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윤리론과

교회론과 성령론의 관계에 대한 소고

에베소서는 몇 가지의 문맥 설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주는데, 그 첫 번째는 곧 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교회론과 성령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며, 둘째로는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기독교윤리와 성령론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특히 이 두 문제는 지금까지의 에베소서 연구에 있어 심도 있게 문제제기가 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계들을 검증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시발점이 되어야 할 주석적 작업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에베소에 있어서 성령론과 교회론(직분론), 그리고 윤리론은 하나의 조직적인 그물처럼 얽혀 있는 유기체로 보인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에베소서에서 종말론적 요소가 주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에베소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 필자는 에베소서에서 성령론과 교회론, 성령론과 윤리론이 각기 어떻게 얽혀져서 하나의 조직을 이루고 있는 지를 그려내는 것을 그 과제로 삼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 주로 관심을 가진 에베소서의 본문은 3:10-11, 4:11-12, 6:11-12인데, 이 본문들을 선택한 이유는 위에서 제기한 성령론과 교회론, 성령론과 윤리론의 관계를 추적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3:10-11은 성령론과 교회론에 대한 관계를, 그리고 4:11-12은 3:10-11에서 살펴볼 성령론과 교회론의 관계에 대해서 직분론과 관련한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리고 6:10-12은 흔히들 "영적 전쟁을 위한 준비"라고 부르는 엡 6:12-20 부분의 도입 부분에 해당하는데, 이 구절은 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성령론의 성격을 가장 잘 특징짓는 것임과 동시에, 성령론과 교회론(3:10-11과 4:10-12)의 관계와 성령론과 윤리론의 관계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단서이므로 연구 본문으로 선택하였다.

2. 에베소서 3:10-11에 대한 연구:하나님의 지혜와 교회

【본문】엡 3:10-11

10절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비교­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 하셨으니

에베소서 3장 10절과 11절은 하나님의 지혜, 교회, 그리고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3:10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교회는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가 드러나는 놀라운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곧 성령의 사역에 있어서 교회가 가지는 전략적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엡 3:10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교회를 통해서" 알려지게 한다는 바울의 설명은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대항하여 싸우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교회의 성격을 뚜렷하게 부각시켜 주고 있는 문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하여 교회는 정사와 권세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성령의 사역의 중심지로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에베소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울의 교회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즉 교회를 통한 성령의 사역은 교회 내부의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 밖의 대적자들을 견제하고 대항하는 요소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에베소 3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교회와 성령의 관계는 교회와 성령간의 이자(二子)관계가 아니라, 교회와 성령과 대적자들(정사와 권세) 사이의 삼자(三子)관계 속에서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삼자관계에서 설정되는 교회의 존재는 대적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성령의 사역의 전략지로서 나타나고 있고, 여기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향한 강력한 대응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 엡 3:10-11에서 바울이 묘사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하나님의 대적자들과의 대항관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의 또 하나의 방향을 지시해주는 것으로서, 성령의 사역이 교회 내부로만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위한 사역을 무너뜨리려는 대적자들을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측면으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에서 "지금"이라는 시간 단위가 드러내는 교회적 삶의 상황구성은 대적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는 사건의 장소로서의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제"라는 시간에 대해서 삶의 태도를 설정하게 될 것을 요청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를 통해서"와 "이제"는 엡 4:17-6:9까지 이르는 윤리적 교훈들의 시간적 좌표와 현실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이것은 곧 교회의 성도들의 현실의 삶이 가지게 되는 그 방향과 의미들을 하나님의 지혜와 관련하여 엮어 주는 대목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관련성은 엡 4:11-14에서 바울에 의해서 설명되고 있는 교회의 직분설립에 대한 바울의 설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3. 4:11-14 연구:다양한 직분자의 설립과 교회의 삶

【본문】엡 4:11-14

11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1-13에서 언급되고 있는 직분들은 특히 고전 12:4-11에 나타나고 있는 직분들과는 상당히 다른 문맥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특히 에베소서에는 교회에 다양한 직분들이 수여되는 일이 하나의 독립된 사건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들이 대상으로 삼게될 구체적인 상황들이 함께 설명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Ksemann의 경우는 바울 신학이 기독론적 경향에서 점점 교회론적 경향으로 전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에베소서를 그러한 증거로서 간주하고 있다. 즉, 에베소서에서는 교회가 종말론적 경향을 가진 채 중심점으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에베소서에서는 기독론이 상당히 약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에베소서에서 기독론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그 배경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좀더 다른 각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형식상으로 보면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교회를 이야기 할 때는 대부분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수식구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이러한 이유로 해서 Richardson과 같은 학자는 에베소서가 다른 바울 서신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기독론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에베소서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인 특징일 뿐이다. 바울은 '교회'에 대한 관심보다는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교회가 살아가게 되는 구체적인 교회적 삶,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적 삶이 가지고 있는 역동적 생명은 성령론에 의해서 좌표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가 어떻게 교회적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가에 대한 상세한 바울의 설명과 관심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는 문체상으로 기독론적 경향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내적 연결 고리들은 성령론에 의해서 전제되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사실상 앞에서 논의되었던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엡 3:10)라는 강력한 상황적 대비가 에베소서 전체 문맥을 관류하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성령론이 에베소 교인들의 삶의 정황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윤리적인 권면의 형태로서 변형되어 다시 전개되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특히 바울이 엡 4:10-12에서 그리스도께서 직분을 베풀어주신다는 설명을 거짓 가르침과 대립시키면서 밀접하게 연관을 지어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직분의 성격은 교회 내부에로만 향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직분들은 교회 밖으로도 '거짓 가르침'들이라는 분명한 대상들을 설정해두고 있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고린도전서에서 직분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측면을 부가시키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에베소서에서는 바울은 '사역 자체'보다는 '사역자들,' 즉 사역을 감당하는 주체들이 교회의 구성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교회에 주어지는 직분들을 통해서 방향 지워지는 성도들의 삶 자체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 삶의 의미와 방향은 자연히 교회의 직분들이 가지고 있는 사역의 대상들과 같은 방향을 설정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의 삶이란 한 쪽으로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거짓 가르침을 통해서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을 향하여 있는 것이다. 즉 이 직분들은 바로 악을 향하여 마주 서있는 것이다. 악을 대항하여 서 있는 것,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직분설립의 구체적인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엡 4:12의 말에 의하자면,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방식이 곧 이러한 대적자들의 방해를 저지하고 물리치는 전투적 측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4. 엡 6:10-12 연구:바울의 윤리론의 성격

【본문】6:10-12

10절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절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0절에서 나타나는 "종말로"라는 접속어가 가지고 있는 문맥상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만일 "종말로"를 6:10 이하에만 해당하는 접속사로 보면, 6:10 이하와 4:19-6:9까지가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이 지시하는 문맥상의 위치는 4:17-6:9까지의 의미상의 관계와 단절되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더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나타나는 도입부로 보인다. 따라서 이 접속사는 4장과 5장에 이어져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6:10 이하의 영적 권면이 4:17-6:9까지의 윤리적 권면과 상호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바울은 11절에서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것을 요구한다. 바울의 이 말은 엡 4:17-6:9에 이르는 윤리적인 삶의 모습들에 대한 권면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본질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말로 생각된다. 이 말은 엡 3:10의 "이제"라는 시간과 엡 6:13의 "사악한 날들"이라는 바울의 시대적 상황의 판단과 세계관이 함께 양축을 배경으로 이루고 있는 윤리적인 삶의 교훈들에 대한 더욱 더 실재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다시 재규정하는 말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사실상 4:17- 6:9까지의 내용을 재규정해주는 직접적인 단서가 된다. 4:17-6:9까지 나타나는 윤리적인 권면들은 사실상 마귀의 궤계를 대항하는 전투의 한 방식에 해당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성도들은 6:9까지 나타나는 그러한 윤리적 측면을 통해서도 마귀의 궤계를 만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바울은 그 마귀의 궤계를 대항하는 방편으로서 그러한 규범들을 설명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국면은 3:10에서 대적자들에게 알려지게 될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성령의 사역이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제적인 부분들에 해당되는 것이다. 3:10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와 관련된 교회적 삶은 엡 4:17-6:9의 개인적 윤리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윤리적 삶의 모습이 실제로 목표하고 있는 바는 대적자들이 '혈과 육'으로 가장하여 교회를 위협하고자 할 때, 교회의 성도들이 그들의 궤계를 대항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의 전술적 측면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6:9 이하에 바울은 다시 그러한 실제적인 전술들이 근거 지워져 있는 본질적인 영적 전쟁들을 밝혀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지혜가 대적자들에게 어떻게 알려지는가를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이 바로 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윤리론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곳에 이르러서 앞에서 설명했던 구원과 교회와 직분들과 생활윤리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와 그 방법들을 설명하게 된다. 바울 신학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 측면을 설명함에 있어서 Bultmann이나 Ridderbos는 하나님 앞에서의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고 있는 결단의 방향은 주로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 지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특징들을 바울 신학에서의 윤리의 문제를 주로 기독론에 치중하거나 구원론에 치중하여서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 가운데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경향 가운데서 성령의 사역도 그러한 구원론이나 기독론을 지향하는 가운데서의 매개적 기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이 '율법'에 대한 상관자로서만 강조되어져서, 순종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결단을 강조하는 조력자로서 역할이 강조되기도 한다. 바울의 윤리론이 구원론에 치중되어 해석되면 될수록, 그 윤리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자연히 도덕주의적인 색채를 입고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약간의 단순화라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굳이 도식화시켜서 이해해본다면, Bultmann이나 Ridderbos가 이러한 경향에 놓여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이 반대로 기독론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교회론적으로 해석되면, 윤리 문제는 교회 공동체를 향한 목회적 차원에서 소극적인 방향으로 이해되어지게 되고, 그것은 다시 교회 내에서 성도간의 덕을 고취시키는 윤리적 권면으로 이해되어지게 된다. 이것도 역시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윤리의 성격을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신학사에 있어서의 이러한 경향들은 악을 대항하는 공격적 형태의 성령의 사역이 크게 주제화 되어지지 못한 배경들이 되어 온 것으로 필자는 미루어 헤아려 본다.

5. 결론

에베소서에서 드러나고 있는 성령의 사역은 크게 세 가지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 1)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위한 사역이 있고, 2) 교회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기까지 돕는 일이며, 3) 세상에 대하여는 교회를 위협하는 대적자들을 대항하여 그들의 존재를 물리치는 것이다.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사역은 영어의 전치사를 빌러 표현하자면 그 성격이 "for"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세 번째의 영역에 대해서는 "against"라는 부정적인 성격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성령의 사역은 이 세 가지의 방향을 언제나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위의 각각의 세 방향에 해당되는 사역들이 분리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모든 사역들을 언제나 이러한 세 가지 방향을 동시에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령의 사역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바울이 기독론적 지향을 보여주는 문체상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실상, 에베소서에서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들의 내적인 동력들이 성령의 사역에 근거하고 있다고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엡 3장에서 논의된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가 이제는 교회를 통해서 대적자들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바울의 말은 6장에서 "사악한 날"이라는 바울의 세계관을 통해서 하나의 적극적인 공격성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4:10-13에서 토론되어진 바와 같이, 교회에게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신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는 구체적인 국면들을 예시해주면서 동시에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를 위협해오는 대적자들에 대항하는 성령의 사역의 방향들을 설정해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가 대적자들에게 알려지는 또 다른 국면이 바로 성도들의 삶의 윤리, 즉 그리스도의 몸의 윤리에 대한 바울의 설명인 것이다. 성도들의 개개인의 윤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윤리이며, 이 몸의 윤리는 사실상 악을 대항하여 서있는 교회의 투쟁이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령과 관련하여 교회론과 윤리론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성격이다. 이러한 몸의 윤리가 가지고 있는 악과의 투쟁은 성령이 사역하는 구체적인 역사의 장(場)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사역에 참예하는 교회를 통해서 성령은 그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는 대적자들에게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드러내신다. 에베소서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역동적인 교회의 삶이 가지는 저항적이며 공격적인 성격을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의 몸으로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지상의 삶은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가 구체적으로 드러내시는 성령의 임재의 장소가 되고, 악과 대항하는 성도들의 삶의 원칙들 속에서 성령님의 임재는 악을 향하여 대단히 공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결코 그 자체로서의 기독교 윤리학을 말하고 있지 않다. 에베소서에서는 성도들의 윤리적인 삶의 규범을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향한 전투의 구체적인 전술로서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위한 성령의 사역을 방해하는 대적자들을 대항하는 전략거점이며, 교회에 주어지는 교회의 직분들과 그리스도의 몸의 윤리들은 이러한 악을 대항하는 성령의 투쟁에 동참하는 과정으로 위치지워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윤리는 악을 대항하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윤리가 어떻게 성령의 구체적인 사역의 실재로서 위치하게 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응답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교회론과 윤리론 그리고 성령론이 상호관련하여 묘사되고 있는 역동적인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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