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하나님의 나라

"황금으로 된 넓직한 길이 쫙 깔려있고, 그 곁에는 유리바다 같은 생명수가 넘쳐 흐르고, 동산에는 엄청나게 탐스런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곳에서 흰옷 입은 천사들과 함께 춤추며 찬양하는 곳"이 아마도 우리가 유년주일학교에 다닐 적에 대부분 그려 보았던 하나님 나라(천국)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비록 대학생이 된 지금에 와서도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진 않겠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구원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아직도 피상적이고 왜곡된 개념 속에 갇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주제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되는 내용일 뿐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어쩌면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다. -- 실은 신앙과 성경적 세계관이란 분리될 수 없는 말이다!

앞서 글들--Ⅰ에서 Ⅴ중, 특히 Ⅳ와 Ⅴ--에서 우리는 '창조'와 '타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게 창조된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게는 하나님 뜻에 순종해서 만물을 다스릴 이른바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 주어졌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사탄을 섬김으로 인해 타락이 발생했고, 이 타락으로 온 세상이 저주 아래 놓여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모두 어그러지고 왜곡되어 있음을 여러 현상들을 통해 제시하였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타락의 상태 가운데 내버려 두시지 않고 구속하실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것이 구약에서 면면히 흐르는 언약을 통해 진행된다. 그 최초의 언약은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뱀에 대한 저주 속에서, 비록 사탄에 의한 타락의 길이 진행되어졌다고 해도, 결국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세력을 훼파하고 회복시키겠다는 소망이 벌써 제시된다. 그 후 이 언약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에 의해서 계속 중시되어져 오다가,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성취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개인의 또는 영혼의 구원만을 다루는 개념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타락에 대한 부활을 보장하는 선언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시키는 댓가로서 주님의 죽음이 있어야만 했으며, 주님께서는 타락의 가장 큰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죽음"을 "부활"로써 이기셨으므로 모든 것에 대한 구원 즉 회복이 가능해졌다.

이 구속사역은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롭고 지혜로운 섭리 가운데 계획되어지고 마침내 성취되어가는 것으로서, "타락"이 모든 만물을 왜곡시켰던 것처럼 "구속"은 모든 만물을 그야말로 새롭게 회복하는 놀라운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의미는 단지 우리의 영혼이 죄에서 깨끗함을 입고 구원을 받아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21장 5절의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말씀처럼 죄로 인해 왜곡된 창조의 본의를 이루는 것으로 전 우주적인 회복을 뜻한다. 이는 골로새서 1장 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복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처럼 만물을 회복시키시되, 먼저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에 온전한 순종을 보여 완전한 인성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형상(엡 4:24, 골 3:10)을 회복시켜 주시고, 또 진리의 영인 성령을 주사 그를 의지하여 우리의 문화활동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시킬 힘과 책무를 허락하신 것을 뜻한다. 이는 창조시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목함이 회복되는 것으로서 불순종함으로 얼굴을 외면했던 인간의 마음의 방향을 바꾸시어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므로 모든 관계가 본래 창조시의 규범대로 정상화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저 세상의 개념만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왕국(kingdom)이란 단어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접근할 수 있다. 희랍어 ㄂㄁ㄓㄊㄌㄅㄊ㄁(바실레이아)는 보통 왕국으로 번역되고, 이는 무엇보다도 왕권(kingship), 즉 주권, 통치, 지배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영혼이 가는 환상적이고 관념적인 곳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예를 들어 우리 청년Ｉ부에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므로써 그분의 사랑과 공의가 샘솟는다면, 청년Ｉ부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 말은 영역, 혹은 지경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 물론 이런 뜻이 있기도 하다 -- 왕적인 업무를 적극적으로 발휘함을 뜻한다. (Wolters, Creation Regained)

창조시에 충만했던 하나님의 통치가 찬탈자인 사탄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신음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구속자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예비자였던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왕국의 도래에 대한 말과 행동을 통한 가르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적은 왕국 도래에 관한 당신의 가르침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회복된 상태의 그 왕국을 증시(證視)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치유하심은, 18년간 꼬부라져 있던 한 여인을 고쳐 주시면서 그 여인을 "18년간 사탄에 속박되었던 자"라고 덧붙였던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병과 사탄의 권세에 대한 당신의 왕권을 실제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상한 사람들은 성경을 해석하거나 어떤 문제들을 다루면서 "영적인...", "영혼의..." 식의 말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어쩌면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성경은 영혼관만을 다루는 문서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진실한 세계관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편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 속에 침입(?)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를 가르치시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고 그 승리는 확정되었지만, 최후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서 스위스의 신학자 오스카 쿨만은 2차 대전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전쟁의 대세가 기울어 그들의 승리가 이미 확정되었지만, 완전한 승리는 전적인 항복을 받아낸 날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날을 D-Day라고 보면 그때부터 '이미(Already)' 승리가 시작되었지만, 항복을 전면적으로 선언한 날인 V-Day까지는 '아직 아닌(Not Yet)'의 긴장관계가 있다. 이와 같이 -- 하나님 나라의 도래처럼 -- '이미'와 '아직 아닌' 사이에 놓인 우리의 삶은 그 긴장관계 속에서, 최후까지 발악하며 세상에 대한 자신의 세력을 놓지 않으려는 사탄에 대항하여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통해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가 확정된 것이기에 소망스러운 것이다.

이제까지 구속의 의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간략하나마 개괄해 보았다. 창조--타락--구속은 성경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본 골격으로서, 이 관점에 의해서 모든 역사를 조명하며 삶 속에서 부딪히는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역군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발견해 나가야겠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께 헌신한다는 것은 단지 목사나 선교사와 같은 어떤 특정한 영역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그의 통치가 이 땅 곳곳에 충만하게 실현되도록 각자 처한 자신의 현실 속에서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왜곡된 문화와 사상, 제도와 체제를 바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타락한 모습에 대해 오래 참는다거나 용서하는 것은 적어도 성경이 전하는 '오래 참음', '용서'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창조시에 주어졌던 이른바 '문화 명령'을 다시 책임있게 수행할 의무가 있다. 지금도 우리에게 놓여진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인 모든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개인적 상황 속에 주어진 모든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반응으로서 통일되고도 전반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기에 자기 신앙과 성경과 자기 주변의 세상과 더불어 씨름할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참된 헌신이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연습 즉 'Lordship(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이 'Lordship'이 생활 속에 인정되고 훈련되지 않고서는 성경적 세계관을 수백번 공부하더라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인 것이다.

앞으로의 문화와 기독교계를 이끌어 갈 우리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생활 속에서 말씀 앞에 진지하게 고민하여 왜곡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끊임없는 애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역동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않을까?

* 참고한 책들 :

(1) 리챠드 미들튼 & 브라이안 왈쉬 (황영철 옮김),

< 세상의 변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비젼 >, IVP, 1987.

(2) A. Wolters, < Creation Regained >,

Michigan : Eerdmans, 1985.

※ (3)에 실려있는 번역문을 인용했음.

(3) 기독교 학문 연구회(편), < 성경적 세계관 자료집 >.

* 청년Ｉ부원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연재물을 꾸준히 읽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누구라도 이 연재물에 대한 평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원하는 분이 있다면, 이기홍 형제(4)에게 글을 전해 주십시요. 연재물과 관계된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글들을 적당한 기회를 통해 주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 청년Ｉ부를 위한 토론질문

1. 다음 두 사람의 얘기를 읽어보자.

(1) A는 소위 모태신앙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빠짐없이 다녔고, 항상 모든 교회 일에 열심이었다. 그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위 교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남들이 좋다는 학교를 나왔고, 안정된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 A는 자신이 누리는 지위와 환경, 부유함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믿음을 평가하시고서 주신 것이라고 -- 자부심을 갖고 --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못한 지위,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기쁘게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 B는 민중신학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는 학창시절에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따라서 정치적 실천에 몰두해 왔다. 그는 대부분의 기성교회에서 주장하는 신앙이란 아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므로, 가장 인간적이고 민중적인 것이 신(神)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계급이 철폐되고, 정치경제적 해방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과학적 유토피아'이다.

위의 (1)과 (2)는 두 '극단적인 신앙(?)의 유형'이다. A와 B는 각각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곳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있어야 한다고 -- 나름대로 -- 생각하는가?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성경은 무엇이라고 전하는가? 위의 두 예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성경적 근거를 어느 정도나 갖고 있는가?

2.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 수준이 지극히 천박한 불신자들 중 일부는 기독교가 영적인 구원을 미끼로 이 세상에서의 억압과 착취, 구조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무관심하도록 만드는 아편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의 논의는 왜 잘못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이 많은 불신자들 또는 단단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채 교회에 그저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주장을 믿는 이들은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 전도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음을 기억하자 --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믿는 이들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적어도 그들에게는 무대포로 믿으라는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