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의 진정성 논의에 대한 고찰
I . 서 론
A. 문제의 제기 및 연구목적
B.연구의 방법
II. 바울 서신과 서신 형식의 가경 문학
A.유대교의 예
B.기독교의 예
II. 데살로니가 후서에 제기된 진정성 문제
A.종말론
B.문학적 표현의 차이
C.신학적 이해의 차이
IV. 데살로니가 후서의 진정성에 대한 내,외적 증거
A.내적 증거
B.외적 증거
V . 결 론
I .서 론
A.문제의 제기 및 연구목적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의 속편으로 같은 저자가 같은 수신자에게 짧은 시일 후에
보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학설은 19세기초에 들
어서면서 부터 상당한 의의가 일어났다.데살로니가 전서에 대한 진정성은 그렇게
심한 도전을 받지 않았으나 후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바울이 직접 쓴 편지일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바울 저작의 진정성을 최초로 의문시한 이는 J.E Christian Schmidt이다. 그는
2:1-12에 있는 두가지 충고들은 적 그리스도에 관련된 환상 만큼이나 비 바울적이
라고 보았다.F.H.Kern 은 그 이론에 덧붙여 데살로니가 후서는 사실상 데살로니가
전서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비 바울적인 표현들과 데살로니가 후서 3:17을
지적했다.이러한 구절은 진정성이 없는 서신을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
력을 무산시켰다.Kern의 연구는 수십년 동안 표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W.Wrede는
데살로니가 후서가 거의 전적으로 전서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바울이 자기
이름이 위조서신에 오용되고 있다고 믿었다면(살후 2:2 ; 3:17)그는 그 문제에 대
해서 철저히 대책을 세웠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이러한 Wrede의 비평이 광
범위하게 오늘날 데살로니가 후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기초가 되고 있지만 그 외
에도 다른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후서가 보여주고 있는 전서와의 종말론 이
해의 차이와 후서가 전서와 문자적으로 같은 어구를 반복하고 이런 부분이 전 서
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양 서신 간의 문학적 유사점과 차이점을
들고 있다.또한 전서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을 후서에는 흔히 "주"로 대
치하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신학적 이해의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며 바울저작의 진정성에
대한 옹호론자들의 주장과 비평가들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본 소고의 목
적은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는데에 두지 않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고찰에 두고
있음을 밝혀 둔다.
B.연구의 방법
저자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정경적 서신들의 진정성 문제를 논하는 데에 가경 문
학의 관행을 다루는 것은 바울 서신이 지닌 문제 그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후서를
다루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일 것이다.왜냐하면 서신의 가경성 문제는 전통
적인 저작권을 거부하는 이론들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알고 있는 바와
같이 바울 서신에 대한 논의 에서 몇몇 학자들은 골로새서,에베소서 데살로니가
후서,목회서신에 대해서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이러한 의심에 대해서 여러
사람은 가명을 사용한 문서의 출간은 고대 세계에 널리 사용되던 문학적 관행이라
고 주장한다.그러므로 그들은 자세히 조사해 보지도 않고 기독교회 역시 자연스럽
게 그 관행을 받아들였다고 가정한다.하지만 그 가정이 옳바른 가정일까? 이런 질
문에 답하기 위해서 본 소고는 먼저 그와 같은 관행에 대한 증거들에는 어떤것들
이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살펴 볼 것이다.이것은 본 소고를 대하는 독자에게 비
평가들에 대한 옹호론자들의 신경질적인 반응 못지 않게 비평가들의 주장을 위한
편향성에서 중립을 지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그런 다음 부터 본격적으로 논의
되어온 후서의 진정성데 대한 논의를 고찰해보고 마지막으로 제기된 진정성에 대
한 내,외적 증거를 고찰해 봄으로서 본 소고를 마치려한다.
II. 바울 서신과 서신 형식의 가경
문학
신약성서 27권중 "서신"(Epistle) 혹은 "편지"(Letter)의 형태로 된 글이 21개나
된다.이 중에서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것만 13개가 있다.과거에는 "히브리서"를
마울의 편지로 보는 경향이 있엇으나 최근에 와서는 히브리서를 바울의 기록으로
보는 학자는 거의 없으며 목회 서신으로 알려지고 있는 디모데 전,후서 그리고 디
도서 역시 바울의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이스-로마 세계에서 개인적인 편지들은 그 길이 면에서 90개의 단어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일반적으로 사용하던 파피루스 종이의 길이가 가로 세
로 약 24cm X 27cm (대략 보통 노트 한 페이지 정도의 크기) 였고 글씨 크기에
따라 150- 250개의 단어를 적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고대 편지들은 파피
루스 한 페이지 이상을 넘지 않
았다.그러나 바울 서신의 평균 길이는 약 100단어를 넘고 있으며 335개 단어리 빌
레몬서로 부터 7101개 단어의 로마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바울서신과 같은 긴
문서를 위해서는 파피루스 종이들의 끝부분을 접착시켜서 두루마리 모양으로 만들
어야 만 했다.파피루스의 결이 거칠어서 글쓰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으므로 대개는
야마누엔시스라 불리우는 전문적인 필경사에게 편지를 받아 적도록 했다. 이렇기
때문에 바울의 이름으로 된 서신들 중에는 발신자가 바울 한 사람으로만 되어 있
는 편지는 오직 로마서,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 뿐이다(그리고 3권의 목회서신).고
린도 전서는 "바울및 형제 소스테네" 두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되었고,고린도 후
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그리고 빌레몬서 등 4개는 "바울과 디모데"두사람의 이름
으로 기록되었다. 그 밖에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3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된 편지들이다.따라서 "바울의 편지들"이라고 해서 모두 바
울 혼자 기록한 편지는 아니며 바울이 혼자쓴 편지일 경우에도 "대서자" 가 있
었음을 볼 수 있다.또한 바울의 서신중 다른 사람이 기록 혹은 대서 하였다 하더
라도 마지막에는 바울 자신이 친필로 문안 인사만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이런 편
지들은 "갈라디아서" 와 같은 친서와 대조가 되고 있다.
바울의 서신들은 안부인사 및 정중한 서두(서두)에 있어서는 당대의 통상적인
헬라서신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 결과 이 관계가 훨씬 밀접한 것으
로 드러났으며,통상적인 서신은 이전에 상정되어온 것보다 훨씬더 구조를 갖춘것
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쟝르들 ,예컨대 설교와 축원과 같은 장르들을 연
구한 결과 그 이상의 구조적 병행 귀절들이 들어났으며 ,또한 내적 유형들도 주목
받고 있다.이들 가운데 가장 흥미있는 것들가운데 하나는 바울의 교차배열법,즉
a.b./b.a.구조들의 사용이다.예컨대 살전 2:19-20은 '기쁨 면류관 너희 우
리 주 예수앞에/그의 강림하실 때 너희 영광 기쁨'(헬라어순서)으로 나와
있으며,이외에도 다른 예들이 많이 있다.바울은 먼저 완곡한 표현으로 한 귀절에
이른 다음 다시 역전 하여 그가 시작한 데에서 끝맺는 습관이 있었다.그러나 바울
의 모든 저술이 이런 식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한 편 그리스-로마에는 위조 서신들이 널리 양산되었다.그것은 헬레니즘 문화권
에서는 제자들이 최소한 자신의 처녀작 만큼은 그의 스승의 이름으로 출간하는 관
습이 있었다.그럼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이 그의 스승의 가르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과 아울러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를 표명하고자 했다.의사들이 여러 발행물
들을 히포크라테스의 저작으로 빌간했다면 이들은 이를 통해 과거 위대한 시대를
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물론 그 외에도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
성된 위조서신들도 있었다. 하지만 바울이 활동하던 시기에 유명한 위인의 이
름을 저자로 이용하던 일이 흔하였기 때문에 저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다고 하더라
도 그 사람이 그 문서의 실제적인 저자라고 믿는 것은 너무 소박한 생각일까? 우
리는 실제로 그 당시 팽배하던 문학적 관행이 기독교에도 통용됫었나 하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보다 그 성격에 있어서 배타성을 지울
수 없다. 세상과 섞이는 것을 불경건한 것으로 보고 구별되기를 바랐던 교회이고
보면 당시에 어떤 현상이 유행되었다고 하여서 그것이 기독교 공동체 속에서도 무
비판적으로 수용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어려움을 더하게 한다.이것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 그 자료를 연구해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 종교문
학 내에서의 가경서신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희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기독교
세계에서 가경이 서신의 형태를 취했을 때 복음서나,사도행전 혹은 묵시록의 형태
를 취했을 때보다 더 철저한 검색을 당했으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
러므로 유대교의 가경들은 대부분 묵시록의 영역에 속해 있으며 서신의 형태를 취
하고 있지 않다.
A.유대교의 예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 자체가 유대교와의 연관성을 밀접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유대교의 경전의 예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모
든 부분을 거룩한 것으로 여긴 것이 사실이지만 성서의 매 부분을 꼭 같은 수준에
놓지는 않았었다. 그 중에서 율법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성서라면 우선 율법을
생각하게끔 되었었다. 이들은 흔히 율법을 지성소에 비기기도 했으며 심지어 율법
의 선재설까지 주장하며,모세보다도 1천 대 이전에, 그리고 세상 창조보다도 974
대 전에 율법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메시야가 오시면 예언서와 성문서는 폐지될
것이지만,율법만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율법은 온통 그리고 완전하게
모세에게 준 것이고,따라서 율법의 한 글자라도 모세 자신이 창안한 것이라고 말
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다고까지 말한다.이렇게 5경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러주
어 쓰게한 것이라고 보는 유대인들의 견해가 거의 그대로 기독교에도 옮아 들어왔
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있다.
그러나 율법서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합성 문서이고 오랫동안 자
라고 발전되어온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유대 전
통은 율법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세를 통하여 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성경
을 연구해 보면 여러가지 사실이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실 중 몇가지르 들어보자면 신명기 34장의 모세의 사후의
일이 서술되고 있다는 것과 창세기 38장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생겨서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의 글임을 짐작하게 하는 글의 내용이라든가 모세 당시의
지명과 모세 사후의 지명의 변천이 있은 후의 성경 기술상의 차이라든가 모세 시
대에는 없었던 민족에 대한 진술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유대인의 주장과는 달리
다른 저자가 있어서 기존의 문서들을 편집했다는 학설을 강력히 뒷바침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5경은 유대인의 전통적 견해처럼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직
접 받아 쓴 책이 아니라는 것과 따라서 5경은 하나 이상의 문서의 편집으로 형성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그러나 보수 진영에서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이어 받
거나 특별히 예수의 말씀에 근거하여 5경의 실제 저자를 모세로 인정하고 있다.이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한글을 가리켜 세종대왕의 한글이라고 부르지만,사실 세종대왕이 직접
한글을 만드셨다는 말은 아니다.그 밑에 있던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다.1611년네 출판된 영어 성서를 제임스 왕 역(King James Version)이라고 부르지
만 ,그 왕이 친히 번역한 것이 아니다.동서를 막론하고 가장 존경하는 이에 어던
공로를 돌린다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었고 관례였었다.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
족이 가진 모든 법과 기본적인 교훈들과 심지어 그 민족 형성의 기본적인 역사 까
지도 포함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일종의 기본 헌장으로 삼았을 때,그들의 국부요
또 이스라엘 법의 창시자이기도 한 모세를 그 저자라고 부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이 되었고,누구나 거기에 젖어 있
는 시대에 예수님도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전통을 따르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와같이 구약성서의 "익명의 저자 원리"는 구약 가경에도 그
범위를 확장할 수 있게된다.골드만의 말에 의하면 그들 가운데 "한 저자의 이름으
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때에,그것은 대체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
니라 편찬한 것이요,그 저자로 언급된 자는 사실로 그 저자가 아니라 유명한 학파
의 창설자나 또는 잘 알려진 대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와같이 유대교
에 있어서 가명 차용의 관습은 상당히 보편적이었음을 볼 수 있다.하지만 우리가
서신형식의 가경문학이 일반적인 가경 문학의 흐름과 완전히 유리된 것은 아닐테
지만,신약성경 서신들의 비평에는 다른 어떤 형식들보다 서신형식의 가경들이 더
큰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본 고찰을 위해서 그 범위를 축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대교의 수많은 외경과 가경들 가운데서 서신 형태를 사용하려는 기색이 엿보
이는 것은 오직 두 권 외에는 없다는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그 두가지
는 예레미아의 편지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이다.그러나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진정한 서신은 아니다.전자는 설교의 형식이 강하고 후자는 변증적 강화라
할 수 있다.이와같은 저작들은 유대인들이 일반적인 가경문학에 대해 분명히 관용
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있다.이와 같이 가경 문학에 의존했던
이유는 율법의 고착화와 예언의 중단이었다.사람들은 어떤 새로운 예언자의 말도
들어 주려 하지 않았고고 따라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자하는 새로운 개혁자들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과거의 영웅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예례미아의 편지는 그 본보기다.저자는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우상 숭
배를 배척할 것을 교훈하고 싶었다.그는 선지자 예레미아 시대에 바벨론에 있는
가상적인 무리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을 빌어 이를 표현하려 했다. 유대저자들
이 자신들의 작품을 기꺼이 이와 같은 형태로 표현하고자 하는 경향은 자연히 동
시대인들로 하여금 다른 가경 문학 형식들을 면밀히 검토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신형식의 가경 문학을 놀라울 정도로 기피했다는 사실은 어떤 설
명이 주어져야 할 것 같다.고대에 그런 형식을 취했던 선례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
도 무시 할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예인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두드러진 헬라적 경향을 띠고 있다.이 책
의 특징은 저자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 모호한 입장, 즉 70인역이 처음 나왔을 때
살고 있었다고 쓰여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이 점이
이 작품과 다른 묵시록 작가들과의 차이 점이다.무시록 작가들은 잘 알려져 있고
권위 있는 과거의 영웅들을 등장시킴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 받으려고 했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왜내하면 이것은 70인 역이라는 역사적이고 권위있는 역본에 대해
증인으로 가정된 인물이 증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가경은 소위 신약성서 내에 있는 바울의 이름을 딴 가경이
라는 것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유사점보다는 차이점들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소위 신약의 가경은 어떤 잘 알려져 있던 권위있는 저술을 모방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서신 형식의 가경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렇
기 때문에 이들은 쉽게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이들이 그 당시 어떻게 받아들
여 졌는지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전무한 상태이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진정
성을 인정 받았는지 아니면 그런대로 진지한 가경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어떠한 결
론을 내린다는 것은 객관성을 결여한 것처럼 보인다.그렇기 때문에 판단은 유보한
체 나타난 사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서신 형식의 가경 문학은 보
편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며 극히 희소하다는 것이다.
B.기독교의 예
유대교에서신 형식의 가경이 희귀하다는 것은 신약 위경에서 서신 형식의 위경이
희귀하다는 것과 병행을 이룬다.이런 희귀성은 서신 형식의 가경 문학의 변론 혹
은 교육을 위해서는 적합한 것이 아님을 또 다시 증명해 주는 것이다.서신 형식을
띤 신약 위경으로서 주목할 만한 것은 겨우 여섯개가 있을 뿐이다.그것은 그리스
도와 아브가루스의 편지들,렌틀루스의 편지,바울이 라오디게아와 고린도로 보내는
편지들,바울과 세네카와의 서신 왕량,그리고 사도들의 서신이다.그 내용에 비추어
볼때 첫 두 권의 책과 마지막 두권의 책은 그 전설적이고 허구적인 특징이 곧바로
명백히 드러난다.오직 바울과 세네카의 서신 왕래만이 기독교회에 겨우 어떤 영향
을 끼쳤을 뿐이다.
바울행전에 포함되어 있는 고린도서(고린도3서)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
낸 서신은 바울의 신약 서신 양식을 모방하고 있으며 바울의 진짜 서신과 동일한
어구들을 이용하여 바울 저작임을 주장하고 있다.가경 바울 행전의 자칭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진품처럼 보이게 하고,당시의 오류에 대한 그가 생각하는 바울의
대답을 제시하기 위해 바울행전 속의 서신들의 기원에 대해 상대적으로나마 정확
한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가명의 서신 자료를 통합시켜 넣었다.터툴리안의 설
명에 따르면 전체 작품은 바울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이 책은 후에 시
리아어를 말하는 동방지역에서는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동방과 서방 교
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오리겐,히폴리투스가 이책
을 알고 사용도 했었지만 이들 중 누구도 이 책을 정경으로 취급한 것 같지는 않
다.
또 다른 형식의 위경인 라오디게아서는 중세교회가 한동안 이를 정경으로 받아
들인 적도 있다.이 책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이것은 골로새서 4:16에 부합하는 서
신을 기술하고자 하는 욕망이 ,즉 영감받은 사도의 저작이 분실된다는 것은 생각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이 위경을 낳게 했다는 것이 이 서신의 동기에 대
한 특별한 평가이다.많은 초기 가경 문학 작품들과는 달리,이 작품의 목적은 옛
사도를 칭송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이단적 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것도 아니였음을
알수 있다.
이와 같이 살펴본대로 신약성서 외적인 부분에서의 서신 형식의 가경은 너무도
희박하다.사실 이러한 가명의 저작설은 이것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 만큼이나
일반적이 아닌 어쩌면 특수하다고 할 정도까지 임을 알 수 있다.이러한 상황하에
서 신약성서 안에 정경으로 포함된 바울 서신중 에서 반 수정도의 것을 이러한 가
명 차용일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주장 만큼이나 많은 난점을 내포하는 것이
다.또한 세속에서는 그러한 관행이 일반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관행이 높은 수
준의 종교심과 영적인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에게 있어 그것을 가명으로
발표했다는 것은 문제가 분명 더 커진다. 이 경우 종교적 관심에 너무나 강렬하게
사로잡힌 저자가 자신의 훌륭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문제가 될 수 있는 수단
을 기꺼이 취하였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종교 역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는 원리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데살로니가 후서 2:10-12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진리와 불의가 날카롭게 구별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가명의
저자가 이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기만과의 상충을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 처럼 신약성서에서 바울 저작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자
신들의 가설을 받아들이는데 좀 더 자연스러움을 주기위한 그리고 합리적이라고
보아온 가명저작설은 그들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 만큼이나 의심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서신에서의 가명 문제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대의 관행이
었다는 전제를 갖고 본 소고를 진행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II. 데살로니가 후서에 제기된 진정
성 문제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제기해온 학자들의 학설이 증가하는 것과 비례로 이것을
옹호하는 학가자들의 학설도 증가해왔다.예를 들면 휴고 그로티우스는 후서가 전
서보다 앞서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20세기 들어와 맨슨 같은 학자도 이
주장을 따르고 있다.또한 아돌프 하르낙은 후서가 본래는 데실로니가에 있는 소수
의 유대인 기독교인에게 보내진 것이고 반면에 전서는 온 교회가 읽을 수 있도록
기록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전서와 후서의 연관성을,그리고 같은 저자에 의한 편
지임을 주장한다.그러나 바울이 이러한 분파주의 바람을 일으켰을 가능성을 생각
한다면 이러한 주장도 문제를 포함한다.마틴 디벨리우스는 전서는 교회 지도자들
을 위해 기록된 것이고 후서는 온 교회 회중에게 보내진 편지라고 말함으로서 두
편지 간의 연관성과 동일 저작설을 주장한다.그러나 이런 주장은 살전 5:27에서
"이 편지를 모든 형제에게 읽게하라"는 요구가 나오기 때문에 그 타당성이 없어진
다. 이 밖에도 여러 학자가 전서와 후서의 연관성을 강조함으로서 바울 저작설을
주장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게된다. 오히려 우리는 데살로니가 후서를 전서의 저
자가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들을 살펴보며 이것들에 대한 설명을 도모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A.종말론
전서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강조하고있다.(4:15,17, 5:1-5)이것
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강조점이다.바울은 다른 서신들에서
도 "주가 가까왔다"(빌 4:5,고전 7:29,31,롬 13:11-12)고 늘 말하고 있다.이런 사
실은 바울 서신의 경우 임박한 종말 사상이 지배적이란 뜻이다.이런 사실은 임박
한 종말에 대한 종말론적 경향이 살후 2:1-10에서는 반대로 뒤집어지고 있다.주의
날이 임하기 전에 먼저 일련의 사건들이,곧 배교하는 일,멸망의 자식의 등장 등이
있을 것을 말함으로써 임박한 종말이 뒤로 미루어지고 있다.따라서 재림의 지연이
후서 2장의 논쟁의 전제가 되고 있고 결국 종말은 상당히 후에 있을 것으로 언급
되고 있다. 또한 후서의 내용인 "불법의 사람"은 완전히 유대적 사상으로서 전
서와 사상적 근거에도 차이가 있다.그러므로 데살로니가 후서는 전서와 계시록을
조화시킨 후대인의 가작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두 서신의 반대되는 견해는 엄밀히 말해서 주의 가르침
에서도 볼 수 있는 피상적인 모순에 비추어 생각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생각하
지 못한 때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권고 하셨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어떤 표징을 보더라도 아직 끝은 아니므로 미혹되지 말것을 권
고 하셨다.바울이 전서를 기록한 후 이 주제에 대해 숙고하면서 이러한 관계의 반
면(반면)을 힘을 다해 보려고 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변화의 이유는 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에게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
는 안될 것이다.즉,전서에서는 그 때 마침 데살로니가 교인 중에서 죽은 자를 인
해 슬퍼하는 자가 있어 그를 위로 할 겸(살전 4:13-18),단순히 재림에의 흥분에서
그 임박성을 지적하였다.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재림에 대한 근본 신념이었다.그러
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은 곁길로나가 일부 몰지각한신자들은 재림이 임박하였
다 하여 무위 도식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쳐 교회를 문란하게 하였다(3:10-12).그
러므로 바울은 그릇된 종말관에 관한 수정을 도모하고 있으며 착실하게 재림을 대
망할것을 교훈 하고 있다.또한 후서의 종말론이 유대적이리라는 것은 오히려 당연
한 것으로서 그것이 바울 사상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러한 것으로 바울
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그리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B.문학적 표현의 유사점과 차이점
비평가들은 기자와 데살로니가 교회간의 관계의 차이도 매우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전서에서는 격려하며 달래었고,후서에서는 명령했다. 더구나 후서의 정서
적인 어조도 전서와 다르다.전서에서는 기쁨과 감사와 온유함이 중심적으로 내포
되어 있다.후서에도 충심의 감정과 감사의 표현이 포함되어 있지만 부드러운 감정
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비평가들은 이것을 낮은 상태의 영감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용어와 문귀와 어법에 있어서 바울과 명백한 유사성이 있으나,바울의 넘
처흐르는 영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점이다.더구나 불법의 사람
과 재림하실 메시야 사이에 있는 투쟁의 무서운 광경은 어조와 형태에 있어 바울
의 다른 저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이와같은 점에 있어서 많은 학
자들은 데살로니가후서가 사도 바울의 저작이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
일군의 다른 학자들은 두 서신간의 특이할 정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전서를 이용
한 문서가설을 적용하고 있다.즉 용어와 문귀와 어법 후서의 어휘,문귀 및 문체
에 관해서는, 전서로부터 나온 많은 단어들이 후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브레
데와 같은 학자는 오히려 후서가 문학적으로 전서에 의존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
는 것이다.
전서와는 달리 후서에서의 명령하는 단호한 태도에 대해서는 바울의 정중하고
재치있는 메시지가 교회 안의 다수의 신자들을 확신시키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열
광적으로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식을 바울이 듣게되었다면 이러
한 유해한 신자들에게 보다 과감한 방법을 쓰게 되었는지를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된다.또한 분위기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전서의 부드럽고 친절한 그의 훈계를
계속해서 무시하는 교회의 나태하고 광신적 요소를 다스리는 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또한 후서가 단호하다는 견해가 쉽게 과장될 수 있다
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즉 만일 전서가 씌어지지 않았다면 ,후서는 교회에 대한
바울의 부드러운 서신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다. 또한 바울이 이 편지에서 그의 나머지 편지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어조와
형태를 구사했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학자들은 이 편지가 바울의 편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그러나 바울은 단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그의 첫번째 편
지에서 묘사했던 시대의 종말의 모습을 더욱 인상깊고 강렬하게 하기 위해 묵시문
학의 비유와 어휘를 인용한 것 뿐이다. 이제 우리는 두 서신의 문학적 관계성의
문제를 주시하여야 한다.이 문제는 보수진영의 학자에게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
며 이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바울의 저작성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전통적인 바울의 저적성을 의심하며 그 주장을 정당화 시킬 만큼 반대이
유가 충분하지도 않다."라고 하며 핵심을 피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이것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면 언어와 일반적 구조의 유사서이 어던 종류의 문학적 연결성을 암
시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서,데살로니가 후서는 바울 자신의 친필이라기 보
다는 다른 사람이 바울의 것을 복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말한다.
둘의 관계는 너무나 긴밀해서 바울이 전서의 사본을 가지고 있으면서 후서를 기록
하기 전에 읽어 주어 그 귀절들을 자유롭게 인용할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그것은
지금보다 더 많은 상황적인 지식을 알지 못하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운 문
학적 난제로 받아들여 졌다.바울은 어떤 곳에서도 같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았으
며,이전에 쓴 편지구조는 어던 방법으로도 복사하는 일이 없었다고 말해지기도 한
다. 최근에 이루어진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문학 양식에 대한
Morton의 통계학적 연구는 이 두편지 중 어느것도 로마서,고린도서 및 갈라디아서
의 저자와 같은사람이 쓴 것일수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Morton이 이끌어 낸
자료들은 실루아노가 이 두 편지의 작성에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가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C.신학적 이해의 차이
전서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을 후서에서는 흔히 "주"로 대치하고 있다
(살후2:13,16,3:1,5,16).살전1:4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이란 문구가 "주
의 사랑을 받는"이란 문구로 바뀌고 있는데 이런 대치는 특히 기도의 문맥 가운데
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사울 시대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예전적 용법을 반영해
주고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데살로니가 후서에 십자가와 부활의 케리그마가 나
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서에서는 바울이 종말론의 주제를 밝히는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믿는다"(4:14)고 고백하고 있다.그러나
후서에서는 십자가와 부활의 케리그마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보복이란 구약적 교리에 가려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또한 성령에 관한
용어도 후서에서는 별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살전1:5,6 4:8,5:19,23,살후 2:13).
후서 3:6-7에 나오는 권면을 살펴보면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상이 믿지 않는
증거와 봉사가 된다는 바울의 사상(살전 4:12,5:15)이 나타나지 않는다.도리어 바
울의 생활상이 본받아야 할 모범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비 바울적
인 사상이 나오는데(살전1:6-7과 살후3:7-9 비교)후서에선 사도들이 본 받는다는
사상이 그가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당한 고난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의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하지만 큄멜에 따르면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간
혹 '하나님'(살전 1:4;5:23)대신에 '주' (살후2:13;3:16)가 사용되지만 ,비슷한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살전 2:12;비교,골1:10).데살로니가후서의 데살로
니가전서에 대한 문학적 관계는 분명히 매우 밀접하지만,Wrede의 주장과는 반대
로,접촉점들이 철저하게 같은 순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편지의 삼분의 일 정
도만 나타나기 때문에 문학적 의존성을 추정하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다.
이와같이 살펴본바에 의하면 데살로니가후서에 대한 비진정성을 주장하는 가설
은 그자체의 난점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또한 진정성을 주장하는
대에는 아직도 설명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은 피할수 없는 사실이다.
IV.데살로니가 후서의 진정성에 대한
내,외적
증거
A.내적증거
바울 저작의 진정성에 대한 내적 증거는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던 비진정성 논
의에 대한 반론들을 참조하면 될 것이나 이 때 위에서 다루지 못했던 좀더 상세
한 부분을 언급하기로 한다.
바울은 ,다른 편지들에서 수신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할 때에는
그 편지가 공동 명의로 되어 있더라도 보통 1인칭 단수를 사용한다("내가 믿사하
노니"참조,고전 1:4;빌 1:3)그런데 데살로니가 전 후서는 모두 1인칭 복수를 사용
하고 있다.이 두 편지의 전체에 걸쳐1인칭 복수가 계속 사용되어 있으나 어떤 곳
에서는 갑자기 1인칭 단수가 쓰이기도 한다(살전 2:18;3:5;5:27;살후2:5;3:17).1
인칭 단수가 쓰인 이 다섯 구절 중 두 구절에서는 '나 바울'이라는 표현이 나타난
다.(살전2:18;살후3:17)1인칭 단수가 쓰인 구절들은 편지가 구술되는 동안 바울이
구두로 삽입한구절이거나,아니면 편지를 받아적게한 후 그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바울이 직접 써넣은 구절로 보아야 할 것이다.편지의 머리글에 그의 이름이 포함
된 것과 특히 두번째 편지의 끝부분에 그의 서명이 들어간 것은 이 편지들을 누가
썼든 간에 그것의 전체적인 내용을 바울이 승인했다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된다. 또한 데살로니가 후서의 언어와 문체가 몇몇 단어들을 제외하면,철저하게
바울적이라는 점이다.후서 1:7에 을 첨가한 것은 철저하게 바울적이며
바울의 저작권을 지지해 주는 것이지만 모방자에게 있어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
었을 점이라는 사실이다. 데살로니가 후서 2:8절과 목회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재림이란 용어는 그것이 데살로니가에만 있는 유일한 전문 용어는 아니다.데살로
니가 후서에서 간혹 하나님(살전 1:4;5:23)대신에 주(2:13;3:16)가 사용되지만 비
슷한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살전 2:12;비교 1:10).
B.외적 증거
위에서 언급했었던 두 편의 위작들,즉 소위 고린도 3서와 라오디게아서의 증거
들을 통해 확신있게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은 내적 불일치도 아니었고 작품을 통해
엿보이는 모방자의 개성도 아니었다.그것은 반대로 가벼운 외증이었다.유세비우스
가 기록한 안디옥의 세라피온(AD 190년경)의 증거로 시실리아의 로수스에 있는 교
회에서 베드로 복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후 그 교회로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드로와 다
른 사도들을 받아들입니다.그러나 경험이 있는 자들로서 우리는 그들의 이름으로
거짓되어 기록된 서술들은 거부하는 바입니다.왜냐하면 우리는 교부들로부터 그와
같은 것들을 전수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외증으로
인한 진정성의 여부가 가려졌으며 위조서신에 대한 분위를 말해 준다.이러한 기독
교적 분위기에서 과연 경건한 바울 추종자가 용납된 문학 장르로서 가명을 사용한
작품을 지어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음을 볼 수 있다.
외증은 데살로니가전서의 경우보다 더 확실하다.왜냐하면 데살로니가후서는 마
르키온의 정경이나 무라토리안 목록에 수록되었고 이레니우스에 의해 본 편지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편지의 용어가 폴리갑서신에 분명하게 반영되
었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크와 터툴리안의 시대에도 바울의 저술로 인정받았으
며 고대 라틴 역본과 고대 수리아 역본 모두에도 실려 있다.
V . 결 론
살펴본바에 의하면 진정성에 대한 증거는 초대 기독교인들이 본 서신을 바울의
진정한 저작으로 간주했다는 어느 정도 확신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만들지만
어떤 학자들은 내증이 그와 같은 전통적인 견해를 반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
나 비진정성을 주장하는 가설은 그 자체의 난점을 야기하고 있다.또한 이 가설에
대한 가명차용에 대한 가설은 위에서 살펴본대로 그 신빙성이 의심된다.하지만 이
들이 제시하고 있는 바울저작의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따르는 많은 난점들은
귀기울여 들을만하다.아직도 이 논점은 해결되지 않은체 있으며 현대에는 그 매력
을 많이 상실한 것이 사실이지만 성서해석을 위한 전 이해로서 이것은 필경 한번
은 부딪히게 되는 문제일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닥쳐지게 된다면 우리는 어느 한
입장을 취하지 아니하고서는 다음단계의 연구를 진행시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는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본
소고는 바울 저작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발견되는 난점은 그것을 의심하
는데에 발생되는 난점보다는 작다는 조심스런 결론을 내리며 결정적인 판단은 미
루어 둔채 진정성에 대한 논의에 대해 어느정도의 지식을 갖는데 만족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