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비유연구
목 차
머릿말 ................................................................. 1
1. 비유란 무엇인가 ? ................................................... 2
1) 우화 ( Fable)...................................................... 4
2) 잠언 ( Proverb).................................................... 4
3) 우의 ( Allegory)................................................... 5
4) 직유 ( Similitude)................................................. 5
5) 은유 ( Medaphor)................................................... 5
6) 유형 혹은 동형론 ( Type or typology ).............................. 5
7) 예화 ( Illustration)............................................... 6
8) 상징 ( Symbol)..................................................... 6
9) 비유 ( Parable,parabel)............................................ 6
2. 비유의 목적 ......................................................... 6
3. 마 13장에 나타난 비유의 해석 ....................................... 9
1. 대중상대의 비유 ................................................... 10
(1) 씨부리는 비유 (13:1-23) ........................................ 10
(2) 가라지 비유 (13:24-30) ......................................... 12
(3) 겨자씨 비유 (13:31-32) ......................................... 13
(4) 누룩비유 (13:33) ............................................... 15
2. 제자들 상대의 비유 ................................................ 15
(5) 숨은보화 비유 (13:44) .......................................... 15
(6) 진주비유 (13:45-46) ............................................ 16
(7) 그물 비유 (13:47-50) ........................................... 17
(8) 서기관과 집주인 비유 (13:51-52) ................................ 17
맺는말 ................................................................. 18
참고문헌 ............................................................... 19
머리말
예수의 교훈은 방법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율법종교의 신조와 교훈에 대결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새 율법을 천명하신 것이다. 그것은 주로 산상 설교와 논쟁 설화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서술적이며 논쟁적이며 경구 (警句), 지혜, 논증으로 되어 있다. 또 하나는 비유다. 그것은 복음서 안에 있으며, 직관적 구체적인 표현을 가지며 인간의 각 가지 경험에 호소하여 공명을 일으키는 것들이다. 이 비유는 예수의 가르침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많은 수가 있으며 그 표현 형식이 이례적이기 때문에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다.
성경에는 250개가 넘는 비유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비유들은 이적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즉 이적에서는 그것을 나타내는 분의 권능과 인격을 가르쳐 주는 반면에 비유에서는 그 사역의 일반적 원칙과 영구성을 보여준다. 물론 구약이나 랍비 문학에서도 많은 비유를 찾아볼 수 있으나 역시 비유는 예수의 교훈에 있어서 독창적인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 13:34)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비유로 교훈 하는 것을 창안해 낸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 교훈에서 비유의 내용과 방법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최초일 뿐 아니라 이중적 목적에서 사용한 점도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복음서의 연구자나 예수의 교훈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비유 연구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R.C.Trench 의 비유 연구는 하나의 고전이 될 정도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비유 연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 것은 Adolf Julicher 이후의 일이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우의적 비유 해석을 부정하고 비유란 종교적, 도덕적 진리를 표현하는 매일의 생활 이야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발견은 진리의 반만 발견 한데 불과했다. 이런 점에서 C.H.Dodd의 비유 연구는 율리커 (Julicher)에서 시작한 방법론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다드는 비유를 당시의 역사적 삶의 정황(sitz - im - Leben)에서 이해함으로써 비유 연구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왔다.
그러나 다드는 그의 연구를 천국 비유에만 국한했고 더우기 천국 개념의 일부인 성취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만을 주장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Joachim Jeremias의 비유 연구이다. 그는 다드의 해석에 있어서 천국의 미래적 측면을 무시한 것을 비판하고 실현 과정에 있는 종말론(Eschatology in the Process of Realization)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아스의 비유 연구에도 문제점은 나타났다. 그것은 비유의 삶의 정황을 유대교로 본 점이다. 이것은 예수의 비유 사용의 독창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비유의 새로운 연구는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비유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해 보려고 한다. 새로운 각도의 방법이란 율리커와 다드에게서 발견된 대로 배유의 중심점을 찾아낸 뒤에 그들과는 달리 각 비유의 중요한 요소들의 의미를 연결시켜 살펴 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우의적 해석 방법에서 범하는 인본주의적 오류를 막아 줄 뿐 아니라 율리커나 다드에서처럼 비유의 풍성한 내용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본 글에서의 연구는 마태복음 13장에 국한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다.
1. 비유란 무엇인가 ?
비유 ( ՐՁՑՁՂՏՋՇ )란 말은 아레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etoric)"에 비로소 나오며 웅변의 한 방도로 사용된 비교나 비론(analogy)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이 말이 씌어질 때에는 구약 성서적 배경을 가진다. 구약 성서가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될 때 마샬(ࠌࠚࠍ ,mashal)이나 히다(ࠄࠃࠄ ,hidah)라는 낱말이 그 같이 번역되었다. "마샬"은 잠언, 수수께끼,속담,직유,비유 등으로 넓은 의미로 쓰여지던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 과 같다"(to be like)는 뜻으로 히브리 시의 특징인 대구법에 흔히 나온다. 이 같은 구약적 배경을 가지기 때문에 이 개념은 신약에 와서도 여러 가지로 나타나 일정하지 않다. 구약에서는 윤리적 교훈으로서의 잠언(잠 1:1, 왕상 4:32)은 물론 속담(삼상 10:12, 4:13), 간결한 노래(민 23:7)를 가리킬 때도 있다. 신약에서도 속담(눅 4:23), 잠언(막 3:23), 역설(막 7:17), 가르침(마 24:32)의 뜻으로도 사용되었으며, 구약에서 참으로 비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다섯 군데밖에 없다. (1) 나단의 비유(삼하 12:1-4) (2) 요압의 비유(삼하 14:6) (3)부상당한 선지자의 비유(왕상 20:39) (4) 여호와의 포도원 비유(사 5:1-7) (5)농부의 비유(사 28:24-28)가 바로 그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비유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야기식 비유(삿 9:7-15), 둘째로는 설교적 비유(사 5:1-7)로 포도원 비유를 들 수 있고, 셋째는 상징적 비유(겔 37:15-22)로써 두 막대기 비유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 ' ՐՁՑՁՂՏՋՇ '란 말이 50번 나오는데 공관복음서에 48번, 히브리서에 두번(히 9:9, 11:19) 나오고, 같은 계통의 말 ' ՐՁՑՏՉՌՉՁ '는 요한복음에 세 번(10:16, 16:25,27), 베드로전서에 한 번(2:22) 나온다. 그러나 공관복음에서는 비유를 유도할 때에 이말 이 외에 'ՏՌՏՉՏՙ'(11번)와 'ՏՌՏՉՏՒ'(17번), 또 'ՏՕՔՏՒ'(1번 눅 14:33)를 사용하기도 한다. 구약에서 "마샬"이란 말이 여러 가지 사례를 대표한 데 비하여, 복음서에서는 이 말이 주로 비교한다는 뜻을 대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 세계의 사물에 비추인 하늘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 ՐՁՑՁՂՏՋՇ '는 ' ՐՁՑՁ '와 ' ՂՁՋՋՙ '란 두 말을 결합한 것인데, 'ՐՁՑՁ'는 "줄을 따라, 옆에 가지런히" 라는 뜻이며 "어떤 계통을 따라 끼치는 영향"을 지시하며 'ՂՁՋՋՙ'는 "던지다"라는 뜻으로서 "어떤 권위적 행위"를 가리킨다. 'ՐՁՑՁՂՏՋՇ'는 어떤 것을 가지런히 던져 주어서 비교하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사용하셨으리라 생각되어지는 아람어는 "마들라" (Mathla)라는 말이었으리라고 한다. 이것도 잠언, 수수께끼, 어려운 문제, 암호의 해명 등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개념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것과 비슷한 개념들을 비교하여 성격을 밝히는 것이 좋다.
1. 우화가 있다. 이것은 헬라문학 형식으로서,호머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보이는 사물로써 보이지 않는 사실을 묘사하는 문학적 기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15)전경연, 예수의 비유, '해석학적 연구' p.5,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80.
즉 우화란 어떤 진리나 격언을 설명하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라 말한다(삿 9:8-15, 왕하 14:9). 우화의 근본 사명은 이솝(Aesopes)의 우화에서 볼 수 있듯이 외형적인으로는 비유와 유사하지만 고상한 주제를 취급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저차원적 허구로 되어 있다.
2. 잠언(Proverb)이다. 어떤 잠언을 보면 비유의 배종이 나타나지만(삼상 10:12, 시 78:2 ; 잠 1:6, 마 24:32 ; 눅 4:23) 잠언이 비유와 다른 점은 일반적으로 짧을 뿐아니라 고상한 주제에 대해 취급하지 않으며 이야기 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3. 우의 (寓意,Allegory)가 있다. 우의와 비유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의란 은유의 연장이라 볼 수 있다. 우의는 비유보다 덜 신비롭고 덜 숨겨져 있다. 직유는 유사성을 들어 비교하고 은유는 상상 혹은 회화에 의한 비교라면 우의는 암시에 의한 비교라고 할 수 있다. 우의의 특징은 언제나 과거형으로 되어 있고 미래형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4. 직유(similitude)이다. 자연 현상이나 일상 생활에서 나온 단순한 비유이다. 동사를 여러개 사용하며 대체로 현재 시형이다. "산 위에 세운 성"(마 5:14)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마 10:16), "떡을 달라면 돌을 주고 ...."(마 9:9-10), 누룩비유(마 13:33)등은 이 부류에 속한다. 직유는 단순히 유사점을 말한다. 즉 비교되는 두 사물의 일치점을 말한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사 40:6-7).
5. 은유(metaphor)이다. 간단한 주어나 객어(客語)로 되어 있든지, 두 낱말이 한 서술 동사로 연결되어 있는 짤막한 진리의 말이다. 흔히 잘 아는 사상(事象)을 교훈이나 사상(思想)에 적용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과정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이는 것으로 표현한다. 직유의 ".. 같으니"(like 혹은 as)란 단어를 쓰지 않고 비교의 뜻이 암시만 되어 있다는 점이다.
6. 유형 혹은 동형론(Type or Typology)이 있다. 그 뜻은 "도장" 또는 "도장을 누르다"란 말이다. 이스라엘 종교에서 과거에 있은 일이 후에 일어난 일과 같은 의미를 가지며 한 쪽이 다른 쪽을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가 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통일을 이루며 태초로부터 종말 때까지 직선적으로 전진한다는 신앙을 전제하며 구속사의 통일성이란 신념에서 동형론은 독특한 방법이다.
7. 예화(例話,Illustration)가 있다. 이것은 설교자나 강연자가 자기가 논증하려는 사실을 강조해 주며 그 이해를 도와줄 만한 사례를 말한다. 어떤 인물의 전기, 그 한 토막이나 과거의 경험에서 얻어진 이야기, 혹은 지어낸 이야기를 끼어 들이는 것이 예화이다.
8. 상징(symbol)이 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사물을 들어 영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로서의 예화 외에 연출한 비유가 있다. 예수께서 말로써 하시는 대신에 행동으로써 영적인 의미를 계시하신 일들을 말한다. (1)최후의 만찬 (2)예루살렘 입성 (3)무화과 나무의 저주 (4)기적들을 들 수 있다.
9. 비유(比喩,parable,parabel)이다. 이것은 알레고리처럼 모든 부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 의미를 주로 나타낸다. "자연이나 일상 생활에서 취재하여 한 영역에 타당한 것이 다른 영역에도 타당하다는 가정 아래서 어떤 영적 진리를 비추어 주려고 하여 만든 비교"라고 헌터(Hunter)는 정의한다. 비유는 늘 일반의 잘 아는 것과 잘 모르는 것, 흔히 있는 것과 진기한 것 사이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실 예수의 비유 가운데 "씨뿌리는 자의 비유"나 "겨자씨 비유" 같은 것은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 비유의 목적
교훈의 수단으로서의 비유는 많은 잇점을 가진다.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비유 사용의 이유에 대해 F.J.Dake는 그의 관주 성경에서 7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① 진리를 흥미 있는 형태로 계시해 주고 많은 흥미를 일으켜 준다(13:10-11,16).
② 새로운 진리들을 흥미를 가진 청중들에게 알려준다(13:11-12,16-17).
③ 신비한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 사물들과 비교함으로써 알게 해 준다(13:11).
④ 관심 없는 청중들에게 진리를 감추고 내심 반역케 한다(13:11-15).
⑤ 진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더하게 하고 더욱 사모케 한다(13:12)
⑥ 진리를 미워하고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빼앗는다(13:12)
⑦ 구약의 예언을 성취케 한다(13:14-17,35)
John Cumming은 주님의 비유에 대한 강화(講話)에서 예언과 이적과 비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언이란 미래에 대한 풍자화이고 이적이란 미래를 작은 현재의 규모로 미리 나타내는 것이며 비유란 거룩한 사건 위에 투명된 미래의 그림자이다.
성경 가운데서 예수님의 비유만큼 잘못 해석되는 경우도 드물다. 그것은 비유의 근본원리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비유란 전체적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비유의 각 부분은 바로 이 근본 진리를 설명하고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비유를 해석하려면 그리고 그것을 바로 적용하려면 앞뒤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고 그 중심적 교훈과 연결시켜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비유 해석에 있어서 두 가지의 극단을 피해야 한다. 즉 비유에서 너무 많은 교훈을 찾거나 너무 적은 교훈을 찾는 일이다.
이 말은 비유의 모든 부분에서 의미를 억지로 쥐어짜거나 아니면 비유를 단순히 보조적인 것으로만 봐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전자의 대표적 경우는 어거스틴의 잘못된 해석 방법을 덜 수 있는데 다드는 그 예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누가복음 10장에 나타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어떤 사람을 아담으로 보고 예루살렘은 평강의 하늘의 도시로서 아담은 여기서 떨어졌다고 했다. 여리고는 달을 뜻하고 우리의 죽어야 할 운명이라고 했다. 강도들은 마귀와 그 졸개들이고 옷을 벗겼다는 것은 아담이 영생을 상실한 것을 말하며 때렸다는 것은 그를 죄 짓도록 설복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는 사람이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에 억압되어 살고 있는 한 그의 영혼은 죽은 것이어서 거반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구약의 제사제도와 그들의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서 구원을 위해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함을 뜻한다고 했다. 사마리아인이란 보호자를 뜻함으로 주님 자신을 말하고, 상처를 싸매 준다는 것은 죄를 억제한다는 것이며 기름은 선한 소망의 위로며, 포도주는 뜨겁게 열심으로 일할 것을 권면한 것이라고 하였다. 짐승이란 예수님의 육체를 말하고 짐승에 태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신앙이라 하였다. 주막은 교회로서 나그네 인생들이 쉬어 가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튿날이란 주님의 부활 후를 뜻하고 두 데나리온은 사랑의 두 계명이거나 이 생과 오는 세상에서의 생명에 대한 약속이며 주막 주인은 사도 바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드는 이 우의적 해석 방법을 비판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비유란 그것이 단순한 직유이든 보다 세밀한 직유이든 아니면 긴 이야기이든 간에 그것은 단 하나의 점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것은 독립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반대로 우의(Allegory)는 모든 세부적인 것들이 제가끔 의미를 가진 은유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농부에게는 많은 헛된 수고가 있으므로 씨뿌린 것이 다 싹나지 않아도 만족한 것을 가르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Aola Habershon은 그의 비유연구에서 단 하나의 설명이 비유의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볼 때 비유를 바르게 다룰려면 먼저 거기서 주된 사상이나 원리적 개념을 찾은 후에 그것에 종속된 부분들을 해석한다면 우의적 해석 방법에서처럼 제멋대로의 해석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성경의 풍성한 내용을 헛되이 버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유 사용의 목적에 있어서 마태복음 13장과 평행 구절인 마가복음 4장에 보면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를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여 함이니라"(11-12)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밀 (ՌՕՓՔՇՑՉՏՍ)이란 단어인데 이것은 구약의 다니엘서에서 발견되는 용어이다. 또 신약에서는 특별히 로마서 16:25-26절에서 사용되고 있다. 비유 해석의 방법은 ①주된 한가지 진리 즉 핵심적인 진리(main-point) 가 있고 ②때로는 부수적인 의미(sub-point)도 있음을 알고 난후 비유 사용의 목적은 첫째 거절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숨기려는 의도가 있으며 둘째는 받아들이려고 하는 자에게는 더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다.
3. 마 13장에 나타난 비유의 해석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비유를 보면 처음 넷은 혼합된 대중들에게 했고 나중 넷은 제자들에게만 했다는 것이 비유 해석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놀라운 것은13:51-52절의 서기관과집주인의 비유가 Trench,Goebel,Arnot,Cummings
,Guthlie,Scofield등에 의해 고아처럼 취급된 채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7개의 비유로 취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것 같다. 하나는 8번째 비유의 뜻이 천국의 성격을 보여주는 다른 것들과 다르고, 둘째는 7이 완전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 비유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
1. 대중 상대의 비유 (13:1-33)
(1) 씨뿌리는 비유 (13:1-23)
이 비유는 모든 비유해석의 열쇠가 된다. 말하자면 지렛대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도 이 비유를 해석해 주었다. 이 비유는 가라지의 비유와 함께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relations)를 설명해 준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란 미래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머리인 현존하는 영적 공동체인 교회를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넓은 의미로서의 뜻이 있고 교회는 그 넓은 의미의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한 형태로서 일부분이다. 예수는 그의 산상보훈에서 천국에 대해 추상적으로 그리고 비인격으로 취급한데 반해서 비유에서는 천국에 대한 설명으로써 익숙히 알고 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산상보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주로 회고적인데 반해 비유에서는 거의 전부가 미래를 전망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산상보훈과 비유는 함께 연구되어지면 그 뜻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이 비유해석의 제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주제 파악에 중요한 지침이 된다. Goebel 같은 이는 제목을 "밭의 종류"(divers soils)로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그러나 Dodd는 씨뿌리는 자에 중점을 둔다. 즉 그에 의하면 이 비유는 씨 뿌리고 밭을 가는 팔레스틴의 환경속에서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농부가 많은 헛된 노동(여기서는 4분의 3)에 직면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추수가 있음을 가르치는데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활동을 강조한 것으로써 씨알의 풍성한 열매에 대한 비젼과 격려를 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헛된 수고가 따를 것을 경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비유의 풍성한 내용을 상실하고 만다. 예수의 해석에서 나타난대로 적어도 다음 세가지는 우의적(寓意的)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씨뿌리는 자와 씨알 그리고 토양의 종류는 각각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씨 뿌리는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은 달리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 볼 수도 있고(렘 31:27), 그리스도로 볼 수도 있고(마 13:37) 성령으로 보아도 큰 잘못은 없으며 심지어 모든 성도로 보아도 좋기 때문이다(마 28:19-20).
그러나 파종된 씨알은 두 가지로 묘사되고 있다. 즉 13:19절에서는 "천국 말씀"으로 누가복음 8:11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24을 보면 그리스도 자신이 씨알임을 말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씨알이란 좁게는 그리스도 자신이요, 넓게는 그리스도께서 누워계신 말구유인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이 비유해석에 열쇠가 되는 것은 토양, 즉 말씀을 듣는 자의 종류이다. 다시말하면 이 비유에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을 수용하는 여러 계층과의 관계이다.
① 길가와 같은 마음이다. 단단하고 닫혀진 마음을 가진 자를 말한다. 이 유형의 사람은 귀로 말씀을 들으나 생명이 발생하지 않는다. 씨알은 표면에 있으나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소위 영치로서 영적 감각을 상실한 굳은 심령을 뜻한다.
② 돌밭 같은 마음이다. 감정적인 사람으로서 씨알을 잘 받아 들이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씨알이 표면과 안에 있으나 밑에까지 내려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핍박을 이기지 못하는 소위 양재기 신앙을 가진 피상적 신앙의 소유자를 말한다.
③ 가시떨기 같은 마음이다. 방황하는 심령의 소유자로서 뿌리는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복잡한 마음이다. 씨알이 표면에도, 안에도,밑에도 있으나 위로 솟아나와서 열매를 못 맺는다. 편견을 가진 사람을 대표하며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용납함으로 결국 그것에 의해 질식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세상의 사업이나 생활에 대해 지나친 염려를 하고 세상의 부(富)와 쾌락에 빠진 자를 말한다.
④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다. 믿음이 확고부동할 뿐 아니라 준비된 마음을 말한다. 씨알이 표면에도, 안에도,밑에도 있을 뿐 아니라 위로 솟아나와 열매를 맺는다.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하게 되는 마음이다.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의 주된 요점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부분적인 성공이 있으며, 그 성공은 듣는 자의 반응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씨뿌리는 자와 그것을 받는 자의 특권과 그 특권을 가진 자는 그것을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고,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청취자의 비참한 운명과 어떤 역경 속에서도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자의 마지막 영광스러운 결과를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준다.
(2) 가라지 비유 (13:24-30)
가라지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었다. A. L. Williams나 이상근박사는 이 비유를 '교회 안에 들어와 사탄의 자식들과 공존해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설명했다'고 한다. 장두만 박사는 '진짜에는 사단의 모방이 따른다'고 했다. 사단의 힘으로는 진짜 신자를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모방 전략을 써서 혼돈케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는 서로 진짜와 가짜가 혼합되어 있으나 마지막 재림의 때에는 분리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이 비유는 천국의 신비를 설명해 준다. 악이 비밀리에 교회 안에서 역사하고 있으나 심판의 때에 분리될 것을 보여 준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는 씨 뿌리는 자도 하나이요 씨알도 하나이지만 네 가지 다른 결과가 나타남을 보여주고, 가라지 비유에서는 씨 뿌리는 자도 둘이요 씨알도 두 종류이며 추수도 두 가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두 씨 뿌리는 자는 누구인가 ? 하나는 인자(13:37), 즉 주인(13:24,27)이며 다른 하나는 원수요, 악한 자인 마귀(13:25,28,38,39)라고 하였다. 마귀의 간교함은 사람들이 잘 때에(13:25) 가라지를 뿌렸다는데 잘 나타난다. 따라서 밭에 씨알이 혼합된데 대해서는 종들에게 책임이 없다. 왜냐하면 밤은 잠자고 쉴 때이기 때문이다. 다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낼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씨알은 두 가지라고 했는데 좋은 씨 즉 밀과 나쁜 씨 즉 가라지를 뿌렸다고 했다. 여기서 가라지란 독보리를 말하는데 그것을 먹을 때 역겨움과 경련을 일으키며 설사가 나고 심하면 죽음을 가져온다. 그런데 모양이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예수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13:38)이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했다. 이것은 교회가 혼합된 공동체임을 가르쳐 준다.
결과는 두 가지로서 가라지는 추수 때, 즉 예수 재림 때 거두어 불에 사르는 심판을 받게 되고 좋은 씨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고 했다.
(3) 겨자씨 비유 (13:31-32)
이 비유는 다음의 누룩 비유와 같이 교회의 성장을 가르쳐 준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앞의 두 비유만 해석해 주시고 나머지의 6 가지는 그냥 두신 점이다. 특히 이 비유해석에 중요한 것은 이 비유가 우리의 세대와 관련을 가진다는 점이다.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현재 지상에서 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의 성장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의할 점은 13장의 비유 중 앞의 넷은 혼합한 일반 군중에게 말씀한 것이고 뒤의 비유 넷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했다는 것이다. 이 비유들의 특징은 앞의 네 비유는 천국의 외형적인 면, 즉 외적 성장에 대해 가르쳐 주고 뒤의 네 비유는 제자들에게 천국의 내면적인 면, 즉 내적 성숙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미비하지만 결국은 자라서 위대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한다.
먼저 겨자씨는 작은 씨이기는 하나 더 작은 씨는 오히려 난초(orchid seed)씨이다. 겨자나무는 나무라기 보다는 풀에 속하는데 빨리 자라나고 10-20자 정도로써 나무처럼 가지들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교회의 외적 성장은 겨자씨 처럼 대단히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며 크게 자란 모습처럼 왕성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준다.
공중의 새들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로 보는 자들이 있으나 성경에서 공중의 새를 흔히 마귀와 그의 부하들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2:2)인 악한 자, 마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기체(organism)로서의 교회와 조직체(organization)로서의 교회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화한 뒤에 교회는 비정상적인 외적 성장을 가져왔다. 향을 피우고 성수(聖水), 촛불,화려한 예복의 사용 및 성도의 숭배같은 것이 기독교에 소개되고 그것이 종교란 가지에 깃들이는 공중의 새들이 되어졌던 역사를 기억한다. 요컨대 교회가 성장할 때 거기에는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공중의 새들까지 깃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중의 새들이 우리의 생명의 나무에 깃들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4) 누룩비유 (13:33)
일반적으로 성경은 누룩에 대해서 악이나 죄의 표상으로 상징했다. 월부어드(Walvoord) 같은 사람은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된다고(출 12:15;레2:11, 고전5:6-8, 갈5:9) 하였다. 그러나 항상 죄나 악을 표상하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레7:13, 23:15-18).
따라서 누룩은 내적인 성장, 내면적인 성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가시적인 부풀게 하는 내면 성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여인은 무엇을 의미하느냐이다. 성경에서 여인은 ① 열국(사 47:5), ② 도시(렘 6:2) ③ 교회(갈 4:26, 계 21:1,6,17)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에는 누룩의 의미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겨진다. 여인이 좋은 의미로 쓰여졌다면 이 여인은 정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내적 성숙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음은 '가루서말'이 무엇이냐 이다. 어떤 이는 믿음, 소망, 사랑을 뜻한다고 하나 근거가 없고, Jerome은 몸, 영혼, 혹은 노아의 세 아들이라고 했으나 근거가 없으며 너무 인위적인 냄새가 날 뿐이다.
2. 제자들 상대의 비유
(5) 숨은 보화 비유 (13:44)
이 네번째 비유부터는 혼합된 일반 대중에게 말씀한것이 아니고 제자들에게만 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네 비유에서는 천국의 외형적 면을 중심으로 말했으나 이제는 제자들에게 천국의 귀중함과 천국의 내면적인 면을 보여 준다.
이 비유는 다음의 진주 비유와 함께 천국의 무한한 가치와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주는 쌍둥이 비유이다. 그러나 쌍둥이에게도 각각 다른 개성이 있듯이 이 두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뿐 아니라 두 비유는 상호 보충적이다. 물론 두 비유는 한 진리의 양면을 보여 주는데 특별히 숨은 보화 비유에서는 보화를 발견한 자의 기쁨이 강조되고 있다.
사람과 보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이 있다. Wordsworth 같은 이는 보화는 그리스도이며 그는 성경이란 밭에 묻혀 있다고 해석한다.
필자는 밭을 교회, 보화는 그리스도 또는 복음, 사람은 신자로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신자가 그 진리에 감격하고 기뻐하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주를 소득 한다고 생각된다.
이 비유의 요점은 ① 은혜의 발견, ② 그리스도를 위한 전적 헌신, ③그 은혜의 환희적 소유 등인 것이다(Clarke). 그러므로 숨은 보화의 비유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 나라는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6) 진주 비유 (13:45-46)
위의 비유에서는 보화라는 집단적 표현을 사용한 반면에 여기서는 진주라는 구체적 언급을 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진주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이다. 많은 주경학자들은 진주란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할 경우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진다. 첫째는 문맥과 조화되지 않고, 둘째는 교회적인 문제점을 제기한다. 즉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참조,롬3:11;6:23)
또 어떤이들은 진주는 교회이고 장사(merchant)는 그리스도로서 갈보리 위에서 그 값을 지불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비유가 "천국은 ... 진주와 같으니"의 형식으로 되어 있지 않고 반대로 "천국은 ... 장사와 같으니"라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보화의 비유에서는 보화를 발견했다고 했으나 여기서는 진주를 만났다고 표현한 점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우리는 이것이 우의가 아니고 비유란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생각컨데 구약 성경에는 물론이고 대제사장의 흉배에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에게는 귀한 보석으로 여겨지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진주는 이방 세계에서 귀한 보석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이 비유를 제자들이 들었을 때 그들이 놀랐을 것이다. 잘 아는 대로 진주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산물로써 조개의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는 보석이다. 대단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그것은 교회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비유는 이 세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주는 장사가 소유하려고 사는 것은 아니고 동양의 관습대로 왕이신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이다.
(7) 그물 비유 (13:47-50)
이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유사한 것으로서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가 섞여 있으나 마지막 심판 때에는 분리될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가라지는 긴 세월 동안 이뤄지는 비유라면 그물 비유는 마지막때 순간의 비유이다. 그물 비유의 강조점은 어떻게 그물을 사용하여 고기를 잡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끝"(49절)에 있을 의인과 악인을 갈라놓는 대심판에 있다.
여기서 그물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인 복음 전파와 목회의 사역을 뜻하고 바다는 타락한 전 인류를 말하며 어부는 그리스도와 그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
(8) 서기관과 집주인 비유 (13:51-52)
위에서 언급 한대로 이 비유는 많은 주경학자들에게 관심 밖의 내용이었다. 물론 이 비유는 위의 일곱비유처럼 천국에 관한 진리를 직접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이상의 일곱 비유를 모두 깨달았느냐고 질문하신 뒤에 그렇다고 하자 이 비유를 가르쳐 준 것이다. 특이한 점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많은 대조를 이룬다. 즉 첫째 비유에서는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이느냐를 말해 주는데 반해 여덟째 비유에서는 어떻게 말씀을 전달해 주느냐를 말하고 있다. 또 첫째 비유에서는 "서기관" 즉 교사를 뜻하고 있다. 또 첫째 비유에서는 말씀을 깨닫고 열매맺는 것을 강조 한데 반해서 여덟째 비유에서는 말씀을 잘 간직하여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강조해 준다.
여기서 새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리 즉 복음이요 옛것은 구약 즉 율법으로 보는 것은 문맥상 문제가 없으나 근거가 희박하다. 이 비유의 요점은 영적인 분별력에 대한 설명이다.
맺 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다드의 학문적 해석 방법과 트렌치등의 복음적 해석 방법을 종합한 새로운 방법으로, 그리고 장두만 박사의 비유해석의 방법을 따라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8개의 비유를 해석해 보았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연구와 신학적 연구를 아울러 곁들이지 못한 듯 하여 아쉽다. 하지만 발견된 중요한 사실은 비유로 주로 천국 교훈을 위해 말씀한 것이다. 다드처럼 거기에만 국한해서도 안되며 그렇다고 우의적 해석에서처럼 일반적 교훈으로 해석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또한 한 단어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앞 뒤 문맥을 통해 그 뜻을 선택적으로 사용해야 함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비유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한걸음 진보한 사실을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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