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두 왕국 사상"

1523년에 쓰여진 "세상권세에 대하여, 세상 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 ? "라는 마르틴 루터의 글은 그의 두 왕국 사상을 이해하는 근간이다. 이 글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서, 어떤 관점에서 이 글을 대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의 분석 결과를 낳는다. 조직 신학자나 기독교 윤리학자가 이 글을 읽을 때 취하는 관심사는 역사 신학자들의 관심과 사뭇 다를 때도 있어서 종종 누가 이 글을 더 잘 이해하였는가 하는 논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종교 다원화 시대 속에서 세상과 어떤 양상으로든지 관계를 맺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인과 세상권력이라는 주제로 마르틴 루터의 두 왕국사상(Thought of two kingdons/ Zwei-Reich-Lehre)을 역사신학적인 관점에서 소개하기로 하였다. 이 작업은 결코 오늘을 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권력과의 관계에 대하여 완성된 모범답안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역사적인 관점, 특별히 종교개혁자 루터의 작품을 통하여 살펴 보는 일은 자칫하면 막연하게 생각해 버리기 쉬운 문제를 좀 더 확고한 자료기반 위에서 다루어 볼 기회를 제공하리라고 생각한다. 마르틴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은 우리 신학계에 이미 충분히 소개되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좀 더 역사적인 안목으로 루터의 "세상 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이 사상이 형성될 때에는 반드시 이미 발생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의 앞뒤에는 당연히 인과관계가 세워져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점을 도외시 하지 않고 이 글을 읽을 때, 소위 우리가 "두 왕국사상"이라고 부르는 마르틴 루터의 생각을 보다 더 쉽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정리해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Ⅱ

우리가 어떤 글을 읽을 때는 왜 이런 글이 쓰여지게 되었을까? 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본질은 빼 버리고, 무슨 무슨 주의니 사상이니 하는 껍질만 남게 된다. 먼저 루터 작품의 제목을 잘 살펴보기로 하자.

본래 이 작품의 제목은 "세상 권력에 대하여, 세상 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 (Von der weltlichen Obrigkeit, Wie weit man ihr Gehorsam schuldig sei)이다. [우리말 번역: 홍치모, 루터의 정치사상, Luther, selected political writings, 컨콜디아] 대부분 제목의 앞부분만 보고 루터가 세상 권력과 영적 권세를 비교해서 쓴 글이려니 생각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제목의 뒷부분이다.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면 이 세상 권력에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 ? 만약 그 권력이 옳지 않은 요구를 해 올 때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답한 것이 바로 그의 글인 것이다.

<루터가 이 글을 쓰게된 이유>

마르틴 루터가 세상 권세에 대한 이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독일 밤베르그 지역의 법률가인 요한 슈바르뵅베르그(Johann Freiherren von Schwarzenberg, 밤베르그 성문법 저자, 1507)라는 사람이 보낸 신앙에 관한 몇 가지 질문서 가운데 세상권력 문제에 대답하기 위하여 마르틴 루터는 늘 마음에 글을 쓰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는 1522년 11월 7일 작센 공작령의 영주 게오르그가 루터역 신약성서(1521-1522 Wartburg)의 판매금지 명령과 판매본 회수명령을 내린데서 비롯되었다. 이 때 루터는 도대체 신앙의 문제에 세속영주가 관여하는 것이 옳은가 ? 하는 문제로 고심하였다. 셋째는 저술요청인데 이미 루터가 몇편의 설교를 통하여 세상권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던 바( 1522, 10, 19-29 in Weimar), Weimar 교회의 설교자 볼프강 슈타인의 간곡한 출판부탁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르틴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권력 (De regno Dei et potestate saeculari, 1522년 10월 24일 - 25일)"이라는 그의 설교가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으로 제시되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두 왕국 사상의 역사>

세상권력이 개인의 신앙문제에 심각하게 개입하게 된 역사적 전거는 무엇이었을까 ? 그리고 세상권세에 대한 복종의 한계를 논하게 된 루터사상의 발원지는 어디였을까 ? 하는 질문에 대답해 보는 것이 그 순서일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두왕국 - 하나님왕국과 세속왕국 - 에 대한 논의의 선구자는 어거스틴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거스틴은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이 로마를 침략하자 이방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자는 뜻으로 "신의 도성 (De civitate Dei)"을 저술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의 도성 과 세상도성 (civitas terrena)은 인간역사상 언제나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secundum hominum vs secundum Deum), 둘째 불신자는 인간들의 방법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며 살도록 예정되어진 바 이 두가지 세력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세상왕국의 할 일은 땅의 평화 (Pax terrena)를 실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자들은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행동양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 왕국의 대립에 관한 이론은 어거스틴 이후 계속 토의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논의들로써 루터의 두왕국 사상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몇가지 논의를 소개하여 보자.

우선은 중세 황금기를 이끌었던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우남상탐 (Uram sanctam)"에 나오는 주장이다. 보니파키우스 8세는 프랑스왕 필립 4세와 세상통치권 문제를 놓고 늘 대립하였다. 이 논쟁을 교황편에 유리하게 종식시키고자 발표한 칙령(1302년 11월 18일)이 우남상탐이다. 교황은 이 칙령을 통해 두칼 이론(Lk.22,38)을 주장하였다. 세상에는 영적인 검과 세상적인 검이 있는데 이 두가지 검의 소유자는 궁극적으로 교회와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세상 왕국의 왕과 기사들은 제사장의 허락하에서만 세상적인 검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칙령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Marsillius von Padua)가 쓴 "평화의 수호자 (Defensor pacis, 1324년)"를 들 수 있다. 그는 교황 요한 22세 (1316-1334)와 독일 바이에든의 영주 루드비히(1314-1347)사이의 분쟁을 보고 이미 내분(로마 교황청과 아비뇽교황청)을 겪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두 왕국의 기원을 밝히고 임무를 가르치는 비판적인 글을 썼다. 결국 세상권력과 영적 권력 사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은 평화의 위협이며, 교회는 세상왕국에 무력사용은 맡겨버리고 오로지 영적인 임무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한사람 마르틴 루터에게 큰 영향을 끼친 스콜라신학자 오캄(1285-1349)이 있다. 그는 "세속과 교회의 권위에 대하여(De imperatorum et pontificium potestate, 1347)"라는 글을 통하여 마르실리우스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피력하였다. 오캄은 교황을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받아들이지만, 교황의 임무는 지배하는 일에 있지 않고 섬기는 일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 왕국간의 문제로 표현한다면 오캄의 주장은 세상권력과 영적권세는 서로가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관계라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Ⅲ

이상과 같은 중세사상의 흐름을 마르틴 루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 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 ? "를 쓸 때에 중세 이후 계속 되어온 세 가지 종류의 상대자들을 염두에 두었다. 그 세종류의 상대자들은 (1) 교황의 최고 권위를 주장하는 교회 법학자들과 (2)세상 권력의 우위론을 펼치는 황제권과 마지막으로 (3)교황권과 황제권의 지배를 모두 거부하고, 저들 없이도 질서 있게 살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 유토피아 집단들이다.

교황의 최고 권위를 주장하는 법학자들 내부에서도 교회법학자들(Kanonisten)과 로마법학자(Legisten)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물론 저들은 신의 왕국(sacedotium)과 인간제국(imperium) 모두 교황의 권위아래 놓여있다는 점에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만 (in habitu), [교황은 이론적으로는 합법적인 하나님의 대리자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두가지 권세를 다가질 수는 없다] 로마 법학자들은 교황이 두가지 권세를 실제로(in actu) 공유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황제권에 속한 자들은 각 영방군주와의 관계속에서 황제 교황주의 [황제는 교히를 수호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인데, 황제가 교황의 권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준비하심 Translationstheorie] 실현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독일 귀족들도 역시 로마 카톨릭 교회 체계의 영향이 자국내로 유입되는 것을 되도록 막으려고 노력하였다. 급진적인 유토피아 집단들은 마르틴 루터의 자유개념을 오해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때문에 루터는 더욱 세상권세가 하나님의 질서라고 강조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세례받은 신자는 복음에 따라 살게 되므로 세상 법과 검은 필요없다고 주장하였기 때문] 저들은 루터가 표방한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 - 사람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은 자유인으로써 만물의 주인이 된다 -를 오해(오용- 종교개혁진행의 걸림돌)하여, 이 자유는 모든 법과 질서로부터의 정치적 자유를 뜻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인간을 둘로 구분하여 하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로 성령을 가슴에 담아 어떤 법이나 권력, 검이나 권세도 필요치 않은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삶을 사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왕국에 속한 자들로 비그리스도인자들이라고 하였다.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은 이 두가지의 구분을 사제와 평신도, 즉 완전함을 갖춘 인간과 불완전한 인간으로 나누어보려고 했으나 루터는 이에 반대하여 세상권력도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의 일부로써 이 세상의 악을 징벌하고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데 필요한 것이므로 이런것들을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주장하였고, 세상권력의 존재자체를 부인하려는 유토피아적 급진주의자들의 견해를 논박하였다. 루터의 상대자들의 사상적 경향과 두왕국 사상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종합하여 생각해 볼 때 루터가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제시하고자 했던 참뜻이 더 분명히 드러나게 되리라고 본다.

Ⅳ

1522년의 설교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 권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루터는 철저하게 영적 왕국과 세속적 왕국을 구별한다 (분리가 아님을 명심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과 교황의 왕국이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아가서 세상 왕국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이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통치방법 - 세상적, 영적 -을 쓰시는데, 세상권력은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들의 몫이다.

둘째, 세상통치권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을 징벌하고 경건한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즉 검을 지닌다는 말을 그리스도적으로 해석하면 타인을 지키고 섬기는데만 검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셋째,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세상통치권세에 복종해야 한다 (롬13장).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그 권세를 통하여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군주는 또한 신실한 보좌관을 선택해야 하며, 악인과 선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는 알아야 한다. 백성의 실수를 눈감아 줄줄 모르는 군주는 다스릴 자격이 없다.

상기한 세가지의 요점을 더 확대 설명한 작품이 "세상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 ?"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특별히 유의해야 하는 점은 루터는 인간성 내부에서조차 두 왕국을 구분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도 영적인 권세와 세속적인 권세가 서로 우월 경쟁하는 것을 일거에 사절하였다. "그러므로 군주는 군주로 주교는 주교로 남아 있어야 한다".(참고: 신학이해 13집 내적인간과 외적인간, 루터의 인간구분)

이제 우리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가운데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5:38-39)라는 말씀과 로마서 12장 19절의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라는 두군데의 성경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세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은 이 두 가지의 말씀에 등급을 부여하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완전한 자로 여겨지는 제사장 계급이 지켜야 할 것으로, 보복을 금지하는 말씀을 모든 신자에게 보편적으로 주신 명령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그의 작품 서론에서 이처럼 구별된 해석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그리스도인 신자라면 누구나에게나 두 가지 명령이 주어졌음을 강조하였다. 즉 제사장이건, 그리스도인 통치자이건, 보통의 신자이건, 신앙적인 면에서의 등급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만인제사장설)

A. 세상 권세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세워졌다. 로마서 13장 1절이나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는 세상 권세에 복종할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출애굽기 21장 14절과 마태복음 26장 52절 그리고 누가복음 3장 14절에 세상 권세는 악을 징벌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세상권력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루터는 세상인간들을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자와 세상왕국에 속한 자로 구별하였는데, 만약 모든 세상 사람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만 있으면 검이나 권력 따위는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요18:36, 마6:33). 즉 의로운 자들을 다스리려고 법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듯이(딤전 1:9), 율법 아래에서는 죄가 드러날 뿐이다. (롬 7:1, 갈3:24). 따라서 루터는 하나님의 두가지 통치방법을 분명하게 구별하려 하였다. 만약에 누가 세상을 복음만으로 다스리겠다고 세상권세나 검의 사용을 폐하려 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이 세상에 악을 승하게 하는 결과를 낳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아래 복음의 자유를 오용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두가지 통치방법을 말한 것은 기능적 구분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어떤 한가지도 다른 것의 협조없이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루터는 보다 세부적인 물음들에 대하여도 대답하였다. 만약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권력 또는 검의 사용이 쓸모없다면, 세상권세에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 말씀이나 베드로전서 2장 13절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하는 질문과 만약 복종해야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복종하는 것인가 ?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르틴 루터의 대답은 사뭇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검의 사용에 대해서 자신을 위하여는 모든 고난을 감내하고, 이웃의 문제를 위하여는 검의 사용이 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이런 이중적인 응답에 심히 매료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예가 그의 입장을 잘 설명해 준다. "사람이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는 사랑의 사역을 실행하는 것은 병중에 있는 사람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 문병하는 목적은 자신이 건강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병중에 있는 이웃을 위로하여 회복되게 하기 위함이듯이, 그가 통치권에 복종하는 이유도 자신이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선한 사람이 보호를 받고 악한 사람이 더 악해지기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세상 권세가 임명하는 직책을 수여받아 악을 벌하는 임무를 담당해도 되는가 ? 에 대하여서도 루터는 대답하였다. 그 대답역시 이중적 의미에서 긍정이다. 세상권세의 직책을 위임받은 그리스도인은 세상권세가 존재하는 목적에 합당하게 악을 벌하며 세상에 평화를 유지하는데만 권세를 써야 하고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5장 38-39절 말씀대로 원수사랑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B. 그렇다면 세속 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세속 권세가 다스리는 영역은 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영역의 문제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통제만 받는다. 따라서 비록 로마서 13장에서 세상 권세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외적 질서에 해당되는 말씀이지 이것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신앙 문제에까지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루터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에 불의한 권세가 불의한 것을 요구해 올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 루터는 세상 권력의 권한을 넘어서는 요구에 대해서는 불복종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형벌을 받게 되면 오히려 복이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기회를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수동적 저항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C. 셋째로 중요한 내용이,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군주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시에 군주로서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가 ? 하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향하여는 올바른 신뢰와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고 백성들에게는 사랑과 그리스도적인 다스림으로 대해야 하며 신하에게는 이성적으로 맹신하지 않는 이해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의에 대하여는 날카로운 엄격함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국가와 국가간의 문제나 더 높은 군주와의 관계 가운데 긴장 관계가 발생할 경우에 그리스도인 군주는 자신이 피해를 보더라도 백성의 평안을 위해 힘써야 하며 자기 통치구역내에 전쟁 때문에 고아나 과부가 생기는 일을 막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설명이다. 지나친 징벌로 더 큰 악을 부르는 우매한 짓을 막도록 경고하였다.

Ⅴ

이제 결론적으로 마르틴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을 정리하여 보자. 마르틴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열쇠는 그 구분방법에 있다. 인간의 집단을 정적으로 구분(J.Heckel, Lex charitatis, 1953, Im Irrgartin der Zweireichlehre, 1957)하지 말고 역동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인간내면에 대한 구분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유명한 루터연구가 파울 알트하우스는 비록 왕국의 개념과 통치방법의 개념 (Reich und Regiment)을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Die beiden Regimente bei Luther, 1956) 루터의 왕국론은 그 인간 개인 개인에게 달려있는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하였다. 즉, 이글에서 루터가 관심하였던 것은 국가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사에 관계하는 모든 질서를 총망라한 것이었다.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을 율법과 복음이라는 대립구조로 분석한 학자 (Törnvall, geistliches und weltliches Regiment bei Luther, 1947)도 있다. 그는 루터가 언급한 두 왕국문제는 왕국 각기에 대한 본질 정의보다는 세상권력과 하나님 나라의 상대적 질서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하였다.

세속왕국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검을 사용하여 악을 벌이고 경건한 이들을 보호하며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룩해야할 목표를 지니지만, 하나님의 영적 왕국은 말씀으로 통치하여 경건한 자들을 종말적인 구원을 향하여 이끈다. 세속왕국은 성령에 언급된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 (롬13:1, 벧전2:13) 결코 영적인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 마르틴 루터에게 있어서 이 두가지의 통치영역은 절대로 혼합되어서도 안되고 완전히 따로 떼어서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종종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시는 이 두가지 통치방법이 오해되어서 마치 세상을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진 적도 있었다.

마르틴 루터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이 두 통치영역의 지배를 받는 시민이다. 그들이 군주이던 소시민이던간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권력이 있다 해도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는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내와 고난당함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권력 오직 이웃의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손해배상에 관한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를 요약함으로써 이글을 마치려고 한다. 상호간에 보상을 해 주어야 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를 루터는 네가지로 요약하였다. 비신자대 비신자, 신자대 비신자, 반대의 경우 마지막으로 신자대 신자 이 네경우이다. 오직 불신자들간의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가지의 경우는 문제가 전혀 안된다고 루터는 생각하였다. 신자가 채권자이고 불신자가 채무자일 경우 신자는 받지 않으려 할터이니 문제가 없고 신자가 채무자이고 불신자가 채권자일 경우 신자가 나서서 먼저 보상하려 할터이니 문제가 없고 둘다 신자일 경우는 서로 보상문제를 그리스도인답게 해결하려 할터이니 더더욱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글을 읽은 우리 모두는 어떤가 ? 마르틴 루터가 "그리스도인과 세상권력"이라는 주제하에 쓴 "세상권력에 대하여, 세상권세에 대하여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 ? "라는 글의 결론부에 나오는 이 보상의 문제가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 마르틴 루터는 결국 하나님의 왕국과 세속왕국의 문제를 다루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이웃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임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