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의 연구
주석에 앞서서
가. 본문선택의 이유
'빛과 소금'이라는 말은 오늘날 기독인의 대명사로 취급된다. 기독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빛과 소금'에 관한 설교와 주석서를 접했을 것이다. 평신도들이 일반적으로 '빛
과 소금'에 관한 이해는 기독인들이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을 향해 자기의 몸을 태우는 희생
의 개념으로 빛을, 그리고 세상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는 개념으로 소금을 이해한다. 이러
한 이해는 전적인 오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성서를 바탕으로 이해하지 않는 '논리적 비약'
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인의 연구 결과로는 '소금과 빛'은 부패방지와 자신의 몸을 헌신해 어둠을 밝히는개념을 나
타내기보다는 '사랑'이라는 실천강령아래 그리스도인을 향한 경고와 의무의 개념을 지닌다. }}
'빛과 소금'에 대한 논리적 비약은 평신도들에게 두가지 정도의 큰 문제점을 안겨준다.
첫째, 그것은 구체적으로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즉 도대체 자기의 몸을 태워 빛을 비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며 또한 세
상의 부패를 막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지에 대해 기존의 '빛과 소금'에 대
한 이해는 성서에서 말하는 진실한 답을 해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성서를
해석할 때 낱말적인 표상을 현대의 눈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금과 빛'이라는 낱
말을 현재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그 표상만으로 이해하는 것만큼 성서를 잘못 해석하는
길은 없는 것이다. 성서의 이해는 낱말의 표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기자의 전체적인 문
맥의 의도에 달려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기존의 빛과 소금
에서의 세상에 관한 이해는 세상을 죄악으로 어두운 곳, 그냥 두면 썩어질 곳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지닌다. 이러한 이해는 기독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부정한 곳으로 이해시킨다. 물론
성서는 세상을 부정한 곳으로 이해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지닌다. 그러나 성서는 세상을
부정한 곳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의 내용이 세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구원의 대상
으로 본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이상의 내용에서 기존의 '빛과 소금'에 대한 이해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교회
와 동등한 입장으로 세상에 나아가 구체적인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공
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본인은 본 주석을 통해 기존의 '빛과
소금'에 대한 이해를 지양하고 더욱더 올바른 '빛과 소금' 이해를 해보고자 본문을 선택했
다.
나. 연구의 목적, 범위 그리고 방법론
본인의 연구의 목적은 마태가 말하는 '빛과 소금'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있다. 이러한
목적아래 본인이 사용하는 연구범위는 '빛과 소금'의 본문이 형성되기 까지의 과정을 살피
는 것과 마태복음안에서 마태기자가 본문을 구성한 방법, 그리고 그 본문구성에 나타나는
마태의 신학적 의도를 밝히는 데 본인의 연구 범위는 제한될 것이다.본인이 사용하는 연구
방법은 본문의 형성을 밝히기 위해 역사비평적 방법을 사용할 것이며 마태의 의도를 파악하
기 위해 본문의 문학,구성,구조비평을 사용할 것이며 아울러 사회학적 성서해석 방법을 사용
할 것이다.
II. 번 역
가.
너희들은 땅의 소금이다.
그런데 만약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 ' '의 본래의 뜻은 'to be foolish'이다.
이병철 편찬, 성서원어대전,1권(서울:브니엘 출판사,1985), p.1017.참조 }}
그것이 무엇에게 쳐지게 될 것인가?
{{ Ibid., p. 855.
' ' 는 'to salt'의 의미이다. }}
후에 그것은 아무것을 할 힘이 없기때문에 다만 밖에 던지워 진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짓밟힌다.
나.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다.
산위에 있는 동네는 숨겨져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등불을 말 아래 두려고 켜지 않고 다만 등경위에 두기 위해서 그것을 켠다.
그리고 그것은 집안에 모두를 비춘다.
다.
그러므로 너희들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어라.
그리하여서 그들이 너희들의 좋은 행실을 보고,
그들이 하늘에 계신 너희들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III. 말씀의 원형추적
가. 본문 '가' 의 형성
'가'는 공관복음에서 병행구를 이룬다. 그것은 곧 마가복음 9장 50절과 누가복음 14장
34절-35절이다. 이 복음서들은 다소의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인 유사성을 갖는 부분이 있
다.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마5:13f s
직역: 만약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그것이 무엇에게 쳐지게 될 것인가?
의역: 만약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그것이 어디에 사용될 수 있을까?
막9:50f s
직역: 만약 소금이 소금기가 없어졌다면 너희들은 그것을 무엇에게 양념할 것인가?
의역: 만약 소금이 소금기가 없어졌다면 너희들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눅14:34f s
직역: 만약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그것이 무엇으로 양념이 될 것인가?
의역: 만약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그것이 어떻게 맛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마태는 마가를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 - 동사의 쓰임이 전혀 다르다( -
/ - )- 이것은 마태와 마가가 서로 다른 전승자료를 따
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반면 누가는 마가와 마태의 전승자료를 따르는 듯하다. 누가는 마태와 마가의 동사를
번갈아 사용하는 데- / - 이것은 누가가 마태의 자료와 마가의 자료를
공유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실은 누가복음 14장 34절-35절 전체를 살펴볼 때 누가가
마태와 마가의 각각의 다른 자료를 가지고 있었음이 증명된다.
먼저 누가는 14장 34절 첫 문장이 마가복음 9장 50절 첫 문장과 서로 일치하는 데 이
것으로 보아서 누가는 마가의 전승자료를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한 것 같다. 누가와 마가는
s (소금은 좋은 것이다)라는 문장을 공유한다. 그리고 누가는 마태의 자료도 가
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4장 35절과 마태복음 5장 13절 이하 부분
이 서로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누가복음에서 와 마태복음에서
는 내용과 동사의 활용이 일치하기 때문에 누가는 마태의 전승자료를 공유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가는 마태와 마가의 각각의 전승자료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
는 것은 합당한 추론일 것이다.
마태와 마가의 자료의 불일치성과 마태와 누가의 자료의 일치성에 때문에 Q자료를 생
각할 수 있다. Q의 내용은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소금이 어디에 사용되어질까?( 혹은 소금
이 어떻게 그 맛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다만 밖에 던지워진다.'일 것이다. Q의 내
용을 기초로 볼 때 동사 는 예수 말씀의 초기 전승의 단어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물질을 의인화하여 표현하는 것은 예수 말씀의 원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J.Gnilka,국제성서주석, 마가복음,번역실 역(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5,p.228. }}
또한 마태와 누가가 일치되게 사용한 단어 즉, '밖에 던지워진다.'- \
- 는 예수의 초기 전승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Q를 통해서 예수의 초기 전승 원형을
부분적으로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밖에 던지워진다.' 이다.
예수말씀의 초기 전승원형을 찾는 또 한 가지의 시도로 마가가 사용한 전승자료를 가지
고 말씀의 원형을 추적할 수도 있다. 마가는 이미 구전으로 굳어진 전승자료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마가는 9장 50절에서 s 를 어원으로 가진 단어를 사용하며-
s, - 또한 이와 첫 모음이 같은 단어- , -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의 말씀이 전승될 때 언어적 유희를 가지고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로 사용된 구전 전승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예는 마태복음의 8복에서 드러난다. 5장 3절-6절에서는 복받는 대상자들의 단
어가 모두 | 로 시작되는 단어다.- , s, s, s- 8복은 그 특성
이
시적인 요소가 강해 이미 굳어진 구전전승을 마태가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게 보이는 부분
이다. 이러한 예를 종합해 볼 때 마가는 구전으로 굳어진 전승을 수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가 수용한 전승자료의 내용은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소금이 소금기가 없어졌다면 너희들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이다.- 9장 49
절은 소금의 어원을 갖는 동사를 사용한다( ). 그러나 이것은 불( )과 연결된
다. 이것은 언어유희적 연관성보다는 언어상징적 연관성이 보인다. 즉 불과 소금은 정화의
의미를 나타낸다.
{{ Ibid,p.92.
이병철편찬,Ibld,p.428. }}
그러므로 이것은 마가의 이미 굳어진 초기의 구전전승자료로 볼 수 없
다. 또한 50절 이하에 나타나는 소금( )과 화목( )의 연결도 언어의 상징적인 신
학적 색채가 있기 때문에 초기전승에서 제외된다.
{{ Ibid,pp.424-425.
Mircea Eliade,The Encyclopedia of Religion,v.13(New
York:Macmillan
Pubushing
Company),1987,pp.23-24. }}
그러므로 Q의 전승과 마가의 전승은 각기 서로 다른 전승을 사용했다. 이것은 예수의
말씀의 원형이 각기 다른 전승을 형성해 Q와 마가에게 수용된것이라고 볼 수 있다.
Q의 전승과 마가의 전승중 어느 것이 예수의 말씀으로 소급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본인은 Q의 동사 즉 가 마가의 보다 더 예수의 말씀과 가깝다고
본다. 왜냐하면 구전전승의 언어적 유희는 사람들이 쉽게 연상암기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단어의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Q와 마가의 각기 다른 전승들의 모태
가 되는 전승의 원형은 즉 예수말씀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전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
라고 추측할 수 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너희들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
인가? 다만 그것은 밖에 던지워진다.'
이 말씀이 예수의 말씀으로 소급되지만 예수께서 어느 때에 이러한 말씀을 하였는지
추적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자료는 공관복음 밖에 없으므로 공관
복음에서 이 말씀이 사용된 상황을 밝혀 냄으로써 이 말씀의 원초적인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 이에 본인은 Q자료와 마가복음에 있어서 이 말씀이 사용된 상황을 추적하고 그것이
누가와 마태에게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 밝혀 냄으로써 이 말씀의 원초적인 상황을 찾아
볼 것이다.
Q자료
{{ Q자료 순서에 대해 학자들간의 논란이 심하다. 본인은 누가의 순서를 따른다. 누가의 순서를
따르는 학자로는 H.슈르만, D.류르만 등이 있다.
안병무,사회학적성서해석(서울:한국신학연구소),1990,p.157. }}
를 근거로 볼 때- 누가복음 14:26-27,34-35; 16:13과 마태복음 10:37-38; 5:13;
6:24-소금에 관한 말씀은 Q에서 다음과 같은 위치를 갖는다.
A.눅14:26-27 / 마10:37-38 (제자가 못되는 자 / 합당치 못한 자)
B.눅14:34-35 / 마5:13 (어리석어진 소금의 버려짐)
C.눅16:13 / 마6:24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기지 못함)
Q는 A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자격을 이야기한다. 예수를 따르는 자는 자기의 친적
과 목숨까자도 미워해야한다(혹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해야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
께 합당한 자들이 아니다. Q의 B는 예수께 합당치 못한자(제자가 못되는 자)의 결과를 소금
으로 비유해 보여준다. 어리석어진 소금(합당치 못한 자)은 쓸모가 없어서 밖에 버려진다. Q
의 C는 결단을 촉구한다. 예수의 제자는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그를 섬기지 않던지 결
단을 내려야한다. 제자는 그 둘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Q에서 소금은 예수께 합당한 자(혹은 제자)로 비유
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Q에서 소금에 관한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Q와 마찮가지로 마가도 소금에 관한 말씀의 정황이 제자를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가복음 9장 38절-50절은 제자 요한의 물음에 대해 예수께서 대답하시는 말씀이다. 마가에
서 소금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위치를 갖는다.
A.막 9:38-41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축출하는 자에 대한 고발과 예수의 대답)
B.막 9:42-49 (걸려 너머지게 하지 마라)
C.막 9:50 (소금을 지니고 화목해라)
마가에서 A는 요한이 예수에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따르지 않는 무리들이 예수의 이름
으로 귀신을 쫑는다고 고발하는 것에 대해 예수께서 그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막지말라고 한다. B에서는 예수를 믿는 작은 자
{{ J.Gnilka,Ibld,p.89. }} 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말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제거하기를 바라신다.
{{ Ibid,p.90. }}
그렇지 않을 경우에 제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예수는 누구든 불로서 소금치듯함을 받듯이 -
정화되듯이- 제자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버릴 것을 촉구하신다. C에서 예수는 이기심을 버린
정결한 모습으로 서로 화목할 것을 권고하신다. 이것은 이미 제자들 사이에서의 분쟁(눅
9:33-37)과 예수를 믿는 타인들-예수를 직접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요한의 시기성의
고발에 대한 예수님의 훈계적인말씀으로 해석이 가능해 진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금은 이기
심을 제거하는 정화의 상징으로 더 나아가 화목의 상징으로 연결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Q와 마가가 소금을 제자에 관한 말씀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소금에 관한
예수의 말씀의 확실한 원초적인 정황은 제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었다고 우리는 볼 수 있
는 것이다. 그리고 그 쓰임은 제자의 온전한 모습 혹은 자격을 나타낼 때 쓰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태와 누가는 소금에 관한 예수 말씀의 원초적인 상황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
다. 누가는 소금에 관한 말씀을 예수를 따라온 많은 무리에게 말씀을 한다(눅14:25-35). 그
들에게 예수는 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준다. 그 가르침은 희생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14:26-27). 예수는 두 개의 비유를 통해 무슨 일이든지 그것에 선행하는 요건(자격)이 갖추
어 져야 됨을 말한다(눅14:28-32). 이와 마찮가지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선행하는 요건(자
격)이 있게 된다. 그것은 곧 누구든지 자기의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눅14:33). 예수는
이제 소금의 비유를 통해 소금이 소금되기 위한 온전한 요건을 갖추지 않았을 경우-소금이
어리석어질 경우-에는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어서 밖에 버려지는 것처럼 예수의 제자도 온
전한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누가는 예수의 소금에 관한 말씀을 예수의 제자되기 위한 제자들의 선행 조
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가가 소금을 정화와 화목의 의미
로 사용한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소금으로 정화된 제자(이기심을 버린 자)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제자들이 갖추어야할 자격(요건)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 누가와 마가의 차이점은 누가는 소금을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선행되는 본질적인 조건임
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데 반하여 마가는 이미 예수의 제자된 자들이 지녀야할 덕목(조
건,
자격)
임을 설명하기위해 소금의 말씀을 사용한다. }}
마태는 소금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자신의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말한다
(마5:1-2). 소금에 관한 말씀을 듣는 무리들은 이미 그들에게 해당하는 복이 주어진다(마
5:3-12). 이들의 복은 박해를 전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때문에 당하는 박해는 이미 복의
상징이다. 그것은 하늘나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마5:10-12).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과 자
신을 따르는 무리들은 이미 천국의 복이 주어진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예수는 선언을 하신
다. 그것은 곧 '너희들은 땅의 소금이다(마5:13)'라는 예수의 말씀이다. 이것은 이미 천국의
복을 지닌 인간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다. 여기서 소금은 14절의 '빛'과 연결되며 그것은
또한 16절에 '좋은 행실'과 연관이 되며 이것은 20절에 '의로운 행실'과 연결이 된다.-차후
에 자세한 주석을 하겠다- 그러므로 마태에게 있어서 소금은 이미 천국의 복을 소유한 예
수의 제자들(따르는 무리들)이 행해야할 그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예수의 제자들이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사명(제자들이 지
켜야할 의무)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이것은 제자들의 온전한 모습(자격)으로 설명될 수 있
다.
결론적으로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소금에 관한 예수 말씀의 원초적인 정황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금의 말씀의 쓰임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할 그들의 '온전한 모습'을 설명하기 위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말씀의 원초적인 정황은 복음서 기자들에게 큰 변화없이 수용되어진 것으로 보
인다. 약간의 차이-누가복음은 예수의 제자됨의 선행적 조건을 나타냄, 그러나 마태와 마가
는 이미 제자된 자들에게 있어야할 덕목을 말함-는 있지만 그것은 예수의 제자직에 관한
의미로 볼때 큰 차이는 없는 것이다.
{{ 김득중,복음서의 비유들(서울:컨콜디아사),1988,p.105.
김득중 교수는 소금에 관한 원래의 예수의 말씀은 '경고'의 의미였다고 본다. 즉 예
수는 인류의 소금이 되지 못하는 이스라엘(유대교)에 대한 경고(심판)하기 위해 소금의 비유를 사
용했다는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견해에 대해 수긍은 하지만 소금의 관한 본질적 말씀은 유
대
의 경고를 통해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예수의 의도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본인은 이러한 이유에서 예수의 소금에 관한 말씀이 심판과 제자를 향한 교훈
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
지금까지 소금에 관한 예수의 말씀의 본문 형성의 과정을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이 나타
낼 수 있을 것이다.
{{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너희들은 그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다만 그것은 밖에 던지워진다. }}
{{ 상 황 }}
{{ 예수의 제자직에 관한 말씀 }}
{{ 전승일부 }}
{{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밖에 던지워진다. }}
{{ 상 황 }}
{{ 예수의 제자로서 합당치 못한 자의 결과 설명 }}
{{ MkOt }}
{{ 마가전승 }}
{{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소금이 소금기가 없어졌다면
너희들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
{{ 상 황 }}
{{ 예수께서 제자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화목할 것을 권고 }}
{{ Lk }}
{{ 누가복음 }}
{{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그것이
무엇로 양념(그 맛이 회복)이 될 것인가? [흙으로도 못쓰고 거
름으로 도 못쓰게 되어] 내어버릴 것이다. [들을 귀 가 있는 사
람은 들어라]. }}
{{ 상 황 }}
{{ 예수의 제자로서 선행되어야할 본질적인 조건을 설명 }}
{{ Mt }}
{{ 마태복음 }}
{{ 너희들은 땅의 소금이다. 그런데 만약 소금이 어리석어지면 그
것이 무엇에게 쳐지게 될 것인가? [후에 그것은 아무것을 할 힘
이 없기때문에] 다만 밖에 던지워 진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
에게 짓밟힌다. }}
{{ 상 황 }}
{{ 이미 천국의 복을 받은 자들-제자들-의 임무를 설명 }}
* [ ] 는 복음서 기자들의 첨가부분이다.
* J 는 예수의 말씀으로 소급되는 초기전승의 원형이다.
* Q 는 Q를 형성시킨 전승이다.
* MkOt는 마가의 본문-소금에 관한 말-을 형성한 전승으로 이 전승은 이미 굳어진 구전
의 전승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Q는 그 종말론적(묵시적)인 성격으로 J를 수용한다. 즉 제자직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Q는 예수의 제자로서 합당치 못한 자의 결과(심판)을 나타낸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합당한
자-자신의 철저한 헌신, 모든 것과의 단절(가족,재물)-가 되라는 긴급한 촉구(결단)를 제자
들에게 한다. 이것은 Q의 종말론적(묵시적) 성격을 반영한다.
{{ 박창건, 신약주석방법론(서울:목양서원,1991),pp.88-89. }}
MkOt는 마가에게 수용된다. 마가는 소금을 정화와 화목의 상징으로 수용한다. 이것은
마가 공동체 안의 분열을 시사한다. 공동체안의 분열 원인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귀신축출에 관한 것이다. 요한은 예수를 따르지 않는 다른 사람이 예수의 이름
으로 귀신을 내쫑는 다고 시기성의 고발을 한다. 이에 예수는 그것을 허용한다. 타인들이 귀
신을 축출하는 데 대한 제자(요한)의 반응은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귀신의 축출
은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뽑으신 목적이기 때문이며(막2:13-15) 이들이 예수께 받은 권능
이었기 때문이다(막6:8). 다시말해 귀신축출은 예수의 직계 제자들만이-12제자-행사할 수 있
는 특권이라는 것이다. 이 특권은 마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귀신 축출
은 예수님의 사역속에 매우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며 (1:21-28,32-34,39;3:11,22;5:1-20;7:3;
9:14-28),그 구조적인 위치도 예수의 첫사역(1:21-28), 변화산상에서 변화 후에 첫사역
(9:14-27)이 모두 귀신축출이라는 것은 마가에게 있어서 귀신의 축출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
고 있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의 귀신축출은 예수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했으
며(막1:27),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자로서 가르침을 전할 때 예수의 제자임
이 증명되는 증표로 귀신축출이 이해된 듯하다.
{{ 말씀의 전파와 귀신의 축출은 제자들이 행하는 사역에 중심이다(막3:13-19 ;6:13). }}
그러므로 이러한 이해를 종합해 볼 때 마가 공동체는 예수의 직계제자들-꼭 12사도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12사도와 같은 권위를 가진 무리들-과 그렇지 않은 무리들 사이에서
마찰이 있었으며 그 마찰의 원인은 말씀의 선포(가르침)의 제한적 한정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마가는 이러한 말씀선포의 제한적인 한정을 부정하고 그것이 12제자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믿음(기도)에 있음을 예수의 질책을 통해 나타낸다(막9:19). 그리고 더나아가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확대 해석함으로서 말씀의 선포
의 특권은 모든 사람에게로 부여된다(막9:39-40).
마가는 또한 예수를 믿는 미미한 자들을 보호하는 데, 이들은 예수의 직계 제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이다. 마가는 공동체(직계제자들)가 이들을 탄압
한다면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막9:42). 그리고 공동체가 이기심을 버릴 것
을 강조한다(막43-47). 그렇지 못할 경우에 그들은 심판을 받는다(막9:48). 마가는 이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불로 소금치듯이(절여지듯이) 정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똑같이 정화된 모습을 말한다. 마가는 끝으로 소금
을 화목과 연결시키고 자신의 공동체들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화목할 것을 권고하면서 소금
을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마가는 소금의 말씀전승을 자신의 공동체의 말씀선포의
제한적인 한정으로 인한 공동체의 분열을 해결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낼 것을 권고하기 위해
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로 마가 공동체안에 지도층의 갈등이다. 마가의 저작 연대를 예루살렘멸망직전인
65년-70년 으로 볼 때
{{ 마가복음 안에는 유대와 로마의 전쟁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마13:1-2,7-8,14-20).이것은
마가의 공동체가 로마의 박해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경험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서중석,마가복음서의 연대,현대와 신학, 제7권(1990,13집),pp.8-9.참조 }}
마가 공동체의 지도층은 2가지의 부류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곧 예루살렘 전쟁 이전에 마가 공동체를 형성했던 지도층들과 예루살렘의 전쟁중에
마가의 공동체
{{ 한기역, 마가공동체, 목원대학원 졸업논문,1992,p.19.
이 논문은 마가 공동체가 갈릴리를 배경으로 형성된 공동체임을 설명한다. }}
로 피신해온 예루살렘 공동체의 지도자-이들은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세력일 것이다-들이다.
이들 사이의 분쟁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씀선포(가르침)의 권한의 분쟁일
것이다. 더나아가 이것의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인 '누가 더 큰 자인가?'하는 문제일 것이다
(막9:33-34). 또한 그 원인은 '누가 예수의 영광 때 그 오른편과 왼편에 앉을까?' 하는 즉
다스림의 권한 문제이다(막9:37-38). 이러한 갈등에 대해 마가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야 하며 그들을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막9:35). 그리고 가장 미미
한, 연약한 어린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를 영접한 것이며 이들이 지도자의 자격이 있음을
마가는 주장한다(막9:36-37). 마가는 공동체안에 지도자들은 세상의 지도자들과는 달라야 한
다고 주장한다(막10:42). 오직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함을 마가는 말한다(막10:44-45).
마가는 이러한 분쟁을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금의 말씀으로 해결한다(막9:49-50).
즉 마가는 소금의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 자신들의 이기심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화목의 공동체로 변화되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가에게 있어서 소금
의 관한 말씀-제자직에 관한 말씀-의 수용은 자신의 공동체의 당면한 문제 즉 공동체의 분
열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용되었음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Lk의 소금에 관한 말씀의 예수의 제자의 본질적인 필요충분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누가는 자신들의 공동체가 유대교로 부터 분리된 후 자신들의 공동체의 단호한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했다
{{ A.D 80-90년경에 발생한 암니아 회의는 유대교에서 기독인들을 배척하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
명했다. 누가와 마태는 모두 암니아 회의 과정이나 그 직후에 쓰여진 복음서로 볼 수 있다.
Helmut Koster,History and Literature of Early Christianity,New York,1980,pp.405-410.
A.M 헌터,신약성서개론,박창건 역(서울:컨콜디아사,1982),p.73. }}
. 누가의 공동체 구성원들은 유대교가 되든지 아니면 기독교인
이 되든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려면 한 종은 한 분의 주인만
을 섬겨야 한다는 누가의 주장에 잘 나타난다(눅16:13). 이러한 상황속에서 마가는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 설명해
준다. 그것은 곧 전적인 헌신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됨으로 그들은 유대
교를 숭상하는 부모와 친척과 완전한 단절을 각오해야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포
기를 해야한다(눅14:26). 또한 그들은 예수가 지셨던 십자가를 똑 같이 질 각오도 해야한다
(눅14:27).-유대교(로마)가 예수를 탄압했듯이 제자들도 탄압을 각오해야 한다.- 이들의 전적
인 헌신은 한마디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하는 것이다(눅14:33). 제자가 되기 위한
이러한 헌신의 조건은 본질적이고 선행적인 요소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그에 선행하는 어떤 필수적인 조건이 있는 것과 같다(눅14:28-32). 만약
제자로서 선행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그는 본질적으로 어리석어진(맛을 잃은) 소금과
같아 그 어디에도 사용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소금은 밖에 버려 지듯이 이
러한 기독인들은 심판을 받는다(눅14:34-35).
결국 누가는 Q에서 제자들의 전적인 헌신(합당한 자)의 개념과 그렇지 못한 자의 심
판을 수용한다. 그러나 Q자료가 그 성격이 종말적이고 묵시적인 긴박성임에 반하여 누가는
자신의 공동체를 유대교로 부터 보호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다시말해 누가에게 있어서
소금에 관한 말씀은 유대교와의 분리를 경험한 누가 공동체가 자신들의 구성원들에게 유대
교의 탄압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헌신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누가가 적극 수용하였음
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이다.
Mt는 소금에 관한 말씀을 이미 천국의 복을 받은 제자들이 행해야할 사명(임무)으로
수용한다. 예수의 복의 선언 중에는 마태 공동체가 핍박을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마5:10-12).
{{ 즉 '핍박을 받다'라는 동사가 완료분사로 쓰인다. 이것은 핍박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
을 말한다. }}
이것은 마태 공동체의 경험이 유대교로 부터의 분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마태복음은 유대교로 부터 분리한 경험을 나타내는 구절이 있다. 즉 '저희 서기관(7:29),저
희 회당(4:23,9:35,10:17,12:9,13:54),랍비칭호에 대한 거부감(23:7-8) 등이 그것이다.
도날드 시니어,최근 마태신학의 동향,홍찬역(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1992,p.23. }}
마태는 산상보훈을 유대교로 부터 분리된 자신의 공동체에게 새로운 정체성
을 확립시켜 주기 위해서 썼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마태는 산상보훈을 율법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유대교의 율법보다는 더 높은 율법 즉 율법의 완성
으로 본 것이다(마5:17-18). 이러한 높은 경지의 율법으로 유대교 보다 더 고차원적인 종교
가 기독교임을 마태는 자신들의 공동체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에게 있어
서 유대교로 부터 분리된 마태 공동체의 정체성의 확립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마9:20).
마태는 이러한 의도를 자신의 공동체에게 철저히 적용시킨다. 그리하여 자신의 공동체
가 핍박을 받았지만 이미 이들에게는 축복의 보장이 주어진다. 왜냐하면 이들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며, 예수를 위해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마5:10-12). 핍박은 이들에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두려운 것은 박해를 통해서 자신이 실천해야할 '의'를 실천
하지 못하여-숨겨두어-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일이다(마10:26-31). 그러므로 마태는 자신의
공동체가 이미 천국의 복을 받은 자들로 박해를 두려워 하지 않고 반드시 행해야할 '의'가
있는 데 그것은 산상보훈에서 나타난 가르침, 즉 '의로운 행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기독인들이 지녀야할 의무인 것이다. 이 의무를 설명하기 위해서 마태는 소금의 말씀을 수
용한다. 기독인이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소금으로서 가치를 상실할 때는 그것은 버려지고 사
람들에 의해 짓밟힌다는 것이다(마5:13).
마태는 짓밟힌다는 내용을 본문에 첨가함으로서 만약 유대교보다 높은 의를 지니지 아
니한다면 즉 정체성을 잃은 공동체가 된다면 그 공동체는 생존할 수 없음을 소금의 비유를
통해 마태는 자신의 공동체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는 Q에서 나타나는 전
적인 헌신의 개념을 핍박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실천할 수 있는 '행위의 의'의
개념으로 그리고 Q에서 나타나는 심판의 개념을 유대교로 부터 분리된 마태 공동체의 '정
체성 상실'의 결과로 수용하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금에 관한 예수의 말씀은 그 의미가 분명 제자직에 관한 것이었으나 마태
복음에서는 자신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성도들의 임무를 설명하기 위해 소금
의 말씀이 사용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나. 본문 '나'의 형성
본문 '나'는 공관복음에서 유사한 병행구를 갖는다.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5:15
막4:21
해석: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말 아래나 침상 밑에 두라고 등불이 오겠
느냐? 등경 위에 둘 것이 아니냐?
{{ J.Gnilka,Ibld,pp.227-228. }}
"
눅8:16
눅11:33
마태의 본문의 형성을 밝히는 주요 열쇠는 타문서에 나타난 비유에 관한 이중 단어다.
마가와 누가는 등불에 관한 이중 단어를 사용한다. 마가는 말( )과 침상( )이고
누가는 그릇( )과 침대( s)이며 또한 움속
{{ ,원형은 s 로서 그 의미는 hidden이다. 이것은 동사 에서 왔다. 이
동사는 마 5:15절에서 산위의 도시의 숨기움에 관한 동사로도 쓰인다 }}
과 말( )이다. 이 이중 단어가 마가와 누가가 한 가지의 전승을 공유하고 있는 가능성을 제
시한다.
이 이중단어의 전승이 도마복음서에서도 등장한다
{{ logia 33, "Preach form your housetops that which you will hear in your ear and in the
other ear. For no one lights a lamp and put it under a bushel, nor does he set it on a
lampstand so that everyone who enters and leaves will see it light"
James M. Robinson ed, The Nag Hammadi Library in
English,(san
Francisco:Haper& Row
Publishers,1981),p.122 }}
. 도마복음에는 '말'과 '숨겨진곳'이 나온다. 이것은 누가복음의 '움속'과'말'의 이중단어와 일
치한다. 이 일치성을 통해서등불에 관한 전승은 이중단어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마태가 등불에 관해 이중단어를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본인은 마태가 이중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마태는 그의 본문에서 '산'은 '등경'으로 '등불'은 '도시'로 하나의 상징이 서로 연결되게
자신의 본문을 구성했는 데-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한 주석을 하겠다.- 이 때 산은
'숨기움의 동사'를 등불은 '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마태가 등불에 관한 이중단
어 전승을 수용하고 있는 강력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등불에 관한 이중 단어의 전승은 공관
복음과 도마복음서에서도 수용되는 것으로 보아서 예수의 초기 전승으로 보여진다.
등불에 관한 전승을 누가와 마태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Q자료에도 있었을 것
으로 보여진다. 물론 Q의 전승도 이중단어의 전승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Q의 전승에 없
는 도시와 등불에 관한 비유-도시와 등불이 연결되는 것-는 마태가 다른 전승을 수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태복음 5장 14절 이하에 '산위에 있는 동네는 숨겨져 있을 수 없다.'라는 구절이 Q
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도마복음서
{{ Ibid,p.122.
Logia 32, "A city built on a high mountain and fortified cannot fall, nor can it behidden"
}}
와 Oxyrhynchus papyrus
{{ Oxy.P.I ,ssying 6. " A town built on the summit of a high mountain and fortified
cannot fall or be concealed." Hugh Montefiore,A comparison of the Parables of
the
Gospel
according to the Thomas and of the Synoptic Gospels,New Testment Studies.7,P.240.참조 }}
발견된다. 도마복음서는산위에 도시와 등불에 관한 내용이 독립된 문장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연속적으로 나온다.Oxy.P는 도시의 관한 말이 도마복음서와 병행을 이룬다.
도마복음서에서 등장하는 '지붕'의 비유는 Q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데(마
10:27,눅12:10-12), 이것은 아마도 도마가 도시와 등불의 비유사이에 지붕의 비유를 삽입한
것으로 보여진다
{{ Ibid,pp.240-241. }}
. 이러한 본문은 공관복음의 본문보다 비유들이 세련되게 결합되어져 있
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또 하나의 가정을 유도한다. 즉 도마가 수용한 전승이 세련되지 않
은 비유들의 결합 -'산위에 도시'와 '등불'-으로 이루어 져 있었다는 가정을 가능케한다.
이러한 가정은 '산위에 도시'와 '등불'의 비유에 관한 초기의 전승,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말씀으로 소급되어질 수 있는 전승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 Ibid,p.240-242. }}
등불의 말씀에 관한 공관복음의 관계에서 마태는 마가의 전승을 전적으로 따르고 있다
고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가는 문장이 의문문으로 시작되고 연결되기 때문이다.-
는 부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의문 불변사이다(이것이 가능한가? Can this be?) -
반면에 누가는 마가의 전승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첫째, 마태복음에는
없는 구절이 마가와 누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마가복음) /
(누가복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둘째, 누가복음 8장 17절과 마가복음 4장 22절이 서로 유사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째, 마가나 누가 모두가 등불에 관한 말씀을'씨뿌리는 자의 비
유' 해석뒤에 놓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누가는 마가의 전승을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
는 것으로 보여진다.
누가는 또한 마태의 전승과 그 일치성이 보여진다. - (마태복음) /
(누가복음), 동사 의 쓰임이 마태와 누가가 거의 일치한다
(본문을 비교).- 그러므로 누가는 마태와 공통적인 전승(Q)을 소유하고 있으며 마가의 전승
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약어: * J 는 예수님 말씀에 소급되어지는 초기전승이다.
* PLt는 도시와 등불이 연결된 전승이다.
* Dwt는 등불에 관한 이중단어 비유 전승이다.
* Mkt 는 마가의 본문을 형성시킨 전승자료이다.
* Th 는 도마복음서이다.
이러한 가정에서 우리는 예수말씀 원형에 가까운 전승은 산위에 도시와 이중단어를 지
닌 등불의 비유가 서로 결합되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은 예
수님의 말씀 원형에 가까운 본문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J
를 추측하건대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 본인이 제시하는 전승의 원형은 문자적인 원형이기 보다는 내용적인 원형-의미에 있서서 가
까운 원형임을 밝혀둔다. }}
누구든지 도시는 산밑에 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높은 산 위에 도시는 요새화되어서 무너질 수 없고 숨겨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말아래나 숨겨진 곳에 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등경위에 등불은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빛을 볼 수 있게 해줘야하기
때문이다.'
등불에 관한 전승의 수용은 각 복음서마다 다르다. 마가복음은 등불의 말씀을 '씨부리
는 자' 비유해석 뒤에 그리고 두 개의 천국비유 앞에 놓고 있으며 청중을 제자로 한다. 이
등불이 비유가 마가복음4:22절의 말씀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사용된 것은 자명하다.
'숨겨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라는 구절은 등불의 말씀을
통해서 더욱 강조된다. 이 말씀은 도마복음서(말씀5)와 Oxy.P에서 나타나며 심판사상과 연
관이 된다.
{{ J.Gnilka,Ibld,p.229. }}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는 것은 복음서의 메시아 비밀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여진다.
{{ Ibid,p.230. }}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비밀과 연결된다.
{{ Ibid,p.231. }}
이 비밀은 비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남을 마가는 말하고 싶었
던 것이다. 즉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가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이 십자
가의 사건과 부활로 들어날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밝히 들어날 것임을 독자에게 알
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는 잇따르는 천국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궁극적
인 계시를 본문을 통해 암시하려 했던 것이다.
{{ Ibid,p.231. }}
이 비유는 천국의 도래가 인간이 생각지도 못하는 어느 순간에 이미 도래 했음을 나타
낸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작은 부분에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가 공동체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큰 충격의 체험속
에서 하나님 나래의 도래를 열광적으로 열망하는 데에 대한 마가의 답변으로 이해된다. 즉
마가는 "과거에는 하나님의 통치(심판)는 비밀로 덮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천국의 도래-
예수로 말미암아 분명 밝혀 졌다. 이것은 언젠가는 올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생각
을 넘어선다. 마치 이것은 숨겨진 것이 당연히 드러나는 등불과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자라
나는 식물과 같이 그 과정이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겨자씨와 같이 작은 데로 임한
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묵히 이것을 기다려야 한다." 마가는 자신의 공동체에게 말하고 이렇
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가는 등불의 말씀-'등불이 오겠느냐?'라는 인격적인 표현이 그리스도와
부합된다.
{{ Ibid,p.231. Gnilka는 등불에 관한 인격적인 표현이 오직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
-을 통해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하나님의 통치)가 곧 밝혀짐을 자신의 공동체
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누가복음은 8장 17절의 시제가 미래를 나타내는 데,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에 의해서
감추어졌던 것이 장차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과 혹은 제자들이 예수로 부터 은밀히 받은
바를 널리 전파시킬 것임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 I.H.Marshall,국제성서주석,누가복음(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3,p.438. }}
이것은 15절에서 언급한 열매맺는 데대한 강조와 잘 부합이 된다.
{{ Ibid,p.438. }}
이것은 또한 베일에 가리워진 계시와 장차 공개될 계시와
연결이 된다. 즉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예수는 비밀의 메시야로 남는다. 그러나 부활이후에
예수는 제자들에 의해서 메시야(그리스도)로 밝히 선포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 등불에
관한 말씀은 예수가 잠시동안 군중들에게 숨겨진 비유로 가르치지만 언젠가 그는 그들에게
부활을 통해서, 그리고 제자들의 선포활동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선포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
이라고 볼 수 있다
{{ Ibid,p.438. }}
. 이 암시는 누가문서가 복음의 흐름(선교)을 밝히는 의도를 가지고 있
는 것과 잘 부합한다.
마가복음이 등불의 비유를 하나님의 통치(심판)와 연관시키고 누가복음이 등불의 비유
를 선교(메시야 선포)와 연관시키는 데 반하여 마태는 등불을 제자직과 연관시킨다. 이것은
소금의 말씀과 등불이 연결되기 때문이다.즉 소금은 빛에 빛은 도시에 도시는 등불에 연결
이 되고 이것은 '좋은 행실'과 연결이 된다
{{ 본문의 구조분석을 참고바람. }}
. 그러므로 마태는 등불의 비유가 마가나 누가
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오히려 마태는 소금의 사용과 빛(등불)의 사용을 동일하게 본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태공동
체의 정체성 을 회복하기 위한 제자직의 임무를 설명했다고 본인은 보는 것이다. }}
다. 본문 '다'의 형성
'다'는 마태의 편집적인 첨가다. 마태는 원래 본문 '가' 와 '나'에 대한 전승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양식에 맞게 편집을 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다.'는 마태의 편집이다.- 사실 마태는 '다'의 본문을 첨가하여 편집함으로서 소금과 빛에
의미를 밝히려 했음이 분명하다. 특히 '좋은 행실'에 관한 마태의 강조는 공동체의 정체성
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더우기 이 좋은 행실이 외부로 급히 알려
지기를 바라는-동사가 과거명령이다. 이것은 시급히 해야할 것을 나타낸다-마태의 의도가
이것을 더욱 뒷받침한다. 그러므로 본문 '다'는 본문'가'와 '나'를 분명히 해석해 주는 마
태의 편집적 첨가부분으로 마태기자 자신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