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마태복음은 어떤 책인가 1

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4

3.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8

4. 예수님의 성탄과 신앙고백 11

5.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 메시야 15

6.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의 어린 시절 19

7. 세례 요한에게 배우자 23

8.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백성들과 불순종하는 백성들 27 9. 물세례와 성령세례 31

10.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 35

11. 사역을 시작하시는 예수님 40

12. 산상수훈 44

1. 마태복음은 어떤 책인가

찬 송 / 184, 84

본 문 / 마태복음 16:16

학습목표 / 마태복음이 어떤 책인지 잘 알게 하여 공부

에 대한 의욕을 갖게 한다.

오늘부터 4복음서 중 첫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을 오빈교회 학생 여러분들과 공부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은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가지 모든 교회에 많은 영향과 은혜를 주었으며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해주었던 귀중한 책입니다.

이제 마태복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태복음의 개요

마태복음서는 헬라어 성경에 'ՊՁՔՁ ՌՁՔՁՉՏՍ - 카타 마타이온' (마태에 의한)이라는 표제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전체 28장, 1060구절로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 책에서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구약성경을 무려 65회나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였습니다. 또 '하늘 나라'라는 말이 33회,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4회 나옵니다. 이것은 이 책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는 책임을 말해줍니다. 그 외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뜻으로 '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이 9회 나오며 '교회'라는 말도 2회 나옵니다.

또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유명한 6개의 설교가 실려 있습니다. 이를 '6대 강화'라고 부릅니다.

'6대 강화'를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① 5- 7장 : 산상수훈

② 10장 : 12제자들에 대한 교훈

③ 13장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7가지 비유

④ 18장 : 자기 비하, 용서, 실족케 하는 자에 대한

교훈

⑤ 23장 : 외식자들에 대한 책망

⑥ 24-25장 : 감람산 강화(예수님의 종말론)입니다.

2. 마태복음의 저자와 기록 연대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입니다(마9:9-11, 10:3). 마태의 본명은 레위이며(막2:14) 부친은 알패오입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으나 예수님께서 부르사 "나를 좇으라"하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름으로써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마9:9). 그후 12사도 중의 하나가 되었고(마10:3) 본 서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마태사도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때는 학자들마다 견해 차이가 있으나 주후 60년대에 저술되었다는 이론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견해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3. 마태복음의 기록목적

마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첫째,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는 곧 이스라엘의 왕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압제를 당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마태사도는 마태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9:27을 보면, 소경들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증거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12:23에는 무리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었던 가나안 여인까지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마15:21,22)"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2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이와 같이 외쳤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마태사도는 마태복음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야이심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마태복음 곳곳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마3:17을 보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17:5을 보면,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으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마16:16에서 예수님께 대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입을 통해서도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만하더라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나이까 하더니(마8:28-29)"라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마태복음 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마태복음을 읽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심을 믿고 구원받게 하고자 쓴 책입니다. 이 마태복음을 공부함으로써 예수님께 대한 우리 자신의 신앙 고백이 확고해져야 하겠습니다.

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찬 송 / 182

본 문 / 마태복음 1:1

학습목표 / 메시야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살펴 봄으로

써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이심을 확신하게 한

다.

본문의 말씀에서 마태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다윗이 메시야와 연관된 약속을 받은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다윗의 자손

먼저 마태 사도가 왜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표현하였는가에 대해 성경적 근거를 살펴 보겠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족보상에서 중요한 인물일 뿐 아니라(마1:6,17) 마태복음서 전체에 걸쳐 여러번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삼하7:12-13을 보면,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고 함께 잘 때에 네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다윗의 몸에서 날 자식은 솔로몬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합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그 나라가 영원하지 아니하고 그 아들 르호보암 때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하였고 B.C. 587년에 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며 하나님께서 그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9:6-7을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한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할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오실 것임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또 사11:1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고, 사11:10을 보면, "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들 역시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임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새"는 다윗 왕의 부친입니다.

이러한 예언 말씀들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을 메시야로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은 유대 지파로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마태 사도는 그의 복음서에 기록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자손

이번에는 마태 사도가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증거하신 말씀을 살펴 봅니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다윗보다 훨씬 먼저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창12:7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라고 하였습니다. 창13:15을 보면,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시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나안 땅은 영원히 누릴 유업이라고 하였는데, 곧 천국을 가리켜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지금 가나안 땅에서 영원한 유업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씀들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21:12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의 후손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씨라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이 아니고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사실입니다. 창22:18을 보면,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천하만민으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를 가리켜 말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갈3:16을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마태 사도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자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예언된 바 메시야이심을 알고 믿게 하고자 마태복음을 기록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메시야 곧 우리의 구주이심을 확실히 믿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찬 송 / 183

본 문 / 마태복음 1:2-17

학습목표 /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봄으로써 예수님께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주도 되심

을 확신하게 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적 족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족보를 나열한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가문이든지 족보를 매우 중요시 합니다. 왜냐하면 족보에는 그 민족이나 그 가문의 내력이 그대로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가문의 명예를 훼손시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넣으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도 가문과 족보를 중요시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우월감 때문에 이방인들을 짐승같이 여기고 괄시하면서 상종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족보에 이방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옛날에는 여자의 이름을 족보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태 사도는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자의 이름을, 그것도 올려지기에 합당치 않은 이방 출신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네 여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라합, 룻, 다말, 밧세바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방 여자들이었습니다.

라합은 가나안 족속 중 여리고 성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그가 보낸 정탐꾼들을 도와준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기생이었습니다. 그후 그는 정탐꾼 중의 한 명이었던 유대 지파 사람 살몬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기생으로써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흉년을 피해서 모압으로 이주한 베들레헴 출신 유대 지파 사람 엘리멜렉의 처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 말론은 죽음으로써 일찍 과부가 되어 시모를 효성으로 봉양하던 중 시모 나오미를 따라 유대 땅으로 귀화하였습니다. 그후 남편의 친족 보아스에게 개가하여 오벳 곧 다윗의 조부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방 여인으로서 룻의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으로서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아들들이 차례로 아들이 없이 죽자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시부 유다를 속여 동침하여 쌍둥이 베레스(다윗의 10대조)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마태 사도는 이 내력을 가감없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한 것입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충성된 장수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인데, 다윗이 그를 취하여 솔로몬을 낳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순수해야할 메시야의 족보 안에 마태 사도가 이 여인들의 이름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중요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마28:28-20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 행2:28-39을 보면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유대 민족들만의 메시야가 아니시고 이방 모든 족속들의 메시야도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는 생명얻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이처럼 마태 사도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야도 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예수님의 족보 안에 위 네 여인의 이름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보내셨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곧 우리 자신의 메시야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Ꞩ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4. 예수님의 성탄과 신앙고백


찬 송 / 144

본 문 / 마태복음 1:18-25

학습목표 /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

리아에게 나시고, 우리의 속죄주가 되시며,

임마누엘 축복을 주시는 메시야이심을 알게

한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믿어야 할 세가지 신앙 고백적 내용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신앙고백하고 있습니까? 각자 진지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십시다. 이 시간 우리는 본문을 중심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알고 신앙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18절과 25절을 보겠습니다. 18절을 보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또 25절에는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 잉태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 18절, 20절 후반에도 각각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하였고,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증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성령에 의해 잉태된 분이심을 확실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성령잉태 사실은 예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위한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해 죄없는 순수한 인간으로 태어나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위대한 성현이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희생제물이 되어 주겠다고 선언하고 죽었다면 그 사람의 죽음이 다른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서 원죄 곧 죄악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결코 희생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과 육에 죄악성이 전혀 없으신 순결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만이 유일한 속죄제물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이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신 흠 없는 메시야이심을 확실히 신앙고백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속죄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곧 속죄주이시라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속죄주가 되심은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 뿐만 아니라 부활하셔서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사 희생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사 우리를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백성들에게 공급하고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대언하여 용서받게 함으로써 모든 죄 문제를 해결 받게 하는 역할을 하시는 분입니다. 부활하사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속죄주로서 지금도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특히 참회기도 드리는 것은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속죄주이심을 믿고, 믿는 바대로 철저히 참회생활 해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열심히 회개생활하는 것이 예수님을 속죄주로 신앙고백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하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임마누엘 축복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은 처음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성령을 선물로 받은 상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신앙을 포기하고 타락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타락할 가능성이 있거나 지금도 마음과 행실로 범죄하는 사람은 아직 임마누엘의 축복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우리의 영 안에 합일되시는 상태를 말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날 때부터 원죄 즉 죄악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사람들은 그 죄악성의 지배를 받아 수많은 죄를 범하게 됩니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속죄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악성의 뿌리까지 뽑아지는 영적할례, 곧 마음의 할례를 받은 후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생명 곧 성령께서 성도들의 영 안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임마누엘 축복은 오직 예수님의 속죄은총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죄 문제를 해결받고 생명을 얻어 영생하는 임마누엘 축복 주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신앙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임마누엘 축복을 향해서 목표있는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속죄주요 부활하사 영원하신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임마누엘 축복을 주시는 메시야이심을 확실히 신앙고백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 메시야



찬 송 / 167

본 문 / 마태복음 2:1-12

학습목표 /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

라엘의 왕이시고 메시야이심을 증거한다.

오늘 본문은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축하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먼 길을 찾아 나섰던 동방박사들에 대한 아름다운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니, 유대 헤롯 왕 때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기 위해 유대 땅으로 찾아왔던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박사는 세 분이었다고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6세기 말 경에 이르러 밝혀지게 되었는데 말콘, 발사살, 가스퍼라고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전승과 여러 문헌에 의하면, 이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들이었고, 당대에 뛰어난 학식을 가진 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유대 땅에 오게 된 것은, 신기한 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별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음을 알려주는 별이었는데, 동방박사들은 12월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출현한 신기하고 이상한 광채를 띤 새 별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별은 천체도에는 알려지지 않은 새 별이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그 별을 발견한 후 침식을 잊고 연구에 몰두한 결과 이들은 그 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별의 이름은 '메시야'였고, 새로운 왕 즉 메시야가 이 땅에 탄생하셨음을 나타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 그 별을 따라서 메시야가 나신 곳을 향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가서 메시야께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과 뜨거운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수 개월 동안 별을 따라 찾아 오던 중에 이들은 우연히 만나게 되어 함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서로 언어가 달랐으나 서로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었으며 서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이들은 만나게 되었고, 함께 새 별이 인도하는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찾아 간 곳이 바로 유대 땅이었습니다.

그 유대 땅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즉시 유대 도성으로 찾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야인 왕은 당연히 도성 예루살렘에서 나실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후, 별을 보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이미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많은 시간이 지난 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성에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물어 미가서 5:2에 예언된 메시야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메시야를 찾으면 헤롯 자신에게 알려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에 따라 베들레헴에 올라간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그 곳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베들레헴의 한 여관에서 묵고 있을 때였습니다.

9절을 보면,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사라졌던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지 않고 예루살렘 성을 향하는 순간 그 별이 사라졌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새 별은 예수님께서 계시로 베들레헴으로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는 별이었지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는 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 성을 나와 다시 베들레헴으로 향하자 그 별은 즉시 나타나 다시금 인도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별을 보고 세 사람은 무척 기뻐하는 가운데 그 별이 머물러 있는 곳 즉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곧바로 예수님이 머물고 계시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 수개월 동안 고초를 겪으면서 찾아온 '메시아, 왕'을 뵈옵고자 그들은 큰 기쁨과 경외심을 가지고 들어 갔습니다.

11절을 보면, 그 곳에는 아기 예수님께서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엎드려 경배하고 하인들에게 지시하여 가져온 예물을 아기 예수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것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습니다.

황금은 임금이 차지하시기에 합당한 '왕권을 의미하는 선물이었으며,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하는 선물이었습니다. 또 몰약은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죽음의 쓰라림을 경험하실 때 거룩한 육체가 썩지 않고 부활하실 때까지 보존하도록 하는 우리의 속죄주가 되실 예수님의 수난을 의미하는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께서 꿈에 지시하신 대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해서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12절).

이상에서 우리는 몇 가지 귀중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은 미5:2에 나타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네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말씀하신 대로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 2-3절을 보면,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말하였을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크게 소동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야 탄생에 대한 복된 소식을 전한 동방박사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사람 중에 아무도 베들레헴을 향해 달려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에 그 당시 진정으로 메시야를 기다려야 할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그 먼 곳에서도 메시야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초림하신 예수님에 대해 예루살렘 사람들과 대부분 유대인들은 큰 관심이 없었고 대망하거나 대비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시대에 다른 모든 사람은 관심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동방박사들을 본받아 재림하실 예수님을 대망하고 대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동방박사들이 그 먼 거리를 쉬지 않고 찾아와 아기 메시야에게 소중한 보배합을 열어 그 귀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경배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 헌신하여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섬기시고 우리의 욕심대로 축복해 주시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방박사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 주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늘 우리의 정성과 뜻과 성품과 힘과 목숨을 다 바쳐 주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6.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의 어린 시절



찬 송 / 210, 133

본 문 / 마태복음 2:13-23

학습목표 / 예수님의 모든 일생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성취된 것임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을 배운다.

예수님의 모든 일생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어린 시절,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 사건들은 모두 구약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천사가 요셉에게 애굽으로 피신할 것을 계시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헤롯의 칼날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자 속은 줄을 알고 분개하였습니다. 이에 헤롯은 동방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표준하여 베들레헴 지역의 아이들 중 2살 이하의 어린이를 죽이는 엄청난 유아 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유아 학살에서 예수님을 보호하시기 위해 애굽으로 피난시키신 것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지내던 중 천사의 계시가 요셉의 꿈에 또 나타났습니다. 이제 아이를 찾던 헤롯이 죽었으니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 지역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통치하므로 그곳에 가기를 두려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 못지않게 아켈라오도 잔인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꿈에 지시 받은대로 그들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 즉 애굽으로의 피신, 유아 학살, 주님께서 나사렛 사람으로 성장하시는 내용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두 구약에 예언된 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중심으로 어떻게 구약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애굽으로 피신한 예수님의 가족이 유대 땅으로 돌아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을 애굽으로 피신시킨 것은 평범하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당시 애굽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헤롯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순하게 헤롯의 유아학살이 있기 전에 그 손길이 닿지 않는 애굽으로 예수님을 피신하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의 계시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든 행적이 예언된 말씀대로 성취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온 것은 구약성경 호세아 11:1에 예언된 말씀을 응하게 하신 것입니다. 호세아 11:1을 보면,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2. 헤롯의 잔악한 유아 학살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자신에게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헤롯은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헤롯은 베들레헴의 모든 어린아이들 중 동방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2세 이하의 어린이는 모두 죽일 것을 명했습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광포한 명령이었습니다. 이런 잔인한 헤롯의 유아 학살 사건에 대해서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31:15을 보겠습니다.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고 했습니다.

라마는 베냐민 족속의 고을이며(수18:25) 예루살렘 북쪽 5마일 지점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 이곳을 통과했습니다. B.C. 587년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느부갓네살왕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에 의해 인질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외에 병든 자나 불구자 그리고 노약자는 이스라엘 땅에 내버리고 갔습니다(참조 왕하25:8-25). 이 라마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의 청년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이 생이별하던 장소였습니다. 이 부근에 라헬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의 모친으로 야곱에게 가장 총애 받던 아내였습니다. 라헬은 벧엘에서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내려가는 도중 베냐민 지경 셀사 곧 라마 근처에서 베냐민을 낳다가 운명하였고 거기에서 장사되었습니다(삼상10:2, 창35:16-19). 예레미야 35:15은 이스라엘 자녀들이 포로로 끌고 가는 것을 보며 통곡하는데, 마치 라헬이 무덤 속에서 포로가 된 자손들 즉 라헬의 자식들을 잃고 애곡하며 그 눈 앞에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있는 것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라헬의 자식들로 표현한 이유는 라헬을 유대인의 전형적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라마와 인접한 베들레헴에서 장차 이루어질 유아 학살 사건으로 인하여 어머니들이 통곡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마태 사도는 이런 라마라는 지역과 라헬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킨 예레미야서의 예언이 헤롯의 유아 학살 사건으로 성취되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3. 나사렛 사람, 예수님

헤롯은 그의 나이 70세로 유대 땅을 통치한지 38년 만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헤롯이 죽자 천사는 애굽에서 생활하던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기를 "이제 어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던 자들이 다 죽었으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직도 두려웠습니다. 헤롯은 죽었지만 헤롯 못지 않게 포악한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 땅을 여전히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자 천사는 다시 꿈에 나타나 요셉과 마리아의 본향(눅1:26) 나사렛 지역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해서 나사렛에서 성장하게된 것입니다. 요셉이 나사렛으로 내려와 살게 됨으로써 선지자가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는다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상에서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신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신 것이나 유아 학살의 고통을 베들레헴 사람들이 받게 되는 모든 것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에 대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성경의 계시된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를 비롯하여 십자가의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지냄, 부활, 승천은 모두 메시야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참고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 말씀을 이루기 위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며 사셨습니다. 우리도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말씀대로 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밝은 빛과 진리를 따라 살아야겠습니다.

7. 세례 요한에게 배우자



찬 송 / 337, 167

본 문 / 마태복음 3:1-4

학습목표 / 초림하시는 예수님을 준비했던 세례요한을

본받아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준비하게 한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초림하시는 예수님 곧 메시야를 영접하도록 준비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교회시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신앙의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자세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초림하시는 예수님을 대비했던 세례요한에게 배우도록 합시다.

본문 1절을 보면, "그때에"는 세례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때를 말합니다. 이때는 세례요한과 6개월 차이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30대 가까운 청년이 되신 시기입니다. 이때부터 이사야 40:3의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는 말씀이 세례요한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초림하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준비하였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모범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1. 세례요한은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본문 3절에서 세례요한은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상관없이, 사람들이 환영하든지 핍박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백성들로 하여금 초림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아모스 3:7-8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이 계시된 종말에 대한 징조들이 우리의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이 대단히 임박한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에스겔 39:28-29에 예언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회시대가 끝나고 대환난에 들어가서 구원받도록 가나안 고토로 귀환하는 것을 볼 때, 요한계시록 13:1에 계시된 바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재생 로마제국이 한 나라로 뭉쳐져 가는 것을 볼 때, 또 마태복음 24:14에 주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방송 전파 매체를 통해 복음이 세상 곳곳에 전파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7년 대환난 그리고 지상재림이 가까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담대하게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선포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2. 세례요한은 백성들에게 주의 길을 예비케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본문 3절의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첩경은 지름길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길을 평탄하게 걸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이 행차 전에 신하들이 길을 닦아 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오시는 지름길을 평탄케 하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백성들의 심령 가운데 예수님을 모셔 드리기 위한 길을 가리켜 말합니다. 즉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데 걸림이 되지 않도록 평탄케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는 데 걸림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곧 메시야를 영접하는 것은 회개하여 정결해지고 겸손한 마음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14에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고, 사도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5:23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영접해야할 우리도 열심히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여 정결해진 마음으로만 예수님을 맞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재림하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회개할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거침돌이 되는 죄가 무엇인지 밝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 죄를 회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3. 세례 요한은 철저한 청빈과 절제생활을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철저한 청빈과 절제 생활을 하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초림하신 메시야를 맞이하고자 대비하는 세례요한의 삶은 이러하였습니다. 청빈과 절제의 삶을 모범보이면서 세례요한은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하도록 담대히 외친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의 삶을 주목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처럼 재림하실 메시야를 대망하고 대비해야 하는 우리도 청빈과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14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서 13:14에서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듯이 절제하는 생활이야말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러한 삶은 한 마디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않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요한을 본받아 철저한 청빈과 절제하는 생활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세례요한은 초림하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망하고 대비하였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머지않아 재림하실 예수님을 대망하면서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하고 철저한 참회생활과 청빈 및 절제생활을 힘쓰면서 예수님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8.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백성들과 불순종 하는 백성들



찬 송 / 187, 293

본 문 / 마태복음 3:5-12

학습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백성들과 불순종

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순종하는

백성들이 되도록 결단하게 한다. 그리고 성

령세례 곧 영적 할례은총을 받기까지 철저

한 참회생활을 힘쓰도록 권면한다.

앞에서 공부한 것처럼 세례 요한의 사명은 메시야보다 앞서 가서 그의 행차하실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마3:3).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함으로써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하게 하는 것이 세례 요한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대로 백성들에게 용감하게 회개를 촉구하는 모습과 백성들의 반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회개하라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 대하여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순종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 (5-6절)

세례 요한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은 천국이 가까왔으므로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5-6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백성들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온 백성들"로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받은 세례는 물세례였습니다. 이 물세례는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표로 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베풀면서 메시야를 증거하였습니다. 11절을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소개한 메시야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 요한을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백성들은 메시야를 믿고 구원받았으나 불순종한 백성들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서 메시야를 맞이 할 준비를 한 것처럼 오늘날 재림하실 예수님을 대망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 우리들도 철저한 참회생활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21을 보면, 주님께서 이와 같이 교훈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성도들이 들어가 영생하는 나라이므로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힘써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백성들 (7-12절)

7-10절을 보면, 세례 요한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에게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세례 요한이 잘못된 사람인지 아닌지 여부를 조사하러 온 이단사이비대책위원들과 같은 사람들로서 예루살렘 공회에서 파송된 사람들이었습니다(요1:19-28).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보다 조사하러 온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독사 곧 마귀가 그들을 낳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속에 뿌리 박혀 있는 마귀의 성질 곧 죄악성이 마귀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증거한 메시야 예수님을 믿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 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결국은 이러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경고하였습니다.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10절에 기록된 좋은 열매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은 알곡이 되어 주님께서 추수하실 때 천국 곡간에 들어갈 것입니다(12절).

그리고 9절 후반부를 보면,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무리들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게 하실 수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돌멩이만도 못하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쭉정이가 되어 지옥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12절).

10절에서 재차 경고하고 있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있어서 좋은 열매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1-12절에는 세례 요한이 메시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야는 참으로 존귀하신 분이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며 장차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심판주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함은 죄사함 얻는 회개의 물세례를 받은 성도들에게 불로서 죄악성을 제거하는 은혜 곧 영적할례은총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고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특히 성령세례 즉 영적할례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사모하며 회개생활을 힘씀으로써 익은 열매 곧 알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9. 물세례와 성령세례



찬 송 / 186, 187

본 문 / 마태복음 3:13-17

학습목표 / 물세례와 성령세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

도록 하여 성도가 회개의 물세례를 받은 후

에 성령세례 받게 됨을 알게 한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오히려 주님께 세례 받아야 할 자라면서 주님께 세례 베풀기를 어려워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자신이 세례 받으시는 일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 곧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세례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내려 머리 위에 임하였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이 광경을 목도하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요1:33-34을 보면,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 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는 물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으로 세례 받으신 것과 같은 경험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죄인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신 주님께서 물세례 후에 성령세례 받으신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구원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거룩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곧 성도들이 회개의 물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에 이르게 됨을 예수님께서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물세례와 성령세례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1. 성도는 먼저 물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물세례는 세례 요한이 말한 대로 회개의 물세례입니다. 마3:11을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라고 하였고, 마3:6을 보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들을 볼 때 물세례는 회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물세례는 죄용서를 상징합니다.

물세례는 성도가 구원받은 후 교회에서 세례 예식을 거행하는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됩니다. 물세례는 성도가 구원받은 후부터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아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물세례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고 성도가 모든 죄를 용서받아 정결케 되기까지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도가 구원받은 후 광야 연단과정을 통과하면서 정욕과 죄악성의 지배를 받아 더러워진 마음과 행실이 온전히 정결케 될 때까지 물세례 곧 죄용서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물세례 곧 모든 죄를 용서받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은총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속죄은총 즉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사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하나님 보좌 위에 한번 뿌리심으로써 예비된 사죄은총을 의지하여 철저히 회개할 때 죄용서 곧 물세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정욕과 죄악성의 지배를 받아 더러워진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하기 위해 철저히 회개하면서 물세례를 지속적으로 받아나가야 합니다.

2. 성도는 물세례 다음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세례는 성도가 처음 구원 받았을 때 성령께서 마음에 들어오시는 것과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성령세례는 성도가 광야 연단과정을 다 마치고 영적할례 곧 마음의 할례(롬2:29)를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명 곧 성령께서 성도의 영 안에 내주합일 되는 경험을 말합니다.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은총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에 일곱번 피 뿌려 예비하신 영적할례은총을 힘입어 성도는 성령세례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광야연단 과정을 통과하면서 모든 죄를 용서받아 정결케 되는 물세례를 받은 다음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요3:3, 5을 보면,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물로 거듭나는 것 곧 물세례는 성도가 마음과 행실의 모든 죄를 용서받아 정결케 되는 경험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성령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가리켜 말합니다. 성도는 반드시 물세례를 다 받아야만 성령세례를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목표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에 두어야 합니다. 물세례 곧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영적할례 받을 때까지 성도들은 믿음의 경주를 다해야 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물세례와 성령세례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광야 연단과정을 통과하면서 죄용서를 뜻하는 회개의 물세례를 받아 마음과 행실이 정결케 된 후 영적할례은총을 받아 생명으로 거듭나는 경험 곧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세례를 신앙의 목표로 삼고 광야 연단과정을 지나는 동안 죄 용서함의 물세례를 받아 정결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은총을 힘입어 참회생활을 힘쓰는 것입니다.










10.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



찬 송 / 393

본 문 / 마태복음 4:1-11

학습목표 /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을 본받아 살고자 하

는 결단을 갖게 한다.

본문을 보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광야로 이끌려 나가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40일 금식이 끝난 후에는 마귀에게 세 차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40일 금식을 마치신 예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았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상태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졌으나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당하신 세 차례의 시험은 무엇이며, 예수님은 어떻게 이기셨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시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마귀가 유혹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불순종하고 마귀의 요구를 순종하여 범죄케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1. 육신의 정욕을 이기셨습니다(3-4절).

마귀는 40일 금식으로 주리신 예수님께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간교하게 미혹을 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이 돌들이 떡이 되도록 하나님의 아들답게 능력을 행하여 보라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어 주겠다는 식으로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고 주님 자신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일과 마귀에게 인정을 받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남용해 보라고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법을 행하도록 미혹한 것입니다. 마7:21-23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다 불법을 행하는 것이며 주님께 버림받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실 목적으로 오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에게 마귀는 주님 자신의 명예욕과 식욕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해 보라고,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어 주겠다는 간교한 미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40년 동안 광야를 걷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에 지배받아 먹고 마시고 입는 세상의 썩어질 일에 얽매여 살도록 유혹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이기신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신8:3의 말씀을 암기해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셔 사셨으므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심으로 마귀에게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능력이나 모든 것을 마귀를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범죄하도록 유혹하는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2. 이생의 자랑을 극복하셨습니다(5-7절).

이번에는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시91:11-12)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공명심이나 명예심,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자랑하게 유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뛰어 내리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대단한 사람이구나,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해 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받아서 전도 사역하는 것이 순조롭지 않겠느냐!" 이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인간적이며 마귀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간교하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하는 것입니다. 명분은 그럴듯하게 하나님을 위한다고 내세우면서 그 본심에는 자기의 정욕인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려는 간교함이 섞여 있는 봉사활동이나 교회사업, 선교사업에 눈이 어두워 있지 않는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험에 대해 주님은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신6:16)고 하시면서 물리치셨습니다. 자기의 정욕을 만족시키고 정당화하며 자기 자신의 자랑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단자들이 성경을 인용해서 자기를 신격화하는 것 역시 성경을 악용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고 마귀의 미혹에 진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내가 이렇게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받아 주시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인정해 주겠지!'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이생의 자랑을 자극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궤계를 이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안목의 정욕을 이기셨습니다(8-10절).

이번에는 마귀가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천하만국은 예수님이 복음을 전도할 세상을 가리며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천하만국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시고 만국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한 번만 경배하면 그것을 다 이루어 주겠다고 유혹한 것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한 번만 하면 된다는 요구였습니다. 그저 절을 한 번만 하면 모든 것이 형통케 된다는 유혹이었습니다.

이러한 유혹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내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지니라."(신6:13)는 말씀을 인용하여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셨느니라"고 하시면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안목의 정욕을 인하여 당하는 시험을 동일하게 당하시고 우리에게 승리하시는 모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귀의 미혹은 우리의 성실한 수고와 노력과 진실한 인내를 시험합니다. 마귀는 수고나 노력, 인내 없이 얻어지는 한탕주의, 일확천금을 바라는 요행심리를 자극하면서 안목의 정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도박으로 돈을 벌고자 하고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 등은 모두 마귀의 유혹을 받아 정욕에 빠져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안목의 정욕을 유혹하여 우상숭배하도록 유혹하는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이겨야 하겠습니다

(11절).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당하는 시험들,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의 지배를 받아 당하게 되는 시험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이기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 진리로 무장되셨고 말씀대로 철저하게 생활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면서 사는 빛된 삶으로 마귀의 유혹을 이겨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우리의 행실 속에 숨어 있는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생활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시험들을 이미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시험 중에 당하는 고통을 이해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고 어떠한 시험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만을 위하고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만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11. 사역을 시작하시는 예수님



찬 송 / 318

본 문 / 마태복음 4:12-25

학습목표 / 예수님의 사역의 초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신앙생활의 바른 결단을 하게 한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사역을 처음 시작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 공생애 사역의 시작(12-17절)

1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셨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하도록 선포하던 세례 요한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자 주님께서 등장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예고편이 끝나고 본편이 시작되는 이치입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여 사셨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눅4:14-31을 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세례 요한이 체포된 후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갈릴리 사방에 다니시며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다가 고향 나사렛에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으나 나사렛 주민들이 분이 가득하여 주님을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태연히 분노한 무리들 가운데를 지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게네사렛 땅에서 조금 북쪽이고 갈릴리 호수 북서쪽 해변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어업이 번창하였고 상업 활동이 많이 이루어졌으므로 세관이 있었습니다(마9:9). 베드로의 집도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마8:14, 막1:29, 2:1).

그러나 마태의 관심은 가버나움의 위치가 옛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곳에 가셔서 사셨다는 것은 사9:1-2 예언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9:1-2을 보면,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신 때부터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눅5:32을 보면, 주님은 죄인들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회개는 어두움 가운데서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두움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주님은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죄인들에게 돌이켜 회개하고 천국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동안 모든 사역의 목적이 이것이었습니다.

2. 첫 제자를 선택하심(18-22절)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야고보와 요한 역시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하던 일을 중단하고 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좇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뒤를 따르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뒤 곧 주님의 발자취를 뒤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도들과 같이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의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따라가야만 합니다.

눅14:33을 보면,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은 순간 순간 모든 소유를 버리는 삶입니다. 그것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을 따르고 본받기 위해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용감하게 못박은(갈5:24) 사도들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의 사역(23-25절)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각 회당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역하시는 모습이 눅8:1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역의 초점은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 곧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널리 퍼져 갈릴리와 그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심의 이적은 즉각적으로 행하여졌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병을 고치시고 약한 것을 고쳐 주신 목적은 백성으로 하여 예수님을 믿고 천국 들어가게 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여 죄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신앙생활의 목적을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님과 같은 복음 증거자를 만드시고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소유를 용감하게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주님을 따르고 섬겨야 합니다.

12. 산상수훈



찬 송 / 241, 493

본 문 / 마태복음 5:1-2

학습목표 / 마5-7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의 개요를 설명하면서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일깨워 준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산상수훈이란 이름은 마5:1-2의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라사대"라는 말씀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쳐 주신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안에 있는 6대 강화 중 첫 번째 강화입니다. 산상수훈은 주님을 따르는 백성들이 마땅히 지켜 행하여야 할 밝은 빛과 진리의 말씀들입니다.

산상수훈을 하나로 묶어 주는 주제는 천국입니다. 주님의 모든 행적과 교훈은 죄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산상수훈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5:3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였고, 마5:10을 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마5:12에도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하였고, 마5:19-20에도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5:20에서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5:16, 45, 48, 6:1, 9, 14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을 주목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마6:20을 보면,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였습니다. 마7:21을 보면,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산상수훈은 우리에게 천국 가는 길을 제시해 주는 밝은 빛과 진리의 말씀들입니다.

산상수훈의 내용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5장

5장에서는 제일 먼저 팔단진복을 설명해 주시면서(5:1-12) 성도들로 하여금 목표있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교훈해 줍니다. 신앙의 목표는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팔단진복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성도들의 신앙 성장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11-12절은, 천국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도들이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게 되면 그것은 모두 천국에서 상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5:13-16에서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마땅히 행할 바 신앙생활을 잘 요약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핵심적 신앙 원리입니다. 5:17-20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려면, 지극히 작은 계명일지라도 성실하게 순종해야 함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마5:21-48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 백성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처럼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 바쳐 실천해야 합니다. "살인치 말라, 간음치 말라"... 등등의 말씀들은 마음으로부터 정성껏 지켜 행해야 합니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범죄하면서 외모만 그럴듯한 사람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21-26에는 제 6계명을 순종하는 방법, 27-32절은 간음을 금하는 제 7계명을 순종하는 방법에 대해, 33-37절은 제 3계명 순종에 대해, 38-42절은 복수의 법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온전한 순종에 대해서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43-48절은 형제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 백성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일깨워 주는 내용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하면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7:21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 곧 말씀을 순종하면서 영생하는 빛의 나라입니다.

2. 6장

5장에 이어서 6장에서는 천국 백성들의 행실에 대해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외식하는 자들의 잘못된 행실을 실례로 들면서 성도로서의 합당한 행실에 대해 교훈해 줍니다. 6:1-18에는 구제, 기도할 때, 금식할 때의 외식하는 행실과 바른 행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른 행실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인정받고 자기를 나타내려는 외식적 행실을 버리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바른 기도의 실례로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곧 주기도문이 그것입니다.

6:19-21에는 재물 사용에 대해 교훈해 줍니다. 모든 재물은 천국과 연관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우선하여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6:22-23에는 마음의 눈 곧 양심의 밝은 빛을 따라 생활해야 함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6:24-34에는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절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겨서는 안되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살아야 함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3. 7장

7장에서는 몇 가지 권면과 경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1-5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판단, 비난하는 죄에 대해서 교훈해 줍니다. 성도들은 남을 판단하기 이전에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7:6은 진리의 중요성과 거절하는 자들에 대한 규칙을 말해 줍니다. 7:7-12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하되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함을 교훈해 줍니다. 7:13-14은 성도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고 협착한 길을 다 지나야만 생명을 얻게 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7:15-23은 거짓 선지자들 곧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7:24-29은 산상수훈의 전체의 결론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로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면 무너지듯이 패망할 것이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마치 반석 위에 세운 집이 비가 오고 물 나도 무너지지 않듯이 구원을 보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산상수훈은 참으로 귀중하고 복된 진리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권세있는 주님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