재진술할 때에 바로 거기서 우리는 실천신학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실천신학이 실천의 장에서 부닥치는 문제중 보다 근원적인 문제(예를 들어 有神, 無神論의 문제)에 당도할 때 우리는 거기서 아카데미아의 기초신학의 필요성과 그 탄생을 보게 된다.

바로 이 순환이 신학쟝르 간의 상생서가 아닐까? 그러나 이제까지의 실천신학은 조직신학의 실천신학에 대한 相勝만이 있었고, 실천신학은 조직신학의 응용 내지는 억지 적용이 대세를 이뤄온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이러한 신학 쟝르 간의 연관 순서를 논하면서 우리가 새삼 발견하는 것은 모든 신앙의 실천에는 이미 거기에 어떤 형태이건 조직신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직신학은 단순히 언어와 언어밖 대상간의 관계를 그리는(picture) 것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쓰임새, 즉 실용의 계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실천신학 방법론

상생서에 근거한 실천신학의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엇인가? 이제까지의 실천신학이라 이름할 수 있는 신학쟝르 활동에 나타난 방법론은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앙의 실천에 관한 조직신학적 해석이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조직신학자들의 글에서 실천적 과제, 예를 들면, Tillich의 [조직신학]이나 John Macquarrie의 조직신학적 성찰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Thomas Oden이 펴내고 우리말로 번역된 {목회신학} 이 바로 이 부류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저서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John Cobb이 쓴 Theology and Pastoral Care/20/ 같은 것도 들 수 있다. 이러한 류의 소위 말하는 실천신학은 일반신학과 신앙의 실천 사이에 어떤 외형적 유사성이나 내용적 긴밀관계를 대비·종합·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하나의 실천신학은 신앙의 실천이 이뤄지는 그곳의 현장분석과 과정분석·기술에 급급할 뿐, 거기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나 그 과정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나 성찰이 결여한, 소위 말하는 practical how-to 책들이다. 이런 류의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Howard Clinebell의 Basic Types of Pastoral Care & counseling/21/ 이다. 목회양호와 목회상담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기술(techniques)은 이야기하나, 그것들이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와 함축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런 종류의 책은 거의 침묵하고 있다.

그러면 상생 메타포를 생각하며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실천신학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실천신학이 praxis를 겨냥하고 있고, praxis를 위한 신학언어 행위임을 상기한다. 동시에 모든 praxis 에는 그 속에 이미 기초신학·조직신학이 신앙적 내용물로서 先在하고 있음을 명심한다. 그러면 구체적인 실천·실행 속에서 일어나고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의 필연적 구조물을 인지해야만 한다.

하나는 실천을 위해서 theoria로 또 그 실천의 자원으로 소용되는 신앙내용 즉 복음(상징적이고 넓은 의미에서)이다. 다른 하나는 그 신앙내용이 적용 혹은 소용되는, 그리하여 해결 내지 개선이 요구되는 인간의 문제적 상황 즉 곤경(이것 역시 상징적이고 넓은 의미에서) 이다. 신앙적 실천의 모체는 이 복음과 곤경이 어떻게 만나 그 문제의 개선·해결을 성취하느냐는 것이다. 이 역동적 만남 바로 거기에 실천신학의 대상이 있고 실천신학적 반성과 추론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제까지의 실천신학은 바로 이 개선과 해결, 즉 개혁·변혁적 만남에서(transformative) 그 어느 한쪽만을 치중한 데에 그 부족한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Thomas Oden은 인간의 곤경에 대한 깊은 분석과 해결책보다는 기독교 전통이 제공하는 신앙내용과 그 전통의 계승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거꾸로 Howard Clinebell 같은 분은 기독교 전통보다는 인간의 곤경과 그것을 해결하는 기술과 지식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두 입장이 복음과 곤경 사이의 관계를 상생보다는 상승의 관계로 보고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설령 이 두 입장이 의식적으로는 이러한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을런지는 몰라도 이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두 입장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신앙적 내용으로서의 복음이 실천적 과정 속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과, 그 과정 속에서 신앙적 내용으로서의 복음의 상징체계가 지금 검증 혹은 test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치 못하는 점이다. 또 하나, 인간의문제적 상황은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문화적(신앙적인 것까지 포함하여) 상징체계에 의하여 형성되고 있으며, 이 문제적 상황이 신앙의 상징체계를 부단히 비판·검토 반증 혹은 변형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개선과 해결을 위해 복음과 상황이 力動的으로 만날 때 복음과 상황은 결코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의 현실이 바로 이렇다면 그것을 지양하기 위해 우리는 이 둘이 상호변혁과 상호개선으로 혹은 제三, 제四 의 길을 통한 상생적 연결고리로 이어져 나갈 수 있음을 찾고, 그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찾아보고자 하는 상생적 실천신학 방법은 상황을 구성하는 상징체계와 복음을 구성하는 상징체계가 문제의 해결과 개선을 위해서 서로 만날 때 거기서 어떤 상생적 dynamic 이 일어나며 그 결과를 praxis 중심, 혹은 효과적 praxis 를 위해서 신학적으로 새롭게 재정비·재해석하는 것이다. 단, 여기서 그 가장 궁극적 기준이 되는 것은 기초신학·조직신학의 기준(organizing principle) 과는 달리 효용성·소용성(efficacy ; usability)이다. 즉 쓰여질 수 있는 신학적 명제의 산출이 그 궁극적 기준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생적 실천신학은 복음의 분석과 상황 특히 실천적 과정의 분석이 동시에 요구되고, 이 실천과정의 분석을 위해 사회학/심리학/정치경제학 등이 절실히 요구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실천신학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는 그 실천적 과정의 기술이다. 즉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실행을 말하거나 씀으로써 그것을 객관화 text化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일선 목회자들과 복음의 praxis 봉사들은 실천신학의 제1차 담지자(the primary carrier) 들이다. 실천신학의 소재와 그 1차 자료는 바로 이 목회자들의 실행 바로 그것이다.

둘째, 그 객관화된 (기술한) 실행 자료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이론적 신학이 실행을 위한 자료/토대/근거/이론적 모델로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추출해 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 실천신학을 하는 이들의 넓은 신학적 지식을 필요로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셋째, 동시에 그 문제적 상황을 위한 일반 사회/문화적 praxis 가 어떤 효용성과 자료를 제공하고, 또 그것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확인/분석해야 한다. 여기서 일단의 심리/사회/일반 문화적 지식이 필요 함은 또한 자명한 일이다.

넷째, 그 문제적 해결상황의 국면과 그 전체 과정 속에서 신학적 내용과 일반 사회/문화적 내용이 어떤 관계, 어떤 양상을 맺고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양자 사이의 관계가 相克(相勝)의 관계인지 아니면 相生의 관계인지가 중요해진다.

다섯째, 그 관계가 상생의 양상이요 나아가 이 양자의 (혹은 더 많은 요인의) 상생고리 속에서 문제가 해결/개선(혹은 정체/퇴보라 할지라도) 되어나갈 때 거기서 어떤 신학적 언어행위가 다시 될 수 있을지 해석/정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실행에 포함된 기초/조직신학적 언사들이 그 상황에 맞지 않거나 혹은 오히려 방해를 한다면, 그 신학적 언사를 실행에 효율적이도록 재해석 재진술 해야 되지 않겠는가!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Tracy가 해방신학과 관련하여 진술한 한 코멘트의 적절성을 발견한다. 사회문화적 현실태에 대하여 해방의 praxis를 강조하며 그 실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또한 그에 근거한 참여와 헌신을 신학적 모토로 내걸었던 이들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상징체계의 부정합성과 비현실적인 점에 대해서는 똑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그는 비판하며, "이러한 과제가 실행되기 전에는 이 종말론적 신학자들이 현대의 기독교적 praxis를 적합하게 이해하였다고 볼 수 없으리라" 고 말하였던 것이다./22/

이상의 실천신학 방법의 다섯 단계에서 본다면, 일선 교회와 목회자는 더 이상 신학의 적용장이 아니다. 오히려 일선 목회자나 교회는 신학의 시험장이다. 과연 아카데미나 전문신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논구되고 정의되며 설명되는 신학들이 실용성과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가? 바로 이 점을 현장 목회는 검토/증거 혹은 역증거하는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실천신학은 현장 중심의 신학이요, 현장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현장신학은 다시 이번엔 신학교와 이론신학자들에게 다시 한번 그 신학적 언사의 적합성/일관성/진실성 등을 검토하는 계기를 제기하여 주고,새로운 locutionary act와 illocutionary act를 하도록 도와주게 된다.

실천신학은 바로 이 현장과 이론, 목회자와 신학자, 교회와 신학교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신학이라 할 수 있고, 다리를 놓아주는 신학(bridging theology)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V. 상생의 실천신학을 위하여

이성과 비판의 [모던]시대가 닫히고 상상과 포용의 [포스트모던] 시대가 열리는 것이 역사의 흐름인 듯 보인다. 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거대하고 치밀한 합리적 사유체계가 아니라 우리 삶 주변의 메타포라는 것은 또 하나의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인 듯 보인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은 메타포와 이야기의 신학인 듯 보이며, 그 메타포와 이야기의 힘에 의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 상상력의 세계가 열리는 듯이 보인다.

진흙 속에 묻힌 보배처럼 우리의 전통 문화 속에 깊히 숨겨져 있던 [상생]이란 메타포가 실천신학의 자리찾기 이다. 그 실제 방법을 위해서 어떤 힘과 가능성을 지니고 랣는지를 위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위와 같으 遁실천신학, 즉 기초신학,조직신학과 상생의 관게를 이루며, 신학교와 교회, 목회실천과 이론신학의 상생을 이루는, 그러한 실천신학을 위하여 우리가 상생해보는 새로운 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실천 신학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을 위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또 하난의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 글의 끝을 맺고자 한다. 실천신학의 장소(locus)는 더 이상 신학교만이 아니다. 실천신학의 또 하난의 중요한 터전은 교회, 즉 신학이 실행되는 그 실제 현장이다. 교회는 더 이상 신학이 응요되는 곳이 아니자. 교회느 곧 이론신학이 진행되고 검증되는 실천신학의 현장이다. 그렇다면 신학 문제를 놓고 교회는 더 이상 신학교만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요, 교회는 신학교와 더불어 [신학함]을 일구어 가야할 중요한 터전이다.

교회가 곧 실천신학함의 '터전'이라면 목회자는 누구인가? 그 현장에 주재(駐在)하는 신학자가 아닐까! 의사가 하려는 의학도가 어느 일정 기간 병원에 주재하면서 실습과 경험을 쌓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을 불러 "resident" 라 한다. 이런 식으로 목회자들을 목회현장, 목회실천의 자리에 상주 (常住)하는 신학자, 즉 "resident theologian" 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상의 두 이미지 즉 실천신학 현장으로서의 교회, 그리고 상주 신학자로서의 목회자야 말로 상생의 실천신학을 위한 강력한 힘이요, 기원이 된다고 믿는다.

<표 1> 트레이시의 신학 3분법 기준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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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 여부 | 참여가 신학적으로 함 |

| | | | 의 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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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Emory University, Candler School of Theology 1991-1992 ( Atlanta ; Emory University, 1991).

2. 최근에 이 개념이 전문교역자를 포함하여 기독교 회중에로까지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3. 이하 참조하는 서적은 Friedrich Schleiermacher, Brief Outline on the Study of Theology, tr. Terrence N. Tice (Richmond : John Knox, 1966; 원 독일어 저서는 1811년).

4. 앞의 책, 20 (6절,7절 참조).

5. Ibid, 25 (25절).

6. Schleiermacher, 앞의 책, 91-92 쪽.

7. 이런 면에서 실천신학의 흐름을 자세히 논하고 있는 것으로는 Edward Farley, Theologia : The Fragmentation and Unity ( Philadelphia : Fortress, 1983), 127 ff 를 보라. 비슷한 맥락으로 홍정수, [베짜는 하나님] (서울 : 조명문화사, 1991) 의 "제 4편 : 한반도 신학교육의 3과제 ", 381 ff 를 참조하라.

8. 월간 목회사 [나의 목회는 이렇다] (신망애 출판사,1988), 73.

9. 홍정수, 위의 책, 462 쪽.

10. 이 세미나의 결과로 세상에 나온 책이 Don Brouning, ed., Practical Theology : The Emerging Field in Theology, church and World ( San Francisco : Harper & Row, 1983) 이다.

11. David Tracy, Analogical Imagination ( New York : Crossroad, 1981).

12. 위의 책, 67쪽 이하.

13. J.L.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Cambridge : Harvard Univ. Press, 1962, 1975) 를 주로 참고하라. 이밖에 John Searle, Speech Acts : An Essay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 ( Cambridge : Cambridge Univ. Press, 1969) 은 좋은 참고가 된다.

14. J.L. Austin, 위의 책, 101-102.

15. 홍정수, [베짜는 하나님] (서울 : 조명문화사, 1991) 과 박종천, [상생의 신학] (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1991) 을 참조하라.

16. 이 면에 관하여 권위있고 상세한 설명 중의 하나는 Joseph Needham,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2 (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1), 253 이하에서 찾을 수 있다.

17. 이 점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Needham, 위의 책 261 이하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고, 또 하나의 집중적인 논의를 Benjamin Schwartz, The World of Thought in Ancient China (Cambridge : Harvard University Press, 1985), 350 이하에서 읽을 수 있다.

18. 박종천, 위의 책 5쪽 참조.

19. Schleiermacher, 위의 책, 26절 (27,28절) 을 참조하라.

20. 1977년 Fortress 출판사가 출판함.

21. 1984년에 개정증보판이 Abingdon에 의해 출판됨.

22.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 New York : Seabury, 1975), 24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