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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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9) 삼손 사사시대
(9) 삼손 사사시대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삼손이다. 지금까지 진행 된 과정을 보면 이스라엘이 타락했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사사가죽고 나면 또 타락하고 또 부르짖고 구원하는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 또 동시에 하나의 큰 흐름은 악화일로로 치닫는 흐름을 관찰할 수 있다. 지도자로부터 시작해서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갈수록 나타나는 양상이 하나님이다스려 가시고자 하시는 교회의 본질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들로 나타난다. 자기 완력으로 폭력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될려고 한 아비멜렉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영적으로 우둔하고 무지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서도 알지못하는 무지한 지도자도 있고, 교회 주도권을 쥐기 위해 교회를 갈라 쪼갠일도 있었고, 교회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서 교회성계를 파괴해서 세상과 마찬가지로 만들어 버린 일도 있고, 족벌주의 즉 교회에 자기 친족들을 다 중직에 앉혀서 족벌정치를 하는 현상들도 나타났다. 이것은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교회사에서 얼마든지 있어왔고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하면 대개 이런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가 어디서 변질되며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떤 결말로 끝나게 되는가를 한번 돌이켜 보고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특히 삼손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임한 사람도 없었다. 놀라운 힘을개인에게 주신 일이 전무후무하다. 처음에는 하나님에게서부터 도모(지혜)가생겨나서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 것 처럼 해서 블레셋을 친다. 그런데 나중에는 거꾸로 삼손이 당한다. 들릴라라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있는데 블레셋이 그 여인을 이용해서 삼손을 타락시키고 그의 능력을 제거시킨다. 여자 때문에 망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시대 교회나 나타난 것은 다 나타난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삼손이 마지막에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해서 다시 한 번 힘을 얻고 다곤신전을 무너뜨리니 그 때 죽은 자가 삼손이 이전에 죽였던 자보다 많았다고 큰 승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삼손은매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그가 회개한 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사사기 전체흐름, 타락일로와 결말의 과정에 비추어볼 때 이스라엘은 갈수록 타락일로를 걸었고 삼손에 있어서는 특히 매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사사라고 이야얘기할 수 있겠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8) 사사 엘론
* 사사엘론
그 다음 스불론인 엘론이 7년을 치리했고 압돈이 8년을 치리했다고 되어있다. 이 사람에게는 아들 40, 손자 30이 노새 70필을 타는 자였다고 되어있다.
이 뜻이 무엇일까? 드보라의 노래에도 잠깐 언급이 됐었는데, 나귀 타는자(노새 타는 자)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지도급 인사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노새라고 하는 것은 귀인들이 타는 것 곧 신분의 상징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아들 40, 손자 30이 노새 70필을 탔다라는 것은 자기 아들과 손자들을 이스라엘의 요직에 다 앉혔다는 것이다. 이런 형태를 가리켜 족벌정치주의라고 한다. 기드온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성격을 급속도로 상실해간다.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변질이 일어나고 영적무지, 무모함, 주도권 쟁탈로 인한 교회분열, 세상과의 통혼을 통한 공존,세상과의 구별을 상실하고 혈연에 의한 권력구조 형성 등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게 된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12장 (8) 입산, 엘론
(8) 입산과 엘론의 사사시대(통혼이 의미하는 바)[12장]두 사람의 사사가짤막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즉 입산과 엘론이 나타난다. 이 사람들이 행한일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가 없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짤막한 언급이 있다.
딸 서른과 아들 서른이 있는데 모두 바깥 사람들과 결혼시켰다고 되어 있다.
바깥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당시 각각 자기 지파대로 살고있었으니까 자기 지파 외에 다른 지파들과 통혼한 것이다라고 긍정적으로 해석을 한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 지파 간에 혼인이 금해진 것도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아들없이 딸만 두었을 때 그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기업이다른 지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처로서, 같은 지파 내 사람들과결혼하라는 명령은 있었지만 이스라엘 내에서 서로 통혼 하는 것이 결코 금지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바깥으로 시집 보내고 며느리로 맞아 들였다는 이표현은,여기서 바깥이라는 것은 분명히 이방인들과의 통혼이라고 생각된다.
왜 통혼을 했는지 모르겠으나(일종의 외교수단으로 정략결혼 즉 평화적인 관계를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 의도가 무엇인지간에 초래된결과라고 하는 것은 혈통이 뒤섞이는 것이다. 구약에 있어서는 교회의 외적인 형태가 혈통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던 만큼 구약에서는 혈연이 중요했다. 지금은 교회가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교회의 일원이 된다. 물론 이원리가 구약에는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있었지만, 그러나 구약에서는 외적으로는 적어도 아브라함의 육적 혈통을 타고 나면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에 속하게 되어있다. 이런 구약적 특성을 감안한다고 하면 혈통의 뒤섞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세상과 교회간의 구분을 완전히 철폐해 버리는, 세상과 구별되는 존재로서의 교회 존재를 포기해 버리는행위다. 이것도 이스라엘의 한 일각에서 부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교회 지도자가 솔선수범한 꼴이 되고 말았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7) 입다
* 교회의 분열(주도권 쟁탈)
입다에게 와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얼마나 무지했는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일을 행했는가? 사람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저지를 만큼 무지했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다에게 와서 이스라엘에 가장 아픈 교회의 분열이 일어난다. 이 분열의 기미가 기드온 때 어느정도 표면화 됐었다.
길르앗 사람은 요단 동편 사람들이고 그외 나머지 지파들은 요단강 서편에기업을 얻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입다는 길르앗 사람이고 대체로 그때 전쟁을 수행한 사람은 요단강 동편 지역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던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그들을 통해 놀라운 구원을 베푸시자 이제는 에브라임 사람이 들고 일어난다.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정작 필요할 때 일찍 달려와서 도와 주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와서는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로서의 위신, 권위 이런 것들을 세우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도자의 허세다. 일종의헤게모니 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전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기드온이겸손하여서 나는 당신 발치에도 못미치는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에 일이 무마가 되었다. 그런데 입다의 경우는 따지고 든다. 우리가 당신들을 불렀지 않느냐, 당신들이 오지 않고 선 이제와서 딴소리냐 하고서는 싸움이 붙어서큰 전쟁이 나는데 에브라임 사람이 패한다. 길르앗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터를 지키고 서서 요즘도 우리 나라의 경우도 지방에 따라 말이 다르듯이 에브라임 사람들이 잘 하지 못하는 씹볼렛 발음을 하게 해서 잘하지 못하면 잡아 죽이는 불상사가 생겨났다. 요단강을 중심으로 교회가 동서로 분열했다는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이러한 교회 분열의 심각성을 암시하는 일이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
정복전쟁이 거의 마무리가 되고 여호수아는, 이 때까지 자기들의 가족과 모든소유를 요단강 동편에 남겨두고 요단강을 건너와서 자기 형제들을 앞장서서전쟁을 수행하던 르우벤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의 용사들을 다시 고향에돌려 보낸다. 돌아 가면서 이들이 요단강 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이 소식을 듣고 여호수아가 노발대발하고 온 이스라엘이 들고일어나서 쳐 없애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제사장을 시켜서진상을 확인하는데 확인하는 과정에서, 너희들이 왜 이런 제단을 여기에 세웠느냐?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곳까지 예배 드리러 와야 하지 않느냐? 너희들이 그 땅이 싫으면 이리로 건너오면 얼마든지 땅을 주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말 속에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는가 하면 성소가 두 개 생기게 되면 결국 교회가 둘로 분열되고 만다. 그 성소를 중심으로 섬기는 제사장이 서게될 것이고 결국 교회가 분열되고 마는 것이다. 오직 한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신 그 뜻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그 중에 아주 중요한의미 중 하나가 이스라엘의 영적 통일성 곧 교회의 하나됨을 유지하기 위한뜻이 그 속에 분명히 있었다. 따라서 요단강 동편에 또 하나의 제단을 쌓았다고 했을 때 온 이스라엘이 들고 일어난 이유는 결국 무엇에 대한 분개인가하면 물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명령의 참 뜻이이스라엘에 영적으로 하나의 구심점이 있게 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 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것은 교회 분열에 대한 분개였다고 말할 수있다. 이와같은 해석이 타당한 것은 그 후에 이 일이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때 그쪽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이런 제단을 우리가 만든 것은 여기에서 제사를 드리고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요
단강 서편에 동일한 제단을 쌓아 둠으로서 너희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세웠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수긍하고 돌아가고 만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속한 이스라엘과 하나인 것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증거로 쌓은 하나의 제단이다, 한 교회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어떤 조처였다고 이야기를 하자 납득하고 돌아간 일이 있다.
이런 사건을 살펴 보면 초기 이스라엘백성들이 이스라엘의 분열을 얼마나심각한 것으로 생각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염려하던 그 일이여기 입다 때 와서 교회 내의 주도권 쟁탈 즉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교회가 갈라서고 만다. 이 때까지는 적어도 이스라엘내에서 서로 싸우는 일은 별로 없었다(소규모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집단적으로 큰 규모로 서로 죽이는 일은 본격적으로 여기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이때까지는 교회의 대적이 교회 바깥에 있었으나 이제 여기서는 그 대적이 내부에도 있게 된다. 그것은 교회의 분열의 모습이다.
기드온시대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본격화 되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좀 소극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이제부터는 적극적인 변질이 시작되었다. 우선 교회 지도자에 대한 상이 변해졌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온 세계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나 특별한 의미에서) 영역이요 하나님께서 왕이시며 하나님께서다스리신다라고 하는 그것을 빼고 나면 교회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바로그 교회를 다스리는 그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가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것이다. 세상처럼 좀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적으로 세상의 지도자와 비슷한 교회 지도자상을 원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완전히 표면화된 것이 첩의소생 아비멜렉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스라엘내 교회 지도자상과 관련해서어떤 변질이 일어났는가? 그것이 사건으로 돌출된 것이 아비멜렉 사건이라볼 수 있다. 내 편이 되라 그러면 잘 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없애 버리겠다고 하는 이런 모습은 결코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교회 본질 자체의 변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입다에게 와서는 사람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무지막지한 일로나타나게 되었고 더우기 교회의 헤게모니 쟁탈로 인해서 교회가 동서로 분열되는 참담한 현실을 초래하게 되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7) 입다 / 인신제사가 의미
* 인신제사가 의미하는 바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많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생각하면 참곤혹스러워 한다. 기생 소생이었고 비류 출신이었고, 그런 사람으로 끝났다고하면 별난 사람이었구나라고 치부해 버릴텐데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큰 역사를 이루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다는 말씀 다음에,전쟁에 임하면서 입다가 이런 서원을 했다는 것이다. 입다가 이런 서원을 했다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에도 설왕설래가 있고 그리고 서원을 행한 것이 잘한 것이냐 못한 것이냐 등등, 일단 하나님께 약속을 했으니 무슨 일이든 무조건 해야 된다. 즉 잘한 것이다 하는이도 있고 잘못한 것이다라는 이도 있다. 그런데 나중에 뭔가 되긴 된 것 같은데 끝말이 명백하지가 않다. 번제로 드렸는가? 사람을 잡아서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너무 엄청난 일이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떤사람은 자기 딸을 성소에 보내서 평생을 성소에서 지내면서 처녀로 늙어 죽게 했다고 해석을 하는 이도 많이 있다. 그것은 나름대로 어려움을 느껴서이런 저런 해석을 하는 것인데, 우선 맨 마지막에 처녀로 죽음을 슬퍼했다고되어 있고 그 다음에 보면 이스라엘 중에 해마다 입다의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규례가 생겨났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성소에 가서 처녀로늙어 죽은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해마다 슬퍼했을까?(시집 못간것 때문에) 그것은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서원을 행한 것이아니지 않은가, 처음에 분명히 입다는 번제로 드리겠다고 했다. 어떤 이는번제를 영적으로 해석을 해서 하나님께 헌신한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사람을 잡아죽이는 번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문제가 됐다는 것 자체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정도 가지고 슬퍼 할 것은 못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입다가 서원한 것은 율법이 금하고 있는 인신제사를 서원했었고 돌아와서 자기 딸이 바로 그 대상으로 지목이 되었고 그리고 죽었다. 결국 죽었다는 것이 그 뒤에 나오는 내용으로 봐서 맞는 것 같다. 단순히 성소에서독신으로 늙어 죽었다는 말만 가지고는 그 후에 이스라엘의 반응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입다의 딸 자신이 몇 달 동안 슬퍼했다는 것 등이 잘 이해가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겠는가? 그것은 실제로 있었으니까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문제는 입다의 서원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냐, 그것은 아니다. 서원 자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렇게 서원을 하는 것이 잘못 됐다고 하는 것이 이런 것에 의해서 암시가 되고 있다. 결국 그가 돌아왔을 때그를 마중 나온 사람이 딸이었다는 것은 입다의 서원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것이고 잘못 되었다는 것인가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서원에 얽매어서 딸을 죽였는데 이런 것은 사사시대의 사사들,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구원을 일으킨 그런 사람들을 너무완벽한 사람들로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할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까지 흘러온 사사기의 전체 흐름을 볼 때 또 사사기 초두에서이야기한 대로 세월이 갈수록 이전 시대보다 그 다음 시대가 더욱 부패했다는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이것은 결국 교회의 지도자로 세운 사람들 조차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했고,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긴 했으나 다른 한편 얼마나 그들이 영적으로 무지했고, 상식 있는 자 곧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자라고 하면 분명히 이것이 어긋난 일이라는 것을 알만한 데도 무모한 짓을 행한 불상사였다고 생각한다.
주변국가에서는 아주 후에 일이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모압을
칠 때 거의 성이 함락될 위경에 처했을 때 모압 왕이 자기의 황태자를 잡아서 제사를 지낸다. 이렇게 주변국가에서는 위경에 처했을 때 사람을 죽여제사하는 일이 있었다. 만일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하면 입다가이스라엘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 나가면서 그와 같은 서원을 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세상의, 이방의 타락한 종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었는가알 수 있다. 기드온시대 이후로 이스라엘의 타락의 도가 얼마나 심화 되었는가를 암시하고 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11장 (7) 입다
(7) 입다 사사시대[11장]
그 다음 중요한 사사로서는 입다의 출현이다. 이때는 압몬족속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이다. 입다는 길르앗 출신이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 땅 므낫세반지파와 르우벤과 갓지파가 차지하고 있던 그 땅이다. 용사였으나 출신이미천하다. 미천한 출신이기 때문에 형제들이 자기들 가운데 유업을 주지않고떠나라고 해서 비류처럼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외침에 의해위기를 당하게 되자 입다가 용사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장로들이 입다를 청해서 그들의 방백이 되어서 암몬자손들과 싸워 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이청을 들으면 길르앗 거민의 우두머리로 삼을 것을 약속하자 입다가 이를 수락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의 진행 과정 자체가 과연 얼만큼 타당한 것인가, 물론 나중에 입다가 정작 암몬자손과 싸울 때에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지만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를 사용하셨다고 해서 그의 모든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전혀 하자가 없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별히 암몬자손과의 전쟁을 앞두고 만일 여호와께서 이번 전쟁을 승리하게 하시면 나를 맞으러 나오는 자를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이기고 돌아 왔더니자기를 맞은 사람이 무남독녀 딸이었다. 이미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해서 크게 슬퍼하는 가운데 그 딸이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스스로 죽겠다고 한다. 얼마간 기간을 주어서 처녀로 죽음을 슬퍼하게 해 달라고 한 다음에 기록된대로 그렇게 하였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9장 (6) 아비멜렉의 난구
(6) 아비멜렉의 난[9장]
기드온이 죽고 난 다음에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첩의 자식이 등장해서 자기어머니가 세겜출신 여인이니까 거기에 가서 혈연에 호소한다. "당신들과 나는피가 같지 않소 그러니 당신들은(기드온이 남긴 아들이 70명인데) 그 사람들의 통치를 받겠소, 나 한 사람의 통치를 받겠소"라고 선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우고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70아들을 한 반석에서 잡아 죽인다. 요담만 겨우 난을 면해서 도망한다.
아비멜렉이 이처럼 기드온의 아들들을 다 죽이고 핏줄에 호소를 해서 이스라엘의 왕, 교회의 지도자가 된 그 사건이 결국 무얼 의미하는가를 암시하는하나의 비유를 말하고 있다.
감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등과 같이 열매를 맺는 즉 남에게 유익을끼치는 나무는 한결같이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며 하나님과 사람을영화롭게 섬길 뿐이요 사람 위에 군림하기를 오히려 거부한다. 그 대표적인사람이 기드온이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 왕되기를 요청한 백성들의 원하던교회의 지도자상이 세상에서 군림하는 영웅적인 모습의 지도자상 이었는데이것은 나중에 사울에게도 그대로 확인이 된다. 사울을 묘사할 때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로 머리 하나 더 컸다고, 곧 장대하고 얼굴이 준수한 영웅적인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아비멜렉이 혈연에 호소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데 스스로 왕되기를 자임하고 나선 아비멜렉의 정권의 성격이어떠한 것인가를 가시덤불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히 이야기한다. 가시덤불은불쏘시게 외엔 아무 쓸모가 없다. 남에게 유익하지 않다. 이런 쓸모 없는 자들은 우리의 왕되기를 원한다. 이와같은 왕권은 철저한 전제주의, 왕에 대한 절대 복종을 요구하고 이를 위해서는 폭력정치 즉 자기편을 보호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징치하고 숙청하는 그런 정권이다. 이런 비유를통해서 새로이 들어선 교회의 지도자, 정권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그리고 결국 이 정권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서로 망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사실 그대로 이루어졌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을 치는 도중에 마지막에 여인이 던진 멧돌에 맞아 죽게된다.
사사시대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타락해져 가는 과정을 추적할 수가 있는데하나님께서 교회로서 존재할 것을, 교회란 곳이 어떠해야 하며 교회는 이러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모습을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로 부터 책망을 듣는 것이다. 교회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을 성결케 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단번에 가나안 족속을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 자체가 그들을 남겨 두시고 두고두고 그들을 연단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가장 근본 원인은 그들이 전쟁의사를 포기했기때문이다.
그와같이 시작된 이스라엘의 타락이 결국 드보라에 와서는 이미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에는 무관심하고 방관적인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교회의하나됨이 이완되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란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나타난 과정을 추적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기드온 때 오면 백성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교회 지도자상에 대한 오해와 변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에게도 세상 지도자와 같이번쩍거리는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처럼 교회가 세상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8장 (5) 기드온 사사시대구
[8장]
미디안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나와서 왜 우리는 안불렀느냐고 한다. 기드온이 겸손했던 것 같다(그는 므낫세 출신이다). 그렇게겸손하니까 무마가 된다. 이것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그 때까지는 이스라엘의 주도적인 역할을 에브라임지파가 맡아 왔던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하는데 왜 내 허락없이 함부로 그런 일을 했느냐고 한다. 이것은 지도자의 허세다.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지도 못하면서(하나님께서 자기를 지도자로 세운 것을 알았다면 나서서 일을 해야지 가만히 있다가) 남이 다 해놓고 나니까 그 때서야 나와서 큰소리다. 이것은 영적 능력을 상실한 지도자의 허세다. 이러한 능력 상실한 지도자의 허세가 입다 때 가서는 이스라엘을 동서로 완전히 갈라놓는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갈수록 이스라엘의 타락이 심화되는 만큼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돋보이게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암시를 준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셔서 교회를 다스리도록 하신 만큼 일반 단체에서도볼 수 있듯이 지도자가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그런 만큼 책임도크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적 지도자, 그 영적지도자들을 거론하면서 그들의 타락을 얘기할 때 단순히 그 지도자 한 사람의 죄악을 얘기하기 보다는지도자란 것은 또한 백성을 대변하는 자이기도 하니까 이스라엘의 전체적상황을 암시하기 위해서 지도자의 영적 상태를 말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사사기에서도 지도자의 영적 능력 상실 즉 도저히 사명을 감당하기가 역부족인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은 지도자의 부족한 모습을 이야기하는 동시에당시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앞에서 이스라엘의 전체에 대해 말씀한 이야기들이 지도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백성과 지도자 모두 전쟁을 포기한것이다.
그리고 공존의 길을 택하였고 다른 신을 섬기는데 지도자가 앞장 섰든지아니면 백성들이 부추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가 공동체에 차지하는비중, 끼치는 영향력, 직분상의 권위 등을 생각할 때 특히 사사시대 때 형편과 관련해서 생각할 것은 그들이 분명 앞장 서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더 큰 책임이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지도자로서 당연히 감당해야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책망 한 가지가 덧붙여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왜 타락일로를 걷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앞에서 몇 가지 이야기했다. 즉전쟁의사 포기, 신앙의 변질 이것이 그대로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지못했다는 것 한 가지가 덧붙여져야 한다.
기드온시대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가? 기드온의 반문을 통해서 짐작 해 보면 옛날에 우리 조상들을 놀라운 능력으로 구원하셨던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영적 무지와 그들이 당하는 상황의 진정한 원인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무지를 나타내지만 동시에 이전에 그들의 교회를 놀랍게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능력이 지금은 과연 사라지고 없는가?하는 심각한 반문이 가능할 정도로 은혜가 핍절한 정도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영적으로 매우 곤고한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긍휼이 여기셔서 연약한 기드온을 세우시고 이런 저런 모양으로 그의 믿음을 준비시켜서,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교회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케 하셨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전혀 무력하였고 그들에게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은 실패와 타락되고 변질된교회의 모습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혀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않은 미디안 군대에 대한 승리는 곧 하나님의 승리는 더욱 돋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기드온을 통해서 베푸신 구원 이 구원은 사사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구원으로
꼽힌다. 히 11장에 사사들의 인물이 언급이 되지만 특히 이사야서 같은 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놀라운 구원을 말씀하면서 무엇에 비교하고 있는가 하면 '출애굽과 미디안의 날에'라고 비교하고 있다. 출애굽의중요성은 새삼 언급치 않아도 잘아는 것이고 미디안의 날이라고 하는 것은 기드온을 통한 구원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출애굽의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비견되는 구원이다. 사사시대의 하나님의 구원의 대표적인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사사시대의 꽃이라고 할 수있는 기드온시대 곧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이 가장 돋보인 이 시대는 또한 하나의 분기점이 된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구원체험이 이스라엘을 패괴케하는계기가 되고만다. 여기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하나는 우선 이스라엘백성이 기드온에게 당신 집안이 이스라엘을 대대로 다스려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와 같은 요청에 대해서 기드온은 일언지하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린다는 말로 일축하고 만다. 나와 내 아들도 결코 너희를 다스리는 것이아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시요 그가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왕제도를 부정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 통치자를 통한 간접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바람직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많이 얘기를 하지만 그러나 직접적인 통치냐 간접적인 통치냐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기드온 자신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고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요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다스린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분명히 백성들의 요구 속에 적어도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는 요소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사사시대 서두에서 여호수아가 명백한 후계자를 남겨놓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을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백성들이 공식적으로 하나님께 물은 것인데 거기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물었겠는가? 통성으로기도를 했겠는가? 나중에 사사시대 여러 경우를 보면 대개 어떤 식으로 물었는가 추측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제사장을 통해서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사시대 때 여호수아와 같은 그런 사역을 감당할 지도자는 없었지만 제사장이라는 또 다른 하나님의 통치의 중보자(그런 영적지도자)는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지도자 공백기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하던 그런 성격의 지도자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도자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치 하시느냐 아니 하시느냐 그것이 관건인 것이다. 이런 것이 전제가된다고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서 구원을 베푸셨는데도, 당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으니 당신과 당신 아들이 대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려 달라고 하는 백성들의 질문에 대해 그냥 못하겠다고 하지 않고 왜 여호와께서 다스린다고 말을 했을까? 그말이 있고 난 다음에 나와 내 아들도 결코 다스리지 않겠다고 말을 했는가? 이 말에 대한 배경에 대해 잘 생각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백성들의 요구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요구 속에는 적어도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참통치자이시라는 것을 부정하는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나중에 사울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본래이스라엘에 왕을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즉 다윗을 세우기로 하셨다. 그것은이미 창세기 때 이미 다 예언을 하신 것이고 그리고 구약에서 세워진 다윗왕 이라는 것도 그 자신이 궁극적인 왕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왕 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문제는 백성들이 요구한 왕상, 왕권의 본질과 성격이 무엇인가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열방처럼 우리도 왕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교회 밖의 대적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여호수아 같이 일사불란하게 백성을 이끌어 줄 지도자는 없고 그리고 시대가
진행될수록 백성들의 마음은 자꾸 갈라진다. 적과 싸우는 전쟁에 있어서 의욕을 상실하고 어떤 한 지파에서 큰 위기가 있어도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식으로, 말하자면 교회 내부의 긴밀한 결속감이 점점 붕괴되어 가고 느슨해져 가는 그런 과정이 시작되고 있음은 드보라 사건에서도 이미 살펴 보았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쳐들어와서 쑥밭을 만드는 이방나라들을 보니 그 나라에는 왕이 있다는 것이다. 옛날 전쟁은 지금과 달라서 전쟁이 거의 백병전이다. 그래서 전쟁을 좌우하는것은 사기다. 심리적으로 지기 시작하면 그 전쟁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대개보면 전열선두에 누가 서는가 하면 제일 강한 용사가 서거나 왕 자신이 앞장을 선다. 영웅적인 모습으로 군대 앞에 서서 호령을 하면 군사들이 나아가서 전쟁을 하는 그런 양상인데 열방들은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이스라엘을 몰아붙여 초토화시키니 아무래도 우리도 저런 조직을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도 그렇지만 국가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것 중에 하나가 정권이양 곧 승계문제다. 사사들은 어떤가? 하나님이 세우고죽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면 그 다음은 또 무정부 상태다. 그러니 또야단법석이 나고 그래서 안되겠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를 보니까 세습제다. 그러니 정국이 안정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도 저러한 지도자 즉 왕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드온에게 청을 한 것인데 기드온이 그 요청의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그들의 요구의 성격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교회)은 하나님께서다스리시는 곳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한 것이다.
기드온이 300명을 뽑은 것을 가리켜 전쟁을 수행할 믿음이 준비된 사람을뽑은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별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여기 이스라엘백성의 기드온에게 한 요구에 대해 그 속에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성경에는 뚜렷이 그렇다고 말씀하고 있지도 않은데 너무 지나친 추측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글의 흐름을보면 바로 이어 지는데 아비멜렉 정권으로 이어진다. 거기서 전체적인 흐름이 나타난다. 백성들의 잘못된 요구에 대해서 기드온이 교회는 어떠한 곳이다라고 분명히 하고 있고 또한 그 교회를 다스리는 분이 누구시라는 것까지는 참 좋았다. 적어도 기드온에게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분명한 한 가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암시 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백성들 편에서 그들이 원하는 교회 지도자상이 이미 상당히 변질되고 있다는것이다. 교인(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지도자상 즉 교회는 이런 사람이지도해야 된다는 생각에 많은 변화, 변질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있다. 그 다음 그들의 잘못된 요구에 대해서 교회의 성격과 본질을 기드온은 분명히 했다.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다해놓고서는 곧이어 기드온의 실수가 시작된다. 기드온이 가장 돋보이는 시점에서부터 또한 나락의길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그가 전리품을 가지고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에봇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이잘못된 교회 지도자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암시가 되었듯이 이미 백성들 자체 속에서 믿음의 변질이 오기 시작했는데 기드온이 세운 에봇과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결합이 되어서 우상숭배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기드온의 본래 의도가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그가 행한 일이 계기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오도하는 불상사가 생겨났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7장 (5) 기드온 사사시대
[7장]
기드온이 군사를 모은다. 22,000명을 귀환 시키고 10,000명만 남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여든 많은 군사들을 정선하는 일을 행하시는데 첫째 모여든사람 32,000명 중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아가게 하시니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는다. 그 중에서도 물을 핥는 자(엎드려 먹는 자 말고)300명만 선정한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군사 숫자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고숫자를 줄여가신 이유에 대해 많은 군사들로 승리를 하면 자기들의 힘으로행한 것으로 알고 자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스스로 영광을 취할까 염려하셔서 그렇게 행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당시 형편을 암시하는 다른 뜻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32,000명이 모였는데 두려워하는 자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다. 두려워 한다라고 하는 것은 마지 못해 억지로 전쟁에 나온 사람들이다. 전혀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각오도되어 있지 않고 믿음도 없는 자라는 이야기다. 특별히 시내에서 물을 마시게 함으로서 그 태도에서 과연 전쟁을 행할 만한 준비나 자격을 갖춘 자인가를 시험한다. 결국 온 이스라엘 중에 남은 자 즉 전쟁을 수행 할 만한 자가300명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역으로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형편이 어떠했는가를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보라시대에는 스불론,납달리지파같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여호와의 전쟁에 자신을 헌신한 지파가그나마 있었는데 기드온 때 오면 300명 이외에는 전혀 쓸모없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군대로서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전쟁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수행할 믿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구원 베푸심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요, 숫자가 많아서 이긴다 할지라도 결코 자고하거나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믿지않고 전쟁의 의미를 바로 이해 하겠지만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 즉 오합지졸을 모아서 전쟁을 해서 이겨 놓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겼다고이야기 하겠는가? 자기 생각대로 자기들 능력으로 이겼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돌려 보내시면서 이대로 내어 보냈다가는 자기 숫자들 힘으로이겼다고 할 것이니 도저히 안되겠다고 그 수를 줄이라는 말씀의 배후에는이러한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폐허상황, 곧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감당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300명밖에 남지 않은 교회적 상황을 암시하는 뜻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런 소수의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정병으로서 준비가 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이렇게해서 그들이 가서 한 것이라고는 항아리 속에 휄불 집어넣고 항아리 깬 것밖에 없다. 그럴 때 미디안 군사들이 자기들 끼리 쳐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래서 망한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 의한 승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나타나고 기드온이 부르자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인다.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벌어지는 상황이 8장에 나타난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6장 (5) 기드온 사사시대
(5) 기드온 사사시대[6장-7장]
그런데 사사시대가 끝나자 또 이스라엘이 타락해서 하나님께서 미디안 손에 붙이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산에 가서 살 정도로 완전히 자기 기업의땅에서 다 쫓겨나서 굴을 파고 사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교회에서도 그렇다. 실질적으로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교회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구석에 쫓겨나서 굴을 파고 사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형편이 난감해져 갔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어서 죄를 책망 하신다. 그 책망을 통하여하나님께서는 근동에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손아귀에서도 소수의 미약한이스라엘을 구원해 낸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출애굽을 언급한 것은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긴다니 어찌된 일이냐?라는 책망이다. 그런데 그런 책망을 듣고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별 무반응이었던 것 같다.
[6:11-12]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께서, 밀을 떨어 미디안의 눈을 피해서 숨기려고 하는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구원을 약속하신다. 그러자 기드온이 반문을 한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가?[13-14]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이적 기사들은 도데체 어찌 된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셨으나 지금은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손에 붙이지 않으셨읍니까? 기드온의 이러한 반문은 실제로는 얼마나 무지한자인지 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 붙이셨는지 이유 조차 모르는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무지하고 미디안의 눈을 피해 밀을 숨길 정도의 비겁하고 연약한 사람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맡긴다. 우선 바알의 단을헐고 아세라를 찍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우선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할 자의 신앙의 재정비라 할지 신앙의 정화를 명하신다. 그리고 이런 여러가지 연단을 통해서 연약하던 기드온을 하나님을의지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용사로 점점 변모 시켜간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여선지자가 나타난 이유
* 여선지자가 나타난 이유
그런 위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우셨어도 그 하나님께서 명하신 전쟁에 자원하여 목숨을 걸고 나선 자가 별로 없었다고 하는 뜻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 드보라의 노래에 단편적으로 암시된 내용에 비추어 보면 4장에서 시작되는 드보라에 관한, 서술체로 된 내용이 더 분명해 질 것이다.
왜 여선지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는가? 남자가 자기 일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이라고 보기 보다는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뜻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전쟁이나 혹은 다스리는직분이라는 것은 결국 남자가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러운것이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을 거역하게 될 때 온갖 질서가 뒤바뀌게 되는데 뒤바뀌는 모습을 말하기를 여인이 남자를 다스리게 될 것이고어린 사람이 노인에게 공갈을 하고 위협을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있다. 이 말은 질서가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남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나이 많은 자가다스리는 지위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렇지 못할 때 즉 남자가 남자의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이 많은 자가 나이 많은 자 값을 못하면 결국 질서가 전도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판의 한 형태다.
결국 드보라의 경우를 통해 암시하고자 하는 바는 그 당시의 그와 같은 교회의 위기 상황을 감당해야 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 책임을 감당하지못했다는 말이다. 특히 바락과 같은 사람에게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전쟁을 하라고 명하셨는데도뒷꽁무니를 뺀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정복하기를 포기했다. 하나님께서 이 영역에서 그의 거룩한 나라를 이루라고 말씀하셨는데아예 포기를 해 버린다. 그리고 적당히 함께 살자고 했다. 그런데 함께 살자가 될 수가 없다. 결국 옆구리의 가시처럼 찔려서 그들의 종교적 타락과도덕적 타락에 오염이 되어서 이스라엘의 자세가 자꾸 변질이 되고 그러니이스라엘의 존재 자체의 의미가 자꾸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니 교회가 완전히 결단이 나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교회가 일반 믿지 않는 사람의 통제를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그 꼴이 어떠하겠는가?바로 그런 모습이 된 것이다. 교회에 속하지 않은 세력에 의해서 교회가 좌지우지 되고 지배를 당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것이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심판이다. 이렇게 교회가 완전히 위경에 처했는데 당연히 나서서 싸워야 할지도급 인사들이 무얼 하는지 전혀 손을 쓰지 않는다. 이와같은 일들이 교회 내에서 처리가 되어야겠다는 소리가 들릴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강건너불구경 하듯이 내버려 두고 가만히 있었다. 드보라가 등장할 때까지 이스라엘의 형편이 결국 이러했다. 처음에는 함께 살자고 했다가 결국 그들에게물들어서 교회가 완전히 변질이 되고 세상 사람들이 판을 치는 그런 세상이되어 버렸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위경에 처했을 때 안되겠다고 이야기를 해도 그저 강건너 불구경이다. 다행히 목숨을 걸고 나선 사람도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교회를 다시 세우시는 은혜를 베푸시기도 헹다. 그것이바로 드보라의 승리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5장 (4) 여선지자 드보라
[5장]
사사기 5장은 우리 말로는 매끄럽게 번역이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구약을공부하는 사람에 있어서는 가장 해석하기 까다로운 장 중의 하나이다. 사용한말 표현 중에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많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내용에있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대체적인 내용을 이야기 한다면,첫째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을 찬송한찬송시인데 이러한 말로 시작된다. 2절 말씀 중에 "이스라엘의 두령이 영솔하였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이해하기 힘든 단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에는 '플로아'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 말은 나실인들이 서원한 기간 내에는 그 규례대로 머리를 장식하지 않고 늘어 뜨린 채로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문자 그대로해석하면 "머리를 풀어 헤치는 일이 있었을 때"인데 그러면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해석하기가 난감하다. 그런데 그 다음 말 그것과 짝을 이루는 말이 "백성이 즐거이 헌신 하였을 때"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과 관련시켜 보면즉, 머리를 풀어 헤친다는 것이 백성들이 헌신한 것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머리를 풀어 헤친다는 말이 헌신과 관계가 된다면 이스라엘이 시스라와전쟁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생각 할 때 백성이 자원(헌신)했다고 하는, 즉전쟁에 솔선해서 참여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 것과 관련해서 머리를 풀어 헤친다는 것이 만일 이것이 나실인적인 배경을 갖는다면 나실인은 특별히 자신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성별해 드리는 기간을 이야기한다. 그 기간이 평생이 될 수 있고 일정 기간도 될 수 있다. 이렇다고 한다면 하나의 나실인의그것을 상징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 할 수 있겠다. 나실인이 자신을 철저히구분해서 하나님께 드리듯이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자신을 철저히 헌신한 그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상상을 엉뚱하게 해서 하는 말이 나실인들이 머리를풀어헤친다는 뜻이 있으니까 대개 전쟁을 할 때 이상한 모습을 하는 경우가있는데 그렇게 상대에게 공포감을 주고 자신에게 신적인 각오를 다지기 위해 머리를 풀어 헤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즉, 민족에 따라서 얼굴에 페인트를 칠하든지(인디안 같이) 괴상한 탈을 쓰고 나간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렇게 전쟁을 하는 모습을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이야기를 한다.
여하튼 2절의 내용은 교회를 괴롭히는 대적과의 싸움에 있어서 헌신한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헌신했다고 하는 것이그렇게 단순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이것만 보면 온 이스라엘이나서서 자원 했다는 정도로 들리기 쉬운데 그 이하의 내용을 읽어 보면 그렇지 않다.
[3-5절]
이 때까지 이스라엘을 선대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 역사에 대해서말씀하고 있다. 출애굽시대부터 하나님께서 어떠한 위대한 일들을 행해 오셨는가를 조금 언급을 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경이로움에 대해서 잠깐 말씀한다. 4절 "하늘도 새어서" 하늘에서 물을 내렸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갖게 하는 현상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베푸신 구원의 능력의 위대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시대가 지날수록 쇄락의 일로를 걸었던 것이다.
6-7절에 "....." 길이 그쳤다는 것은 통행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상황이 위험해서 사람들이 길을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시스라가 굉장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땅에 상주하면서 포악한 정치를 베푸니 사람들이 길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는 그런 뜻이겠다. 길에는통행이 없고 농촌의 삶이 불가능해졌다. 마을에 내려와서 사람 사는 곳에서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말이다. 나중에 기드온시대에도 나오지만 미디안이 쳐들어 왔을 때는 사람들이 동네에 거주하지 못하고 전부다 산에 굴을 파고 지냈다고 했다. 그와 비슷한 상황이 드보라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퇴락한, 거의 폐허화 된 모습이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 계속되었다. 즉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는 이스라엘이 그런 지경이었다는 얘기다. 8절에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무리들이 즉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다 외적들의 침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적이 침입했는 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4만명 중에....보였던고" 4만명 가운데 방패와 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어떤상태를 의미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전혀 전쟁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무력해졌다는 것이다. 교회가 능력을 상실해서 외적의 침입에 대해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9절에 "......" 우리말 성경(개역성경 표기)은 이것을 긍정적으로 해석을하는데,"여호와를 찬송하라"는 말이 나오니까 그 앞의 내용이 긍정적인 내용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으나 그러나 여기 찬송하라는 것은 나중에 이와 같은 상태에서 행하신 일을 염두에 두고 찬송하라고 한 것이다. 오히려 그 안의 내용과 부합되게 해석한다고 하면 9절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관원(이스라엘을 통치한 지도자, 교회의 지도자)들이 특별히 백성들 가운데서 자신을 헌신한 자들에 대해 내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교회가 이런 위경에 빠진 때에 자원해서 교회의 위경을 해결해 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내 마음이 간절했다. 다시 말하면 제발 좀 누가 나서서 이러한 교회의 위경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이 없는가? 안타깝게 기다렸다는 그런 뜻이 될 것이다.
10-11절 "흰나귀를 탄 자들" 신분이 높은 그런 사람들 즉 귀인들이다. 직역을 하면 '흰나귀를 탄 귀인들아 생각을 해 보라 그리고 이하의 내용이 샘물가에 있는 자들의 음성을 좀 관심있게 들어 보아라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서 행하신 의로운 일들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들어보아라. 또한 이스라엘에 행한 의로운 일들 하나님이 세우셔서 그들을 통해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우물가에 모여서 이야기 할 때 들어 보아라'가 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과거 역사 동안에 교회가 위경에 처했을 때 어떤 인물들을 일으켜서 그들을 통해 어떤 구원을 행하셨는가를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에 좀 귀 기울여 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결국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가 그 처럼 위경에 빠져 있는데 그것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지도자로서의 맡은 바 책임 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바락이여 일어나 포로를 잡을지어다"라고 이야기했다. 마땅히 이런 위경에 처했을 때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 교회 지도자들이 가만히 손을 묶고 앉아 있으니 결국 백성들이 누구에게 갔느냐 하면 드보라에게 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드보라가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래에서만 나올 뿐 만 아니라 바로 앞에서도 이것과 비교 해 보면 상황이 대개맞아 들어간다.
드보라가 먼저 바락에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은 바락이 꽁무니를 뺀다. 당신이 함께 가야 내가 하겠다. 그 때 드보라가 일어나니 남은백성들 즉, 여러 지파들이 다 모였다. 15절에 보면 이렇게 많은 지파가 모인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 지파들이 하나님의 전쟁에 소극적이었다. 전쟁에 아예 참여치 않은 지파도 있었기 때문에 책망하는 말이 나온다.
특히 '르우벤 지경에 대한 나의 마음에서 찾는 소원이 아주 컸다'는 말은
결국 이 전쟁에 르우벤(요단강 동편 지경)사람들이 와서 좀 도와 주었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말이다. 옛날 여호수아 때 정복전쟁을 할 때 먼저요단강 동편에 정착한 두 지파 반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앞장서서 전쟁을 수행했다. 그때 일을 기억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 거기는 별 탈이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주된 공격로가 갈릴리 북쪽이다. 그리고 그들의 압제를 심하게받았던 지역이 납달리, 스불론 즉 북부 갈릴리 주변 지파들이었다. 이들의압제를 직접 받지 않은 요단강 동편지역 사람들이 와서 좀 도와 주었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 "르우벤 시냇가에서큰 결심이 있었다"(15절)라고 히브리 원문을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석을 하면 그 다음 말과 전혀 연결이 되지않는다. 그들에 대한마음이 컸다는 것은 그들이 좀 와서 어떻게 해 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소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16-17절 "......" 여기에 보면 특별히 르우벤과 요단강 동편지역과 아셀지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양 우리에 앉아서......
어찜이뇨" 양 우리 옆에 편안히 앉아서 양 떼 부르는 휘파람 소리나 듣고 한가하게 앉았는가라는 말이다. 요단강 동편지역의 사람들아! 이 전쟁의 참화가 너희에게 미치지 아니하니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어찌된 일이냐 하는 책망이다. 그런데 18절에 보면 스불론과 납달리는 자기의생명을 돌보지 않고 이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이들이 전쟁을 수행했는데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셔서 이들을 통해 열왕을 쳐부셨다고 되어있다.
19절 "......" 이 말은 그들이 어떤 유익을 바라고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된 믿음에서 자원하여 참여한 이 전쟁은 하늘에서부터의 싸움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싸우셨다는 말이다(20절).
23절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메로스에 대해서는 저주를 받을지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야엘에 관해서 말하되 여자 중에 칭송 받을지어다. 야엘은 여인이다. 이것은 반대로 바락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남자가 전쟁에 나서야하는 것은 당연한데 남자가 나서지 않으니 여인이 나서서 큰 일을 하게 된것이다. 마땅히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 감당하지 않고 있으면 여인이라도나서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땅히 일을 감당해야 될 사람을 향한 경고요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그런 뜻이 속에 들어있다. 전쟁에 자원해서 참여한 지파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전혀 관심도갖지 않고 뒤에 물러 앉았던 지파도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 하면, 이전에 옷니엘이나 에훗시대에는 에훗이 모압왕 에글론을 죽이고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불었다. 즉 전쟁신호를 해서 온 이스라엘을 모아 모압을 쳤는데 아마 그때까지는 이런 전쟁에 있어서 각 지파간에 유대의식이 강해 합심해서 어떤 일에대처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드보라시대에 오면서 사람들의마음이 다 나뉘어져서 자기 앞에 불똥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저 강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앉아있는, 그리고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처한 위기에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할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여선지자 드보라 / 노래
* 드보라의 노래
그런데 이 드보라의 사건은, 드보라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케 하는 것들이 있다. 얼핏 보면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여선지자의 출현 그녀가 또한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던 것, 그런데 단순히 여사사가 다스렸다고 끝나지 않고 전쟁을 수행하는데 남자 사사라고할 수 있는 바락을 일으키셨는데 바락은 또 하나님께서 사명을 부여하셨다는말씀을 듣고도 달갑게 순종하지 않는 비겁한 모습들 등 대개 이 정도만 눈에 띄는데 그러나 자세히 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뭔가 있다고 하는 느낌을주게된다. 즉 이런 간단한 서술이 무엇을 배경으로 하는가? 이 간단한 서술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그 다음에 나오는 드보라의 노래라는 것이다. 노래라고 하면 대개 별내용은 없고 그냥 노래다 싶어서 슬쩍 지나가는데 그러나 그 속에는 드보라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그것이 어떤 시대적 영적상황을배경으로 되어진 일인가를 우리에게 알게 해 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여선지자 드보라
(4) 여선지자 드보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왕 야빈에게 붙이셨다. 갈릴리 북쪽에 있는 강대한 나라 하솔에서 통치하는 야빈 왕에게 붙이셨고 특별히 군대장관 시스라가 하로셋에 진치고 상주하면서 이스라엘을 심히 괴롭혔고 그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어서도저히 대적치 못할 강대한 세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은 철병거라는것이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당시에는 요즘의 보병들한테 탱크와 같은 의미를가진다. 이때 드보라라는 여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다스리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바락이라고 하는 사람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하솔왕의 손에서 특히 군대장관 시스라의 손에서 구원하도록 요청한다. 그럴때바락이 혼자가지 못하고 드보라에게, 함께 가야만 내가 전쟁을 수행하겠다고 하자, "당신이 이번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고 대신 여인이 그 영광을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이 크게 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시스라가 패하고 도망하여 겐 족속 야엘이라는 여자가 있는 곳에 들어 갔는데 여자가 그를 잠들게 한 다음에 머리를 쳐서 죽이게 된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3) 첫 사사 옷니엘의 출현
(3) 첫 사사 옷니엘의 출현
이런 하나님의 선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역사적 실례들을, 사사시대를 통해 가장 두드러진 실례들을 3:7이하에서 기술하고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타락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람 나하라임 지역(지금의시리아북부 옛날의 하란지역,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강 상류 북쪽의 하란지역) 구산 리사다임이란 왕의 손에 붙여서 18년간 압제를 받게 하신다. 그럴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일으키셔서 그들 손에서 구원하게 하시고 40년간 나라(교회)가 평안하였다고 되어있다.
그 후 옷니엘이 죽고 나니 또 이스라엘이 타락하였고 타락하니 하나님께서진노 하셨고 그래서 이번에는 모압왕 에글론에게 붙이셨고 그럴 때 이스라엘이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에훗을 일으켜서 그들 손에서 구원하시고 80년간 교회가 평안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3장 (2) 시험의 의미와 목적
(2) 시험의 의미와 목적
[3:1-4]
여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그들이 여호와의 길을쫓아 행하는지 그것을 알기 위해 시험하셨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로하여금 전쟁을 가르쳐 알게하기 위함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단번에 구원하지 않으시고, 모든 대적 세력으로부터 일시에 구원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남겨두신 것은 그들을 시험하려 하신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시험의 내용이라는 것은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는가? 그것을 아시기위해서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시험이라는 말이 나올 때 마다 하나님의전능하심과 전지하심과 그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 드는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데, 즉 우리가 얼만큼견딜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또 우리의 연약함과 악함과 부패함을 다아시는데 무엇을 또 구태여 알아 보시려고 시험하시는가? 특히 신명기 같은곳을 보면 내가 너의 체질을 안다고 하셨다. 그 체질이라고 하는 것은 의학에서 사용하는 그런 체질이 아니고 영적인 체질을 뜻하는 것이다. 정확히말하면 우리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존재인지 아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과부패성을 다 아시는데, 어떻게 될 것인지 다 아시는데 또 시험하시겠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의아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시험하시겠다고 할 때 그것은 대개 긍정적인 의도를 내포한 시험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체질, 믿음의성격을 모르셔서 알아 보시기 위해 시험하신다는 뜻보다 아시기 때문에 시험하신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시험하실 때는 연단의 의미를 갖는다. 그와 같은 어려움을 통해서 연단을 받게 하시는 그러한 의미의 시험인 것을 광야시대의 역사를 통해서나 그 이후의 여러 가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일시에 멸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남겨 두셨다. 남겨두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계속 전쟁을 하도록 하셨다는 이야기다.
가나안 정복, 정착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또 역사라고 하는 것, 곧 성경의역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된 땅에 견고하게 뿌리를 박는삶이다. 그것이 성경의 역사다. 가나안 땅이 우리에게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복된 영역이다. 그래서 신약에 오면 바로 이 땅이라고 하는 것이 성도가 받을 기업(구약에서 이 땅을 기업이라고 했다) 즉, 믿는 자가 받을 축복, 구원과 동일시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의복된 다스림 속에 사는 삶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구약에서의 땅이라고 할 수있다. 따라서 가나안 정복, 정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약속의 땅, 약속하신 축복 속에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그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약속의 땅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이 과정을 하나님께서는 대적 세력을남겨 두셔서 계속 싸우게 하심으로서 끊임없는 긴장 속에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로 하여금 전쟁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도 이해하기 곤란하다. 전쟁이 뭐가 좋은 것이라고 그냥 차라리 편안하게 지내게 하시면 오히려 나을 것인데 왜 전쟁이라고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하시는가?
그러나 전쟁을 반드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그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붙잡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쟁인 것이다. 이 전쟁이 독특한것이기 때문에 결국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경험하게 되어 있는가하면 교회 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있는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전쟁을 통해서 오히려 믿음이 성숙하게 되고 믿음이 더욱 확실해져 간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훈련해 가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시험의 긍정적인 목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전쟁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들과 끓임없는 전투를 통해 악을 제거함으로써 성결한 백성의 모습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의 표명이요,이와 같은 과업을 교회에 맡기셨고, 교회는 이와 같은 사명을 감당함으로써그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어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니 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 간다고 말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외적인 전쟁인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것은 영적전쟁의 차원을 그 자체가 포함하고 있고 또한 이것은 신약의 교회가 겪을 그것을 예표, 상징하는 의미도 있겠다. 마치 이스라엘이정복, 정착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축복 속에 더욱 뿌리를내리는 그런 과정이었듯이 신자들도 죄와 끊임없이 싸움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 축복 속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는 영적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롬 5장에서 이것을 표현하기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말씀으로 표현한다. 환난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긍정적이지 않은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신자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신자를 낙담하고 절망케하는 것이 아니고 매우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다는 것이다. 지상교회가 편안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끊임없는 마귀의 도전과 파괴공작이 연이어교회 안팎에서 있을 것인데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믿음으로 대처하면 그들과의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체험하게 되고 또한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연단받고 더욱확실해져가고 믿음이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시험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긍정적인 데로 더 나은 상태로 인도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다 멸하지 않으시고 남겨 두셨다고 하는 것은,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 그러셨다는 것은 이와 같은 뜻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대적 세력인 가나안 족속이라는 구체적인 세력들과 싸움의 방식도 칼과 창으로 싸웠으니 오늘 우리하고는 사정이
다르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물론 외형적인 차이는 분명히있으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외형의 모습은 다르지만 그러한 외형적인 전쟁은 우리와 동일한 영적인 차원의 전쟁이며, 시련과 연단의측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믿음 없이 싸움을 할 수 없다. 그것이 외적인전쟁이든 내적인 전쟁이든.
이런 목적에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다 멸하지 않으시고 남겨 두시어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계속 영적인 전쟁을 수행케 하심으로 그 전쟁을 통해 연단받게 하시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그 전쟁의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전쟁의사를 포기 해 버리고 그저 적당히 타협해서 공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악을 제거하시고 교회의 영역으로지정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의로운 나라로 거룩한 나라로 세우시려고 하는 근본적인 뜻이 좌절되게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이상 교회로서의 존재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전쟁을 포기할진대 나도 더 이상 너희의 대적을 너희 목전에서 축출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3장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가,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전쟁을 가르쳐 알게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또한 율법준수여부를 알고자하심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의도, 전쟁을 가르치는 것이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생존의 전쟁때문일까? 그것은 영적훈련과 믿음에의 훈련 때문이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 믿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의 전투적 성격을말하는 것이다. 2:22, 3:4절의 목적과 관계 있는데 이 전쟁 속의 시련 속에서 그들의 믿음을 훈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나 6절에 보면 그들은 가나안과 통화하며 그들의 신을 섬겼다. 정치적으로 공존, 지역적 혼합생활, 물리적 교환 등은 종교적으로 발전하여 혼합주의의 이방 우상숭배로발전한다. 이를 통해 가나안 진멸의 이유를 알 수 있게끔 된다.
가나안 → 이방신 숭배 → 종교, 도덕 타락 →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어 타락에 빠짐 → 그들의 신을 섬기게 됨 → 이스라엘의 배도 → 하나님의 심판(징계) → 그들의 간구 → 하나님의 구원(응답) 이러한 도식이 사사기에 성립된다.
(건지는 자들) : 사사를 이렇게 타락으로부터 건지는 구원자들로 말한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직책과는 다른 것이다. 심판에 이른 백성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사사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책은 다윗왕가에서 절정을 이루고 메사야적 성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사들의 직책마저도 백성의타락과 함께 타락됨을 볼 수 있다. 예) 입다의 경거망동한 humansacrifice, 삼손의 비참한 최후 등은 사사들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다.
후에 미가의 사건에 보면 드라빔(우상)을 만들고 사적으로 레위인을 삼아섬기고, 단 자손이 그 레위인을 자기들의 제사장으로 삼는다. 이러한 종교적 죄악은 전 백성에게 편만하게 되었다.
기브아사건에 보면, homosex를 하는 모습을 본다. 꼭 소돔성과 같다. 그대신 여자를 주매 밤새 강간하고 내어주어 죽게하고 그 여자를 남편이 12토막내어 온 지파에 보낸다. 그래서 베냐민지파가 모두 멸절당한다.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 속에 버려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백성에게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기 옳은소견대로 했다는 것으로 결론 맺는다. 왕(지도자)이 없는 것은 이스라엘의 혼란스런 모습의 이유로 보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 통치는 왕으로 연결된다.
사사기는 어떻게 해서 여호수아가 지도자를 남겨두지 않고 진행되었나? 무언가 필요해서 그 중간기로 두었는가? 아니면 왜 그랬을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시험하기 위해서 남겨 놓으신 원주민을 통해 이스라엘은 훈련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패역하여 통혼하고 동거하게 되었다. 혈연적 혼합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주위세력으로써 징계하셨고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으로 다시 구원자를 보내셨다.
그러나 점점 타락한 이스라엘은 기브아와 미가사건에 와서 완전히 종교적 배도로 일관되었다. 그것은 가나안 종교의 깊은 영향이었다(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에 방불했다).
완전히 와해된 이스라엘의 상태는 사사기 마지막 21:25절에 볼 때 각기 자기 소견대로 행했으며 왕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기브아 사건과미가 신상 사건"[dischronologization](연대기를 흐트리는 기술방법) 그것은 사시기 전체의 타락적 성격을 규정짓는 사건들이며 사사기에서도, 초기에는 정복사업이 있었다가 후에 그들과 동화되어 버린 과정으로 나가므로, 그 사건들은 말기적 세대의 사건들일 것이다.
사사들의 성격은 일차적으로는 여호수아 뒤를 잇는 지도자들이다. 초두 1장에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정복을 이끌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변하는 자들이다(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달리 생각해보면 신 17:14-15절에는 왕제도가 나온다. 왕제도에 대해서 본문은 긍정적이지 않다. 왕을 세우는 것은 백성들이 '열방처럼 우리에게 왕을세우자'고 할 때이다. 사무엘 시대 때 백성들이 왕을 주소서하고 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배역하는 것이라고 하심으로써 왕제도 자체가 부정적 대응으로 나타난다. 왜 그렇게 부정적인가?
사사의 성격은 구원자 였다. 사사제도는 사사 자신이 타락함으로 인해 마지막 사사 삼손은 비참한 최후로 마친다. 사사시대가 이스라엘의 실패였고 지도자(왕)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라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사사제도는 이스라엘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기에서는 간헐적 사사의 출현으로는 불완전했고 보다 완전한 통치의 필요가 소망되었다. 이와같은 필요는, 시편 등에서 볼때 사사를 통한 통치의 완성이 다윗에게 와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사사는통치의 불완전성의 성격이 있었고, 그런 성격은 다윗왕에 있어서 극대화 되었다.
또 하나 사사시대는 단대로 끝났지만 왕조는 영원성으로 이루어진다. 정착기에는 사사의 간헐적 출현이지만, 정착한 후에는 왕권의 정착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통치는 성막인데 성막 자체가 이동적 성격을 가지나다윗 -솔로몬의 성전은 곧 영원한 왕권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으로 이어진다. 시 110편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멜기세덱의 반차). 하나님의 통치가영원한 아들의 통치로 이루어진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2장 (1) 사사의 출현배경
(1) 사사의 출현배경
그러면 왜 여기서 다시 여호수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 하는가?그것은 여호수아시대와 그의 사후 새로 시작된 이 사사시대의 시대적 성격을구별 대조 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여호수아시대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사시대와 비교해서 여호수아시대는 이스라엘이 다 거룩했고 무조건 완벽했다는 뜻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사사시대와 비교할 때 여호수아시대는 어떠했는가를 비교 평가한 것이 2:7에 나타난다.
여호수아 이후에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구원들을 직접 체험한 나이 많은 사람들 즉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겼다고 되어있다. 사사시대와 비교할 때 여호수아시대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0절에 보면 이들이 다 죽고 난 다음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들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났는데 이 세대의 특징이 11절에 말씀한 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행한 세대였다. 그 악한 시대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저버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사 또한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셔서 그들을 압제하는 외민족의 손에 붙이셨다고 되어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형태가 교회의 외부적인 대적 세력의 손에 교회를 붙이시는 그런 형태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심판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이 여기셔서 그들이 빠진 심판의 상태에서 구원할 자를 일으키셨는데 그들이 바로 사사들이었다고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계속 반복이 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악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외민족의 손에 붙이시고 또 그 고통 가운데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다시 사사를일으켜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전체적인 과정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된다.
[2:19]
19절에 보면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하시면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느정도 괜찮다가 사사가 죽고 난 후에는 그들의 조상보다 더 부패하여 다른 신들을 쫓아 섬겼다고 되어있다. 세대가 거듭할수록 이스라엘은 더욱 악해졌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인들을 더 이상 축출하지 아니하겠다고하셨는데 가나안인을 축출하지 아니하면 남아 있는 가나안인은 이스라엘에게가시같은 존재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같은 예언이 사사시대를 통해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구체적인 내용은 3:7이하에 나온다. 3:6까지는 개략적인 내용 사사시대에 있었던 고정적인 틀, 반복된 악순환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외적의 손에 붙이셔서 심판받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회개하여 부르짖으면 사사를 일으켜서 구원하시는, 그러나 그 전체적인 과정은 반복되는 동시에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다는것이다.
[21-22]
21절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남겨놓은 가나안의 세력을 더 이상 축출하지 않으실것을 언명하신 말씀이 나온다. 22절에는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인을축출하지 않으셨는가? 여리고 성 전투같은 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결코 그런 능력이 없어서 그리하신 것은 아니다. 여리고 성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싸
운 것은 결코 없다. 그저 법궤 메고 돌고 나팔분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순식간에 성이 무너져 버렸다. 이스라엘은 들어가서 죽일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들을 남겨 놓으셨는가? 다른 여러 곳의 말을 종합해 보면 너무 일시에 다 쫓아내어 사람이 살지 않게 되면 땅이 황폐해지고 야수들이 들끓어서 오히려 이스라엘을 해치게 될까 염려하셨다는 말씀도 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2장 6이하의 흐름
2) 2:6이하의 흐름
2:6이하는 전에 잠시 언급한대로 마치 또 새로운 서론이 시작되듯이 시기를 다시 거슬러 가서 여호수아 생전 시대로 다시 거슬러간다. 그러나 이것은흔히 어떤 사람이 주장하듯이 제 2의 서론이 아니고(즉 편집과정에서 생겨난제 2의 서론이 아니고) 앞에서 행한 이스라엘의 정복사역에 대한 하나님의평가와 정복사역을 포기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시겠다는처리 방침을 보김에서 밝혔는데 거기에서 언명하신 그 하나님의 처리 방침대로 이루어진 사사시대 역사의 개요 즉 개략적인 틀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2장
2장 보김에서의 사자가 와서 그들을 책망한다. 우는 자들울다는 뜻, 1장에서 다 쫓아내지 못한 이스라엘의 실패를 이스라엘이 언약을지키지 못한 불순종으로 꾸짖고 그 벌로 3절에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소리 높여 울었다. 따라서1장은 2장의 서론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연약의 신실하심을 천명하셔서끝까지 지키심을 말씀한다. 그러나 언약관계의 의무는 쌍방적이므로, 이스라엘의 할 일은 있는 것이다.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고 그 단을 헐라하였거늘' → 죄와의 연합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포기하는 것이다.
a. 그들과 언약 맺은 것은 민족간의 화평조약이다(하나님과 연합, 창기와연합). 가나안과 공존하는 길을 택함으로 결국 타협해버렸다. 정치적인 평화공존의 언약 → 이것이 하나님과의 언약파기, 이것은 정복사업 사명의 포기요 상실이다.
b. 가나안의 제단을 헐지 않은 것은 종교적인 공존을 뜻한다. 가나안 종교를 용인하고 묵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원주민을 진멸해 버리라는 근본 뜻은 그들의 타락과 부패상을 본받지 말도록 하시는 것이다. 종교, 도덕적인 타락을 막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하나님의 뜻은 거룩하고 성결한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이며 창 12장과 출 19:5,6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려는 뜻인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반역한 것이다. 사사시대의 어두운 타락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통곡하고 울었으나 그것이 회개의 차원에까지 가지 못하고 책망에 대한 '자기 좌절', '자신의 무력감'을 느낀 정도였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앞길에 대한 절망감'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절망적인 역사를 암시한다.
6절 이하는 어려운 문맥인데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냈다고 되어있다. 여수아가 1장에서는 죽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다시 살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있다. 이어 8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죽은 사건이 다시 나온다. 비평가들은2:6절의 서론과 1장의 서론이 서로 다른 서론으로 되어 있다고 하며 그 이유는 사사기의 편집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서론 사이에 '보김사건'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사사시대의 성격을 논함에 있어서 2개의 다른 관점에서 논할 수 있다. 사사시대 전체를 보는 관점을 2가지로 놓고 볼 수 있다면 1장-2:5절의 관점과2:6절 이하의 관점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이 상이한 관점은 상호보완적인역할을 한다. 사시시대의 의미를 다양하게 밝힌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1장
구 절 : 삿 1:
------------------------------------------------- 구약연구 사사기
사사기는 비평가들에 있어서는 굉장히 논란이 있다. 하솔왕 야빈의 사건과갈렙의 정복사건도 doublet였다고 말한다. 즉 이것은 두 사건의 중복표현이라는 것이다.
1장 여호수아의 정복은 원칙적인(도면상의) 정복이었고 그 이후에 구체적정복사역이 계속 필요했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은 믿음으로 쳐서 이길 과제로 남았다. 사사기의 도입 부분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라고 시작한다.
2:10절에 보면 2세대가 죽고 3세대가 시작되어 그들은 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처음 질문은 하나님께 '누가정복사업의 주도역할을 감당할 것인가?'를 묻는다. 모세가 죽을 때는 새로운지도자를 세웠는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아무도 계승자가 없어서 그들은혼란에 빠졌다. 즉 지도자의 공백기가 온 것이다. 그들은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알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유다지파는 후에다윗 왕조와 연결)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다. 사사기 끝 부분은 왕이 없어서 각기 제 소견대로 행했다고 함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자가 없던시대였음을 말해준다.
이 시대의 정복사역의 특징은 이스라엘이 뚜렷한 구심점과 응집력 없이 각지파가 자율적 위치로 행했다는 점이다. 이것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이다.
(1) 이 신적통치를 이상적인 형태로 볼 것인가? 모세, 여호수아 같은 중보자가 필요없이 안식의 땅이므로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좋다는 것을 암시하는것인가? 그것이 옳다는 것을 지지하는 구절은 기드온이 말한 '너희 왕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한 것이 근거가 된다. 종말론적 통치(계시록)에서는 인간 중보자 없는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말하고 있으므로 이상적이라고 한다.
비평적 견해 :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각 지파의 자율적체제를 이상적형태로본다. 암픽티오니를 이스라엘의 시작으로 보고 최초의 정치체제로 본다. 이것이 선지자들의 이상이었고, 다윗왕조는 그 이상적체제에 대한 반발적 형태로서 백성을 착취했다고 한다. 이 왕조체제를 반발한 사람이 엘리야였다고하며 그 입장을 지지한 자들이 선지자들 집단이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하려는 자유주의 학파의 경향은 보수주의 진영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윗왕조는 결코 하나님의 적극적 뜻하심이 아니고,허용적인 것 뿐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직접통치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었는데 '왕정형태'는 이스라엘이 요구하므로써 하나님이 그냥 용납하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사사들의 출현이 '하나님의 직접통치'에 대해 이스라엘이 혼란스로워하므로 비상조치로 주신 것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아무인간적 지도자를 주시려고 안했는데 이스라엘의 요구로 인해 할 수 없이 주셨다는 것이다.
(2) 그러나 하나님의 직접통치 형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의 근거는 사사기의 기록을 전혀 하나님이 기뻐하신 역사로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사사기의 기록을 전반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지도자'를 통한 구원역사를 이루시기를 기뻐하셨지, 직접적인 통치로 하시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나중에 왕정형태를 주심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왕정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키는 구체적 도구로 하나님이 기뻐하신뜻의 구체화이다.
1장의 정복사역은 모두 그들에게 주신 기업에서 자기들이 쫓아내야 할 가나안을 다 쫓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주민들이 계속 살았다고 한다. 정복사업이 갈수록 지지부진해졌다. 이스라엘 가운데 가나안인이 살기도 하고(2:29 에브라임지파 경우) 가나안인 가운데 이스라엘이 살기도 할만큼(31절아셀지파 경우) 정복사업은 부진해졌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1) 서론 / 세상과 공존하는 교회구 절 : 삿
(7) 세상과 공존하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조처
2장 1절에서 5절까지 보김에서 있었던 사건은 이처럼 여호수아 시대를 이어서 교회(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가나안 땅에서 계속 악의 근원을 제거하고, 축출하고, 그 영역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지며, 그 통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복되게 사는 그런 복된 삶의 영역을 이루어 가도록전투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이 그 때까지 행해 온 진행과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아 들여셨는가, 말하자면 그때까지 진행된교회의 시대적 사명 감당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 평가가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공존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공존이라는것이 왜 그렇게 심각한가, 심각한 책망을 들어야할 만한 잘못된 일인가? 그것은,공존이라는 것은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전쟁의사를 포기해버렸다는 것이다. 당시의 이스라엘이 싸울 의사를 포기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악과 싸우길 포기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교회에 명하신 뜻, 이루시고자 하신 뜻이 전투하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의 영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모든 것을 정결케 하시고 모든 악과 오염의 근원을 제거하시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또한 그 사명을 교회에 주셨는데 교회가 그 사명을 포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정면적거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이와 같은 사명을 주셨는데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치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로 존재할 가치가 없는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싸울 의사가 없는 즉,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거부하고 공존하기를 원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너희에게 전쟁의 승리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요, 너희들이 싸워서 멸하고 제거하기를 거부한 대적 세력들이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옆구리의 가시처럼 너희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원칙적으로 교회였다고 하면 이런 원칙은 오늘의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분명히 교회가 성별되기를, 교회가 참된 모습을 굳건히 지켜 나가면서 계속 교회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될 터인데세상 가운데서 교회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고 거룩한 교회가 세워져 가야할 것인데 오히려 이방(세상)과 타협하고 공존하기를 택한다고 한다면 사실공존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때부터는 세상 세력이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를변질시키고 교회의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1) 서론 / 이스라엘의 보김 통곡
(6) 이스라엘의 보김 통곡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의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책망 곧 너희들이 악의 세력과 싸우지않고 즉, 너희들의 사명이 바로 악과 싸우는 것인데 악과 싸우지 않고 그들과 타협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공존의 길을 택했다고 책망을 하시고따라서 더 이상 승리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듣고 보인 이스라엘의 반응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케 한다. 그들의 반응은,온 백성이 통곡했다고 되어있다. 통곡을 했다는 것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 아무 변화가없다. 그대로 그냥 진행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보김에서 보인반응 곧 통곡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대해 생각 해 볼 필요가있겠다.
이스라엘을 동정하는 시각으로 이해를 한다면, 여호수아 때부터 지금까지전쟁을 했지 않은가 그것도 1, 2년이 아니고 몇 십년이다. 그리고 앞으로얼마나 계속 될른지도 모른다. 전쟁이라는 것은 당연히 훈련하고는 다르다.
전쟁이라는 것은 생명을 건 일 아닌가,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 전쟁이다.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그런 모의 전쟁이 아니다. 따라서 전쟁하는동안 사람은 극도로 긴장하게 되어있다. 그것도 한 두달도 아니고 일 이년도아니고 수 십년을 그냥 싸우라고 하시니 그 전쟁의 긴장을 어떻게 견뎌 내겠느냐 이 말이다. 가나안 족속이 그냥 단숨에 지도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좋겠는데,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도 단숨에 무너뜨려 버렸으니까 쉬울텐데 그것이 아닌 것이다.
나중에 이들을 남긴 이유가 나오겠지만, 쫓아내면 다시 들어 오고 또 그렇고...... 이것은 우리가 죄와 싸우는 것을 연상하면 잘 이해가 될 것이다. 오늘 죄를 쫓았는데 내일 또 들어오는, 우리의 삶이 죄와 싸움의 연속이아닌가.
일년, 이년 십년, 이 십년 싸우다 보니 이제 지쳐 버린 것이다. 그래서 에라 그냥 공존해 버리자 너 좋고 나 좋자 이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보김에서 이스라엘이 통곡한 심리적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우선 이 사람들은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다. 그래서 책망을 받았을때 울었다. 옳은 것을 알고도 행할 수 없는 자기들의 무력함에 대한 철저한인식이 전제가 되었다고 생각이 된다. 아무리 싸워 볼려고 해도 내 힘으로안된다는 것을 이들이 잘 안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고난 다음이 문제다.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전쟁의승리의 능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알고서 돌아 왔다면 이후의 시대의 역사는달라졌을텐데, 그 이후에 아무 변화가 없었던 것을 봐서(물론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다 아시고 앞으로는 쫓아내지 않겠다고 하셨겠지만) 이들의 자기 무력함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신앙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고체념으로 끝나 버렸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통곡은 체념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무서운 심판, 험난한 앞길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대한 눈물이었을 것이다. 지나친 추측인지 모르겠으나, 앞뒤의 문맥을 봐서 보김에서 이스라엘이 통곡한 것은 대개 그런 정도의의미가 아닌가 생각 해 볼 수 있겠다.
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생명을 거는 전쟁의 긴장 속에서, 영적인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 결코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타협하면 이스라엘꼴이 되고 만다.
이 정복전쟁은 단숨에 이루어 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 무슨 대단한결심을 해서, 아주 이상한 은혜, 굉장한 은혜를 받아서 마음이 뒤집어지는
그런 역사가 있었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번에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요 일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지부진한 진척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소망을 잃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지 아니하였을까, 이스라엘의 보김에서의 통곡은 그 면이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대적은 강한 자이다. 철병거, 철옹성, 장대한 용사,모든 면에서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뛰어난 전쟁의 용사들이다. 우리의 힘으로 당할 수 없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그 세력, 악의 세력과 무엇으로싸우겠는가. 우리의 승리의 능력과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도 분명히 알아야 할것이다.
사사기에서 사무엘까지의 내용은, 신명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예언으로하신 말씀 곧 만일 백성이 이르기를 우리에게도 열방처럼 왕이 있어야겠다고 하거든 어떠어떠한 왕을 세우라고 하신 그 말씀이 역사적으로 어떻게성취되었는가 역사적으로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다윗왕조 성립의 하나의 서장으로서, 어떻게 백성들이 우리에게도 열방처럼 세상처럼 왕이 있어야 겠다고 요구하게 되었는지경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런 부정적인 역사적 배경에서 성립된 다윗왕조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하는목표를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1장에서 2장 5절까지 내용은 대체적으로 여호수아시대부터 시작해서 사사기 초반의 가나안의 정복사역이 어느 정도 성취가 되었고 결국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가를설명하고 있다. 즉, 정복사역의 진행과정을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1) 서론 / 교회 정복사역의 포기
(5) 교회의 정복사역의 포기(2:1-5의 흐름)
2장 초두에 기록하고 있는 "보김"이라는 말은 "통곡하다. 울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을 책망하니까 그 말을 듣고 통곡한 일이 있다.
그러니까 바로 앞의 정복사역의 내용은 보김에서 있었던 일의 배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오셔서 이스라엘을 책망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즉, "내가 너희와 함께 애굽으로부터 올라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한 그 땅으로 너희와 함께 가리라 그리고 그뿐 아니라 너희와 세운 언약을 영영토록 내가 어기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며 무슨 일을 하든지그들로 형통케 하시고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깨뜨리지 않으시겠다고 하는 신실성을 여기서 재천명 하신 것이다. 사실 그 때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하나님 편에서 언약을 깨뜨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너희들의 경우를 보면 어떠했느냐, 하나님 편에서 언약을 맺었는데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 행해야 할 어떤 일에 관해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전부 파괴해야할 것이라고 말을 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 너희들은 내 음성을 청종치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언급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면서 그들이 지켜야 될 것을 두가지 말씀하셨는데, 이 땅 거민들과 언약을맺지 말아라, 그리고 그들의 제단들을 철저히 파괴하라는 것이다. 그 땅 거민들과 언약을 맺는다고 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살기로 곧 공존의 길을 택하는 화평조약을 맺는다는 것이고, 그들의 제단을 부수지 않았다는 것은(단이라는 것은 종교적 의식이 행해지는 곳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의 제단을 모두 파괴해 버리라는 것은 가나안인들의 우상종교를 철저히 말살하라고 하는 그런 뜻이 있다) 적어도 신앙적인 면에서 가나안 인들의 우상종교를 용인하는 묵인하는 정책을 취했다는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특별히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악을행하고 개인 차원에서는 몰라도 전체적인 차원에서, 나라전체가 하나님을 배역하는 그런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책망하시는것은, 너희들이 하나님이 교회의 영역으로 지정해 주신 그 곳에서 악의 세력을 축출하지 않고 오히려 축출해야 할 그들과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정복의 사명(교회 내에서 모든 악의 세력을 제거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로 거룩하게 하는 사명을 주었는데)에 충실하지못하고 오히려 세상과 악의 세력과 타협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말씀하신다. "내가 더 이상 그들을 너희 앞에서 축출하지 아니하겠다(3절)."사실 이스라엘의 전쟁은 매우 특이하다. 그들의 전쟁은 군사가 많다고 해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적다고 해서 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전쟁이기 때문에 사람이 강하고 강하지 않은 것은 상관이 없다. 이것은 교회에 속한 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는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힘과 재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는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친히 싸우시는것이다.
그렇게 악의 세력을 멸하시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세력, 교회내의대적들을 숙청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이제 교회가 전혀 무력해졌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곧 악을 제거하시는 능력이 더 이상 교회를통해서 역사하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인 것이다. 교회가 악과 싸우는 사명에충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너희들을 통해서 교회 내의 악을 제거
하는 역사를 행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수아 5:13에서, 요단강을 건너서 할례를 받고 여리고 성을 취하기 위해 칠려고 할 때 즉, 가나안 땅의 본격적인 정복전쟁이 시작 될려고할 때 동일한 여호와의 사자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났는데 그 사자의 모습이 칼을 빼든 모습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칼을, 전쟁의 능력을 빼드셔서 가나안 족속을 멸하시겠다고 하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그 모습과 완전히 반대의 모습이다. 너희들이 싸우지 않고 등을 돌려 대겠다고 하니, 그들과 타협하고 살겠다고 하니 더 이상 너희들을 통해서 악과 싸우는, 악을 제거하시는 일을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빼셨던 칼을 집어 넣겠다는 말씀이다.
더 이상 가나안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대적으로 하여금 너희의 옆구리의 가시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듣고 온 백성이 통곡을 했다고 되어 있다. 더 이상 가나안인과의 전쟁에서승리를 보장하지 않겠다. 이것이 타락의 시대로 접어드는 사사시대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 될 것인가, 중요한 암시가 되는 것이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1) 서론 / 초기 가나안 정복사역
(4) 초기의 가나안 정복사역
이제 이 정복사역을 보면, 유다로부터 시작이 되고 그 다음에 에브라임 그다음에 다른 여러 지파들의 정복사역 내용으로 옮아 가게 된다. 그런데 유다지파가 가장 훌륭하게 수행을 한다. 그 다음 여호수아 출신지파인 에브라임지파(요셉지파)가 또한 그렇게 한다. 여호수아 18장의 정복사역 진행 상황을보면 남쪽에는 유다지파 중심으로 정복사역을 가장 충실하게 행하고 북쪽에는 요셉지파가 가장 충실하게 정복사역을 행했다. 전체 이스라엘을 두고 보면, 남북으로 유다지파, 요셉지파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까지나머지 일곱 지파의 정복사역은 지지부진하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책망을받고, 그리고 가나안 지경을 조사해 와서 도면상의 분배를 받는 일이 있었다.
여기서도 그 때까지의 정복사역의 상황진척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남쪽에는 유다가 이렇게 행했다. 그리고 북쪽에서는 에브라임 중심으로 이렇게 이렇게 행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면 유다의 경우는 상당히성공적이었고, 그런가 하면 반면에 지도상으로 보면 북쪽 요셉지파와 남쪽유다지파 사이에 같은 요셉지파이면서 베냐민지파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런데 이 베냐민지파는 그 곳에 살고 있던 거민들을 축출하지 못했다. 즉,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사람과 함께 거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요셉지파의 정복사업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벧엘을 정복하고, 그 다음에는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므낫세의 경우는 가나안인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이스라엘이 강해진 다음에야 이들을 노역에 종사시켰고, 축출하지는 못했다고 되어 있다. 그 다음 30절에보면 스불론에 관해서 나오는데, 거민을 축출하지 못하고 스불론지파 가운데 가나안인들이 거주하였으나 노역에 종사하였다고 되어 있고, 아셀지파의경우에는 아빅과 르홉거민을 축출하지 못하고 아셀지파 자손들이 오히려 가나안거민 가운데 거주했다고 되어 있다. 정리해 보면 유다지파는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요셉지파도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므낫세지파는 조금 문제가 있고베냐민지파도 문제가 많았고 스불론 경우는 조금 괜찮았다. 왜냐하면 스불론지파 가운데 그들이 거했다고 했으니까 스불론지파가 대세를 쥐고 있는 가운데 가나안인이 거주했다고 되어 있다.
아셀지파의 경우에는 가나안거민 가운데 아셀지파가 거주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가나안거민 가운데 아셀지파가 거하나 아셀지파 가운데 가나안인이 거하는 것이나 같은 말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은 가나안인 가운데 아셀지파가 거했다는 것은 가나안인이 거의 대세를 장악하고있고 그 가운데 아셀지파가 발을 붙이고 있는 형편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납달리지파는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축출하지 못했고 노역에 종사할 뿐 이었다. 그런데 특별히 34절의 단지파의 사정을 보면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어서 오히려 아모리 족속이 단지파를 압박해서 산지로 쫓아 보내서평지로는 내려 오지도 못하게 했다고 되어 있다. 이 곳은 쫓아 내야 할 사람과 쫓길 사람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렇게 단지파는 정복사역에 완전히 실패하고 사사기 말기에 기록된대로(단지파 이주가 나온다) 자기 기업으로 할당받은 곳은 차지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 북쪽에 가서 조용한 마을을덮쳐서 그 곳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북쪽으로 올라 가면서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많이 저지른다(우상숭배......).
이렇게 보면 1장은 전쟁을 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 받은 교회로서의 이스라엘 즉, 하나님께서 교회의 영역으로 지정한 곳에서 모든 악의 세력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만들라는 명령을 부여 받은 교회로서 그들이 한 정복사역이 어떻게 진척이 되었는가를 쭉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국 시간이 갈수록, 처음에는 제법 되는 것 같다가 갈수록 지지부진 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영역에는 발도 못 붙이
고 오히려 쫓겨나는 그런 꼴이 되고 말았다. 교회가 무력해져 버렸다는 말이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3) 누가 교회의 지도자가 될 것인가?
여호수아 때도 그랬지만 이러한 교회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리까? 이 말의 뜻은 결국 교회의 이와 같은 시대적 사명 즉,교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악과 싸워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받은 일에 있어서 누가 지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먼저 올라갈 것이다. 유다가 지도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라고 얘기 할 수 있을른지 모르겠으나 사사기 맨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레위족 첩을 강간하고 죽인 사건으로 인해서 온 이스라엘이 분노해서 하나님교회 내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온 이스라엘이 분개해서 일어나 베냐민 지파를 거의 멸절시키다시피 죽여 없애버렸다. 다 없애 놓고서는 나중에 이스라엘 내에 한 지파가 궐이 났다고 통곡을 하는, 그 정도로 무참하게악을 쓸어 버린 일이 있었다. 이 때에도 백성이 묻는다. 이 전쟁에서 누가먼저 올라가야 하리이까? 물으니 또 유다가 먼저 올라가야 할지니라고 하셨다. 이렇게 사사기에 보면 처음과 마지막에 중요한 암시가 있다.
결국 이 시대를 통해서 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전면에 나서게 될것인가하는 것을 처음부터 암시하고 있고 이것은 비단 이 시대에서만 시작된 것이아니고 창세기 49장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대로 지금 역사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에 정복사역이 쭉 진행이 된다. 그런데 12절이하에 보면, 갈렙이 기럇세벨을 칠 때 그것을 취하는 자는 내 딸 악사를 주리라는 약속이 나오고 그럴 때 조카 옷니엘이 그것을 취해서 악사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여호수아에 이미 기록된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양쪽에 다 나오고 이 시기는 여호수아 사후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양쪽에 다 기록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기자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나름대로의 틀을 알면 이런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괜히 그런 것을 모르고 엉뚱하게 이중보도라고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1장 내용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정복사역을 한 눈에 알 수있도록 개관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 사후에 사사시대라는 특별한 시대가시작되었지만 그러나 그 시대적 사명이 전 시대의 사명을 그대로 이어 받는시대인 만큼 그 정복사역을 이야기 하면서 옛날에 했던 것을 전체적으로 통틀어서 개괄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1) 서론 / 교회의 성결
(2) 교회의 성결(1장의 흐름)
사사기 1:1에서 주의해야 할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서이러한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직역을 하면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가나안인에게로 올라 가리이까?" 그런데 올라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말에 의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여호수아가 죽고 난 이후의 시대도(여호수아를 통한 정복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온 땅에 안식을 주셨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안식은 가나안 땅의모든 대적이 전부 멸절된, 축출된 그런 완전한 안식이 아니고 아직도 전쟁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그런 의미의 원칙적인 안식이었다고 하는 것을 사사기가 밝혀 주고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복시대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교회의 전쟁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만 그렇게 무참하게 애들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 버리라고 했는가, 소나 양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버리라고했는가, 그런가 하면 가나안 밖 먼 곳의 민족하고는 될 수 있는대로 화평하라고 하셨다. 먼저 화평을 선언하고 그래도 전쟁을 하고자 하면 그때는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 이렇게 차별 대우를 하시는가? 우리는 의아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가나안 족속을 죽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창세기 15장에서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창 15장에서는 죄악이 관영한 때가 아직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사기시대에는 죄악이 관영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듯이 심판하시는 의미가있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말씀이 삿 1:7의 아도니 베섹의 말 가운데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아도니 베섹이 잡혀 죽으면서 하는 말이 옛날에 내가잡은 왕들 모두의 손 발가락을 끊고 했는데 이제 내가 그 꼴이 되었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이 정복 전쟁이 악한 백성과 악한 왕을 심판하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가나안 밖 지경에도 마음대로 나가서 거기도 정복해 버리지 무엇때문에 그곳 사람들과는 화평을 하면서 이 지경 속에 있는 사람만 왜 그렇게무지막지하게, 잔인하게 죽여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창 1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하시면서 내가 네게지시할 땅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이 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살게 하시는 곳, 즉 그의백성의 영역 곧 오늘의 교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서 그처럼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악의 근원을 쓸어 버리라고 하신 것은 교회 내에서는 이처럼 악에 대해서 철저하게 끊어내는 일이 있어야 되는것을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지시하신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약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로마서에 보면 외인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화평하라고 했다. 그들이야 본래 복음을 받기 전에는 교회에 속하지않아서 죽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여하튼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영역,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 영역에 있어서는 철저히 죄악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던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였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1) 서론 / 교회의 지도자론
(1) 교회의 지도자론
이제 서론을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가나안과 전쟁을 함에 있어서 누가우리를 위하여 맨 먼저 올라 가리이까?(삿 1:1, 강의자가 구약 히브리어를사역한 것임) 그럴 때 하나님께서 유다가 올라갈 것이라고 2절에 말씀하고있다.
여호수아 사후 분명한 후계자를 남겨놓지 않아서 지도자 공백기가 오게 되었는데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있다.
긍정적으로는 결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참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스스로인정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묻고 행하는 그러한 긍정적인 뜻이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참된 왕으로 생각하고 그의 뜻을 묻는 긍정적인뜻이 있기 때문에 사사시대 초에 이상적 교회 모습을 말하는 사람은 특별히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호수아 1장과 비교 해보면 대조가 드러나지만(수 1:1-2 참조, 이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바) 여기서도 물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세움을 받았지만 자기 스스로 그러한 일을 자진하고 나선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세가 세운 것도 아니다. 모세는 그저 하나님께 물었을 따름이다. 민 27장에 보면, 모세는 "이 교회 즉, 이 회중을 목자없이 놔 두실 수있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여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그를 교회 지도자로 세우라"고 했으니 하나님께서직접 세우신 것이다.
따라서 실제에 있어서 인간 지도자를 세워서 하나님께서 통치 하시는 것과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하나님께 물어서 통치하시는 것 사이에는 어떤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양쪽 경우가 모두 다 하나님의 직접 통치다. 그래서 이 경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실질적인 통치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이지 그것이지도자를 통한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지도자가 하나님의 통치를 행하지 않고 엉뚱하게 행할 때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자라고 하면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이니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4. 구분 1) 서론
4. 사사기의 구분
사사기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구분은 1장에서부터 3장6절로 서론이다. 두번째 부분은 3:7부터 16:31까지로 사사시대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 몇을 들어서 즉 옷니엘, 에훗, 드보라, 바락, 기드온,입다, 삼손 등(그외 중요하지 않는 사사들의 이름이 언급되지만)의 활동을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은 17장부터 21장까지로 위에 언급한 연대순에서 조금 벗어난 두 사건이 언급되고 있다(사실 여호수아, 사사시대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연대문제다). 대체로 추측컨데 마지막 두 사건은 시기를 소급해 올라간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마지막 부분은사사시대의 두 대표적인 사건을 통해서 그 시대의 성격을 분명히 부각시키기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1) 서 론
서론은 조금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 1장 1절에 서론으로 이야기가 쭉진행이 되다가 2장 1절부터 5절에서 보김사건을 이야기한 다음 6절 이하에서는 다시 여호수아 생전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가시작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중 서론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머리 쓰기 좋아하는 사람은 온갖 이론을 만들어 낸다(편집이다뭐다하면서). 그러나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3. 사사기의 통치형태에 대한 이해
3. 사사기의 통치형태에 대한 이해와 그 구속사적인 의미문제는 사사시대초기 모세로부터 여호수아에게로 지도권이 넘어오게 될 때 모세가 에브라임지파에 속한 여호수아를 세우는 것이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로부터 사사시대로 넘어 갈 때는 이것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사시대의 첫부분은 이스라엘 내에 명백한 지도자가 없는 지도권 공백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사시대 이스라엘 내에 명백한 지도자가 없었다라고 하는 이것을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를 한다. 그 이유로 사사시대가이렇게 시작됐다고 하는 것은 교회에서는 더 이상 인간지도자가 필요 없고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일종의 회중정치 제도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인것 같다. 이것은 다 같은 보수신앙을 지니고 있으면서 하나의 교회정치의 이상적인 모델로서 그런 쪽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하는 묘한 해석이 있는데 즉 이 시대는 중앙집권적인 다시 말해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통치자 없이 각 지파가 자기 나름대로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요즘 말하면 민주적인 지방자치의 시대였다. 그래서 이것이 이스라엘에 있어서 즉, 하나님의 교회에 있어서 하나의 모델이 되며 이스라엘은 항상 이 사사시대를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상태로생각하고 또한 이것을 옹호하고 그대로 지킬려고 했고, 그 후에 등장한 왕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좋은 상태를 파괴하고 타락으로 몰고 간 나쁜 것이라고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왕정시대에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왕들을 비판할 때 항상 이들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이란, 사사시대의 모습 즉, 명백한 중앙집권적인 통치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율적으로(마음대로)행하는 그런 상태였다라고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새로 등장하는 왕정에대해서는 항상 부정적이었다라고 자유주의자들은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여러 사회학 이론들을 원용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해석유형이 될 수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들에게 별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별위협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사사시대의 초기를 교회정치의 이상형으로 볼려고 하는데 있다. 이것은 어떤 문제점을 가지는가 하면 다윗왕권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성경의 본뜻이 아니다.
신명기 17장에서도 분명히 왕의 등장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갬 거
기서 백성들이 열방들처럼 왕을 요구하거든 왕을 세우라고 하신 말씀이 왕권에 대해 부정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본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윗왕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의 예표였다. 그래서 다윗왕권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까지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된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사시대의 첫 상태를 하나의 이상적인 시대라기 보다는지도자 공백기라고 할 수 있고 다윗 왕권을 세우시는 최종적인 목표에로 나아가는 이행과정의 일부였다고 생각 할 수 있겠다.
사사시대의 초기상태를 교회정치에 있어서 하나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결국 교회내의 지도자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모든것을 하나님께서 각 자를 직접 다스리시는데 지도자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 이렇게 나아가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뜻하는 것과는 다르다.
교회의 지도자는 상당히 중요하고 성경이 또한 그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
다. 민수기 27:15 이하에 보면 모세가 죽을 날이 가까운 것을 알고 즉, 사역기간이 거의 끝나감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민27:15-18참조).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이스라엘을 보고 마치 목자없는 양과같다. 지도자 없는 양과 같다고 하셨다. 말하자면 지도자 없는 교회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사사시대 초기 여호수아가 명백한 후계자를 남겨놓지 않은 것을 인간 통치자가 없는 하나님의 직접통치의 이상적 시대의 도래로 의미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목자 없는 여호와의 회중, 교회라고 하는비정상적, 불안, 위태한 상태를 뜻하며 이런 흐름 속에서 영원한 왕권이 예언된대로 유다지파의 리더쉽이 부각될 것과 또한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서왕의 필요성이 암시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것을 보면 교회 내에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아니고 오히려 필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지도자들을 통해서 그의 교회를 다스리신다. 그래서 어떤의미에서는 이런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대행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에는 지도자가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없을 경우에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상태가 되어서 좋지 않다. 사사시대를 보면 목자 없는 양의 상태인 이스라엘이 외부의 적에 대해 전혀 조직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도자의 존재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리더쉽의 근원과 본질과 성격이다. 사사시대를 통해 사사시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드온의 승리시대에 천명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왕이시라는 것이다. 교회의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이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해야 된다. 교회 지도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운 사람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자로 세운 사람은 자기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다스려서는 안된다. 그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대행하도록 세워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다스림을대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여기서 벗어나면 이미 그는 교회 지도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수아 1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세움 받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제일 첫 조목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네 옆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셨다. 그 뜻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리시기를 원하신다고 하는 뜻이 바로 그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지도자는 매일 읽고그 뜻대로, 그 말씀대로 교회를 다스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뜻대로 교회를 다스릴 때만이 참 교회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율법대로 말씀대로 교회를 다스리는 지도자는교회에 아주 필요하고 긴요하다. 이러한 지도자가 없으면 양들은 목자없는양처럼 우왕좌왕하고 외부의 적들에 대해서 전혀 대처를 하지 못하는, 그래서 잡혀 먹힐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태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있다.
그러면 사사시대는 왜 실패를 했느냐, 그것은 이러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백성들이 원한 교회 지도자상이 어떠했는가, 이것에 대해 몇 구절을 통해 짐작 할 수 있겠는데 기드온에게 백성들이 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당신이 우리를 구원했으니 이제부터 대대로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달라! 언뜻 보기에는 그 말에 아무런 해가 없는 말 같은데 실제 그 속에는이들이 원한 왕의 상, 즉 교회 지도자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왕이아니었다. 이들이 원한 지도자는 우선 자기들을 미디안과 같은 대적에게서
육적인 해방을 주는 즉,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세상의 일반 지도자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였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그대로 충실하게 대행하는 그런 지도자상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은 백성들의 말 속에하나님을 거스리는 어떤 것이 있음을 간파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편 78편에서도 확인했지만 다윗같은 경우, 그에대한 평가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린 자라고 말하고 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가 남겨 놓았던 미진한 정복사역을 완성할 뿐아니라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충직하게 다스리는 하나의 지도자 다윗의 출현에 이르는 이행기간을 다루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사람들은 왕의 출현에 대해서 이렇게도 이야기를 한다.
본래 사사시대 처음 시작할 때는 하나님께서 왕을 원하신 것이 아닌데 나중에 백성들이 다 타락하고 나니까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부득이 허락하신 제도였다고, 그러나 이 말에는 맞지 않는 것이있다. 즉, 사사기 마지막부분에 가면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시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즉, 무정부 상태, 무질서 상태가 되고말았다는 이야기다. 강력한 지도력이 없는 교회 상태를 얘기하면서 왕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사사기 마지막에 기록된 두개의 대표적인 사건이 단지파 이주사건과 레위사람의 첩 강간사건으로 인한 전쟁, 이 두가지 사건인데 이 두 가지 사건이일어난 시기가 언제였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단지파의 이주가 언제 일어났는가 추측하기 힘들지만 사사기가 대략 300, 400년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이니까 이 사건은 그 기간 중에 상당히 이른 시기에 있었지 않았나 추측이가능할 것이다. 특히 이 레위족 첩 강간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모여 의논할 때 비느하스 제사장 앞에 모여 의논했다.
비느하스는 여호수아가 마지막에 엘르아살이 죽고 대신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제사장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그 인물이다. 그렇다면 비느하스가 400살까지 살지않는 이상, 이 사건이 그가 살아 있을 동안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사사기 초기에 있었던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초기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당시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이 이러이러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왕의 필요성이 사사시대 말기에 도저히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부득이 허락 했다기 보다는 이미 초기부터 계속 거론되었던 말씀인 만큼 사사시대의 전체적인 상황과 관련해서 볼 때 그 시대는왕의 필요를 분명히 증명한 시대였고 또한 대망하는 시대였다고 말하는것이옳은 시각일 것이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2. 사사시대의 성격
2. 사사시대의 성격
위에서, 다윗에 의해서 이 시기가 마무리 지어진다고 했는데, 이것의 의미는 단순히 이스라엘에게 모든 기업을 차지하게 하는 정복, 정착사역이 완전히 마무리 된 것만을 뜻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왕권을세우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출애굽으로부터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일단 그 나름대로 하나의 종지부, 다시 말해서 어떤 의미에서 완성되는 시점이 어디인가 하면 다윗, 솔로몬 때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출애굽해서 정복이 시작되고 결국, 이스라엘 내에 통치를담당할 통치권이 확립되는 역사의 흐름이 있는데, 이것이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이스라엘 내의 중심적인 위치가 요셉지파에서부터 유다지파에게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해하기 조금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잘 아는대로여호수아는 요셉지파 사람이다. 그 이후에도 사사기를 보면 더러 드러나지만, 사사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주도를 맡은 지파는 에브라임, 곧 요셉지파다. 이것은 그저 우연하게 된 것이 아니고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역대상 5:1 이하에 보면 족보가 나오는데 족보를 왜 이런 순서로 나열하고 있는가? 유다지파로부터 나열하고 있는데, 족보를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에 대해 잠깐 언급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르우벤이 실질적으로 장자로 나왔지만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그 장자명분이 요셉지파에게 갔다고 말하고 있다. 야곱은 죽을 때 요셉지파에게 두 몫을 준다.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각각 한 분깃씩 준다(창 48장).
고대풍습에 의하면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게 되어있다. 두 몫을 준다는 것은 결국 장자명분을 준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상 5:1에서 비록 혈육을 따른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그러나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넘어갔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장자의 명분이 여전히 요셉지파에게 있지만 그러나 통치권은 유다지파에게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의 족보를 맨 먼저 기록한다고 되어있다.
성경의 이런 말씀들을 읽어보면,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말씀들을종합해 보면 사사시대의 성격을 좀더 뚜렷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시편 78편에 보면 사사시대에서 역사의 흐름이 요셉지파 중심의 역사흐름에서유다지파에게로 이행하게 된 경위와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 9절을 보면 에브라임지파에 대한 불신앙, 불순종에 대한 책망이 나온다. 그 내용은 전쟁의 날에 물러갔다(돌아섰다)고 되어 있다.
이 의미가 무엇인가? 60절에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요셉지파를 버리고 유다지파를 택하셨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이 78편에서 취급하는 역사는 사사시대라고 짐작 할 수 있다. 이 사사시대에 에브라임이 전쟁의 날에 활을 가졌으면서도 등을 돌렸다라는 것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하면 그 당시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 곧 지도자적인 역할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그 시대는 가나안에서 대적을 멸하고, 이스라엘을 정착케 하는 사명을 받은시대, 즉 전쟁을 수행해야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있었다. 즉 다시 말하면전투하는 교회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이런 전투의 사명을 교회(이스라엘)가감당하는데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지파가 요셉지파(에브라임지파)였는데 그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 책임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약을 어겼다고 이야기한 다음 그 이하에 보면 사사시대의 지도적 역할을 맡은 그런 사람이 제대로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그 책임을 포기해 버리니까 결국 그 영향이 온 이스라엘에 미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정복세대로서의 책무를 감당하지 못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배역한 역사에 대해서 그 이후에 쭉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가서,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물으셔서 실로를 버리시고 요셉장막을 버리시고 유다지파를 선택하시고 그 다음 시온을 택하신다. 그리고 그다음에 선택된 다윗은 하나님의 양떼를 잘 돌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흔히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고 할 때 너무 지엽적인 내용비교를 통해서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좀 넓은 시각 즉 전체 역사흐름에서 성경과 성경을 서로 연결시키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옳은 원칙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그 원칙을 옳바로 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성경을 볼 때 때로는 어느 한 부분이 이해가 잘 되지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성경 다른 부분에서 그것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시편 78편 경우는 사사시대의 역사를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봐야 할 것인지 분명히 알려준다. 이 시편 78편은 사사시대를 통해서 요셉지파가 지도자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주도권이 유다지파로 넘어가서 결국 다윗왕권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모든 일이 인간의 책임, 즉 인간이 잘하고 못하는 것에 따라서 역사가 진행되는 쪽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물론 그런 부분도 분명히 이야기해야 한다. 동시에 그것은 실상 모두 예언이 되었던 것이다.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과거의 광야기간 동안 실패했던 역사를 말하면서그 기간 동안에 우리가 얻어야 했던 교훈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런 이야기를한다. 즉, 시내산에서 남쪽으로 곧, 가나안으로 직행하면 열 하루길 밖에않된다. 그런데 그렇게 짧은 기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그 가나안 땅을 왜 이스라엘은 40년간 방랑하고, 제 1세대가 광야에서 멸절할 수 밖에 없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불신앙이었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망해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키고 곧이어 말하기를 10계명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12장 이하에 가면,이스라엘이 살아야 할 구체적인 규례 특별히 하나님 섬김의 규례에 대해 말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성소에 관한 부분이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단 한 곳에서만 섬김의 예배가 드려져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하의 내용에서, 앞으로 있을 중요한 두 가지 하나님의 선택이 있을것을 말하면서 그 첫째가, 신명기 12장에 나오는대로 성소의 선택이다. 너희는 어디 다른 데 가지말고, 다시말해서 이방신들의 성소에 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실 그 곳으로 가서라고 되어 있다. 이렇듯 성소의 선택에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하면 성소 선택 하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소 선택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과 직결되는만큼 성소라고 하는 곳, 단 한곳에서만 예배드려야 하는 장소적인 의미가 나중에 신약에 와서 어떤 큰 의미로 발전되는가를 안다면 그 의미가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다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선택은 왕의 선택이다. 신명기 17:15에 보면하나님께서 택하실 사람을 왕으로 세우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시편 78편을보면 다윗왕권의 선택과 시온의 선택, 그리고 지도자로서 에브라임의 선택과실로의 선택 이것이 왜 서로 밀접하게 관계가 되는가 하는 것도 이런 것들에 비추어 봐서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성소의 선택과왕권의 선택이 내적으로 어떻게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창세기 49:10에 보면 에브라임지파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조가 되지 못하고 결국 유다지파가 역사적으로 선택이 되는데 이것도 결국 역사적 우연에의해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된 것이라는 것을 창세기 49장에서 미리 말씀하고 있다. 즉 치리자의 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을분명히 예언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의 다른 부분의 증거로 비추어볼 때 사사시대의 대체적인 성격이 성경역사의 큰흐름 속에서 이 시대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라고 할때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사사시대는 과도기적 즉 왕정이행의 예비적과정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 또는 교회에서 악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 축출하고 안식을성취하는 과정이 여호수아에게서 시작이 되어서 다윗에게 와서 완성이 되며그 가운데 이 사사시대는 왕정확립시대로의 이행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은 이 시대의 성격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가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이 시대는 타락의 시대요 실패의 시대가 분명하다.
제 목 : < 구약연구 > 사사기 Judices 1. 사사기의 시대적인 위치구
1. 사사기의 시대적인 위치
여호수아 시대 때의 가나안 정복이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13장에 보면 아직도 정복할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그 남아있는 땅이 어떤 땅인가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 13장 이전에 여리고 전쟁이나 남방 연합군들을 쳐부순 것이나 13장 이후의 북방왕 하솔왕 야빈이 이끄는 왕들을 격파한 전쟁들은 결정적인 승리이긴 하지만 가나안이 완전히 이스라엘에 의하여 평정이 된 것은 아니다. 단지 원칙적으로 굴복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에 요셉 지파와 유다 지파가 나뉘어서 남쪽으로, 북쪽으로 정복을시작하지만 그 정복도 역시 완전한 것이 아니다. 요셉과 유다지파는 여호수아시대 때 정복 사역을 어느 정도 행하지만, 다른 지파는 18장에 나타나는말씀을 보면, 요셉과 유다 지파외 다른 일곱 지파(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강 동편 곧 트랜스 요단 이라는 곳에 기업을 얻었음. 그렇기 때문에 남은 지파는 아홉 지파라고 할 수 있음. 물론 레위 지파는 기업이 없다.)의 정복사역은 아주 지지부진하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언제까지 이렇게 지체하려고 하느냐?"고 책망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각 지파에서 세사람씩 뽑게 해서 가나안 전 지경을 돌아보게 한 뒤 요셉과 유다 지파가 차지한 나머지 부분들 가운데 자기들이 원하는 곳의 지도를 그려 그것을 놓고실로에서 일곱 지파가 도면상의 분배를 한다. 이렇듯 아직도 여호수아의 정복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사기 2장을 보면 여호수아 사후 그리고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속했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난 이후에(삿 2:6-10) 사사시대의 본격적인 역사가 진행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사시대가 끝나면 사무엘을 거쳐서(사울은 사실큰 의미가 없는 것이고) 다윗 시대로 역사가 진행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사사시대는 출애굽하여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고 이 정복이 다윗에 의해서 완전히 마감이 되면서 이스라엘에 다윗왕조가 들어서는 그런 역사적 흐름 사이에끼어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의 정복전쟁이 시작되고 이 정복사역이 다윗에 와서 마감이 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사사시대는 실패한 시대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정복사역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것을 다윗 때 완수 했다. 때문에 우리는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서 다윗시대 때까지를 가나안정복이라는 하나의 시대로묶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사기는 이 일의 진행과정에 위치한 시대라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