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의 중심사상
빌립보서에 나타나는 사실은 사도가 어떤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 할 때는뭔가 기대 하는 바가 것입니다.( 1 : 11 ) 그 기대는 사도가 생각하고 있는 기준에 기초하게 됩니다.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감독과 집사들은 이런 사도의 기분을 이해하고 편지를 대해야 합니다.( 1 : 1 ) 사도의 기도와 간구의 주된 목표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복음을 알고(2:5-11)그 내용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변모해가고 일정한 목표를 향해 오늘도 달려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3:11-14) 그런 의미에서 서신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도 자신의 이야기는 결코 무의미 한것이 아닙니다. 사도의 옥에 갇힘과 사도 자신의 인생 목표설정과 사도가 당한 오해 같은 것은 사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개인만의 문제라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편지할 자격이 상실 됩니다. 사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주어진 상황은 그 가운데서 사도가 어떻게 처신하며 그 처신 한것이 복음의 의미와 얼마나 일치점을 같고 있나를 보여 줄수 있기에 헛된것이 아닙니다. 사도가 환경에 구애를 자유를 상실한듯한 인상을 주지만 그러나 복음이 주는 기쁨이란 바로 그 가운데서 비로서 발생 되도록 되어 있는것이 복음이 갖는 본질 입니다.(1:18/2:17/,29/3:1/4:4) 복음의 주체는 어떤환경에 처해 있든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데 있습니다.(2:5) 모든 일체의 비결도 여기 있습니다.(4:13)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교회가 이루어야 될일은 바로 이것 뿐 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일 입니다.(1:6,10) 이미 그것을 익히 알고 있던 사도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살든지 죽든지 그저 내몸에서 그저 내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는 마음 그것뿐이었습니다.(2:20) 사실 빨리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것이 소원이지만 (1:23)아직 지상에서 고난받는것은 자신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모습이 어떤 고난을 수행하고 있느냐를 보여 줄 대목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3:17) 즉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받았던 고난도 함께 수용한다는 결단까지 포함 되어 있습니다.(1:29)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내에 분쟁이 있다는것은 복음의 진수를 모르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곧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한 몰이해 때문입니다.(2:3) 예수님이 주 이시다는 것이 사도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그 분이 역사 안에서 행하신 낮아지심이 없었던들 결코 주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이다.(2:6-11) 바로 이 방식을 따라 교회는 구원의 진로를 삼아야 하는것입니다.(2;12) 이 일을 위해 사도 바울도 디모데도 에바브로디도도 함께 고생 한다고 합니다.(2:22,25) 그러면 그 고난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 왜 사도가 그 일행이 부지런히 교회에 대하여 걱정을 하며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 그것은 거짓복음 때문입니다. 거짓 복음 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비 그리스도적인 사고방식이 담겨 있는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첫째 율법주의가 있습니다. 할례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내세우는 무리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복음보다 더 자랑하기 때문 입니다. 사도 자신은 모든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3:8) 복음의 진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것이 아니라 어찌 하든지 나는 죽고 그리스도에게 발생된 그 사건 속에 참여 할려고 하는데서 나타납니다. 그 사건이란 십자가 순교와 부활입니다.(3:10) 또 어떤자들은 땅에것만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3:19) 그러나 우리는 이미 호적이 하늘에 있지 땅에 있는것이 아닙니다.(3;20) 그러므로 이제 이 복음의 능력(십자가로 데리고가서 죽이고 부활시키는 능력) 을 알고 있는 이상 항상 기뻐하고 어떤 경우를 당해도 경건하게 성도의 지조를 지켜줄것을 당부하고 또 자족하기를 요구 합니다.(4:14-13) 轨으로 사도는 자기에게 베풀어준 교회의 사랑에 감사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