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ࠅ࠘; Ruth)연구


룻기를 전선지서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닌가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룻기의 위치는 70인경에는 사사기 뒤에 있으나 히브리 성경에는 잠언 뒤에 있다. 잠언 등은 지혜서인데, 성문서에 해당한다. 그런데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 등과 잠언, 시편, 욥기, 룻기가 성문서라고 한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가? 어떤 자들은 오경과 선지서가 편집된 후 나머지를 한꺼번에 ࠎࠉࠁࠅࠛࠊ(케토빔; 성문서)으로 넣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잠언 맨 마지막인 31장은 이상적인 치리자(왕)의 자세와 "현숙한 여인"으로 끝나는데 아마 룻을 현숙한 여인의 대표적 인물로 본 것 같다. 또한 보아스를 가리켜 ࠌࠉࠄ ࠘ࠅࠁࠉࠂ㬈기보르 하일; 유력한 자 = 남자다운 남자)라고 하고 있으므로 ࠌࠉࠄ ࠛࠚࠀ(에쉐트 하일; 현숙한 여인)과 ࠌࠉࠄ ࠘ࠅࠁࠉࠂ은 대조되고 있으므로 남자다운 남자의 전형과 여자다운 여자의 전형으로서 보인다. 잠언 31장도 왕과 여인의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성경은 여자를 남자와 동등하게 취급하나 모든 면에서 다 그렇지는 않다. 신구약성경의 순서는 신약 - 시내산 사본을 따른다. 바티칸 사본은 복음서-바울서신-사도행전-공동서신(히브리서)-계시록이 나온다. 구약 - 우리말 성경은 70인역을 따른다. 그러나 히브리성경의 마지막은 역대상하이다. 에스라, 느헤미야도 마지막에 나온다.

그러나 이 룻기는 현숙한 여인의 기록뿐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그 근거는 초반이 '사사시대'라는 기록과 종반이 다윗의 족보로 끝맺고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된 message임을 본다. 이것은 다윗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효성 많은 여인의 model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 각 권의 순서의 분명한 이유는 없다. 룻기는 사사시대의 사건이므로, 사사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사사시대 한 가정의 일이 룻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에 사사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좋겠다. 만일 히브리 성경대로 잠언과 아가서 사이에 삽입하면 내용상으로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언, 아가서는 특정 역사에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솔로몬이 지었으나 특정시대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요 보편적인 내용이다).

룻기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인가? 룻기를 알기 위해 사사기를 보자. 사사기란 책 자체가 어떤 문맥에서 진전되어 가는가? 사사기의 진정한 면을 보기 위해 열왕기를 보면 특히 열왕기하만 보더라도 잘 나타난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을 실패한 역사로 본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볼 때 이스라엘 역사는 계속된다. 성경은 될 수 있는대로 넓은 의미로 보아야 된다. 성경신학은 성경을 개괄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사기와 더불어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와해된 것으로 보나 룻기가 등장해서 전개될 진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사시대의 막다른 상황이 무엇으로 인해 되어진 것이고,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바로 룻기가 제시해 준다. 즉 룻기가 역사의 구심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암시해 준다. 그러나 룻기는 사사시대의 한 가정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윗왕의 족보로서 중요한 사건이고 시대적인 배경의 사건이므로 위치는 70인경, 우리 개역의 순서가 더 좋다.

룻기는 사사시대의 한 역사로서 특히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던 사사시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1:1에 보면 사사들의 시대(400여년간 4-5대밖에 안됨)에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게 된다. 한 가정이 기근 때문에 자기 삶의 터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버리고 다른 이방 땅으로 간다. 2절에 하나님 나라의 공적으로 지적된 모압지방에 나오미 일가가 가서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주어진 땅을 떠나 삶을 포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거기서 남편, 아들들이 다 죽고 과부만 셋 남는다.

신명기에는 모압인을 영영토록 이스라엘 회중에 못들어 오게 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출애굽시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한 족속이요, 롯과 근친상간한 족속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일가가 그들과 연합된 삶으로 이방풍속을 좇고 이방여인과 혈연을 맺게 되는 것은 사사시대에 이방과 통혼하고, 삶의 공간, 문화를 공유하고 이방과 한 몸이 되는 그때 상황과 유사하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든다는 것은 레위기 26장에서는 기근이 언약 어김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하고, 신명기 11:9-17절에서 이스라엘의 땅은 천수답(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주심에 따라 풍작과 흉작이 결정)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비를 주고 안주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여부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듬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 기근은 하나님의 심판의 요소로 나타났고, 이 심판으로 인해 한 가정이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그 약속의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이방 땅에 나가 살게 되며, 또 남자들이 다 죽어 한 가정이 몰락한 사건은 그 의미하는 바가 사사시대의 전체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이 지리적 배경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윗왕조에서 나온 예수님을 암시받을 수 있다.

엘리멜렉 :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

나오미 : 사랑받는 자(beloved) -+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계는 남편, 아내의 관계로 묘사된다. 부자관계, 부부관계로 묘사되는 관계는 지극히 친밀한 연합관계인데, 신실함과 정결함이 요구되는 관계이다. 이들의 아들은 말론과 기룐(ࠐࠅࠉࠌࠊࠅ ࠐࠅࠌࠇࠍ㬉이다. 아들과 남편이 죽은 나오미는 가장 불쌍한 상태이다. 성경은 가장 불쌍히 도와야할 대상을 고아와 과부 계층이라 한다. 아들이 끊김은 대가 끊겨 소망이 없다는 말이다.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이 죽고 난 후 가장 소망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것은 소망없이 멸망당할 위기의 이스라엘의 message이다.

1:6에서부터 사건은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는 것은 기근의 심판이 끝났다는 것이요 그 백성에 대한 긍휼을 의미한다. 심판이 끝나서 고향으로의 귀향하는 나오미 일가를 다루는 것이 룻기의 이야기이다. 잘 살아보겠다고 떠난 나오미 일가는 오히려 세 과부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 나오미 일가의 몰락이다. 나오미 일가의 완전한 몰락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동생이 가계를 세워줄 수도 없는 아무 소망이 없는 모습이다. 나오미의 집은 바로 소망이 끊어진 가계이다.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손이 단절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희망이 躇어진 집안으로 망한 집안이다. 유업의 땅,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방 땅에서 과부가 된 상황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런데 룻기에서는 사사시대의 암흑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그 다음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권고하시는 구원의 때를 듣고 돌아가는 내용이다.

과부만 셋 남은 집안에서 나오미가 하나님의 땅에 기근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두 자부에게 각기 자기의 곳으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나의 아들이 있느냐, 나의 태가 남아 있느냐, 아들이 생긴다해도 어떻게 너희가 그들을 기다리겠느냐?' 이것은 나오미의 처절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하여 오르바는 돌아가지만, 룻은 돌아가지 않는다.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오미는 하나님 백성의 약속의 땅을 생각했을 때, 인간적 헌신된 삶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이방인과의 건널 수 없는 깊은 간격을 깨달은 것 같다.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는 것, "보라 네 동서는 그들의 신들에게로..." 이 말은 그녀의 백성과 그 신들을 포기하고 어떤 의미에서 신앙의 결단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처음에 두 사람 다 어머니 백성(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겠다 했다. 그러나 질과 성격이 다름을 말한다. 나오미가 육적 차원에서 아무 소망이 없음을 말할 때 오르바는 돌아가 버린다. 그녀는 육적 이스라엘만 생각했었다(영적 본질에 대해 생각지 못함). 오르바의 믿음에 대해 나오미는 '그녀의 백성(이방)과 그 신들(우상)에게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오르바는 하나님의 백성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서는 몰랐다. 영적 관계 맺음에 있어서 하나님 백성의 관계 본질에 대해 무지했다. 외견상 동일한 고백을 했으나 룻의 그 고백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룻의 고백은 육정(나오미에 대한 동정)이 아니고 근본 동기가 신앙적인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으로 삼음을 알았다. 어머니를 따라감은 자기 민족의 거짓 종교,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 섬김의 의미를 갖는 이스라엘에 속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섬김을 말한다. 믿음의 열조들이 묻힌 땅에서 자신은 묻히겠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의 족장들의 마지막 소망은 조상들의 약속의 땅에 묻히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신앙이다. 나오미는 믿음의 확실성 때문에 권면을 포기한다(룻의 효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돌아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여자는 남성의 신앙을 따르는 부속물로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떠나 자신의 독자적인 신앙의 결단이 족장시대에도 나온다. 또 신앙의 계보는 남자에게서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이어진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는 남녀의 차이다 없다. 남녀가 다 동질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룻기의 전반적 흐름은 회복의 이야기이다. 모압에서의 처절한 삶과 기근 등은 회복의 멧세지의 배경적 역할을 하고, 그 생활에서 돌아오는 회복의 과정에서 룻이 따라붙는다. 이처럼 망한 집안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룻이 같이 오는데, 이스라엘이 다 놀란다. 그 이유는 전에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삶이 풍성했음을 보고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온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 도착시 이전 모습과 급변한 변모에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이는 사사시대 초기의 이스라엘과 말기의 이스라엘과의 차이이다.

그에 대해 나오미가 말한다. ①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㬈ࠉࠍࠒࠏ → ࠄ࠘ࠍ; 나오미 - 마라㬉. ② 풍성하게 나갔으나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㬈ࠄࠀࠌࠍ → ࠎࠗࠉ࠘; 멜레아 - 레이쾀㬉. 나오미는 행복한 자, 사랑스러운 자였으나, 마라는 비참한 자란 뜻이다. 충만한 상태에서 제멋대로 갔으나 빈손, 모든 것이 궁핍으로 전락한 모습이 되어 돌아온다. 21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괴롭게 했다고 말한다. 이 역사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사사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왜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우리에게 도우라고 하셨는가? 고아와 과부는 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된다. 옛 고대사회에서 특별히 과부는 생계가 힘이 들었다. 22절의 추수기는 과부의 삶과 비교시 고아, 과부들의 은혜의 시기이다. 하나님께서 과부, 고아들을 위해 추수 때 이삭을 남겨두게 한다. 과부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삶을 살 수 있는 시기(이삭줍는 시기)가 바로 추수기인 것이다. 이로보아 룻기의 주제가 회복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룻이 왜 나오미를 좇았는가? 인간적인 사랑 때문인가? 단순히 인간적인 정이 아니라 룻의 나오미가 돌아가라는 말에 대한 대답에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는 내용에서 그 동기는 신앙적 동기였음을 볼 수 있다.

2:11-12의 보아스의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 네 행위를 갚으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기 위해 왔다 부모와 고국을 떠나 네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네가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로 왔다'. 이것은 곧 룻의 신앙의 결단을 말한다. 즉 리브가, 라헬, 레아에게 요구된 신앙의 결단이었다.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요구 받았던 신앙의 결단과 같다.

보아스를 통해서 룻의 신앙의 성격을 말하게 한 것은 중요하다. 이방을 떠나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온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룻은 아무 소망이 없는 집안에서 믿음 때문에 시어미를 좇아 이스라엘로 온다. 시어미에 대한 친절한 행위,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의지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2장의 유력한 자(ࠌࠉࠄ ࠘ࠅࠁࠉࠂ; 기보르 하일㬉라는 말은 도와줄 능력이 있는 자란 뜻이다. 1장 마지막이 '보리 추수 때'라고 하여 회복의 가능성을 말하고, 2장은 유력한 보아스의 출현으로 시작한다. 그는 나오미의 친족이요, 또한 ࠌࠀࠂ㬈고엘; redeemer = 구속자 = 기업무를 자)이다. 이것은 빈털털이 나오미의 신세가 이제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룻이 생계를 위하여 이삭을 주으러 나간다.

3절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에 따라 간 곳이 우연히(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친족 보아스의 밭에 있게 된다. 이것은 이삭줍는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해 있고, 모든 실상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암시한다. 우상숭배의 땅에서 나와 하나님의 백성되기 원해, 나오미 따라 살기 원하는 룻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하나님이 세운 이삭줍는 제도와 보아스라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긍휼을 보게 된다. 보아스가 굉장한 호의를 베푼다. 이는 남자다운 남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룻이 이방여인임을 나타내고 11절에 호의받을 자격없으나 호의받음에 감사하자 은혜베푼 동기를 12절에 말한다. '그 은혜 사모자에게 하나님께서 갚아주심'(룻의 효심에 대한 글이 아니다)이다. 보아스의 긍휼 베품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을 암시한다. 이는 룻의 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다. 여기서 룻의 삶은 신앙의 삶인 것을 알 수 있다.

3장 1,2절의 내용은 룻의 방종이 아니다. 무분별한 처세가 아니라는 말이다. "온 성이 현숙한 것을 안다 함"이 그 증거이다. 9절의 옷자락은 날개란 뜻이다. 시어미가 축복시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다'는 말이 또 사용된다. 룻의 행위를 방종이 아니고 친절, 사랑, 긍휼의 행위로 보아스는 받는다.

+- 2:11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네게 상주시기를 원한다'

+- 3:9 '당신의 날개(옷자락)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나의 구속자가 됨이니이다'

3:1절은 나오미가 룻에게 '안식할 곳'을 찾아 복되게 하도록 한다. 이것은 일종의 구원인데, 10절에 보아스가 너의 처음 ࠃࠑࠇ㬈헤세드; 순종 㬝 시어머니에 대한 순종 = 이스라엘로 오는 것)보다 나중 ࠃࠑࠇ㬈순종 = 보아스에게 가라한 시어머니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더 나은 신앙이라고 한다. 즉, 나이 많은 보아스에 의지하는 것을, 그 백성되기 위해 시어머니 말을 따른 행위보다 더 아름다운 신앙의 행위라고 성경은 말한다. 시어머니의 종용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행위이다. 13절의 보아스도 친절, 사랑으로 이를 갚아준다.

출애굽기와 사사기, 그 전체 내용이 이스라엘 민족이 중심이라면 룻기는 한 가정, 가계가 중심이 되어져 가고 있다. 이 룻기의 위치가 사사기 - 룻기 - 사무엘상하의 위치라 한다면, 즉 이 위치에 의미가 있다면 룻기의 의미는 한 가정에 국한될 수 없고 이스라엘 전체에 암시를 주고 있는데, 마지막의 다윗의 가계가 주어지는 것은 구속사의 한 출발점으로 아름다운 인간관계 이상의 것임을 암시한다.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계는 결국 다윗에게로 이어진다. 다윗은 구속사에서 중요한 포인트로서 아브라함에 못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가정을 통해 여러가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이 나오미에게서 집약적으로 대표하여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룻기의 배경이고, 룻기의 진정한 시작은 나오미가 모압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했으나 심판이 끝나고 약속의 땅으로 귀가하는 회복이 룻기의 주제이다. 나오미가 처한 희망없는 상황은 이스라엘의 상황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근 자체가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났다면 나오미 가정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당한 것으로서 나오미의 경험은 이스라엘의 경험을 대표한다. 나오미의 상황과 이스라엘의 상황은 상징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와같이 완전히 망해버린 집안이 누구를 통해 회복이 되느냐? 기업무를 자인 보아스에게서 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룻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나오미가 더 중요하게 나온다. 나오미로 시작해서 나오미로 끝나는 것이 룻기이다. 나오미는 여호아로 말미암아 풍부하게 나갔다가 빈털털이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다. 또 하나의 주인공은 보아스이다. 고엘의 본래의 의미는 redeemer, 즉 기업무를 자이고 이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노예된 사람들을 위해 그의 친척이 그 값을 갚아주고, 삶의 터전을 찾아주고 자유의 신분을 찾아주는 것을 말한다. 기업무를 자인 보아스로 인해 가계를 잇게 되어 나오미가 자손을 얻어 기뻐하게 된다.

룻기는 믿음의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보여준다. 아무 소망없는 시어미에게 자신을 희생하는 룻의 믿음, 불쌍한 과부 집안에 은혜 베푸는 보아스의 믿음, 시어미가 룻에게 베푸는 은혜의 아름다움 등,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헤세드인데 가장 번역이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룻기의 근본적인 틀, 즉 저자가 의도하는 내용은 이와 좀 다르다. 룻기가 주는 멧세지를 며느리의 효행의 전형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시어머니를 위해 희생하는 며느리가 보상을 받는 권선징악이 주제인가?

사사시대가 부정적인 면이 있으나(나라로서의 와해되어버린 무정부 상태의 멸망됨을 보는데) 그렇다고 사사시대가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이 부정적인 image를 수정하는 본보기의 예가 바로 룻기이다. 그러나 과연 룻기는 이 정도의 어두움 속에서 한 면의 어두움을 밝히는 한줄기의 빛이었을까? 좀더 넓은 포괄적인 의미는 없을까?

룻기는 다윗의 혈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 유다지파자손(나손, 살몬, 라합, 보아스, 오벳...)가계가 어떤 것인가? 보아스를 유력한 자라고 한다. 다윗에게도 이 말을 사용한다. 잠언 마지막의 현숙한 여인을 집을 세운 여인이라 한다. 잠언 마지막의 현숙한 여인으로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 할 때 이럴 경우 몰락해버린 남편의 집을 세우는 여인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 자부에 관한 이야기인가? 효성의 강조 정도만인가? 주인공은 룻도 나오미도 보아스도 다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모압 이방여인이 믿음을 따라 자기 민족과 고향을 버리고 이스라엘에게로 들어오게 된 교훈을 담고 있다고도 한다. 과연 룻기가 그런 정도 의미의 책인가? 처음과 마지막이 중요하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결국 다윗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윗왕의 출생의 배경에 대해 나오면서 다윗왕의 출생의 의미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룻기의 사건은 단순한 가정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룻기야말로 사사시대 성격을 잘 나타내준다.

룻기의 주제는 바로 redeemer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오미는 이스라엘 자체를 상징한다. 이 나오미가 기업무를 자를 통해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과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아스의 후손인 다윗이 할 것을 보여준다. 즉 완전히 몰락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고 세우는 역할을 다윗이 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사건이 그 당시 한 가정 내에 그치고 마는 좁은 의미의 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4장에서는 기업무르는 것이 나온다. 보아스가 기업무르는 일을 하고 룻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이 룻기는 4:13절에서 보아스와 룻의 자녀 오벳의 탄생과 함께 다윗왕가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4:11절에서는 베들레헴의 장로(남자)들의 노래가 나오고, 4:14절에서는 여인들의 노래가 나온다. 이런 노래들이 다윗왕가의 족보와 관련되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볼 때 그 내용은 중요하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그 집에 들어갈 때 여자들이 무어라 하는가? 11절의 라헬과 레아같이 되라한다. 이러한 축복이 하나의 관례였으나 이 축복은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다. 이후 진행될 역사를 생각하면 의미가 큰 것이다. 라헬과 레아가 누구인가?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요, 이스라엘 집을 세운 어머니이다. 이는 룻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암시한다.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는 역할을 할 것이다. 룻을 통해 태어날 후손이 이스라엘 안에서 행할 사역이 암시되어 있다. '라헬과 레아 같게 하시기를'은 이 결혼을 통해 세로운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지기를(이스라엘 재건의 역사를 암시) 소망한다.

여인들의 축복 내용 : 여호와를 찬양하라. 기업무를 자를 주셔 그 이름이 일컬음 받게 하셨다. 나오미의 상태는 대가 끊긴 절망의 상태인데, 기업무를 자를 통해 대가 생기게 하셨다. 또한 네 생명의 봉양자이다. 이것은 앞으로 룻과 보아스 사이의 아이가 이스라엘의 왕의 사역을 담당할 것을 말한다. 대가 이어지는 것은 곧, 나오미의 대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이 끊기지 않고 다시 회복할 것을 시사하는 sign이다.

사사시대 말기 이스라엘은 완전 몰락 상태였다. 여기 '베레스의 집과 같기를'이란 말은 유다지파를 지칭한다. 창세기 49장은 영영한 유다지파의 왕국을 상징하므로, 14절의 여인들의 축복과, 15절 생명의 회복자, 17절 오벳 = 섬기는 자요, 이어서 다윗의 족보가 나온다. 룻기의 의미를 한 가정의 효성, 이방의 구원에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축소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겠는가? 룻과 보아스의 아이는 나오미의 노년의 봉양자요, 생명의 회복자라 한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허물어진 집을 세울 것에 대한 암시이다. 이스라엘의 와해, 몰락하는 상태를 말하는 사사기 21:25절의 말씀은 룻기에 와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룻4:22절은 "...다윗을 낳았더라"고 말한다. 이 말은 창세기에 10회, 민수기에서 제사장 가문과 관련해서 나오고 여기서 나온다. 제사장 다음은 왕족이다. 왕에 대한 약속이 유다지파와 관련해서 창세기와 민수기에 나오고 있다. 그 당시 이방에서 행해진 왕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족보가 지시하는 것이 다윗이라 한다면 룻기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은 장차 축복의 가계를 통해 행할 다윗의 사역이 어떠할 것인가를 암시해 주고 예표해준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라가 와해되어 버린 사사시대의 형편에서 룻 가정의 redeemer인 보아스가 룻의 가정에 새생명을 회복했듯이,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 역시 회복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의미에서 룻기는 사사기와 사무엘상하를 잇는 책(사사기 - 룻기 - 사무엘상하)이 된다. 다윗왕조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책이 바로 룻기이다.

보아스(기업무를 자)를 통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정이 모든 것을 회복하고 얻게 되는 것, 이것이 구원의 사건이다. 아무것도 없는 나오미가 자기의 노후를 보양할 자를 얻음 그래서 이를 생명의 회복자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인 상태에서 생명의 근거를 마련해주고 죄로부터 자유를 주시는 분이다. 구약의 외적 상징과 또 영적 실제적 의미에서 기업무를 자는 바로 구속주이다.

이스라엘의 상황과 나오미의 상황이 사사시대 일반적 상황과 비슷하다면 나오미 일가의 상황은 사사시대의 축소판일 것이고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암시로 확대시켜 볼 수 있다. 나오미 일가가 위기 당할 때는 사사시대고 사사시대에 속한 한 가정의 역사를 대변한 것이며, 그 시대의 상황이 한 가정에 투영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나오미의 상황이 사사시대 상황의 투영이라면 나오미는 이스라엘과 상응한다. 보아스가 한 일은 나오미 일가에게 기업을 회복, 구속한다. 이스라엘이 사사시대에 몰락한 것으로부터 다윗에게서 다시 일으키심을 받는다. 이방여인으로서의 룻이 상응하는 것은 이방나라요, 다윗왕국은 다윗시대에 와서 주변국가들을 다 정복한다. 이방여인 룻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은, 다윗의 사역을 통해 사사시대 몰락이 회복되고 이방들이 그의 아래로(왕국 확대) 몰려오는 요소와 상응한다. 이러한 성격들은 다윗 등장의 사무엘서를 읽을 때 확실해진다.

* 나오미를 이스라엘의 상태로 취급하는 것은 타당한가? 단지 이스라엘 왕족의 조상역사가 한 경건한 가정사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는 없는가?

* 신 23:3절에는 모압, 암몬자손은 ࠄࠅࠄࠉ(아도나이; 여호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혈연적인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라합의 경우는 이방인일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족장사의 예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혈연적으로만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신앙의 결단처럼 계속 리브가와 라헬, 레아에게도 신앙의 결단이 요구됨으로써 혈연적인 것만이 아니고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룻의 경우도 믿음의 결단이 요구되었다.

* Von Rad식의 예표론과 보수주의의 예표론의 다른 점은?

전자가 당시 사건 기록 속에 기록자의 의도가 삽입되어 룻기 같은 경우에 그 인물 속에 상징적 멧세지를 기록자가 넣었다고 보는 반면에, 후자는 사건 속에 하나님의 의도가 삽입되어 하나님의 멧세지가 담긴 것이라고 보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상징적인 것뿐 아니라 실질적인 사건이 있는 것이다. Von Rad는 실제 사건보다는 상징적 의도를 더욱 강조하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역사적 사실이고, 실제적 사건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실제적이면서도 그 실제 사건 속에 하나님의 기록 의도가 있는 것이다. 다윗왕국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할뿐 아니라 그 당시의 열방을 다스리는 실제적인 왕국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상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적 성격을 상실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