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전도 여행

바울이란 인물에 대하여

바울 (Paul "작은자"란 뜻)의 원래 이름은 (Saul "큰자" 란 뜻)로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B.C 1년에출생하여 (행 7:58,9:11) 11세때 예루살렘에

내려와 13세부터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베워 율법에 정통한 교법사가

되었다. 또 그는 장막만드는 법을 베웠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행

7:58,8:1) 11세때 예루살렘에 내려와 13세부터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율법에 정통한 교법사가 되었다.

또 그는 장막만드는 법을 베웠으며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행 22:25) 율

법과 교회 핍박에 열정을 가졌다 그래서 스데반이 죽을 때에 증인이 되기

까지 했다.(행 7:58,8:1)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일생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복음을 위해 바쳐진 생

이었다.

1. 제1차 전도여행 (행 13:1- 14:28)

바울은 45년 안디옥교회에서 안수받고 전도목사로 파송받아 마가와 함께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있는 살라미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여러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그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이르

렀다.

바보에서 바울은 총독 서기오바울과 함께 있는 유대인의 거짓 선지자 바

예수를 소경이 되게하고 총독으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바보

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의 버거에 도착했을 때 같이 동행했던 요한

은바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울은 다시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올

라가 안식에 회당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다음 안식일에는 그 성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나와 바울의 설교를들었으며 이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비방하고 귀부인

과 유력한 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였다.

그래서 두사람은 그곳에서 발에 티끌을 털어내고 이고니온으로 가 말씀을

전하고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사람들을 믿게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유

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바울에게 악감을 품게하여 이방인과 관원들

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하였고 이에 두사람은 도망하여 루가오

니아 지역의 두 성인 루스드라와 더베와 근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이때 루스드라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자가 바울의 설교중에 고침을 받았

고 이일로 무리들은 바나바를 "쓰스"라하고 바울을 "헤메"라 불렀다. 그리

고 두 사람을 신으로 알고 제사를 드리려하자 두 사람은 옷을 찢고 무리들

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이일후 이고니온과 안디옥(비시디아)에 있는 유대인들이 와서 무리를 선

동하여 바울을 치게 하고 성밖으로 끌어내게 했다. 그러나 죽은줄 알았던

바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

하고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가서 제자들을 격려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

을세웠다.그리고 비시디아 지역을 가로질러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다

시복음을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안디옥으로 가서 자신의

1차 전도여행에 대하여 경과보고를 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2. 제2차 전도여행 ( 행 15:22-18:22)

1차 전도여행을 마친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생긴 할례문제로 바나바와

같이 예루살렘에 파송되어 예루살렘교회의 결정을 가지고 교회에서 파송한

바사바라하는 유다와 실라와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와 무리를 모은 후 결정

사항을 알려 주었다.

이 일이 있은 수일 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을 바나바와 함께 가기로

했으나 요한도 같이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 의견에 반대하여 서로 헤어져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

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교회들을 찾아 굳게 하였다. 더베를 거쳐서 루스드라

에이른 바울과 실라는 디모데를 만나 할례를 행하였다.

이후에 바울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

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성령이 허락치 않아 드로아로 갔다. 이곳에서 바울은

밤에 마케도냐 사람이부르는 환상을 보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

게로 직행하여 이튿날네압볼리를 거쳐 마게도냐 지경의 로마의 첫번째 식

민지 성인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에서 몇일이 지난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기 위해 강가로 나갔다가

루디아 를 만나 그의 강청에 의해 그 집에 거하였다. 그러나 귀신들려 점하

는여종을 고쳐준 사건으로 두사람은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오히려 그들은

기도와 찬송을 하였다. 그러자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터가 흔들리며 모든

죄수의 매인 것이 풀려지자 간수는 죄수가 도망한줄 알고 자결하려고 할때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도망하지 않은 것을 알리고 자결을 방지하였다.

이를계기로 간수와 그집에 속한 사람들은 바울의 말씀을 듣고 세례도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두사람은 석방되어 루디아의 집에 돌아와 문안하고

그곳을출발하여 임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가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율법을 강론하였다. 강론을 들은 헬라인의 큰 무리와 상당한

귀부인들이 두 사람을 쫓았고 이를 본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소동을 피운

후바울과 실라에게 뒤집어 씌웠다(행 17:1-9).

그러자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피신시켰고 그곳

에서 두사람은 더 큰 성과를 얻어 귀부인과 많은 남자들이 말씀을 받아 드

렸다.한편 이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내려와 다

시 소동을 일으켰고 이에 바울을따르던 사람들은 실라와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두고 먼저 바울을 아덴에 피신시켰다.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도착할 때까지 우상에 대하여 유대인, 경건한 사람은 철학자 에비

구레오와 스도이고등과 쟁론을 벌였으며 죽은자와 부활에 대하여도 전했는

데 아레오바고의 관원 중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같은 여자는 바울의 전하는

말을 믿었다.

이후 아덴을 떠난 바울은 고린도에 이르러 장막업을 하는 아굴라와 브리

스길라의 부부와 같이 장막일을 하며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

에게 말씀을 강론하였다. 한편 실라와 디모데는 벧뢰아에서 내려와 바울을

만났으나 유대인들의 대적으로 디도유스도와 집에 있으면서 1년반동안 말

씀을 가르쳤다. 그리고 배타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고 에베소에 도착하여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과

변론하고 다시 배타고 팔레스틴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아마 예루

살렘인 듯) 교회의 안부를 묻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3. 제3차 전도여행 (행 18:23-21:17)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은 얼마되지 않아 갈라디아와 브루기아지역을 차례

로 다니며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하고 에베소에 돌아와 그곳에서 12여명되는

사람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고 방언과 예언의 체험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2년동안 말씀을 전파하는 가운데 병자가 고침받고 귀신이 쫓겨

나며 믿는자가 자복하고 마술사가 자신의 책을 불사르는 놀라운 변화가 일

어났다.

이에 데메드리오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다이아나(Diana) 의 은감실 제

조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자 그는 경건과 애국심을 가장해 소요를일으키

고 폭도들을 시켜 바울을 잡아 죽이려 했다. (행 19:23-41)여기서 바울은

로마관원의 변호로 무사히 위기를 넘겼으나 바울은 거의 죽을 상대에 이르

러(고후 1:8-9) 오순절도 되기 전에 에베소를 서둘러 떠나마케도냐로 가

서 그 지경을 돌아다니며 제자들에게 말씀을 권하고 계속하여헬라지경에 이

르러 3개월 동안 머문 후 배를 타고 수리아로 직행하려 했으나 고린도에서

암살계획이 있음을 알고 동료와 함게 마케도냐를 경유하는육로를 택하기

로 결정하고 (행 2:3-4) 그곳을 떠나 육로로 빌립보까지 갔다.

빌리보에서 배로 5일만에 드로아에서 먼저 도착한 동료들 만나 7일을 머

물렀는데 마지막날 곧 안식후 첫날에는 밤늦도록 말씀을 강론했는데 이때

졸고 있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바울이 살렸다. 이튿날 바울은

육로를 통해 앗소로 가서 배타고 형제들을 만나 후 다시 배로 미둘레네기

오,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이르렀다.(행 20:15) 여기서 바울은 사람을 에베

소에 보내 그곳 장로를 초청하여 만나 설교를 한 후 뜨거운 작별을 나눈다

음 바다라를 거쳐 그곳에서 배에 있는 제자들을 방문하고 예루살렘으로 내

려가서 말것을 강청하는 것을 뿌리치고 계속하여 돌레미아를 거쳐 하루를

지낸 후 가이사랴에 도착하였고 그곳에 있는 빌립의 집에서 여러날을 지내

고 죽을 각오로 예루살렘으로 내려갔다.

4. 제4차 전도여행 (로마행, 행 27: 1-28:31)

[ 예루살렘과 로마까지 바울의 행적 - 행 21:15-30-]예루살렘에서 바울

의 전도여행의 보고를 들은 장로들은 하나님께 영광을돌렸으나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오히려 율법을 훼방하고 헬라인을 성전에 들어가게 했다가

모략을 하였다. 결국 바울은 잡혀 천부장에 인계되어조사를 받게 되었고

천부장은 일치되지 않는 고소로 실상을 알수 없게 되자바울에게 변호할 기

회를 주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분노가 커지자 이제는채찍질하여 심문하였다. 이에 바울

은 자신은 로마시민권을 가진자임을 밝혔고 천부장은 두려워하여 공회로 하

여금 송사이유는 알려고 하였다. 공회 앞에 선 바울은 부활의 소망을 이야

기했고 이에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과 그렇지 않는 사두개인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으며 날이 새자 바울을 죽이려고 한결사대까지 조직하였다. 이 사실

을 안 바울의 생질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공회에 넘겨주지 말것을 청했고 천

부장은 그의 말대로 가이사랴에 있는 벧릭스 총독에게 자세한 상황을 쓴

편지와 함께 바울을 보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지 5일만에 아나니아 대제사장, 장로, 더둘로에 의해

소요죄와 이단죄의 추가 협의로 고소 당하였는데 베릭스는 뇌물을 받을 수

없음을 보고 2년간 투옥시킨 뒤 그의 후계자인 베스도 (Festus)에게 인계하

였다.

바울을 인계받은 베스도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바울을 구류해 놓았

는데 그가 도임한지 3일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대제시장과 유대인

의 높은 사람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내려오게 하여 길에서 매복하였다가

죽이려고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내려오도록 베스도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바

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가이사에게 재판받을 것을 호소하자 하

는 수 없이 베스도는 자기에게 문안 온 아그립바왕과 베니게에게 이제까지

의 일을 상세히 설명하였고 바울은 아그립바왕에게 자신을 변명하였다.

결국 아그립바왕과 베니게에게 이제까지의 일을 상세히 설명하였고 바

울은아그립바왕에게 자신을 변명하였다. 결국 아그립바왕과 베스도 총독과

베니게는 바울에게 혐의를 찾지 못하고 그의 호소대로 가이사에게 재판 받

도록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게 찾지 못하고 그의 호소대로

가이사에게 재판 받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게 맡겨

져시돈을 거쳐 배를 타게 되었는데 배는 바람으로 인해 구브로해안을 따라

행선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알렉

산드리아 배에 옮겨졌다. 그리고 바울이 탄 배는 니도와 살모네앞을 지나

파도를 피해 그레데해안을 따라 간신히 미항에 정박하였다.

이곳에서 바울은 선장에게 출항하지 말것을 권했으나 듣지 않고 항해 하

다가 뵈니스해변을 얼마 남기지 않고 유라굴로라 하는 광풍을 만나 생명까

지위협받는 곤경에 빠졌다. 그러날 바울의 예언대로 배만 손상되고 인명의

피해없이 풍랑을 만난지 14일째 되는날 밤에 멜레데라는 섬에 도착하였다.

섬에 도착한 선원과 바울은 섬의 우두머리인 보블리오의 친절한 대접을 받

았으며 바울은 그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고쳐주고 그밖의 병자도 고쳐주

었다. 그리고 3개월쯤 거한 후 다시 배타고 수라구사, 게기온을 거쳐 보디

올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7일을 지내고 로마로 갔다.

[ 로마에서의 바울행적 ]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압비오저자 5) 자와 삼관 6) 마중나온 그리스도인들

로부터 환영을 받고 마음의 담대함을 얻었으며 4일후에는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시간이 나는대로 그들에게 말씀을

강론하였다.

이렇게 2년동안을 비교적 자유스럽게 자기 셋집에 거하면서 하나님나라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다.(행 28:16,30-31) 그러면서도 바울은 끊임

없이 자신이 세운 교회를 생각했고 옥중에서도 그들을 위해 에베소서, 빌립

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써서 전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로마에서 자유를 얻어 동방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

는데 그는 이 여행에서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두었고 (딛1:5) 병든 드로비

모를 남겨두고 잠시 밀레도에들렸으며 (딤후 4:20) 마케도냐로 가는 도중

(딤전 1:3) 디모데를 에베소에머물게 했다. (약 65-67년) 여기서 사랑과 장

래를 위한 충고로 가득찬 서신을 디모데에게 썼고 디도에게도 보냈다. 그

러다가 바울이 디모데에게도 보냈다. 그러다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번째

서신을 쓸때는 다시 로마옥에 투옥되어 한차례 겨울을 감옥에서 지냈으며

7)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옴을 느끼고 있었다. (딤후 4:17-18)

[ 바울의 죽음에 대하여 ]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로마시외에 있는 오스

티안 도로( Ostian road) 위에서 참수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즉 네로가 68

년에 죽었으므로 바울은 그 이전에 처형되었으며 그 시기는 네로가 죽던해

혹은 그 이전인 67년이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