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의 본문 : 시편 8편 ; 신대원 1학년 A반 10조 -
담당 교수 : 이 동수 교수님 발표일 : 1997. 12. 3.
조원 명단 : 문 충모, 고 윤실, 김 농은, 문 순삼,
박 순택, 김 희수, 배 철, 김 성규,
김 영근, 송 호석, 김 종식.
I. 본 문
시편 8편 [다윗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개역 한글판.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지 그리 아름다운지요.
Psalm 8 Divine Majesty and Human Dignity, NRSV.
To the leader: according to The Gittith. A Psalm of David.
1 O LORD, our Sovereigh,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
2 Out of the mouths of babes and infants
you have founded a bulwark because of your foes,
to silence the enemy and the avenger.
3 When I look at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that you have established;
4 what are human beings that you are mindful of them,
mortals that you care for them?
5 Yet you have made them a little lower than God,
and crowned them with glory and honor.
6 You have given them dominion over the works of your hands;
you have put all things under their feet,
7 all sheep and oxen, and also the beasts of the field,
8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fish of the sea,
whatever passes along the paths of the seas.
9 O LORD, our Sovereign,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II. 정 경 비 평
1. 구약성서적 상황에서의 기능연구
정경적 해석의 출발점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있다. 정경적 해석은 신약의 빛을 구약에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빛을 신약으로 끌고 오며, 또한 신약의 빛으로 구약을 새롭게 비추어보는 작업이다.
(1) 시편 8편의 구조
이 시편은 궁켈이 찬양시(hymn)로 설명하였던 좋은 예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찬양 예배를 표현한 기본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이 찬양시는 세 개의 주요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도입부(1-1a)
시편 기자는 처음에 호격을 통하여 하나님을 부른 다음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찬양하는 환호로 넘어간다: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②찬양시의 본론으로 이끄는 짧은 경과부(1b-2)
이 節들은 주요 문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따로 한 부분으로 하였다.
③찬양시의 본론(3-8)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서 시편 기자는 사람을 그의 창조 안에 확고히 놓은 하나님에 대하여 찬양을 터뜨린다.
④결론
도입부의 후렴구로 돌아가면서 끝이 난다.
(2) 구약성서의 컨텍스트에서에서 본 시편 8편의 기능
시편 기자는 단지 한 순간의 영감으로부터 자신의 내용을 창출해낸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에 반영되어 있는 제사장 문서 기자의 전승에 의거하였다. 이 두텍스트는 모두가 창조주가 창조한 피조물들을 인간에게 위임통치케 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주제상의 평행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서로 상응하고 있다. 즉, 시편 8편이 인간을 가리켜 "천사보다는 조금 부족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 주신"존재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창세기 1장도 인간을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시편 8편과 창세기 1장이 모두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위임통치권을 인간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창조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신적 위탁통치권"이 Imago Dei의 기능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그 주제상의 통일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지위를 성찰함을 통해서 창세기 전승을 뛰어 넘는다. 첫째, 그는 사람에게 참으로 만물을 주관하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것을 확언한다. 전승의 단어들을 빌린다면, 그는 하나님의 궁정을 이루고 있는 신적인 존재들인 천사에 못지 않게 창조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언급이다. 둘째, 그는 피조물 속에서의 자기 위치가 하나님의 행위에 의한 것임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햄릿의 독백을 따른 인류에 대한 찬사도 아니며 피조물 자체에 대한 찬양의 표현도 아닌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송시이다.
한편 구조분석 상에서 난제로 인식되었던 1:1b-2에 대해 구약에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밝혀 줄 분명한 증거가 없다. 쉽게 신학적 의미를 넣어서 읽을 수는 있지만 구약으로부터 석의적(釋義的)보증을 거의 주장할 수 없다.
요약하면, 이 찬송시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피조물의 영장이 된 사람의 지위를 확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시편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으로 사람을 자기 피조물의 머리로 놓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
신약성서적 상황에서의 기능 연구
이 시편의 신약성서적 응용은 마태복음 21장 16절, 고린도전서 15장 25-28절, 그리고 에베소서 1장 22절에 나타나며, 가장 직접적인 상응은 히브리서 2장 6-9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서 2장의 경우는, 그 "주제의 전이"가 괄목할 정도로 강조적인 수사법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들 신약에 인용된 시8편을 보면 신약기자는 헬라어 역본의 구약 본문을 토대로 작업함으로서 자신의 해석을 히브리어 구약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해 나감을 알 수 있다.
그것의 정체는 그리스도론적 재해석인데,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잠깐 동안" 낮아지셨지만 마침내는 모든 사람의 위에 높이 오르셨다는 것을 변증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잠깐 동안"(ՂՑՁՕ´)은 히브리 구약성서 원문의 "조금"(ࠈय़स)이라는 그 질적 의미를 시간적 개념의 "잠시"라는 말로 의도적인 개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의 때'와 '영광의 때' 사이의 시간적 전이가 강조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기독론적 해석은 히브리어의 ࠚࢫࠏࡗ개념 또는 자주 메시아적 개념으로 쓰여 온 "ࠎࡼࡎࠫࠐ࡞"개념을 예수그리스도의 가장 보편적인 메시아 칭호인 "인자, ՕՉՏՒ ՔՏՕ ՁՍՈՑՙՐՏՕ"개념으로 더욱 깊이 신학화되었다. 이러한 일은 단지 신약성서의 신학적 컨텍스트 안에서만 그 고유한 기능을 갖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히브리어 본문에 나타난 "사람, ࠚࢫࠏࡗ"과 "인자, ࠎࡼࡎࠫࠐ࡞"는 히브리어 병행법이라는 흔한 기법을 보여 준다. 즉 시편에 나타난 '인자'는 모든 사람의 대표자가 되어 잠깐 동안 비하되었다가 하나님에 의해 높이 들리우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독론적인 증거 본문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교회사적인 측면에서의 해석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 시편을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사람, 하나님과 피조물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의미있게 말하기 어렵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칼빈, 그리고 이후에 걸쳐 기독교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신학적 확신이다.
해석의 역사는 해석자들이 얼마나 일관되게 신약의 해석, 특히 히브리서의 해석을 시편에 대한 열쇠로 사용하려고 하였는지를 보여준다. 루터는 시편에서 오로지 기독교적인 가르침만을 찾으려고 시도한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석의를 요약하면서 그는 "선지자 다윗을 통하여 성령께서 간단하고 분명한 말로 다음과 같은 주제에 가르치신다: 그리스도;그리스도안에 있는 두 본성,그의 신성과 인성,...그리스도의 통치와 왕국,...그리스도의 겸손, 고난, 그리고 죽음; 그리스도의 부활, 승귀, 그리고 영화." 그러나 이 방법들을 따른 시편 해석들을 보면, 구약 자체의 맥락이 사라지고 마치 신약성경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러한 유형의 해석은 오직 신약계시의 내용만 들을 수 밖에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약을 그 자체로 듣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다는 것이다.
반면에 칼빈의 해석의 특색은 구약의 증언이 신약 속에서 상실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과 신약의 증언을 결합하는 동시에 각각의 독특성을 인정하려고 한다. 그는 창조와 타락의 교리(doctrine)라는 전체의 틀 속에서 이 시편을 해석하려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요약해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는 무한한 자비와 깜짝 놀랄정도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보여 주셨으며, 비록 인간의 타락 때문에 행복한 상태가 거의 파괴되고 만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당시에 그에게 제시하셨던 관용에 대한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그것을 보고...(중략) 주께 찬양을 돌리는 일에 있어서 게으르거나 소홀하게 다루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의 약점은 여러 부분들이 신구약 모두에 생소한, 전체에 맞추는 교리적 맥락이 신구약 외부에 있는 내용으로부터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신구약 성서를 고려한 신학적 해석과 메시지
정경적 해석을 시도할 때 조심해야 할 두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시편의 본래의 배경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좁은 의미에서 보면,메시야적 시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하나의 오류는 시편이 예기하고 있는 것, 기대하고 있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기독론적 관점에서 시편을 읽을 때 신약은 우리의 시편 이해를 변화시킨다.
신약성서의 히브리서는 구약성서적인 인간 이해속에서 참 인간이 어떤 자인가를 보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예수는 일상 생활의 위협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인간의 극한 고통에 잠시간 참여했던 자이다. 결국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증거 이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시편 8편의 정경적 접근을 통하여 얻어낸 신학적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창조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된다.
둘째, 신약기자는 인간의 허무성을 철저히 인식하게 한다. 'ࠚࢫࠏࡗ'는 '유한한 존재', '깨지기 쉬운 존재'를 뜻하는 말이다(시9:20). 인간의 원천은 흙(ࠄनࡼࡖ)에 해당되며,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창세기 2-3장의 인간이해와 맥을 같이 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과 달과 별이라는 우주를 보면서 엄청난 크기의 우주에 비하여 하잘 것없는 인간의 허무성을 발견한다.
셋째, 인간의 허무로 끝나지 않고 존엄성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미약하며 무상한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만드시고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주셨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피조되었다는 창세기 1장을 생각나게 해준다.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서가장 큰 자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로 피조되었다.이것이야 말로 '신학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넷째, 신약 기자는 인간에게 소망의 길을 제시했다. "구원의 선구자"(히2:10)이신 예수가 장차 오는 새 세상을 완성하기 위하여 행하셨던 일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들어갈 합당한 기업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III. 사회학적 비평으로 본 시편 8편
1. 들어가며
본문은 시편 가운데 찬양시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찬양시들이 대규모 공동체 축제들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견해는 오늘날 보편적인 견해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 찬양시들은 제의를 기념하는 것들이다. 시편에 있는 많은 찬송들, 비탄 시편들, 감사 시편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들로부터 말한 개인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럴지라도 모든 경우에 이 개인들의 시편은 사사로운 묵상으로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제의 행위나 성전 축제에서의 낭송을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을 개인적인 시나 공동체의 시로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시편 이해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언약 신앙에 의하면, 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예배하는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은 이스라엘 제의공동체라는 특정한 사회 구조 속에 존재하는 여러 계층의 상호 작용의 결과에 기인하여 기록된 사회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열려있다는 전제 하에서 우리의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2. 몸 말
(1) 본문에 나타나는 사회학적 갈등 집단
Gottwald는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와 권력 관계 속에서의 시편의 기능을 ⸁방향설정(예; 정의로운 사회 질서 지향) ⸂방향상실(예; 대규모적 불의로 인한 공동체의 방향 상실과 불안정) ⸃방향재설정(예; 정의를 위한 새로운 노력들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의 방향 재설정)의 3가지 범주로 나누어 이해했다. 이 주장에 따라 본문에 나타나는 사회적 집단을 구분해 보면 아래와 같다.
a. 방향설정 집단: 어린 아이, 젖먹이, 사람, 인자
b. 방향상실 집단: 주의 대적, 원수, 보수자
c. 방향재설정 집단: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쓴 존재, 다스리는 존재
본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이해를 말하고 있다. 이는 정경비평에서 보았듯이 창세기 1-2장의 인간이해에 의거하고 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며 또한 흙으로 피조된 유한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방향설정 집단은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앙집단이다.
방향상실 집단으로 나타나는 '주의 대적, 원수, 보수자'는 어느 개인(예; 압살롬, 아히도벨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회의론자, 또는 무신론 집단 즉 하나님의 적대자들'을 의미한다.
방향재설정 집단은 방향상실 집단의 도전을 극복하고 하나님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것과 하나님이 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향설정 집단의 자기 재발견 집단이다.
(2) 본문이 편집되어진 당시의 사회학적 상황
시편이 지금 형태로 편집된 것은 포로귀환 이후 성전이 재건되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각개의 시들은 거의 대부분 포로 이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이미 불리어졌던 시들이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매년 우주의 왕이신 야훼를 위해 대관식과 같은 축제의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것을 확인하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이 제사 때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을 확인하고 이스라엘의 의무를 다시 다짐하고자 하였다. 이들 제사에서 불려진 시들(시 8, 24, 29, 46, 48, 50, 65 편 등)은 점차 전형적인 틀을 갖게 되었고 개인과 공동체의 종교적인 감정을 더욱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계약갱신제에서 시인들은 왕국수립 이후 이스라엘이 평등계약공동체로서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사회 경제적 갈등에 대하여 시편 기자가 항거한 수난의 대부분은 억압자들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공동체의 명백한 법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전통적 재판정까지도 이용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채무·몰수 절차를 조작함으로써 야기된 '민중의 빈민화'에 있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땅을 공동으로 소유했던 지파동맹의 시절과는 달리 토지는 점차 왕과 귀족들의 사유물로 집중되었다. 점차 가난한 계층이 확대되고 빈부 간의 격차와 불의한 착취 구조가 심화되었다. 억울하게 토지와 재산을 빼앗기고 노예로 팔리기도 하고 재판은 불공정하게 뇌물과 뒷거래로 결정되었다. 사실 억압자들은 신에게서 기원한 것으로 간주되는 법들을 흉악스럽게 범하고 있기에 그들이 아무리 외모를 경건하게 꾸민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와 태도는 "하나님은 없다!"고 소리 높여 선언하고 있는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민중의 억울함과 불의한 현실에 대한 분노는 시의 형태로 전승되고 계약갱신제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3) 본문의 사회학적 재구성
본문이 편집되어질 당시는 정치적·경제적으로 심한 억압과 착취의 모순 구조로 말미암아 인간의 존엄성이 극도로 파괴되어진 그러한 상황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과 포로생활 그리고 포로 귀환 이후의 생활은 이를 잘 보여준다. 본문의 최종 편집자는 공동체 내에서 정치·경제적 갈등 구조가 심화된 원인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뒤틀려진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에 대한 창조신앙과 그 안에서의 올바른 인간 이해를 회복해야만 한다고 본문의 편집자는 절감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 젖먹이, 사람, 인자'와 같은 방향설정 집단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지극히 유한한 존재임을 인식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인해 하나님을 찬양한다.(1절) 그러나 '주의 대적, 원수, 보수자'들과 같은 방향상실 집단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으며 이로 인해서 왜곡된 인간 이해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 공동체 내에서 억압과 착취를 일삼게 되는 죄악을 범하게 된다.(2절)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 상황 앞에서 본문의 편집자는 하늘과 달과 별들 그리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 또한 땅의 각종 들짐승과 같은 천지만물을 바라보게 된다. 바로 그 때, 본문의 편집자는 현실 문제의 근원이 잘못된 인간 이해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인간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편집자는 인간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창조된 유한한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인간은 모두가 평등한 존재이며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창조된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3, 6-8절) 이제 창조신앙과 올바른 인간이해를 회복한 편집자는 하나님을 찬양할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9절)
3. 나오며
본문이 편집된 삶의 자리는 오늘날 우리의 삶의 자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본문의 편집자가 느꼈던 절망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것이며, 본문의 편집자가 당했던 억압과 소외는 자본주의의 모순된 사회구조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철저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소외시키며 그로 인해서 인간성이 소외되고 말살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러한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오히려 불신앙과 인간소외는 점증하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하게 된다. 본문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에서 이미 살펴 보았듯이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인간관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러한 잘못된 인간관의 기저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본질을 망각한 채 방법론에만 집착함으로써 절망의 심연으로 한국사회가 곤두박질 치도록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다. 우리 한국 사회가 모순과 억압의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해야 하며 그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참다운 인간성이 회복되어야만 한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할 때 유한자가 무한을 경험하게 되며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발견하게 되며 역사적인 질서 안에서 신적인 질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때에 우리는 본문의 편집자와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IV. 수사학적 비평
1. 단락 구분
베스터만에 따르면 시편의 모음집이 점차로 성장하여 최후의 편집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이렇게 수집된 책을 다섯부분(시 1-41,42-72; 73-89; 90-106; 107-150)으로 나누었고 본 시8편은 첫번째 모음집인 1-41편에 속하며 보다 작은 모음집인 3-41편의 다윗 시편에 속한다고 보았다. 궁켈은 이 시편을 찬양시로, 베스터만은 찬양시와 동시에 창조시편으로 분류했으며 크라우스는 찬양시로 분류하고 제목을 '창조주의 영광과 인간의 위엄(The Glory of the Creator and the Dignity of Human Beings)'이라고 붙였다.
1) 구조 분석
A 서론 : 8 : 1 - 창조에 대한 주의 이름 찬양 ------ A :여호와 우리 주여-
본론 : 8 : 2 - 주의 권능
B 8 : 3 - 창조에 대한 감격 B :주의 손가락으로 -
C 8 : 4 - 인간의 비천함-인간에 대한 주의 사랑
* 교차 대구법
C' 8 : 5 - 인간의 위대함-인간을 높이심
B' 8 : 6 - 만물을 다스리는 인간 B':주의 손으로 -
8 : 7,8 - 사명의 대상인 하나님의 피조
A' 결론 : 8 : 9 - 창조에 대한 주의 이름 찬양 | A':여호와 우리 주여-
2) 구조의 특징
시편 8편의 구성은 A-A'속에 B-B'가 그리고 C, C'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A-B-C-C'-B'-A'의 구조로 되어 있어 교차 대구법을 이루고 있다.
A와 A'에서는 인간이 창조주인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으며, B와 B'에서는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같은 연약한 인간에 의한 주의 권능 찬양과 승귀된 인간에 의한 피조물의 통치를 표현하고 있다. 한편 C와 C'에서는 반대로 하나님에 의한 인간의 보호와 승귀를 나타내고 있다. A와 A'는 시편 8편 전체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 수사적 상황(Rhetorical Situation)
존 하르그리브스에 따르면 이 시편은 제의 공동체의 성전 예배에서 나타난 예배자들의 응답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예배 인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진리들을 표현하였다. 즉 행진하며 언약궤를 옮기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 언급하였다. 가수나 찬양단이 아마도 이 시의 한 구절을 노래했을 것이고, 그후 회중이 매 문단 끝마다 외치거나 합창으로 1절이나 9절을 노래했다. 합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주'로 언급됨으로써 찬양의 주체가 공동체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편은 제의 공동체의 예배현장에서 현악기인 깃딧(Gittith, ࠛࠉ০ࡶ)에 맞추어 찬양단과 제의 공동체에 의해 교창과 합창으로 불리어졌다고 할 수 있다.
3. 수사적 장치(Rhetorical Devices)
1) 포괄(Inclusion)
1a절과 9절의 내용 자체가 일치하고 A-A'의 구조를 이루면서 나머지 2절에서 8절까지의 시 전체를 포괄(inclusion)하고 있다. 이러한 구절의 반복을 통한 포괄의 장치는 이 부분이 제의 공동체의 예배현장에서 현악기인 깃딧에 맞추어 찬양단에 의해 불리어졌음을 시사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2) 교차 대구법(Chiasmus)
시 전체의 구조가 A-B-C와 C'-B'-A'의 평행구조를 이룸으로써 교차 대구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구조에서 시 전체가 자연과 인간의 창조와 다스림이라는 평행구도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3) 평행법(Parallelism)
a. A, C, A'에서 ࠫࠄन라는 의문사가 이끄는 수사적 질문이 세 번 나타나면서 평행을 이루고 있다. A와 A'(࠘ࠉࢇࡏࠫࠄन,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에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창조업적 속에 나타난 그분의 위엄과 존귀를 표현하고 있으며, 그에 비해 C(ࠎࡼࡎࠫࠐ࡞ࢮ ... ࠚࢫࠏࡘࠫࠄन, 사람이 무엇이관대 ... 인자가 무엇이관대)에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표현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영광의 격차를 매우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b. 의미의 차이가 없으나 단어를 달리 사용함으로써 표현되는 대상물을 강조하고 구두전승에 있어서 운율의 연속성 유지와 조화를 꾀하는 동의적 평행법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어린아이(ࠎࠉङञࢫࠒ)와 젖먹이(ࠎࠉहࣷ), 원수(ࠁࣵࢫࠀ)와 보수자(ࠎছऺৢप)(이상 2절), 손가락(कয়ॣࡪঅࡒ, 3절)과 손(कࠉࢀࣲ, 6절), 사람(ࠚࢫࠏࡗ)과 인자(ࠎࡼࡎࠫࠐ࡞)(4절). 또한 5절과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삼라만상의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특별한 사명을 위임하신 것에 대해서 단어를 달리 사용하고 있다.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ࢮࠄণࣩय़৫, 5절)',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ࢮࠄचࠉৌय, 6절)'.
4) 대조법
온 '땅(ࠖতࡎ)'과 '하늘(ࠎࣴन)'(1절), '주의 대적(कࠉতধࢫࠕ)'과 '어린아이(ࠎࠉङञࢫࠒ)와 젖먹이(ࠎࠉहࣷ)'(2절)가 대조되며 또한 '사람(ࠚࢫࠏࡗ), 인자(ࠎࡼࡎࠫࠐ࡞)(4절)'는 '야웨(ࠄࠅࠄࠉ), 천사(ࠎࠉजࡗ)'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5) 반제(Antithese)
사람(ࠚࢫࠏࡗ, 4절)과 인자(ࠎࡼࡎࠫࠐ࡞)는 천사(ࠎࠉजࡗ, 5절)의 반제로 쓰였다. '사람(ࠚࢫࠏࡗ)은 인간의 무능, 보잘것 없음, 죽을 운명의 인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인자(ࠎࡼࡎࠫࠐ࡞)는 인간은 흙(ࠄनࡼࡖ)에서 난 힘없고 유한한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5절에서는 인간을 천사 혹은 신들(ࠎࠉजࡗ)보다 조금 못한 존재 즉 천사나 신들과 방불한 존재로 만드셨다고 선언함으로써 인간의 품격을 격상시키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P문서로 알려진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고 표현되어진 유한한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품격을 시편 8편에서는 신적이며 천사적인 존재로 격상시켰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6) 반복법(Repetition)
a. 이 시는 평행구조이므로 반복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A는 시의 마지막에서 다시 반복(A')되면서 인간이 창조주와 그의 피조세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탄과 찬양을 발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시편 8편과 평행(Parallel)을 이루는 것으로 여겨지는 P문서인 창세기 1장에서 매 창조 활동 후에 나타나는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세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감탄(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0, 12, 18, 21, 25, 31)하는 것과 형식적인 평행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와 감탄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대조적인 감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 '주'라는 말이 계속해서 12회 연속 반복되고 있다. 이는 이 시 전체의 주체가 바로 창조주이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은 그분의 창조사역의 결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분을 '주'로 섬겨야 할 의무와 창조세계를 담당하며 위임받은 통치를 행사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7) 열거법
B에서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3절), B'에서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7-8절)을 열거함으로써 창조주의 창조세계가 전우주를 포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8) 운율(meter) 또는 음율(rhythm)
히브리 시의 또 다른 중요한 성격은 운율 또는 음율이다. 궁켈에 따르면 본문에서는 1절부터 9절까지 각각 다음과 같은 순서로 운율이 나타난다.
4+4, 4+3, 4+4, 3+3, 3+3, 3+4, 3+3, 4+3, 4+?
9) 운율의 파격
1절에서 4+4조의 운율이 9절에서는 4+?, 즉 마지막절의 운율에 있어서 시전체 내내 유지해 오던 4+4 내지는 4+3 혹은 3+3조의 운율의 대구라는 연속성이 갑자기 단절됨으로서 운율의 심한 파격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간략하게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로 시전체를 마감하여 부연설명을 차단함으로써 시적 여운의 극적인 강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따라서 마지막절의 운율의 파격은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장엄하게 펼쳐짐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 수사학적 비평의 결론 : 저자의 의도와 강조하는 메시지
A와 A'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대한 제의 공동체의 송영이 시 전체를 포괄하면서 C와 C'에서는 인간의 비천과 승귀가 연속적으로 나타나게 함으로써 저자는 하나님과 인간을 이 시의 두 기둥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저자는 수사적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강조하는 한편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C'에서는 인간의 창조가 신적 존재들 또는 천사인 ࠎࠉजࡗ과 방불한 존재로 창조된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인간의 품격에 대한 극적인 반전과 창조주에 의한 승귀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께서 전 우주를 다스리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땅과 공중과 바다를 다스릴 책임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움을 통해서 위임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A'에서 시편 기자는 인간의 위엄이 이처럼 크게 고양되었지만 4+4조의 운율에 파격을 가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대한 극적인 여운으로 시를 마감함으로써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위엄 아래에 있으며 그를 찬양할 의무를 가진 존재로 제한하고 있다.
V. 문 학 비 평
1. 문학양식 연구
1) 문학구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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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구조 (연 구분) |
문단 구조(내용별 구분) |
문체적 구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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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詩題) 선창 : 1a 1연 : 1b∼2 2연 : 3∼4 3연 : 5∼6 4연 : 7∼8 후렴 : 9 |
시제(詩題) 1a : 하나님께 찬양(합창) 1b∼2 :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창조에 나타내시고 악을 정복하신다. 3∼8 : 인간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존재 이며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9 : 하나님께 찬양(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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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詩題) A 서론 1a : 창조에 대한 찬양 본론 1b∼2 : 주의 권능 B 3 : 창조에 대한 감격 C 4 :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C' 5 : 인간의 귀중함 B' 6 : 인간의 사명 7∼8 : 사명에 대한 대상 A' 결론 9 : 주의 이름 찬양 |
시편 8편은 그 중심부가 4연으로 되어있고 앞·뒤에 선창과 후렴을 지니고 있다. 즉, 본시는 선창과 후렴을 거느린 4연 16행의 작품이다. 그리고 각 연의 둘째 절(3-4행)은 다음 연에 올 첫째 절(1-2절)의 테마를 미리 시사하고 있음도 유의해 볼 만하다. 그만큼 음보는 매우 규칙적으로 보인다.
2) 줄거리 : 선창과 후렴에서는 신비한 우주 속에 담겨있는 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내용을 동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시의 전반부(2∼3절)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아름다운 창조 솜씨에 대한 찬양을, 후반부(3∼8)에서는 비천한 인간을 만물 중에서 존귀케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을 보여주고 있다.
3) 소재 및 주제 : 본시의 소재는 자연계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나타내는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하늘과 천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우주 가운데서 가장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본시의 시인은 외형적인 우주 창조와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과 영광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이 문제는 마치 지나가는 문제인 것처럼 가볍게 훑어만 보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에 대한 주제를 핵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시의 주제는 한마디로 연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문체적 구조의 특징이나 주제적 특징을 고찰해 볼 때 본시의 양식은 찬양시이다.
부연 설명하자면, 찬양시는 무엇보다 '신중심적'적이고 그 내용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의 창조활동과 구원활동을 진술하고 찬양하는 것을 그 기본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또 구조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서두에 "찬양에의 권유"가 나타나고, 전개부분에서는 ki 문장을 사용하여 찬양의 이유나 목적을 나타나며, 결론부분에서는 대체로 시 서두의 찬양 권유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2. 문학표현 연구
1) 주요 어휘
주 : '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ࠄࠅࠄࠉ)는 본래 '주인','소유자'란 뜻이다. 본시에서는 시인 자신과 하나님과의 주종 관계를 표현하는 '주'라는 호칭을 거듭 반복 사용함으로써 천지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곧 자신의 주(主)가 되신다는 자신의 신앙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사람 :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노쉬'(ࠚࠅࠏࠀ)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 깨어지기 쉬운 존재임 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자 :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벤 아담'(ࠎࠃࠀ-ࠐࠁ)은 흙으로 지어진 존재 곧, 하나님의 피조물 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생각하시며 : '생각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자칼'(࠘ࠊࠆ)은 기억하는 것 이상의 뜻이 있다. 이 낱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두가지 일하심을 의미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 을 악에서 구출하신다.(본시)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할 때 그들을 바로잡아 주시든지 "징계"하신다.(시 24:6,7)
2) 사상적 비유 연구
환유법 : 주의 이름(1절) -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반영한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이 지으신 온 땅에 가득한 피조물들 속에서 그분의 아름다운 성품을 발견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 는 것이다. 즉, 모든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는 시인의 창조 신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주의 영광 - 주의 이름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댓구법적 표현으로서 시인은 해와 달, 별 등의 천체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능을 찬양하고 있다.
: 주의 손가락(3절) - 6절의 '주의 손'과 함께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하는 표현하는 것이나 보다 작고 섬세한 이미지를 주는 '주의 손가락'은 하늘과 달과 별들 지으신 하나님의 창 조하역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한 시적 표현이다.
: 그 발 - 책임성을 의미하고 있다.
의인법 : 신인 동형론적 표현은 모두 의인법으로 다루고 있음.
감탄법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절, 9절)
사람이 무엇이관대 … …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4절)
반복법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1절과 9절). ∼무엇이관대 주께 서∼(4절). 주의 손(3절과 6절)
대구법 :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1절).
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권고하시나이까(4절)
시각적 이미지 : 주의 하늘과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3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7-8절)
시적 이미지 :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2절)
3) 수사적 비유 - 수사비평 참고
이상과 같은 문학 표현들을 종합해 보면, 환유적 표현을 통해 주제접근적인 신학적 주제를 깨닫게 해 주고 있으며 감탄법, 반복법, 대구법, 시각적 이미지 등을 통해서는 시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의인법과 시적 이미지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창조활동과 구원활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회화적이고 입체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 저자의 의도
하늘의 달과 별들, 그리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 또한 땅의 각종 들짐승과 같은 천지 만물에로 우리의 눈을 이끌게 할 정도의 너무나 회화적인 본시는 시인이 자연 가운데 있을 때에 자연에 대해 친밀감을 있던 그가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고 있던 중 영감을 얻어 이 찬양시를 섰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 중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와, 우주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간에게 어떻게 위임되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본문의 기능
이 시편은 처음에 예배자들의 응답이었을 것이다. 성전 예배에서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예배 인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 진리들을 보였다. 즉 행진하여 언약궤를 옮김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 언급함으로서 그 진리를 나타냈다. 가수나 성가대가 아마도 이 시의 한 연을 노래했을 것이고, 그 후 회중이 매 연 끝마다 외치거나 합창으로 노래했다. 합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주"로 언급되어 있다.
본 시편은 오늘날 회중 예배에 썩 잘 맞는다. 즉 사람들이 노래하거나 응답하기에 적합하다. 여러 교회에서는 본 시편을 부활절이나 성탄절 때 사용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6절에서 읽은 바대로 "다스리고","책임"을 모두 감당한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능력을 사용할 때 언제나 하나님께서 책임을 졌다.
5. 다른 본문과의 관계
본시와 내용적으로 관련된 다른 본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본문의 1B, 3, 5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관련된 대표적인 시편의 본문으로는 시24:1,2. 시33:6, 7. 시102:25. 시146:6 등이 있고, 둘째로 본문의 4, 5절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위엄과 창조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본문으로는 시65:7,8. 시135:6,7. 시145:14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만물에 대한 인간의 위치로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만물의 다스림(책임성)이 표현된 5,6절과 관련된 본문으로는 창1:26∼28이 있다.
6. 지적 교훈· 정서적 감정· 의지적 결단
본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은혜를 찬양하는 찬송시로서 여러가지 면에서 지적 교훈과 정서적 감동, 의지적 결단을 보여주고 있다.
지적 교훈으로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는 분임을 알려주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자연을 포함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충분히 알려주고 있다. 두번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보존하시는 분임을 알려주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위엄으로 계속하여 창조하시는 분, 보존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번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한(책임성)을 부여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하나님께서 그의 권위와 힘을 인간에게 위임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서적 감동으로는 첫째, 시임이 밤 하늘을 보면서 자연창조의 아름다움 가운데 본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통해 느낀 감탄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느끼도록 하고 있다. 둘째, 이런 섭리 가운데 시인이 느낀 인간 창조의 신비와 연약한 인간에게 책임을 부여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연약성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충분한 감격을 던져주고 있다.
의지적 결단으로는, 시인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마치고 있는데서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듯이 본시는 제1차 독자들에게나 제2차 독자들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갖게하고 있다.
VI. 독자반응 비평
시편 8편의 독자반응을 시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그동안 적용되어온 사례들이 보통 이야기체(narrative)에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 즉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전개 되어지는 사건의 내용과 등장 인물의 분석,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적 갈등, 사건의 배경과 이 사건과 등장인물들이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등을 독자가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의 틀로 이 시편은 접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독자는 시편 8편의 독자반응비평을 자세히 읽기를 통해 중심 메시지를 발견해내는 것과 그리고 자세히 읽기를 통해 떠오르는 단상들을 하나의 입장을 가지고 묶어 보려 하였다. 독자는 이 시편 8편을 생태신학적인 차원에서 자세히 읽기를 시도하려 한다. 이것은 지구환경의 문제가 심각한 위기에 와 있는 21세기를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 이 시편 8편에서 현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함이다. 독자는 시편 8편을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책임의 구도에서 분석해 보려 한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 하나님 창조의 최상 작품인 인간에 대한 구약적인 이해와 인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집중시키고자 한다.
시편 8편은 시편의 많은 시중 찬양시로 읽히게 된다. 그리고 이 본문은 수사비평에서의 단락구분에 의하면, 1절과 9절은 창조주 이름에 대한 찬양, 2절-8절은 창조와 인간의 사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2절- 8절을 좀 더 자세히 나눈다면 2절-3절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주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4절- 8절은 인간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곳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속에서 인간에 대한 물음과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한다. 만일 시편 7편을 읽고 계속하여 8편을 읽은 독자라면 8편의 1절이 바로 위의 7편 17절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으로 느껴질 것이다. 구약을 쭉 읽어온 독자는 하나님 이름은 망령되이 불리어 져서는 안될 무시무시한 권능과 위엄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해와는 달리 본문 1절에서는 주의 이름을 아름답다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구약에서(특히 출애굽기에서) 이해하고 있던 하나님의 이름과 전혀 색다른 느낌을 준다. 1절의 하나님 이름에 대한 찬양은 바로 위의 7:17절에서 공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아름다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지고 발전됨을 독자는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라는 표현에서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는 가끔 하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에 탄복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답다(BHS에서는 ࠘ࠉࢇࡏ, NRSV에서는 magestic을 쓰고 있지만)는 본문의 표현은 아름다운 별과 달이 빛나는 밤하늘에 대한 이미지와 잘 들어맞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2절에서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왜 찬양되어져야 하는지를 시인은 잘 설명하고 있다. 2절은 언뜻 이해하기에 좀 난해한 절인데 이 본문을 충분히 숙독한 독자라면 시인의 파라독스적 비유법에 탄복하게 된다. 시인은 2절에서 "어린아이와 젖먹이", "대적과 원수와 보수자"라는 단어들을 대조시키고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통하여 적을 물리치신다는 상당히 역설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위대성을 아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가장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통하여도 찬양을 받으실 분이고 가장 연약한 도구를 통해서도 그의 대적자를 물리칠 수 있는 굉장한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젖먹이는 대적과 반대되는 의미로서 본문에서 사용되었음을 볼 때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순수성과 때묻지 않음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상태로 그리고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성격으로 독자는 이해하게 된다. 3절에 와서 독자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하늘과 땅, 씨맺는 채소와 열매맺는 과목, 별과 달을 창조하시고 좋아하시던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지금 독자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본다. 뿌연 하늘, 죽어가는 물고기, 공장의 폐수, 자동차 배기가스, 짤려나가는 과목들, 골프장또는 스키장 건설로 깍이운 산, 온갖 쓰레기로 뒤덮인 산과 들을 생각한다. 신체의 가장 약한 부분인 "손가락"을 사용하시고도 우주를 아름답게 창조한 하나님의 권능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세계는 자신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도구- 돈과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사탄의 소굴과 같이 만들어 버렸음을 본다.
4절에서는 인간이 중심 주제로 등장하게 됨을 독자는 눈여겨 보게 된다. 여기서 독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시인의 질문에 집중하게 된다.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인간이해는 철저히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맥락속에서 조명되고 있다. "인간이 무엇이냐?"라는 시인의 물음이 창조주 하나님의 찬양이라는 문학적 틀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그 물음이 전혀 철학적, 존재론적 물음이 아니고 신학적 성격의 물음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신학적 성격의 물음은 두가지 이해로 답해진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로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 받았다는 것이다. 4절에서 시인은 하나의 하찮고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척 감격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인간은 날마다 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인간의 연약성과 한계성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한다. 손가락 하나로 천지를 만드시고 젖먹이와 어린아이의 입술로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에 비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낮 보잘 것 없는 흙 먼지 같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날마다 생각하시고 권고하신다고 시인은 노래 하였다. "권고하시나이까"는 히브리본문으로 읽으면 방문하신다는 뜻으로 이 뜻에 따라 읽으면 인간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세심한지를 더 잘 느끼게 해 준다. 인간에 대한 두 번쩨 이해는 5절에서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살뜰한 사랑은 더욱 놀랍고 화려하게 확장된다. 여기서 독자는 부서지고 깨지기 쉬운 미약한 존재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에 말할 수 없는 감사와 찬송으로 화답하는 시인의 감정에 자기 자신도 이입되어짐을 느낀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높이시고 그에게 이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음을 독자는 6절에서 알게된다. 이 본문은 거의 창세기 1장과 평행된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지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6-8절은 창조세계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히 알게 해준다. 여기서 독자는 하나의 순서도를 머리속에 그려 볼 수 있다. 하나님-천사-인간-만물이라는. 이런 순서도를 그려보며 독자는 잠시 자신의 발아래 있는 만물을 휘둘러 보고 만족함을 느끼며 오만해 지게 된다. 그러나 잠시후 이 오만에서 깨어났을 때 독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다스리라"하신 명령을 잘못 이해하고 그에게 주어진 위임통치권을 남용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구약에서 "다스리다"라는 히브리 동사는 첫째 사람들이 "다스리다"라고 할 때 쓰이는 radah동사와 두 번째, 왕이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의 mashal동사와 세 번째, 봉사한다, 혹은 일한다의 의미로 쓰이는 abad동사가 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서 "다스리다"(radah) 동사는 본래 바벨론 궁중언어로 왕이 제국을 점령했을 때 제국의 백성을 행복하게 돌본다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여기 6절에서 쓰인 mashal(ࠌোन)이란 동사 또한 왕이 백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통치의 의미로 쓰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백성을 살피고 돌본다는 뜻으로 구약에서 사용된다. 이런 사실을 살펴볼 때 그동안 인간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권한을 얼마나 남용하고 오용했는가를 독자는 깨닫는다. 하나님으로부터 신탁받은 자연은 현재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인하여 무참하게 파괴되어져 가고 있다. 독자는 6절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인간의 발아래 점점 죽어가고 만물을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 중에 인간을 유독 사랑하시고 그 인간을 믿고 당신이 만드신 세계를 다스리게 하심은 짓밟고 파괴하라는 뜻이 아니라 돌보고 보호하며 더불어 살아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명령은 9절에서 보다 정확하게 확인되고 정리되어진다. 처음 1절의 찬양이 반복됨으로써 인간에게 아무리 큰 힘이 부여되었다 하더라도 그 인간은 한낮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위임한 통치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맞춰져 있음을 보게된다.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물의 통치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유익하게 사용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을, 하나님이 인간을 생각하고 돌보듯이 다스려야 함을 이 시편에서 통찰해 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답게 찬양되어질 수 있을 때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때이다. 시인은 선창과 후렴을 똑같이 일치시킴으로서 모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시고 다스리게 하셨다는 인간의 권한을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안에 가두어 버렸다. 시편 8편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천사보다 조금 못한 권세와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은 하나님의 권한 안에 있고 그리고 그 권한 안에서 인간이 받은 세상 통치권은 인간의 책임을 전제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하는 찬양시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고 독자는 결론을 내린다.
VII. 공시적 방법을 통한 시편 8편의 메세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인간의 존재이유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되풀이 되어왔다. 시편 8편에서 던져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파스칼의 표현대로 '두 무한' 사이에 끼어든 그 무엇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통하여 그 대적을 잠잠케 하시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만드시는 하나님앞에 서 있는 그 인간에 대해서 던져지는 질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인간의 의미를 생각할 때 기존의 우리의 생각은 새롭게 정리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시편 8편을 통해서 몇가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분과 일치할 때 인간의 존재의 의미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고 그리고 인간은 그의 피조물임을 인식할 때 인간의 존재가치와 삶의 의미가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
두번째,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에서부터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지음받았으나 어느새 그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타락하기 시작했다. 이 타락은 하나님과의 소외를 낳았고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소외로 이어졌다. 오늘날 점증되고 있는 이 소외를 극복하는 길은 바로 하나님과의 소외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만물을 그의 발아래로 두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파트너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권한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인간을 차별하고 지배하며 자연을 파괴하는 죄악을 범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생태계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과 생명체 모두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모습이 무엇으로부터 야기되었는지를 볼 때,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위임 통치권을 바르게 사용하여야 할 필요를 다시 절감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스림'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훼손시켰던 잘못에서 이제는 우리가 자연을 돌보고 보호하여 성서에서 말하는 '다스림'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여야 한다. 결국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발견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찾아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회복은 모든 우주만물과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져야 함을 시편 8편을 통해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확인해야 하겠다.